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0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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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여호와 우리 주여 - '우리'라는 말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시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시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의해 암송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시를 노래한다하더라도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한 회원으로서 노래하였던 것이다(Lange). 여기서 본 시의 저자 다윗은 여호와를 가리켜 '주'(* , 아도나이)라고 부르고 있는 바, 이는 하나님의 왕적(王的)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며(왕상 1:11, 43, 47) 아울러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나타내는 이름이기도 하다(147:5, Kraus).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에게 계시된 것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초이다(Kraus). 그리고 이 하나님의 성호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이시며 주인되심(히 2:10)을 계시한다. 그리고 이 계시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 주의 이름이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고 있으므로 '이름'과 '영광'은 히브리시의 일반적 특징인 대구법의 사용으로 의미를 서로 보완하고 있다.

=====8:1-10
본서는 찬양의 시이며 특히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는 노래이다. 본시의 내용은 창세기 1장의 기사와 일치하고 있다. 즉,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와 함께 인간의 탁월한 위치가 기록된 것과 같이 본시에서도 같은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3절에 '달', '별'과 같은 용어들이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이 시는 밤의 축제에 많이 암송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Kraus). 한편 표제어의 '깃딧'(* )은 아직까지 분명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용어이나 일반적으로 악기의 종류이거나, 멜로디 또는 음조의 스타일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된다(Rawlinson, Craigie, Kraus).

=====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권능을 세우심이여 - 이 구절에서 다윗은 '대적'과 '어린아이'(젖먹이) 대조시키고 있다. 여기서 '대적'은 인간의 힘을 자랑하며 교만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악인들을 상징한다. 반면에 '어린아이'나 '젖먹이'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겸손한 자를 상징한다(Rogerson & Mckay, Craigie). 이중 하나님은 후자를 통하여 그의 권능을 세우신다. 이 권능은 창조 때에 보여졌던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게 하심으로 창조주의 이름을 부인하고 교만으로 잘난 체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이다(고전 1:26-31). 한편, 이 구절은 예수님에 의해 메시야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어린아이들의 찬송에 적용되었다(마 21:16).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별들을 - 다윗은 본절에서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노래하고 있다. 그는 다년간의 목자 생활을 통하여 밤의 하늘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관찰에 근거하여 신앙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이토록 감탄적으로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Rawlinson). 한편, 다윗은 주의 손가락으로 천지를 만드셨다는 표현으로써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즉, 광활한 우주를 하나님께서 간단하게 창조하실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다윗은 이 은유적 표현을 통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육체적 존재가 아니시며 영적인 존재이시지만 천지 창조의 생생한 현장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 다윗은 이처럼 신인 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표현을 사용했다.

=====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 이 광활한 천체에 비해 인간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하물며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는 너무도 보잘것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간이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다윗은 크게 놀라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본절에서 주께서 사람을 생각하신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염려해 주시고 기억해 주셨다는 뜻으로, 이는 구체적으로 인생을 만물 중의 으뜸으로 창조해 주셨다는 다음 구절들(5-8절)의 내용과 관계있다. 인자가 무엇이관대...저를 권고(眷顧)하시나이까 - 여기서 '인자'란 앞절의 '사람'과 동의어로서 그밖의 다른 뜻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Craigie, Kraus, Rawlinson). 한편 '권고하시나이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 )는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주의깊게 돌보다'(attend to with care)라는 뜻으로 사용 되었다(TWOT).

=====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 여기서 '천사'는 원문상으로 '하나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엘로힘'(* )의 번역이다. 초기의 많은 역본들은 이를 '천사들'로 번역해 놓았다(70인역, 벌게이트역, 시리아역본 등).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70인역(LXX)을 따르고 있다(히 2:7, 9). 혹자는 이 번역을 반대하여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에게 비교하는 것이 신성 모독죄에 해당한다고 여겨 '천사'로 의역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Rawlinson, Kraus, Craigie, Briggs, Weiser, Lange). 그러나 이와달리 혹자는 본절의 '엘로힘'이 삼상 28:13과 슥 9:7에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단순히 신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Alexander, Anderson, VanGemeren). 인간이 하나님과 비교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 견해가 더 타당하다(히 2:9).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 만물에 대한 인간의 위치와 임무를 규정하는 구절이다. '영화와 존귀'는 왕의 표식(marks)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것들로 인간에게 관을 씌우셨다는 말은 인간을 만물을 다스릴 지배자로 세우셨음을 나타낸다(Craigie, Kraus). 이와갈이 만물을 지배하는 지배권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에게 그 지배권의 일부를 할당시켜 주셨다. 따라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듯이 인간은 만물의 지배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앞장서야 할 임무를 가지게 된 것이다.

=====8:6
다스리게 하시고...발 아래 두셨으니 - 이는 창 1:28의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과 유사한 표현이다. 왕에게는 백성이 종속되어 있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통치권하에 만물을 종속시키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간의 지배권은 인간의 부패와 타락으로 상실되어 버렸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와 같은 지배권은 회복되었다(마 28:18).

=====8:7
모든 우양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핌'(* )은 본래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는 수소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므로 모든 종류의 가축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Kraus).
들짐승 - 이 말은 분명히 집 안에 있는 가축뿐만 아니라 들짐승까지도 인간의 지배권하에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Kraus). 그러나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짐승들의 반역 행위가 나타났으나 (왕하 17:25, 26;욥 40:24;41:1-10). 메시야의 시대에 짐승들은 완전히 인간의 지배하에 있게 될 것이다(사 11:6-9;65:25, Rawlinson).

=====8:8
공중의 새...다니는 것이니이다 - 여기에는 모든 짐승들(7절) 외의 모든 생물이 포함 된다(창1:28). 이처럼 땅과 바다와 공중에 있는 모든 생물이 인간들의 지배하에 있게 된 만큼 인간의 영광은 왕적인 영광이다.

=====8:9
여호와 우리 주여...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다윗은 처음에 시작했던(1절) 말로써 본시를 마무리짓고 있다. 이 후렴구에서 다윗은 주의 이름을 찬송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1절 주석을 참조하라.

 

 

 

  본시는 다윗이 창조의 신비와 인간의 영광을 노래한 시로서 창세기 1장에 언급된 창조 기사의 메아리인 듯한 내용 때문에 '창조시'라고 불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 찬양시'의 범주에 포함되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주제로 일관되고 있다.
  또한 본시는 표제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로서 이는  본시가 기쁜 곡조로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불리워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전통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성전 고고조로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불리워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전통적으로 유대교에서는 성전 예배시나 장막절 축제와 같은 때에 본시를 낭송하곤 했다. 그러다가 후에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는 '예수 승천 기념일'(the Ascension Day)에  특별히 불리워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용 과정의 변천에는 본 시편을 메시야로서의 예수께 적용시켰던 신약 기자들의 해석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본시의 주제는 창조 사실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었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이 시편을 메시야에  대한  기사로 적용시키고 있다(히 2:6-9).
  한편, 본시가 다윗의 저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일치하나. 어느  시기에 어떤 배경에서 기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지짖 않고 있다. 다만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사실은 다윗이 목동 시절, 들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달과 별들에  대한  감흥이, 후에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찬양하는 시로 발전하여 만들어졌으리라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노래하고 있는 (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부분(1, 2절), (2) 모든 피조물 중 인간을 으뜸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하는 부분(3-9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시를 특징적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인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1, 2절). 본 대목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임을 역설적 표현 형태로 말하고 있다(2절). 사실 하나님의 영광은 지극히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啓示)에  의해서만 깨닫고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에게는 자신을 드러내 주시지 않고 반대로 어린아이나 젖먹이와 같이 스스로 겸비한 자에게 계시해 주신다(마 11:25). 따라서 아무리 박학 다식(博學多識)한 사람일지라도 교만한 사람은 우주 만물에 내재된  진리를 파악할 수 없으며,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세계 구석구석에 내재된 하나님의 여광을 발견하고 찬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시인은 만물 위에 뛰어난 인간의 존귀를 노래한다(3-9절). 본대목은 모든  피조물 줄 인간을 가장 탁월하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대 무변(廣大無邊)한 온 우주에 비하면 인간은 실로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교제의 상대자로 삼으셨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을  인간의 통치권 아래에 두셨다(6-8절). 이러한 인간의 영화와 존귀는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이후에도 상실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9절).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만물 위에 존귀하게 하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게 된다.

  *. 인간의 위치.  본 시에서 다윗은 광대한 우주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위엄을 바라보면서 연약한 인간을 창조와 구속의 주인공으로 삼아주셨음을 찬양하고  있다.  이제 본 강해에서는 하나님과 우주 만물의 가운데에 서 있는 인간의 위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인간이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존재인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할 수 있는 영돼된 피조물이다. 이 세상 만물 중에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깊이  교제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 밖에는 없다. 이러한 점은 다른 피조물들 사이에서 인간의 우치리를 구별시켜 주는 중요한 내용이다.
  그런데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선별하여 지킬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계명을 부여하셨고,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하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이는 곧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그에게 의지하기를 배우는 순간부터 자기의 본질적인 형상, 곧 완전한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만물을 다스리는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하는 인생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인간에게 명령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명령하신 것은 축복의 명령이었다.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준수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자다  결코  인간을 구속하는 올무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정당한 반응을 보일 때 진정한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하나님의 통치의 대리자로서 온 우주를 통치할 권리를 부여받은 인간은 교만하지 말고 자신의 위상을 분명히 깨달아서 겸손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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