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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제 칠 년에 - 아달랴가 다윗의 후손의 씨를 모두 진멸하려 했으나 하나님의 기이한 손길로 요아스는 보존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에 대한 신실한 성취였다. 그런데 아달랴가 왕의 씨를 진멸하려 한 것은 다윗 왕가를 통해 역사상에 전개시키려는 여호와의 경륜을 크게 대적하는 일이었다. 즉, 여호와께서 다윗 왕가를통해 이 땅에서 드러내시려는 그의 통치의성장과 활동을 사단이 아달랴를 통해서 저지하고 파괴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런 흑암의 세월이 6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제7년째로 접어들었다.
여호야다가 세력을 내어 - '세력을 내어'에 해당하는 '히트하자크'(* )는 여러 역본들에서 '힘을 내어', '용기를 내어'(KJV, RSV, NIV, 공동변역)등으로 번역된다. 여호야다는 백성들이 아달랴의 악정(惡政)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용기를 내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 용기는 전적으로 백성의 지지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백부장...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 - 이 부분은 왕하 11:4을 보충 설명하는 곳이다. 즉, 이름이 밝혀진 다섯 사람의 백부장은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이라는 것이다(Keil, Payne, Williamson, O.Zockler). 윌리암슨(Williamson)에의하면 이 백부장들은 레위인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엘리사벱을 제외한 그들의 이름이 제사장 또는 레위인의 명단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역대기 저자가 그들의 이름을밝힌 것은 제사장과 레위인 이외에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기(6절) 때문에 성전에 들어간 그들을 레위인으로 밝혀 아무 하자가 없었음을 제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23:2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명을 받은 5명의 백부장들은 유다 모든 고을을 다니며 반정(反正)의 거사(擧事)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였다. 이 호소에 '이스라엘 족장들', 곧 유다 왕국에 속하는 족장들이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이 과정은 지극히 비밀리에 수행되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왕위를 찬탈한 아달랴가 요아스의 즉위식 행사를 목격하고서야 '반역이로다'(13절) 할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Payne).

23:3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즉위(卽位)하여야 할지니 - 여호야다는 요아스의 즉위식에 즈음하여 공식적으로 반정(反正)의 정당성과 그 근거를 위와같이 제시하였다.그는 반정을 함에 있어서 어떤 지식을 가지고 움직였다. 이 지식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요, 이전에 주신 계시에 근거한(삼하 7:13-16)것이다. 그는 비록 요아스가 어릴지라도 그만이 다윗의 자손이며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여 혁명을 추진하였고 유다가 모두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23:4,5
여호야다는 반정의 정당성을 먼저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즉위식과 관련한 경호 배치에 대해 명령을 내린다. 즉, 그는 안식일에 근무에 들어가는 자, 곧 안식일에 입번(入番)하는 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 가운데 삼분의 일은 성전의 문들을 지키고 다른 삼분의 일은 왕궁을 지키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기초문을 지키게 하였다.
문...왕궁...기초문 - '문'은 원문에 복수로 기록되어 있어 성전의 문들을 가리킨다. '왕궁'은 단지 '왕의 집', 곧 성전에 있는 '왕의 방'을 가리킨다. 아달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이 왕궁은 열려져 있었다(12절). '기초문'은 열왕기에서 '수르 문'(왕하11:6)으로 불린다. 이 문도 성전에 있던 문 중의 하나이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없다(Payne).

23:6
그 외의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 여호야다는 제사장과 수종 드는 레위사람(대상 23:28-32)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일체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했다. 그런데 왕하 11:4에는 여호야다가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여호와의 전(殿)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1절 주석을 참고하라.

23:7
레위 사람은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 4,5절에 언급된 삼 대로 나뉜 경호원을 가리킨다(Keil). 열왕기에서는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나(왕하 11:8) 역대기 저자에 의해 보충되어 밝혀진다.
다른 사람이 전에 들어오거든 죽이고 - 혹자는 이 명령이 왕하 11:8의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라는 명령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역대기의명령은 성전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열왕기의 명령은 호위병들의 반열을 침범하는 자가 왕을 시해하러 왔기 때문에 죽이라고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Curtis). 그러나 이 주장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본절과 열왕기의 기록은서로 다른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역대기 저자가 성전의 신성성(神聖性)에 관심을 두고 기록하였기 때문에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라는식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 뿐이다. 그런데 반열을 침범하는 것, 곧 반열에 접근하는 것은 새로 즉위한 요아스 왕을 살해할 목적으로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만일 요아스가 성전내에서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서 피를 흘리는 불상사가되므로성전의 신성성을 해치는 셈이다. 즉, 역대기 저자는 여호야다의 명령이 이 사실에 더 집중되어 있다고 보고 이를 부각시킨 것이다. 성전의 신성성이
지켜지면 요아스 왕의 살해도 자연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된다.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侍衛)할지니라 - 요아스 왕이 성전과 왕궁을 출입(出入)할때를 가리키지 않고, 성전과 성전 뜰을 출입할 때를 의미한다(Keil). 그렇다면 '시위할지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유'(* )는 이런 출입시에 경호원은 각자 배치된 자리에서 근무를 바로 수행하라는 뜻이 될 것이다.

23:8
레위 사람과 유다 무리 - 병행 구절인 왕하 11:9에서는 '백부장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백부장들'이 '레위 사람과 유다 무리'와 동일한 대상일 수 없다. 이처럼 역대기 저자가 열왕기 저자와 달리한 것은 여호야다가 이스라엘 족장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Keil).
출번(出番)하는 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함마흐레코트'(* )이다. 이들은 다윗이 제정한(대상 24-26장) 성전 봉사의 임무를 맡았던 반열을 의미한다(Keil).

23:9
여호야다가...주고 - 여호야다는 백부장들에게 성전 안에 소장되어 있던 무기들을 나누어 주고 무장하게 했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무장하지 않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주어졌을 것이다.
다윗 왕의 창과 큰 방패와 작은 방패 - 혹자는 이것들이 모두 다윗 자신의 창과 방패였으며 매 대관식 때마다 성전에 소장되어 있던 이것들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Ewald). 그러나 그것은 단지 추측일 뿐이며 오히려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종들에게서노략한 '금방패'(삼하 8:7)였다고 보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P.C.Barker).

23:10
또 백성들로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 왕하 11:11에는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잡고'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언급된 '백성들'중에는 비 레위 지파 족 장들(2절)과,여호야다와 언약을 한 5명의 백부장이 충실하다고 여긴 왕의 호위 병도 포함되었을 것이 분명하다(Payne).
왕을 호위하되 - 이 도열(堵列)은 왕을 둘러싸는 것, 성전 우편에서부터 좌편까지 단과 전(殿)곁에 서게 한 것을 가리킨다.

23:11
무리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 병행 구절에는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왕하 11:12)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여호야다' 대신에 '무리'라는표현을 사용한다. 그것은 다윗 왕권의 회복이 모든 백성들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된 것임을 직접적으로 밝히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이다. 반면 열왕기에서는 여호야다가 백성의 지지를 얻어 반정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그 대표자만 거론되고 있을 따름이다.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 율법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에두트'(* )이다. 이 말은 '증거'(KJV, RSV), '언약의 사본'(NIV, a copy of the covenant), '율법'(JB), '율법책'(공동번역)등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커티스(Curtis)는 이 말이 왕권을 상징하는 '팔찌'(*, 체아두트)라는 말을 오기(誤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에두트'(* )가 문자적으로는 '증거'라는 뜻이지만, 역대기가 기록될 당시에는 '언약', 곧 율법을 의미하였다. 본서 저자는 여기서 율법서의 사본을 왕에게 주도록 한 신 17:18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JB 난하주).

23:12
백성들이 분주하며 - 왕하 11:13에는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로 기록되어 있다. 역대기 저자는 그들도 모두 포함하여 '백성들'이라 칭하였다.

23:13
왕이 전 문 기둥 곁에 섰고 - 병행구절인 왕하 11:14에는 '구례대로 대(臺) 위에섰고'로 기록되어 있다. 해석상 어려운 곳이다. 여러 역본에 의하면, 열왕기는 '규례대로 기둥 곁에 서 있고'(KJV, RSV, NIV, JB), '규례대로 단에 서 있고'(NEB)로 각각번역된다. 그리고 본절은 '입구 그의 기둥 곁에 서 있고'(KJV,RSV, NIV), '입구 단위에 서 있고'(NEB), '기둥 곁 입구 그곳에 서 있고'(JB) 등으로 번역된다. 영역본들은 대체로 기둥 곁에 서 있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JB 난하주에서는 열왕기하의 그곳을 해석하기를 "성전 입구에 있는 두 기둥 중 하나 곁에 왕을 위해 마련한 장소"였다고 주장한다.
노래하는 자는...찬송을 인도하는지라 - '노래하는 자'는 레위인들이었다(5:12,13; 대상 25:7,8). 여기서 우리는 역대기 저자가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활동에 더욱 주의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열왕기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23:14
반렬(班列) 밖으로 몰아내라 - 여기서 반렬(*, 세데로트)은 왕을 호위하고 있는 군사들의 열(Barker), '성전의 경내'(벌게이트 라틴어 역본)로 해석된다. 전자의 해석도 무시하기 어려우나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Payne).

23:15
왕궁 마문 어귀에 - '마문'(馬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하여서는 알 수 없으나 성전구역을 벗어나 왕궁과 통하는 문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전에서는 저를 죽이지 말라"고 명했기 때문에 성전 구역을 벗어난 곳임이 분명하다. 이 마문이 느헤미야 시대에 복원된 성전 구역 남동쪽 모퉁이에 위치한 마문(느 3:28)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나 확정키는 어렵다.

23:16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 본절에서는 여호야다가 핵심이 되어 언약을 새롭게 하는장면을 볼 수 있다. 언약의 핵심은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은 여호와의백성이 된다는 사실에 있다. 여호야다는 이런 사실을 회복함으로써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언약의 백성임을 깨닫게 하였다. 실제로 언약은 아달랴가 연혼 정책(18:1)에 의해 여호람의 왕비가 됨으로써 유다에서 파기 (破棄)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유다를 다시 언약의 나라로 회복시켜 놓은 것이다.

23:17
여호야다가 언약을 새롭게 하고 언약 갱신의 의식을 거행한 수 바로 이어 그는그의식이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행동을 취하였다. 그 첫째 조치는 바알 종교를 없애는 것이었다. 본절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즉, 온 국민이 바알의 당을 부수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23:18
직원을 세워 - 병행 구절인 왕하 11:18과는 달리 직원(관리)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 역대기 저자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번제가 율법대로 지켜지게 하기 위해서 임명된 관리였다. "여호와의 전 사무를 보살피는 자"(대상 23:4)로서 이들은 제사장을 도와 제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대상23:28-32). 또한 그들은 다윗이 정한 규례대로 즐거이 부르고 노래하며 모세의 율법에기록된 대로 번제를 드릴 임무를 맡은 자들이었다. 이렇게 여호와의 전에 직원을 세운것은 언약 갱신(16절)에 따른 자연스런 후속 조치이다. 여호야다가 제사 제도를 모세의 율법과 다윗의 정한 바대로 회복시키려 한 것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회복시키려 한 일종의 종교 개혁이었다.

23:19
또 문지기를 여호와의 전 여러 문에 두어 - 문지기는 다윗이 정한 규례에 의하면 세번째 계열의 사람들이다(대상 23:5). 그들은 성전 동, 서, 남, 북의 문과 곳간을 지키는 자들이었다(대상 26:12-19).
부정한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 여기서 부정한 자는 단순히 의식(儀式)적으로 부정한 자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포함한다(Curtis).

23:20
왕을 인도하여 - 왕의 대관식(戴冠式) 도중 아달랴의 개입으로 중단되었던 행사가11절에 이어 다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새롭게 기름부음 받은 새 왕 이 보좌에 앉게됨으로써 사실상 반정(反正)은 종결되었다.
윗문으로 좇아 - 여기서 '윗문'이란 성전의 문이다(27:3). 한편 열왕기에서는 '호위병의 문 길'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 성전과 왕궁을 서로 잇는 통로였을것이다.

23:21
아달랴를 무리가 칼로 죽였었더라 - 아달랴는 이미 성전으로부터 도피하다 왕궁 마문(馬門) 어귀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기록된다(15절). 그렇다면 이 기록은 아달랴의죽음을 다시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재언급한 이유는 요아스 왕의 즉위와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을 되찾은 사실을 마귀의 앞잡이 아달랴의 죽음과대비시키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21장부터 시작되어 온 다윗 왕조의 어두움은 바로 전장(22장)에서 악녀 아달랴에 의해 완전한 흑암으로 드리워져 6년동안  계속되었다. 이에 반해 본장은 유다 왕국에 밝은 서광이 비취기 시작하여 꺼져가는  듯한 다윗 왕가의 등불이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다시 밝혀지고  다윗의 후손  요아스가 즉위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서 본장은 22:10에서부터 연이어지는  유다 왕국의 선왕(善王)  요아스의 통치 기사(16절-24:27) 중 그 서막을 기술한다.
  남유다의 역사를 수놓는 주인공의  명암을 나타내는 본장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거사계획(1-7절)과 그 실행을  언급한 전반부(8-11절)와 아달랴의 처형(12-15절)과 요아스의 왕위 즉위(16-21절)를 기술한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악의 종말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호와께서 이끄시는 역사의 흐름을 드러낸다.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혁명의 거사년(擧事年)은 다윗 왕좌가 아달랴에게 찬탈된지 7년째 되는 해였는데(1절) 그해는 가히 유다의  안식년  또는  해방의 해 라 할 만하다. 왜냐하면 이때를 기점으로 해서  유다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다시금 다윗의 정통성을 잇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장에는 혁명의  주체 세력이 여호야다를 종심으로  한 다섯 백부장(1절)과 유다 모든 고을의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2절), 그리고  무리 또는  백성들 이라고 불리워지는 많은 유다인들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혁명의 주체 세력이 누구냐 하는 견해에 있어서 병행 장인 왕하 11장은 본장과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이를 주로 왕의 호위병들과  가리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인 혁명으로 묘사하고 있다(왕하 11:4).
  한편 본장에 기록된 여호야다의 혁명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 다윗 왕권의  회복 : 여호람의 통치 때부터 다윗  왕권의 본질이 점점 희미해져 가면서 아달랴의 집권 하에서는 완전한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호야다의 혁명으로 인하여 요아스가  다윗 왕위에 즉위됨으로써 여호와께서는 언약에 대해 언제나 성실하신 분임이 입증되었다.
  (2) 하나님 백성의  재부상(再浮上) : 악한 통치  하에서는 백성의 존재가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단나지 핍박과  억압 속에서 신음하며 고통을 당할 뿐이다. 그래서 여호람과 아하시야  그리고 아달랴의 폭정 하에서  백성들은 무고한 피를 흘려야 했으며(21:4;22:10), 연약한 백성들은  타락한 정책에 아부하며(21:11) 목숨을 연명하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시위하였고(21:18-20) 급기야 이러한  백성들의 뜻을 대변하는 한 지도자에 의해 혁명의 주체 세력으로 부상되었던 것이다(2, 17, 18절). 그들의 존재가 의로운 통치자에 의해 귀하게 여겨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3) 평강의 회복  : 이스라엘의 평강은 주로 제사  제도의 회복을 통하여(18절), 또 의로운 왕의 즉위에 의하여 회복되었다(20, 21절). 이러한 평강의 회복은 이전 솔로몬 왕 때에 한  번 맛본 것이었으며(대상 29:20-25) 본 사건을  통해서도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요아스의 즉위에 따른 이  평온은 오랜 압박과 폭정 속에서 얻은 것이라 마치 긴 가뭄 끝에 맞이하는  단비와도 같이 이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귀한 평강이었을 것이다.
  본 사건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예시한다(호 13:14;골 2:15). 아달랴의 폭정으로 인한  흑암의 권세를 깨뜨리고 여호야다의 혁명과 요아스의 왕 즉위가 이루어졌으며 이로 말미암아  다윗 왕가와 맺은 하나님의 구워가 사역은 계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부활의 광명은 오늘날도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췽어  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다(눅 1:78, 79).

  1. 여호다다의 혁명과 아달랴의 처형(23;1-15)
  본문은 불법적으로 왕위를 찬탈한  이후 계속적으로 우상 숭배를 자행한 아달랴에게 드디어 심판의 때가 이르러 여호야다가 다섯 백부장들과 함께 거사를 일으키기 위하여 유다 모든 고을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으는 장면과 요아스를 새 왕으로 옹립하고 아달랴를 왕궁 마문(馬門)에서 처형하는 장면이 극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재연한다.  특히  본서  저자는  열왕기서의  저자와  같이(왕하 11:4-16), 반역의  준비(1-7절)->반역의 경과(8-11절)->반역 후  아달랴의 처형(12-15절)의 순으로 본서를 기록하여 여호야다의 혁명을 자세히 보여주며 남유다에게 임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하심이  어떠한 지를 잘 나타낸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악인의 종말은 매우 비참하며  그 결국은 너무 초라하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나 매우 철저하며  졸지에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의  군대는  수장(水葬)됨으로(출  14:23-31),  사울과  가룟유다는  자살함으로(삼상 31:1-6;마 27:3-9), 아하봐 이세벨은 능지 처참되어 개에게 시체마저 뜯기는 비참함으로(왕상 22:37, 38;왕하 9:30 ff.) 각각 종말을 맞이하여싸. 이러한 비참한 모습은 본문에 타나탄 아달랴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다윗 집안의 씨를 말리려 하였고(22:10-12), 온갖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주변 바알 숭배 국가들의 지지를 얻고 백성을 현혹시키기 위해 우상 숭배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온 국민들의 손에  의해 마문(馬門) 어귀에서 처형되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 (시 62:12;잠 24:12;롬 2:6;딤후 4:14)하실  뿐 아니라  형벌 받을  자 를 결단코 면죄하지 아니하신다(출
34:7). 따라서 성도들은 현세대에 악이  비록 관영하고, 의인이 고난받는 불합리한 일이 발생할지라도 종말에는 선악 간의 심판을 하신다는 하나님의 역속을 확신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이다(단 7:10;롬 2:8, 9;계 20:12).
  (2)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야다처럼 시대를  바로 직시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자시늬 처한 상황을 분별하여  개혁하는 의지를 소유해야 하나는 것이다. 여호야다는 제사장아으로서 정치적인 사건에 직접 개입하여 활동한 인물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정교 분리(政敎分離)의  원리를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으 나라인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로 타락하고  하나님의 공의에서 멀어지는 것을  그냥 좌시하지 않고 과감히 혁명으로 떨쳐 일어선 그의 용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날로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터전인 이 세상에 대해 그냥 방관하는 자세로 안일하게 지내는 듯하다. 그리고  교회는 마냥 그것을 좌시하면서  개인적인 복(福)만을 추구하게 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러기에 이  시대에, 타락한 현대의 사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이키려는 현대판 여호야다가 계속해서 배출되어야 할 것이다.
  (3) 의로운 일일수록  급하게 서두르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신실한 레위인과 유다 백성들이 모두 일심 단결하여 여호야다의 명령을  순종하여 받드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8절). 이것은 모든 무리들이 여호야다의 혁명 계획에  적극적으로 찬동하였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백부장들과 왕의 호위대까지  여호야다가 장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아달랴가 민심을 완전히 잃었으며 여호야다는 그 민심을 얻은 큰 덕망의 소유자였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만일 여호야다가 이와같이 민심을 얻지 못하고 단순히 저의감에만 불타 혁명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런 상태에서 혁명이 성공하였다 할지다로 많은 유혈  상황을 유발함으로써 더 큰 재난을 초래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야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셨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덕망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혁명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민심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정의감에 달려 있지 않고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여호야다가 일으킨 혁명의 의의. 본장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호야다는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그의 역할을 정치적 성격으로 살펴 보면 포로기 이후 시대의 대제사장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24장을 보면 그는 실제로  대제사장 으로 불리워지고 있다(24:6, 11). 따라서 우리는 본 소고(小考)를 통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대제사장은  어떠한 위치에 있었으며 대제사장으로서  여호야다가 일으킨 혁명의 의의가 무엇인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대제사장직은 모세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 사실이지만(출 28:29;레 21:10;민 35:25) 실제적으로 초기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왕정 시대에 이르러서까지 대제사장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초기 이스라엘에서는 정치 지도자가 종교 지도자으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했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에서 모세 시대 이후 최초로 언급된 대제사장은 여호사밧에 의해 세움받은 아마랴(19:11)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여호야다가 대제사자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24:16 주석  참조) 대제사장의 역할을 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포로기 이후 시대에는  스룹바벨이 성전을 건축할 때 대제사장 여호수아(학 1:1, 12, 14:2:2, 4)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이미 다윗 왕통의 맥이 끊어진 이후라 대제사자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통치자 역할을 담당하게 된 듯하다(슥 3;6, 7;4:14;6:9-15). 다시 말하면 정치적으로는 왕의, 종교적으로는 제사장의 이중적 통치가 지속되어 오다가 다윗 왕조가  사라진 뒤로 하나의 통치로 단일화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교회가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때 대제사장은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권력과 명성을 모두 점유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헬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스라엘에는 대제사장직을 탐하는 무리들에 의하여 대제사장직 쟁탈전이 피비린내 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 율법이 의미하는 그러한 대제사장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본래 대제사장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가계로 이어지는 세습직이었고 평생직이었다(민 3:32;25:11;35:25, 28;느 12:10, 11). 그 대제사장은 독특한 의상으로 하나님의위엄과 영광을 나타내었고, 일 년에 한 번씩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속죄 제물을 드렸다(레 4:3-21). 이와같이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기 때문에  정결하고 거룩하여야 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혁명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여호야다의 혁명은 정치적으로 다윗 왕가를 회복하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는 바알 우상을 척결함으로써 여오와의 종교를 회복하는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어린  요아스와 함께 유다를 다스리는 섭정 왕이었다. 따라서 여호야다에 의해서 유다의 이중적  통치가 하나로 통일된 셈이다. 이것은 일찍이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 또는 신정 국가로 만들려는 이스라엘 백성의 소망의 성취이기도 하며 본래 여호와께서  왕을 세우기를 싫어하실떼 원하셨던 바의 성취이기도 하다. 한편 이러한 신정 국가의  모습은 여호야다 제사장 시절에 예표적으로 나타났지만 그것의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서 검토해 볼  때 여호야다의 혁명은 다윗을 위하여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여호와의 언약의 잠정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정국가가, 또는  제사장의 나라  건립의 시도가 웃시야 왕에 의해서 또한번 시도되기도  하는데  그는  악한  마음,  즉  교만으로 행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26:16-23).

  2. 왕위에 앉은 요아스(23:16-21)
  남유다를 구함과 더불어 다윗 왕가의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밝힌 여호야다 제사장의 정치적 혁명(1-15절)에 이어지는 본문은 그가 일으킨 종교적 혁명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다. 즉, 앞단락에서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아달랴를 처형함으로 정티적인 의미에서으 거사가 성취되었음을 밝혔다. 그러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당시 사회 전반에는 아달랴의  영향으로 인해 우상 숭배으 풍조가 만연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인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종교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다. 이렇듯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 종교 개혁을 언급하는 본문은 여호야다가 단행항 종교적 사역을 증거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언급된 본문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즉, (1) 여호야다-백성-왕 사이에 언약을 세워 종교적으로 관계를  밀접히 하는 장면(16절), (2) 종교 개혁의 실천적 의지를 나타내 우상을 훼파하는  모습(17절), (3) 종교 개혁으 적극적 의미로 성전 제사를 복원(復元)하는 대목(18, 19절),  그리고 (4)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등극시키는 장면(20, 21절)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해 여호야다의 종교 개혁을 진지하고 자세하게 언급함과 동시에  요아스가 왕의 자리에 앉게 되어 백성들이 평온의 시절을 맞이했음을 나타낸다(21절).
  본문은 여호야다의 종교  개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잘 묘사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한 의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언약 체결(16절) : 언약의내용은 왕과 백성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는 것이엇다. 이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과 같이(출 19:5-8;24:3-8;34:10-28)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율법을 지키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미 주석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16절) 본서 저자는 이 언약적 사건이 다윗  언약(삼하 7장)과 같이 새로운 내용이  첨가된 사건이 아니라 백성들 편에서의 언약적 재다짐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는 언약에 성실하였으나 그동안 유다 백성의 불성실로 인하여 언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다윗 왕가의 회복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며 언약에 대한  충성을 재다짐한 것이라 하겠다. 이 언약의 재다짐을 통하여 유다 백성들은 종교 개혁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우상 타파 및 맛단 처형(17절) :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언약을 충실히 이행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우상을 타파하고 바알 제사장을 처형한 것은 종교 개혁의 실천적, 소극적 의지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유다 전역에 만연해 있었던 바알 숭배에 일침을 가하게 된 것이다.
  셋째, 예배와 제사  회복(18, 19절) : 바알 숭배  타파가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언약 이행인 반면, 성전의 예배와 제사를  회복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다윗이 정한 반차에 따라 재조직한 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언약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요아스의 등극(20절)  :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워 기름을 부은 것은 혁명 과정 중의 일이었다(11절). 그러나 모든 혁명이 다 종결된 뒤에야 비로소 요아스는 왕의 보좌에 앉게 되었는데 요아스가 보좌에 앉은 것은 진정한 다윗 언약에 계승이며 회복이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1) 하나님의 일은  절반만, 혹은 중도에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여호야다가 왕의 보좌를 찬탈한 자만 죽이고 하나님의 권리를 빼앗은 자를 처단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말해서 왕좌의 영예만을 돌보고 제단의 영예를 돌보지 않았더라면 혁명을 절반작에 행하지  않은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야다는 정치, 종교 전반에 걸쳐 혁명을 수행함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하나님께 대한 종교 개혁의  결과는 언제나 영적 승리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회복된 다윗  언약에 함께 동참한 백성들이 얼마나 즐거워하였고 평온하였는지를 증거하는 것이다(21절).  그러기에 우리 또한 주의  대속 사업을 바아들여 주께로부터 오는 참 평안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시 53:5;골 1:20;롬 5:1).
  * 역대기에 나타난  하나님 백성의 특징. 본자을  통하여 우리는 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유다 백성들의 위치가 매우 부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야다의 혁명은 유다 백성들의 강력한 지지가 없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이것은 바로 역대기 저자가 하나님 백성의 신분을 얼마나 고귀하게 다루고 있으며, 하나님의 언약과 그의 나라라는 개념 속에서 백성들의 역할을 얼마나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역대기 저자가 본서를 통하여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               , 암 엘로힘), 또는  여호와의 백성 (*              , 암  야웨) 등의 표현 뿐만 아니라  나의 백성 ,  당신의 백성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소유, 기업, 재산(출 19:5;신 4:20;7:6;말 3:17)임고 동시에  그의 종(시 135:14;사 48:20), 그의 아들(출  4:22, 23;호  11:1), 그의  양(시 95:7),  그의 거룩한  백성(신 14:2;28:9;사 62:12)임을 뜻하나. 이와같이 구약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볼 때 하나님으 백성이 여호와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이쓴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왕정 시대에  돌입하면서 상대적으로 백성의 위치나 존재의 중요성은 많이 감추어지고 그 대신 열왕들과 그들의 언약적 신앙들이 크게 부각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열왕기 저자는 다윗을 기수로 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열왕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하였는지, 또  그 정도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는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반면에 역대기 저자는 열왕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을 생각하며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으며, 그 왕들의 언약 수행에 있어서 백성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보이고자 힘썼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역대기 저자의 민중 중심적 사관은 본래의  하나님의 백성 의 의미를 매우 뚜렷하게 부각시켜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역대기 저자는 솔로몬의  위대함을 설명할 때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을 귀하게 여겼는가를 말한다(1:10, 11). 그리고 솔로몬의 기도 속에는 자신을 종으로칭하면서 자신도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6장).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왕들의 대관식과 성전 봉헌식의 핵심 구성원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특별히 선한 왕들, 즉 다윗, 솔로몬, 오아스 등의 대관식에서는 크게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와 더불어 역대기 저자는 열왕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통치를  결론지을 때  항상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암시적으로  표시하고 있다(16:14;21:19;22:9;24:25;26:23 등). 또한 유다 백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 바로 역대기의 특징이다.  즉, 선견자 하나니, 미가야 엘리야,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역대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은 열왕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얼마나 성실했는지 그 정도를 보여주는 표현이 되며, 판단자가 되고 언약으 이행자가 된다. 그리고 본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윗의 언약을 수호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와같이 본서에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 의 특징이 종종 언급되는 바 지금까지는 이에 대한 심층적이고 학문적인 연구가 치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백성들의 역할에 대한 깊은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통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개념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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