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느헤미야 08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8:1
본장에서부터 에스라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에스라는 에스라 10장의사건이후에 모습을 감춘 후 무려 14년 후에 다시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에스라가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문제로 온 나라가 법석이었으며 또한 고리대금으로 인한 경제적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했는데도 성경의 무대에 일절 나타나지 않은 것은왜였을까? 그것은 느헤미야가 B.C.435년에 팔레스틴의 총독으로 부임한 후에 페르시아 왕실의 소환으로 거기에 약 1년간(B.C.433) 다녀온 것처럼(13:6), 에스라도 에스라서 10장 사건이마무리지어진(B.C.458) 후의 어느 시점에 바벨론으로 돌아갔다 B.C.444년경에 다시 돌아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칠 월에 이르러 - 여기의 '칠 월'은 종교력으로서의 '칠 월'이며, 민간력으로는 일월이고. 태양력으로는 구 월 혹은 시 월이다. 그런데 에스라, 느헤미야 양서(兩棲)를막론하고 거의 민간력만을 사용하다가 여기서 특별히 종교력을 쓴 까닭은, 본장이 초막절 절기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9,11,14,16,18).
모든 백성이...모여 -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것은 나팔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레23:23-25;민 10:120;29:1-6). 이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어 이 날을 기렸다. 이 날을 기리는 목적은 먼저 종교력의 관점에서 보면 안식의 달인 일곱 번째 달을 맞아 봉헌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민간력의 관점에서는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새해 첫날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수문 앞 광장 - 이것은 성전 동문과 성벽 사이의 공터를 가리키며 스 10:9의 '하나님의 전 앞 광장'과 동일한 곳으로 짐작된다(Edwin Yamauchi, Raqlinson). 그리고 이'수문'은 기혼 샘(the Gihon Spring)과 연결되었다. 종교적 행사가 주목적인 백성들이성전과 가까운 곳에 모였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학사(學士) 에스라에게...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 이것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각한 영적 기갈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보여준다(삼상 7:2). 에스라가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는 바로 이같이 백성들의 영적상태가 극히 침체되어 있었다.그래서 그가 돌아오자마자 백성들은 그로부터 율법의 가르침을 듣기 원했던 것이다. '모세의 율법책'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1) 법률 자료 모음집(R. Kittel,M.Noth, G. von Rad), (2) 제사 법전 (W.H. Kosters, A.Kuenen, A.Lods, E. Meyer,B.Stade), (3)신명기 율법들(R. Bowman, B. Brownw, W. Scott),(4) 모세 오경(W.F.Albright, J. Bright, F. Cross, S.Mowinchel, W.Rudolph, J.Wellhausen).이 중 본절에서는 (4)항의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Bruce, Edwin Yamauchi).

=====8:2
제사장 에스라 - 이 같은 표현은 에스라가 백성들을 가르칠 자격의 소유자임을 암시한다. 그가 실력적으로도 자격자임을 암시하는 표현은 1절의 '학사 에스라'일 것이다.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회중 - 이것은 아주 작은 어린이를 제외한 이스라엘 사람 모두, 즉 많은 사람들이 에스라의 율법 해석을 들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강조적 표현이다(신 31:11).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말씀들뿐만 아니라 여러 의식(意識)들에 내포된 의의 등을 통해 지혜와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출 12:26,27;신 4:6;6:6이하;31:12,13). 영적 이해가 결여된 미신이나 맹신은 이교의 특징이었고(사 44:18,19),이스라엘의 멸망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호4:6).

=====8:3
새벽부터 오정까지...귀를 기울였는데 - 이것은 율법에 대한 백성들의 열정이 대단했었음을 암시해 준다. 그때 거기에 모인 백성들은 무려 6시간 이상 말씀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행19:9;20:7). 이같이 오랜 시간 동안 말씀을 받는 일에 열중했다는 것과더불어, 그들이 날이 밝자마자 모였다는 것도 그들의 열심을 잘 드러내준다.

=====8:4
에스라가...나무 강단에 서매 - 여기의 '강단'(* , 믹달)은 구약 성경에서항상 '망대' 혹은 '성곽'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창11:4;삿 8:9;왕하 9:17;대하26:9).따라서 본 문구는 그 때 에스라가 특별히 마련된 매우 높은 단(檀) 위에서 율법을 가르쳤음을 말해준다. 에스라가 이같이 높은 곳에서 율법을 가르쳐야 했던 이유는그 때 그의 가르침을 들으러 온 사람의 수효가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었다(2절). 즉그렇게 높은 곳에서 가르쳐야 모든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한 그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Fensham).
우편에 선 자...좌편에 선 자 -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사장들로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안식일 날 회당에서 몇몇 사람이 율법을 번갈아가며 봉독하였듯이, 본문의 13인도 에스라 곁에서 차례로 율법 내용들을 읽었으리라 생각된다(Kidner).

=====8:5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 이와 같은 백성들의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의 외적인 표현이며(Fensham, 삿 3:20;욥 29:8;겔 2:1). 아울러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또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8:6
본절의 내용은 율법을 가르치기 직전에 이루어졌다.
에스라가...여호와를 송축하매 - 유다인들의 회당 예배시에도 성경 말씀을 봉독하기전에 여호와를 송축하는 절차가 있었다(Edwin Yamauchi).이러한 절차가 에스라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된 것이라 보여진다.
광대하신 하나님 - 구약 성경 중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이 발견되기는 하지만(9:32;신 10:17;렘 32:18),동일한 것은 없다. 그러나 아람어나 페르시아어의 고대 문헌에서는 이와 동일한 표현이 자주 발견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표현이 바벨론적 기원을갖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Bowman). 사실 본서를 기록했던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출생하여 거기서 성장했다. 아무튼 본 문구는 하나님의 능력이 크며, 또한 그분의통치권이 온 세상에 미침을 뜻한다.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경배하였느니라 - 이것은 에스라의 송축에 대한백성들의 삼중적 응답이다. 그 중 '손을 들고'는 '광대하신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없을 만큼 부족함을 시인하는 외적 표현이다(Williamson, 스 9;5;시 28;2;134;2). 백성들은 잠시 후 에스라에 의하여 들려질 율법 말씀을 통하여 영적 기갈이라는 부족을채움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멘 아멘 응답하고'는 하나님이 광대하시다는 에스라의 말에 백성들이 온전히 동감했었음을 말해준다(Williamson, 5:13). '아멘'이라는 표현이 집회시 회중들의 응답으로 사용된 예는 다윗 시대 때부터 발견된다(대상16:36). 후에 이것은 회당에서도 사용되었고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있다(고전 14:16). '몸을 굽혀...경배하였느니라'는 하나님에 대한 공경심의 외적인표현이다(대하7:3).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끝난 후에는 다시 일어나서 에스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한편 '몸을 굽혀'에 해당하는 단어는(* , 카다드) 구약 성경에 15회 등장하며. 항상 '경배하다'는 말과 함께 언급된다(창24:26,48;43:28;출 4:31;12:27등).

=====8:7,8
에스라 등이 강단 위에서 율법책의 한 부분을 낭독하고 나면, 회중들의 중간 중간에 끼어있던 레위 사람들이 그 주변의 백성들에게 그것을 다시 낭독한 후 그 의미를가르쳐 주었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아...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 - 이것은 '예수아...블라야와 그 밖의 레위 사람들'로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의 '예수아...블라야'도 레위 사람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수아'는 '그가 구원하실 것이다'의 뜻이며 '블라야'는 '여호와께서구별하셨다' 의 의미이다.
바니 - '세워진'의 뜻으로 '르흠'의 부친이다(3:17).
세레뱌 -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으로 부터 귀환했던 사람이다(스 8:18). 그이름의의미는 '여호와께서 열(熱)을 보내셨다'이다.
야민 - '오른 손'의 의미이다.
악굽 - '교활한'의 의미이다.
사브대 - 알려진 바가 없다.
호디야 - 느헤미야의 언약서에 인친 두 명의 레위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10:10,13). 그 의미는 '유대인 여자'이다.
마아세야 - 4절의 '마아세야'와 동일인 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 의미는 '여호와의일'이다.
그리다 -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다가 다시 내보냈던 사람이다(스 10:23). 그의미는 '불구가 됨'이다.
아사랴 -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뜻이다.
요사밧 - 에스라가 귀환하면서 함께 가져온 물품들을 인수한사람으로 그의부친은 '예수아'이다(스 8:33). 본서 11:16에서는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은 자로서 언급된다.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판단하신다'이다.
하난 - '은총'의 의미이다.
해석하여(* , 메포라쉬) - 이것은 '분명히 하다'혹은 '쪼개다'의 뜻이 있는 동사 '파라쉬'(* )의 강조형이다. 한편 당시의 유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오래했던 사람들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했을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의 '그 뜻을 해석하여'가 '해설'의 의미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고. 히브리어로 기록된 모세오경을 아람어로 구술 번역해 주는 것을 가리킨다고도 이해된다.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 어떤 학자들은 신년절 행사 절차 중 하나에 우는 것이 포함된다고 주장한다(F.F. Hcidberg, J.C. de Moor, Mowinckel, N.H.Snaith).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단서가 없으며 또한 본문에서 저자는 신년절의 구체적인 행사 절차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기술 의도나 주제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그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보다는 백성들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의미에서 (대하 34:19;롬 3:20) 눈물을 흘린 것으로 봄이 무난하겠다(Williamson).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兼)학사 에스라 - 이같이 두 사람이 동시에 언급되고있는 것은 이 두사람이 동시대 인물이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에게 각기 적용된 직함 곧 '총독'과 '제사장 겸 학사'는 그들의 사역이 성격상 차이가있었음을 보여 준다. 즉, 한 사람은 정치적 행정적 사역을, 또 한 사람은 종교적 사역을 주로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위의 두 사람은 상호 보완적으로 하나님의일을한 셈이었다. 그런데 여기의 '총독'(* ,티르솨타)이 본서에서 느헤미야가 자신을 가리킬때 적용한 '총독'(* ,페하) 보다는 높은 직책이라고 보고서, '티르솨타'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부분(10:1)인 8-10장은 느헤미야가 기록하지 아니했을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있다. 그러나 강 서편 전체를 통할하는 총독을 가리키는 3:7에서도 (이 점에 대해서도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페하'가 사용된 점 등으로 미루어, 히브리어 직함만으로 위의 주장을 고집하기는 무리일 것이라 본다.
이르기를(* ,요메르) - 이것은 '말하다'를 뜻하는 동사 '아마르'(* )의3인칭 단수형이다. 그래서 어떤학자들은 (1) 이 동사의 주어인 '느헤미야'. '에스라'. '레위 사람들' 중에서 '느헤미야'와 '레위 사람들'을 탈락시키거나(Rudolph),(2) '느헤미야'만 놔두고 나머지 둘을 탈락시켜야 한다고(M.Noth) 주장한다. 그러나첫째, 히브리 어법상 단수 동사에 복수 주어가 자연스럽지는 않으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둘째, 사본학적인 충분한 입증없이 본문을 고치는 일은 위험하며 셋째, 여기와병행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에스드라상 5:40과 칠십인역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모두언급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무리라 하겠다(Fensham).
오늘은...울지말라 - 나팔절은 그 성격상 마땅히 기뻐하며 즐거워 해야 할 절기였다(레 23:24,25;민 29:1-6;신 12:7,12).

=====8:10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 '살진것'(* , 마쉬마님)은 짐승의 가장 먹기좋은 부분을 가리킨다(Fensham). 따라서 이것은 레위기에서 먹지 말도록 금지하고 있는 기름 부위와는 전혀 다르다(Kidner, Williamson). 한편 '단 것'은 포도즙에물을 섞은 음료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실 고대 증근동 사회에서는 이러한 음료가 잘알려져 있었다(Fensham). 그러므로 본 문구는 잔치 분위기가 충분히 날 수 있도록 흥을 돋울만한 진미(珍味)들을 먹으라는 명령으로 볼 수 있다(Kidner).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 여기의 '예비치 못한 자'는 여러가지사정으로 인하여 먹고 마실 수 없는자들을 뜻한다. 아마 여기에는 주로 가난한 자들과나그네들이 포함될 것이다(LXX, Fensham, 신 16:14). 유대인들에게는 즐거운 날에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들을 돌아보아 필요한 것들을 제공함으로써 함께 즐거움에 동참토록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삼하 6:19;에 9:22).이와같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사랑을 베푸는 일은 이 축제를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Kidner).즉, 백성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풂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회상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 '힘'(* , 마우제크)은 '산꼭대기' 혹 '방파제'의 의미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방파제 혹은 보호자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이 비록 통회해야 할(9절) 죄를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계속 고뇌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회개 후에 오직 여호와를 의지함으로써, 그들은 방파제가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정죄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Fensham, Williamson). 바로 그런 점에서 백성들은 울지말고 성일을 지킴으로써 여호와를 기뻐해야만 했다. '사람의 제일되고 가장 높은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만을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 제1번).

=====8:11
본절에서 언급되는 레위 사람들의 행동은 마치 단순한 반복 내지는 불필요한 행위처럼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한 것을 회중들 틈의 레위사람들이 다시 읽어주고 해석해 주었듯이(7, 8절) 의사 소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레위인들의 중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Willlamson).

=====8:12
본절의 강조점은 백성들이 에스라의 명령을 그대로 준수했다는 데 있다. 특히 우리는 8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도 에스라의 율법해석의 권위와 그 효력이 강조되고 있음에 유의해 볼 수 있다. 처음 율법이 수여된 이래로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삶의 양상이나 민족적 상황이 변화하였기 때문에 율법 자체가 상징적인 권위를 지니고는있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마치 골동품처럼 여겨졌을 수가 있다. 따라서 에스라의 율법 해석을 통해 비로소 그 율법 조항들은 실천적인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 속에 적용될 수 있었을것이다(Williamson).

=====8:13
본절은 에스라의 말씀 운동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이튿날 - 1-12절의 사건이 있은 그 다음 날이다. 종교력으로는 7월 2일. 민간력으로는 1월 2일이었다. 이 때 백성들은 모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도급 인사들은 계속 에스라 곁에 남아서 말씀을 보다 확실히 배우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가족은 물론이고(신 6:6,7) 여타 백성들을 지도하고 교육하기 위한 실천적 목적에서 율법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10,12절).
백성의 족장들...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 '백성의 족장'은 한 가문의 우두머리를 가리킬 것이다(7:8). 한편 '밝히 알고자 하여'(* , 레하스킬)는 원래'이해하다' 혹은 '가르치다'등의 뜻이 있는 동사 '사칼(* )의 사역형으로서, 배움을 통하여 어떤 지식에 통달하고 그 결과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을 가리킬때 자주사용된다(삼상 18:14;대하 30:22;시 32:8).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 이들은 성전 봉사 이외에도 백성들을 가르치는 책임도있었다(레 10:11;대하 17:8,9;렘 8:7-9;호 4:6;말 2:7,8).
학사 에스라의 곳에 - 문자적로는 '학사 에스라의 주변에'이다.

=====8:14
본절은 에스라가 족장 및 종교 지도자들(13절)과 함께 율법 말씀을 연구하던 중 초막절에 관한 가르침을 발견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팔절과 초막절 사이에 있는절기인 대속죄일(7월 10일)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일부 학자들은(1) 에스라 시대에는 대속죄일이 없었다거나. (2) 에스라가 당시의 대제사장을 신임하지 못하여 대속죄일을 지키지않는 쪽을 선택했다거나, 혹은 (3) 9장에 백성들이 회개에 관한 사실이 보도되고 있듯이, 굳이 대속죄일을 지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등의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본문 어디에도없다. 따라서 차라리 우리는 율법의 낭독, 해설 및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하는 즐거운분위기 등과 관련된 본문의 문맥에 근거하여 대속죄일 행사에 관한 기록을 생략하였을뿐이라고 봄이 더 무난하겠다(Williamson).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지니라 - 이것은 레 23:34;민 29:12;신16:13에 대한 자유스런 인용이다. 따라서 여기의 '칠월 절기'는 '초막절'을 가리킴이분명하다. 초막절의 준수 목적은 (1) 출애굽 후 광야 생활 중 인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기억하며,(2) 토지 소산의 추수를 마치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여호와의 은혜를 기념하는 데에 있었다.

=====8:15
초막절을 지키는 규례, 특히 초막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언급이다. 본절에 언급된나무들 중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이외의 것들은 레 23:40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레 23:40에는 본절에 없는 '버들'이 나온다.
감람나무 - 지중해 연안국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신 8:8에 의하면 가나안 정복이전의 시기부터 가나안 땅에도 있었다.
들 감람나무 - 왕상 6:23,31,32에 따르면 이 나무가 목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나무에서는 감람유는 거의 산출되지 않았다.
화석류 - 나무의 둥치가 없는 관목(灌木)의 하나로서 잎이 무성한 상록수이다(사41:19;55:13;슥 1:8,10,11).
종려나무 - 팔레스틴의 '종려 나무'는 그 높이가 성인 신장의 약2-3배 정도이며 잎이 많이 달린 줄기 하나의 길이도 성인의 신장 만큼은 된다(출 15:27;레 23:40;민33:9;시 92:12;아 7:8).
기타 무성한 나무 -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잎이 넓어서그늘을 만들기에 적절한 나무일 것이다(NIV, shade trees).

=====8:16
본절은 초막을 지었던 장소들에 대한 언급이다.
지붕 위에 - 중근동 지역의 가옥들은 그 지붕이 평평하여 초막을 세우기에 적절하였다(수 2:6;삼상 9:25). 당시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집 '지붕 위에'초막을 지었을 것이다.
뜰 안에 - 여기에 초막을 지은 사람들도 예루살렘 주민들이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전 뜰에 - 다음의 두 곳과 함께 타지역 백성들의 초막을 짓는 장소로 사용됐을 것이다.
수문(水門) 광장에 - 1절 주석을 참조하라.
에브라임 문 광장 - '에브라임 문'은 예루살렘의 북서쪽에 위치했었다(12:39;왕하14:13). 따라서 '에브라임 문 광장'은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던 성전과는 가까웠었다.

=====8:17
사로 잡혔다가 돌아온 회(會) 무리 - 이같은 명칭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이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즉 이 같은 명칭은 비록 혈통적으로는 히브리인들이지만 제2의 출애굽 운동에 동참하지 않고 계속 바벨론에 머물고 있었던 사람들과 온갖 희생을 각오하고(스 2장 강해) 귀환한 사람들을 예리하게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스 3:8;4:1;6:19-21).
눈의 아들 여호수아때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최초로 가나안 땅에들어가서 살기 시작한 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 날까지...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 이는 초막절 절기가 여호수아 시대로부터그 당시까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경에 낱낱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초막절을 지켰을 것이며, 그이후에 초막절을 지킨 사실에 대해서도 성경이 증거한다(삿 21:19;왕상 8:2,65;왕하23:22;대하 30:26;35:18). 특히 최초의 귀환 직후에도지켜졌다(스 3:4). 따라서 본 문구는 여기의 초막절 행사가 모세 율법이 말하는 근본 정신에 매우 합당하게 지켜졌음을 뜻할 것이다(Fensham).

=====8:18
에스라는...율법책을 낭독하고 - 이는초막절 절기가 모세 율법의 가르침대로 지켜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신 31:11).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 본문은 백성들의 절기 지키는 일이 결코 유야무야(有耶無耶)하지 않았음을 시사해 준다. 즉 백성들은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끝까지 절기를 지켰던 것이다. 백성들은 그 동안 전혀 노동하지 않으면서(레23:35,36) 가난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하나님께서 풍성한 수확을 주신 데 대해감사하였을 것이다(레 23:39;신 16:13). 백성들이 그 초막 생활을 통해서 선조들의광야 생활을 상기했을 것임은 물론이다(레 23:43).
제 팔일에...성회를 열었느니라 - 여기서 '성회'(* ,아체레트)는 '마치다'를 뜻하는 동사 '아차르(* )에서 온 명사로서 어떤 행사의 엄숙한 종결(Keil) 혹은 그와 관련한 의식을 가리킨다(왕하 10:20;사 1:13;욜 1:14;암 5:21). 아무튼 본 문구도 초막절 절기가 율법대로 시행됐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1장 이후 계속해서 진행되어 오던 성벽 재건에 관한 기사는 백성들이 그 역사를 필
하고 각각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7:73). 그리고 본장부터는 본서의
후반부를 구성하고 있는 신앙 부흥 운동, 즉 언약의 갱신(8-10장)과 언약에 대한 순종
(11-13장)의 기사가 등장한다. 그래서 본서 저자 느혜미야는 가시적인 회복의  상징인
성벽 재건 후 이제는 내면적이고 신앙적인 회복이 필요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점에
서 율법의 낭독과 순종의 기사가 언급되는 본장은 이스라엘의 신앙적  회복에  있어서
본질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백성의 반응을 기록한 전반부(1-12절)
와 초막절 규례의 준수를 기록한 후반부(13-18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바벧론의 포
로 생활로부터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향해 나아가야  할
점을 암시하려는 저자의 의도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하나
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후 율법을 선포하고(출 20-23장)  그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신 사건(출 24:1-11)이 있었다. 그런데 본장에서 또한 포로  귀환  이후
언약을 갱신하고 율법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언급하
고 있는 것은, '제2의 출애굽'이라 부르는 바벧론 포로 귀환 이후 율법 낭독으로 언약
관계를 회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순종의 삶을 살도록 하려는 본서 자자의 의도로 볼
수 있다.
   당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방
우상을 좇았던 것(사 1:4; 호 1:2)과, 율법을 거역하고 패역된 길로 치우쳤던 과오(스
9;5-9)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환경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신앙  공동체를
다시 형성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각각  흩어져  거하고  있었고
(7:73) 이방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었기(2:19;4:7)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백성으로서 유지해야 할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신앙이 이방 문화에 오염되어 약해
질 가능성이 많았던 것이다.
   본장은 이런 토대에서 성벽 재건 후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
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 낭소-경배와 기쁨-초막절 준수로 이어지는 본장의  내용
은 언약 관계의 회복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의미를  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럽 준수는 하나님 백성의 의무이다. 백성들은 성벽을 중수하고 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려고 시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 국가와  달리  하나님과
맺은 언약 백성으로서 율법을 배우고 순종해야 하는 중요한  의무를  갖고  있었다(출
24:3, 7).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적 통치(대하 14:11)와 율법에 대한  순종을
신앙과 생활에서 가장 둥요시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율법으로 백성을 각성시켜 순
종케 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부흥에 핵심이 된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과  유
사하게 사도 바울도 로마서를 기록할 때에 속죄와 칭의의 문제를  전반부(롬  1-11장)
에,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후반부에(12-16장)  놓았
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가 마땅히 하나님의 법을 준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
하고 있다.
   둘째,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고 그로 인하여  감격하였
을 지내면서 출애굽과 바벧론 귀환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로 인하여 감격하
였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모세 시대에 끝난 것이 아니라 포로
에서 돌아오기까지 간섭하신 사실을 인해 감사를 드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는 현재의 구원 역사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슥 14:16-19).
   한편 본장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에스라서에는 백성들이 성회로 모여  번제를
드린 기사는 보이나(스 3:1,2), 특별히 백성들이 율법을 듣고 감격한 모습이나 순종과
경배의 반응 기사는 오직 본서에만 나타난다(6절). 이는 에스라서가 이방인들과의  통
혼으로 인한 백성들의 윤리, 도덕적 문제를 다루면서 회개 기도에 의한 회복을 강조한
(스 9:5-10:5) 반면, 본장은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깨닫고 순종함으로 실현되는  언약
관계로의 회복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또한 본장에서는 저자의 계속된 신앙 고백적 표현 형태(1:1;6:1)가 생동감 있고 구
체적인 사실적 표현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5,6절). 이는 하나님께서 주장하신  회복
의 사건들을 드라마틱하고 사실적인 입장에서 드러내려는 저자의 의도로 사료된다.
   한편, 1차 귀환과 함께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을 주도했던 에스라가 본장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1절). 이는 에스라가 이방 여인과의 통혼 문제를 해결한 후 잠시  바벧
론으로 소환되었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으로 추측된다(본서 서론 참조).
   지금까지의 분석으로 볼 때 본장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말하고 있다. (1)하
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언약 관계에 들어온 백성들은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시 1:2;42;1;119:9,48). (2)포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는 지금도 복음을 통해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해 가신다(롬 1:16;고전 1:18).

                    1. 에스라의 율법 낭독(8:1-12)
   본문은 성벽이 완공됨에 따라 성 관리 및 경비를 위한 행정적 준비 작업을 마친 후
(7:1-72)학사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시키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즉,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고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왕국을 다스려 가시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율법과 관련해서 언급하고 있는 본문은, 백성들이  율법
을 사모하는 모습을 기록한 전반부(1-5절)와 율법을 듣고 깨달은 반응을 묘사한  후반
부(6-12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문은 백성들의 반응에 대한  기사를  중심으로
해서 다시 구성해 보면 (1)율법을 라기 위한 백성들의 열심(1-3절),  (2)율법에  대한
백성들의 경외심(4-6절), (3)율법에 대한 깨달음(7, 8절), (4)깨달음으로 인한 공동체
의 회복(9-12절) 등으로 되어 있다. 이와같이 본문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백성들에게
들려졌을 때 나타난 구체적인 반응에 대해 언급이 많다(3, 5, 7, 9, 12절). 이는 하나
님의 백성에게 나타나는 율법의 실제적 능력을 보여 주려는 저자의 의도에 의한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다 선왕(善王)들의 종교 개혁을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서와  역
대기서를 살펴보면 본문의 내용과 비슷한 기사가 많이 등장한다. 즉, 역대기 그  왕들
의 개혁에 대해 기록하면서 율법을 가르치고 거기에 순종함으로 언약을 갱신시킨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하여 서술해 나가고 있다(대하 14:4;23:16-19;31:21). 특히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성읍을 순회하며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도록 한 여호사밧 왕의 기사(대
하 17:7-9)는 레위인들의 역할이 두드러진 본문과 비슷하다(7-9절). 또한 서기관 사반
이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을 때 옷을 찢었던 요시야 왕과 같이(왕하 22:11;대하
34:18,19) 본문의 백성들도 율법을 듣고 울었던 기사는(9절) 율법을 듣고 나타낸 반응
면에서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는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 백성의 언약 갱신과 종교 개혁
에 마땅히 필요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본문은 말씀에
의한 하나님 나라의 질제적 통치 원리를 가르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본문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모임의 시기 : 흩어져 있던 백성들은 7월 1일에 모였다(2절). 이스라엘  백성에
게 종교력 7월은 중요한 달이었다. 왜냐하면 7월은 민간력으로  신년  1월(레  23;23,
24)로서 그 첫날 나팔을 불어 성회를 선포하고, 10일은 대소죄일로 지켰으며, 또한 15
일부터 한 주간은 초막절로 지키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레 23:27, 34).  특히
본문의 7월은 성벽 수측을 마친 날이 종교력 6월 25일(6:15)임을 생각할 때 이 사건이
성벽 재건 후 곧 발생한 일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기게 그 시기는 더욱  감격적이었
을 것이다.
   (2)모임의 목적 : 백성들은 성벽을 재건하고 이제는 영적 회복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7월 성회로 모일 때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을 읽어 주길  요청한  것이다(1절).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백성들은 율법을 듣고 깨닫게 됨으로써  언약  백성으로서의
신앙을 회복했던 것이다(9-12절).
   (3)모임의 진행 과정 : 율법을 듣게 된 백성들은 레위인들의 도움으로 밝히 깨닫게
되었고, 그 결과 가난한 자와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
아야 할 삶의 자태가 말씀을 듣고 즐겁게 순종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결국,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는 율법을 통해서 그 백성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이는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더욱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주로 율법을 재
해석하셨고 당신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 5-7장). 특히 예수님께
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를 '씨 뿌리는 비유'로 설명하
셨다(마 13:3-9; 막 4:1-9).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씨' 곧 '말씀'이 전파되어 세워지
고 다스려 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말씀에 의한 통치'는 오순
절 이후 초대 교회 당시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욱  확실해진다(행
2;4-47).
   위와 같은 내용에 의거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된다.  (1)하나
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으로 그 나라를 다스려 가시며(행 4:4;6:7;20:32), (2)이러한 진
리는 교회의 시작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행 2:4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