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느헤미야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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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가라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 여기에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이 없다고 해서본서의 영감성을 의심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물론 예언서들의 초두에서 예언자들이 자신의 전언(傳言)이 신적인 기원을 갖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말씀'이란말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롑 1:2; 호 1:2; 암1:1). 그러나 그 예언서들은, 철저하게 예언적 특성을 갖고 있는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Schultz).그러면 본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본서가 '느헤미야'에의해서 기록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있다. 아울러 본절은, 본서가 에스라서의 속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느헤미야에 의해 독립적으로 구성된 책임을 암시한다. 한편,'하가랴'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이름으로서, 그의미는 분명치 않지만 '여호와의 흑암'으로 추측된다. 반면에 '느헤미야'는 포로 전후기를 막론하고 대단히 흔했던 이름으로서,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이다. 바로 이 이름의 축약형이 '나훔'이다(나 1:1).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 년. B.C.445년을 가리킨다.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 '기슬르월'은 태양력으로 11월 중순부터 12월중순까지에 해당되는 달(月)이 다. 이때 아닥사스다 왕은 당시 느헤미야가 머물러 있었던 '수산 궁'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은 대개 겨울에는 '바벨론'을,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를 휴양지 삼아 거기서 통치하였으며, 봄이나 가을이 되어야 '수산 궁'로 돌아왔기 때문이다(스 6:2; 에 1:2). 느헤미야가 고국으로부터의 급박한 소식을 접하고서도(2, 3절) 즉시 왕에게 부탁하며 귀국할 수 없었던 원인도바로 여기에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실제로 느헤미야가 자신의 괴로운 심정의 자초지종을 아뢰고서 귀환 허가를 받은 것은 '니산월'(2:1), 곧 B.C. 444년 3, 4월에 해당되는때였다.

=====1: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 - 이 사람은 '느헤미야'의 친동생인 것으로 추정된다(Fensham, Schultz, 7:1, 2). 나중에 그는 느헤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느헤미야를 돕는 관리로 임명되었다(7: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셨다'이며, '하나니아'라는 이름의 추약형이다.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 이들이 '하나니'를 우두머리로 해서 '수산궁'에 온 것은, 예루살렘의 급박한 상황을 페르시아 왕궁의 고위직에 있었던 느헤미야에게 알리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니'는 페르시아나 바벨론에 살고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결국 이것은 '하나니'가 자신의 친형 느헤미야와 헤어져 에스라를 따라 B.C. 458년에 팔레스틴으로의 귀환 대열에 합류 했었음을 암시한다.
내가 형편을 물은즉 - 이처럼 느헤미야가, 급박한 상황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그것을 알리려고 급히 찾아온 동생의 일행이 보고를 하기도 전에 먼저 질문한 것은, 그가고국의 소식에 매우 목말라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해준다(Fensham). 특히 여기의 '형편을 물은즉'(* , 솨알)은 '구걸하다', '간청하다', '질문하다' 등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것을 간절하게 요구하는 행위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출 3:22; 삿 5:25; 왕상 3:1; 렘 30:6 )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 이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말한다(스 2:1). 유대인들에게 있어 포로 생활이란커다란 수치였으므로, 성지(聖地)에로의 귀환은 곧 수치를 면한 것으로 이해되었다(스9:13 참조).

=====1:3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 이는 당시 유대 사람들이 숫자가 적고 무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이방인들의 노략 대상이 되며, 지극히 가난하여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Batten). 한편, '그 도'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로갈린다. (1) 유프라테스강 서편지대를 가리킨다는 견해(Aharoni), (2)사마리아를 가리킨다고 보고 당시 유대는 페르시아의 행정 구역상 사마리아에 속했다고 이해하는 견해, (3) 유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유대가고레스나 다리오 때에 이미 페르시아의 독립된 한속령으로 인정받았다고 보며, 학개가스룹바벨을 '유다 총독'으로 지칭한 사실을 그 증거 자료로 제시한다(학 1:1). 따라서세 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
예루살렘 성은 훼파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 이 같은 사건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1) B.C.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와(Feysgan, Rawlinson, Schultz),(2) 스 4:7 - 24에 기록된 르훔과 심새등의 훼방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Williamson, Kidner). 예루살렘 함락은 본문 시점로 부터 무려 140여 년 이전에 발생한 오래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본문의 정황은 최근에 발생한 충격적인 요소가 전달된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이견해는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3) 에스라서와 본서 사이의 공백 기간인 12년 사이에 몇차례의 성벽 재건이 시도되었으나 그때마다 훼방당했던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도 시대 설정의 측면에서 비교적 무난하다고 이해된다.

=====1:4
울고 슬퍼하며 - 예루살렘 거민들이 성벽없이 살고 있음으로 해서 주변 민족들로부터 여러 가지 면에서 괴로움을 당할 것을 염려한 느헤미야의 반응으로서, 유다 백성의 죄로 인하여 삼 주 동안 슬퍼했던 다니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단 10:2).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의 고관으로서 누리는 현세적 영화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을더 중시했기 때문에 민족의 환난에 관한 소식을 듣고 자기 자신의 일처럼 고뇌하였다.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 여기의 '금식'은 '기도'와의 연결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에 4:1 - 3 주제 강해, '금식에 대하여' 참조). 즉, '금식'은 기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간절함을 표시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Brongers). 이 같은 '금식'과 '기도'의 밀접한 관련성은 에스라(스 10:6), 에스더(에 4:16), 다니엘(단 9:3), 사무엘(삼상 7:5, 6) 등에 의해서도 예증된다.한편, '하늘의 하나님'은 페르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신 '오르무즈드'(Ormuzd)를 지칭할때 사용되었다(스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느헤미야가 전통적인 여호와 신관(神觀)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심치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그 당시 페르시아인들의 용어만 빌려 사용하였을 뿐, 실상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한 여호와 신앙을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5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 여기서 '크고'(* , 가돌)는 '큰', '위대한', '힘센' 등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로서 인격에 적용될 때, 그 인격의 존귀성 혹은 다른 사물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가리킨다(시 57:10; 71:19; 76:1).
주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 - '주를 사랑하고'와 '계명을 지키는'은 본질상동일하다. 주님을 사랑하는 구체적 방식이 곧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 문자적으로 '언약과 긍휼을 지키시는'이다. 여기서 '언약'(* , 베리트)은 언약 상대자에게 시여(施與)되는 '긍휼'(* , 헤세드)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구는 '언약적사랑을 포기치 않으시는'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Fensham). 이 같은 사상은 신명기등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신 5:10; 7:9).
주여 간구하나이다 - 여기의 '주'(* , 엘)는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호칭이다. 따라서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존재들 위에뛰어나심을 강조하는 것이다(Jack Scott). 한편, 본절의 기도는 단 9:4의 기도내용과내용상 유사하다. 아마 느헤미야는 B.C. 535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니엘서에 매우 익숙했던 것 같다.

=====1:6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 -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신분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다.
주야로 기도하오며 - 여기에는 원문에 있는 '하욤'(* ), 즉 '지금' 혹은'오늘'이라는 단어가 탈락되어 있다. 그런데 이 '하욤'은 느헤미야가 그날 하루 동안만기도 했었음을 암시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느헤미야'가 그날부터 당장 기도에 돌입했음을 말해준다. 어떻든 그의 '주야'를 막론한 기도는, 그 당시 왕이 '수산궁'에없었던 관계로 왕이 그곳으로 돌아올때까지 계속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관한 비보(悲報)를 접한 것이 양력으로 11월 중순 경(1절)이고, 아닥사스다왕이 바벨론의 휴양지에서 3월 중순 경에 돌아왔다고 한다면(1절) 느헤미야의 특별 기도는 약 4개월동안 계속됐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 이것은 주로 포로로 끌려가기 이전의 범죄 행위와 관련이 있다(8, 9절). 한편, 여기의 '자복하오니'는 에스라가 그랬듯이(스 9:6, 7), 느헤미야도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죄인양 생각하는 등, 시공간(視空間)을 막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철저한 연대 의식을 소유했었음을 잘 보여준다.
주는 귀를 눈을 여시사 - 이 같은 신인동형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표현은, 솔로몬의 기도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즉, 솔로몬은 일찍이 만일 백성들이 범죄하여 타국 땅으로 끌려간다고 해도 그들이 회개하는 기도를 하면 그것을 응답하여 다시본국으로 돌아오게끔 해달라고 기도한 일이 있었다(왕상 8:46 - 53; 대하 6:36 - 40).특히 솔로몬은 회개하는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관련해서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했었다(왕상 8:52; 대하 6:40).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 하시기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대하 7:15)라고 하셨다는사실이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느헤미야는 그와 같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느헤미야가 그 당시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마치 포로 시대의 상황으로 보고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느헤미야의 영적판단은 (1) 당시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 등지에서 여전히 귀환하지못하고 있었으며, (2) 예루살렘도 포로로 끌려갔을 당시의 상황에서 대부분 회복되지못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당연했다. 나의 아비집 -이것은 슐츠(Schultz)의 주장과는 달리 느혜미야가 다윗의 직계 후손이었음을 암시치 않는다(Joseph Blenkinsopp : Williamson). 이것은 다만 온 이스라엘과 함께 범죄의 자리에 동참했던 자들로서의 느헤미야의 조상을 가리킨다.

=====1:7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서 '계명'(미츠오트)과 '율례'(후킴) 그리고 '규례 '(미쉬파팀)는 동일하게 모세 율법을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으로이해 가능하다(시 119:15, 16). 이와 같은 동의어의 삼중적 반복(9:13, 14)은 본절전반부의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와 뚜렷이 대비시키려는 저자의 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저자는 여기서 동의어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중의 죄를 범했던 것처럼 연중 암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물론위의 세 단어가 모세 율법의 각기 다른 세가지 측면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 '계명'은 '언약 벡성들에게 지키도록 요구된 특별 조건'인 십계명으로(스7:11), '율례'는 '반복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규정된 것'(스 7:10)으로, 그리고 '규례'는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행동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케 해주는 기준'(스7:10)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 이 단어들이 철저하게 율법의각기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는 없으며, (2) 율법의 모든 국면들이 이 세가지에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도 할 수 없다(Rawlinson)는 사실이다. 어쨌든 에스라서와 본서에서는 다른 역사서와는 달리 모세 율법이 강조되는 특징을 보여준다(1:8; 8:1; 9:14; 10:29; 13:1; 스 3:2; 6:18; 7:6).

=====1:8
주의 종 -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대리자였음(신 18:15)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따라서 모세 율법은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백성들에의해서 반드시 지켜져야만 했다.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흩을 것이요 - 이 같은 말씀은 레위기 26:27 - 45과신명기 30:1 - 5을 해석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범죄하면'(* ,마알 ) '배은 망덕'(背恩忘德)하게 행동하다' 혹은 '불충성하게 행동하다'의 뜻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 를 잊고 다른 신을찾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열국 중에 흩으실 것이요'는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국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일,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멸망당하는 와중에서 또다른 제 삼국으로 피신한 일(왕하 25:26; 렘 42:10 - 22; 43:1 - 13)등을 가리킨다.따라서 본절의 '열국'은 앗수르, 바벨론, 애굽 등을 가리킨다. 어쨌든 '흩을것이요'라는말의 주된 초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가 되게 하신 역사적 사실에 맞추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1:9
본절의 내용은 레위기 26:27 - 45과 신명기 29:14 - 30:10까지의 기록을 축약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돌아와서 지켜 행하면 - '돌아와서'(* , 슈브)는 죄악된 마음에서의 돌이킴, 곧 회개를 의미한다(시 7:12; 렘 8:6).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의 축복된 상태로 회복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신 4:30; 30:2; 왕상 8:33; 대하 6:24;욘 3:10).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 여기서 '쫓긴 자'(* , 니다하켐)는양을 몰거나(신 22:1) 메뚜기떼를 쫓아내는 행동(욜 2:20)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는동사 '나다흐'(* )의 수동형 분사로서, 불법한 행동으로 인하여 벌을 받아 원래 있었던 곳으로 부터 멀리 추방된 사람을 가리킨다(삼하 14:13; 사 16:3; 렘30:17). 특히 이 단어는 구약 성경 중 에스라서에 특별히 많이 나오는 '사로잡힌 자'(스 2:1; 3:8; 4:1)와 동의어로서 사용된다. 따라서 회개할 때 다시 본토로 돌아갈 수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무리로 묘사되고 있다(사 27:13; 겔 34:4, 16: 미 4:6; 습 3:19). 한편, '하늘 끝'은 '가장 먼 곳'을 의미한다(NIV).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 - 이는 신 12:5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한편,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름'은 곧 한 인물의전인격 그 자체를 의미했다고 하는 점에서, 이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고 볼 수있다. 한편, '두려고'(* ,레솨켄)는 '임시로 거주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솨칸'(* )의 강조형 부정사이며, '거처로서'의 뜻(NIV, Williamson) 갖는다. '성막'(* , 미쉐칸)이라는 단어가 이와 동일한 어근을 갖는 동족어이다. 또한'택한'(바하르)은 대개 종교적인 목적에 따라 특별히 하나를 구별시키는 행위를 가리키며(민 17:5; 왕상 11:13; 시 105:26; 학 2:23), '곳'(마콤)은 성경에서는 대개 종교적인 이유 및 목적 때문에 구별된 경배 처소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신 12:14; 수 9:27; 삼상 5:11; 왕상 8:7; 대상 15:1).

=====1:10
주께서...구속(救贖)하신 주의 종...주의 백성이니 - '구속하신'(* , 파다)은대신 값을 지불하거나 그에 상당하는 대체물을 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속해 있던 한개인에 관한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을 그 기본 의미로 갖는다(Harris). 한편, '주의종'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종'이고, '주의 백성'도 '당신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소유임을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은 신분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신'때문이었다.
큰 권능과 강한 손 - 이러한 표현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음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나온다(출 6:1;9:11; 신 3:24;4:34;5:15; 7:8;9:26,29). 느헤미야는 바로 이와 같은 문구의 사용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과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동일선상에 올려놓는다. 즉, 이것은 출애굽 때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이전의 형편으로 완전히 회복될 것에 대한 느헤미야의 간절한 염원을 반영한다. 사실 에스라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을 제2의 출애굽으로 암시했으며(스 1:11 주석 참조). 특히 훨씬 후기의 쿰란 공동체에서는그것을 새로운 출애굽으로 단언하였다(F.M.Cross).

=====1:11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 - 이들은 팔레스틴에서 느헤미야를 찾아온'하나니' 일행을 가리킨다(Fensham , 2절). 느헤미야가 그들을 이같이 표현한 까닭은,그들이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형편을 느헤미야에게 전달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무릅썼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온갖 위해(危害)요소가 도사리고 있었던(스 8:21, 22, 31) 약 1,400Km의 길을 자청해서 행(行)하여 느헤미야에게 왔던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구가 팔레스틴 본토의 경건한 유대인들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음도 배제치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 이것의 구체적 내용은 이어지는 문구와 관련된다. 여기서 '형통하여'(* , 찰레아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 시작한 일을 그과정과결과까지 성공적으로 이끄시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이다(창 24:21, 40,56; 왕상22:12).이 단어는 성경에서 항상 그 주어가 '하나님'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 이는 (1) 느헤미야에게 왕의 면전으로 나아갈 수있는, 그리고 소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스 4:11), (2) 느헤미야의 소청이 왕에 의해서 기꺼이 받아 들여지는 것(2:3 - 6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술 관원'이라는 특별한 지위의 소유자였다는 점에서 위의 두 가지 중 첫째의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느헤미야가 중요 직위에 있었으면서도 이 같은 염려를 한 까닭은, 그가 페르시아왕들의 변덕스러움, 즉 어떤 때는신하들에게 호의를 베풀다가도 곧 그태도를 급변시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느헤미야는 (1) 자신이 왕에게 소청하러 나갔을 경우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왔음을 이유로 왕이 진노하는 것(에 4:11), (2) 자신이 왕에게 소청을 했을 경우 그것을불쾌히 여겨서 심지어는 선대(先代)의 왕들이 내린 조서까지도 무효로 하는 것을 두려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이 사람'이다. 이것은 세상 나라의 왕에 대한 느헤미야의 시각을 잘 반영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느헤미야는세상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는 피정복민들의 생과 사를 좌우할 수 있는등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특별한 인물이었던 아닥사스다 왕을, 신앙적인 시각에 따라 다른사람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으로서만 보고 있는것이다(Fensham). 다시 말해서 이것은 느헤미야가 팔레스틴으로 가고 못 가고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달렸다고 보았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문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때에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 개역 성경의 번역은 마치 느헤미야가 기도의 응답으로 '술 관원'의 지위에 오른 듯한 오해를 낳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적절치 못하다. 느헤미야는 이미 '술 관원'의 지위에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그때에 술 관원이었느니라'고 번역함이 타당하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여기서 이처럼 자신의 신분을 밝힌것은 (1) 앞의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시사해주며, (2) 자신이 왕에게 소청할수있는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Rawlinson). 아무튼 느헤미야가 '하나니' 일행이 팔레스틴으로부터 오기 전에 이미 '술 관원'이었다는 사실은 그가'수산 궁'에 있었다는(1절) 점에 의해서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술 관원'에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장 둘째 단락의 주제 강해, '왕의 술 관원으로서의 느헤미야'를참조하라.

 

 

 

   본서는 성벽 재건 사실을 증언하는 전반부(1-7장)와 백성들의 부흥 운동을  언급하
는 후반부(8-13장)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본서 전반부의 서막에 해당되느 본장은
느헤미야기 귀환하게 된 배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본장은 스롭바벧을 중시므로
한 제1차 귀환과 고레스 왕의 조서(스 1장), 그리고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제2차 귀환
과 아닥사스다의 조서(스 7:11-28)에 이어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제3차 귀환과 그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장은 (1)예루살렘에 대한 슬픈 소식을 전해 들은 느헤미야의  심정을  그린
전반부(1-4절)와 (2)그 문제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금식 기도의 내용을 언
급한 후반부(5-11절)로 구분된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이 훼파된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즈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헌신적인 지도자가 없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행정적으로
관할하던 총독이 있었지만, 그들은 사리 사욕(私利私慾)을 취하는 데 급급했을 뿐  이
스라엘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지는 못하였다(5:15). 물론 느헤미야가 에루살렘의  소식
을 들었던 B.C.445년 보다 훨씬 이전인 B.C. 458년에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
교적인 지도자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그는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그 해에 종교적  개혁
운동을 전개한 후,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앙적 안정을 이루자 예루살렘에 계속  거하지
는 않았던 듯하다(8:1).
   따라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탁월한 지도자를 갖자  못함으로써  느헤미야가
귀환할 때까지 민족적 단합 능력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민족적  대사
(大事)인 성벽 재건을 이룰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은 몇 번 성벽 재건 사업을 시작하였
고 노력하였을 것이다(스4;12). 그라나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응집시킬 구시점을 갖지
못하였다. 또한 사마리아 등의 다른 민족들의 방해가 극심하였기에 바벧론 군대에  으
이하여 훼파된 이래 예루살렘 성벽은 약 131년간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수밖에 없었다
(3절).
   그러나 문제는 성벽이 훼파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는 데 있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성벽이 훼파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 특히 예루살렘 거민이 큰 곤경을 당
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즉, 그들은 성벽의 보호를 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이방인들
의 손쉬운 약탈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느헤미야에게는 바로 이 사실이 심각하게 들
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 재건을
자신이 직접 추진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간청하였던 것이다. 한편 우리는 그의 이  같
은 기도를 단순한 민족주의적 의식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스랄엘 백성을 통하
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펼치려는 산앙적 의지의 반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본장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음 저자 느헤미야가 당시의 극
심한 예루살렘의 소식을 접하고 나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금식 기도를 했다는 사실
이다. 이는 문제 인식, 혹은 문제 발생-그의해결책 간구로 이어진 그의 신앙을 드러낸
것으로서 참다운 신앙인이 가져야 하는 올바른 태도를 보여준 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계명을 받기 위해 모세가 취했던 신앙적 자세
(출 24:13-18; 34:27,28)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의 대적을 치기 위해 여호사밧과 유
다 백성이 취한 신앙적 태도(대하 20:3,4)와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본장에서 (1)하나님께서는 도처에 당신의 사역자들을 준비시키고
계시며(왕상 19:18), (2)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심과 그 뜻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
의 소유자만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자격이 있음(사 6:8)을 깨닫게 된다.
 
                    1. 예루살렘에 관한 슬픈 소식(1:1-3)
   B.C.586년에 파괴된 예루살렘의 성벽(왕하 25:1-7) 재건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시
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 본문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접하는 장면
이다. 즉, 본문은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가 뜻하지 않게 훼파된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
게 된 역사적 시점과 장소를 언급한 구절(1절), (2)예루살렘의 소식을 접하게 된 예상
치 못한 사건을 기술한 부분(2절), 그리고 (3)당시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 소상히 기
록한 대목(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유다는 바벧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후 바벧론에 이어서 패권을 차지한 바사
제국의 강력한 통치하에 있었다(대하 36:23). 그리하여 유다 땅은 바사 제국의  127도
(에 1:1) 중의 한 도(道)로 편입되어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주면의 이방인들이  유다
를 괴롭혔기 때문에 유다 백성들은 능욕을 당하고 있었고 찬란했던  예루살렘  도성은
훼파된 채 복원되지 못한 상태였다(스 4:9,10). 이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
라엘은 낮아질 대로 낮아져서 환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역사적으로 보면 바벧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당시로 부터 142년 전에(B.C. 587
년) 예루살렘 성전을 포함해서 모든 성을 불태우고 성벽을 허물었다(대하 36:19).  그
러나 B.C.527년 스룹바벧의 지도하에 바벧론으로부터 1차로 귀호나한 자들이  B.C.515
년에 비로소 두 번째로 성전을 완성하였지만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하지  못하였다(스
6:15), 그후 B.C.458년 에스라의 지도하에 2차 귀환한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
하는 부흥 운동을 일으켰지만 주변 대적자들의 방해와 아닥사스다 1세의 명령에  의해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태워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스 4:12, 13, 21, 23).  이
를 통해 하나님의 징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사 25:14).
   사실 성벽이 훼파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민들은 이방인들로부터  계속적
으로 약탈을 당하였다. 그 결과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주
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 인구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7:4),  종국에
가서는 간신히 재건한 예루살렘 성전도 노략질을 당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성전에는 이방인들이 탐낼 만한 재물들이 많았다(스 2:69;8:30-34). 만일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인 약탈자들에 의해서 계속 노략당할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낙심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이방인들에 의하여 모멸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보다 사태가 악화될  경
우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구심적 요소를 상실하게 됨에 따라,  종교적
일체성과 민족적 통일성도 상실할 가능성도 대단히 켰다. 따라서  느헤미야의  극적인
반응(4절)도 바로 이 같은 까닭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같은
불행한 사태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창 17:7) 때문에라도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보호는 백성들이 아무런 노력을  하
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느이  백성을  보호하시되
그 백성의 노력에 근거해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구체적으
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키위한 어떤 구체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
무튼 본서 저자인 느헤이먀는 바로 이 같은 긍정적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팔레스
틴으로의 귀환과 예루살렘에서의 성벽 재건을 위한 노력이 성공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즉, (1)사태의  추이를
예의(銳意) 분석이며,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할 줄 아는 지도자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며(수 7:2-7), (2)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성취를 작정하셨기만  인
간은 그 일의 성취를 위한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삼상 14:6)을 깨닫게 된다.

   *'수산 궁'에 대하여.   '수산'은 엘람어 '수수운'(Su-su-un)의  히브리어  음역이
다. 그리고 헬라의 고대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이것을 히브리어 '수사'(*           )로
표시함으로써 일반 역사에서는 '수사'을 '수사'로 부르게 되었다.
   한편, '궁'(*        , 비이라)은 '왕궁' 혹은 요새적 특징을 지닌 '도성'  모두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왕궁'의 뜻으로 취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것 같다(2;8;대상
29:1,19). 왜냐하면 본장에서 느헤미야는 자신이 당시 페르시아의 고관이었다는  사실
을 부각시키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붉하고 수사는 대단한 요새지였음이
분명하다.
   '수사'는 원래 고대 엘람 왕국(창 14:1)의 수도였다. 그런데 이  도시의  지배권이
셈족으로부터 아리안족인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넘어간 것은 B.C. 600년경이었다. 그리
하여 이 도시는 '아케메니드 길'(Achaemenid Road)이라는 유명한 도로의 동쪽  종착지
가 되었고, 더욱이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도시는 다리오 1
세(B.C. 522-485)에 의하여 B.C. 521년 페르시아의 수도로 결정되었다. 그러면서 다리
오 1세는 거기에 대규모의 화려한 왕궁을 건설하였다. 그때 그는 왕궁을 장식하기  위
하여 주변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그에 필요한 재료를 수입해 왔다. 이러한  이  왕궁의
화려함과 장엄함은 에스더서 및 그 밖의 성경 외적 문헌들에 의하여 잘  증명되고  있
다. 그러나 이 화려하고 장엄한 왕궁은 결국 알렉산더 대왕의 전리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이 그 왕궁을 점령한 후, 자신의 많은 신하들과 페르시아의 왕녀
들을 거기서 합동으로 그것도 대규모적으로 결혼시켰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2. 민족을 위한 기도(1:4-11)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본장에서 앞단락을 통해 지
금까지는 귀환의 당위성을 언급한 듯한 장면을 다루었다. 이에 이어지는 본문은  귀환
해야 할 원인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한 느헤미야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즉,  에루
살렘이 처한 현실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 귀환의 분명항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앞 문단
에 이어지는 본문은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장면을 기
술하고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처한 현실에 대해 자신이 어떻
게 대응했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을위해 간구한 저자 자신의  기도를
증언하는 대목인 바,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 즉, (1)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나타내
는 전반부(5절)와, (2)백성들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중반부(6,7절), 그리고 (3)신명
기적 관점에서 율법을 이해하고 회상한 대목(8,9절)과, (4)여호와의 은총을  간구하는
장면(10, 11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느헤미야는 당시 자신의 관심
사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언약의 주이신 하나님께(렘 15:21) 이스라엘의 문제를  해결
키 위해 간구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실의 주요 고위층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
력을 이용하여 성벽 재건 사업을 힘있게 추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왕실의 막중한 책임 또한 지고 있었던 관계로, 그 책임을 등한시하고  예루살렘으로가기가 곤란하였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예루살렘으로 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일부터가 쉽사리 엄두가 나질 않았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청원에 의해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즉, 왕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는 느헤미야의 시도를 자신과 왕실에 대한 반역의 전초 단계로 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왕은 이미 즉위 초기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대한 시도를 자신에 대한 반역의 일환으로 보고 그 시도를 중지시키기까지 한 바 있었다(스 4:21-23). 따라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을 재건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절감하면서도 그 일로 인하여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의 간절한 기도는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 언급된 기도의 내용과 구조를 살펴볼 때 느헤미야의 간구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담고 있다.
   첫째, 그의 기도는 철저하게 언약 사상에 근거했다는 사실이다. 즉,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로 인하여 멸망받아 마땅하지만 그래고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언약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죄릉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기도는 결코 인본적인 생각에 따른 이기주의적  성경의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그는 먼저 여호와를 '하늘의 하나님'으로 칭함으로써(5절) 언약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고백한 것이다(시 103:19;계19:6). 그리고 이와 더불어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는 그의 묘사는 하나님이 얼마나 경건하게  경외되어야 할 분(시 96:3)인가를 말함과 동시에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임을 나타낸  것이다(창 18:25; 시 58:11:75:7;96:13;전 3:17; 히12:23; 계 18:8;20:12).
   둘째, 그의 기도 속에서 자신에 대한 포기와 전적인 헌신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기도는 보다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이 기도엥 대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역사를위해 느헤미야를 들어 사용하셨다. 만일 그가 꾀를 부렸다면 그는 수산 궁에 머물면서 예루살렘 사람들을 원격 조정하여 성벽 재건 사업을 추진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같이 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완성되어야 할 성벽 재건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또한 해야 할 헌신을 먼저 한 뒤 자신에게 필요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셋째, 그의 기도는 철저하게 신명기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그는 죄를 먼저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도하는 자신과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동일하게  여겨  간구하고 있다. 이러한 기도는 대적자들의 방해에 대해 간구한 본서에 언급된 또 하나의 느헤미야 기도(4:4-6)와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그의 대표적인 기도이다. 그리고 이 같은  그의 기도는 에스라의 간구(스 9:5-15)와 다니엘의 기도(단 9:3-19)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에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기도능 성경 말씀에 근거한, 즉 하나님의 뜻과 합치되는 기도이며(출 32;13;마 26:42), (2)성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후 8:5).

   *왕의 술 관원으로서의 느헤미야.   성경은 여러 곳에서 '술 관원'에 대하여  언급
하고 있다. 그중 최초로 언급된 '술 관원'은 요셉에게 해몽을 부탁했던 애굽 사람이다(창 40:9).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이처럼 술 관원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는 것은(왕상 10:5;대하 9:4), 고대 중근동 국가에 있어서 '술 관원'은 매우 보편적인 직책이었음을 밝혀 보여 주는 증거일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학자들은 술 관원이 공통적으로 중요한 신분이었다고 주장한다.  페르시아 시대의 한 부조(浮彫)도 술 관원이 정부의 고위직이엉아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넉넉히 뒷받침해 준다. 또한 애굽에서 발견된 고분 벽화 하나도 학자들의 견해가 타당함을 증명해 준다. 이와같이 술 관원은 대체적으로 왕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직분이었던 듯하다.
   이처럼 술 관원이 정부의 중요한 직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가 왕을  가장 가깝게 모셨을 뿐망 아니라 왕이 상음(常飮)하는 '술'을 바치는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술 관원에게는 왕비 및 후궁의 거처에의 출입까지 허용되었다. 따라서  왕은 술 관원을 가장 신임하는 신하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렇다면, 일개 이방인이었던 느헤미야가 그 같은 직분을 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거일 수밖에 없다. 물론 페르시아 정부는 개방적으로 인재를 등용했었다. 또한 느헤미야는 실로 능력있는 인물이었던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피정복민의 자손인 느헤미야가 술 관원이라는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섭리에  따른 것으로 불 수밖에 없다. 즉, 하나님게서는 그를 정복국의 고위직에 오르게  하심으로써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한편 그가 환관으로서 술 관원이었다는 주장은, 칠십인역(LXX) 및 이미 알려진  고대 궁중 관습 그리고 페르시아의 부조(浮彫) 등의 증거를 통해서 볼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Fensham).
   
   *느헤미야의 예언에 대한 회상.   느헤미야는 율법을 신명기적 견해에서  회상하면 레 26:27-45; 신 29:14-30:10에 기록된 예언을 회상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세분해서 도표로 만들어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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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언된 사건(내용) |   레  26:27-45   | 신 29;14-30:10 |  느헤미야의 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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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의 배역   |   26:27          |  29:14-19      |6a절, 6c절, 7절    |                             
  |   하나님의 심판    |   26:28-32       |  29:20-27      |      3절          |                             
  |   열방에 흩으심    |   26:33          |  29:28         |      8절          |                             
  |     땅의 안식      |   26:34,35       |     -          |       -           |                             
  |포로 기간 중의 고난 |   26:36-39       |     -          |       -           |                                         
  |  이스라엘의 회개   |   26:40          |  30:1,2        |     6b절          |
  |   하나님의 구원    |   26;41-45       |  30:3-10       |      9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