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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영장 여두둔 - 이는 대상 16:41, 42 그리고 25:1-6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다윗의세 명의 성가대 지휘자들 중의 한 사람의 이름이다. 대하 5:12에도 언급되어 있고 대하35:15에서는 '왕의 선견자'로 불리우기도 한 그는 대상 15:17의 에단과 동일인인 것 같다(Perowne).이에 대한 언급은 62, 77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말하기를 - (* , 아마르티). 문자적인 뜻은 '내가 말했다'이다. 그러나 문맥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생각하였다. 내가 각오를 하게 되었다'(38:16)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의 각오는 개역 성경에서처럼 혀로 범죄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의 불평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중얼거림으로 잘못 비추어질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오는 그 마음의 슬픔에 압도되고 또한 그 슬픔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2, 3절)

=====39:2
선함 말...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본 구절 해석시 초점을 맞추어야 할주요 단어'선한 말도'(* , 미토브)이다.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본절 전체의 의미가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해석가를은 '토브'(* ,good)를시편 저자가 그의 대적들에게 주었던 답변이라는 의미의 '좋은 말','율법' '찬양' 등으로 해석하여 본 구절 앞 부분을 "나는 심지어 선한 말도 하지 않았다"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설득력이 없다. 여기서는 '메'(* )의 원래의 형태로 문자적인 뜻은 ...로부터'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중의하나로 번역될 수밖에 없다. (1)위안, 기쁨등이 없다는 의미의 '선으로부터 먼'(욥 28:4) (2)침묵의 부정적 결과라는 의미에서의 '그래서 그것은 나에게 좋지 않았다.' 이 두 번역 중의 후자가 더욱 바람직한 이유는, 이어지고 있는 "그래서 나의 근심(고통)을 더하였다"와 평행을 이루기 때문이다(Perowne).

=====39:3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 문자적인 뜻은 '묵상 중에 불이 났다'이다. 이것은 2절에 언급된 주제에 착념했을 때 그 감정의 불꽃이 솟아올라 입으로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던것을 가리킨다(Barnes).즉, 그는 도저히 그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그 감정을 말로 토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욥 32:18, 19 ; 렘 20:9).


=====39:4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하사 - 이 말은 행스텐버그(Hengstenberg)가 주장하는 것처럼 "나는 이 고통에 지쳤습니다. 이제 내가 죽을 날이 언제인지 알려 주시고 나로 고통이 끝나게 하소서"와 같은 불인내의 토로가 아니다. 또한 이 말은 킴치(Kimchi)나 칼빈(Cal-vin)이 주장하는 것 같은 나의 생애가 얼마나 짧은지 나로 알게 하소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동안 당신에게 충분히 의뢰하고 의지한 것 아닙니까 ?"와 같은 하나님께 대한 권고도 아니다. 1절의 주석과 같이 이미 저자가 자신의 말이 대적들의 귀에 하나님께 대한 불평으로 늘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소원에 비추어 볼 때 이 말은 인내하지 못함에 대한 토로나 하나님에 대한 권고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나로 인간 수명의 덧없음과 불확실성을 바로 깨닫고 측정하게 하소서 그래서 나를 두르고 있는 모든 고통으로 인해 내가 당황하게 되는 대신 좀더 전적으로 당신께 나를 의뢰케 하소서"로 해석(Perowen)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이 말 뒤에 "이제 제가 기다리겠나이다 "정도를 넣어 해석하는 것도 좋겠다(90:1-4).


=====39:5
손 넓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테파흐'(* )로서 손가락을 가지런히 포갠 한 손바닥 폭의 직선 길이로 10cm 정도이다. 동일한 길이가 예레미야서에서는 사지(四脂)로 불리운다(렘 52:21). 가장 짧은 길이는 손 넓이의 사분지 일인 손가락 폭의 길이며, 이것은 인간의 수명이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의 시야에서볼 때 상대적으로 몹시 짧다는 것을 가리킨다(90:2, Anderson)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싶로 허사 뿐이니이다. 이에 대한 원어의 문자적 뜻은'그가 최고로 선 것은 한번의 호흡일 뿐이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번의 호흡은 그 의미가 모호하다. 바이저(Weiser)는 '자기 확신에 찬 채서 있는 모든 사람'이라고 보지만 그가 삽입한' 자기 확신에 찬'이란 표현은 본 구절이 모든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쪽의 의미가 강하므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기에 이 구절은 든든히 선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삶은(119:89) 한낱'호흡'에 불과 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Anderson)그리고 이 구절은 94:11 ; 144:4 ; 욥 7:7등과 매우 유사하다. 한편, 이 구절 뒤에는 '셀라'(* )가 삽입되어 있는데 셀라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74회 출현하고 시편에서만 71번 등장하는 단어로 고대풍의 기술적 용어로 보는 것이 좋다(Kirkpatrick).그 의미에 대한 동의는 이루어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항상','영원히' 혹은 '(목소리, 눈을) 높여서'등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한 듯하다.


=====39:6
그림자 - (* , 첼렘). 문자적인 뜻은'헛된 과시', '환영', '착각' 등이다. 문자 그대로 어떤 실체의 그림자와 같은 이미지 혹은 그와 같은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첼롑'은 우상을 뜻하기도 하는데(왕하 11:18 ; 암 5:26), 여기서는 그림자처럼 곧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허무한 실존을 가리킨다.
헛된 일에 분요하며 - 문자적인 뜻은 '즉 호흡처럼 동요하며'인데 이것은 소란을 피우거나 야단 법석하는 것을 가리킨다(Perowne). 이것은 재물을 얻거나 명예를 얻기 위하여 팔꿈치로 옆 사람을 밀치듯 애쓰고 소동하나 결국에는 한번의 호흡과 같은존재 뿐인 인간의 속성을 잘 풍자해 준다(약 4:13, 14).

=====39:7
주여 내가...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 '주여' 앞에 원문에는 '에아타'(*라는 부분자; 자;아는에 그 뜻은 '그러므로 이제 나는'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덧없는 인생에 대한 상념으로부터 돌파구를 찾는다는 의미의 분명한 전환인 바 영원히 거사시는 하나님께 그의 마음의 눈을 고정시키는 일을 암시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것은 이제 그 소망의 대상이 앞으로 올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의지하려는 그의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이 엿보인다.


=====39:8
모든 죄과(罪過)에서 건지시며 - 이제 저자는 모든 그의 고통과 그의 혼돈의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 앞서 말한 죄과에서 자신을 건지는 일을 행하여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악인으로 하여금 시편 기자 자신이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은총의 대상임을 목도하게 해달라는 말이다(Barnes).


=====39:9
내가 짐잠하고 - 이것은 분명 1, 2절에 묘사되어 있는 각오 및 행위를 가리킨다.그런데 어떤 학자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어 쓴다. 즉,'나는 인간에 대해 불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께블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의 죄악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Sclater).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 물론 그 원인은 저자의 죄 때문이기는 했으나그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그에게 고통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고통 받음이여호와로 부터온 것이었고 여호와는 의로우시기 때문에(이 사실이 저자의 전재임에 틀림없다) 그와 논쟁하는 일은 옳지 않다. 그 누구든지 그분과 논쟁하고 어리석은 변론을 행할 때 그의 죄는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Anderson).


=====39:10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 '징책'(* , 네가)의 문자적인 뜻은 '한번 내려치기'이나 38:2의 '올무'와 그 의미가 동일하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밝혀져 있지않지만 대적들이 본 시편 기자를 넘어뜨리기 위해 설치했던, 그래서 고통을 받았던 그 올무에서 놓여지기를 기자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셨나이다. '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티그라'(* )로 문자적인 뜻은 '공격하다', '내려치다'인데 구약 성경 전체에서 한번밖에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다. 이 단어로서 동의적 평행구를 이룬다. 한편, 구약 경에서 반복은 강조를 의미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시 기자가 당하고 있는 '올무'로 인한 고통은 몹시 심했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 또 강조사로서 저자 자신의 연약함과 그 위에 손을 펼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Perowne). 그리고 본절에서 '쇠망하다'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탈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Barnes). 그러기에 본 구절을 통해 저자는 이제 거의 죽음을 앞둔 고통에 직면한 자신의 처지를 간파하고 그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 강한 능력을 펼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39:11
징계 - 이 용어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뜻으로 사용된다. (1)예시를 통한 책망, (2)논박, 논쟁, (3)말을 통한 책망이나 훈계, (4)징벌을 통한 책망 등 여러 가지 의미 가운데서 여기서는'징벌을 통한 책망'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편 기자가 이 용어의 사용을 통하여 본 표현에서 밝히려고 한 의미는, 징벌이나 재앙을 수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행에 대한 그 분의 뜻을 표현하신다는 것이다.
좀 먹음같이 - 이것은 나방같이 덧없고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아다움(욥 4:19)이나, 의복을 살살 갉아먹어가는 나방의 영향력처럼 조용히, 은밀히 인간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호 5:12이 지지하듯이 후자가 바람직하다 하겠다(Perowne).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허사 뿐이니이다 - 이에 대한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호흡과 같나이다'이다. 능력이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없고, 설령 능력이 있더라고 영원하지 않은 인간의 속성을 단적으로 지적해 주는 표현이다(Barnes).


=====39:12
눈물 흘릴 때에 - 히브리어의 문자적인 뜻은 '나의 눈물을'이다. 개역 성경의 번역도 좋지만 '나의 울음 소리를 들으실 때'가 좀더 원문의 의미를 살려준다 하겠다. 본절의 울부짖 음은 간절한 소망을 담고 가슴을 쳐서 회개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하는 기도의 한 특성이다. 비록 그 입을 열어 말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의 내적 상태를 아시지만 회개의 뜻을 표현하는 자에 대해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Barnes).
객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게르'(* )로서 문자적인 뜻은 '지나가는 손님과 같은 자','박방인', '손님' 등이다. 창 23:4에서 빌어온 용어로 대상 29:15의 다윗의 고백에서 그 풍성한 의미를 알 수 있다. 한편, 본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보호를 요구하기 보다는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함을 표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Ander-son).거류자(* , 토솨브). 이는 '게르'의 동의어로 볼 수도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는 '일정 지역에서 얼마 동안 머무는 자'를 가리킬 때 특별히 구별해서 사용되는 용어라 할 수 있다(An-derson).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 이 구절은 땅 위에는 영원한 집이 없는 자로서, 체류한 곳의 땅을 자기 소유로 삼기 위해 구입할 수도 없었고(레 25:23), 그래서 여행자로서의 삶을 살았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같은 족장들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39:13
용서하사 - (* , 사아). 문자적인 뜻은 '응시하다', '조사하다', '인정을 베풀다','보다' 등인데 문맥을 고려할 때 '눈길을 돌리다'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즉, 본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서 눈길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조로 보아서 하나님이 어떤 상대를 불쾌한 눈으로 주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징계요, 고통이었다. 바로 그러한 고통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시도록 요청한 것은 결국에는 하나님의용서를 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개역 성경의 '용서하사'를 이해할 수있다.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 '회복시키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발라그'(* )인데 원래 아라비아어로서 '밝아지다', '비추다', '강하게하다', '슬픔을 이기다' 등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즐거워지다', '표정이 밝아지다'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욥 10:20에서는 '편안해지다', 암 5:9에서는 '(노를) 발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세상을 떠나기전에 '위로를 얻다'', '힘을 얻다', '생기를 되찾다'이다. 본 시편 기자는 그가 잃었었던 활력이 회복되기를, 특히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위로받기를 원했다. 그는 그의 인생 종국의 날들이 구름이 낀 날들이 아니라 좀더 밝고 명랑한 날들이 되기를 소원하였으며 동시에 세상을 뜨기전에 좀더 많은 위안을 받기를 소원하였다. 이것은 우울하고 부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좀더 밝게 과거를 바라보아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긍정적 확신을 가진 나머지 좀더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속에서 세상을 뗘나기를 원하는 저자의 바람이다(Barnes).

 

 

 

  본 시편은 저자가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소망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노래한
시이다. 이시의 작시 배경에 관해서 혹자는, 다윗이 임종에 임박하여 인생의 연약함고
과 무상함을 통감하면서 오로지 하나님 앞에 돌아와 삶을 정리하며 지었다고 하고, 또
어떤 학자는 다윗이 질병에 시달리며 압살롬의 반역 음모를 포착한 시기에 지었다고도
하나,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본시는 개인적 애가(哀歌)의 성격을 띠고 잇으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
용이 더욱 두드러진다. 또 부분적으로는 지혜시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5,  6절
의 내용은 전도서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표제문에 나오는 ''여두운'은  아삽,  혜만과
더불어    다윗  시대의  세  악장(樂匠)  중  한  사람으로(대상   16:41;25:1;   대하
5:12;35:15) 에단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이 본시를 짓고 그 시대의 악장인 여
두둔의 지휘하에 성가대가 부른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표제에 여두둔이 언급된 시
편은 본 시편 외에 62편과 77편이 있다.
  본 시의 두드러지는 주제는 인생의 덧없음과(5, 6절),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
신다는 것(7절)이다. 다윗은 본시의 전반부에서 인생의 허무함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
신의 연약함을 절감하고 있다. 그의 고백은 비관적이며 낙담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또
한 진실한 고백이다. 현재 다윗이 처한 환경, 즉 육체의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또한 원수들이 기회가 있는대로 그의 생명을 해하고자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라
도 절망할 수밖에없으며 비관중의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허무
함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소마으로 그 위기를 넘기고 있다. 오히려 그러한  비
관주의적 감정들이 시인으로 하여금 고백과 기도를 촉진케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시
인은 이제 절망을 딛고 하나님께 더욱 접근하여 그분의 응답을 기대한다. 소망을 하나
님께만 두는 자는 어떤 위기와 고난에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경건함을 지킨다.
  이러한 본시를 주제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1)인생의 한계와  무상
함을 담고 있는 전반부(1-6절)와, (2) 하나님을 향한 소망만이 그 절망감을 극복할 수
있음을 담고 있는 후반부(7-13절)로 생각할 수 있다.

  1. 인생의 한계를 절감함(39:1-6)
  다윗은 자신의 행동, 특히 말을 참으려고 무척 노력한 것 같다. 더구나 악한 원수들
앞에서 말을 참기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다윗은 혀로 인한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혀에 재갈을 먹이겠다고까지 하였다(1절). 한편 선한 말로 자신의 정당성을    변호하고
싶지만 이를 참고 침묵하기에 더욱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2절).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바후림에서 시므이라는 자에게 조롱을 받았을 때 대꾸하지 않고  침묵
했다(삼하 16-7-10). 실로 모든 범죄 중에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한 것이 가장  많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 즉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그 입으로
말하게 된다(눅 6:45).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사람이라
고 하였다(약 3:2).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으면 일시적으로  마음
이 시원할 수 있지만, 악한 자들 앞에서는 자기 변호가 자칫 어리석은 변론이 되어 오
히려 다툼이 커질 수도 있다(잠 29:9). 그러므로 성도는 더 큰 고통이 뒤따른다고  할
지라도 침묵으로 행악자들을 이겨야 한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실  것이
므로 주님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38:12-15).
  시인은 이러한 신앙적 침묵으로 인해 그 마음이 뜨거워지고 생각하면 할 수록  억울
함이 복받쳐 오르는 것이다(3절). 그렇지만 그는 들끓는 감정을 주위 사람들에게 쏟지
않고 하나님게 아뢴다. 여기서 다윗은 인생의 한계와 연약함을 깨닫는 간구를 하게 된
다(4절). 여기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지극히 미미(微微)한  존재
들(욥 17:14;전 7:2)이라는, 인생의 참다운 지혜를 시인은 터득하게 된다. 이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자는 그 짧은 생(生)을 살면서 죄악을 행하지 않게 된다(잠 12:16).
  인생은 사람의 보기에는 '손 넓이'정도이고, 하나미 보시기에는 '없는 것'같이 극히
짧은 것이다. 밤의 한 경점(更點)밖에 되지 못하는 순간의 쾌락 때문에 범죄함으로 영
원한 생명을 잃을 수는 없는 거시다. 인간이 형통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허사
'일 뿐이다(5절). 그 형통은 숨 한번 쉬는 것과 같이, 곧 없어질 안개와 같이  찰나적
인 것이다(약 4:14). 건강해야 70, 80년 사는 인간들이 헛된 일에 분주히  돌아다니는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잡으려고 하는 것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어서  실체
가 아닌, 즉 아무것도 아닌 허상일 뿐이다. 사람들은 세사의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
들을 열심히 모으지만, 곧 흙으로 사라져 버릴 인간인데 그 쌓아 놓은 것을 누가 차지
할런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재물만 탐하는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
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라고 말씀하셨고,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교훈하셨다
(마 6:19, 20).
  다윗은 이와같은 자신의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고 인생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확신하였다. 이러한 깨달음은 결국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한다.  우리
는 먼저 자신의 위치, 즉 인생의 연약성과 유한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인간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소망할 수 있게 되고 그분과 바른 교제를 할 수
있다(눅 5:8; 요일 1:9).
  한편, 참지혜를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특별히 언어 생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
여야 한다. 왜냐하면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들이 말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
람의 본질을 나타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마 12:35; 15:18; 약 3:10-12).

  2. 소망의 주께 부르짖음(39:7-13)
  자기의 소망이 이 세상에 있지 않음을 안 시인은 그가 겪고 있는    역경과    곤고함을
문제시하지 않고 주님께 간구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더이상 바랄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님만이 참되셔서 영원한 생
명을 베풀어 주신다(31:5; 요일 5:7). 불신자들은 인생의 무상을 알면서도 그  공허감
을 메우기 위해 더욱 세상의 것들에 심퓌한다. 또한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
에 나아가 만족을 얻으려 하기도 한다(롬 1:23). 그러나 신자는 주님박에는 소망이 없
음을 깨달아 하나님게 가까이 나아가 복을 누리는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16:2).
  한편 8절은 죄에 대한 다윗의 특별한 언급 부분이다. 다윗은 지금 그가 다하고 있는
질병과 고통에 대하여 하소연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범죄한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갈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
인지 알고 있다. 원인이 되는 죄가 제거되지 아니하는 한, 고통은 사리질 수 없는  것
이다. 어떤 시련이나 환난이 닥쳐왔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시험의  원
인이 나의 범죄함에 있지 않은가를 돌아보는 것이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모르는 우매한 자들에게 조롱과 수치를  당
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를 그 범죄에 대한 경성(警省)을 위해서 악인들의 핍
박 행위를 묵과하시기도 한다. 이와같이 죄는 영육간의 모든 평안함을 빼앗아가며  사
망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다. 이 죄로부터의 해방, 이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할 수 있
다. 그런데 이러한 죄의 해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만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되
는 것이다(사 53:5, 6;눅 17:21; 히 9:28; 요일 1:7-9).
  다윗은 자기의 고통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알았기에 이 징계를 거두어  달라
고 간구한다(9-11절). 간구하고 있는 다윗의 지금 형편은 최악의 상태이다. 육체의 심
한 질병, 불안정한 심정, 그리고 친구와 친척들로부터의 버림을 당하는 등 매우  절망
적인 상황이었다(38:11). 더구나 원수들의 음모가 진행되어 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
다. 다윗은 이 모든 고통이 '주님의 손이 치심'으로 인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10
절). 여기에는 주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된다면, 즉 회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용
서함을 받게 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그의 신념이 깔려있는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징계에 관하여 또 한 가지 특성을 첨부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행
한 대로 심판하신다면 아무도 그 앞에서 구원될 자가 없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죄로
인하여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즉각적이고 자비없는 심판이 행해지지
않고 자신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징계하시어 죄를  깨닫게  하시며
회개에 이르도록 하심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 하겠다(히 12:6; 계  3:19).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는 자는 입김이나 안개와 같이  자기
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그러한  멸망의  자식이
되지 않기 위하여 긴장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있다 하겠다. 세상 마지막
날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어떠한 성격을 띨 것인가?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
서 그 심판은 뜻밖의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마 25:31-46). 그러므
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죄에 대한 긴장감을 갖고 언제든지 죄에 빠지지 않
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살전5:1-9; 벧전 4:7).
  이 시편의 끝 부분은 38편과 같이 결론적 기도문이다(12, 13절). 다윗의 이  기도는
단계적으로 강렬하게 점층되고 잇다.' 기도-부르짖음-눈물'로 이어지는  이  점층법은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간구하고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기도의 생활을 게을
리하지 않았고,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 울부짖기도 하였다(22:2;120:1).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깊이 회개하기도 하였다. 병상에서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요를  적셨다(6:6)고
표현할 정도로 회개하였으니, 그의 회개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철저한 죄책감에서 우러나오는 회개의 참모습이라 하겠다. 다윗은 기도하는 자신을 자
기의 열조처럼 객(客)과 거류자(居留者), 즉 이국 땅에 머무는 이방인의 처지라고  말
한다(12절). 이것은 이 땅 위에 안착하여 뿌리를 내리지 않고 영원한  고향을  바라는
자신의 심정을 피력한 것이다(레 25:23).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객과 거류자들을 선대하도록 명령하셨다(출
22:21;23:9; 레 19:33; 신 10:18, 19). 시인은 자신이 나그네임을 내세워 나그네를 선
대하라고 하신 하나님께 특별히 자신의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
다윗은 최소한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잠깐의 건강만이라도 원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절망적이며 불안정한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그가  죽기
전에 하나님께 용서를 바라고 잇는 것은 비록 건강치 못하지만 죽기 전에  사죄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사후(死後)에는 죄를 해결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그가 마지막 건강의 회복을 구한 것은 이 세상에 대한 끈질긴 애착심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내세를 준비하는 바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건강의 회복을 구한
것으로 보아 다윗은 징계로 인하여 질병 중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며, 본시는 다윗이
아직 완쾌되지 못한 상태에서 쓰여졌음을 짐작케 한다.
  인생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그 영광은 잠시 잠깐뿐이다. 인간의 영광은 곧 시들고 뒤돌아볼 때 모두 헛되고 헛된 무상한 일  뿐이다(62:9;사  2:22;  벧전1:24). 일평생 가치 잇다는 것들을 쌓아도 자기 차지가 되지 않으니 허사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한, 인생의 모든 경영은 참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이 본시의 교훈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지혜를 얻어 이 세상에서 만족을 누릴 뿐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 약속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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