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0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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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주의 모든 기사 - 이 말은 다윗이 이방의 군대와 싸워 크게 승리한 것을 가리킨다(5, 15절). 혹자는 이 승리가 암몬과 아람 연합군을 물리쳤던 승리(삼하 10:6-10)였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Rawlinson). 한편, '기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플레오트' (* )는 '경이로운 일'을 의미하는 용어로 대적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한다.

=====9:1-11
'뭇랍벤에 맞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무트 랍벤'(* )은 지금까지도 난해한 용어이지만 아마도 노래의 곡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추된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알무트'튤 분리된 두 용어로 보지 않고 한 단어로 본다면 이 용어는 '여성의 목소리로'라는 뜻이 된다(Craigie).


=====9:2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 '지극히 높으신 주'란 히브리어로 '엘리욘'(* )인데 이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사 14:!4), 다른 신들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97:9), 그리고 천지의 창조자(창 14:19)를 나타내며, 더 나아가 만물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의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47:2;신 32:8). 이방의 거대한 군대를 물리치게 하신 하나님을 '엘리욘'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다윗은 주의 이름을 찬송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구속과 창조의 놀라운 일 가운데 당신의 이름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영광을 나타내셨기 때문이었다(8:1).

=====9: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넘어져 망함이니이다 - 이 구절은 주의 놀라운 일을 증거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물러가다'(* , 슈브 아호르)는 말은 문자적으로 '뒤로 돌아서다', 곧 '후퇴하다'라는 뜻으로 다윗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계획을 포기하고 후퇴하는 대적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넘어져 망하였다'는 표현은 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9:4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 이는 다윗의 승리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결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다'는 표현은 곧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을 하기 위해 강림하시거나 효과적으로 개입하시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Kraus). 본절에 사용된 전치사는 위치를 나타내는데 흔히 사용되는 '알'(* , '위에'라는 뜻)이 아니고 방향을 의미하는 '레'(* )이다. 이 전치사는 주로 '...을 향하여'(for, toward) 또는 '...을반대하여'(against) 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향하여 앉으셨다(또는 강림하셨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징계를 나타낸다.

=====9:5
열방(列邦)을 책하시고 - 여기서 '열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임'(* )은 주변에 위치했던 이방 족속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열방을 책하신 하나님의 행위는 저들이 멸망당한 유일한 원인이 되었다.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 이는 (1) 저들의 후손이 하나도 없도록 근절하였다는 의미이거나, 적어도 (2) 저들이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는 의미이 다. 이렇게 볼 때 이 구절은 6절의 '...기억할 수 없나이다와 내용상 관계가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Craigie).

=====9:6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 이 표현은 5절 하반절과 같은 의미로 다윗의 대적이 완전히 패망하여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엄하게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9: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 다윗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내다보고 있다. 여기서 '앉으셨다'는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했던 말이다.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쿠넨'(* )은 '예비하셨도다'라는 의미보다 '세우셨도다'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며 이 문맥에서도 이 의미로 사용되었다(Rawlinson, Kraus). 따라서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 여기서'세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벧'(* )은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 (2)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세계, (3) 전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TWOT). 본 문맥에서는 이중 특별히 (3)의 의미가 적절한 듯하다. 왜냐하면 병행 구절인 하반절에 '만민'이라는 동의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9:9
산상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스가브'(* )는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를 의미한다. 이곳은 적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시편 전체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한다. 다윗은 본 구절의 내용을 노래함으로써 하나님의 양면성을 표현해 주었다. 즉, 악인에 대하여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동시에 당신을 의지하는 겸손한 자에 대하여는 인자하신 보호자가 되신다는 양면적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9:10
주의 이름을 아는 자 - 이는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사는 자, 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와 동행하는 자를 의미한다(Kraus). 왜냐하면 '알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다'(* )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키는 인간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진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 '의지하다', '찾는다'는 말은 특별히 위기를 맞이했을 때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믿음의 행위를 의미한다. 다윗은 사울 왕의 핍박하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았으며, 그러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안전하신 보호를 체험하였다. 이러한 체험에 근거하여 그는 본 구절의 말을 담대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37:28). 그리고 특히 본 구절에 사용된 두 동사(의지하다, 찾다)는 앞에서 사용된 '알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9:11
백성 중에 -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들 중에'라는 말이다(Rawlinson, Kraus). 다윗은 하나님의 계시가 이스라엘 내에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에게까지도 알려져야 한다고 믿은 것이 분명하다(18:49;66:4;72:11, 19).
선포할지어다 - 다윗은 3-10절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밝힌 후 자기의 동족들에게 하나님을 함께 찬송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9:12
피흘림을 심문하시는 이 - 피흘림 당한 자들을 위해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생명의 근원인 피를 취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는 것은 당연하다(창 4:10;9:5). 여기서 '심문하시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 )는 보통 '찾다'라는 뜻이지만, 생명을 취한 자들에게 사용되었을 경우, '보복하다' 또는 '생명을 취한 대가로 생명을 요구하다'라는 뜻을 가진다(TWOT).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 여기서 '저희'는 환난 때에 여호와를 의지하며 찾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서는 보수(報讐)하시나 겸손히 그를 의지하고 찾는 자들은 환난 중에 기억하셔서 구원하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양면성이 암시되어 있다.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 '가난한 자'란 문자 그대로 '가난한자'를 의미할 뿐만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으로는 원수들에게 압제당하는 자, 고통당하는 자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Rawlinson, Kay).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9:13
찬송의 분위기에서 기도의 분위기로 바뀌는 전환점이다.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다윗은 3-6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 곧 원수들을 물리치게 하신 과거의 경험을 노래한 바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윗은 이 당시 당연히 원수들의 압제에서 자유로운 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본 구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다윗이 과거의 경험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심정으로 이와같이(13-20절) 기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Kraus). 하지만 그의 기도의 간절성으로 볼 때 본 기도는 현재의 고통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인 것으로 보인다(Calvin, Rawlinson). 즉, 다윗은 과거의 놀라온 체험으로 어느 정도 원수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껏 그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그 주변에 잔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위기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망의 문 - 14절의 '시온의 문'과 대조되는 어구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는 죽음(음부)의 세계를 의미한다(107:18;욥 38:17). 음부에 대해서는 6:5 주석을 참조하라.

=====9:14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딸 같은 시온'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따라서 이 말은 '시온의 딸'로 번역되어야 자연스럽다. 일반적으로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을 의미한다(Craigie, Rawlinson). 이렇게 볼 때 본절은 예루살렘에서 집회를 열고 주를 찬송하며 경배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9:15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 이는 기도 응답의 결과에 대한 노래이다. 여호와의 응답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악인들에 대한 재앙으로 실현되었다. 이와같이 열방의 멸망은 하나님의 재앙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또한 자기들이 악을 행한 보응으로써 받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Craigie). 본 구절을 통해 볼 때 다윗을 괴롭힌 대적들은 주위의 이방 나라들이며 이들은 다윗을 대적하여 전쟁을 시도했으나 결국 그 전쟁에 의해 파멸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숨긴 그물 - '웅덩이'와 마찬가지로 '그물'은 고대인들의 사냥에 쓰인 도구로(Alexander), 본 구절은 의인을 파탄의 지경에 몰아놓기 위해 꾸민 악인들의 계략을 비유한다.

=====9: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심으로 자신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자신을 대적한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셨음을 의미하는 말이다(Rawlinson).
힉가욘, 셀라 - 내용상 하나의 주제가 끝났음을 알리는 표시로 이해된다(Kraus). '힉가욘'(* )은 '연주 방법'을 지시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가 '묵상하다', '슬퍼하다', '탄식하다'는 뜻의 동사 '하가'(* )에서 파생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엄숙하게', '조용하게', '부드럽게'라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 '하가'라는 단어는 현악기로 반주한 92:3에 사용되었다(Craigie).

=====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 음부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곳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6:5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본 구절에 사용된 '돌아간다'(* , 슈브)는 표현은 인간이 다시금 죽음, 곧 본래의 존재인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파생되었지만(Kidner), 여기에서는 악인들이 본래 계획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비유적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Calvin). 이는 15절과 부합된 해석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 - 이는 악인과 동의어이며 악인의 성격을 좀더 구체적으로 규정한 말이다.

=====9: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 본절은 17절과 대조되는 구절이다. 여기서 '궁핍한 자'는 17절의 '악인', 곧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으로서 단순히 부요치 못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악인들에게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나 하나님께 소망을 둔 의로운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들은 '가난한 자'로도 표현되며 하나님의 기억의 대상이 되어 악인들로부터 구원받는다.

=====9:19
여호와여 일어나사 -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간섭)을 요청하는 말이다. 이에 대한보다 자세한 내용은 7:6 주석을 참조하라.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 여기서 '인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노쉬'(* )는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 용어는 아마도 '약하다', '병들다'는 뜻의 동사 '아나쉬'(*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TWOT). 다윗이 일반적으로 '사람' 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히브리어 '아담' (* )이란 말 대신에 이 용어를 본 문맥에서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에 인간의 연약함을 의도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함이다(Craigie, Kraus). 이와같이 인생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때 여지없이 멸망당할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생이 하나님을 이기려하는 행위는 실로 가증스러운 일이다(Rawl- inson).

=====9:20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 본 구절을 직역하면, '여호와여 저들에게 두려움을 두시고'이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출애굽과 같은 놀랄 만한 일(신 4:34, '두려운 일')을 의미한다. 대적들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두려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성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자기는 인생뿐인줄 알게 하소서 - 여기서 인생은 19절의 인생과 같이 '아노쉬'이다. 다윗이 이 단어를 거듭 사용한 것은 그만큼 인간이 연약하며 제한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위기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하는 본시는 (1) 대적을  물리치신 하나님에 대해 찬양하는 부분(1-10절), (2)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부분(11-20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시편은 일반적으로 '감사시'로 알려지고 있는데,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언약궤가 시온에 머무르고 있던 시기에 다윗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감사하면서 쓴 시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다윗이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만 감사를 표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다윗은 하나님이 과거에 원수들의 횡포와 능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셨음을 생각하고 미래에도 여전히 지켜주실 것임을 염두에 두면서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본시는 다윗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고백한 노래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보시는 히브리 알파벱의 답관체(踏冠體)형식으로 쓰여졌다. 답관체란 시의  연이나 절의 첫 글자를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시 형식을 말하는데, 이와 같은 형식은  본시를 비롯하여 10, 25, 34, 11, 112, 119,145 편 등에서 사용되었다.  이러한  형식은 자신의 감정과 지혜와 교훈을 가장 완전하게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도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과거의 승리에 대한 감사와 미래의 구원자[ 대한 간구가 표현되고 있는 본시의 내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주의 기사에 대한 찬송(9:1-10)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나타나고 있는 본 대목은 (1)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찬미(1-3절), (2)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에  대한 기억(4-8절), (3)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에 대한 찬양(9,1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의 승리의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는 다윗의 아름다운 신앙을 엿복 수 있다. 다우시은 그 놀라운 승리의 결과 중 지극히 적은 일부분이라도 자신의 능력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윗은 오로지 이스라앨의 승리를 가리켜'주의 모든 기사'라고 표현하였으며(1절), 원수들의 패배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였다고 노래하였다(5, 6절). 이 같은 고백은 그가 철저하게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다윗은 자신의 승리와  안전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겸손하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모든 일들을 우연으로 돌리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로  수용하였다. 압제와 환난에 대해서도 비감(悲感)한 마음을 갖기보다 도리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회롤 이용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구원이 존재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성품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구원의 근거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를 향하신 하나니의 은총임을 기억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혜가 없이는 결코 어떤 인간도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았다(10절).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태도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작게 여기고 오직    하나님만을 크게 높이는 다윗의 겸손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간구(9:11-20)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에 이어지는 본 대목은 (1)  하나님에 대한 찬양 권고(11, 12절), (2) 위기 극복에 대한 간구(13, 14절), (3)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15-18절), (4) 악인의 심판 간구(19, 2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인생보다 훨씬 강하심을 알고  또한  믿는 다윗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다윗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백성들에게    권고하면서 하나님은 모든 자들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전능자이시먀 사랑의    주님이시라고 말한다(11, 12절). 하나님은 피를 흘리게 한 자들에게 보복할 능력이 있는  분이시며 환난 중에 있는 자기 백성을 도우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시찾아온 위기 중에서 하나님꼐 도움을 요청한다(13, 14절). 하나님만이 가장 확실한 도움이시며 능력이 되심을 믿기 때문이었다. 다윗의 기도의 결과로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열방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15-17절).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다윗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을 주관하시는 통치자이심을 밝힌다(20절). 인산은 나약하고  유한하며 사특하지만 하나님은 홀로 위대하시며 공의로우시다. 다윗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오만에 대해 경고하고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경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다윗은 이러한 내용의 시구(詩句)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귀한 진리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1) 하나님은 인생보다 뛰어나신 분이시며, (2)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질그릇과 같은 나약한 존재이다. 따라서 (3) 성도는 어떤  인생이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4)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며 섬겨야 한다.

  *. '시온'(Zion)의 의미와 명칭.  (1) 시온의 의미 변천: 시온은 본래 예루살렘  성에 위치한 요새화된 여부스 족의 언덕이었다. 성경에서 시온이라는 이름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에 삼하 5:6-10;대상11:4-9에서 '시온 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그때에 다윗은 시온을  다윗  성이라고  개명하였다(왕상  8:1;  대하5:2). 이후 솔로몬은 다윗성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겨왔는데, 이때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시온 산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생각했으며, 시온과 성전을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한 다윗 성과 성전이 건축 설계상  하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들은 동일한 의미로 생각될 수가 있었다.
  본서와 예언서에서는 시온의 의미가 더욱 확대되어 하나님의 은총과 징계의  대상이 된 예루살렘과 동격의 의미로 언급되었다(사 28:16;렘 4:5,6;미 3:12).
  (2) 시온의 명칭: 다윗 성(삼하 5:7), 거룩한 산(2:6), 여호와의 산(미 4:2),  거룩한 자의 시온(사 60:14), 시온 성(사 33:20), 왕의 성(48:2) 등이 있다.
  (3) 시온에 대한 묘사: 아름다움(50:2),딸 같음(9:14),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사18:7), 아름답고 묘한 딸(렘 6:2),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시온 산(78:68),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을 산(125:1)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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