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선지지들...예언하였더니 -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게을리하는데 대한 질책성의 선포였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훼방으로인하여(4:4, 5) 성전 재건을 중단한 후 대적들의
방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그 고귀한 사업을
재개하지 않았었다(학 1:2). 그러나 이 예언 중에는소망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학 2:9; 슥 1:17; 2:12; 3:3). 한편학 1:15 과 슥 8:9에 따르면 성전 재건 사업이 재개된 때는 다리오 왕 2년(B.C. 520년)
6월 24일이다.
선지자 학개 - `학개'(* )라는 이름은 `축제의'라는 뜻을 가진다.
추측컨대이 이름은 `여호와의 축제'를 뜻하는 `학기야'(* , 대상 6:30) 의
축약형인 듯하다(IDB). 한편 이 사람의 개인적 배경에 대해서는 별반
알려진 것이 없다. 우리들은 그가 B.C. 520년 경에 활동한 선지자였으며(학
1:1), 솔로몬의 성전을 목격했었을것이며(학 2:3) 따라서 그만큼 활동 당시
매우 연로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잇도의 손자 스가랴 - `스가랴'(* )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의
의미이다. 이 사람 또한 학개처럼 B.C. 520년 경에(슥 1:1) 활동한
선지자로서 스가랴서의 저자이다. 추측컨대 그는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던 것 같다(느 12:16). 그그런데 그는 `잇도'의 손자가 아닌 그의 먼
후손일 것이다. 그 이유는 `손자'(* ,바르)가 `아들'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손'
및 `후손'의 뜻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느 12:16; NIV). 그렇다면 `잇도'는
분열 왕국 초기의 선지자였을 것으로 추측 될수 있다(대하 9:29; 12:15;
13:22).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 `이스라엘 하나님'은 언약 공동체를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강조하는 호칭(3:11)이며 `이름을
받들어'는 `이름으로'의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선지자의 메시지가 신적
기왼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문구이다. 구체적으로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하셨느니라'(학 1:13; 슥 1:1, 2)의형태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사람 - 유다 지파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의 사람들까지를 모두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귀환민들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저자가 여기서 `유다 사람'만을 언급한 까닭은,
그들이 포로 귀환 후의 이스라엘 역사의 주역이며 또한 그들의 숫자가
제일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2
스룹바벨...예수아 - 이에 대해서는 2:2 주석을 참조하라.
일어나(* , 쿰) - 이것은 문자적 의미의 기립(起立)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만어떤 중대한 일의 본격적 수행에 앞서 이뤄지는 마음의
결단을 뜻한다(삼상 16:12; 시44:26; 사 60:1). 백성들이 이 같은 마음의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도구삼아서
그들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이다(학 1:14).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 이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에만 계시는
분임을 시사하는 문구가 결코 아니다.왜냐하면 여기의 `예루살렘'은
문자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의 뜻으로서 `전'(殿)을 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하매 - 이것은 `일어나'의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측면이다. 이 같은
성전 재건사업의 재개는 학개가 예언 활동을 한 때부터 약 8일
만이었다(학 1:1, 14, 15). 또한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훼방으로 중단된지
약 16년 만이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 - 이 말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과 감동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함께 하여 돕더니 -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 활동이 성전 재건이 재개된
후에도 계속됐다는 점에서 볼 때 (학 2:1, 10; 슥 1:1, 7; 7:1), 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독려로써 성전 재건 사업에 일조(一助)를 한 듯하다.
=====5:3
강 서편 총독 닷드내 -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던 당시의 유프라테스 강
서쪽을 통할했던 `총독'은 `우쉬타니'였다는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
있다(Williamson, Fensham).B.C. 521년경에 바벨론인들의 반란이 진압된 바
있으며, 바사 제국은 이 진압이 있은직후인 B.C. 520년에 바벨론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서편 지역을 관활할 새 총독 우쉬타니를 임명하였다는
것이다(J.M. Myer). 바벨론인들의 반란이 있었던 직후에 바사 황제는 그
속령들의 제반 움직임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각 관할 총독들로 하여금
지역민들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해 보도록 지시를 내렸을 것이고,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닷드내 일행의 팔레스틴 방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수
있다. 따라서 여기의 `총독 닷드내'는 `우쉬타니' 밑에서 일하던 고위
관리였던 것 같다. 더구나 여기의 `총독'(* , 파하트)은 구약성경 내에서
`장관'(왕상 20:24), `방백'(에 8:9; 9:3;단 3:2, 3) 등의 의미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스룹바벨의 직함과 동일하며(6:7; 학 1:1,14), 강 서편의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이 팔레스틴까지 직접 올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위와 같은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 - `스달보스내'는 `왕국을 구원하는'의 의미인
듯하다. 추측컨대 이 사람은 `닷드내'의 부하로 `서기관' 정도의 직책을
가진 사람 이었을 것이다(4:8). `그 동료' 또한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닷드내'의 부하들로 짐작된다.
나아와(* , 아타) - 이것은 단순히 `오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서,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는 공작을 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던
4:2의 `나아와'와는 다르다. 본절에 나오는 `닷드내'와 그 일행은 성전
재건에 대해서 사마리아 사람들과는달리 부정적 시각을 갖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사실 본절부터 6:13 까지를 자세히 살펴보더라도, 닷드내 등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증거는거의 발견되지
않는다(Williamson). 그러므로 `닷드내'가 예루살렘에 온 까닭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불평에 대해서 실상을 파악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봄이
무난하겠다(Fensham).
누가 너희를 명하여 - 이것은 `누가 너희에게 명령을 주었느냐' 혹은
`누가 너희에게 권위를 주었느냐'(Williamson, NIV)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
성곽(城郭)을 마치게 하였느냐 - 여기서 `성곽'(* , 우솨르나) 은
파피루스에 기록된 고대 아람어 문서에서는 많이 발견되지만 그 의미만은
분명히 밝혀지지않고 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목재로 된
구조물', 즉 `건축물을 장식하기 위해외부에 붙여지는 판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raeling, Tuland, Mowinckel). 바로이같은 주장을 근거로 해서
루돌프(Rudolph)는 `닷드내'등의 페르시아 관리들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성건 재건 작업이 재개된 이후 그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시점이었을것이라고 추정한다. 한편, `마치게 하였느냐'(레쉬클랄라)는
4:13의 `마치면'과 동일한 단어로 현재 진행의 의미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5:4
우리가...고하였으나(* , 아마르나) - 여기의 `1인칭 복수'는 본
문맥의흐름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사자의 실수에 따라
`3인칭 복수'인 `아마루'가 잘못 옮겨졌다고 본다(NIV, RSV). 이 경우,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면 `그래서 그들은 이런 식으로 물었다 : 이 건축에
종사하는 자의 이름들이 무엇이냐 ?'로 될것이다. 당시에 실제로 성전
재건을 주도하던 인물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였다. 그런데 닷드내 일행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상소 내웅에는 `세스바살'이라는 이름만 나온다(14,
16절). 따라서 우리는 이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동일인이라는 단서를
여기서도발견할 수 있다.
=====5:5
하나님이...돌아 보셨으므로 - 이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눈이 ~ 의
위에 있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유다 백성을 하나님이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셨음을가리킨다.
저희가...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 문자적으로 `그들이 그들을 중지시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것은 닷드내가 왕의 하달을 받을 때까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시 34:15).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 6-17절은 이러한 `닷드내'의 보고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건축사업이 합법적인 것인지의 여부를 알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답조(答詔)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 문자적으로는 `이에 관해 쓰여진
답서가 올 때까지'이다. 따라서 여기의 `기다렸더라'는 원문에는 없는
것으로서, 페르시아 관원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는 일을 유보했었던
사실을 강조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번역이다.
=====5:6
아바삭 사람 - 이 단어는 애굽 땅의 엘레판틴에서 발굴된 파피루스
문서에서 유사한 형태로서 발견되며, 그 의미는 `고하는 자'(Fensham) 혹은
`조사하는 자'(Meyer)등일 것이다. 따라서 여기의 `아바삭 사람'은 페르시아
관원들의 구체적 직함이지 어떤부족의 이름이 아니다(4:9 주석 참조).
=====5:7
그 글 -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전 건축이 합법적인 것인지의 여부를
질문하기 위한보고서를 가리킨다. 그런 이 원문에는 본 문구 뒤에 `그들이
보낸'이라는 말이 있다.
만안(萬安) 하옵소서 (쉘라마 콜라) - 문자적으로 `모든 평화' 란 뜻으로,
예컨대`하나님께서 당신의(왕의) 주권을 언제나 지켜주시길 기원합니다'와
같은 인사말의 약자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Joseph Blenkinsopp). 아무튼
이와 같은 평강을 기원하는 인사법은 고대 중근동 사회이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었다.
=====5:8
아시게(* , 예다) - 이것은 체험적이리만치 확실한 `인식' 혹은
`인지'를 뜻하는 동사이다(호 6:3 주제 강해, `야다(* )의 개념' 참조).
우리가...가서 -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다 사람들에 대한
불평과 관련하여관리로서의 공무 집행을 위한 것이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전 -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즉 (1) `지극히 크신'을 예루살렘 성전의 엄청난 규모를 형용하는 것으로
보고 `하나님의 지극히큰 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견해(Fensham). (2)
`지극히 크신'을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고 한글 개역처럼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Williamson,Kidner, Schultz) 등 두 가지이다. 그러나
첫째, 피정복국의 종교를 존중하는 것이 페르시아 정부의일관된 식민지
정책이었으며 둘째, 원문상 형용사 `지극히 크신'이 단어 `하나님' 바로
뒤에 있으며 셋째, 건축 중이던 성전이 그 규모에 있어서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3:12)는 점 등에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2)의 것이 보다 더
타당성이 있다.
전을 큰 돌로 세우며 - 여기의 `큰 돌'(* , 에벤 겔랄)에 대해서는
(1)`큰'이라는 형용사를 `구르다'의 의미가 있는 어근 `갈랄'(*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굴려야만 성전 재건 공사장으로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무거운
돌'이라고 하는견해(Grosheide, Davidson), (2) `큰'이라는 형용사를
아카디아어 `갈랄루'에서 파생된 `겔랄'(* )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고
원초적인 건축이 아닌, 재건에 유용한`조그만 돌' 혹은 `자갈'이라고 하는
견해(Fensham), (3) 형용사 `큰'을 어근 `갈랄'(* )에서 온 것으로 보고 또한
문맥적 상황을 감안하여 `잘 다어진 돌'이라고 하는 견해(Williamson)등
세가지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첫째, 옛 솔로몬성전을 목격했던
노인들이 실망을 할만큼 새 성전의 규모는 작았으며(3:12) 둘째, 비록
재건(再建)이기는 하지만 조그만 돌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셋째, 본 문구
뒤에 나오는`나무'가 완전히 가공된 재료임을 가리키는 등, 본 문맥상의
흐름에서 볼 때 위의 견해들 중 세 번째의 것이 가장 적절한 듯하다. 한편
`세우며'는 2절의 `건축하기를'과동일한 단어로서, 다만 `집을 짓다'를
의미하는 일반적 건축 용어이다.
벽에 나무를 얹고 - 이것은 대개의 경우 (1) 건축물의 내외벽에 미장용
판자를 붙이는 것(Rudolph). (2) 지진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할 목적으로
벽과 벽 중간 중간에나무를 대는 것(Thompson, Kidner, Schultz,
Williamson)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위의 것들 중 두 번째 견해가,
고대 중근동에서 위와 같은 건축 방식이 지극히 보편적 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보다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5:9
누가...명하여 - 이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5:10
두목(頭目)의 이름...물은즉 - 성전 재건의 합법성 여부를 확인키 위한
기본적 조처이다(4절).
=====5:11
천지의 하나님의 종 -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천지의
하나님'이라고 칭한 것은 페르시아 왕 다리오에게는 친근감 있게 들렸을
것이다(Fensham).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황실은 `하늘의 신' 또는 `하늘과
땅을 창조한 신'으로 여겨지는 `오르무즈드'(Ormuzd)를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칭호를 사용한 것은 타협적 의미이기 보다는 오혀려
도전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갈다. 12절을 통해 미루어 보더라도,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사건은 하나님의 무력(無力) 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도리어 불신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 행사로 말미암은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Kidner). 따라서 `천지의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사업은 다른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방해를 받거나
중지되서는 안됨을 강력히 시사해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Schultz).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 솔로몬 성전은 B.C. 966년에 착공되어(왕상
6:1) 7년 후인 B.C. 959년 가을에 완성되었었다(왕상 6:38). 따라서 제 2
성전이 건축되던 그 시기를 약 B.C. 518년 경으로 본다면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것은 그때부터 약 20여 년전이 되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큰 왕 -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솔로몬의 탁월한 업적 때문에
그에게 `큰'(* , 라브)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음이 분명하다(4:10).
완전히(* , 쉬클레) - 원문에는 본절의 맨 뒷부분에 놓여 있으며,
이는문자적으로 `마쳤다'의 뜻을 가진다.
=====5:12
우리 열조 - 문자적으로 `우리의 조상들'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
여기의 이 문구는 1:2에서 고레스가 여호와를 지칭키 위해서사용했던
`하늘의 신'과 동일하다. 다만 1:2의 것은 히브리어로 본절의 것은 아람어로
기록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같이 하나님을
지칭한 것은11절에서 `천지의 하나님'이라고 한 까닭과 동일하다(11절
주석참조).
격노케 하였으므로(* , 하르기주) - `흥분하다' 혹은 `요동하다'의
뜻이있는 동사 `레가즈'의 사역형으로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했던 사실을 가리킨다(왕하
24:20).
갈대아 사람 - `갈대아' 는 남부 아라비아 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황무한
지역에 살던 반(半) 유목민들 혹은 그 지역 그리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발흥했던 신 바벨론 제국(Neo-Babylonian Empire, B.C. 626-539)을 모두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서북부에 살았던 아람족과는
구별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 여기의 `바벨론'은 국가로서의 `갈대아'와
동격이다. 한편`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조를 세웠던
`나보폴라살'(B.C. 626-605)의 아들로서, 당시 왕위에 있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갈그미스에서의 애굽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쟁취함(B.C. 605)과
동시에 애굽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지중해 인근의 국가들에 대한지배권을
확보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B.C. 605년과 598년에 유다를 공격하여
자신의속국으로 만들었으며, B.C. 586년 에는(실제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은
B.C. 588년 부터시작되었다) 완전히 멸망시켜 버렸다. 한편 그 이름의 뜻은
`나부(바벨론의 신)가 계승권을 지키신다'(Dougals)이다.
손에 붙이시매 - 이것은 유다 왕국의 멸망이 철저히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결과였음을 분명히 시사해주는 말이다. 한편 `붙이시매'(* , 예하브)는
`주다'의 뜻을가진다.
이 전을 헐며 - 이에 대해서는 왕하 25:9과 대하 36:19을 참조하라.
백성을...바벨론으로 옮겼더니 - 바벨론왕은 네 번에 걸쳐서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잡아갔었다. 첫 번째로 B.C. 605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여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의 일부를 사로잡아
갔다(단 1:1-5). 두 번째 바벨론 유수는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을 배신한
것이 핑계가 되었으며, 이때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포함하여용사
7천명 및 기술자 1천명, 그리고 다수의 귀인들을 붙잡아 갔다(왕하
24:10-17).또한 세 번째 바벨론 유수 사건은 시드기야 왕의 배신 때문에
일어났으며 이때에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시키고 비천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백성들을 포로로 데려갔었다(왕하 25:8). 그리고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유다 총독 그다랴를 살해했을 때(B.C 582년) 또
한차례 유다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렘 52:30).
=====5:13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元年) - `고레스'를 `바벨론 왕'이라고 한 것은,
페르시아스스로가 자신들을 바벨론의 합법적이고, 정통적인 계승자로
자처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자연스럽다. 근래에 발견된 고레스의
조서는 고레스가 자신에 대해서 `나는세상의 왕, 위대한 왕, 합법적인 왕,
바벨론의 왕, 쉐르와 아카드의 왕, (세상의) 네가장자리의 왕
고레스이다'라고 언급했었음을 보여준다(Pritchard). 특별히 여기서유다
사람들이 고레스를 `바벨론 왕'이라고 언급한 까닭은, 성전 재건을 허락한
고레스를 느부갓네살과 직접 연결 지우려고 한 의도 때문이었다(Fensham).
이 같은 의도는 결국 느부갓네살이나 고레스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쓰였으므로성전의 파괴가 필연적이었듯이 성전의 재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강력히 암시하려는 궁극적 목표와 연결된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고 - 이것은 구체적으로 고레스 왕이 (1)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성전을 재건할수 있도록 팔레스틴으로 귀환을
허락한 것, (2) 성전 재건의비용에 쓸 수 있도륵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을주도록 한 것(1:4)을 가리킨다.
=====5:14
본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1:7, 8 주석을 참조하라.
=====5:15
본절에서는 성전 기명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시 반환된 사실에 대해서
다뤄지고있다. 이는 유다 민족의 성전 기명이 다른 민족의 신당에
보관되는 것은 유다 민족에게 있어서 엄청난 수치였으나, 이제 그 종교적
수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까닭에 본절에서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1:7 주석 참조). 실로 이 같은 종교적 수치의모면은 다른 나라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는 정치적 수치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본처(* , 아트레) - 문자적으로 `그것의 위치'를 의미하는 본
단어는구체적으로는 솔로몬 성전이 위치했던 바로 그 장소를 가리킨다.
아울러 이는 성소의 재건이 반드시 원래 세워졌던 장소에서
이뤄졌던 중근동의 풍습을 염두에 둔 말이다(Gall-ing).
=====5:16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 여기서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의방해 행위로 인한 재건 사업의 중지(4:1-5)에 대해서
언급지 아니한 까닭은, 여기서는다만 그 당시 진행 중이던 성전 재건
사업이 고레스의 허락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그래서 그 허락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공사는 합법적임을 부각시킬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때' 는 `세스바살'이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성전
지대(址臺)를 놓는등 건축 사업을 시작한 때를 말한다. 또한 `건축하여
오다'(* , 미트베네)는 `건축하다'의 의미를 가진 동사 `베나'(* )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완료적 진행형, 즉 `건축해 오고 있는
중이다'로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6여년이라는 상당한
기간 동안 성전 재건은 중지, 방치된 상태였다.
=====5:17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 문자적으로는 `왕에게 좋으시거든' 의 뜻이다.
즉, `왕이판단컨대 좋게 느껴지거든'의 의미(7:18; 에 1:19)를 지닌다.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 `국고' (* , 베이트 긴자야)는
`모으다', `덮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게나즈'(* )에서 파생된 단어와 `집'의 의미를 갖는 단어가 합해진 말이다.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문서 보관소'
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페르시아 왕, 특히 고레스의 조서 사본이
바벨론에 있던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던 까닭은, 페르시아 왕들이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운 것과
결코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고레스가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 태도를
취했으며 그리고 다른 종교의 파괴된 신전들을 다시 짓도록 명령했던
사실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토판이 근래에 발견된 곳도 옛
바벨론의고토(故土) 라삽(Rassam)이었다(Fensham).
이 일에 대하여 - 이것은 다리오 왕이 성전 재건 공사를 계속 진행시킬 것인지의 여부의 문제를 가리킨다.
기쁘신 뜻(* , 레아우트) - `생각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레아'(*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결정' 혹은 `의향'등의 뜻을 갖는다.
보이소서(* , 이쉴라흐) - `문서 혹은 사람을 보내다' 의 의미를 갖는 동사 `쉘라흐'(* )의 사역형 미완료 시제로 결국 이것은 닷드내가 자신의 직무와관련하여 자신이 보낸 보고서에 대한 왕의 답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불만을 왕의 답신을 통해서 잠잠케 하려는 닷드내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호의적 태도가 엿보인다.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는 과정을 그린 대목(3-6장)에서, 지금까지는 성전 재건을
위해 기초 작업을 한 장면(3장)과 뜻하지 않은 방해자들의 훼방으로 인해 재건 사역이
중단된 사실(4장)을 언급했다. 이에 이어지는 장면은 성전 재건 공사가 다시 재개 되
어 완공된 후 하나님께 봉헌하고 유월절을 지키는 대목이다. 그러한 내요의 진행 과정
에서 중단되었던 성전 재건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증거하는 본장의 성전 왕공 기
사(5:1-6:18)의 서막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담고 있는 본장은
(1)선지자의 출현이라는 상서로운 조짐(1,2절), (2)뜻하지 않은 사마리아 총독의 호의
(3-10, 18절), 그리고 백성들의 현명한 답변이라는 긍정적 조짐(11-16절)으로 구성되
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앞장에서 언급되었던 성전 재건에 대한 위기의 분위기를
걷어내고 본장을 통해 재건 공사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를 나타낸다.
이러한 본장에는 본서의 다른 장들과는 달리 특별히 성전 재건에 관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본서 저자즌 이 같은 사실을 대체적으로 세 가지
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바로 전술(前述)되었던 내용, 즉 하나님께서 성전
재건공사를 촉구하시 위해 당신의 뜻과 의지를 선포할 선지자들을 보내셨다는 사실이
다(1절). 그리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장로들을 돌아 보셔서 재건 공사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것이다(5절). 또한 이와 더불어 세 번째로는 재건 현장을
방문한 페르시아의 총독 일행에 함께하셔서 그들이 성전 재건 사역에 대해 호의적인
인상을 갖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리오 1세(B.C. 522-485)에게 상소를 올릴
때 긍정적 측면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게끔 하였던 것이다(17절). 본서 저자는 이 같은
사실을 암시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본장을 통해 강조함으로 성전 재건 공사가 하나
님의 섭리하에서 다시 시작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성전 재건 공사가 성전의 지대를 놓은 직후, 즉 B.C. 537년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면, 재건 공사가 중단된 기간은 약 16년간으로 볼 수 있다(4:24). 이같은 성전 공사가
오랫동안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사마라아 사람들의 페르시아
정부에 대한 로비 활동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성전 공사가 중단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일 뿐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는 내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공사가 오랫동안 중단된 또 다른
이유 중에는 백성들의 영적 나태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게서는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심으로 성전 재건 공사를 재개할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한편, 본서 저자는 앞 장에서 성전 재건 사업에 대한 역사성의 진위 여부를 객관적
으로 증명하기 위해 고레스의 조서 내용을 요락(1:2-4)힘과 더불어 다닥사스 왕에게
올릴 상소의 초본을 첨가해 방해 사실의 역사성을 확증했었다(4:11-16). 이 뿐만 아니
라 6:2-5에서도 고레스 1세가 내린 조서의 내용을 언급해 본서 내용의 역사성과 진실
성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본장에서도 본서 저자는 다리오 1세(B.C. 522-485)에게 보
낸 상소의 초본을 기록해 본장 내용의 사실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본장에서 (1)하나님께서는 약한 상황까지도 하늘 나라 건설
에 이용하시며(롬 8:28; 빌 1:12), (2)어느 한 시점에서 볼 때 실패한 것 같으나 궁극
적으로 신자들에게는 실패란 존재하지 않음(창 50:20)을 깨닫게 된다.
1. 선지자의 출현(5:1-2)
본장에 나타난 세 가지 상서로운 조짐들 가운데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본문은 성
전 재건 공사를 위해 선지자들이 출현하는 대목이다. 즉, 본문은 성전 재건 공사의 재
개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심으로 공사의 재개
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본문은 (1)학개와 스가랴
가 출현해 예언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구절(1절)과, (2)그 예언에 감동을 받아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을 기술한 구절(2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본문을
통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과 충고로 공사가 시작되었음을 간단히 요약해 밝히
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상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항상 어려운 시기에 출현했었다. 그래서 그
들은 백성들을 질책하거나 권면함으로써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위기의 상황으로부터
구출하곤 하였다. 물론 선지자의 출현으로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이 항상 해소되지만은
않았다. 심지어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는 자신의 활동 기간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벧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모습을 목도해야만 했다(렘 39:1-9). 그럼에도 불구
하고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신실하게 선
포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역은 성공적인 것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의지를 선포하는
선지자의 출현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예견케 해주는 상서로운
조짐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개와 스가랴의 출현은 매우 뜻 깊은 것이 아닐 수 없
다.
학개와 스가랴는 그 당시 성전 건축이 지지 부진한 이유를 분명히 간파하고 있었
다. 그들은 그 이유가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라기 보다는 백성들의 신앙적 나태 때문
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즈, 그 당시에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 공작을 핑
계로 하여, 하나님의 사업보다는 자신드리의 개인적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그 같은 태도가 당신의 뜻과 상충됨을, 기근과 흉년이
라는 현상을 통해 알리셨다(학 1:10,11). 하지만 백성들은 영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
의 그러한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 당시 백성들은 자신들의 성전 건축보다 개인적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러한 인간적 판단에 따라, 성전
건축의 중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의 전이 신속히 완공되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간과
해 버리고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당시 백성들의 영적 무지를 그대로 놔둘 경
우, 백성들 스스로에게 심각한 재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
를 갖지 못함으로 더욱 깊은 영적인 침체에 빠져 버리게 되며, 또한 중앙 성소를 갖지
못함으로 그들의 신앙적 통일성도 깨져 버리고 말 것이 틀림없었다.
이 같은 백성들에게 선지자 두 사람의 출현은 그야말로 시의(時宜) 적절한 것이었
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성전 건축의 당위성을 알리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백성들은 그 말씀에 감동되어 자신들의 신앙적 나태를 회개하고 신앙의 깊
은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한편, 이 같은 예언의 말씀은 다니엘이 그의 마지막 경고를 선포하던 때(단 10:1),
즉 '고레스 2세 3년부터'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던 예언의 선포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때 학개 선지자가 예언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격려하고 경성시킨
것은 적어도 3주간 지속된 듯하다(학 1:15).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때 영적인 깨달음을
얻어 신앙의 열심을 되찾아 일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이 같은 본 단락에서 (1)어떤 상황에서 환경의 조건보다는 일의 당위
성이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보다 중요한 요소이며(삼상 24:4-7; 행 21:10-14), (2)신
자들이 신앙적 침체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어서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은 필수적임(행
21:28-31)을 깨닫게 된다.
*성전 건축 재개 당시 페르시아의 정치 형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들의 권
면을 쉽사리 받아들여서 그동안 중단됐던 성전 공사를 재개한 데는 그만한 충분한 이
유가 있었다. 즉,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 건축을 재개해도 될 것으
로 판단하게 할 만한 어떤 상황적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 이유는
그 당시 페르시아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대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고레스 2세(B.C. 539-529)가 죽자 그의 왕권은 그의 아
들인 캄비세스 2세에게 양위도었다. 그런데 그 캄비세스는 자신의 짧은 재위 기간 동
안 애굽 정복에 주력하다가 페르시아로의 구환 중 죽고 말았다. 그때 페르시아의 왕좌
(王座)가 빈틈을 타서, 가우마타라는 인물이 캄비세스 2세의 동생 수메르디스로 자처
하며 왕권을 찬탈하였다. 이때 부터 페르시아는 내란에 버금가는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
이 같은 혼란 상태를 부분적으로나마 평정한 사람이 바로 다리오 1세였다. 고레스
2세의 칠촌 조카이며(4장 강해, '페르시아 왕들' 참조), 또한 사위이기도 한 다리오는
가우마타를 처단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고레스 가문의 먼 인척이며, 사위라는 점에
서 어느 정도의 정통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는 그것을 인
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같다. 왜냐하면 이 일 이후에 반란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리오 집권 2년 동안은 그야말로 현재 왕이 언제 살해도고, 다시 어떤 사람이
왕위에 오를지를 알 수 없는 혼미 정국 그 자체였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페르시아
정부는 유다 땅과 같은 먼 곳의 정복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선지자들의 권면을 받아들여서 성전 재건 사업을 다시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이 같은 정치적 환경이 주어 졌다고 하더라도, 선지자
들의 예언적 권면이 없었을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지 못했
을 것이 뻔하다. 그러기에 위리는, 세상 역사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에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셨고, 여기에 더하여 시기 적절하게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백
성들을 신안의 잠에서 깨우셨다고 결론져야만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같이 안
하셨다면 성전 재건은 중단된 채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이스
라엘 백성들은 그 자신들의 종교적 일체성을 상실하고 말았을 것이다.
2. 사마리아 총독의 호의(5:3-10, 17)
앞 단락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출현한 사실을 성전 재건의 성공을 예견하게 해
주는 상서로운 조짐으로 기록한 보서 저자는, 여기서 사마리아 총독이 이스라엘 백성
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사실을 또 다른 상서로운 조짐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사마리아 총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 공사의 합법성
여부를 묻는 모습(3절), (2)사마리아 총독이 페르시아 정부에 성전 건축의 합법성 여
부를 조회하고 거기에 대한 답신이 올 때까지 성전 건축을 방임하는 모습(4-10, 17)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대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성전 재건 사업에 동참케 해달라는 요청을 묵살당한(4:1-3) 그들로
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코 호의적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페르시아
정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을 꾀한다고 참소하여 그 공사를 중단시키게끔 하였다.
그러나 본 단락에서는 사마리아 총독의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결코 악의
적이지 않은 듯할. 이러한 사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해서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올린 글과 본문에 언급된 상소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즉,
이전에 사마리아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보낸 상소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편견과 적의가
가득찬 내용을 담고 있었다(4:12-16). 그러나 본문에 언급된 조서에는 이스라엘 사람
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편파적인 감정을 배제하
려 했고 욕설과 편견도 없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총독 일행이 올린 글 가운데는 유다
사람들의 말이 약 반 이상 할애되었다.
그런데 오앙에게 올린 총독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주요 항목들이 암
시적으로 나타나 있다. 즉, (1)총독과 자신의 일행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불평과 원망
에 대한 진상 조사를 위해 사명을 수행하였다. (2)자신들이 보기에는 성전 재건 사업
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9절), (3)자신들은 공사 현장에
가서 사업의 인가 통지서와 건축자들의 명단을 요구하였다(10절), (4)왕은 성전 재건
공사에 대해 고레스의 조서를 살피고 객관적으로 확증을 내려 왕 자신의 의지를 결정
하여 주기를 원한다(17절). 이 같은 항목들을 보서 저자는 본문에서 언급해 성전 재건
에 대한 경과 사항과 당시 초독과 왕이 담당했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총독과 그 일행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전재건 사업을 위해
역사하시고 사용하셨는지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본 단락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을 목
도하게 된다. 이 같은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있었기에 성전 재건의 성공적인 완료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사마리아 총독의 호의는 성전 건축의 성
공적 마무리를 확신케 해주는 상서로운 조짐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에서 (1)하나님께서는 수고하며 애쓰는 자들에게 축복을 주
시며(창 26:12; 살후 3:8), (2)세상의 모든 것, 특히 권세자들까지도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도구들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롬 13:3,4)을 깨닫게 된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명한 답변(5:11-16)
앞단락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 총독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
해서 악의적 태도를 갖지 않았음을 말한 본서 저자가 여기서는 백성들이 사마리아 총
독의 질문에 대해서 현명하게 대답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총독에게는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1)성
전과 관계된 역사을 간략히 언급한 전반부(11절), (2)바벧론으로 잡혀갔던 치욕적인
과거를 설명하는 중반부(12절), 그리고 (3)성전 재건을 위해 취해졌던 조처들을 나열
한 후반부(13-16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본문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신 하
나님으 섭리에 대해 고백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답변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들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했다는
것이다(11절) : 그들은 자신들을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라
고 대답했다(빌 3:20). 그리고 이와 더불어 '다리오 왕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
(11절)이라고 표현함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분명히 고백했다. 사실 모든 인생은 피조물
로서 하나님의 종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별히 택
하신 자들이었다(사 1:2-4). 그러기에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더불어
자신들의 신앙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시 147;6; 밸전 5:6).
둘째, 자신들이 멸망당한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12절) : 그들은
자신들의 멸망이 죄 때문이었음을 시인하고 고백하고 있다. 그것도 특별히 자신들의
그러한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격노하셔서 심판을 당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참신앙인이 아니면 갖기 어려운 것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은 패망 가운데서도 하
나님을 생각하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 같은 신앙적 측면 이외에, 그들의 답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이 있
다. 즉 셋째로 그것은, 그들이 역사적 진실을 가감없이 그대로 밝혔다는 점이다. 그렇
게 함으로써, 페르시아 정부에 거짓 보고를 하지 않게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
엘 백성들은 그 현명한 대답으로 인하여 성전 재건 공사를 중단당하지 않을 수 있었
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저자가 여기서 보여 주는 백성들의 답변 모습은 그야말로 성전
재건 공사의 성공을 확신케 해주는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본 단락에서 (1)신자들은 항상 세상에 대해서 자신의 신앙을 당당하게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마 10:32,33; 눅 12:8,9; 벧전 3:15), (2)우리의 신앙 고백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와 계시,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섭리를 드러내는 것이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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