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역대하 17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7:1
여호사밧이...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하되 - 20:31에 따르면 이때에여호사밧(B.C.871-847)의 나이는 35세였다. 따라서 아사의 말년(16장)을 충분히 목격하고 인식했던 여호사밧은 바아사의 침략시에 보여 주었던 아사의 연약함과 달리 이스라엘을 방비하는 일에 전력을 쏟았던 것 같다(2절).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B.C. 874-853년)이었던 바 그는 오므리 왕조의 두 번째 왕이며 그의 아내 이세벨과함께 바알 숭배자로 유명했다. 한편 여호사밧(jehosoaphat)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판단하시는자' 또는 '하나님께서 변호하시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는 초창기그의 삶이 여호와께 정직했음을 보아 대단히 적절한 이름이라 하겠다(3-5절).

17:2
군대를 주둔하고 - 여기서 '군대를 주둔하고'의 뜻은 곧 싸움을 벌이기 위해 진영(陳營)을 갖추어 놓은 것을 가리킨다(대상 11:15). 따라서 바아사와 아사로 인한 남북왕국의 전쟁의 긴장은 여호사밧의 통치 초창기에도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사의 취한 바 에브라임 성읍들 - 이는 15:8에 언급된 성읍들과 요새 라마(16:1)를 가리킨다. 그런데 15:8에 언급된 에브라임 산지의 성읍들은 아사가 빼앗은 성읍들이라기보다는 그의 부친 아비야가 빼았은 성읍들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15:8 주석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 역시 그 성읍 들을 아사가 빼앗았다고 언급하고있다. 이에 대하여 혹자들은 본절의 기록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여기서 역대기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그 성읍들이 비록 아비야에 의해 탈취된 것이긴하지만 그곳을 실제로 요새화하여 견고케 한 것은 아사에 의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것이다.
영문을 두었더라 - 이는 사령관이나 장교를 포함한 수비대를 주둔시킨 것을 의미한다(삼상 10:5;13:3). 본래 영문(營門)이라 함은 군대(army) 또는 진영의 출입구를 가리킨다.

17:3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 이는 여호사밧이 과거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삼하 11장), 인구 조사(삼하 24장;대상 21장)를 한 집권 후기의 다윗의 잘못된 행위를 본받지 아니하고 초창기의 정직한 다윗의 길을 따랐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70인역(LXX)에는 본절의 '다윗'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성경에서 다윗의 생애를 처음과 나중으로 구분한 경우가 발견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다윗대신 여호사밧의 부친 아사에 관한 언급으로 보고있는데 초창기의 아사는 선했지만(14, 15장) 후기의 아사는 악했기 때문에(16장) 이에 잘 어울린다.그러나 성경에서 열 왕의 통치를 평가할 때는 대개 다윗을 표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왕상 15:4) 본절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여도 별 문제는되지 않는다.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 여기서 '바알들'(*, 베알림)은 복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유일하신 여호와와 대조적인 모든 거짓된 우상들을 통틀어 가리킨다(삿 2:11). 한편 '바알'(* )은 '주'(Lord)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서 초기 이스라엘역사에서 이는 '여호와'를 지칭했다(대상 8:34;14:7). 그런데 후대에 이방인들의 바알(Ball) 종교가 이스라엘에 들어 온 후 이 명칭은 주로 가나안 싱들을 가리키는 용어로전용(轉用)되었다. 선지자 호세아(호2:16)가 하 나님에 대하여 '바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후에 '바알'을 빼버리고 다 른 이름으로 대치한 경우들이 성경에서 가끔발견된다(삼상 12:11;삼하11:21).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2:8 주석을 참조하라.

17:4
그 부친의 하나님 - 이는 3절에서 주석하였듯이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수정되어야 함을 뒷받침해 준다. 이러한 사실은 6절에 기록된 여호사밧의 개혁이 아사의개혁을 본받은 것이라는 점에서(14:3, 5) 더욱 그러하다. 왕상 22:43 주석 참조.
이스라엘의 행위 - 이는 11:15에 언급된 수염소 우상이나 송아지 우상등을 만든 여로보암의 행위 뿐만 아니라 온갖 우상들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행을 아울러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역대기 저자가 '이스라엘의 행위'라는 특별한 용어를 씀으로서이스라엘의 역사와 대조되는 유다의 역사를 상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7:5
나라를 그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 구약에서 '손'(* , 야드)은 흔히 권력, 능력등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여호와 께서 유다 왕국을 여호사밧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셨다는 것은 (1) 그를 통한 정권 확립(왕상 2:46;왕하 15:19)과 (2) 국력의 신장(24:23,24)등을 의미한다. 즉, 여호사밧의 부친 아사가 통치 말년에 실정(失政)으로 국력을약화 시켰으나(16:9)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계명을 준수하므로 다시금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 여기서 '예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민하'(* )는 '선물', '조공', '제물'(특히 피없는 제물, 창 4:3) 등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여호사밧이 국민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였고 백성들은 자원하여 납세의무에 충실하였던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O. zockler). 그러나 11절에도 블레셋인 중에서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백성 들과 신하들 및 주변국들이 여호사밧에 대한 존경과 복종의 표시로 자발적으로 바친 선물들과 조공을 뜻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 - 여호사밧이 받은 이러한 축복은 솔로몬과 다윗이받은 축복에 비길 만하다.(1:12;대상 29:28). 왜냐하면 그 역시 다윗의 길로 정직하게행한결과 하나님께로부터 그러한 축복을 받았기 때문자이다.

17:6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 여기서 '전심으로'의 문자적인 뜻은 '그의마음을 들어 올렸다'이다. 이러한 표현은 주로 '교만하다'는 등의 나뿐 뜻으로 쓰였는데(26:16;32:25;겔 28:2, 5, 17;시 131:1;잠 18:12) 여기서는 좋은 의미로 쓰였다.즉, 본절은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으로 인하여 크게 용기를 얻어 종교 개혁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음을 뜻한다.
산당...유다에서 제하였더라 - 본절은 병행 구절인 왕상 22:43의 "여호사밧이...산당은 폐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분향하였더라"는 내용과 서로 조화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아사에게도 있었는데 이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호사밧이 공식적으로 산당을 폐하도록 명령하고 이 일을 손수 시행하였으나 그백성들이 이 공식적인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14:3 주석참조. 또한 이는 여호사밧이 산당을 전부 다 제하였다는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이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마음을 정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20:33)는 기록이 충분히 뒷받침한다. 한편 이처럼산당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남북 왕국의 문제거리로 작용하였다. 그러기에 히스기야와요시야가 종교 개혁을 일으킬 때에도 '산당'을 제거하였다는 기록이 재차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31:1;34:3). 이로 볼때 처음에는 여호와 숭배를 위하여 지어진 산당들이라할지라도 산당의 성격 때문에 우상 숭배의 온상으로 탈바꿈하기가 매우 쉬었음을 알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당을 헐라고 명령하신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레 26:30;민 33:52). 왕하 16:1-9 강해, '산당 예배에 관하여' 참조.
아세라 목상들 - 아세라(Ascherah)는 바알 신의 어머니로 고대 근동의 여러 지방에서 숭배되었다. 혹자는 이 아세라를 아스다롯(Asharoth)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별된다. 이에 대해서는 14;3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17:7,8
저가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 이것은 여호사밧이 통치 벽두부터 백성들을 여호와의율법으로 교육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 일을 위하여여호사밧은 5명의 방백과 9명 레위인, 2명의 제사장을 전국 각지에 보내어 '여호와의율법책'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다. 그런데 이들의 명 단이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어있지 않는 바 개개인의 신상(身上)에 관하여서는 달리 알 수 없다.

17:9
저희가...인민을 가르쳤더라 - 여호사밧에 의해 유다 각 성읍에 파송된 자들은 '여호와의 율법책', 즉 모세 오경을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5명의 방백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7절) 그들의 가르침이 단지 종교적인 가르침뿐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들은 백성들의 관습과 민정(民政) 등에 관한 많은 규례들도 함께 가르쳤을 것이다. 즉 그들은 비단 종교 교육 뿐만아니라 당시 만연했었던악습과 우상 숭배를 척결하는 방법등 종교적, 도덕적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세세히 지도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구체적인 교육 활동은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을 보다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7:10
여호와께서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사 - 이는 여호사밧이 전심으로 여호와하나님을 찾고 경외한 데 대한 보상으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이웃 나라들이 유다를 두려워하도록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셨음을 가리킨다. 역대기 기자는 이런류의 여호와의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14:14;20:29).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추측컨데그것은 여호와께서 유다에 부어 주신 축복으로 인하여 이방 나라들이 두려워 떨도록하신 것을 가리 키는 것 같다.

17:11
본절에는 통일 왕국의 분열 이후 날로 쇠퇴해 가던 다윗 왕가가 여호사밧 시대에이르러 맞이한 부흥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본서 기자는 주변 국가들이 바친 조공의내역을 알리면서 이 기록의 문자적 사실성보다는 그 의미에 중점을 둔 것 같다. 즉,'칠천 칠백'등의 상징적 숫자를 보여줌으로써 여호사밧 시대의 번성이 극에 달했음을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블레셋 중에서는 -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전치사'민'(* )은 '...중에서 얼'(some of...)를 뜻한다. 따라서 이는 블레셋 전체가 여호사밧에게 국가적인 절단을보내어 예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블레셋인들 가운데 유다와 인접한 지역에 살고 있는사람들이 예물을 드렸음을 뜻한다. 이들은 아마 아사 때에 유다에의해서 크게 혼이 난그랄 사면에 살고있던 유목민들이 아닌가 추측된다(Curtis). 14:14 주석 참조.
은으로 공을 바쳤고 - 여기서 '공'(貢)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마사'(* )는 '무거운 짐'을 뜻한다. 20:25에서 이단어는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은'이라 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에서 블레셋인들이 가져온 많은 은(銀)은 매년마다 바치기로 정해진 공물(貢物)이 아니라, 일시적인 예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외 다른예물 중에는 조공의 성격을 띤 것이 있어서 매년마다 정해진 만큼 바치는 예물들도 있었다(삼하 8:2;왕상 4:21;10:25).
아라비아 사람 - 이에 해당하는 '아랍'(* )이라는 용어는 '사막의 사람들'을 뜻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에서 '아라비아 사람들'이라고 할 경우 북 아라비아의 거주자들(느2:19;6:1)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가 '아라비아사람'이 라고 말할 당시에는 이미 유다의 남쪽과 남동쪽에 나바티안(Nabatean) 왕국이 건립되어 있었는바 그들 남 아라비아 거주자들도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Curtis).만일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 아라비아인들이 여호사밧에게 짐승들을 바친 것도 유다를두려워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아사로부터 여호 사밧에게로 이어지는 유다 왕국의강성함 때문에(14:9-15;15:15)유다 사면 열국 들은 더욱더 유다를 두려워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짐승들을 공물로 바치는 경우는 왕하 3:4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는 유목(遊牧) 민족 뿐 아니라 농경 사회 에 있어서도 가축이 중요한 재산으로 취급되었던 당시의시대 상황에 의거한 습속(習?)이다.

17:12
유다에 견고한 채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 여기서 '채'(castles)는 성채, 요새 (fortresses)를 뜻한다. 그리고 '국고성'(cites of store)은 국가의 여러 가지 공공 물자들을 보관하는 일종의 창고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는 8:4의 주석을 참조하라.한편 고대 근동인들의 성읍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잘 대응하기 위하여 여러 부대 시설 및 형태를 갖추었다. 돌출형 성벽이라든지, 보루, 성탑, 망 대 따위 등이 곧 그것들이다(26:15;삿 9:46;사 5:2).

17:13
역사를 많이 하고 - 역사(役事)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멜라카'(* )는 '일 '(work)이라는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일이나 사업을 통해 얻은 '재산'(property)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본절 후반부와 전반부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다고 볼 때 전반부는 전쟁에 필요한 물건들, 즉 칼이나 창, 방패같은 군수품들을 많이만들어 저장해 두었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혹자 는 본절의 '역사'를 성채를 짓고준비하는 작업'(Bertheau)을 뜻한다고도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본절의 전후반부의문맥에 잘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12절에서 그러한 작업에 관해 언급한 바 있으므로 옳지 못하다.

17:14
군사의 수효가...이러하니라 - 본절 이하 19절까지에서 우리는 유다 군대가 가계별(家係別)로 잘 조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유다 지파는 둘로 분류되어 있고베냐민 지파는 둘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아드나, 여호와난, 아미 시야가 유다 지파이고,에리아다와 여호사밧이 베냐민 지파이다.
천부장 - 이는 군대의 지휘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때의 천부장은 로마 시대의 천부장처럼 보병 760명, 기병 240명을 거느린 지휘관이 아니다. 이때의 천부장은 군대의지휘관으로서 경우에 따라 수십만을 거느릴수도 있었다. 이러한 부장제도에 관하여서는 출 18:21 주석을 참조하라.
아드나 - 대상 12:20에 보면 다윗을 따랐던 므낫세 지파의 천부장중에도 '아드나'(Adnah)라는 이름을 가진 군대 장관이 있었다. 그러나 그자와 본절의 인물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다윗 당시와 여호사밧 시대 사이에는 적어도100년 이상의 시대적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17:15
장관 여호하난 - 여기서 '장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방백'으로 해석할 수 있는단어 '사르'(* )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군사적인 용어로도 많이 사용되었 는바 한고을을 다스리는 우두머리 뿐만 아니라(방백) 군대 지휘관도 가리킨다(왕하 9:5 주석참조). 한편 '여호하난'(Jehohanan)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심'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는 성경에 여러 명 나온다(23:1;대상 26:3;스10:28;느 6:17,18;12:13, 42).

17:16
저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자라 - 이처럼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Amasiah)에 대해서는 특별한 직위 표시가 없고 다만 그가 하나님께 헌신된 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도 '방백'이었던 것 같으며 특별한 헌신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한편 '아마시야'란 이 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품으셨다'이다.

17:17
활과 방패를 잡은자 - 과거 아사의 군대 가운데에도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28만이나 있었다(14:8). 한편 베냐민 지파는 전통적으로 활을 잘쏘는 지파로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대상 12:2 주석을 참조하라.

17:18
싸움을 예비한 자 - 이는 중무장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무기들만을 갖추고 있던 자들인 듯하다. 아무튼 14절 이하에서 보듯 여호사밧의 전체 군대 수는 약116만에 달하는 엄청난 수였다. 이는 아사의 군대 총수 58만(14:8)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크게 용맹한 군사'(13절)였다고 기록 되어 있는데 역대기 저자는 여호와께서 도우시는 군대를 사밧의 군대 수가 이렇게 급증한 것이 단 지파나 블레셋에서 온 파견대와 시므온과 에브라임 사람들,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들이 유다 군대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한다(Murphy, Belfast).

17:19
이는 다 왕을 섬기는 자요 - 13절을 보면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한 군사를 두었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하에서 116만의 군대 조직을 설명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이들이 모두 예루살렘에서 왕의 수비대로 활동한 것처럼 본문을 해석하기가 쉽다. 물론 여호사밧이 특별한 전략적인 목적에 따라 예루살렘에 군대를 두었긴 하나 116만의 군대를 다 그곳에 둔 것은 아니다. 대신 116만이란 유다의 모든 성읍에 배치된 전체 군대 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즉 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루살렘과 여호사밧을 보호하는 수비대라고 볼 수 있다.

 

 

 

 본서는 유다 왕들의 통치만을 언급하는 과정(10:1-36:21)에서 지금까지 르호보암(10:1-12:16), 아비야(13:1-22), 아사(14:1-16:14) 등의 치세에 대해 언급했다. 여기에 연이어지는 대목인 본장은 남유다 제4대 왕인 여호사밧의 통치에 관해 언급하는 바, 그 내용이 20장까지 곗가되어 그의 치적을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3대 성군(聖君) 중의 한 명으로서 B.C.872년부터 B.C.847년까지 통치한 아사의 아들이다.
 그의 통치는 몇 가지의 과오가 있기는 하였지만(18:1;20:37) 대체적으로 선정(善政)으로 일관되었는데 그의 종교 개혁은 매우 단호하고도 전면적인 것이었다. 본서에 나타난 그의 통치 기록을 통해 그의 치세를 특징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제1차 개혁917장) : 여호사밧은 즉위 초에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산당과아세라 목상들을 제하였을 뿐만 아니라(6절) 방백, 레위인, 제사장들을 파견하여율법 지도와 사법 제도를 개편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이와 더불어 그의 부친 아사가 탈취한 에브라임 도시들에다가 수비대를 주둔시키는 등 국방 사업도 활발하게 시행했다.
 (2) 북왕국 아합 왕과의 교제(18장) : 이 시기에도 여호사밧 왕 자신의 범죄는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으나, 악하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아합 왕과 연혼(連婚)하고 길르앗 라못 전투에 함께 참여한 것이 큰 죄로 지적되고 있다(19:2).
 (3) 제2차 개혁(19장) : 아합과 동맹한 사실 때문에선견자 예후로부터 여호와의 진노의 말씀을 받았다. 그리고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극소화시키기 위해그는 제2차 개혁을 시도하였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1차 개혁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 개혁은 1차 개혁 때보다 재판에 관하여더욱 세밀한 개혁을 단행하였기 때문이다.
 (4) 연합군과의 전쟁(20장) : 이 전쟁에서는 여호사밧의 신앙이 얼마나 진실한 것이었는지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적이 있으나 그의 통치는 대체적으로 선정으로 일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통치 기록들을 통하여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발견하게되는데 그것은 곧 그의 부친 아사의 통치에서 볼 수 있었던 메시지와 유사한 것이다. 즉, 여호와를 찾으며 그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는 자에게는 축복이,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책망과 지예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한편 본장은 여호사밧의 통치 초기에 시행된 1차 개혁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즉위 초에 이루어진 그의 개혁은 교육과 국방과 사법 제도에결친 광범위한 것이었는데, 이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경건하였는지(3,4,6절), 그리고 얼마나 강력한 통치를 한 왕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여호사밧이 그의 즉위 초에 행한 사역을 증거하고 있는 본장은 그의 군사 정책을 서두(1,2절)와 말미(12-19절)에 기록하였으며 여호사밧이 전심으로여호와를 섬긴 결과로써 하나님께 축복받았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본장은 본장의 처음과 나중을 장식하는 군사 정책 사이에다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게명을 지키고(3,4절) 우상을 타파한 사실(6절), 그리고 종교 개혁을 확산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교육 사업을 펼친 사실(7-9절)을 언급함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축복의 원인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아사 왕의 치적을 기술한 방식과 같이 축복의 원인->결과라는 도식으로 여호사밧의 초기 치세를 정리한다.
 이와 같은 기술 방식은 열왕기의 저자가 사용한 역사 기록의 도식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이스라엘 열왕들에게그의 치적에 따라, 그리고 그가 행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여부에 따라 여호와의 축복과 진노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써 당시늬 신앙인 뿐만 아니라 후대의 신앙인들에게 역사적인 교훈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본장의 내용은 열왕기에는 없는 사실로 오직 본서에만 언급되었다. 이것은 여호사밧의 통치기간 중에 나타난 선정(善政)의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저자의 집필 의도가 반영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된다.
 (1) 그는 외적인 형식과 제도의 개조(改造)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영적 각성을 위해 교육 사업에 전념하였다. 그는 일차적으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하는 외적인 개혁을 시도했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부친 아사도 동일한 성격의 개혁을 두 차례에 결쳐서 행하였음에도(14:3-5;15:8-15) 불구하고 우상 숭배는 사라지지 않고 백성들 간에 공공연히 행하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사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방백과 제사장, 레위인들을 보내어 종교 교육을 시행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오늘날의 교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해야 할 사명 중의 하나가 바로 교육을 통한 내적 신앙 각성 운동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20).
 (2) 여호사밧은 백성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겅건해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것은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에게 요청되는 필수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것 (6절)이 바로 개혁의 승패 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군중 심리에 이끌려 꼭둑각시 노릇하는 개혁자들은 어쩌다가 개혁이 성공해도 자신은 멸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경건 생활은 있으나 그것이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죽은 믿음을 소유한 자들도 있다(약 2:17).
 (3)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신앙에 따른 축복을 주신다. 당시 유다는 남과 북으로 날마다 전쟁의 위협을 당하고 있었는데, 여호와께서는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셨다(10절). 그리고 여호사밧은 그의 부왕 아사가 탈취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수비대를 세우고(1, 2절),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며(12절), 군대 양성에 힘씀으로써 전대(前代)의 왕들보다 월등한 116만명의 대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모두 종교 개혁을 통해 보여준 여호사밧의 경건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1. 여호사밧의 개혁(17:1-9)
 본문에는 아사에 이어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여호사밧의 왕권을 확립함과 더불어(1절) 국토를 수비하기 위해 펼친 군사 정책(2절)을 언급한 전반부가 있다. 그리고 이에 연이어지는 후반부는 산당과 아세라 상을 제거한 제1차 종교 개혁(3-6절)과, 방백과 제사장, 레위인들을 보내어 교육 사업에 진력한 사실을 기록한 제2차 종교 개혁(7-9절)을 언급하고 있다. 초기에 행한 여호사밧의 행적은 실로 부전 자전(父傳子傳)이었다. 왜냐하면 아사가 왕위에 오르자 먼저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사가 두 번에 걸쳐(우상을 훼파함-14:2-5;언약을 새롭게 함-15:11-15) 개혁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4가지로 여호사밧도 2회에 걸텨(3-9절;19:4-11) 신앙 부흥 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아사가 종교 개혁의 결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과 같이(14:6-15;15:19) 여호사밧 역시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10-19절).
 한편, 본문은 여호사밧이 행한 통치의 서론 부분인 만큼 그의 개인적인 인격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1) 사명자에게는 스스로 강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선왕(善王) 아사 아래서, 즉 비교적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랐고 다른 왕들에 비해서 왕위 계승도 별 잡음이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 그러나 당시 대외적 정황을 보면 북쪽에는 강력한 아합 왕이 3년째 치리하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애굽과 같은 열강(列强)들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강하게 하여 왕권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처럼 여호와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들은 항상 방해하는 사단의 위협 속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날마다 경건의 연습과 훈련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악한 세력에 대해 스스로 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강하게 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자기 편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자기 이성적인 노력으로 애쓰는 것이라기 보다는 여호와가 자기 편에 서 계시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신앙에 있어서 믿음의 선배들을 따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말씀 속에 타나나 있지만 그 구체적 바업에 있어서는 각 개인이 다 다를 수 잇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배들이 어떤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하는 사실들을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3절)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고 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다윗의처음 행위를 본받았다는 것은 그가 선한 일만을 본받으며 악하고 부패한 행위들은 버렸음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선과 악아 대해 민감한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3) 신앙인들은 실천적인 면에서 열정적인 가슴과 냉철한 지성을 함께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였다(6절). 그는 또한, 5명의 방백과 9명의 레위 사람, 그리고 2명의 제사장들을 파견하여 단순한 율법 지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실천적인 영역, 즉 백성들의 관습과 사법적인 일들에까지 세밀한 교육을 하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러한 지성적인 치밀함이 바가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밑거리 되었을 것이다. 열정은 소유하고 있지만 지성적인 냉철함이 부족하여 어떤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왕왕있다. 하나님은 경우에 따라 세밀하 가르침을 주시지만 그렇지 않고 단지 원리들 만을 보여 주시기도 하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이런 면에서 남다른 연구와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4) 부귀와 영광은 성실한 신앙으로 인해 주어지는 축복이자 추구해야 할 목표는 아니라는 거이다. 여호사밧으 의로움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가 백성들로보토 사랑을 받으며(5절) 부귀와 영광을 누리도록 하셨다. 그러나 그 반면에 토지를 많이 수유함으로써 스스로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나봇의 포도밭을 강제로 빼앗았던 당시의 이스라엘 왕 아합은(왕상 21:1-16) 백성들에게서 사랑도 받지 못하고 비참한 말로(末路)를 맞이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언제나 부귀와 영광에 연연해 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만 몰두해야 할 것이다.

 * 사회 개혁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종교와 교육, 그리고 백성들의 습관과 재판 제도 등에 걸친 광범위한 여호사밧의 개혁 운동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운동을 함에 있어 어떠한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나. 물론 당시 유다는 신정국가(神政國家)라는 독특한 상황에 있었고 오늘날의 국가들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섞여 사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 대비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신정국가의 정황이 오늘날의 국가에 적용될 수 없다고 일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개혁에 임하는 여호사밧의 태도에 대해 살펴보면서, 사회 개혁을 위해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개략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첫째, 여호사밧은 사회 문제를 접함에 있어서 단지 신앙 윤리적인 측면에서만 고려하는 편협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사회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고 매일 재판하녀 백성들을 치리하는 방백 다섯을 택하여 교육 현장에 내려 보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 정치, 문화 방면의 문제들을 단순히 신학적인 토론의 주제로 삼거나 윤리적인 평가만을 내림으로 힌해 실제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단지 기독교 라는 옷만을 당면한 문제 위에 입히고 만다. 또한 우리는 단지 친절한 마음과 선한 의도만 가지면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항상 어떤 실제적인 문제에서는 세속인들의 방법대로 질질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어던 일들의 구체적인 결과가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려하는 습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각 방면의 전문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느데, 이렇게 함으로 성도는 그 결과가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공동체를 위하여 옳은 것인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둘째, 여호사밧은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책임감이 투철했다. 즉, 그는 솔로몬과 같이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이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1:10)하는 심정으로 교육 사업에 전념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치이며 믿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일역(一役)을 담당하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든지 마땅히 본받아야 할 태도이다. 왜냐하면 사회와, 가난하고 불의를 당하는 이웃에 대하여 선을 행하는 것은 선택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사회를 보호하시고 유지시키시는 동안 성도들은 그 책임들을 다 잘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여호사밧은 무엇보다 여호와께만 구하고 의지하였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보다 사회운동 자체를 더 우선으로 두고, 자신의 정의감을 무기로 삼과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장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다(엡 6:12). 그러므로 이러한 싸움의 본질을 이해하여 우리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께 전심으로 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충분히 고려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결론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 즉, 기독교인이 사회 개혁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두 가지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마 22:37-40).

 * 신앙과 율법.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과 율법이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하여 구약을 멀리하고 신약만을 좋아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의 규례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한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갈 3:11)는 말씀을 오해하여 누구든지 신앙 양심을 따라 살면 되는 것이지 구체적인 율법의 규례들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참으로 이런 편견은 율법과 율법주의를 혼동하여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잇다. 진정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주의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결코 율법을 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31)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자신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했다(마 5:17). 그러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율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본 주제 강해를 통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잠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첫째,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준다(롬 3:19, 20). 우리는 항상 신앙에 철두 철미(徹頭撤尾)하지 못한 약점을 지니고 산다. 그래서 우리가 냉철한 신앙적 지식을 소유하지 못하면 자칫 죄의 올무에 걸려 들기 쉬운데, 그때 율법이 그 죄를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째, 율법은 구체적인 신앙 성장에 도움을 준다.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된다고 했다(갈 3:24). 이것은 신앙이 있기 전이나 후에나 다 해당된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어떤 면에서 볼 때 율법은 구체적으로 신앙 생활의 방해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또한 그것을 극복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우리가 더욱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살아있을 동안만 구속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롬 7:1) 신앙의 본질에는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율법이 구원을 얻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을 소유한 자가 지켜야 하는 규칙과 법률이 율법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율법은 성도의 올바른 신앙 생활을 위한 길잡이가 되는 것인 만큼 사랑 안에서(롬 13:10) 율법을 교육하고 배우는 일은 구약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역시 중요하다 하겠다.

 2. 여호사밧의 번영(17:10-19)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실시한 제 1, 2차 개혁(3, 4, 6, 7-9절)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 나타난 축복의 사실을 언급하는 본문은 주로 여호사밧이 취한 국방 정책을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함께하심으로 내려주신 축복을 크게 1차적인 것과 2차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바, 전자는 여호와께서 직접 유다를 보호하신 것(10, 11절)이고 후자는 유다로 하여금 국방을 강화하도록 허락하신 사실(12-19절)이다.
 종교 개혁에 성공한 여호사밧은 국가적으로 일치된 힘을 갖고 국방을 강화하는 데 몰두하였다. 그런데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축복을 내리셔서 주위의 나라들에게 여호사밧을 심히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셨다(10절). 그리고 이와 더불어 여호사밧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는 축복 또한 주셨다(11절). 그래서 여호사밧은 정복 도시들에다가 수비군을 주둔시키고(1, 2절)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여(12절) 유다가 116만명의 대군을 거느리는 군사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여호와 앞에서 바로 행한 결과였다.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1) 세계의 국제 정세(政勢)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뿐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유다는 솔로몬 시대 이후로 주변의 열국들로부터 갖가지 위협을 받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다가 지정학적으로 세계 문명의 중심지들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들을 가로질러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수에 있어서나 국력에 있어서나 보잘것 없는 유다는 쉽게 열국의 공격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왕 여호사밧을 축복하시사 유다를 열국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이것은, 단순히 세계 정세가 국제 간의 이권(利權)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변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2) 모든 일의 최우선 순위는 여호와 앞에서 신앙으로 바로 서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여호사밧이 왕위에 오를 당시는 자칫하면 선왕(先王) 아사가 평생에 샅아올린 유다의 번영이 무너질 수도 있는 다굽한 상황이었다. 아사가 그의 말년에 거의 여호와를 떠나 있어 백성들의 생활 속에는 우상 숭배가 횡행하고 민심(民心)이 흉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화에서 여호사밧은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왕권을 장악하는 일에 먼저 주력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먼저 힘썼다. 이로 말미암아 당장의 상황도 훨씬 빠르게 수습되었고 여호사밧이 본래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처럼 어떤 급박한 일들을 잠시 뒤로하고 먼저 여호와 앞에서 신앙을 점검하는 일이 세인(世人)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으나 그 나중의 결과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월등하게 뛰어날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이 훨씬 더 크고 높음을 인정하여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Article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