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그 달 이십 사 일에...다 모여 - '이십사 일'은 초막절 행사가 완전히 끝난 22일의이틀 후였다. 따라서 여기 언급되는 백성들의 회집(會集)은 초막절 행사와는 관계없는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백성들이 다시 모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그들이 칠 월 초하루날에 죄를 인하여 슬피울기는 했지만(8:9),나팔절과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온전한 회개를 할 수 없었다(8:9,10).따라서 에스라는 중요한 절기들이 지난 한날을 택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한 회개를할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금식...굵은 베...티클 - 이것은 죄의 자각(自覺)으로 인한 애통한 마음의 외적인표시이다(Fensham). 죄의 회개와 관련하여 금식만 언급되는 부분은 삼상 7:6, 굵은 베옷을 입고 우는 경우는 창 37:34과 왕상 21:27, 그리고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는 것은삼상 4:12등이다.
=====9:2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거기에는 (1)본장이 에스라 10장 다음에 놓여져야 한다고 보고 여기의 '절교'가 이방 여인들과의 집단적 이혼 사실(스 9,10장)을 가리킨다고 하는 견해(Rudolph, Myers), (2)여기에는 상세한 언급이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본절의 '절교'는 그때에 백성들이이방 여인들을 내어 보냄으로써 실제로 이루어졌었다고 보는 견해(Keil), (3)통혼(通婚)으로 인한 문제와는 무리한 것으로 보고, 여기의 '절교'는 사업상으로 친교를 갖던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헌신, 결단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는 견해(Rawlinson, Schultz, Kidner), (4)그 당시에 자격이 없는 이방인들이 초막절 행사 등에 참여했었던 것으로 보고. 본절의 '절교'는 백성들이 '금식...굵은 베...티끌등을함으로써 이방인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고 하는 견해(Batten)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성경의 한 부분을 충분한 증거가 없이 떼어내어 다른 부분과 연결시키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둘째, 이방 여인을 내어보내는 일이 단 하루 혹은 2,3일 만에 이루어질수는 없었을 것이며 셋째,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사업상 상주하던 이방인들이 있었다(13:16)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네 견해 중 세번째의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 - 이와같이 죄에 대한 책임의 연대 의식은구약에서 종종 발견된다(시 106:6). 이러한 연대성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한 고통을 여전히 받고있었다(1:3). 이 같은 사실은, 조상들의죄가 후손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죄에 대한 긍극적 책임은 엄연히 각 개인에게 있다(겔 18장 주제 강해, '조상의 죄에 대한 책임의 연대성과 개별성' 참조). 한편, 본장 내용 중 '자기의 죄'는33-37절에 그리고 '열조의 허물'은 16-7절에 각각 언급된다.
=====9:3
낮 사분지 일 - 고대 유대인들은 하루를 밤과 낮의 각 사등분씩 팔등분(八等分)했다. 본절의 '낮 사분지 일'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를 가리킨다.
그 처소에 서서...율법책을 낭독하고 - 본절의 '처소'는 사역자의 자리와 구별되어백성들에게 지정된 자리를 뜻한다(Rawlinson, 8:7). 한편, '율법책을 낭독하고'는 백성들이 직접 '율법책'을 읽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에스라가 높은 강단위에서 낭독하면(8:3,4) 백성들 중간중간에 위치했던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상용어인 아람어로 번역해주는 것으로 봄이 무난하다(8:7,8).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려 - 여기의 '낮 사분지 일'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죄를 자복하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결과이다(8:9;행2:37).
=====9:4
레위 사람 예수아...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 한편, 본절에 열거되는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그들의 맡은 역할 또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본 문구를 '예수아...그나니는 레위 사람의 대에 올라서서'로 번역함이 더 낫다(Rawlinson)는 점에 근거해 볼 때(KJV, the stairs of the Levites ; RSV,the stairs of Levites)이들을 모두 레위인 출신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LB, NIV)).한편, '예수아'는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해주었던 레위 사람들 중의한 사람이었다(8:7).
큰 소리로...여호와께 부르짖고 - 여기서 '부르짖고'(* , 자아크)는 고난을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소리내어 간구하는 행동을 가리킬 때자주 사용된다(삿 6:7;삼상 8:18;대상 5:20;시 22:5). 따라서 본 문구는 이스라엘의죄 문제 해결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동으로 보면 적절할 것이다.
=====9:5
본절에 등장하는 사람들 또한 4절에서의 '대'에 올라 있었던 자들로 짐작된다. 그근거로서 4절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은' 레위 사람중 세 사람이 본절에서 다시 언급된다.
갓미엘 - '하나님의 존전'의 의미이다. 이 사람은 10:9의 '갓미엘'과 동일인일 것이다.
하삽느야 - '여호와께서 생각하심'의 의미이다.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귀환했던 '하사뱌'(10:11)와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호디야 - 8:7주석을 참조하라.
스바냐 - '여호와께서 숨기셨다'의 뜻이다.
브다히야 - '여호와께서 여셨다'의 의미이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 하나님의 초월적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 이것은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신뢰의 대상이 될 만하며, 또한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배푸시는 분임을 강조한다(습 3:17).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 - 주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성경 전반의 한결같은 명령이다(Rawlinson, 출 20:7;시 72:19;계 15:4). 여호와께서는 무엇이 부족하여우리의 송축으로 그 부족을 채우시려는 분이 결코 아니다(행 17:25). 하지만 사람을만드신 목적 중 하나가 사람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며 또 사람으로부터 찬양과 경배를받으시기 위함인 것은 분명하다(사 43:21).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의무이자 영광스러운 특권이기도 하다. 한편, '이름'은 히브리적 사고를 통해서 볼 때 '인격'과 동일하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9:6
여기서부터 본장의 마지막 부분인 38절까지는 백성들의 회개 기도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기도를 인도한 것은 일단의 레위인들이었고(5절) 에스라는 이들의 배후에서 교육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한 듯하다. 이 기도문을 가리켜 혹자는 시편 밖에서찾아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예배 기도문들 중의 하나라고 평한다(Michaeli). 백성들의 거듭되는 배역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이 기도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1) 창조에 있어(6절), (2) 예굽과 홍해에서(9-11절), (3)광야와 시내에서(12-21절),(4)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22-25절), (5) 사사들을 통해서(26-28절), (6)선지자들을통해서, 그리고 (7) 현재의 상황을 통해(32-37절).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으로서' 영원부터영원까지 계신' 이라는 문구(5절)와 매우 잘 어울린다.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이방신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존재이심을 강조하는 것임이 분명하다(시86:10).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 - '하늘'은 대기권 혹은 궁창(창 1:8)을, '하늘들의 하늘'은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늘, 즉 우주를 가리킨다(신 10:14;왕상 8:27;시 148:4).
일월성신 - 문자적으로는 '모든 군대들'의 뜻으로서, 주로 '천사들'을 가리킬 때사용된다(본절에서 '천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와 동일한 단어임). 그러나 여기서는 문맥상 '별들'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창 1:16,17;시 95:4,5;104편;136:5-9).한편, 이 천사들이나 별들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면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시 148:3;사 6:1-4;계4:8,9).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가운데 모든 것 - 지구와 (창1:1,9,10), 지구에서살도록 창조된 모든 동식물과 사람을 가리킨다(창 1:20-30).
지으시고(* , 아사) - '만들다'의 의미이다. 여기에는 창조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창 1:16).
보존하시오니(* , 하야) - '생명을 주어보존하다'의 뜻이다(Keil). 이것은 하나님께서 (1)자연 세계를 만드시고 그것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섭리하시는것(벧후 3:7)(2) 생물을 지시고 그 생명을 계속 연장시켜 주시는 것을 가리킨다(시 36:6). 따라서일단 창조된 피조물은 스스로 자기 보존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Rawlinson).
=====9:7
본절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중 오직 '아브람'만을 택하신 사실로 인하여 영광을 돌리고 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 히브리 원문은 본 문구가 관계 대명사 '아쉐르'(* )에 이끌리는 그 다음 문구들에 의하여 수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수 24:2)에게 영광 중에 임하여서(행 7:2) 고향을 떠날 것을 명령하신 사실을 가리킨다(창 11:31;12:1;행 7:3).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을 본토에서 떠나게 한것은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요 그야말로 찬양받을 만한일이었다. 그런데 '갈대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를 가리킨다. 한편,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중 페르시아 만에서 약 250km쯤 떨어진 남부에 위치했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닙불'은 우르로부터 북쪽으로 약 15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 하나님이 아브람과 더불어 후손에 관한 언약을 맺으면서 그에게 '열국의 아버지' 란 뜻의 아브라함 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을 뜻한다(창 17:1-8).
=====9:8
그 마음이...충성됨을 보시고...언약을 세우사 -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어떤 선행이나 공로 때문에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을 때(창 15:6; 롬 4:1-1)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 하셨고,그 의(義) 때문에 그는 언약 백성의 조상이 되었다. 그의 믿음 조차도 그의공로가 될수 없는 것은(롬 4:2). 그것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기 때문이다(행 7:2,3;엡2: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외아들 이삭을희생제물로 기꺼이 바치고자 했던 실천적 신앙 또한 간과될 수는 없을 것이다(창 22장).
가나안 족속과...기르가스 족속의 땅을...주리라 -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기로약속하신 사실을 가리킨다(창 15:7,18-21).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약속이 있은 지430년이 지난 후였다(출 12:40;갈 3:17). 즉, 그 약속은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그 땅을 정복함으로써 성취된것이다. 한편, 가나안 정복 당시 가나안 땅에거주했던 대표적인 일곱 족속 중에는 본문의 아모리 족속 대신 히위 족속과 블레셋 족속이 들어간다(수 9:1,2 주제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 참조). 그리고 아브라함 당시의 가나안 땅에는 초기 원주민들, 곧 르바, 엡, 호리, 수스, 아낙 족속 등이 거주하였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 본 문구 앞에는 개역 성경에서 번역치 아니한 접속사'키'(* )가 있다. 따라서 본문 '왜냐하면 당신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질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9:9
여기서부터 12절까지에서는, 출애굽시에 하나님이 그 크신 권능으로 백성들을 구출하신 사실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성경 저자들에 의해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구원 사건으로 간주되었다(시 78:12;105:27-37;106:7; 135:8,9;136:10).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호의적이었던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출 1:8) 중한 노역에 동원되는 등 핍박을 받았던 사실을 말한다(출1:11).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있었고,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출2:23). 한편, '감찰하시며'(* , 라아)는 원래 '보다' 혹은 '알다'의 뜻으로서, 자세히 살펴서 실제적 사실을 바로 파악하는것을 가리킨다(삼상 24:15;왕상 10:7;왕하 7:13).
홍해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 이 '부르짖음'이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애굽에서는 탈출했으나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고 더구나 애굽의 추격군이 바싹다가왔을때였다(출 14:10). 그때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홍해가 갈라지도록 역사하셨다(출 14:21,22). 한편,'부르짖음'(* , 자아크)은 4절의 '부르짖고'와 동일한 단어이다. 하지만 부르짖음의 이유는 다르다(4절). 그런데 여기서 본서의 저자가 시간상 10절의 내용보다 뒤지는 사건을 먼저 언급한것은 '고난을 감찰하신 사건'과 '부르짖음을 들으신 사건'을 함께 묶어 언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부각시키고자 함이었다.
=====9:10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 여기서 '이적'(* , 오트)은 성경에서 주로 '징조'및'표적'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직접적으로는 초자연적인 놀라운 사건을 가리키지만그 사건에 담겨있는 의미를 더 강조한다(출 7:3;왕하 19:29;시 105:27). 따라서 이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표적'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세메이온'(* )과 거의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요 2:18). 한편, '기사'(* , 모페트)는 특별히 놀라운 사건 그 자체에 강조점이 있는 단어이다(렘 32:20,21). 따라서 이것은 복음서 등에서 흔히 '기사'나 '기적'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테라스'(* )와 거의 같은 의미이다(마 24:24;막 13:22;요 4:48;행 2:19;살후 2:9).
바로와...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 문자적으로는 '바로에 대하여...그리고그 나라 온 백성에 대하여'의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누구에게 베푸셨는지 그 대상을 말해주는 문구이다.
이는...교만히 행함을 아셨음이라 -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및 에굽 백성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보이신 이유이다. 그런데 본절에서 '교만이 행함' (* , 주드)은'끓어오르다', '거만(오만)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맞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것을 뜻한다(출 18:11;신 1:43;17:13;18:20;렘 50:29).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한 노역을 부과하고 아들이 태어날 경우는 죽이는 악행을범한 것을 가리킨다(출 1:11,22). 그리고 '아셨음이라'(* )는 남녀가 성관계를통해서 상대를 알듯이 어떤 사물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창 4:1;출1:8).
오늘날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 출애굽 당시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권능이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에, 그 영광스러운 명성이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NIV, You made a namefor yoursself, which remains to this day). 실제로 애굽에 대해 베푸신 기적과 기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방 백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셨다(출 9:16;14:17; 15:14-16; 수 2:10).
=====9:11
출 14:9-31 내용의 요약이다.
돌을 큰 물에 던짐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 하나님께서 갈라졌던 물을 합치심으로써 그 가운데 있던 애굽 군대를 수몰(水沒)시키신 것을 가리킨다 (출 15:10,11).
=====9:12
낮에는 구름 기둥...밤에는 불기둥 -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별개의 두 기둥이아니다. 다만 한 기둥이 낮과 밤에 따라 이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출 14:24).이 두 기둥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적 임재의 표상이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중에 임재하셔서, 낮에는 서늘한 구름기둥으로 사막의 뜨거운 햇빛과 열기로부터, 밤에는 찬란한불이 되어(민 9:15,16) 사막성 혹한(酷寒)이나 동물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셨던 것이다.
=====9:13
본절은 14절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 언약, 즉 모세 언약을 주신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 산 언약을 주시기위해서 우뢰 .번개 . 구름 . 나팔 소리와 함께 불가운데에 임재하신 것을 가리킨다(출 19:16-18).이때 백성들은 두려움 중에 자신들을 성결케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렸었다(출19:10).
정직한 규례..계명을... 주시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같이 '규례'등을 주신 까닭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삶의 기준으로 삼게 하여 당신의 백성답게 살게끔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레 9:2;마 5:48;벧전 1:15).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통하여 당신의 형상 혹은 성품을 만민 중에 드러내려고 하셨던 것이다(마5:16). 바로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특별한 존재들로 선택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신 7:6). 여기의 '규례'(*, 미쉬파트)는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행동의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케 해주는삶의 기준(레 18:4;시103:6)을 가리킨다(8:18). 이 '규례'는 원래는 백성들 간의 시비를 가리는 일상적 법률이었을 것이나, 시내 산 언약이 백성들에게 주어지면서 거룩한율법을 가리키는 표현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정직한'(* , 야솨아르)은 '곧 바르다' 혹은 '곧바르게 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솨르'(* )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백성의 삶을 바르게 해주는 '규례'의 탁월성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아무튼본서 기자는 본절에서 이같은 수식적인 형용사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대한 예찬(禮讚)을 아끼지 않고있다(Rawlinson). 이와 비슷한 경우는 시편 119편에서능히 발견된다. 그밖에 하나님의 율법의 또 다른 명칭인 '계명'(* , 미츠오트)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지시하신 명령을 가리킨다.
진정한 율법 - '율법'(* , 토라)은 구약성경에서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므로, 함부로 그 뜻을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이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뜻을 수록한 '법전'(法典)으로서의 측면을 강조한 말이다. 한편, '진정한'(* ,에메트)은 '확실한', '참된', '신실한'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수 있으리 만큼 참된'의 뜻으로 쓰였다(수 24:14;삿 9:16;대하 18:15).
율례(* ,후킴) - 넓은 의미에서는 율법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의무와 그에 부속된 약속까지를 가리킨다.
=====9:14
13절이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강조한다면, 본절은 하나님이 그 말씀을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부각시키고 있다.그러나 사실, 13절과 14절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이다. 저자는 유사한 내용의 반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주신 일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거룩한 안식일...
알리시며 - 이처럼 '안식일'이 본절의 초두에 언급되고 있는것은,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출20:8-11;23:12).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고 지엄하신, 안식일 준수에 관한 계명이 철저하게 이행되지 않았을 수도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랍비들은 '안식일의 규례는 모든 계명들보다 중요하다'고까지하였다(Edwin Yamauchi). 이러한 안식일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다.즉 (1) 가나안 칠 족속의 정복을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예표적 안식(히 4:8), (2) 믿음을 통한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영적 안식(마 11:28; 히 4:3),(3) 주님의 재림을 통한 모든 성도들의 신천 신지(新天新地)에서의 완전한 안식(계21:4)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9:15
본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거역하는 모습이그려진다.
주림을 인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며 -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을 뜻한다(출 16:12;민 11:6). 물론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메추라기' 고기를 먹이기도 하셨지만 (1) 메추라기는 계속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으며, (2) 백성들의 탐욕에 따라 징벌의성격으로 주어진것(민 11:4,31-45)이라는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하늘 양식'(시78:24;105:40)으로 보기는 힘들다.
목마름을 인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리고 - (1) 르비딤에서(출 17:1-7)와 신 광야에서(민 20:2-13)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반석을 지팡이로 침으로써 거기서 마실 물을 낸것을 가리킨다(시 78:24;105:41;사 48:21).
주께서...주마 하신 땅을...명하셨사오나 - '주께서'...주마 하신'은 하나님께서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뜻한다(창15:18-21;26:3;28:13). 그리고 '차지하라 명하셨사오나'는 출애굽 직전에 모세에게 (출 3:8), 출애굽 후 모세를 포함한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가리킨다(출 23:31;민 34:2-12;신 11:24).
=====9:16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 '저희와 우리열조'의 접속사 '-와'(* , 웨)를해석적인 의미로 이해하여, 차라리 '저희 곧 우리열조'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Rawlinson).
목을 굳게 하여 - 이 표현은 말을 듣지 않고 뻗대는 완고한 황소의 모습에서 빌어온 것으로서(출 32:9;신 10:16;왕하 17:14;대하 36:13;렘 7:26) 하나님의 뜻을 거듭하여 거스리는 백성들의 불순종을 나타낸다.
=====9:17
거역하며(* , 마엔) - '거절하다'혹은 '싫어하다'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부과된 어떤 일의 실행을 극력 기피하는 것을 가리킨다(출 7:14;신 25:7;삼상 8:19;시77:2).
행하신 기사(奇事)를 생각지 아니하고 - 율법 준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만 가능하다(출20:2).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아니하기로 작정한 것과 다름없다. 한편, '기사'(* , 니플로트)는 '기이한일을 행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팔라'(* )의 수동형 분사로서, 인간의 상상을초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삼하 1:26대상 16:9;욥 37:5;시 75:1).
한 두목을 세우고...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 이 같은 생각은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자들 중 상당수로부터 비관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낙심한 백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었다(민 14:4). 물론 그러한 생각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으나 그 생각 자체가 하나님께대한 불신에 기인한 만큼 커다란 범죄임에 분명하였다.
더디 노(怒)하시며 -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의 구체적 국면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사백성들에 대해 형벌을 내리지 아니하셨다(민 14:13,19).
=====9:18
본절의 사건은 앞절의 사건보다 분명히 시간적으로 앞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언급한 것은, 본절의 사건이 그범죄의 질에 있어서 보다 사악하기 때문이다. 앞절의 사건은 생각에 그쳤지만, 본절의 사건은 생각을 거쳐 행위로 구체화 되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죄의 강도가 더 높아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를 베푸셨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 이 같은 범죄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위해시내 산으로 올라가 있는 동안 행해졌었다. 즉,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 오른 지 40일이되도록 내려오지 않자(출 24:18), 그가 죽었을 것으로 보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뒤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출 32:1-4). 이 같은 범죄의 주요 원인은 하나님께 대한 강력한 불만과 불신앙이었다. 특히 이 범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지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이 두드러진다(출 20:1-6).
이는...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 - 그 당시 백성들의 범죄는 우상을 만들었다는 데 있었지 다른 신을 섬겼다는 데 있지는 않았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백성들이 여전히 여호와를 섬길 의향을 갖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백성들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 여호와인 것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설만하게(* , 네아초트) - '업신여기다' 혹은 '멸시하다' 등의 뜻을 갖는동사 '나아츠'(*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극한적 행동을 통하여 어떤 대상을 능욕하는 것을 가리킨다(시 74:8;겔 35:12).
=====9:19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크신 긍휼 때문에' 의 의미다(NIV).한편 '긍휼'의 히브리어 '라함(* )은 '자궁'을 뜻하는 '레헴'과 같은 어원을 가진 말로서, 사랑스러운 자 혹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자에게 깊은 관심과 연민을나타내는 것을 뜻한다(Edwin yamauchi).
=====9:20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시며 -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장로와 유사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예언을 하게 했던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Schultz,Edwin Yamauchi, 민 11:17,25). 혹자는 여기의 '선한 신'을 이원론적으로 보고 '악한신'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한다(Volz).즉, 이들은 포로 후기 시대의 신(神)개념이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분명히잘못이다. 이스라엘에서 휠씬 이전에 벌써 '여호와의 신' (삼상 16:14), '악신'(삼상 16:14). '거짓말하는 영'(왕상 22:23) 등의 용어가 사용됐다는 것은, 본절의'선한 신'이 페르시아의 영향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단적인 증거이다(Fensham).
만나로...끊어지지 않게 하시고...목마름을 인하여 물을 주시사 - 15절주석을 참조하라.
앞장에서 백성들이 에스라의 지도 아래 초막적과 나팔절을 충실히 지킨 사건을 상
세히 언급했던 본서 저자는, 본장을 통하여 백성들이 금식을 결의하고 회개하는 장면
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본장은 백성들의 금식과 참외의 의식 장면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5절)와, 하나님은 은혜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역이라는 실제적 고백 내용을
담고 있는 후반부(6-38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은 좀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1)백성들의 철저한 회개 장
면(1-5절), (2)아브라함의 소명부터 광야 40년의 회고(6-22절), (3)가나안 입성 후 계
속된 선조들의 반역(23-31절), (4)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순종
932-38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결국 본장의 주안점이 언약의 갱신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에로 새로이 결단하도록 촉구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해 회개하는 백성들의 모습과 이스라
엘의 신앙 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한편, 본장은 8장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왜냐하면 본장에 언급된 사건의
시점이 비록 초막절 행사가 완전히 끝난 22일의 이틀 후였지만 그 행사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회개를 위한 국민적 회집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 단락에
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8장에는 언급되지 않은 대속죄일의 준수가 본장에서 회개
운동의 형태로 나타났기에 긴밀한 상관성이 있는 것이다(8:13-18 강해 참조). 이러한
사실은 7월 10일에 지켜졌던 대속죄일의 행사가 본장 전체에 흐르는 긍정적이고 여호
와 성일에 관한 분위기 때문에(8:9,11)앞장에는 생략되었기에 본장에 기록된 백성들의
회개가 이를 대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실제로 본장의 회개 운동은 단순하게 죄
를 고백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백성들의 언약 관계를 회상시켜 새
로운 관계로 나아가게 하려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38절).
사실 레위기의 기록에 의하면 대속죄일에는 백성들이 노동을 금지하고 하루 동안
안식일로 지키며 자신들의 죄를 각성해 스스로 괴롭게 해야만 했다(레 16:29;23;26
32). 특히 이 날릉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속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레 16:32,33) 대제사장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고
자기와 권속을 위해서도 속죄하는 날이기도 하였다(레 16;11-14)
그러나 본장은 백성들이 스스로 괴롭게 하며(1절) 죄를 회개하고(2,3절)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회상하는 기사를 중점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는 백성들의 국가적 회개
운동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공동체적인 신앙이 회복되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
도로 사료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속죄일의 행사는 이미 8장에서(그 내용이 생략
되어 있지만) 진행되었기에 본장에서는 단순히 백성들의 회개만을 언급하는 것이다.
한편, 본장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기도는 레위인들에 의해서 드려진 것이다(5절).
그러나 이 기도가 모든 백성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서 백성 모두의 회개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별히 이 기도의 내용
을 보면 하나님이 언약의 주체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백성들과의 언약
을 충실히 지켜오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8, 17, 19절)를 하나님과의 언약
에 순종치 않고 계속 거역하는 이스라엘의 불성실(17, 26, 29절)과 극명하게 대조시키
고 있다. 이는 백성들의 불의와 불순종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히 언약을 지켜가
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장에서 대두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창조 활동을 시작함에서부
터 계속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주도하시며 긍휼과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다(창
3:15;12:1-3;사 59:16,17;히 5:9). 그러므로 백성들의 금식과 회개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한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본장의 고백 형식과 흡사한 면을 시편의 찬송시에서도 발견하게 된다(시 106
편). 즉, 이 시편은 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험하고 불순종한 이
스라엘의 죄를 통탄하며 결국에는 구원에 대한 간구와 찬양으로 마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장에는 압제에서의 구원이나 용서를 간구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행사가 그 언약에 근거해 의롭고 신실하다느 사실과 그에 반해 이스
라엘은 계속 반역 해왔음을 고백하는 내용만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본장이 구원의 소
망보다는 백성들의 불순종을 직시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새롭게 갱신하도록
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38절).
이러한 내용의 사실들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1)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언약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며(약 2;5), (2)성
도들의 의지할 것은 자신과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신실하심이라는 사
실(시 106:44-46)을 배우게 된다.
1. 백성들의 철저한 회개(9:1-5)
전 단락에서 다루어진 7일 동안의 초막절 행사는 제팔일에 규례대로 성회를 여는
것으로 끝맺는다(8:18). 그런 다음 본문은 성회 하루 뒤에 계속헤서 발생한 일로서 이
스라엘의 거국적인 금식과 회개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1절). 즉, 본문은 금식과 회
개의 날을 자세히 묘사하는 단락으로서 백성들의 철저한 금식과 죄의 고백을 다룬 전
반부(1-3절)와, 백성들을 대표해서 기도하는 레위인들의 역할을 언급한 후반부(4,5절)
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본문을 사건의 진행별로 재구성해 보면 (1)백성들의 애통과 철저한 회개
(1,2절), (2)율법 낭독에 따른 회개와 경배(3절), (3)레위인들의 간구와 하나님께 대
한 송축(4,5절)등으로 되어 있다. 이는 본 단락이 예배의 과정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듯한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문에 언급된 이와 같은 순서, 즉 '회개-경배-
간구와 송축'은 오늘날 예배의 전반부의 순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백성들이 얼마나 철저히 금식하고 회개했는
가를 발견할 수 있다. 백성들을 티끌을 무릅쓰고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였을
뿐만 아니라(1절) 이방인들의 풍습과 악행에서 자신들을 구별하기로 결심하였다(2절).
이러한 백성들의 행동은 죄에 대한 깊은 애통과 답답한 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서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왕상
21:27; 욥 2:12). 또한 그들은 금식하고 참회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방의 풍
습을 단절함으로(2절)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거룩되고 구별된 성격을 드러내고 실
행하겠다는 백성들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 그들의 신앙이 어떠했음을 나타낸다.
특별히 본문에 나타나는 백성들의 회개는 이스라엘의 사악함이나 패역성에 대한 고
백의 수준을 넘어서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명령에 충실하려는 이스라엘의 깊은 열
망을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는 백성들이 죄를 고백함으로 이제는 회걔의 차
원을 뛰어넘어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
에서 백성들이 율법을 듣고 자신을 비추어 회개한 후 곧바로 찬양한 것도 하나님께 헌
신된 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3절).
한편, 본문에는 레위인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4, 5절). 주로 성경에
나타나는 레위인들의 직무는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이해시키거나(8;7,8) 백성들의
예배 의식을 인도하는 일(대하 20:19-21)이었다. 이러한 책임에 따라 본문에서도 레위
인들은 백성들을 대표해서 죄에 대한 뉘우침과 회개의 기도를 인도하고 있다(5-38절).
이는 레위인들이 하나님과 백성들 간의 중보자인 제사장적 위치에서 이스라엘의 언약
을 새롭게 갱신해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본서 전체를
제사장적 관점에 비추어서 기술해 나가려는 저자의 의도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7;1, 73;8:2, 7-9).
이러한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1)회개하는 자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만을 의지할 뿐이며(엡 1:7;2;4,5), (2)진정한 회개는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헌신을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라는(시 80:19;렘 18;11;35:15)
교훈을 배우게 된다.
* 구약에 나타난 신앙 회복 운동. 성도란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갈 5:24) 하나님의 영관을 삶의 최대의 목표로 삼고 사는 자들이다(고전 10:31). 그
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새활과 세상의 유혹에 빠져사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허탄
한 길, 즉 육체의 소욕(所慾)을 따라갈 가능성을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 또한 성도
들의 삶이다. 본 소고는 구약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여 세
상을 쫓아간 실수를 범하고 난 후 어떻게 신앙을 회복하고 나아가 한 단계 더 높은 신
앙으로 승화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신앙에 교훈과 도움을 얻고자 한다.
1)개인적인 신앙 회복 운동
(1)아브리함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벧엘에서 단(壇)까지 쌓은 그는(창 12:8)
가나안에 닥친 기근을 피하여 이방 땅 애굽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까는 자신
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였다. 왜냐하면 사래의 미모가
출중한 연고로 사래를 아내라고 하면 그녀의 미모를 탐낸 애굽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창 12:11-13). 결국 이런 사실을 탄로나게
되었고 이를 질책하는 바로 앞에서 그는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
고"(히 11:8)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갔던 그가 자신에게 닥친 '기근'이
라고 환경적 시련을 피하기 위해 이방 땅 애굽으로 가는 잘못과(사 31:1)또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말을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한 육적인 생각에서 나
온 것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돌아온 것은 이방인의 가혹한 질책뿐이었다. 이러한 질
책에 대한 그의 '무응답'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신앙의 극
복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스스로의 반성과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인해 그는 '아브라'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칭호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었고(창
17:5) 믿음의 조상으로 오늘날까지 칭송를 받게 되었다.
(2) 다윗 : 통일 왕국의 제2대 왕이기도 한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
고 그 뜻대로 살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이길 때도 하나님을 전
폭적으로 의지하는 등(삼상 17;47) 그는 언제나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다. 그런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 간음죄를 저질러 그녀에게
불륜의 씨앗을 가지게 하는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를 감추기 위해 밧세
바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최전선에 내보내 죽여 버리는 극약한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가 이처럼 비열한 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숭고한 마음이
육체의 정욕에 굴복하였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그가 그대로 모물러 있었다면 그는
결코 '성군'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위대함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한 데 있다. 즉, 그는 그 상태에서 나단 선지자의 꾸짖음을 달게 받아들
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심하 12:1-14). 이때에 그가 쓴 시가 구구절절이 회개의
자국으로 얼룩진 시 51편이다.
2)국가적인 신앙 회복 운동
(1)미스바 회개 운동 : 삼상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로 모이는 사건이
나온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 상태에 있었지만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
었다. 이런 와중에서 사무엘은 미스바 소집령을 내렸다. 그 목적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 관계를 재수립하고, 그 언약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블레셋의 압제를 단호히
배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미스바로 모이기 전에 사무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백
성들에게 공포하였다. (가)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라, (나)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이것은 곧 진정한
회개란 단순히 입술만의 회개가 아닌, 생활 그 자체의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교훈한
다. 이러한 명령을 백성들은 그대로 지켰고 이로 인해 미스바의 회개 운동은 하나님
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건짐을 받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2)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 남 유다 왕국의 제 16대 왕인 요시야는 26세, 즉 그의
통치 18년(B.C.623) 되던 해부터 유다 역사상 가장 철저한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개혁의 목적은 성전으로 중밋으로 유다 전역에 팽배해 있던 우상 숭배를 일소함으
로 인해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자는 데 있었다. 이러한 그의 태도를 열왕
기 저자는 "요시야와 같은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
가 없었더라"(왕하 23:25)고 극찬하였다. 이러한 개혁의 출발점은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그가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과 백성들
이 걸어온 길을 그 말씀에 냉철히 비추어 보면 모든 일을 주의 뜻대로 준행한 데 있다
(왕하 22:11;23;24).
이와같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간에 타락의 길에서 신앙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하
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비추어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자비의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요일 1:9).
2. 가안안 입성 전까지의 회고 기도(9:6-22)
본문은 레위인들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본장 후반부(6-38절)의 첫 번째 단락
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즉,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금식과 회개 장면을 상세
히 언급한 전 단락(1-5절) 에 이어지는 부분으로 아브라함의 소명과 언약 체결부터 40
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회고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서 가나안 입성 전까지의 하나님
의 구원 역사를 회상하고 있는 본문은 (1)아브라함과 언약 체결(6-8절), (2)애굽에서
의 구원(9-11절), (3)광야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인동(12-22절) 등을 회고하는 기도 내
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문을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다시 구분해 보면 (1)창조주 하나
님에 대한 찬양(6절), (2)아브라함과 약속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7-15절), (3)구원받은 이스라엘의 불순종(16-18절), (4)하나님의 계속된 긍휼과 인도
하심(19-22절)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는 본문이 '약속과 구원-백성의 불순종-하나님의
긍휼' 이라는 도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스라엡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싱기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편,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성품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나타나고 있
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레위인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본문의 기도가 하나님을 창조
자요, 섭리자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6절). 이는 본문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
계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가르침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그 자손에게 가나안을 주겠다는 언약을 하시고(8절 ; 창 17:1-8), 줄곧 이 언약을 지
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일하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7-15절). 그래서 특
별히 애굽과 홍해 앞에서 보이신 구원의 역사를 언급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언
약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본문 속에는 언약의 관계를 맺으실 뿐만 아니라 구원하셔서 백성 삼
으신 자들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당신의 뜻을 알리시는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다(13, 14
절).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를 의도적으로 암시해 준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언약을 신실히 이행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은 다윗을 거쳐 결국 예수
그리스도 때에 이르러 성취됨으로 입증되었다(사 59:16, 17; 눅 1:69-77; 히 5:9). 그
래서 마태는 예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아브라함부터 다윗을 거치는 계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마 1:1-17). 특히, 본문에 나타난 표현 방식을 보더라도 대부분은 하나님
을 주어로 취해 있다(6-15절, 19-22절). 이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이스라엘 역사를 주도해 오신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인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회고는 스데반의 설교
에서도 나타나고 있다(행 7;1-53). 단지, 본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관점에서 기록된 반면 스데반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 구약 계시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는 차이뿐이다(행 6:13, 14). 그러나 '약속 그리고 성취'라는 주제
로 본문과 스데반의 설교를 연결해 보면 그곳에는 서로 일관된 맥을 이루고 있는 부분
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1)피조물인
인간은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계명을 순종해야 함며(시 148:1-5), (2)
우리의 구원은 사람들의 노력 과 행위로써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하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시 62:5,6; 롬 3:24). 그리고 (3)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 백성을 먹이셨던 것처럼 오늘도 성도들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시고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시 33:18-22: 마 6:26-33)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 바벧론 포로시까지의 회고(9;23-31)
본문은 전 단락에 이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을 회고하고 반성하는 부분이다. 즉,
아브라함의 소명과 언약하심, 그리고 그 언약을 준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기록
한 전 단락(6-22절)에 연속되는 본문은 가나안 땅 입성부터 바벧론 포로기 까지의 이
스라엘 후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가나안 입성 이후의 역사를 회고하는 본문은 (1)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23-25절), (2)백성들의 불순종과 징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26-28절), (3)율법과 선
지자로 백성들을 가르치신 하나님(29-3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본문이 '하나
님의 긍휼과 백성들의 반역'이라는 주제를 예리하게 대조시키면서도 특별히 백성들을
깨우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을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26, 29, 30절).
사실 전 단락(6-2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적과 능력으로 행사하신 직접적인 섭리
와 교훈을 많이 언급하고 있으나(10,11,19절), 본문에서부터는 선지자를(26, 30절)이
나 사사들(27절)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했던 기록이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의 진행과 더불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방식을 확연히 보여 주는 것이
다. 즉, 본문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의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당신의 사역자들을
세우셔서 그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사사 시대르 보면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청종치 않고 이방의 풍습을 따
라 범죄할 때마다(삿 2:2, 11, 12) 하나님께서는 주변의 대적들을 통해서 고통을 박게
하셨다(삿 2:14,15). 그러나 백성들이 다시 돌이키면 사사른 통해 구원을 베푸신(삿
2;18;3:15) 사실이 많이 나타난다. 이는 패역한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가르치시고 경고하시며 더욱이 선왕(善王)들을 세우셔서 백성들을 인도해 오
신 기사로 점철되어 있는 남북 분열 왕국 시대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특별한 징계의 방법을 통해서라도 가르치시는 분으
로 본문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27-30절). 그러나 이러한 징계 역시 백성들을 위한 하
나님의 긍휼하심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어려움과 고통 속에
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셔서 용서하셨던 것이다(27,28절).
결국 이러한 본문에 나타나는 사실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이 백성들의
불수종 속에서도 성취되어 갔다는 것고, 그 반면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선지자드
리을 통한 가르침에 더욱 불순동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반역과 하
나님의 긍휼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26-31절). 이러한 대조는 백성들의
죄악을 폭로하기 위함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인내와 긍휼하심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로 사료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문이 담고 있는 교훈을 살펴보면 (1)징계는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이며(렘 25:4; 약 1:2,3), (2)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역
사를 위해서 세속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들어 쓰신다(사 42:24; 롬 13:1)는
사실이다.
4. 이스라엘의 당면 현실과 소망(9:32-38)
이스라엘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을 회고한 사실
(6-31절)에 이어지는 본문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충실로 인한 이스라엘의 당면한
현실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즉, 본문은 지나간 과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와 심
판을 기억하며 아직도 이스라엘이 열국(列國)의 종이라는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오직
구원의 능력은 여호와께만 있음을 깨달아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려는 백성들의
소망을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본문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1)공의로 행하신 하나님(32, 33
절), (2)하나님의 언약에 불성실했던 이스라엘의 모습(34-37절), 그리고 (3)언약을 견
고히 할 것을 다짐하는 이스라엘(3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본
서 저자 느헤미야는 레위인들의 기도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과거의 고난과
현실의 고통스런 문제에 대한 해석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본문은 앞 부
분에서 회고 했던 사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여러 번 은혜와 긍휼을 베푸
셨으나(7-15절, 19-25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불순종했
다는(16-18절, 26-29절) 본장 기도의 결론적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이유
로 인해서 백성들은 아직도 종의 상태에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죄의 결과로 인한 징게
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드디러 언약을 지킬 것을 맹세하게 되었던 것이다(10장).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서 죄에 대한 백성들의 철저한 반성고, 하나님께 대하 새로
운 신앙적 결단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특별히 백성들의 반성은 이스라엘 역사를 이
끌어 오신 하나님의 신실성(8절)과 공의(33절)에 대한 올바른 인식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율법을 순종치 않고 (34절) 주를 섬기지도 아니했던 죄(35
절)를 먼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핵심 사항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의 율법을 청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지킬 것을 서약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이방 나라의 종으로 남아 있는 자들의 현
실(스 9:9)을 탄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37절). 이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나님
의 진노 아래 있다는 인식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완전히 주권
국가로 회복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백성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출애굽부터 남북 분열 왕국 시대까지의 회고를 다룬(6-31절) 앞 부분은 표현
방식상 주로 하나님을 행위의 주체자로 기록하여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행사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백성들을 지칭하는 '우리'라는 대명사가 문장의 주어로 나타나고 있다(34-38절). 그런데 이는 전 단락의 객관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는 차원에서 전환되어 이제는 본문이 주관적인 내용으로 서술되었음을 드러내 준다. 즉, 죄를 고백하고(33-35절) 당면한 곤란을 말하며(36, 37절) 그래서 언약을 견고히 하겠다는(38절) 적용과 실천의 차원으로 마음을 모은 백성들의 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1)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개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행 2:14-38)과, (2)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치 않는 회개는 자신의 죄악을 시인치 않는 것이라는 사실(롬 3:3-8)을 깨닫게 된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