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하나님의 전 앞 - 이것은 '성전 마당'을 가리킴이 분명하다(Schultz). 만일
에스라가 '성소' 안에서 기도를 했다면 백성들이 에스라의 기도 모습을
목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엎드려 울며 - '엎드려'(* , 미트나펠)는 '쓰러지다' 혹은 '넘어지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나팔'(* )의 재귀형으로서 극도의 슬픔 때문에(Davidson)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하게 엎드리는 행동을 가리킨다(NIV). 또한
'울며'(* , 바카)는 어떤 비극적 사실로 인하여 '통곡' 혹은 '애곡'하는것을
가리킨다(창 23:2 ; 삼상 1:10 ; 삼하 1:24 ; 렘 22:10). 따라서 '엎드려
울며'는 극도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암시적 행동임이 분명하다.
에스라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죄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죄인 양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한 바 있거니와(9:6-15) 여기서도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것인 양 괴로워하며통회 자복하고 있다.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 이것은 일차적으로 (1) 에스라의 죄에
대한 외적 태도(9:3). (2) 에스라의 백성들에 대한 연대 의식 및 그의
간절한 기도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효과를 극대화시킨
요소 중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왕의정치적 사법권을 소유한(7:25)
신분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Fensham). 한편, '통곡하매'는
본절의 '울며'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같이 에스라에게 적용된 단어가
백성들에게도 적용됐다는 사실은, 여기의 백성들의 통곡이 에스라의
신앙적 태도에대한 적극적 반응임을 암시해 준다.
=====10:2
에스라는 문제의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기에 앞서, 백성들로부터의
자발적 결단이 나타나도록 기다리는 지혜를 보여 준다.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 - '스가냐'라는 이름은 본절을
포함해서 본서와 느헤미야서를 통틀어 6회 나오지만(8:3, 5 ; 느 3:29 ; 6:18
; 12:3), 그중 어느하나도 본절의 '스가냐'와 동일시될 만한 증거는 없다.
한편 '엘람 자손'은 26절 ;2:7 ; 8:7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한편 혹자는
본문의 '여히엘'을 이방 여인과 결혼한스가냐의 아버지라고 보는데(26절),
비록 스가냐가 이방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지만 이방의 악습을 버리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자로서(6:21) 무리를 대표하여
이야기한것이라 생각한다(Williamson). 그러나 본문의 여히엘이 26절의
여히엘과 동일인이라는증거는 없다(Fensham).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 '스가냐'가 이 같은 긍정적 언급을 한 까닭은 (1)
에스라의 간절한 자복의 기도와 백성들의 진정한 회개로 인하여 백성들이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리라는
기대(Fensham)와, (2) 이 같은 범죄 사건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 종교 개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Schultz)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소망'(* ,미크웨)은 '기다리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카와'(*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1) 극한의 상황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끈기있게 고대하는 것(창 49:18 ; 사40:31), (2) 그
같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 등을 가리킨다.
=====10:3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 여기의 '내 주'(* , 아도나이)는
'에스라'를가리킨다. '스가냐'는, 영적.도덕적인 권세와 정치적 권세를
아울러 지녔던(7:25) '에스라'를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훈을 좇으며'는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주요
목적 중의 하나가 백성들에 대한 율법 교육이었음(7:10)을 명심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의 '교훈'(* , 아차트)은 '조언하다' 및
'훈계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야아츠'(*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삼은 문제에
대해 에스라가 제시하는 방침 혹은 해결책을 가리킨다.
아내와 그 소생을...보내기로 - '아내를 보내는 것'은, 그 결혼이
하나님의 율법과상치(相馳)되는 원인 무효의 법적 상태였다는 점에서 볼 때
타당한 행동이었다. 한편'소생', 즉 그 아내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보내는
행동은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꽤잔인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1) 자녀들은
어머니의 종교적 영향을 크게 받는 관계로틀림없이 이방의 풍습이나
종교에 젖어 있었을 것이며, (2) 이스라엘은 주변의 허다한다신 종교로부터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절대 명제를 갖고 있었다는점
등으로 볼 때,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었다(Fensham, Grosheide).
그리고 여기서 '보내기로'(* , 호치)는 '나가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야차'(*)의 사역형으로서 '강제로 나가게 하는 것' 혹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Gilchrist, 레 25:28, 30, 31, 33) 등을 가리킨다.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파기되었던
언약을(렘 31:32)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사람들이 다시 갱신했듯이(6:16,
17). 최근의 범죄(9:1, 2)로인하여 또 파기된 언약(9:10, 15)을 다시 갱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상황에서 백성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들에게서 죄를 제거하는 일이었다(Fensham).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 이것은, 백성들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이
율법의 기준에따른다면 원인 무효임을 인식하고, 그 기준에 의거하여 그
결혼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일을 가리킨다. 한편 여기의 '율법'(* , 토라)은
넓게는 '모세 오경', 좁게는 그중에서도 이방인들과의 통혼 금지
규정을 말한다(신 7:3, 4). 그리고 신24:1-4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이혼을
허용하는 규례가 나온다. 따라서 에스라의 교훈의영향에 따라 스가냐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 사실을 '수치되는 일'(신 24:1), 곧 이혼사유에
해당된다고 확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0:4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 이는 문자적으로 '그 문제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의미이다. 이는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들과 헤어지도록 만드는
일이 에스라의 소관이라는 뜻으로서 에스라가 율법 교육을 위해
팔레스틴에 귀환했다는 사실과 잘 부합된다(7:10).
일어나소서 - 특별한 일의 실행을 위한 의지적 결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1:5).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당부할 때도 '일어나...'라고
한 바 있다(대상 22:16).
우리가 도우리니 - 이는 문자적으로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리니'의
뜻이다.
=====10:5
에스라가...맹세하게 하매 - 맹세의 내용은,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들을
내어 보내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30:1-8 강해,
'서원(誓願)과 맹세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제사장들...레위 사람들...온 이스라엘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성하던 세 계층 이었다. 이처럼 세 게층이 모두 나열된 것은 에스라가
각계 각층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았음을 암시한다. 또한 본문은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까지 통혼(通婚)의 악습에 빠져있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느헤미야 당시에 대제사장의 손자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경우가 그러하다(느 13:28).
=====10:6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 - 여기의 '여호하난'은 분명히 '엘리아십'의
손자로서(느 12:22)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것 같다(Rawlinson, 느 3:1 ;
12:10).
방 - 이것은 성전의 양쪽에 있던 '방들' 중의 하나이다. 이 '방'은 제사장
혹은 레위인들이 봉사를 준비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다(8:29).
들어가니라...들어가서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동일한 두 동사 중 나중
것을 사본상의 오류로 본다. 즉, 나중 것(* , 와옐레크)을
칠십인역(LXX)이나 에스드라상 9장 2절과 같이 '밤을 지새웠다'라는 뜻을
지닌 '와옐렌'(* )으로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Brockington, Myers, Grosheide,
Williamson, Fensham, RSV).
떡도...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 이 같은 모양의 금식은, 백성들의 죄에
대한 중보를 위하여 모세에 의해서도 행해졌다(출 34:28 ; 신 9:18). 이런
금식은 먹는 것만을 금하는 금식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의미를
나타낸다(삼상 1:7 ; 20:34 ; 삼하3:35).
=====10:7
공포하기를 - 이것은 '건너다' 혹은 '지나다'라는 뜻을 지닌 '야아비루'와
'음성','풍문'을 뜻하는 '콜'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음성을지나가게 하다'라는 뜻으로서, 사자(使者)를 통해서
에스라의 전언(傳言)을 전국에 전달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전언은 필경 거리에서 큰소리로 외쳐져서 전달되었을 것이
분명하다(Fensham).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언약 신앙을
고백하기위해 1년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에 모이는 일이
중요했듯이(출 23:17), 하나님의 징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언약을 갱신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모은
명령은 결코 무리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14절).
=====10:8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訓示) - 여기의 '방백들과 장로들'이 에스라의
메시지를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던 것 같다(Fensham). 그리고 이들은
에스라에게 도움을 다짐했던 사람들(4절)과 거의 같은 인물들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표면상으로 이들의 훈시 형태로 시달된 것은, 외면상으로
나서서 권위를 행사하기 보다는 가급적 이스라엘공동체 자체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단을 유도하고자 하는 에스라의 의도를 엿보게
해준다(Williamson).
삼 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의 이스라엘의 영토는
남쪽의 브엘세바에서부터 북쪽의 벧엘까지여서, 멀다고 해도
예루살렘에서는 불과 약 60km밖에되지 않았다. 따라서 심히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던 백성들이(7절) 그 거리를 '삼 일이내'에 가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Rawlinson, Williamson).
재산을 적몰(籍沒)하고 - 이것은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의 하나였다(7:26).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기의'적몰하고'가 형벌의 외형상으로는 7:26의 것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사뭇다르다는 사실이다. 즉, 여기의
'적몰하고'(* , 하람)는 7:26의 '적몰하다'(* , 아나쉬)와는 원어상으로 전혀 다르다. '아나쉬'는 일반적 의미의 재산압수를 가리키지만, '하람'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여기의 '하람'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죄를 범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불태워
없애버리며, 동물은 죽이고 심지어는 범행한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에게까지 그렇게하는 것을 가리킨다(수6:21). 결국 우리는 여기서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속적 의미의 사법권을 이처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서 활용했다고 볼 수있다.
사로잡혔던 자의 회(會)에서 쫓아내리라 - 이것도 외형적으로는
7:26의 '정배(定配)하거나'와 동일하지만 원어상으로는 분명히 구분된다.
즉 여기의 '쫓아내리라'(* , 이바델)는 '나누다' 혹은 '구별하다'란 의미를
지닌 동사 '바달'(* )의 수동형으로서, 본질상 서로 섞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철저히 분리되어진다는 종교적 의미가 담긴 단어인
것이다(9:1 ; 민 16:21 ; 대상 23:13 ; 느 9:2).따라서 이것도 앞의 '재산
적몰'처럼,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속적사법권을
종교적으로 적용시켰음을 나타낸다. 한편 여기의 '회'(* ,
카할)는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의 무리, 곧 구약 성도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단어이다(출 12:6 ; 16:3 ; 민 16:3 ; 신 23:1 ; 삿 20:2 ;
대상 28:8 ; 느 5:13). 그렇다면본절은 곧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는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볼때 이는 성전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시민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그리고 종교적, 사회적으로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함으로써
어려움과 위기의 때에 전혀 도움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 등을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10:9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 - 포로 귀환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성했던
중요한 두지파이다. 이스라엘 백성에는 물론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 지파와
기타의 다른 지파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레위 지파는 특별히 구별된
부류라는 점에서 또한 다른 지파들은극소수였다는 점에서 언급되지
아니했다. 따라서 여기의 '유다와 베냐민'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 에스라의 명령에 대해(7, 8절)
백성들이 그대로순응했음을 시사해 준다.
때는 구 월 이십 일 - 여기의 '구 월'은 '기슬르 월'(느 1:1)이라고도
불리우며,양력으로는 12월로서 한 겨울이자 또한 우기(雨期)에 해당된다.
에스라가 바로 이 같은 날짜를 여기서 언급한 까닭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집결하는 데 적지 않은 희생이뒤따랐을 것임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무리가...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 백성들이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두 가지로 인하여 두려움을 느꼈음을 말해 준다. 즉, 백성들은
추운 겨울에 억수같이퍼붓는 비로 인해 흠뻑 젖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 비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으로여겨졌던 까닭에(삼상 12:17, 18 ;
겔 13:11, 13) 떨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 일'은(1) 백성 자신들이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한 것과, (2) 그에 따라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
=====10:10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 여기서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특별히
덧붙여진 까닭은, 에스라가 어떤 자격을 갖고 백성들을 소집하였고 신앙적
명령을 하는지를 밝히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본서
저자인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부여받은 사법적 권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Rawlinson). 그러나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백성들이 기후상의 악조건 아래서도 그같이
모이게 된 동기(動機) 중의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적 권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10:11
죄를 자복하고(*, 타누 토다) - 이것은 문자적으로 '감사하다' 혹은
'찬양하다'란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 자체와, 자신들의 죄로 인한 그러한 공의로운 심판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가리킨다(Williamson). 바로
이런 점에서, 여기의 '죄를자복하고'에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죄에 대한
회개의 개념도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그뜻대로 행하여 - 원어상으로 이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라'의 뜻으로도
번역될 수있다(Fensham).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항상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결국
이것은 이방 백성, 즉 이방 여인들과의 완전한 분리를 뜻한다.
끊어버리라 - 이는 원어상 8절의 '쫓아내리라'와 동일한 동사(8절 주석
참조)이다.
=====10:12
큰 소리로 대답하여 - 주께서 백성들로 하여금 에스라의 해결안에 적극
동조하도록역사하셨음을 뚜렷이 보여 준다(대하 15:14 ; 느 9:4 참조).
=====10:13
본절에서 회중들은, (1) 많은 사람들을 어떤 조직 체계없이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 백성들로 하여금 기후적 악조건을 무릅쓰고 계속
노천(露天)에 있게 할 수는 없으며, (3) 범죄자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릴것이라는 등의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면서, 성전 광장에서의
모임을 일단 해산시켜야 할 것을 주장한다.
=====10:14
우리 방백들을 세우고 - 에스라를 도와서 최종적 판단을 할 지도자를
임명하여 예루살렘에 남도록 하는 일을 가리킨다. '세우고'는 '임명하다'란
의미.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오게 하여 - 이렇게 한 까닭은, 그들이
에스라와 방백 앞에서 이방 여자를 내보내기로 서약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본성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 '본성'은 범죄한 자들이 살고 있던
마을을 가리킨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각 마을마다 나이 많고
인품과 덕망이 높은 이들, 곧 '장로들'로서 구성된 자치 단체가 있어
치리적 역할을 수행했다(레 19:32 ; 삼상 30:26-31). 숙곳 같은 곳에는 무려
77인의 장로들이 있었다(삿 8:14). 또 '재판장'은 7:25의 '유사'와 동일하다.
본절의 '장로'와 '재판장'은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에올라간 범법자들이
에스라 혹은 방백 앞에서 진술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와, 그들의 서약
내용의 이행 여부를 감시해야 할 책임을 갖는 자들이었다. 이 같은 역할
수행은,이들이 범법자들과 같은 고장에 살던 사람들이어서 범법자들의
차후 동향응 잘 파악할수 있었던 관계로 충분히 가능했다.
하나님의...진노가...떠나게 하소서 -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범죄와
관계하여 두려워한 것은,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보다는 궁극적으로'하나님의 진노' 때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10:15
오직...그 일을 반대하고 - 여기의 '반대'가 무엇에 대한 '반대'인지는 (1)
회중들이 제시한 방법(13, 14절)에 대한 반대라는 해석(Fensham,
Williamson, Myers), (2)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취한 사실을
조사하고 그녀들을 축출하라는 에스라의의견 자체에 대한 반대라는
해석(Schultz, Rawlinson) 등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1) 에스라 및
방백들이 아무런 저항이나 문제 없이 범법 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2) 여기의 '반대'하는 자들도 에스라의 명령에 순복하여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모인 자들이었으며, (3) 이 '반대자'들이
이방 여인들을 취한 범죄와 무관하며(18-44절), (4) 에스라는 계명을
어기거나 자신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에게는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더 타당한 듯하다.
므술람과...삽브대가...돕더라 - 이에 대해서는 (1) 두 사람이
회중들의 제안을'도왔다고' 보는 견해(Williamson, Fensham, Myers), (2) 두
사람이 '요나단'과 '야스야'의 의견을 '도왔다고' 보는 견해(Keil, Rawlinson) 등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첫째, 두 사람 모두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않았던 인물이며 29절의 '므술람'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본다. 둘째,
'므술람'이 8:16의 족장과 동일인이라고 하면 그는에스라의 뜻을 좇았을
가능성이 많으며(8:16) '삽브대'는 레위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의소유자였다.
셋째,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므술람' 앞의 접속사 '우'(*
)는 역접(逆接)의 성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Fensham)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한 듯하다.
=====10:16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 본 문맥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서
적극 돌아서려는 등 대단한 영적 각성의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호칭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범죄로 인한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사장 에스라가...위임하고 - 에스라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과정에서 줄곧배후에 있다가, 이제 구체적인 결단이 내려지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나서서일을 처리하고자 했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최종적 결정이 자발적 절차에 의해 내려지기를 기다렸다는
점에서 에스라는 민주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제사장 에스라'는 에스라 자신의 조처가 세속적 권한을 배경으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신앙적.영적 권위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종족...지명된 족장 - '종족'(* , 바이트)은 '가문' 혹은 '가족'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 여러 '종족'의 명단은 2:3-59에 나와 있다. 한편 '지명된'은
문자적으로 '그들 모두는 이름에 따라 등록되었다'라는 의미(Fensham)이다.
시월 초하루에...조사하여 - '시월 초하루'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모였던 날로부터 열흘 후이다(9절). 이 열흘동안 심사 조직이 만들어지는
등 조사를 위한 제반 사항이 준비되었을 것이다. 한편 '조사하여'는, 한
마을의 '장로' 및 '재판장'(14절)이 검사처럼 피의자(被疑者)를 데려오면
피의자와 '장로' 및 '재판장' 양측의 말을 듣고 그피의자의 범법 여부를
판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앉아(야쉬브) -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자신의 자리에 전위치하는 것을
가리킬 때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삼상 1:9 ; 왕상 1:35, 46).
=====10:17
정월 초하루에...마치니라 - '정월 초하루'는 태양력으로 3월 중순에
해당되므로,조사를 시작한 '시월 초하루'(16절), 즉 12월 초하루로부터는 약
석달 후이다. 그렇다면 에스라 등이 조사 활동을 위해 소요한 시간은
안식일을 제외하고도 약 75일 정도가된다. 그러나 18-44절의 범법자의
수효는 불과 110명밖에 안 된다. 물론 장로 및 재판장들에 의해
고소되었지만, 심사 결과 무죄인 경우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무려 75일 동안에 불과 110건을 처리했다는 것은, 결국
조사위원회의 심사가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후적 악조건으로 인하여 날짜가 공연히
순연(順延)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10:18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 형제 - 3:2 ; 5:2 ; 학 1:1 등에
의하면 예수아는 요사닥의 아들로서 언급된다. 따라서 본문은 '요사닥의
아들인 예수아의 자손들과 그 형제'로 번역됨이 옳다(RSV ; NIV). 이들은
대제사장 가문의 후예라는 점에서특별히 영적 모범이 되어야 할
자들이었다. 에스라는 이처럼 대제사장 가문의 범법 사실을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의 명단 초두에 올려 놓음으로써,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영적
부패상이 보편적이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Fensham).
=====10:19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 문자적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손을
내뻗었다'의의미로 이는 맹세할 때 흔히 취해지는 자세이다(왕하 10:15 ; 겔
17:18).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속건제로 드렸으며 - '속건졔'는 보통
비고의적인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다(레 5:14-16).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하면서, 그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Edwin Yamauchi).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혈통상의
순수성에 대한 의식이 다소 둔화되었으리라는 추측은 이러한 설명을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엄연히통혼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환경에 순응하느라고 그 죄악을 스스로
묵인해 버렸으리라는 사실이다. 이 견해를 취할 경우 제사장들이
'속건제'를 드린 것은 '속죄제'와의 분명한 차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제시될 수 있다. 이는 에스라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철저한 율법
교육을 다짐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7:10) 이스라엘 백성들이율법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했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Fensham). 이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만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10:20
임멜 자손 - 이에 대해서는 2:37 주석을 참조하라.
하나니 - '은혜로움'이란 뜻이고
스바댜 -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란 뜻이다. 한편, 임멜 자손, 하림
자손(21절),그리고 바스훌 자손(22절)은 모두 귀환한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다.
=====10:21
하림 자손 - 2:39 주석 참조.
마아세야...엘리야...스마야...여히엘...웃시야 - '마아세야'는 '여호와의
일'이란뜻을 가진다. 그런데 이런 이름의 소유자가 본서와
느헤미야서에서만 모두 13명씩이나나온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이 이름은
그 당시에 매우 흔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엘리야'는 '여호와이신 하나님',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들으셨다', '여히엘'은 '하나님은 살아계심',
'웃시야'는 '여호와의 능력'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10:22
바스훌 자손 - 2:38 주석 참조.
엘료에네...마아세야...이스마엘...느다넬...요사밧...엘라사 - '엘료에네'는 '여호와를 향하여 나의 눈을 드나이다'라는 뜻이고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느다넬'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이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요사밧'은'여호와께서 판결하심', '엘라사'는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10:23
레위 사람 - 이들에 대해서는 2:40 주석을 참조하라.
시므이...글리다...브다히야...유다...엘리에셀 - '시므이'는 '유명한',
'글리다'는 '불구가 됨'(느 8:7), '브다히야'는 '여호와께서 여셨다', '유다'는
'찬양'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10:24
노래하는 자 - 이에 대해서는 2:41 주석을 참조하라.
엘리아십 - '하나님이 돌이키실 것이다'란 뜻.
문지기 - 2:42 주석 참조.
살룸...델렘...우리 - '살룸'은 '보상', '델렘'은 '압박', '우리'는
'불같은'이란뜻의 이름이다.
=====10:25
이스라엘 - 이 말이 제사장들까지 포함한 전 백성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으나(6:17) 여기서는 성직자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에 대한
총칭이다(25절).
바로스 자손 - 2:3 주석 참조.
라먀...잇시야...말기야...미야민...브나야 - '라먀'는 '여호와께서 높임을
받으신다', '잇시야'는 '여호와께서 빌려 주실 것이다', '말기야'는 '왕은
여호와이시다'의뜻이고, '미야민'은 '운이 좋은', '브나야'는 '여호와께서
세우셨다'의 뜻이다.
=====10:26
엘람 자손 - 2:7 주석 참조.
맛다냐...스가랴...여히엘...압디...여레못 - '맛다냐'는 '여호와의 선물',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 '여히엘'은 '하나님은 살아계심',
'압디'는 '여호와의 종', 그리고 '여레못'은 '높은 곳'이란 뜻을 지닌다.
=====10:27
삿두 자손 - 2:8 주석 참조. 사밧...아시사 - '사밧'은 '주는 자', '아시사'는
'강력함'이란 뜻이다.
=====10:28
베배 자손 - 2:11 ; 8:11 주석 참조.
여호하난...하나냐...삽배...아들래 - '여호하난'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하나냐'는 '여호와께서 은총을 베푸셨다'의 뜻이 있다. '삽배'는 '순결한',
'아들래'는'하나님의 공의'를 의미한다.
=====10:29
바니 자손 - 2:10 주석 참조.
므술람...스알 - 여기의 '므술람'은 15절의 '므술람'과 동명 이인이다(15절). '말룩'은 '통치하는', '아다야'는 '여호와께서 꾸미셨다', '야숩'은 '그가
돌아올 것이다', '스알'은 '간구'라는 뜻을 지닌다.
=====10:30
바핫모압 자손 - 2:6 주석 참조.
앗나...므낫세 - '앗나'는 '즐거움', '글랄'은 '완전한'이란 뜻이다. 그리고
'브사렐'은 '하나님의 그늘 안에서', '빈누이'는 '세워진', '므낫세'는 '잊게
하는'이란 뜻을 가진다.
=====10:31
하림 자손 - 이것은 제사장 계열이었던 21절의 '하림 자손'과는
다르다(2:32). 시므온 - '들음'의 뜻이 있다.
=====10:32
베냐민...스마랴 - 이들도 역시 하림 자손들이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그리고 '스마랴'는 '여호와께서 지키셨다'를 의미한다.
=====10:33
하숨 자손 - 이에 대해서는 2:29 주석을 참조하라.
맛드내...여레매 - 여기서 '맛드내'는 '자유로운', '맛닷다'는 '여호와의
선물','엘리벨렛'은 '구원의 하나님', 그리고 '여레매'는 '높아진'의 뜻이 있다.
=====10:34
바니 자손 - 2:10 주석 참조. 마아대...우엘 - 여기서 '마아대'는 '장식품',
'아므람'은 '고귀한'을 의미하며,'우엘'은 '하나님의 소원'을 의미한다.
=====10:35
베드야...글루히 - '베드야'는 '여호와의 종'을, '글루히'는 '완성된'을
뜻한다.이들도 모두 '바니 자손'이다.
=====10:36
와냐...므레못...에랴십 - '와냐'는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므레못'은
'높은곳들'의 뜻이며, '에랴십'은 '하나님께서 돌이키실 것이다'란 뜻이다.
=====10:37
야아수 - '그들이 할 것이다'란 뜻이다.
=====10:38
바니 - '세워진'의 의미가 있다.
=====10:39
셀레먀...나단 - '셀레먀'는 '여호와의 감사 제물'을 의미하며 '나단'은
'주어진'이란 뜻을 지닌다.
=====10:40
막나드배...사새...사래 - 여기서 '막나드배'는 '무엇이 관대한 사람과
같은가?'의뜻이고 '사새'는 '흰 듯한', '사래'는 '지배하는'이란 뜻이다.
=====10:41
아사렐 - '하나님의 공의'란 뜻이다.
=====10:42
요셉 - '그가 말할 것이다'를 의미한다.
=====10:43
느보 자손 - 이에 대해서는 2:29 주석을 참조하라. 여이엘...요엘 -
'여이엘'은 '하나님께서 이끄신다'의 뜻이 있고, '맛디디야'는'여호와의
선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스비내'는 '수지가 맞아떨어짐', '잇도'는
'하나님께서 아셨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란 의미를 지닌다.
=====10:44
본절은 에스라의 개혁 조처가 완전히 매듭지어졌다는 분명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로 인하여 어떤 영어 성경들은,
이것과 병행 구절인 에스드라상 9장 36절을 좇아서 본절의 후반부를
'그래서 그들이 그녀들을 그 자녀와 함께 보내었다'로 고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그 부분을 '난하주'로 처리하였다(NIV, RSV). 그러나
칠십인역(LXX)의 내용은 여기의 맛소라 본문과 일치하므로 굳이 그같은
시도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 이것은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른 범법자들의 이혼이 엄청나게 큰 인간적 고통을 수반했었음을 암시해
준다. 사실 자녀까지 낳았던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에스라의 지도를 따라서 이
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종교적 개혁 운동에 동참하였다.
본서에 나타난 두 가지 핵심 내용(1-17절;5:1-6;18) 중의 하나로, 본서 후반부를
장식하는 대목인 본장은 앞장(9장)에서 언급한 내용이 계속적으로 연결되느 부분이다.
즉, 본 장은 앞에서 기록되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에 대해 에스라가 종교 개혁을 일으
키는 대목이다. 본서 저자인 에스라는 이 같은 본서의 내용을 자신이 인도한 제2차 귀
환의 결과로 간주해 끝맺음으로써 언약의 주이신 여호와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영원토록 지키실 것을 암시한다. 사실 본서 저자인 에스라는 앞장을 통해 백성들의 영
적 실상에 대해 낱낱이 폭로했다. 그리고 나서 본장을 통해 자신이 백성들의 영적 질
병을 치료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1)이스라엘
을 위한 에스라의 애도와 언약의 재정 사실은 언급한 전반부(1-5절), (2)에스라가 단
행한 종교 개혁에 대해 기술한 중반부(6-17절),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3)당시 종교 개
혁의 관건이었던 이방여인을 취한 자들의 명단을 기록한 후반부(18-44절)로 구성되어
있다. 즉, 본장은 종교 개혁의 진행 과정과 그 경과, 그리고 당시 논란이 되었던 잡혼
을 실시해던 사람들의 명단 공개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편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본장에는 이스라엘의 개혁 운동이 (1)언약의 제
정(3-5절)과 (2)이방인의 결혼에 대한 비성적인 타개책(6-14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바, 이는 백성들이 여호와 유일신 신앙에 의거해 결정한 것이다. 이 같은 옳은 결정과
과감한 결행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에른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 통혼하는 범죄 사실을 전해 들은 에스락, 그 사실에 대해 애
통해 하면서 회개 기도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같은 범죄가 하나님을 거스
리는 일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그는 무지함 잭성들을 대신하여 먼저 중보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백성들에게 엄히 내려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에스라는 계속 기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유인즉, 하나님께서 회개
기돌를 한 인간들에게 항상 바라시는 바는, 이제 그 죄의 자리에서 단호히 삶의 방향
을 전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요 8:11). 따라서 에스라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를 자백케한 연후에, 그들이 더 이상 죄 가운데 있지 않도록 이방 여인들을 추방케
해야 했다. 사실 이 같은 개혁 활동을 위하여 에스라는 바벧로으로부터 귀환하였던 것
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목적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앓고 있던 환
부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환부는 점차 커져서 결국 치
료 불능의 상태에 도달할 것이 뻔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영적 치료 행위는 인간의 눈
으로 판단할 때는 지나치리만큼 무자비하게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근
시안적인 인간의 판단일 뿐이다(본장 주제 강해, '에스라와 유대주의' 참조). 왜냐하
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당신의 백성들이 거룩성을 유지하여(마 5:48) 당신의
거룩한 성품이 그 백성들의 삶이라는 거울을통하여 만민들에게 반사되어 비쳐지는 것
이기 때문이다(마 5:16). 따라서 본서 저자는 바로 이 같은 에스라의 과감한 개혁 활
동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지녀야 하는 거룩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
고 계시는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장에서 (1)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 즉 불신자들보다 더 높은
윤리적 수준을 지녀야 하며(마 5:20), (2)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삶의 영위를 위하여
기도와 더불어 자신과의 영적 투쟁을 계속해야 하며(롬 7:19-23), (3)권징(勸懲) 없는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거룩성이 결코 드러날 수 없음(고전 5:13)을 깨닫게 된다.
1. 백성들의 통회와 언약의 제정(10:1-5)
바벧론에서의 포로 귀환 이후 있었던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언급하는 본장에서,
본문은 글 서론격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즉, 본문은 종겨 개혁 운동의 과정 및 경과
사항을 언급한 대목으로 백성들의 통회와 언약의 제정에 대해 기술한다. 그런데 이러
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1)에스라의 통회에 대해 많은 백성들이 자각하고 모여들
어 회개하는 장면(1절), (2)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 내용을 드러내는 대목(2절), 그리
고 (3)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처리할 것을 다짐하는 부분(3-5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본서 저자인 에스라는 본문을 당시의 종교 개혁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고, 자신의
개혁을 도운 자들이 모이게 된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나타나는 바,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죄에 대한 자복(1절) : 영적으로 깨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에스라의 회개 기도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이 같은 죄에 대한 자복 행위는 종교 개혁을 성공리에 끝마칠 수 있는
도화선이 된 것이다.
(2)범죄 내용의 고백(2절) :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죄의
내용을 정확히 지적했다. 이처럼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바른 분성기야말로 그 문제 해결
의 원천이 된다.
(3)문제 해결안 제시(3-5절) :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그 근간으로 해서 당면
문제를 해결토록 백성들은 의견을 모았다. 이는 백성들의 신앙을 반여한 행위로 에스
라의 사역을 돕게 될 백성의 지지였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세속적 권세도 위임
받은 신분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 같은 신분의 소유자로서 팔레스틴에 왔지만, 그에게
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그는 팔레스틴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태에 대
해 매우 무지했을 것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내심 그에 대하여 배타적이었을 수 있었
다. 그가 율법을 가르치려고 했겠지만, 백성들은 거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백성들의 통혼 사실을 도착 후 약 4개울만에야 알았다는 사실(9:1)은,
그와 백성들과의 관계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백성들의 이방인과의 통혼 소식을 들은 그는 매우 난감하였을 것이다. 물론 그는
백성들에게 체형(體形)을 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근본적 해결책은 전혀 못되었다. 그래서 에스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무리를
필요로 하였다. 그는 그들과 힘을 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앙적으로 부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필요를 결코 외면치 않으
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에스라를 도와 그와 함께 여적 부흥 운돌을 일으킬 하나님의
사람을 예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사람들을 준비치 않으셨다. 즉,
하나님 께서는 에스라의 경건한 태도를 통해서 당신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모으셨
던 것이다. 우선 에스라의 설교적 기도는 든든 사람으로 하여금 큰 감명을 받게 하였
다. 즉, 그의 애통해하는 기도 자세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와같이 감동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이미 나름대로 거룩하게 살기 위해 애썼으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그렇게 되기를 열망했던 사람들이었다(9;1).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살기를 소원하는 자들을 남겨 두셨고, 또한 에스라의 기도를 통
하여 그들을 감동시키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당신의 사람들은, 지지 세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에스
라에게 천군 만마(千軍萬馬)와도 같았을 것이다. 애통해 하며 기도만 하던 에스라가
힘있게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같은 후원자들의 출현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교훈받을 수 있다. 즉, (1)하나님
의 음성이 민감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에 설 수 있으며(계 2:29), (2)성
도는 하나님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당신의 사람을 남겨 놓으시므로, 자기가 없
으면 안 된다는 교만한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함(왕상 19;10,18)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3)오늘날의 부패와 타락을 개혁하는 데 있어 지도자의 자각과 회개의 모
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2. 총회 소집과 개혁의 결정(10:6-17)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언급하는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개혁의 이유(9:1,2), 그에
대한 에스라의 기도(9:3-15), 그리고 개혁 운동의 구체적인 시발(1-5절)에 대해서 기
술했다. 이에 이어지는 본문은 개혁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상황을 서술한 대목으로 이
방인과 결혼한 사람들과 잡혼에 관계된 문제를 처리하는 장면이다. 즉, 본문은 개혁을
위해 동참하는 세력을 얻은 에스라(1-5절)가 자신의 개혁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총회로 백성들을 소집하게 된 배경(6절)
과 경과(7,8절)를 언급한 전반부, (2)소집에 응한 모든 백성들에게 이방 여인과의 이
혼을 권면하는 모습을 그린 중반부(9-15절), 그리고 (3)백성들이 에스라의 권면을 받
아들여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에 대해 조사하는 광경을 묘사한 후반부(16,17절)로 구
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해 본서 저자는 이스라엘이 당면한 영적 문제를 어
떻게 해결했는지를 나타내 준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이방 여인과의 통혼 사건은 국가적 범죄였다. 따라서
에스라는 온 국민들을 상대로 종교 개혁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전령(傳令)들을 온 나라에 파송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에스라가 페르시아 당국으로 받
은 행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에스라의 개혁에
반발하여 소집에 응하지 않는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그가 전령들을 보
내기 전에 물까지도 마시지 않고 금식을 한 까닭은, 하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
심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에스라가 백성들을 '삼일 내에' 모이라고 한 것은, 백성들이 범한 죄의 심
각성 때문이었다. 이것을 아는 에스라는 하루라도 빨리 신속하게 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회개케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이같은 조처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께서 에스라의 금식 기도(6절)를 들으셨다는 사실은, 온 백성들이 (1)에스라가 정한
기한인 '삼 일 내에' 모두 모인 것, (2)'큰 비' 등의 악천후 속에서도 동요치 않았다
는 것, (3)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두려워했다는 것 등으로 증명된다. 바로 이 점을 파
악한 에스라는 모인 청중들에게 율법 말씀에 근거하여(3절)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촉구
하였다. 이와같이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말슴에 근겋다 책망을 펼쳐 그
효력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이방 여인들
과 헤어지기를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징벌하
시지도 않고 죄 가운데서 구출하셨다.
이 같은 내용의 본문을 사건 진행 과정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백성들의 총회 소집 : 까.총회가 소집된 배경(6절)- 다.소집 대상(7절)- 따.총
회 소집 공포령의 권위(8a절)- 마.즉각적인 순종을 요구한 공포 내용(8b절)- 바.소집
공포령이 지닌 강제권, 즉 모든 성전을 성전에 귀속시키는 것과 불순종한 자를 유대인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8c절).
(2)총회로 모인 광경(9절)과 에스라의 권고(10,11절) : 까.범죄의 내용을 분명히
밝힘(10절)- 다.그 첫 번째 해결 방안을 제시(11a절)- 따.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방안 제시(11b절).
(3)백성들의 반응과 구체적 방법론 등장(12-15절) : 긍정적 반응(13, 14절). 에스
라의 권고대로 행하되 일이 너무 방대하므로 차근히 진행시키자는 의견, 다.부정적 반
응(15절).
(4)진상 조사 활동(16,17절) : 약 3개월에 걸쳐서 시행됨.
한편, 본서 저자는 본문을 기록함에 있어서 당시의 배경이나 날짜 등을 언급해 본
사건의 역사성을 나나낸다. 즉, 본서 자자 에스라는 총회로 모인 날짜와 당시의 계절
상황(9절), 진상 조사 시작일(16절), 조사가 끝난 날짜(17절) 등을 언급해 본문의 역
사성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이 같은 단락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교훈으로 받을 수 있다. (1)하나님
나라 건설의 주역(主役)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시며(행 1:6, 7), (2)목회자는 하나님
께 대한 간절한 기도와 회중들에 대한 신실한 말씀 선포만을 목회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행 6:4). 그리고 (3)죄에 대한 회개는 빠를수록 좋다는 것(잠 24:22)을 깨닫게
된다.
*팔레스틴의 겨울. 팔레스틴의 겨울은 우리 나라처럼 12월에 시작하여 2월에 끝
난다. 그런데 팔레스틴의 겨울이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은, 그때가 우기(雨期)라는 사실
이다. 이때 내리는 비의 양은 일정하지 않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경우 연간 강우량 약
660mm의 대부분이 우기인 겨울에 내린다. 그렇다고 해서 겨울에는 항상 비만 오는 것
은 아니다. 변덕스런 기상(氣象) 요인에 따라서 쾌청한 날씨와 비오는 잘씨가 불규칙
하게 교차된다. 그러다가도 북그지역의 차가우면서도 습한 공기가 밀려올 때는 눈이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추위와 강우로 인해 사람들의 행동이 위축되기도 한다(마
24;20; 막 13:18; 딤후 4:21). 그리고 팔레스틴 지역의 비교적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
메에도 1월의 평균 약 3일간은 눈이 내릴 정도로 눈과 익숙하다(삼하 23:20).
한편, 팔레스틴의 겨울 기온은 그리 낮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그곳
의 겨울을 추은 듯 말하는 까닭은 (창 31:40), 겨울인데도 낮의 햇살이 따가운 밤의
기온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1월 낮 최고 기온이 평균 약
12oC, 밤 최저 기온이 평균 약 5.5oC 정도라는 사실로써 입증될 수 있다.
*신앙 공동체로부터의 출교(黜敎). 모세 율법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자에 대
해서 언약 백성의 자격을 박탈하도록 명령하였다(출 30:33; 레 17:4). 그러나 그 같은
명령이 보다 구체화된 형태는, 이방여인의 축출과 관련된 에스라의 발언에서 발견된다
(8절). 사실 이러한 에스라의 지침은, 특별한 종교적 범죄자를 죽이고 그의 재산을 파
괴하는 고대의 '헤렘'(* )의 약화된 형태였다(삼상 15:3).
그러면 이와같이 종교.도덕적 범죄자를 언약 공동체로부터 축출하는 것이 신약 시
대에도 적용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결론적으로 말하여, 그 같은 축출 규범은 신약
시대에도 적용되었다. 이 같은 닫자은, 예수께서 필요 적절한 출교를 명령하셨고(마
18;15-17), 사도 바울 역시 그러한 언급을 했다는 사실(고전 5:5; 딤전 1:20)로써 그
정확성이 입증된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출교와 신약 시대의 출교는 그 성격에 있어서
약간 다르다. 즉, 구약 시대의 출교는 자못 물리적 방법에 의해서 시행되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은 신앙 공동체임과 아울러 하난의 신정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포로 후기 시대의 이스라엘이 주권 국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으
로부터 세속적 권세를 부여받았다. 그래서 이 같은 일이 당시에는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신약 시대의 출교는 오직 영적 권세만을 갖고 있는 교회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물리적 힘이 수반되는 강제력을 갖지는 못하였다. 다만 교회 지도자에
의한 출교의 선언이 영적 효력을 가졌을 뿐이다(마 16:19; 18:18).
한편, 그 목적에 있어서는 구약 시대의 출교나 신약 시대의 출교 모두 동일하다.
그것은 신앙 공동체 혹은 교회의 순결 유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심각한 범
죄를 행한 사람이나, 그릇되 사상의 소유자를 교회의 교제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교회
가 도덕적.영적으로 오염되는 일을 방지하려는 데 출교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도덕적 범죄자 혹은 교리적 문제를 가진 자를 교회의 회원들과 계속 교제하도록 방치
할 경우, 그 영적 피해는 심각할 것이다.
또한 출교의 또 다른 목저은, 영적.더덕적 범죄자를 구원하려는 데 있다(고전
5:5). 즉, 교회는 범죄자를 교회의 교제로쿠저 제외시킴으로써 그 범죄자로 하여금 자
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절감케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범죄자로 하여금
계속 교회의 회원들과 교제할 수 있게 하면 그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잘못되었다
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바르다고 보고 그보다 더 나
쁜 행동과 생각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처럼 교회는 한 범죄자를 과감히 출
교시킴으로써,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고 한 개인을 그 영적 질병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
다.
따라서 교회는 혹시, 그 출교 조처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으면 어데게 하나 하고 염
려할 필요가 없다. 오직 하난바만을 기쁘시게 한다는 순수한 동기에 따라(갈 1:8), 권
징을 시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바는, 권징을 주도하는 교회의 지도자가
도덕적으로 무흠하여 책잡힐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딤전 6;14). 그리고
이와 더불어 교회는 공평하고도 신중한 권징을 실시해야만 할 것이다(딤후 2:25).
3. 잡혼을 행했던 자들의 명단(10:18-44)
앞 단락에서 모든 배성들이 에스라의 개혁 운동을 지지하여 이방 여인을 취한 사람
들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위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보서 저자가 여기서는 실제로 자신들
과 함께 살뎐 이방 여인들을 내보낸 사람들의 명단을 언급하고 있다. 즉, 본문은 본서
의 후반부를 마감하는 대목일 뿐만 아니라 본서 전체를 종결짓는 장면으로 잡혼을 행
했던 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신앙적이고 종교적으로는 이
스라엘의 순결성을 유지하게 된 것으로, 가정적이고 사회적으로는 슬픔과 고통스런 이
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은 (1)잡혼을 행한 제사장 무리의 명단(18-22
절), (2)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들의 이름들(23, 24절), (3)일반 백성들의 명단
925-4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서 2장의 귀환자 명단과는 달리 본문에는 제사장들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온다.
이는 본서 저자가 종교적 책임성이라는 관점에서, 제사장과 레위사람 그리고 성전 봉
사자와 평민의 순으로 그 명단을 기록함으로써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암시적으로 추
궁하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차 밀아야 할 바는, 본서 2장의 귀
환자 명단에는 제사장의 숫자가 백성 전체의 10%였으나 여기서는 전체의 15%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비율은 곧 제사장들이 백성보다 통혼(通婚)의 범죄에 더 적극적이
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오히려 백성들의 범죄를 방지해야 할 제사장들과 지도층
인사들(9:2)이 죄에 더욱 깊이 빠졌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말해 준다. 또한 제사장 자손 중에서 18명, 레위 사람들 중에서 10명, 그리고 평민
86명 등 도합 114명이 통혼했다는 사실은 지도층의 제사장 뿐만 아니라 레위인, 평민
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의 계층에 죄악이 만연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영적.도적적 상황애 방치되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망은 지극히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계숙 가
게 하지 않으셨다. 에스라를 통하여 백성들을 멸망의 길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이제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회개가 참된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방 여인들
을 추방하는 것이었다. 물론 함께 살며 또한 자녀까지 생산했던 이방인 아내를 내보내
는 일을 인간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심히 가슴 아픈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당
시의 모든 상황으로 보아 이방 여인과의 결별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
성들은 지역적으로 함께 살던 이방인들의 끊임없는 문화.종교적 유혹을 받고 있었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문화.종교적으로 이방 세계에 흡수되어 말살될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인구도 적었다. 그런데이방인드은 인구
도 많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경제적 교류를 계속하고 있었다.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의
단호한 조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문화.종교적으로
오염시킬 원인들을 철저히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켜나가야만 했
던 것이다.
이처럼 본서는 이스라엘의 엄격한 민족주의나 배타적 성격을 담고 있어 룻기나 요
나서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한편, 유대인들의 이러한 철저하고 분명한 태도 때문에
선택된 민족으로서 순결성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여호와 신앙 중심으로 국가로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같은 본장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교훈받는다. 즉, (1)진정한 회
개는 삶의 방향의 전환을 반드시 수반하며(눅 19:8,9), (2)신자들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인간적 정(精)이 아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일이며
(마 6:33), (3)신자들은 자신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신앙적으로 오
염시킬 수 있는 모든 원인에의 접근을 금해야 함(잠 23:31)을 깨닫게 된다.
*에스라와 유대주의. 유대주의는 보통 엄격한 율법주의 및 이방인에 대한 강한
배타성등의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에 일부 학자들은 에스라가 이 같은 유대주의의 창
시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에스라는 유대주의의 창시자가 결코
아니다. 물론 에스라가 율법 교육을 강화했던 것은, 앗수르와 바벧론에 의한 이스라엘
의 멸망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었음을 깊이 자각한 결과였을 뿐이다
(7:10). 또한 이방 여인을 내쫓도록 하는 등 이방인에게 엄격한 태도를 취한 것도, 그
렇게 하지 않으면 오직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의 순수성이 유지될 수
없었던 당시의 독특한 상황 때문이었다. 따라서 에스라가 그 같은 종교적 개혁을 일으
킨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통적으로 믿어 왔던 신앙 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함이 아
니었다. 다만 그는 그 당시의 영적 필요성 때문에 기종의 신앙 체계를 강화시키기 위
함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글 당시의 영적 필요성 때문에 기존의 신앙 체계를 강화시
키기 위하여 그러한 개혁 운동을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에스라 시대를 기점으로 하
여, 구약의 전통적 신앙이 유대주의화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결코 타당치 못하다. 만일
에스라가 전통적 신앙을 변질시켰다면, 그에 관한 기록들이 어떻게 성경에 포함될 수
있었겠는가? 유대주의와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하여 계속 책망을 당하
지 않았던가(마 23:23-36; 행 22:3,4; 갈 1:13,14)! 따라서 에스라와 유대주의를 관련
시켜 이해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또한 유대주의는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 헬라주
의에 대항하려던 극단적 경건주의자들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교회 내의 이견(異見). 교회 안에서는 각기 다른 배경을 소유한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항상 동일한 목소리만을 낼 수는 없다. 물론대개의 경우 동일한 사안(事
安)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각기 다른 견해들
로 인하여 교회가 분쟁의 회오리에 휘말려들 수도 있다. 결코 정실(情實)에 따라 누구
의 편을 들어주는 일이 없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도
자는 자신의 의견과 상이(相異)한 견해가 있는 경우에도 그같이 해야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지도자는 자신의 의견과 또 다른 견해 중 어떤 것이 성경적인지를 냉정하게 판
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제시된 것들이 모두 성경적인 견해들이라고 한다면,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의
형편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더 나은 견해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도 분
별이 어려우면, 지도자는 자신의 목회 방침과 잘 조화되는 견해를 옳다고 보아야 한
다. 이같이 함으로써, 지도자는 목회의 효율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회중들
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영적 제사장이기는 하지만(벧전 2:5), 교회의 지
도자는 그 회중들을 인도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일에 대한 최종의 책임자이기 때
문에 각양의 의견 중 하나는 교회 공식 견해 혹은 의견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회중들이 이러한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질서는 깨져 버리고 교회의 기능
은 약회될 수 있다. 그러므로 회중들은 목사의 권위를 인정해 줌으로써(딤전 5;17;밸
전 5:5), 자신들의 영적 성숙을 도모할 수 있으며 교회의 평화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다.
*불신 배우자에 대한 성도의 합당한 태도. 우리의 현재 상황에서 부부 중 어느
한편만 신앙을 갖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우선 결혼 당시에는 모두 신앙을 갖지 않
았으나, 그후 한 사람만이 신앙을 갖기 시작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한편은
신앙을 갖고 있었던 상태에서 불신자와 결혼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부는 대
개의 경우 가치관의 차이로 인하여 많은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불신 배우
자가 신앙 생활하는 쪽을 많이 이해애 주거나 방미할 때는 별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불신 배우자는 신앙 생활하는 상대에게 갖가지 유형의 핍박을 가할 가능성이 많다. 바
로 이와 같은 경우, 신자는 불신 배우자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살펴보도
록 하자.
첫째, 신자는 불신 배우자와의 이혼을 생각지 말아야 한다. 물론 너무나도 견디기
곤란한 핍박을 가한다면 이혼할 수밖에 없다. 신앙 생활을 한다고 매일 심한 매질을
하는데, 어찌 계속 같이 살 수 있겠는가? 과도한 매질 자체가 더 이상 부부이기를 포
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고전 7:15)? 그렇지만 견딜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마 19:6; 고전 7:10,11)을 명심하여 그 배우자와 계속 부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둘째, 신자는 불신 배우자와의 결혼을 하나님의 섭리로 알고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단 불신자와 결혼한 이상 하나님께서 그 영혼 구원의 사명을 자신에게 주신 뜻으로 알고 그를 구원시켜야만 한다는 뜻이다(고전 7;14).
셋째, 신자는 불신 배우자를 구원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사실 인간 구원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다(요 15:16; 엡 2:8,9). 그러나 인간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신다(고전 1:21). 따라서 신자는 불신 배우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수시로 전해야만 한다(롭 10;14, 17). 그 뿐만 아니라 신자는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여 불신 배우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전인격을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벧전 3:1). 주님께서도 자신을 온전히 버리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인류에게 드러내지 않으셨던가(요 15:13; 롬 5:8)! 그러기에 신자는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인줄로 알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로 힘써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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