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요아스의 이십 삼 년에 - 본절에 기록된 연대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1) 북이스라엘의 예후가 28년간 통치하고 죽은 것이 요아스의 23년에 해당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후의 제 7년에 유다의 요아스가 즉위했고 예후는 28년간 통치했으므로 이때는 요아스의 21년이나 22년 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Keil). 그래서 요세푸스(Josephus)는 21년이 옳다고 주장한다. (2) 만일 이것이 옳다면 10절에 요아스의 37년은 이스라엘의 여호아하스가 17년간 통치한 (1절) 기간에 해당될 것이므로 10절의 연대기 문제와 12:1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23년을 고집하는 일부 학자들은 10절에 기록된 요아스의 37년을 39년으로 수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다(Thenius). 그 뿐만 아니라 70인역(Aldina 판)도 이 10절을 3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70인역(LXX)의 39년은 1절의 기록에 따른 일방적인 수정일 뿐 당시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대기 기록 방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Keil, B hr). 한편 본절에서 요아스 23년이라고 기록한 것은 필경 사의 착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B hr). 그래서 혹자는 이 구절을 갖고 즉위 연대를 계산하지 않은 연대 계산법을 채용한 불분명한 것이라고 한다(Wycliffe).
====13:2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 "여로보암의 죄"는 그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그것을 가리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신(神)이라고 하며 섬긴 우상주의이다(왕상 12:26-33).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범하였던 우상 숭배(출 32:1-35)와 마찬가지 죄악이다.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범죄자들의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그 죄에서 떠나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신다. 롬 2:4 참조.
=====13: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 그 때에 민중은 왕의 지도를 받아서 피동적으로 우상주의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범죄 사건에 있어서는 지도자만 아니라, 그 동조자들도 함께 죄책을 져야 한다. 죄에 대하여는 일반 민중도 마땅히 싸워야 한다. 히 12:4 참조.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 여호아하스의 시대에는 아람의 침략이 이스라엘에 계속되었던 사실이 여기에 지적되고 있다. 여기 "늘"이란 말(* )이 나왔고, 또 22절에도 같은 사실을 진술하면서 "항상"이란 말(* )이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여호아하스가 집권하는 동안(17년동안)이스라엘은 늘 아람의 침해를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와 그 부친의 죄값이다. (1) 여호아하스는 종교적으로 심히 부패하였다. 일반적으로 중한 징계가 심히 부패한 자들에게 임한다. (2) 그의 부친 예후가 우상주의자들을 징계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도 그 자신은 여로보암의 우상주의(왕상 12:26-33)에서 떠나지 않았었다(왕하 10:31). 이와 같이 외식한 그 부친의 죄값도 여호아하스에게 임한 것이다. 출 20:5 참조.
=====13: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 여호아하스는 이때까지 범죄를 계속하여 왔지만 환난을 당하여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태도는 위급한 때에만 도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부족한 믿음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의 긍휼은 이렇게 무한하시고 지구성(持久性)을 지녔다. "간구한다"는 말(* )은 '달래다''어루만지다'란 뜻을 가진다. 여호와의 노하신 얼굴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죄인이 낮아짐이다. 그의 낮아짐은 구체적으로 그의 간구하는 태도로 증명된다. 이는 저희의 학대 받음을 보셨음이라 - 이 문구는 하나님의 긍휼을 가리킨다. 그의 백성이 악인들의 박해를 몹시 받는 때에는 그가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도 한다.
=====13: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 이 "구원자"(* )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 이것이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나 혹은 그의 손자 제 2여로보암을 가리킨다고 하는 학자들이 있고, 혹은 그 때에 아람의 세력을 꺾은 앗수르 왕 아다드니라리 3세를 가리킨다는 학자도 있다(Martin Rehm, Dieser Helfer scheint der assyrische Konig Adadnirari III. 805-782, zu sein.-Die Bucher Der Konige, 1949,s. 101). 슈메켈(H. Schmokel), 할로(W. Hallo), 하란(M. Haran)등도 이 학설을 지지한다(John Gray, I & II Kings, 1964, pp. 594-595). 그러나 아직까지 확실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13:6-9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다시 징계를 받음과 및 여호아하스의 죽음에 대하여 말한다.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 민중도 악하여서 우상주의를 버리지 않으므로 여호와께서 다시 아람 왕을 보내어 그들을 징계하셨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국력(國力)은 심히 약해졌다. 이방 나라들은 우상을 많이 섬겨도 알마 동안 계속 강대해지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는 신약 교회의 모형으로서 특수한 나라였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13:10,11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 북쪽 나라 이스라엘 왕조는 요아스왕까지 12대째 내려오면서 그 모든 왕들이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우상주의(왕상 12:26-33)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
======13:12,13
이 부분 말씀과 같은 내용이 왕하 14:15-16에 다시 나온다. 그것이 중복적으로 기록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J.A. Montgomery). 그러나 본서의 저자가 요아스의 행적을 개괄적으로 말한 뒤에 다시 추가하여 그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말하고(왕하 14:1-14), 그 뒤에 이미 말한 것(12-13)을 거듭 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13:14-16
이 부분에서는 요아스 시대에 있었던 엘리사의 말년(末年) 행적을 말한다.
======13:22-25
여기서는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두 성읍을 아람으로부터 탈환한 사건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23절) - 곧,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창 12:1-2,17:7-8, 26:3-4, 28:13-14)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을 죄대로 갚지 아니하시고(원수에게 내어주시지 않고) 아끼신 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사실이 강조된다. 세 번 쳐서 파하고(25절 하반) - 이것은 요아스가 엘리사의 부탁대로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친 회수(왕하 13:18)와 같이 된 것이다. 전에 엘리사가 요아스더러 "땅을 치라"고 한 것은 일종의 행동 예언이었고 마술이 아니었다. 몽고메리(J.A. Montgomery)는,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땅을 치라'고 명한 것은 마술적 예조(Magical omens)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예언자의 사역 성격이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학설이다(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The Book of Kings, 1951, pp434-435). 마술적 예조(魔術的豫兆)란 것은 여호와의 대언자들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이다.
요아스의 이십 삼 년에 - 본절에 기록된 연대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1) 북이스라엘의 예후가 28년간 통치하고 죽은 것이 요아스의 23년에 해당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후의 제 7년에 유다의 요아스가 즉위했고 예후는 28년간 통치했으므로 이때는 요아스의 21년이나 22년 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Keil). 그래서 요세푸스(Josephus)는 21년이 옳다고 주장한다. (2) 만일 이것이 옳다면 10절에 요아스의 37년은 이스라엘의 여호아하스가 17년간 통치한 (1절) 기간에 해당될 것이므로 10절의 연대기 문제와 12:1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23년을 고집하는 일부 학자들은 10절에 기록된 요아스의 37년을 39년으로 수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다(Thenius). 그 뿐만 아니라 70인역(Aldina 판)도 이 10절을 3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70인역(LXX)의 39년은 1절의 기록에 따른 일방적인 수정일 뿐 당시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대기 기록 방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Keil, B hr). 한편 본절에서 요아스 23년이라고 기록한 것은 필경 사의 착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B hr). 그래서 혹자는 이 구절을 갖고 즉위 연대를 계산하지 않은 연대 계산법을 채용한 불분명한 것이라고 한다(Wycliffe).
====13:2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 "여로보암의 죄"는 그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그것을 가리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신(神)이라고 하며 섬긴 우상주의이다(왕상 12:26-33).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범하였던 우상 숭배(출 32:1-35)와 마찬가지 죄악이다.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범죄자들의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그 죄에서 떠나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신다. 롬 2:4 참조.
=====13: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 그 때에 민중은 왕의 지도를 받아서 피동적으로 우상주의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범죄 사건에 있어서는 지도자만 아니라, 그 동조자들도 함께 죄책을 져야 한다. 죄에 대하여는 일반 민중도 마땅히 싸워야 한다. 히 12:4 참조.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 여호아하스의 시대에는 아람의 침략이 이스라엘에 계속되었던 사실이 여기에 지적되고 있다. 여기 "늘"이란 말(* )이 나왔고, 또 22절에도 같은 사실을 진술하면서 "항상"이란 말(* )이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여호아하스가 집권하는 동안(17년동안)이스라엘은 늘 아람의 침해를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와 그 부친의 죄값이다. (1) 여호아하스는 종교적으로 심히 부패하였다. 일반적으로 중한 징계가 심히 부패한 자들에게 임한다. (2) 그의 부친 예후가 우상주의자들을 징계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도 그 자신은 여로보암의 우상주의(왕상 12:26-33)에서 떠나지 않았었다(왕하 10:31). 이와 같이 외식한 그 부친의 죄값도 여호아하스에게 임한 것이다. 출 20:5 참조.
=====13: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 여호아하스는 이때까지 범죄를 계속하여 왔지만 환난을 당하여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태도는 위급한 때에만 도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부족한 믿음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의 긍휼은 이렇게 무한하시고 지구성(持久性)을 지녔다. "간구한다"는 말(* )은 '달래다''어루만지다'란 뜻을 가진다. 여호와의 노하신 얼굴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죄인이 낮아짐이다. 그의 낮아짐은 구체적으로 그의 간구하는 태도로 증명된다. 이는 저희의 학대 받음을 보셨음이라 - 이 문구는 하나님의 긍휼을 가리킨다. 그의 백성이 악인들의 박해를 몹시 받는 때에는 그가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도 한다.
=====13: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 이 "구원자"(* )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 이것이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나 혹은 그의 손자 제 2여로보암을 가리킨다고 하는 학자들이 있고, 혹은 그 때에 아람의 세력을 꺾은 앗수르 왕 아다드니라리 3세를 가리킨다는 학자도 있다(Martin Rehm, Dieser Helfer scheint der assyrische Konig Adadnirari III. 805-782, zu sein.-Die Bucher Der Konige, 1949,s. 101). 슈메켈(H. Schmokel), 할로(W. Hallo), 하란(M. Haran)등도 이 학설을 지지한다(John Gray, I & II Kings, 1964, pp. 594-595). 그러나 아직까지 확실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13:6-9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다시 징계를 받음과 및 여호아하스의 죽음에 대하여 말한다.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 민중도 악하여서 우상주의를 버리지 않으므로 여호와께서 다시 아람 왕을 보내어 그들을 징계하셨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의 국력(國力)은 심히 약해졌다. 이방 나라들은 우상을 많이 섬겨도 알마 동안 계속 강대해지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는 신약 교회의 모형으로서 특수한 나라였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13:10,11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 북쪽 나라 이스라엘 왕조는 요아스왕까지 12대째 내려오면서 그 모든 왕들이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우상주의(왕상 12:26-33)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
======13:12,13
이 부분 말씀과 같은 내용이 왕하 14:15-16에 다시 나온다. 그것이 중복적으로 기록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J.A. Montgomery). 그러나 본서의 저자가 요아스의 행적을 개괄적으로 말한 뒤에 다시 추가하여 그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말하고(왕하 14:1-14), 그 뒤에 이미 말한 것(12-13)을 거듭 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13:14-16
이 부분에서는 요아스 시대에 있었던 엘리사의 말년(末年) 행적을 말한다.
======13:22-25
여기서는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두 성읍을 아람으로부터 탈환한 사건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23절) - 곧,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창 12:1-2,17:7-8, 26:3-4, 28:13-14)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을 죄대로 갚지 아니하시고(원수에게 내어주시지 않고) 아끼신 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사실이 강조된다. 세 번 쳐서 파하고(25절 하반) - 이것은 요아스가 엘리사의 부탁대로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친 회수(왕하 13:18)와 같이 된 것이다. 전에 엘리사가 요아스더러 "땅을 치라"고 한 것은 일종의 행동 예언이었고 마술이 아니었다. 몽고메리(J.A. Montgomery)는,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땅을 치라'고 명한 것은 마술적 예조(Magical omens)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예언자의 사역 성격이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학설이다(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The Book of Kings, 1951, pp434-435). 마술적 예조(魔術的豫兆)란 것은 여호와의 대언자들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이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