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느헤미야 04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 '산발랏'이 성벽 재건에 관한 소식을들은 것은 그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일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 그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전에 이미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3:1, 4 주석 참조). 그런데 본절에서'산발랏'만이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 까닭은,그가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일에 선동자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견해는 여러명의 훼방자가 동시에 언급될 때도, 그 이름이 항상 그들 중 첫번째에 위치한다는 사실로써도분명해진다(7절 ; 2:10,19 ; 6:1,2,5). 한편,'산발랏'이라는 이름은 '달신(月神)이 그에게 생명을 주었다'라는 말인 바벨론어에서 유래되었다. 2:10에 '호론 사람'이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그는 에브라임지파 남쪽지역인 '벧호론'(Beth-horon)에서 출생한 듯하다. 그리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성전은 이 산발랏에 의해 건립되었고 산발랏은 자기사위를 이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세웠다고 하나 그사실성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한편, '크게 분노하며', '비웃는' 산발랏의 반응은, 2:19에서 보다 한층 강렬한 것이며 6:2에 가서는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까지 하는 것으로발전된다.

=====4:2
자기 형제들 - 이들은 의논 대상이 될만한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킨다. 물론여기에는 '도비야'도 포함될 것이다(3절).
사마리아 군대 - 페르시아 정부가 파견한 수비대라기 보다는 해당 지역별로 조직된부대인 듯하다(스4 : 23). 산발랏은 이 '군대'를 이용해서 유대백성을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라도 괴롭힐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8절). 사실 페르시아 정부의 지배력이제국 내의 곳곳에 직접적으로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산발랏의이 같은 사악한 생각은 실천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Rawlinson).
미약한 유다 사람들 - '미약한'(* , 아말렐림)은 '쇠퇴하다'의 뜻이있는 동사 '아말'(*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나무가 시들어말라 비틀어지는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사 16:8 ; 24:17). 특히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주로 소망이 없는 암울한 상태를 가리킨다(사 19:8 ; 호 4:3).
제사를 드리려는가 - 이 문구에 대해서는, (1) 이'제사'를 성벽 재건사업이 마쳐질때에 드려지는 감사의 제사로 보고 유대 백성이 성벽 재건을 완료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조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2)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초자연적인힘으로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가'라는 식의 빈정댐으로 볼 수도 있다(Williamson).
하루에 필역 하려는가 - 이것도,유다 백성들을 무능한자들 이라고 하는 조롱 이다.
소화된 돌을..다시 일으키려는가 -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성벽 재건에 사용할 석재(石材)를 확보할수 없을것이라는 조롱이다(Rawlinson, Fensham).

=====4:3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 '도비야'가 산발랏의 측근 혹은 직속 참모였음을 보여준다.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 '여우'로 번역된 히브리어 '슈알'(* )구약에서 7회 나오며(삿 15:4 ; 시 63:10 ; 아 2:15 ; 애5:18 ; 겔 13:4)'쟈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쟈칼이 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반면 여우는 대개 혼자다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문에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여우'로 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한 마리의 여우가 밟아도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성벽은 훌륭한 공성(攻城) 무기로 오랫동안 공격한 후에야 무너질 수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과장된 조롱임이 분명하다.

=====4:4,5
본절과 같은 탄원적 기도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그리고 그분의이름으로 수행하는 사업이 원수들에 의해서 멸시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드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시의(時宜) 적절 하다고 할 수 있다(5:19 ; 9,14 ; 13:14,22,29,31 ;시 69:22-28 ; 79:12 ; 109:6-20).
우리가 업신여김을...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 '업신여김을'(* ,부자)은'조롱하다' 혹은 '모욕하다'의 의미이며'노략거리'(* , 비자)는 '전리품'을 뜻한다. 여기서 본저자 느헤미야는 이처럼 발음이 매우 유사한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말의 유희(Word play)를 살리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부자'라는행동, 즉 그 원인으로 말미암아 '비자'라는 불행, 즉 그 결과에 도달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Fensham).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 이것은 고대 중근동 민족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환난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그와 같은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민족이다(스4:9,10).
그 악을덮어 두지 마옵시며 - 여기의 '덮어두지'(* ,카사)는 죄의 용서를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렘 18:23 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느헤미야가 예레미야서를 인용한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예레미야 시대나 느헤미야 시대에 공히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Fensham).

=====4:6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聯絡)되고 - 이것은 예루살렘의 성벽에 의해서 완전히둘러싸여 졌음을 뜻한다.
고가 절반에 - 원문상으로는 단지 '절반까지' 혹은 '중간까지'라는 뜻만 있으므로,이 말은 성벽의 길이나 넓이에도 적용될수 있으나 높이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무난하겠다. 즉, 성벽이 원래 계획했던 것의 반정도의 높이로 쌓여졌었음을 가리킨다(Rawlinson,Fensham).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 문자적으로는 '역사할 마음이 있었다'의 뜻으로서, 참여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마음 자세가 성벽 재건 사업이 크게 진척될수 있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시사한다.

=====4:7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방인들의 적대감이 점증되고 있었듯이(1절), 적대감을품고 있던 이방인들의 숫자도 급격히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 나오는 이방세력에 대해서는 본장 강해의 지도, '성벽 재건을 방해한 네 민족들'을 참조하라.
산발랏과 도비야 - 이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아라비아 사람들 - 이들은 페르시아가 중동을 제패했을 무렵에 팔레스틴의 동부인요단 동편과 남부인 네게브 지방을 거주지로 삼기 시작했었다. 바로 이 족속의 한 분파를 다스리던 자가 '게셈'이었다(2:19).
암몬 사람 - 이들은 그 당시 요단의 동쪽지역 및 심지어는 요단의 서쪽 강변에서도살던 민족이었다. 아스돗 사람-이들은 블레셋 족속들이 거주했던 지역 전반에 걸쳐서 살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 본절의 '중수되어' (* ,아루카)는, 그 어근'아라크'(* )의 뜻이 '연기하다' 혹은 '참다'인 것과는 달리 '상처의 치유' 혹은'상처 위로 새 살이 돋아나는것'을 가리킨다(사 58:8 ; 렘 8:22 ; 30:17 ; 33:6).건축과 관련한 이러한 표현은 대하 24:13에서도 나타나는 바, 이는 일반적으로 두루쓰인 관용적 문구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에는 예루살렘의 번영을 기원하는 느헤미야의 각별한 염원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4:8
다 함께 꾀하기를 - 여기서 '꾀하기를(* , 카솨르)은 '묶다' 혹은 '음모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서, 어떤 질서 체계를 깨뜨리거나 혹은 어떤 대상을 망하게 할 목적으로 집단적인 이기심에 따라 배반하는 행위를 가리킬때 많이 사용되었다(삼상 22:8 ; 왕상 16:16 ; 대하 25:27). 요란하게 하자(* , 라아소트 로 토아)는 문자적으로 '그것(혹은 그)에게 상처를 입히다'의 의미이다. 여기서 '그에게'(* , 로)의 '그'는 남성 단수라는점에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 사업을 주도하고 있던 느헤미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만일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그'는 여성 단수가 되어야한다. 한편, 산발랏은 당시 사마리아의 총독이었으므로 느헤미야의 귀한을 허락하는왕의 조서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성벽 재건 금지령만(스 4:21-23) 내세우며 심지어 무력행사까지 감행하려 했다(2절). 이러한 독자적인 무력 행사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으며 더구나 느헤미야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했다. 이는 산발랏 일당의 조급함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시사하며 또한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중앙 정부의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 준다.

=====4:9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사태의 해결을 부탁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할 수있는가능한 방책을 강구한다.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최선을다해 활용하고자 하는 느헤미야의 신앙적 자세는 본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컨데,'하늘의 하나님께 목도하고 왕에게 고하여'(2:4,5),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이에우리가 성을 건축하며'(4-6절),'주를 기억하고...싸우라'(14절)등이 그러하다(Kidner).

=====4:10
본절에서와 같은 백성들의 낙심은 산발랏 일파의 협박(8절) 때문임이 분명하다.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 '흙 무더기'는 바벨론 군대의 공격 때에 파괴된 성벽과 그 밖의 것들의 잔해를 뜻한다. 이것들은 성벽이 재건되고 있거나 혹은 재건되어져야 할 곳에 높이 쌓여 있었던것 같다.
담부(擔負)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 이것은 성벽 재건에 참여한 백성들의 심신이 매우 지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1)이스라엘 백성의 상당수가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않았음에 따라 참여한 소수의 작업량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고, (2)일꾼 중에서 파수꾼으로 차출된 사람이 있었으며, (3)게다가 산발랏을 위시한 대적자들의 위협이 날로 심해져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 본절과 6절 내용과의 조화를 위해, 어떤 학자들은 원문상으로 본장 6절까지가 3장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7절 이하의 내용이6절 내용보다 시간상 앞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그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거의 절반에 달하는 정도의 공사를 이룩했지만(6절) 대적들의 위협이 더욱 살벌해지자(8절) 큰 불안과 낙담에 빠져버린 것으로 이해하는것이 더 무난하다.

=====4:11,12
이 부분은 느헤미야가 파수대를 더 보강할 수밖에 없었던(13절) 절박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 -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쪽으로는 산발랏을위시한 사마리아 사람들,동쪽으로는 암몬 사람들,그리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람들,또한 서쪽으로는 아스돗 사람들이라는 대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7절).따라서 본절의 '유다 사람들'은 유다 땅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던 백성들이다.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 유다 땅의 변경에 살던 벡성들 중 성벽 재건에참여치 아니한 사람들은 산발랏 등의 군사적 움직임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그들의 공세를 방어할 요량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려고 한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산발랏 일당의 계략이었다. 즉, 대적들은 유다 변경에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성벽 재건에참여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게 해서 성벽 재건을 중단케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것이다.

=====4:13
성 뒤 낮고 넓은 곳에...서게 하고 - 이같이 한 이유는 '성 뒤 낮고 넓은 곳'은 비록 성벽이 일부 쌓여있기는 했지만 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적의 침투가 예상되는 취약 지점이었던 때문이다. 또한 유다 백성들을 노출된 곳에 세움으로써, 산발랏일당에게 일전 불사(一戰不辭)의 군사적 대응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될 것이다. 여기서 '낮고'(* , 미타흐티요트 라마콤)는 문자적으로 '가장 낮은 장소 쪽에' 의 뜻이다. 그리고 '넓은 곳'(* , 체히힘)은 헐벗은 언덕이나, 평탄하고 장애물이 없이 노출된 장소를 뜻한다(EdwinYamauchi, Keil). 또한 '성 뒤 '는 성벽의 예루살렘 성읍 쪽을 가리킨다. 그리고'서게 하고'(* , 아아미드)는 '모시다' 혹은 '서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아마드'(* )의 사역형으로서, 특정한 직책을 수행케 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혹은 지위에 있게 하는 것을 주로 가리킨다(9절 ; 삿 20:28 ; 왕상 12:6 ; 왕하 9:17 ;슥4:14).
종족을 따라 - 이것은 군사 조직 내의 효율성을 증대케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왜냐하면 같은 '종족' 혹은 '씨족' 끼리는 협조가 더욱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었겠기때문이다.
칼과 창과 활 - '칼'은 이스라엘 역사상, 근접전(近接戰)이 벌어졌을 때 가장 많이 사용됐던 중요한 무기였다(Fensham). 또한 '창' 은 가까이 있는 적을 찌르는 데 사용됐으며 '활' 은 약 600m의 사정 거리를 갖는 강궁(强弓)과 약 270m에서 360m 정도의사정 거리를 갖는 경궁(經弓) 모두를 가리킨다(Y. Yadin, R. Go-nen).

=====4:14
내가 돌아본 후에 - '돌아본'에 대해서는 (1)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염려를 살폈다는 견해(Fensham,Schultz), (2) 느헤미야가 산발랏등의 동정을 알기 위해 그 주변을살폈다는 견해(Rawlinson), 혹은 (3)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무장 상태를 살폈다는견해(Keil)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첫째, 본절의 '돌아본' ( ,라아)은 단순히 '쳐다보다'의 뜻이며(Fensham) 둘째, 본문맥에 이어서 '두려워 말고' 라는 느헤미야의 당부가 나온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위의 세견해 중 (1)의 것이 가장타당성이 있다.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 - '귀인'(* ,호림 )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2:16 ; 5:7 ; 13:17). 한편, '민장'(* ,세가님)은 다른 곳에서는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이다(2:16 주석 참조). 그리고 '남은 백성'은 앞의 '귀인'과 '민장'계층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을 뜻한다.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 '지극히 크고'(* , 가돌)가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는, 달리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을 강조하는 형용사로 사용되었다(출 18:11 ; 대상 16:25 ; 5 시 76:1 ; 86:10). 한편,'두려우신'(* ,노라)은 '두렵다' 혹은' 두려워하다'의 뜻이 있는 '야라'(* )의 수동형분사로서, 많은 경우에서 종말론적으로 악인들에게 진노를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강조한다(시 1456:6 ; 욜 2:11 ; 습 2:11: 말 4:5). 따라서 본 문구는 모든 악한자들을 권능의 하나님께서 대신 벌하여 주실 것을 믿고 백성들은 자신에게 맡겨진사명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다(민 14:9 ; 신 1:29, 30 ; 삼하 10:12). 느헤미야는 옛 선조들이 믿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대적들과 용감하게 싸웠던 사실, 특히 하나님이 친히 그 백성들을 위해 대신 싸우사 승리를 가져다 주신 엄연한 역사적 사실(출 14:13,14등)을 믿음의 눈으로 확고히 돌아보았을 것이다. 비록 당시의 성벽 파수대는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했고 실전 경험도 없는 군대였으며 그 무기 또한 상대적으로 열세하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느헤미야의 확신이었다고 이해된다(Williamson).
너희 형제와의...집을 위하여 싸우라 - 이미 느헤미야는 파수대를 종족 단위로 편성한 바 있다(13절).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위해 싸운다는 비장한 각오야말로 숫적인열세를 메꾸어 주는 큰 활력이 되었을 것이다.

=====4:15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지휘 하에 무장을 한 채 조직적으로 파수하는 등 철저한 방어 체계를 갖췄다는 사실을 대적이 첩자들을 통해 들었다는 뜻이다(13, 14절). 대적들의 계획은 기습 공격으로 단숨에 살륙을 감행하거나(11절) 무력의 과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성벽 재건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주도하에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강하게 무장하여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이게 됨으로써,대적들의 계획은 오히려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무장한 병사들이 강한 정신력으로 지키는 성읍을 공약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더욱이 전투가 장기화되면그 분쟁의 소문이 아닥사스다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고 결국 산발랏 일당은왕명을 거스린 죄과까지 치뤄야할 터였으므로 그들은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지않을 수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부수셨다' 의 뜻이다. 이와 매우 유사한 표현이 스 4:5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거기서는오히려 이스라엘의 원수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획이 좌절됐음을 말한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에스라서에서 사용된 독특한 표현을 여기서도 다시 사용한 까닭은,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4:16
비록 산발랏이 쳐들어오려고 했던 긴박한 상황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느헤미야는여전히 잔존했었던 일말(一抹 )의 공격 가능성으로 인하여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때로부터 - '그 때'는 문자적으로 '바로 그 날'의 의미로서,(1)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음모를 감지하여 백성들을 무장시킨 그 날(9, 13절), (2)산발랏이 자신의 음모가수포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계획을 포기한 '그 날'(15절)모두를 뜻한다.
내 종자 (* ,네아라이) - '내종자'는 (1)느헤미야처럼 유다 출신들로서 느헤미야가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던 특별한 집단(Myers,Keil,Rawlinson),(2)총독신분으로서의 느헤미야의 통제 아래 있는 모든유다 백성들(Fensham)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그러나 첫째, 본절의 '종자'(* ,나이르)라는 단어는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하인을 가리키며(출 21:27 ; 삼상14:6 ; 25:5 ; 삼하1:5 ; 왕상19:3) 둘째, 느헤미야가비록 총독이기는 했지만 백성들을 하인처럼 생각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셋째, '종자'와 '성을 건축하는자'가 분리되어 언급되고 있음을 볼 때, 위의 두견해 중전자가 보다 타당하다.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 활을 가졌고 - 이처럼 느헤미야가 자신의종자들에게 파수 의무를 보다 많이 맡긴 까닭은 (1) 그들이 다른 백성들보다 훈련이많이 되어 있었고, (2) 그들이 보다 훌륭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민장(民長)은 유다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 본절의 '민장'(* ,솨림)은 군사적 조직체로서의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였다(Willamson, 신 9:9 ) 그런데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항상 지파 내지는 씨족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13절 ; 민 2:1-34), 여기의 '민장'는 한씨족의 지도자로 볼 수 있을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연락을 담당했을 것이며 유사시에는 백성들을재건 체제로 즉각 전환시키는 책임을 맡은 자들로 짐작된다(Wllamson).

=====4:17,18
일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종자와는 달리 성벽 재건에 전념하되 유사시에는 적을물리치는 데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성을 건축하는 자 - 원문상 16절의 '유다 온족속' 을 수식하는 문구로 봐야한다(NIV,Williamson,Fensham).
담부하는 자 - 이들은 자재(資材)를 운반하거나 흙과 무너졌던 성벽의 잔해를 치우는( 10절)등의 조역(助役)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Rawlinson). 이들은 자재 운반등의 일을 위해서 성밖에서도 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작업 환경은 '건축하는자'에 비해서 보다 열악(劣惡) 했을 것이 뻔하다(FEN-SHAM). 각각...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 히브리 원문에는 '각각'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다.그런데 '담부하는 자'가 이처럼 한 까닭은 (1)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의 성격상 성 밖에서도 일을 해야만 했던관계로 호신(護身)을 위한노력이 필요했으며,(2)또 그 일의 성격상 한 손에 병거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Fensham, Rawlinson). 한편, '병기'( ,솰라흐)는 우가릿 문서에서도 발견될정도로 오래된 것으로서, (1) 멀리 던질 수있는 창,(2) 돌을 날려보낼 수 있는 무기를모두 의미한다. 특히 본절의 '담부하는 자'들이 주로 흙이나 무너진 성벽의 잔해 위에서 일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2)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Fensham, Williamson).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 '건축하는 자'는 앞의 '담부하는 자'와는 달리 성벽을 쌓는 일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만 하는일의 성격때문에 '칼'을 허리에 찰 수밖에 없었다.
나팔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이것은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그것을예루살렘 외곽에 흩어져서 성을 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준비이다(19,20 절). 이같이 나팔을 불어서 위급함을 알리는 연락체계는 고대국가들에서는 꽤 보편적으로 이용되었다.

=====4:19,20
느헤미야가 나팔 부는 자를 자신의 곁에 세워둔(18절) 이유가 언급되고 있다.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 - 14절 ; 2:16 주석을 참조하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가 성읍의 둘레 전체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사실을 가리킨다.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相距)가 먼즉 - 이것은 차라리 '우리가 성벽을 따라서 각 사람들로부터 나뉘어져 있다'로 번역함이 더 나을 것이다(Fensham). 결국 이는백성들이 분산되어 있기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적들의 대대적인 공격이 가해져 올 때거기에 대응할 수 없음을 염려하는 문구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우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도구로 삼아서 원수와 싸우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시는 이유는, 거룩한 성이 방어되고 또한 당신의 백성이 안전하게 사는 것이 철저하게 당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 곧 성전(聖戰)일 수밖에 없다(수5:13-5 주제 강해, '성전(聖戰)' 참조).그리고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은 아무리 우수한 무기와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있어도,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마련이다(Kidner).

=====4:21
16절의 내용이 약간 다른 모양으로 다시 언급되고 었다.
무리 - 16절의 '종자'와 동일할 것이다.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노역을 감당했었음을 강조하는 시적(時的) 표현이다. 아울러 이는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암시한다 고도 볼 수 있다.

=====4:22
사람마다...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 느헤미야가 이와같이 명령을 한 것은, 아마 외지(外地)에서 공사를 위해 온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 인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저녁에 일이 마쳐지면 자기의 집으로 가서 자려는 경향이 있었던 때문으로 짐작된다. 만일 백성들의 뜻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될 수밖에없었다. 그문제점들이란 (1) 백성들이 고향에 왕래하는 도중 적의 기습을 받을 가능성, (2)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의 작업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 (3)아침마다집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야기되는 혼란과 공정(工程)의 답보(踏步)현상, (4)고향이 멀어서 저녁마다 갈 수 없는 사람과 가까운 데 고향이 있어서 저녁마다 집으로갈 수 있는 사람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가능성, (5) 밤마다 발생할 예루살렘 시내의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인해 적의 야간 습격이 있을 가능성, (6) 위의 모든 문제들로인해 성벽 재건 공정이 늦어질 가능성 등을 들을 수 있다.
그 종자 - 이들은 16절의 '종자'와는 다르다. 만일 느헤미야가 여기서 자신의'종자'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16절에서 처럼 '내 종자'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그 종자'는 백성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데리고 온 '노예'일 것이다(Rawlinson).실제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백성들에게는 여섯 명당 한 명씩의노예가 있었다(스2:64, 65).

=====4:23
본절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산발랏 일당의 공격에 대한 경계 태세를 조금도 늦추지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내 형제들 - 이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들일 가능성이 많다(1:2 ; 7:2). 종자들 (* ,네아라이). 문자적으로 '나의 종자들'이므로 16절에서 언급된 느헤미야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킨다.
나를 좇아 파수하는사람들 - . '나를 좇아'(* ,아하라이)는 주종(主從)의 관계에 대해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다(삼하 7:8 ; 왕상 11:6 ; 16:22 ; 렘 7:6 ).따라서 '파수하는 사람들'은 '종자들'이외에 느혜미야를 전심으로 추종하던 무리 들이었을 것이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다급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서는 백성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문구(* ,이쉬쉴호 하마임)가 잘못됐다고 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몇 가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거기에는 (1) 여기의 '물'(* ,하마임)이'오른 손'(* ,하야민)의 오류로 보고 '그의 무기는 그의 오른 손에 있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Fensham,Williamson, Keil). (2)이 불완전한 문구를오류로 보지 않고 무리하지만 '물로 각자의 병기틀 씻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Rawlin-son),(3)어떠한 단어가 탈락된 것으로 보고 '각사람이 물을 먹으러 갈 때에도자기의 무기를 가졌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NIV), (4) 이 문구를 앞의 '그 옷을벗지 아니하였으며'의 종속절로 보고, 또한 '기계'가 '그릇'을 뜻한다고 보아 '비록각 사람이 자신의 물 그릇을 가졌지만'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J. P. Green),(5)역시 이 문구를 바로 앞 구절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고, '씻기 위해 옷을 벗는 경우를제외하고는' 으로 해석하는 견해(KJV)등이 있다. 그러나 이같이 다양한 견해 중에서첫째, 맛소라 본문에 최대한 근거하려고 한다는 점 둘째, 그문맥을 고려해보건대,(1)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것 같다.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전장(前章)을 통하여 성벽 재건 공사에 참여한 자들과  그
들의 재건 구역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재건 사업의 역사성과 더불어 그 공사의  실제성
을 밝혔다.  이어지는 본장은 성벽 재건 과정에서 발생한 대적자들의 방해와 그에  대
응한 유다 백성들에 대하여 기록한 대목으로, 익히 짐작했던(2:10,19,20)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증언하고 있다. 즉, 본장은 성벽 재건 과정에서 발생한 대적들을 통한  사
단의 역사와 그에 대해 유다 백성들이 신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
은 사실이 대조되어 나타나는 장면인 바, 재건 공사를 중심으로 영적 싸움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대적들의 조롱과 그에 대처하
기 위한 느헤미야의 기도(1-6절), (2)계속된 대적들의 음모로 말미암은 백성들의 사기
저하와 그에 대처한 느헤미야(7-14절), 그리고 (3)싸움에 대한 대비와 진척된 성벽 재
건(15-2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본장은 (1)'대적자들의 조롱-그에 대한 대
처-그결과'(1-6절), (2)'대적자들의 위협-그에 대한 대응-결과'(7-15절),  (3)'계속된
대처 행위와 진척된 공사'(16-23절)라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같은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방해-대처-결과-진행된 재건 사업'이라는 도식을 위함으로써 당시 역사적
정황에 대해 신앙적으로 민감히 대응한 자신의 모습과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 도우셨다
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즉, 전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2:8, 12,  18)  본장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4, 9, 15, 20절). 이와 더불어 이 같은 하나
님의 도우심으로 성벽 재건 공사가 계속해서 진척되었음 또한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비록 본장의 내용이 성벽 재건 작업의 분담을 주요  내
용으로 하는 3장 다음에 나온다고 하여 연대기적으로도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다. 왜냐하면 본장에서 언급되는 여러 사건들은 성벽 공사가 사작됨과 동시에  일어
났기 때문이다. 사실 산발랏 일당은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도
착하면서부터 그를 대적하기 시작하였다(2;10, 19). 그래서 느헤미야는 바로 이  같은
경험을 한 직후부터,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업이 대적들에 의하여 극심한 방해를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장의 내용과 3장의 내용은 시
간적으로 평행을 이룬다고 보아야 한다. 암튼 산발랏 일달의 대적 행위는 이스라엘 백
성들의 성벽 재건 사업을 중단케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될 경우, 자신들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영향력 상실이 불가피할 것임을 익히 알
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발랏 일당의 성벽 재건에 대한 방해 공작은 가히  필사
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존서 저자 느헤미야는 1차 조롱들자의  수효와  그  내용
(1-3절)보다 2차 대적자들의 숫자(2명에서 다섯 무리로 증가)와 그 위협의 내용을  더
극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같은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 공사가 중단되지 않은  것
은 성벽 재건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임을 아는 느헤미야의 믿음과 하나님의 섭리  때
문이었다. 그는 성벽 재건을 추진하는 자신들과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방해하려는
산발랏 등과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마귀와의  전투임을  알고  있었다(엡
6;12).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면 그 싸움에서의 승리는 필연적이라
는 사실 또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귀의 궤계에 속은 백성들의  낙심에
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가운데서 그들을 독려함으로써 성벽 재건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느헤미야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
하였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였다. 그는 백성들이 낙심하여 성벽 재건 사업을 포기
하려고 했을 때, 그들을 얼마 동안 설득하다가 결국 자신도 낙심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성벽 재건은 완전히 중단되고 악한 세력들은 쾌재를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멸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일을 결코 용납지  아니하셨
고 당신의 사람 느헤미야를 굳건히 붙드심으로 그로 하여금 당신의 뜻이 온전히  이루
어지도록 하셨던 것이다.
   한편, 본서 저자 느헤미야의 행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전장과는  달리
본장은 그의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본장부터 본서 마지막까
지는 히브리어 성경과 조금의 차이점을 지닌다. 즉, 고대 역본들(LXX, Vulgate)을  따
르는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과 한글 개혁 성경과 달리 히브리어 성경은 본장의 1-6절을
3장 33-38절로 해서 앞장에 붙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장 7-23절을 4장 1-17절로 꾸
미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영어 번역본들과 한글 개혁 성경이 적들의 방해 공작에  대
해 신앙적으로 대처한 느헤미야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본장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1)성도에
대한 마귀의 전략은 항상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며(고후 11;14;밸전 5:8), (2)하나님
을 아는 지식과 그에 대한 온전한 믿음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놀라운 능력을 나타낸
다(잠 3:6)는 것이다. 또한 (3)심지(心志)가 견고한 지도자는 교회의  발전에  크나큰
비중을 차지함(사 26:3)을 깨닫게 된다.

                    1. 대적들의 조롱과 느헤미야의 기도(4:1-6)
   성벽을 재걷는 일에 있어서 방해자로부터 훼방받은 사실을 기술하는 본장의 서두격
인 본문은 대적자들의 1차 훼방에 대해 느헤미야가 긴급히 대처하는 모습을 그린 대목
으로 그 기동의 결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러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본문은 (1)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가 조롱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전반부(1-3절), (2)
그에 대한느헤미야의 기도를 기술한 중반부(4,5절), 그리고 (3)그 기도로 인하여 계속
진행된 공사의 정도를 언급한 후반부(6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본
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방해자들의 조롱-그에 대한 기도-그결과'라는 도식으로 드려질
수 있는 내용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느헤미야는 방해자드리의  조롱
내용과 자신의 기도 내용을 연이어 기술함으로써 당시 상황을 대비적 관계 속에서  극
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에 나타난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대적자
들의 조롱(1-3절) : 성벽 재건 소식에 분노한 산발랏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비웃은 듯
하다. 그리고 그는 도비야와 함께 비웃으며 조롱의 말을 했는 바, 유다 백성들의 능력
에 대해 조소하였다. 이러한 조롱은 스 4:7-23에 언급된 방해 사건과는 약간 다른  것
으로 이해된다. 즉, 에스라서에 나타난 사실은 권력으로 아닥사스다 왕에게 조서를 올
려 훼방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본문의 방해 사건은 대적자들이 직접 공사  현
장에 찾아와 조롱하였던 것이다. (2)느헤미야의 기도(4,5절) : 본서 저자 자신의 이러
한 부르짖는 듯한 기도는 본서의 다른 부분(5:19;6:14;13:22,29)에 나오는 것과  유사
하다. 또한 그의 기도는 저주의 성격을 띤 것으로 '저주의 시편들'(시 83:9-17;109:6
-15;137:7-9)과 그의 성격이 매우 비슷하다. 한편 이러한 기도의 내용 속에 나타난 저
자 자신의 신관(神觀)은 (가)역사를 주관하셔서 대적자들을 파멸케  하시는  하나님(4
절), (나)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4a절), (다)악을 징계하시는 하나님(5a절),  (라)죄
를 도말 하시는 하나님(5b절), (마)불의에 대해 격동하시는 하나님(5c절) 등이다.
   사실 느헤미야가 정식으로 왕의 허락을 받아 공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공격을 받은 것은 본래 페르시아가 위성 국가들의 내정(內政)과 사소한  알력  다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정책을 펴기도 했거니와 당시 사마리아와 아라비아 등지의 원주민
들이 페르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벧
론,애굽, 앗시라아, 페르시아등이 근동지역에 광대한 제국을 각각 이루기는  하였으나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고대에는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조금이라도 약해지는 기미만 보
이면 각 민죽 국가들은 즉각적인 모반을 꾸미는 것이 예사였다. 이는 이스라엘도 마찬
가지였다. 다만 이때는 잠시 바사의 후원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을 뿐이다.
   그런데 산발랏이 성벽 재건을 방해할 목적으로 선택한 최초의  전술(戰術)은  성벽
재건 참여자들에 대한 심리전이었다. 산발랏은 매우 초보적 단계라고 할 만한 그 같은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건축자의 작업 의욕을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
한 것은 산발랏이 성벽 재건에 임한 이스라엘의 능력을 과소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그
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벽 재건을 완료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본  듯하다.  그래서
웨만큼의 심리전만 펼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손을 거둘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 같
다. 그러나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발랏 일당의 눈에는 연약하게 비쳐졌을  망정
성벽 재건을 완료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들 자체에는 그만한 능력이  없었다.
다만 그들의 배후에는 크신 능력을 소유하신 하나님이 계셨던 것이다.
   아무튼 산발랏은 이스라엘의 인적(人的), 즉 가시적(可視的) 측면만을  그  판단의
근거로 삼음으로써 성벽 재건을 방해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만일 산발랏
이 성벽 재건 즉시 군사적 행동을 취했다면 이스라엘의 성벽 재건 시도는 또다시 좌절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산발랏으로  하여금
오판케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어떤 물리적 방해도 받지 않도록 하셨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고(高)가 절반에 이를 정도로 재건  사업을  진척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은 최소한 대적들의 군사적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세사의 지혜는 그 수준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
혜와 결코 비교될 수 없으며(고전 2:6), (2)성도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  핍박  가운데
살고 있지만 언제든지 담대할 수 있음(요 16:33)을 깨닫게 된다.
 
   *고대 성벽의 구조. 고대 중근동의 주요 성읍들은 으헤히 성벽을 갖고 있었다.  그
런데 그 성벽의 초기 형태는 매우 간단한 것이었기에 다만 적의 침공을 지연시키는 효
과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초기 형태의 성벽은 그 당시 이미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던
공성(攻城) 무기들에 의해서 쉽게 파괴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뿐만  아
이나 상대편의 막강한 군사력에 의하여 장기간 포위 당할 경우 비록 성안에서의  단순
한 농성(籠城)은 가능했지만, 상대 병럭에게 공격을 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함락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보다 후기에 들어와서는 각종 공성 무기로부터 견디어 내며 포
위하고 있는 적에 대해서도 효괘거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성벽이  건축되었다.  이와
같은 성벽들은 보통 높이가 약 10.5-12m, 그리고 폭은 7.5m정도의  대단한  것이었다.
따라서 보통의 공성 무기로는 결코 격파되지 않았고 아울러 사다리등으로 성 위에  오
르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 같은 성벽들은 그위에  별도의
돌출벽이 있어서 상대의 화공(火攻)및 석포 공격을 막기에 용이하였고,  반대로  상대
군사들에게 화공을 펼치기도 좋았다. 한편 지금까지 언급한 고대 성벽의 구조를  그림
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단   면   도-----------+  +------------전   면   도-----------+
|              +--+--+--+           |  |                                   |
|     성벽 ----+--+--+--+           |  |                                   |
|              +--+--+--+           |  |                                   |
|            .++++++++++++--- 축대  |  |+------+ +------+ +------+ +------+|
|           ..++++++++++++ +-----   |  |++   +-+|++   +-+ ++ |  ++ ++    ++|
|    깬돌--...++++++++++++ |   |    |  +-+   +--+-+   +--+-+ |  +---+    +-|
|         ..|.++++++++++++ |   |    |  |        |        |   |             |
+--+     +--+-++++++++++++-+   |    |  |        |        | 화공.석공을 박음|
|  | |   |  | ++++++++++++     |    |  |        +----+---+                 |
|  +-+---+  |                  |    |  |             |                     |
|   도량    흙               자연토 |  |           총안 (불. 돌을 던짐)    |
+-----------------------------------+  +-----------------------------------+

                    2. 계속된 대적들의 위협과 대책(4:7-14)
   본서 6장 후반부까지 전개되는 대적자들의 방해 공작 중 앞단락에서는  이스라엘의
숫적, 조직적 허약성을 비방하는 방해자들의 조롱과 그에 대해 기도로써 대처하는  느
헤미야의 모습을 기술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본문은 유다 백성들이 조소에도 불구하고
일절 요동함 없이 공사에 임하자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대적자들과 그로 인해  저하
된 백성들의 사기를 그리고 있다. 즉, 본문은 훼방자들이 얄팍한 논리를 앞세운  자신
들의 회유책이 실패하자 보다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위협함으로써  유다
백성들이 그에 대해 크게 낙심해 느헤미야가 새로운 방법으로 대처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1)조롱의 단계를 넘어 위협하는 대적자들의  모습을  그린
전반부(7, 8절), (2)유다 백성들의 사기 저하된 모습과 그렇게 된 원인을 기술한 중반
부(9-12절), 그리고 (3)백성들의 모습에 대해 새로운 대비책을 강구한 것을  나타내는
후반부(13, 14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는 성
벽 재건 공사가 진척되어감에 따라 대적잗르의 태도로 훨씬 위협적으로  변해  갔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한층 거세어진 휘협 앞에서 한때 중단의  위기를  맞을
뻔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한다.
   그런데 이처럼 산발랏이 강경책을 쓰게 된 것은 최초의 전술이 실책이었음을  자각
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는 성벽 공사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만 하더라도 그들이
낙심하여 하던 일을 중단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히
려 열심으로 일하여 성벽 재건에 상당한 진척이 있자 자신의 방법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산발랏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 사업을 무력(武力)으로  중단시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심지어 산발랏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지방 성읍들을  공격
할 의도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산발랏은 그 지방 주민들로  하여
금 예루살렘에서 성벽 재건에 힘쓰고 있던 동향(同鄕) 사람들을 그 자방들로 불러들이
게끔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산발랏의 계책(計策)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산발랏의 무력 사용에  대
한 소식은 우선 예루살렘에서 일하던 백성들을 동요케 하며 또한 그들의 자신감을  상
실케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방 주민들은 수차 예루살렘까지 와서 동향 사람들을 데
리고 가려고 하였다. 이처럼 산발랏의 방해 공작은 극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다. 즉, 그들은 전
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겁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같은 상황에서
느혜미야의 신앙적 독려는 가히 시의(時宜) 적절하였다고 할 만하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케 함으로써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도록 만
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먼저 성벽 재건에 대한 방해 공작이 절정에  달했
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앞 단라게서 대적자의  이름을  2명만  언급
(1-3절)한 것과는 달리 본문에서는 산발랏과 공모(共模)한 많은 무리들이 함께 위협하
였음을 드러낸다(7절).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적자들이 취한 위협적 태도(11b절)를 기
술함으로써 이 사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두 번째로 본문은 외적 상화에 의하여 연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러한 사실은 더욱 거세어진 대적자들의 휘혐에 대하여 한탄하며 낙심에 빠진(10-12절)
유다 백성을 통하여 나타나는 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의하여  좌지우지
(左之右之)되는 연약한 존재이다(창 12:10-16;삼하 11:1-27;막 14:29, 66-72).
   세 번째로 본문은 느헤미야가 취한 아주 실제적이고도 종교적인  조치를  나타내고
있다. 대적들의 태도가 단합적이고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형태로  변하자  느헤미야는
다시 기도로써 대응한다(9절).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는 파수꿈을 세워 방비하게 하였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사기가 계속 저하되자 무장을 하고  경비하게  하며,
또 한편으로는 신앙적인 권고(14b절)를 하고 싸움의 분명한 목적 의식(14b절)을  강조
함으로써 용기를 준다. 이러한 대처 방법은 당시 직면한 신앙적이고 현실적인 난제(難
題)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것이었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성도의 낙심과 좌절은  상황의  악화(惡化)가
아닌 믿음의 상실에 기인하며(삼상 30:3,6;시 42:5, 11;43:5), (2)하나님 나라와 성도
에 대한 사단의 공격은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재림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욱 극심해진다는 사실(눅 18;8; 벧전 5:8)을 깨닫게 된다.
 
   *성벽 재건을 방해한 네 민족들.   성벽 재건은 포로 생화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곡한 소원이었다. 왜냐하면 성벽 재건은 이미 완공된 성전과 함께 유다 민
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지켜줄 가시적 방패
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도를 알고 다음과 같은 네 민족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이다.

                    3. 계속 진척되 재건 사업(4:15-23)
   '대적자들의 조롱-그에 대한 대응-결과(1-6절), '훨씬 위협적으로 변한 대적자들의
태도-그에 따른 백성들의사기 저하-그에 대한 방안 강구'(7-14절)에 이어지는  본문은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4,5,9절)한 결과(15절)로 시작되는 대목이다.  즉,  본문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하여 사태가 반전(反轉)되었음을 나타냄과 더불어 그 이후  성
벽 재건을 위하여 이스라엘이 취한 자세를 언급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은 (1)하나
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드러내는 간략한 진술(15절)과 아울러 (2)계속 진척된 재건  사
업(16-20절)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후자는 (가)철저히 임전(臨戰)  태
세를 갖춘 건축자들의 모습을 언급한 부분(16-19절), (나)하나님의  도우심을  강조한
대목(20절), (다)2교대 작업으로 인하여 힘들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계속된 재건  작업
을 서술한 장면(21-2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당시 공사  현장
의 어려운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건 사역에 하나님께서  함께하
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공세가 극십하여짐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하지 않고 오
히려 백성들을 말씀으로 권며하여 성벼 재건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였다(14절). 즉, 당
시 느헤미야를 포함하여 백성들이 성벽 잰건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다만 하나님의  권
능을 의지함으로써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느헤마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태도와 아울어 인간 편에서 해야 될 책임을 다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무장시킨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힘의 논리를 숭배하거나 무기를 의지하여 적을 무찌르려고  하
지는 않았다. 비록 그는 백성들을 무장시켰지만 싸움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자신들은
오직 싸움의 도구로만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다고 언급한 것이다(20절). 그런점에서 볼때 그는 진정  인
본주의자이거나 객관적 사실에만 의지하는 합리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신본주의자였던 것이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균형잡힌  신앙
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무장한 백성들을 잘 조직하여 경비 업무에 체계적으로 사용했
던 모습을 통해서 확인된다. 그가 이같이 한 까닭은 비록 여화와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이 헛됨을 알고 있었지만(시 127:1) 또한 그는 하나님의 그 같은  사역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인간의 노력도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느헤미야의 이 같은 적절한 조처는 큰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산발랏 일당은 자신들의 음모가 모두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 진정한 신앙은 광신(狂信)이나 미신(迷信)과는 거리가 멀며(삼상 4:3-11), (2)신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클수록 삶의 현장에서보다 열심이어야 하며(살후 3:8-10), (3)하나님을 의지하노라고 하면서 삶의 현장에서는 게으른 자야말로 인본주의자임(살후 3:11)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