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에스라 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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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앞 장에서는 성전 재건 작업이 시작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성전은
약20년 후다리오왕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공된다 (6:15). 이제 본장은
성전 공사가 지연될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 `유다와 베냐민'은 분명히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그런데도 저자가 굳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다와 베냐민'이라고 지칭한 까닭은, (1) 그 지파 사람들이
귀환자의 주종을 이뤘으며, (2) 레위 지파 사람들은 보통 인구 계산할 때도
제외되는 등 특례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상례였으며, (3) 귀환민들이 주로
거했던 곳이 원래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에게 기업으로주어졌던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대적'(* , 차레이)은 `고민하게 하다'혹은 `포위
공격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차라르'(*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해를 끼칠
목적으로 접근해오는 `원수'를 가리킨다(민 33:55; 시 129:1; 사 11:13;63:18; 렘 30:16; 나 1:2). 이들은 구체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리킨다. 원래
팔레스틴 땅에는 이런 민족이 살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북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B.C. 722년) 그 백성들을 앗수르
땅으로 끌고 가는 대신 `바벨론', `구다', `아와', 그리고 `하맛' 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옮겨옴으로써 생겨난 민족이었다(왕하 17:23, 24).
    즉, 사마리아 사람은 타지역에서 옮겨 온 사람과 북국 열 지파
사람들 중 끌려가지 아니한 사람 사이의 혼혈족이었다.    이들은 이방의
제신(諸神)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호와를 `땅의 신'으로서
섬겼다(왕하 17:29-33).
 사로 잡혔던 자의 자손 -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4:2
 스룹바벨과 족장들 - 이스라엘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영도하던
지도자들이었을(2:2)뿐만 아니라 성전 재건 사업의 주체 세력들이었다(3:2).
 나아와(*     , 나가쉬) - 원래(적으로서) `공격하다', (종교적으로)
`경배하다'또는 (어떤 목적으로) `가까이 오다'라는 의미로서 특별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행동을 가리킨다(창 18:23; 민 32:16;
삼상 9:18; 왕상 20:28).
 우리로...함께 건축하게 하라 -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요구가 마치 그들이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진실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당시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위한 제단도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있었다(요 4:20).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예배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새로운 세력에 대한 경계심의    발로에서 접근해왔다고 이해된다.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사마리아에는 앗수르의 식민 정책에 따라이주해
온 이방인들로 말미암아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이 상실되고 말았다(왕하
17:24-33). 따라서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졌던 그들에게 있어 여호와란
유일신이 아니라 여러 신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Edwin Yamauchi).
 우리도...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 여기서 `너희' 라는 말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다신교적 혼합주의 신앙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편    
`구하노라'(* ,다라쉬)는 `찾다', `물다'등의 의미로서, 종교 혹은 섬김의
대상으로 삼기 위하여 어떤 초월적 존재를 신뢰하는 것을 가리킨다(대상
16:11; 대하 30:19).
 앗수르 왕 에살핫돈 - 북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으로서(왕하
17:24), B.C.681-669년간 재위(在位)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 여기의 `하나님께'(* ,로) 는 문자적으로
`그분께'의 의미이며, `제사를 드리노라'(* , 자바흐)는 `희생 제사를
드리다'의 의미로서, 모든 방식과 형태를 망라한 제사 행위를 가리키는
보편적 용어이다.

=====4:3
 너희는...상관이 없느니라 -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하는 데 있어서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역(同役)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강조하는 말이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은 (1) 참된
여호와 신앙과 무관한    혼합주의적 종교를 신봉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종교적 연관성이 있을 수 없었으며, (2) 고레스로부터 성전
재건 사업에 동참하라는 조서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연관성이
없었으며, (3) 이방인 내지는 혼혈족이었다는 점에서 혈통적 연관성도
없었다.
 바사 왕 고레스가...명하신 대로 - `고레스'의 조서는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토로 자유롭게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며(1:2, 3). (2)
바벨론 백성들은 성전재건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을 지원하라는(1:4)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홀로 건축하리라 - 여러 가지 정황에서 볼 때 이 같은
응대(應待)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은 결코 국수주의(國粹主義)
혹은 분리주의적 사상에 기초한 결론이 아니라 다만 신앙적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여호와를 향한 열심(민 25:11; 왕하 19:10, 14)에 근거한
태도였다.

=====4:4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 `유다 백성'은 귀환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본서의 저자는 유다 자손이 귀환자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을`유다 백성'으로 표현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손'은 여기서 `능력' 및 `일을 추진하려는 `의욕'등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6:22; 왕상 18:46; 대상 18:3; 29:12; 렘 38:4).그리고 `약하게
하여'(* ,메라핌)는 원래 `감하다', `나태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라파'(*
)의 강의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의욕을 상실토록 하며 무기력 상태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서 교활한 방법을 동원하여 온갖 방해 행위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느 6:9; 렘 49:24; 50:43; 습 3;16).
 방해하되(*         , 메바라힘) - 이것은 `놀라다', `두려워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바할'(* )의 강의형이다. 따라서 이는 여러 가지 방법의
훼방을 통하여상대를 심리적으로 공포 혹은 불안 가운데로 떨어뜨리는
것을 가리킨다(창 45:3; 대하32:18; 시 83:15; 단 11:44).

=====4:5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 이는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던 기간이다.    성전 재건이 중단된 시점은 정확히 즉위
제 4년 (B.C. 536년) 이었을것이다. 본서에 그런 기록이 없음에도 이같이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다니엘서의 기록을 통해서이다.    즉,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어떤 소식으로 인하여 매우 슬퍼 했었는데(단 10:2). 그것은
틀림없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다는 소식이었을 것이며,
그때가 바로 고레스 왕 3년이었다(단 10:1). 한편 `다리오가 즉위할 때' 는
B.C.522 년이다(본장 4-16절 강해, `페르시아의 왕들' 참조). 따라서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된 기간은 약 16년 간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의
`다리오'는 `고레스'(B.C. 539-529), `캄비세스'(B.C. 523-522)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의 왕이 된 인물이다. 그는 캄비세스를 죽이고 페르시아 왕위를
찬탈한 `수메르디스' 와 싸워 이김으로써 왕에 오를수 있었다.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수메르디스'에 의해 살해 당했던 캄비세스의
휘하 장수이면서도, 아울러 고레스 왕(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준)의 부친 고레스 1세의 형제인 `아리야'의 증손이기 때문이었다.
본문의 다리오 1세는 즉위하자 조서를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 재건을 재개할수 있도록 하였다(6:1-12)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 `의사'(* , 요아침) 는 `조언하다' 및
`상담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야아츠'(* )에서 파생된 단어이며 여기서는
페르시아 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가리킨다. 한편 `뇌물'을 주는 행동은
공의(公義)를 어그러지게 하는 등 매우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성경에서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출 23:8; 삼상 12:3; 잠 17:23). 그리고
`뇌물을 주어'(* , 소크림)는`삯주고 빌다' 혹은 `고용하다'의 의미인
`사카르'(* )에서 파생된 분사형 단어(Davidson)로서, 부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특정 인물에게 돈을 주어 자신의 편으로 삼는 것을 가리킨다(창
30:16; 신 23:4; 삿 9:4; 느 6:12).
 경영을 저희(沮戱)하였으며 - 여기의 `경영'(* , 아차탐)은 `모의하다' 혹은
`계획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아츠'(*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페르시아의공직(公職) `의사' 와 어근이 동일하다. 본서의 저자는 본절에서
이 갈은 `말의 유희'(word play)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된 것이 페르시아 의사들의 부정적 영향력에 기인한 바 크다는
사실을 암시하려는 듯하다. 한편 `저희 하였으며'(* , 레하페르)는 `녹이다',
`폐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파라르'(* )의 사역형으로서 성전 재건 계획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집요한 공작에 의하여수포로 돌아 갔음을 시사한다.

=====4:6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고소(告訴) 하니라 - `아하수에로' 는 에스더를
자신의왕비로 삼았던 그 왕임이 분명하다(에 1:1). 그런데 그의 재위 기간이
B.C. 485 년부터 464년까지였다는 점에서, B.C. 516년에 끝난 성전
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 따라서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소했다는 것이, 성전 건축에 대한훼방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힘들다. 본서의 저자가 이 같은 고소 사실을 성전 건축과관련된 문맥에서
언급한 까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방 세력들의 훼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한편, `고소하니라'(* ,
시트나)는 `참소', `비방'의 의미로서 `대적하다'의 의미를 갖는 `사탄'(*
)이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되었다. 바로 이 동사에서 `대적하는 자' 혹은
`참소하는 자' 의 뜻이있는 `사단'이 나왔다(욥 1:6).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소한내용이 분명히 밝혀져 있지는 않다. 추측컨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 정부에 대해서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내용의 고소를 하였을 것이다.

=====4:7
 본절로 부터 23절까지에는 사마리아인들의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또다른 고소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자는
사마리아인들의 사악성과 나아가 하나님의 사업을 훼방하는 사단의 끈질긴
방해 공작을 의도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한편본절부터 6장 18절까지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기륵되어 있다. 이외에도 본서에서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은 7:12-26이다.
 아닥사스다 때 - `아닥사스다'는 `아하수에로'의 아들로서 B.C. 464년부터
424년까지 재위 했었다. 따라서 금번의 고소도 B.C. 516년에 바쳐진 성전
건축 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혀려 3차 귀환 후 느헤미야에 의해 주도
되었던 성벽 재건에 대한 방해와 연관되는 것이었다(느 4:1 이하).
 비술람...미드르닷...다브엘...동료들 - `비슬람'(* )은 `평화의 아들' 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이 단어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다. (1)`...에 따라(의거하여)'라는 뜻의 히브리어 `비셀롬'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보며, 따라서 다브엘이 미드르닷의 의견과 일치하여 글을
올렸다고 이해한다. (2) 이 말을 `예루살렘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뜻인
`비데바르 예루살라임'의 약자로 이해한다. (3) 개역 성경처럼 하나의
인명(人名)으로 본다.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중 (3)의견해를 취함이
무난할 것 같다(Fensham).    한편 `미르닷'은 `신(Mithra, 미드라)의 선물'이라는
뜻이 있는 페르시아식 이름이며 이와 동일한 이름의 또다른 소유자는
세스바살에게 기명을 인계했던 `고지기'였다(1:8). 또한 `다브엘'은 `하나님은 선하시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식 이름이다.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 `아람어로 기록
되었는데 이는 아람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로 번역되어야 가장 무난할
것이다. 즉, 아람어로 기록된 이 문서가 처음에는 다른 언어로 쓴 것을
다시 아람어로 번역된 것임을 가리킨다.이처럼 문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까닭은, 비록 정치.군사적으로는 페르시아가 중근동을제패했으나 국제적
공용어로는 여전히 아람어가 사용됐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치 비록
로마가 세계를 정복했지만 헬라어가 그 당시의 공용어였던 것과 같다.

=====4: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고소한 그 글 - `그 글'에 정관사가 있다는
사실로볼 때, 이는 7절에 언급된 아람어 문서와 동일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훼방하려던 실질적 주동자들은 7절에 언급된
사마리아 사람들이며, 여기의 페르시아 관리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범자들 혹은 대리자들로 이해될 수 있다. `방백'(* , 헤엘 테엠)은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서 임명된 지방 장관 혹은총독을 뜻한다(Davidson).
한편 `르훔'은 `자비로운 자'의 의미를 가지며, 바벨론 제신(諸神) 중에서
발견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서기관'은, 왕이 각 지방의 소식을 직접
보고 받기 위해서 파견한 왕의 직속 부하였다(Herodotus).    `심새'는
`태양의아들'을 의미한다.
 고소한(*    , 알) - 이것은 `~을 대항하여'(against)의 의미롤 갖는
전치사이다.따라서 6절의 `고소하니라' 와는 전혀 다른 단어이다.

=====4:9
 그 동료 디나 사람 - 여기의 `동료'(쉐아르 케나와트혼)는 문자적으로
`친구들의나머지' 뜻을 갖는다. 한편 `디나 사람'(* ,디나에이)은 사람이나
지역 이름이 아니라 `사사' 혹은 `재판관'의 뜻을 갖는 관직이다(NIV,
Williamson, Fensham).`디나 사람'이 복수라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은
방백이나 서기관 밑에서 일하던 하위직이었던 것 같다. 몇몇 학자들은
이들이 국방(國防)업무에 종사했을 것 이라고 추정한다(Fensham, Frye).
 아바삿 사람(*     , 아파르사트카예) - 이것는 일반적 범주의
`관리'를뜻하는 페르시아 계통의 단어이다. 따라서 이것도 위의 `디나
사람'처럼 인명이나 지명이 아니다.
 다블래 사람 - 이들에 대해서는 (1) `트리폴리(리비아의 수도)에서
온사람들'의 의미라는 설(設)(Galling), (2) `영사'(領使), `집정관' 혹은 `감독'을
뜻한다는 설(Bowman) 등이 있다. 그러나 고대 앗수르는 포로를 끌어올
만큼 북부 아프리카를 정복한일이 없으며 또한 트리폴리는 헬라식
지명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볼 때, 위의 두 견해중 나중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아바새 사람 - 이들에 대해서도 (1) `신복'(chief officers)이라는 주장(NEB),
(2)`페르시아 사람'이라는 주장(RSV, Schaltz, Rawlinson), (3) `유프라테스 강
동쪽지역으로부터 옮겨진 사람들'이라는 주장(IDB)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1) 의 견해는 그근거가 희박하며, (2)의 견해는 본 단어의 첫 글자 `알렙'(*
)을 탈락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고,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아렉 사람 - 이들은 분명히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에렉'에서 옮겨온
자들이다.
 바벨론 사람 - 앗수르는 한 때 중근동 전역(全域)을 정복 했었다.
바벨론이 나중에는 강국으로 변하여 오히려 앗수르를 정복했지만, 그들도
한 때는 앗수르의 지배하에 있었다. 바로 이때 그 백성들의 일부도
팔레스틴으로 강제로 이주 되어 왔다.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 - 여기서 `데해 사람'(* ,
데하웨)은인명이나 지명이 아니며 다만 히브리어의 `아쉐르'(* )에 해당되는
관계대명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이 문구 `수산 사람 곧 엘람
사람'으로 번역됨이 무난하다(LXX, NIV, Williamson, Meyer). 이러한 견해는
`수산' (에 1:2) 이 엘람 지역에서가장 중요한 도시였다는 사실로써도
명백하게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4:10
 존귀한 오스납발 - `존귀한'은 원어상 `위대하며 혁혁한 무공(無功)이
있는' 의 의미이다. 한편, `오스납발' 은 `앗수르가 추적하다'의
의미이다(Rawlinson). 이 이름은 `에살핫돈'(2절)의 별칭이 아니라 앗수르의
후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앗수르바니팔'(B.C. 669-626)이었다. 그에게
`존귀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여진 까닭은 그의 탁월한 군사.정치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페르시아
왕에게고소하는 데 동조한 마지막 부류들은 바로 바로 이 왕에 의해서
옮겨진 자들 이었다.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1) 타민족들의
사바리아 지역으로의 강제 이주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뤄졌으며, (2)
피정복민들의 강제 이주는 앗수르 왕들에 의해서시행되어졌던 일관된 통치
정책이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Fensham).
 사마리아 성과 강 서편 다른 땅 - 여기서 `강'은 문자적으로 `그 강'이다.
따라서이것은 강이 아닌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서편'(* ,아바르)은 `건너편'으로 봄이 정확하다. 그 당시의 `페르시아 및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강 건너편'을 팔레스틴 및 페니키아,곧 두로와
시돈 지방에 대한 총칭으로 이해하였다(왕상 4:24). 특히 페르시아 사람들은
그 지역을 `아두라'(Athura)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사마리아 성'은
팔레스틴의 북부에 있던 한 중심 도시만을 가리킨다.이 도시는 예루살렘
븍쪽 약 64Km, 지중해 연안에서 약 40Km 떨어진 높은 구릉
지대에위치했었다. 또한 `다른 땅'은 팔레스틴 북부, 즉 옛 북국 이스라엘이
위치했었던 지역 중 사마리아 성읍을 제외한 전체를 가리킨다.

=====4:11
 초본(*     , 파르시겐) - `사본'(寫本)의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 아람어에
기원을 둔 페르시아어이다. 12절의 고소문(告訴文)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고소내용의 전체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콰르쉐겐'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초본'(抄本)으로 번역됨이 타당한
것이다.
 강 서편에 있는 신복 - `강 서편'에 대해서는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신복'(*     , 아브다이크)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종'이란 뜻이다.
`종'이라는 표현은왕과 신하의 관계에서, 신하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부를 때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이다(삼하 14:22; 19:14; 왕상 1:26).

=====4:12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 - 여기서 `왕에게서 올라온'은 (1) 다만
지리적 이동을주안점으로 보고 고레스가 B.C. 537년에 유다 백성을
해방시켜 팔레스틴으로 돌려보냈던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Keil, Rudolph),
(2) 시대적 언급을 강조한 것으로 보고아닥사스다 왕 시절에 일단의 유다
사람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것이라는 견해(W-illiamson, Kidner,
Fensham, Bright)등으로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나 본절에서 아닥사스다가
유다 사람들의 귀환 사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나중의 해석이 보다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한편 `올라온'(* , 셀라크)은
`나오다'혹은 `나아가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 단어 (단 2:29; 7:3, 8,
20)이다. 그리고 `유다 사람'은 반드시 유다 지파의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4절).
 우리의 곳 예루살렘 - 이것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 했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여기의
`우리의 곳'(* , 알레이나)은 다만 `우리에게'(to us)의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더구나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고소할 재료로 삼고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틴 땅으로 이주해
온 사실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성벽을 재건하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는,`우리의 곳'을
원문대로 `우리에게'로 고쳐서 `왕에게서' 와 `올라온' 사이에 놓아야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팔레스틴 지역으로'의 의미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이다.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 -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이렇게 표현한
까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이나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예 일단
정복됐었지만 번번히 그들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왕하 18:7; 24:1,10,20;대하 33:111) `패역하고'(* ,
마라드타)는 `반란을 일으키다'의 의미를 갖는동사 `마라드'(* )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당시 각지의 반란으로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페르시아 정부를 자극시키려고 한 것이다(Fensham).
 건축하는데...지대를 수축하고 - 여기의 `건축하는데'(* ,바나인)는
`건축하다' 혹은 `수리하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 동사 `베나'(* )의
분사형이므로 현재 시제로 번역하여 `건축을 시작하고 있는 중인데'로 함이
더 좋을 것이다(Williams-on, NIV). 그리고 `지대를 수축하고' 중 `지대'(* ,
에솨야)는 아카디아어의`우쑤'와 동족어로서 `낮은 부분' 혹은 `기초'의 뜻을
갖는다. 그리고 `수축하고'(*     , 야히투)는 미완료형 동사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1) `파다'의 뜻이 있는 `헤타트'(*
)라는 견해(Fensham). (2) `수리하다'의 뜻이 있는 `후트'(* )라는
견해(Davidson, Schults)등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재건
작업이 바벨론 땅에서 귀환한지 최소한 80년이 지났음에도불구하고 제대로
착수되지 못했음을 주목해 본다면,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가극심했음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서도 기초를수리하는 정도가 아닌 새로 기초를 놓아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성이있는 견해일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지대를 수축하고'는 `기초를
파고 있는 중이었다'로 번역될 수 있다.
 성곽을 건축하오니 - 여기의 `성곽'도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B.C 586년에
파괴되었었다(왕하 25:10). 이 성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보호를 위해서 매우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이제 예루살렘에 거민들이 다시 살게된 이상,
그곳에는 성곽의 재건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한편 `건축 하오니'(* ,
오사크릴루)는 `왕성하다' 혹은`마치다'의 의미를 갖는 `켈랄'(* )의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본문구는 `성곽을완성하고 있는 중이다'로
번역해야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건축을 완성해 가고 있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告訴)는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훨씬
나중인 느헤미야 당시에도 성곽은 여전히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느
2:13).

=====4:13
 조공(*     , 민다) - 이것은 바빌로니아어 `만다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고정적로 매년 제국의 국고에 들어갔던, 돈으로 내는 일반적 세금을
가리킨다(Fensham).
 잡세(* , 벨로) - 임대 소득세를 가리키나(Driver) 인두세(人頭稅)로 보는
견해도 있다(Brockington).
 부세(* , 할라크) - 토지 소유자에에게 부과됐던 조세의 의무 전반을
가리킨다.
 바치지 아니하리니 - 국가 재정이 세금 징수를 통해서 확보됐다는
점에서 볼 때,세금 납부의 거부는 당연히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서 반역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없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바로 이점을 노려서,
페르시아 정부로 하여금 예루살렘의성벽 재건을 중지케 하려고 하였다.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것은 `왕들의 창고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라는 문자적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경고는
페르시아 정부에게 대단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는
다리오와 아하수에로 시절 헬라와의 거듭된전쟁의 결과 엄청난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Fensham). 한편 `왕들'(*     , 말레킴)은
복수형르로서 (1) 아닥사스다의 후손들 혹은 (2) 아닥사스다의 존귀함을
강조하는 복수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4:14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 사마리아의 관원들이 페르시아 왕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즉, 이것은 사마리아 관원들이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은택을입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페르시아 왕을 기쁘게 할
의무가 있음을 뜻하는 비유인것이다(Rawlinson). 한편 `소금'은 고대의
의약품 및 식료품으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에, 경제적 교환 가치가
대단히 컸었다. 그래서 `소금 생산권'의 장악은 곧 권력의장악과
진배없었다.
 왕의 수치 - `수치'(* , 아르와트)는 `옷을 벗기다' 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라'(*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수치' , `불명예'
의 의미보다는 `손해'로 이해해야 한다(Davidson). 왜냐하면 (1) `아르와트'
는 `손해' 의뜻도 있으며, (2) 본절에서의 `수치'는 결국 재정적 곤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15
 열조의 사기(史記)를 살피시면 - 페르시아는 스스로를 바벨론의
합법적인 계승국으로 자처했었다(Williamson). 따라서 열조의 사기(史記)에는
바벨론 제국 시절 부터의역사 기록이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는
앗수르 제국의 것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Fensham). 한편
`사기'(다크라나야)는 문자적으로 문서 보관소를 의미한다.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과
앗수르 등의강대국에 대해서 강력한 저항을 했던 역사적 사실들과
관련된다(4:12 주석 참조). 그런데 모르겐스턴(Morgenstern)은 이 구절이
485년에 있었던 아하수에로 왕에 대한 반란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페르시아왕이 아주 오래된바벨론 왕들 시절의
기록을 소유치는 못했으리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추정은
심지어는 사마리아 사람들까지도 앗수르왕 `오스납발'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있었다는 사실로써 반박된다(10절). 한편 여기의 `반역하는'은 12,15절의
`패역한'과동일한 단어이다.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 - `손해된것'(* , 메한제카트)은 `상처를
주다' 혹은 `손상을 주다' 그리고 `고통을 주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네자크'(*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리고 `각 도'는 페르시아 제국 이전의
바벨론 및 앗수르를 가리키거나 아니면 페르시아제국 내의
영지들(provinces)을 뜻한다.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 사실 예루살렘의 파멸은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의 권고를 무시한 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한
결과였다(왕하 25:20, 21).

=====4:16
 필역하면 - 12절의 `수축하고' 및 13절의 `마치면'과 동일한 단어, 왕의 강
서편 영지(領地)가 없어지리이다 - `강 서편 영지'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땅을 가리킨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전에 다욋 왕 및 솔로몬 왕과 므나헴
왕 등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영토가 거의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미쳤던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두고서 이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왕상 4:21; 왕하
15:16).    그러나 이러한 언급은 그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봐서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억지임이 분명하다. 유대인들에대한 모함은 13절에
이어 그 과장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Kidner).

=====4:17
 본절은 사마찌아 사람들의 고소가 아닥사스다에 의해서 정당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음을 잘 보여준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장이 너무나도
과장된 것이어서,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겁을 먹도록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방백 르훔...다른땅 백성 - 9절 주석을 참조하라. 고대에도 서신 양식에
있어 수신자와 발신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기본적인 상례였다(Batten).
 조서를 내리니 - `답신을 보냈다'가 보다 정확한 번역일 것이다(NIV).
한편 `조서'(* , 파트가마)는 `반드시 ~에게 돌려져야 하는'의 의미를 갖는
페르시아어`파이티 가마'(Paitigama)에서 온 아람어이다(Fensham).
 평안할 지어다(쉘람) - 히브리어의 `솰롬'(* ) 과 동일한 단어로 고대
중근동에서 이러한 인사법은 매우 보편적이었다.

=====4:18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 `낭독시키고'(* , 메파르쉬)는 (1) 아람어로
된고소장(7절)을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알아들을 수 있는 페르시아
말로 번역시켰다는 뜻으로 보는견해(Fensham), (2) 당시 페르시아 왕실의
관습에 따라 신하를 시켜 대신 읽도록 했다는 뜻으로보는 견해(Rawlinson),
(3) `낭독시키고'를 `분명하게 하다'의 의미가 있는 히브리어 `파라쉬'(* )와
동족어로 보고 신하를 시켜서 그 뜻을명백하게 파악토록 했다는 의미라고
하는 견해(Keil)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첫째,바벨론의 통치가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관계로 페르시아의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은 세계적
공용어였던 아람어를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며 둘째, 중요한 문서가
신하에 의하여 왕에게 읽혀지는 것은 당시의 관례였음(에 6:1)을 볼 때,
위의 세 가지 견해 중 두 번째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위의 견해 중 첫 번째의것과 세 번째의 것도 전적으로 배제될 수는
없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사람인아닥사스다에게는 역시 보다
유창한 아람어 구사능력을 가진 신하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4:19
 명하여 살펴보니 - 아닥사스다는 그때 문서 보관소에서 열조들의 사기를
찾도록`명령'을 하였을 것이다(15절). 한편 여기의 `살펴보니'(* , 베카르)는
15절의`살피시면'과 동일한 단어로서, 많은 것들 중에서 필요한 것만을
조사하여 찾아내는행위를 가리킨다(5:17; 6:1).
 열왕을 거역하며 - `열왕'은 앗수르 제국에서 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제국을 거쳐서페르시아 제국까지의 `왕들'을 가리킨다(15절). 한편 본문의
고발은 나름대로 역사적사실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강한 민족 의식을 지닌
유대 백성은 앗수르와(왕하 18:7)바벨론의 지배에(왕하 24:1,20) 강력히
반발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패역하고 모반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 `패역하고'(* , 메라드)는 `반역'의
의미를 갖는 명사이며 `모반'(* , 에쉐타두르)도 위의 `패역'과 거의
동일한단어이다. 이와 같은 동의어의 반복적 언급은 아닥사스다 왕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기만 전술에 완전히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4:20
 큰 군왕...강 서편...땅도 주재하매 - 여기의 `큰 군왕'은 문자적으로
`강력한 왕들'의 의미이며, 다윗 및 솔로몬 그리고 북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남국 유다의웃시야와 히스기야 등을 가리킨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 상당 부분을 이스라엘의 땅에
포함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했던 왕들이었다(왕상4:21, 24).
특히 솔로몬의 경우 시리아 사막 내의 중요한 오아시스 지대인    
`다드몰'을 건축한 바 있는데(왕상 9:18) 이곳은 유프라테스 강 서편 일대를
장악하기 위한거점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Edwin Yamauchi) 다윗과 솔로몬
당시의 이스라엘 영토에 관해서는 아래 지도를 참조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언급은,    사실 이스라엘의어떤 왕도 강 서쪽땅 전부를
정복한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과장된 표현임이 분명하다.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저에게 다 바쳤도다. 모압 및 암몬 족속 그리고 에돔 족속등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던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삼하 8:6-12; 왕상
10:14,15). 한편 `조공', `잡세', `부세' 등에 대해서는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4:21
 역사를 그치게 하여 - 이처럼 아닥사스다 왕이 쉽사리 사마리아    
사람들의 소청을들어준 것은, 그 당시 페르시아 전역에는 반란 사건이
많아서 그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그가 심히 예민해 있었던 때문이었다.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 여러 학자들은 본절의 평행
구절인 외경 에스드라상 2:24에는 이러한 문구와 같은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본 문구를 본서 저자의 의도적
삽입이라고 본다(Galling, Rudolph, Williamson). 즉,본서의 저자는 (1)
중단됐던 성벽 재건이 나중에 느헤미야의 노력에 따라 아닥사스다왕에
의하여 재개될 수 있도록 승인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2)
페르시아 왕들이 자신의 정책적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던
관계로(에 1:19; 단 6:15) 홋날 아닥사스다의 또 다른 조서에 의해 정식으로
성전 건축이 허락된 사실을 밝힐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아닥사스다의 성벽 재건 중지 명령이 포기될 것임을 예견케 해주는
의도적 암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될
것은 본서의 저자가 아닥사스다 왕이 실제로 하지도 않은 말을
자신의의도에 맞춰 기록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4:22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그 명령을 어기는 자에 대한 은근한 위협으로 끝을
맺고 있다(Williamson).
 화를 더하여 - `화'(* , 하발라)는 `파괴하다' 혹은 `손실을 끼치다'의
뜻이있는 동사 `해발'(*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손해' 혹은 `손실'을
의미한다(Davidson). 그리고 `더하여'(* , 이세게)는 `커지다' 혹은
`증가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세가'(* )의 수동형으로서,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력 팽창으로 인한 세수(稅收) 손실의 증가를
가리킨다.

=====4:23
 초본(抄本)이...낭독되매 - `초본'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낭독되매'는 NIV처럼 `낭독되자 마자'(as soon as)로 번역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은본절의 초두에 개역 성경에서는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
하자 마자' 를 뜻하는 단어`에다인'(* )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 문구는
악한 일을 향한 악인들의 불같은 열심을 잘 보여준다.
 르흠...심새...동료 - 이들에 대해서는 8, 9절 주석을 참조하라.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 이것 또한 악인들의 사악한 열심을
잘 보여준다.특히 `급히'(* , 비베힐루)는 `흥분하다' 혹은 `서두르다'의 뜻이 있는동사 `베할'(*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악한 일을 위해서는 무척이나
발이 빠른(롬 3:15) 자들의 죄악에 취해버린 마음 상태를 잘 드러내준다(잠
4:16).
 권력으로 억제하여 - 여기의 `권력'(* , 하일)은 문자적으로 `힘'혹은
`군대'를 의미(Davidson) 하나 여기서는 `군대'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억졔하여'(* , 베에드라)는 `팔로써'를 의미한다(단 2:32)). 따라서 본
문구를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다면 `팔과 군대로써'가 될 것이다.
아닥사스다의 조서상으로는 성벽 재건을 중지시키라고 하는 데 그쳤으나,
대적자(對敵者) 들은 그 태도로 미루어 볼때 부분적으로 재건된 성벽조차
아예 부숴버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학자들은 이사건을 느헤미야 1:3에
기록된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 역사를 그치게 하니 - `역사' 는 성벽 재건 작업을 의미한다. 이 같은
공사의중단은 B.C. 444년에 이루어졌던 느헤미야의 귀환 때까지
계속되었다.

=====4:24
 이에(*     , 베다인) - 오히려 `이처럼' 혹은 `그와같이'로 번역되는 것이
낫다. `이에'는 본절의 내용이 마치 3절 이전(以前) 사건의 직접적 결과인양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6-23 절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사실을 언급하고있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훼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예증으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본절은 그 내용상 5절과
곧바로 이어짐이 분명하다.
 다리오 제 이 년 - 페르시아의 연대표에 의하면 다리오 왕은 B.C.522년
부터 485년까지 재위하였으므로, `제이년'은 B.C. 521(혹은 520)년이 되는
셈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는 모습을 증거한 본서 전반부(1-6장)에서, 지금까지는 제1
차로 귀환한 백성들의 인구 조사와 귀환하게 된 배경(1,2장), 그리고  매우  순조롭게
출발한 성전 재건의 기초 작업(3장)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에 이어지는 본장은 지금까
지 기술된 분위기와는 자못 다른, 성전 재건 공상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방해 공작에
대해 기술한다. 즉,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상했던 대로 성전 재건 사업이  제대
로 진행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방해를 받아 전체 공사가 중단된 사실을 증거하는 대
목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방해자들의 회유와 그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한 사실을 언급한 전반부(1-3절), (2)더욱 은밀하고 계획적으로 진행되는 방해 공
작에 대해 기술한 중반부(4-16절0, 그리고 (3)방해자들의 의도대로 중단된 재건  사업
을 나타낸 후반부(17-24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본장을 통해 이스라
엘 백성의 바벧론에서의 귀환후 시행된 재건 사업의 그리 순조롭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본문을 통해 성전 재건 공사의 방해 공작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첫째는 우호적인 태도로 접근해서 방해하는 것자, 다시 말해서 좋은  구실
을 갖고 공개적으로 접근해 자신들의 의도대로 훼방하는 것이다(2절0. 그래서  사마리
아닝들은 그럴듯한 핑계로 성전 재건에 대한 참여를 요청하였던 덧이다. 그리고  둘째
는 은밀하게 진행하면서도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4-16절).  그래서
결국은 방해자 자신들이 생각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17-24절).
   이처럼 본서 저자가 본장을 '재건 사업을 방해 받은 사실 - 그결과로 중단된  재건
공사'라는 도식으로 서술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강한 방해를  받
은 것이 역사적으로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본서  저자는
본장에서 고레스 2세(B.C.485-464) - 아닥사스다 1세(B.C. 464-424)때 진행된  은밀한
방해 사실을 바사 왕들의 이름과 더불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성
전재건 방해(4절)-성음과 성곽 재건 방해(12-16절)라는 사실로 본장의 내용을  구성하
고 있어 본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된 장소마저 재건하는 일에 훼방
을 받아 재건 사업에 대한 방해가 총체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본서 저자는 당시 아달사스다 왕에게 올린 상소문(上訴文)까지 발췌해  기록함
(7-16절)으로 이 같은 사실의 역사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한편, 본장에 언급된 전체 내용을 살펴볼 때 연이어 기술된 사실이 연대적으로  약
간의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아하수에로 때 있언던 성전 재건 방해는 1차  방
해(4절, B.C.536)와 성전 재건 공사가 다시 시작된  것을  방해한  2차  방해(5:3-17,
B.C.520) 그 다음에 있었던 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사의 아하수에로 1세는
고레스 2세 이후 캄비세스 2세(B.C. 529-523)-수메르디스(B.C.  523-522)-다리오  1세
(B.C. 522-485) 다음의 왕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아닥사스다 때에 있었던 성벽  재
건 방해 사건(7-22절)은 적어도 에스라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제  2차  귀환(7;1-10,
B.C. 485) 후의 사실인 것이다. 이처럼 시간적으로 많은 간격을 갖고 있는 이러한  사
실들은 본자에서 연이어 기록한 것은 사마리아인들의 끈질긴 '방해 사실을  강조'하고
자 했던 본서 저자의 의도에 의한 것 같다.
   이처럼 예루살멤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끈질긴 방해가 있었던  것
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반대자들의 신앙적 도전이  있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하나님을 위한 사업에는 언제든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단의 방해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본장에
서 (1)신앙을 위한 사업을 할 때도 환난과 시련은 예외일 수 없으며(삼상  18:29;  욥
1:11-15; 행 21:1), (2)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단의 운동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막 4:15; 고후 4:3,4)을 깨닫게 된다.

                    1. 성전 재건 공사에 참여을 요청한 대적(4:1-3)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방해받은 사실을  연대
기적인 관점보다는 주제의 강조 그 자체에 관심을 갖고 기술한 본장에서,  본문은  그
서두에 해당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본문은 (1)사마리아인들의 성전 재건 공상에의  참
여 요청을 기술한 전반부(1,2절)와 (2)그 요청을 단호히 거절한 사실을 언급한 후반부
(3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본문은 이후의 단락에서 집요하게  계속될  방해(4-16
절)와 그 결과 중단된 공사(17-24절)에 대한 원인을 언급할 것을 암시해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팔레스틴에 도착하여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선택된  백성으로
서 공동체가 지녀야 하는 신앙적인 순수성과 영적 회복 문제였다. 그러기에 그들은 성
전 재건을 최우선 당면 과제로 삼고 공사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  멸망(B.C.
722) 후 앗수르 왕들에 의해 강제 이주된 이민죽들은 이스라엘의 유다 땅 정착으로 인
한 이권 잠식을 우려하여 교묘한 방해 공작을 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호히
이를 거부함으로써 방해 계획에 일침을 가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바 이를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방해자드리의 혼합 정책 제안(1,2절) : 성전 재건이 당시  이
스라엘 땅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에게는 우상 숭배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이 대적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섬김과 동시에 여호와를 땅의  신
으로 섬기고 있었기에(와하 17:29-34) 유다 백성들이 재건하는 성전은 대적들의  신앙
에 지대한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방해자들은 히브리 민족의  최대  결속
요인인 유일신 사상을 깨뜨리고자 이른바 종교적 혼합주의를 넌지시 제안했던 것이다.
   (2)신앙의 순수성 고수(3절) :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
한 스롭바벧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방해자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함으로 신앙의  순수
성을 지켰다. 왜냐하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지금까지 지켜온 이스라엘의  신
앙적 전통은 무산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본서 저자는 바로 이 같은 사실들을 강조
함으로써, 오늘날을 사는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같은 본 단락에서 (1)신앙인을 파멸로 유인하는 것은 항상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이나 사물들이며(삿 3:1-3), (2)종파 간의 화합 운동은 신앙적  유사성이
아닌 동질성의 토대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요일  4:1;
계 2:2, 14). 그리고 (3)하나님께서는 순수치 못한 다수보다 순수한 소수를 더 기뻐하
신다는 것(눅 12:32)을 깨닫게 된다.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하여.    성경은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
한다. 즉,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 교회의 구성원들이라는 것이다.  따
라서 신자들 모두는 비록 서로 다른 지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상호간에
지체 의식을 느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결코 그렇지 않다. 많은  교파들로
갈라져사 서로 반목 질시(反目嫉視)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일치 운동은 바로  이런
안타까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시도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일치 운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느냐라는 것에 있다.  다
만 '하나님'을 동일하게 '부르기만' 하면 그 대열에 동참할 자격이 있을까? 아니면 교
회에 십자가만 걸었다고 교회 일치 운동에 합류시켜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같
은 외형적 유사성만으로는 진정한 주 안에서의 형제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하나되는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
나 무턱대고 아무나 이 하나되는 대열에 동참시켜서는 안 된다. 이  하나되는  운동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교회들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
다. 그리고 귿르이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비성경적인 오류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것들의 동질성이 전제될 때만 교회 일치는 가능하다.  그러데도
만일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고 해서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시킨다면 그 폐해는 이
루 말할 수 없다. 이유인즉, 정통 교회들의 신앙의 순수성은 완전히 상실되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결국 하나님의 교회의 본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생명
력도 잃어버려 그 존재 가치가 없어져 버릴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하면서 그 본질상 결코 복음적이지
못한 교파들과 신앙적 교제를 나누는 것을 철저히 금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그  같
은 거짓 그리스도 세력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려드는 사단의 음모를 간파해서
철저히 대쳐해야 한다. 하나님의 참교회는 바로 이러한 영안의 소유자들에 의해서  지
켜져 온 것이다. 그리스도와 벧리알의 어찌 조화될 수 있겠는가(고후 6:15)?

   *사마리아 사람.   포로 후기 시대에 이르러서 사용되기 시작한 '사마리아 사람'이
라는 명칭은 단순히 그들이 사마리아 지방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되어 나오
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명칭는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1절),
곧 이스라엘 백성과 구별되어 사용되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포로 생활
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팔레스틴의 북부 사마리아 지방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을  사마
리아 사람이라고 부름으로써, 자신들과는 결코 섞일 수 없는 부류로 간주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 대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던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북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B.C.  727-722)에  의해서  멸망된  것은  
B.C. 722년이었다. 이때 살마에셀은 사마리아 당의 거민들을 국외로 추방시켰고, 대신
그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타지역의 주민들이 이주되어 와  살았다(10절).  이렇게
하여 그 땅에는 혼혈족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즉, 추방되지 않고 남아 있던 이스라
엘 백성과 타지역 이주민들이 서로 통혼(通婚)함으로써, 잔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혈통
적 순수성은 상실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이 혼혈족의 문화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것
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용납지 않은 것이 반드시 그들이  혈
통상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만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즉,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혼합주의적 종교관 때문에 그들과 교제하지 않았던 것이다.
   먼 곳에서 사마리아로 이주되어 온 여러 종족들은 그후에도 얼마 간은 계속하여 자
신들의 종교를 신봉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하나님께서 내리신 사자(獅子)  쟁아으
로 인하여 여호와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왕하 17:25). 이에 따라  그들
은 벧엘에 겋는 제사장으로부터 여호와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왕하 17:27,28). 그러
나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버리지 아니한 채 여호와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지 않아 혼합주의적 종교의  소유자들이  된  것이다(왕하
17:33). 그리고 이와 더불어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러 갈래의 혈통적 뿌리를 갖고 있었
던 관계로, 그 자신들의 혼합적 종교도 여러 양태였다(왕하 17;29-32). 그러므로 그들
이 스룹바벧 당시 어떤 양식의 종교를 가졌는지를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들의 또 다른 신들을 섬기는  혼합주의적  종교를
가졌었다는 정도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
들은 이 같은 종교의 신봉자들과 합쳐질 수 없어서 그들의 교제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
했던 것이다.

                    2. 끈질기게 지속되는 방해 공작(4:4-16)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사업에 대해 대적들이 융화 및 회유책으로  방해하려
했던 사실을 언급한 전단락(1-3절)에 이어지는 본문은 그 이후로  끈질기게  지속되어
방해 공작에 관해서 기술하고 있다. 즉, 본문은 사마리아인들이 펼치는 교묘하고도 간
교한 방해에 대해 증거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본서 저자의 집필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본문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펼친 (1)직접적인 방해(4절), (2)간접적인 방해(5절),  (3)
사법적 측면의 방해(6절), (4)행정적 측면의 방해(7-16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고레스의 조서(1:1-4)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합법적인 공사였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그 당시 바사(Persia)의 식민지  정
책은 피정복민의 공작을 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사마리안인들은 종교적
인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였기에 성전과 성벽의 재
건을 방해했던 것이다. 이유인즉, 재건된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융성하
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려 왔던 팔레스틴에서의 기득권이 위협 받기 때문이
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성이 나타나는 바 이를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1)공격적 형태의 방해 공장(4-6절) : 앞 단락에서 언급된  회유책
을 통한 방해와는 달리 이제는 공격적 형태를 띄고 방해를 시작한다.  본문에  의하면
그것은 사기 저하의 방법(4절), 뇌물 공세로 인한 저지(5절), 고소를 통한  방해(6절)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마리아인들따이 소극적 방해 공작에서 적극적 방해  공작으
로 방법이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2)더욱 심화된 방해 공작(8-16절) : 대적자들은 아하수에로 때 고소했음에도 불구
하고 이제 또다시 아닥사스다 시대에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발한다. 그런데  이
때는 아하수에로에게 고소한 경우와는 달리 사마리아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 사
마리아에 째한 바사의 행정관과 서기관을 중심으로 해서 그 고소의 내용을 더욱  심화
시킨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당시 사마리아에 거주하고 있던 많은 관직자들까지  동
원해 고발의 내용과 그 신빙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또한 이때에는 예루살렘 성곽을 수
축한다는 사실을 들어 이 성벽이 완성될 경우 바사 제국이 당하게 될 피해와 왕이  입
을 손해까지 세세히 언급해 방해 공작의 극치를 이룬다.
   한편, 이러한 사마리아인들의 끈질긴 방해 공작 뒤에는 사단의 간교한 사주가 있었
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입지와 권익에  직접적으
로 연결된 문제이기에 재건을 방해했지만 그 이면에는 사단의 철저한 훼방이  있었다.
왜냐하면 바벧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과의  관
계를 회복함으로 그들의 영적 지위가 다시 복원되면 사단이 악왕(惡王)들을 통해서 행
한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단의 세력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하
였던 것이다. 실로 사단의 역할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영적 기갈 상태
에 빠지도록 만들어 급기야는 영적 사망에 이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
을 방해 역사를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내어 본서 저자는 오늘의 우리에게 영적  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에서 (1)신자들은 항상 사단의 음모를 간파할 신령한 분별력
을 소유해야 하며(고후 11:14,15; 벧전 5:8), (2)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중단
하는 것은 곧 사단과의 싸움에서의 패배임을 깨닫게 된다.
   
   *페르시아 제국의 언어 정책.   페르시아 정부의 일관된 정책 방향 중의 하나는 피
정복민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용적 태도를 견지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같은  정책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언어 정책이다.
   페르시아 왕들의 중요한 비문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아람어와  페르시아어,  그리고
엘람어, 이 세 가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 대부분의 정복국  왕
들은 오직 자신의 언어로만 기록을 남겼었다. 아무튼 이처럼 페르시아 왕들이  자신들
의 중요한 비문을 다른 나라 언오로도 새기게 한 일은 피정복민들을 정복국의  국민과
같이 존중했거가 그 사실을 알리려 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M. Noth).  그래서
페르시아 정부는 이외에도 공적인 언어를 그 피정복지의 형편에 따라  정하도록  하였
다.
   그 당시에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된 언어는 아람어였다. 이같이 아람어가 널리
사용된 까닭은, 아람 족속들이 B.C. 2000년경부터 이미 중근동의 넓은 지역을  지배해
왔고, 또한 아람어의 알파벱은 다른 언어들에 비하여 읽고 쓰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람어는 비셈계 민족들에게까지 확산되어 사용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 아람어가 중앙 정부의 공식 언어로 사용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왕드이 피정복국의 언어를 공식언어로 사용케 한 데는 관용적 통치 정책 이외에도  그
당시의 불가피한 상황도 한 원인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가정은 당시 중근동의
가장 중요한 지역들인 애굽과 수리아 등이 모두 아람어를 무역.경제 언어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로도 그 이유가 충분히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3. 방해의 결과로 나타난 재건 중지 명령(4:17-24)
   이스라엘 백성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이후 그들이 행한 재건 사업,  즉  성전과
성벽의 재건 공사가 방해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 본장 내에서 지금까지는 성
전 재건시에 받은 방해(1-5절)와 성벽 재건 때 당한 훼방(6-16절)에 대해서만  언급했
다. 이에 이어지는 본문은 앞에서 나타난 방해에 대한 결과로서 성벽 재건 공사가  중
단된 사실(17-23절)과 성전 재건 공사가 언제까지 중단되었나를 기술(24절)하고 있다.
그래서 방해 사건을 성전-성벽의 순으로 나타냈던 것과 유사하게 성벽-성전이  중단된
역사적 사실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또 한번의  위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바, 이때의 심정은 마치 바벧론으로 잡혀갈 때와 같았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벧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유다 땅으로 귀환했을 때 그들은 성전을 복원하고  여
호와께 제사를 드림으로 선택받은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했었는데 이제 그 희망이 깨
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일관된 정책 중 하나가 피정복민들의  종교를
보장해 줌으로 인해 최대한으로 회유하자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재건
공사에 대한 중지령을 내린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사악하고 집요한 방해 공작이  있
었음을 암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바사의 고레스 칙령만을 믿고 재건 사업을 시
작한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중지 명령에 애해 매우 낙담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의 일시적 도구로 사용되어  선택된  백성에게
잠시 호의적일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이끄는 영원한 존재
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변하고, 없어질 세상의  그  무엇을
의지하기 보나든 절대적이고 영원 불변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본 단락에서 우리는 (1)신자들이 세상의 가치들을 바라볼 때  좌
절할 수밖에 없으며(시 52:7), (2)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결코 합치될 수 없음(요
18:36)을 깨닫게 된다.
   한편,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된 근본 원인에 대해 본서 저자는 대적들의 방해에 그
초점을 두고 기술했다(5, 24절). 그러나 그 당시 선지자로 활약한 학개나 스가랴는 보
다 본질적인 원인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희미해진 것에 두었다. 이유인즉, 대적
들의 궤계에 의하여 성전이 황무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려한  집에
거하였다는 것이다(학 1:4). 이처럼 같은 사실에 대해서 언급의 차이가 있는 것은  가
책 저자들 나름대로의 집필 의도에 기인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즉, 본서 저자는  성전
재건 진행 과정에 초점을 두고 기술한 반면, 학개나 스라랴 선지자들은 성전 재건  사업에 대한 촉구, 혹은 성전 재건 사업을 통한 영적 각성에 핵심적 의도를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