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사사기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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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본장에서부터 시작되어 다음 장까지 연결되는 우상 숭배 및 제사장 사건은 그 정확한 발생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삼손 이후가 아닌사사 시대 초기로 보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개 사사 옷니엘(3:9 -11) 당시인 것으로 본다(keil, Wycliffe, Pulpit Commentary).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고 있었던 팔레스틴 중부의 구릉(丘陵) 지대를 가리킨다. 이곳에는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인 실로(Shiloh))및 벧엘(bethel)도 위치해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3:27 주석을 참조하라.
미가 - 이 이름은 '미카예후'(* )의 단축형으로 그 뜻은 '누가 여호와와같으리요'이다. 성경에는 서로 인물은 틀리나 이와 같은 이름을 소유하였던 자들이 여럿 나온다(삼하 9:12 ; 대상 5: 5 ; 대하 34:20 ; 느 10:11 ; 미 1:1).

=====17:2
어미에게서 많은 돈을 훔친 미가가 그 어미의 저주의 말을 듣고 돈을 다시 되돌려 주는 장면이다.
어머니께서...저주하시고 - 여기서 '저주하다'에 해당하는 '알라'(* )는 본래 신에게 '탄원하다', '간청하다'는 뜻이다. 미가는 어미가 돈을 잃고서 신께 탄원한이 같은 간구 자체에 어떤 주술적 신통력이 있는 줄로 굳게 믿고 있었다.
은 일천 일백 - 삼손을 유혹하는 대가로 들릴라가 블레셋 방백들에게서 받기로 약속한 돈의 액수와 동일하다. 16:5 주석 참조. 미가가 레위 소년에게 일년에 은 열을주겠다고 약조한 것만 보더라도(10절) 이 은 일천 일백은 엄청난 금액이었음을 알 수있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 미가는 어떤 용도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으나 처음에는 어미의 수중에서부터 거액의 돈을 훔치고서도 회개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어미가 자기 돈을 훔친 도둑에게 저주하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처럼 어미에게 돈을 돌려주며 자신이 도둑임을 자백했다. 고대 사회에서 저주는 하늘의 심판으로 여겨졌으며 단순히 입술을 통하여 난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 원하는 것을 그대로 성취시켜주는 대리자로 여겨졌다(J.V. Motyer). 그리고 다들 저주는 그에 상응하는 축복의 말을 함으로써 저주의 덫에서 풀려지게 되는 줄로 믿었다. 본절에서 미가의 어미가'내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한것도 그녀의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고대의 주술적인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분명 이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저주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장 1-6절 강해, '저주에 대하여' 및 신 28:15-19 강해 , '저주와 시련의 차이점'을 보다 참조하라.

=====17:3
내가...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 이처럼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저주의 덫에서풀어내기 위해 가증스러운 신상(神像)을 만들어 숭배하면서도, 그것을 여호와에 대한간절한 신앙의 표현인 양 여겼다. 이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행위이며(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가증스러운 범죄였다(롬1:23). 아뭏든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며 부패해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 우상이 하나인지 아니면 둘인지에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양하다. 여기서 '한 신상을 새기며'에 해당되는 '페셀'(* )은 돌이나 나무를 깍아 새긴 우상을 가리킨다(신 7;25).그리고 '한 신상을 부어'에 해당되는 '마세카'(* )는 아론의 송아지 우상처럼 주조하여 만든우상을 가리킨다(출 32:4). 이로 볼 때 미가의 어미는 분명 두 개의 우상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Hervey). 그러나 이와 관련 4절에서 '그 신상'이라고 하여 단수로 표현되어있고 18:20, 30에서도 '새긴우상'이라 하여 단수로 표현되어 있는 점에 의거하면 미가의 어미가 만든 우상은 하나 뿐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Cundall, Keil). 따라서 혹자는 이 양자의 견해를 절충, 미가의 어미가 먼저 은으로 주조한 뒤에 끌로 다듬고 조각하여 하나의 우상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뭏든 그 우상은 암송아지 형상을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론의 금송아지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을 것이다.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훗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도 이러한 금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단과 벧엘에 각각 하나씩 세운 적이 있다(왕상 12:28-30). 한편 대부분의학자들은 아론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겨왔던 금송아지는 불가시적인 여호와를 가시적인 형상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본다. 어쨌든 그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짓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이것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다(출 20:4, 23 ; 신 4:1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천지 만물을 조성(조성)하신 분이긴 하나 그분은 그 어떠한 형상으로도규정될 수 없는 참된 신이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같은 하나님을 지상의어떤 피조물의 형상으로 나타낸것은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가 되지 못하였다. (2) 여호와를 송아지 형상으로 만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애굽의 아피스(Apis)신과 같은 여타 신들 중의 하나로 본 것이니 이는 일종의 불경죄(不敬罪)에 해당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32:4 주석을 참조하라.

=====17:4
어미가 그 은 이백을 취하여... - 미가는 훔친 돈 은 일천 일백을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레 6:5에 의하면 도적이 훔친것을 주인에게 돌려줄 때는 훔친 것에다가1/5가치를 더하여 돌려주도룩 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은 200세겔은 미가가 은 일천 일백에 더하여 속죄금으로 지불한 바로 그 돈일 것으로 추정한다(Bertheau).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은 200세겔은 미가가 어미에게 되돌려 준 은 일천 일백 가운데서 떼어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Cassel). 즉 그들은 레 5:24의 율법이 여기에 적용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Keill). 전후 문맥상 이 두 견해중 보다 더타당한 견해는 후자로 볼 수 있다.
은장색 - 원어 '차라프'(* )는 '제련하는자', '세공하는 자'란 뜻이다. 곧은을 재료로 하여 여러 가지 장신구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장인(匠人)을 의미하는 말이다.

=====17:5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 미가의 신당은 하나님의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실로(수 18:1 ; 삼상 4:3, 4)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다. 1절 주석 참조. 이것은 그 당시에 실로가 종교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는단적인 증거가 된다. 그리고 미가가 하나님의 성소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파행적으로개인적인 신당을 소지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얼마나 문란했던가를입증해 준다.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 '에봇'(ephod)은 금실,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로 짜 어깨에 걸치는 의복으로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이다(출 28:6-8). 그런데 이 에봇이 우상처럼 숭배된 것은 기드온 때이다(삿 8:27).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에게서 전리품으로취한 모든 금으로써 에봇을 만들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기념하려고 했는데 이러한기드온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음란히 섬겼던 것이다(삿8:27). 본문에서 미가가 다시 에봇을 만들어 우상 숭배에 사용한 것도 아마 그 같은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드라빔'(teraphim)은 가정의 수호신 상으로서 고대로부터 근동 지방의 각 가정에서 숭배되던 우상이었다(창 31:19 ; 삼상 19:13, 16 ;왕하 23:24 ; 호 3:4, 5). 에스겔은 바벨론 왕이 점을 칠 때 이 드라빔을 사용했다고말하고 있으며(겔 21:21), 스가랴는 이 드라빔에서 거짓 예언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슥 10:2). 이로 볼 때 드라빔은 미가가 세운 제사장이 점을 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만든것 같다(Mattew Henry).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께서 친히세우신 것으로서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들이 그 직분을 세습토록 되어있다(출 28:1).그런데도 에브라임 사람 미가가 이처럼 독단적으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은곧 하나님에 대하여 월권(越權) 행위를 저지른 것일 뿐 아니라 죽어 마땅한 대역죄를저지른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도 우리는 당시의 타락한 이스라엘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17:6
그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으므로 - 이러한 표현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는데(18:1 ; 19:1 ; 21:25) 여기에는 왕정 제도에 대한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1) 부정적 측면 : 당시 이스라엘에는 전민족을 통솔하는 정치지도자가 없었으나, 통치법(統治法)은 있었다. 그 통치법은 바로 율법이었고 입법자는하나님 당신 자신이셨다. 이는, 이스라엘의 궁극적 통치자는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응당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그 통치에 순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할때 전백성의 결속은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늘 함께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진 않고 단지 이방 나라들의 세속적 왕정(王政)제도를 통해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것이다. (2) 긍정적 측면 :시일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늘어가고 그로 인해 여러 부차적 문제들이증가함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구체적으로 대행할 지도자가 실제적으로는 강력히 요청되었다. 왜냐하면 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여 자발적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더 잘 아셨기 때문이다(히4:15). 요컨데 이러한 요청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왕정을 허락하였으나, 당신의 우려하신 바대로 이스라엘의 왕정사(王政史)는 수많은 오점들로 얼룩지게 되었다.

=====17:7
본절에서 13절까지는 미가가 자기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5절)을 폐기하고 대신 한 레위인 소년을 제사장으로 삼은 경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유다 가족에 속한...레위인 -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레위인들에게는 여섯 도피성과 40여개의 성읍을 각 지파에서 떼어 주도록 되어 있다(민 35:6 ; 수 21:1). 그러나 사사기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무질서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이제대로 시행될리가 없었다. 그래서 본래 유다 지파의 땅에 살고 있던 이 레위인 소년도 자신이 거할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방랑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서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키지 못하고 생계의 방도를 찾기에만급급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고 율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들 역시 타락하거나 곤욕을 당하게 되기 마련이다(Matthew Henry).

=====17:8
미가의 집에 이르매 - 한때 베들레헴에 우거하던 이 레위인은 베들레헴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여행하던 중 우연히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된다. 아마도 미가의 신당은큰 길가에 있어서 여행자들의 눈에 쉽게 띄었는지도 모른다.

=====17:9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 베들레헴은 본래 레위인들에게 할당된 성읍들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레위인 소년이 베들레헴에서 살게 된 것은 자신들에게할당된 땅이 당시 블레셋의 치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Goslinga). 그러나 혹자는이를 근거로 하여 그가 레위인이 아니었으며 다만 레위인과 같은 역할을 베들레헴에서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Cundall). 그러면서 이에 대한 실증적인 예를 들기를 사무엘은 에브라임 태생이지만(삼상 1:1) 실로의 성전에서 제사장의 교육을 받아 레위인의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분명 레위 지파 중 고핫 가문의 사람이니 그 아들 사무엘도 당연히 레위인이 되기 때문이다(대상 6:16-34).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 나오는 소년도 레위인임이분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만일 이 소년이 베들레헴에서 교육을 받아 레위인행세를 했다면 굳이 그가 베들레헴을 떠났을 이유가 없다. 또한 그가 단지 레위인으로서의 역할만 행했던 비레위인이었다면 미가가 자기 아들을 폐위하고 대신 그를 제사장으로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가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지극히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바로 율법에 정한 그 레위인이었기 때문임에 틀립없다(11-13절).

=====17:10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 여기서 '아비'는 '우두머리'란 뜻으로 남을지도하며 권고하는 위치에 있는 자를 높여 칭하는 말이다(Hrvey, Gosilinga). 창 45:8에서는 요셉에게, 왕하 6:21에서는 엘리사에게, 그리고 사 22:21에서는 엘리아 김에게이 '아비'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었다. 반면 이에 상대적인 용어는 '아들'인데 이것은피교육자를 지칭하는 것이다(왕하 8: 9 ; 잠 4:10, 20). 한편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마 23:9)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높이는 자들을 경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한편 본절에서 '아비'와 '제사장'이란 말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제사장'(코헨, * )이라는 말 속에는바로 시민의 지도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바(삼하 8:18 ; 20:26 ; 왕상 4:5 ; 대상 18:17 ; 욥 12:19 의미가 '아비'라는 개념 속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주리라 - 일정한 거처 없이 생계에 곤란을 느꼈던 이 소년에게 해마다 일정한 봉급이 주어진다는 것은 매우 만족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돈으로성직자를고용하거나 고용되는일은 물질 만능적인 타락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시대를 막론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성직자들은 보수보다 일 자체에 관심과 기쁨과 보람을가져야 한다. 따라서 비록 보수가 적더라도 그일이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명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해야한다. 여기 레위 소년은그러한 사명감과는 상관없이 보수에만 관심을둔 타락한 성직자였으니 이에서 역으로 경성(경성)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의복 한벌 - '한벌'에 해당하는 '에레크'(* )는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것을가리키며 출 40:23에서는 '진설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에레크'를옷의 단위로 보고 열두 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KJV나 개역 성경처럼 이는 곧 상의와 하의 한 벌을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17:11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 혹자는 본절의 의미를 레위인 소년이 미가의 아들(5절)과 같은 종류의 비정상적인 제사장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본절의 의미는 레위 소년이 미가의 아들처럼 호의적인 대접을 받고그의 집에서 편히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17:12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 이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미가가 레위인의 손을 채웠다'라는 뜻이 된다. 이로 보아 아마 미가는 출 29:24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제사장의 임명에 따른 성별 의식을 이 레위 소년에게 행한것으로 생각된다(Lange). 그러나제사장의 성결 의식만을 흉내낸 이러한 임명식은 완전히 율법에서 어긋난 것이다. 5절주석 참조. 여기서도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율법에 무지했던가를 발견하게 된다.

=====17:13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 이러한 미가의 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하나님을 가나안의 우상과 동일 선상에서 미신적인 대상으로 섬겼음을 분명히 알수 있다. 미가는 파행적인 방법으로 세운 레위인을 합법적인 제사장으로 여겼을뿐만 아니라 12절과 같이 행한 제사장 임명식을 정당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비록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규례가 있다 할지라도(출 28:1 ; 민 17장) 미가는 레위인이면 모두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레위인을통하여 미가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받은 저주(2절)가 자기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가정을 번영케 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즉 미가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드라빔과 같은 일개 가정의 수호신에 불과하였다(Goslinga).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우상 숭배로 인한 혼합주의에 의하여 크게 왜곡되어 있었다.

 

 

 

   본서 기자는 지금까지 사사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
들을 서술해 왔다.  그러자 본장에서부터 본서 기자의 초점은 사사들이  아닌  평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사에 맞춰져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이 없
고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때(6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생활
을 해왔는가를 조명해 주고 있다.  그중 먼저 본장에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미가의
가정이 소개된다.  즉 본서 기자는 미가의 가정을 통하여 그 당시의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와 종교와 명예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관렴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이제 이를 하나하나 살펴볼 것 같으면 곧 다음과 같다.
 (1) 황금 만능주의의 팽배 : 본장은 어미의 돈을 훔친 미가와 돈을 훔친 자를 저주하
는 그 어미의 대화로 시작되고 있다(1, 2절).  그리고 후반부에는 부유한 미가가 돈과
재물로 레위 소년을 자기 가정의 사적인 제사장으로 고용하는 기사가 나온다(7-13절).  
이러한 황금 만능주의적 경향은 본장 뿐만 아니라 18장에서도 지배적으로  대두되는데
미가의 제사장은 후에 좀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자리를  옮기
게 된다(18:19, 20).  이로 볼 때 타락한 시대의 대표적인 양상들이 그 당시의 이스라
엘에서도 팽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종교의 혼합주의화와 타락 : 당시의 이스라엘의 종교는 여호와 종교로서의  모양
은 있으나 실상은 가나안 종교와 완전히 혼합 변형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돈으로 우
상을 만듦으로써 그 돈을 여호와께 바치는 것처럼 여긴다거나(3, 4절), 가정 수호신인
드라빔을 가졌다고 해서 여호와의 제사장인 것처럼 행세한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5
절).  특히 미가 어미의 저주는 복술(卜術), 점(占), 마술(魔術) 등과 함께 이방 종교
에서 주로 사용되는 우상 숭배적 행위로서(2절) 성경적 의미의 저주와는 다른  것이다
<1-6절 강해, 저주에 대하여 ; 신 28:15-19 강해, 저주와 시련의 차이점>.   이로  볼
때 당시 여호와의 종교가 이방 종교의 사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변질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3) 지나친 명예 추구 : 미가는 재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신당까지  두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독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5절).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성막과 법궤가 있는 실로에서만 세울 수 있는 제사장을 개인의  가정에
둠으로써 만족을 추구했다(7-13절).  특히 제사장도 아닌 미가는 레위 소년을  제사장
으로 세우면서 그를 거룩히 구별하는 의식을 행했는데(12절) 이는 곧  자신을  사이비
종교의 교주(敎主)와 같은 위치로 끌어 올린 행위이다.  이러한 미가의 행위를 볼  때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현세적인 명예 추구에 골몰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1. 미가의 새긴 우상과 신당(17:1-6)
   에브라임 사람 미가가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된 배경과 과정이 설명되어 있는 부
분이다.  이제 이를 발단 및 전개, 결과 별로 살펴볼 것 같으면 곧 다음과 같다.
 (1) 발단 : 미가의 우상이 만들어지게 된 발단은 미가가 그 어미에게서 훔친  돈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 돈은 은 일천 일백 세겔인데 이것은 일반 노동자들이  십년  동안
쓰지 않고 모아야 모을 수 있는 엄청난 액수였다<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미가가 이렇게 큰 돈을 어미에게서 훔친 것이나 그 돈을 훔친 자를  저주하는
그 어미의 모습을 볼 때(2절), 모자(母子) 간에 재산 때문에 모종의 암투가 있었지 않
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2) 전개 : 일다가 미가가 그 어미의 저주를 두려워하여 어미에게 돈을 돌려주므로서
재산 때문에 있어 왔던 모자 간의 갈등은 해소된다(3, 4절).  이처럼  그들이  우상을
만들게 된 것은 한번 저주한 돈으로 인하여 당할 화를 면하려는 미신적인  사고  방식
때문이었다.  한편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에봇과 드라빔까지 만들었는데(5절)  이
것은 저주를 면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현실의 복을 구하는 기복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
다.  결국 그러한 그들의 행위는 우상 숭배자의 종교적 심성을 잘 나타내 보여 준다.
 (3) 결과 :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우상은 결과적으로 개개인의 우상  숭배  대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5절).  물론 미가의 어머니는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면서 그것이 여호
와께 대한 간절한 신앙의 표현인양 여겼지만(3절) 결과적으론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
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만든 행위와  다름없었
던 것이다(롬 1:23),.  그리고 미가 또한 신당을 만들고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는
등 어느 정도의 종교적 외양은 구비하였으나 그것 역시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나  참
다운 헌신이 없는(요 4:24 ; 롬 12:1) 한갖 종교 놀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
대에도 이처럼 한갖 '놀이'에 불과한 종교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것은 모두 종교를 빙자하여 자신의 부와 명예와 종교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숭배  행위
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며 '통회하는  마음'이지(시
51:17) 결코 종교적인 외양은 아닌 것이다.

   저주에 대하여 - 본문에는 미가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돈 때문에 저주를 하는  장면
이 나온다(2절).  그리고 그 돈을 훔친 도둑이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선  은으로
신상(神象)을 만들어 저주를 풀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3, 4절).  여기서 우리는 고
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저주관(詛呪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이와
관련 '저주'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 정의 : 저주는 축복의 상대어로서 어떤 주술적인 행위나 말로써 타인에게 재난이
나 질병등의 징벌이 가해지기를 기원하며 선포하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저주를  신의
심판으로 여겼기 때문에 한번 저주를 선언하면 그것이 그대로 실현된다고 믿었다.
 (2) 용도 : 저주는 보복이나 징벌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계에서의  협정이
나 조약, 또는 각 지파들간의 계약 등에서는 반드시 저주 조항을 삽입했다.  특히  구
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언약에서도 저주 조항이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이 여호와의 주권(Lordship)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저주가 임하리라는 것이다(9:15  ;
신 27:15, 16 ; 28:15-19, 20-36 ; 삿 9:15).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서도 저주 조항이
나타나는데 간음이나 살인, 도덕질과같은 비도덕적 행위를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하
리라고 되어있다(민 5:18-27).
 (3) 저주의 결과 : 한번 저주가 내리면 인간 자신이 해를 입기도 하고 그가 지닌  재
산에 송해가 가기도 한다.  이와 관련 성경은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
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 3:33)고 하였다..
 (4) 저주의 효과 : 저주의 효과는 이방인의 저주와 신앙인의 저주가 다르다.  이방인
의 저주는 주로 단순한 보복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로 인한 파급
효과는 저주하는 당사자의 마음의 위안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
앙인에게 가하는 저주는 진노의 심판이 아니라 징계의 채찍이기 때문에  받는  자에게
있어선 윤리적인 각성이나 신앙심의 진작(振作)이 된다.<신 28:15-19 강해, 저주와 시
련의 차이점>.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두기야와 그의 고을과 백성과 가족이 저주을  받
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 역시 그들로 하여금 각성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렘 24:9 ; 25:18 ; 42:18).
 (5) 기타 : 이외에도 어떠한 사실을 부인하거나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저주하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으로 인한 곤경을 면하기 위해 도무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저주하며 맹세한 베드로의 경우가 바로 그런 예이다(마 26:74).  한편 성경에서는  남
을 모해(謨害)하는 마음에서 함부로 저주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출 22:28 레  19:14).  
또한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욥 2:9).  그리고  예수님께
서는 오히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
도하라"(눅 6:28)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
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15)고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저주에
대하여 취해야 할 성도의 바른 자세를 배우게 된다.

         2. 가짜 제사장 레위 소년(17:7-13)
   미가가 레위 소년을 자기 집 제사장으로 세운 사건을 통하여 새로운 차원의 시대적
타락상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앞서 미가는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긴
했으나(5절) 그것이 율법에 저촉된다는 사실(민 8:19)을 알고는 늘 불만에 처해  있었
다.  그러던 차에 그는 베들레헴을 떠나 생활의 궁여 지책(窮餘之策)을  찾아  헤메는
레위 소년을 만나(7-9절)그를 자기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운다(10-13).  이는 곧  타락
한 백성과 타락한 성직자의 야합의 결과인바 본서 기자는 이에 대하여 '그때에는 이스
라엘의 왕이 없으므로'(6절)라는 안타까운 심정의 주석을  가하면서  기록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본문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저들의 타락상을 살펴보면 곧  다음과  같
다.
(1)미가와 레위 소년 간에 주고 받은 흥정은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이 레위 소년은 제사장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 자
리를 수락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제사장직은 아론의 자손
만이 수행할 수 있는 직분이면(민 18:1)이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히  구별된다<민
8:14-22 강해, 레위인의 제사장직>.  다음으로 제사장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
여 예배를 책임지며 성막이나 성전의 일을 돕게 되는데 이 레위 소년은  우상을  앉혀
놓은 미가의 사당에서 일하는 것을 전혀 개념치 아니하고 만족하여 수락했기 때문이다
(10절).
 그 뿐 아니다.  제사장을 거룩히 구별하는 예식은 반드시 선임 제사장의 기름 부음에
의해서 치루어지는데(출 29:29), 이 레위 소년은 일개 백성인 미가에  의해서  제사장
예식을 받았기 때문이다(12절).  이것은 바로 호세아 선지자가 탄식하여 말한 대로 여
호와에 대한 지식이 없어 멸망을 초래케 하는 망령된 행위들이었다(호 4:6).   그런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성직을 부여받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겉치례적인 의식으로  목사
안수가 주어지며 목사의 직분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불경한 사람들이 많다.  이
또한 시대적 타락상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으니 새로운 종교 개혁 운동이 절실히 요구
된다 하겠다.
 (2) 타락한 성직자 뒤에는 묵인한 백성이 있고 성직자들을 업수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레위인에 관한 율법에 따르면본래 레위인의 생계는 이스라엘의 각 지
파에서 담당하게 되어 있다(민 18:21).  그런데 본문에서는 레위인의  생계의  방도를
구하기 위해 여기 저기를 방하가하며 유리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백성들의  이러한
무책임함이 레위인들로 하여금 본연의 사명을 떠나도록 만든 것이다.
 한편 13절에 언급된 미가의 말은 그 당시의 미신적인 여호와 숭배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는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향한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제사장
을 세우는 등 외형적 종교 의식만 갖추면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축복을 받을 줄로 착
각하였던 것이다.  미가가 거하던 에브라임 산지(1절)는 당시 하나님의  성막이  있던
실로(수 18:1)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다.  그런데도 미가가 이러한 잘못을 범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드르이 종교적 혼합주의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가
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물질관(物質觀) -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재물을 개인
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인간의 권리는 잠정적인 것임을  안
다.  또한 모든 재물의 참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그것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함을 안다(눅 12:13-21).  그리고 또 성경이 가르쳐 주는바 재물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선하게 사용될 수 있음도  어=가다(행
2:44, 45).. 이제 이와 관련하여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물질관을 살펴봄으로 이제  그
리스도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물질관을 재정립해 보도록 하자.
 1) 구약의 물질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이나 재산에 대한 개념이 생겨난 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였
다.  본장을 통하여 볼 때 가나안 정착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재력
(財力)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2, 10절).  한편 이스라엘의 전형적 재물관은
토지에 대한 율법에서 발견할 수 있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토지에 대한 독점적인  소
유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안식년과 희년을 제정하였다.  즉 안식년에는 토지
를 놀림으로써 토지 남용으로 인한 황폐를 방지하였으며 희년에는 이전에 팔렸던 토지
가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부의 편중을 막았다(레 25:1-7, 23-25).
 이로 볼때 구약 시대에도 물질에 대한 청지기 의식이 철저했으며 그렇다고 해서 금욕
주의처럼 재물을 경시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잠언 기자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
하여 얻는 재물을 귀하게 보았으며(잠 10:4 ; 13:4), 선하게 재물을 모으는 데는 반드
시 여호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잠 16:3).  그런데 본장에서 미가의 경우,  그
는 지나친 재물의 소유로 인하여 누구보다 더 타락한 행위를 일삼았다.  따라서  올바
르게재물을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물을 선하게 사용하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
광돌리는 일이 더욱 중요함을 알 수 있다.
 2) 신약의 물질관
 신약의 물질관은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잘 나타난다.  첫째, 그분은 하나
님을 섬기는 것과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상충적이며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생의 주 목
적이 될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마 6:24 ; 눅 8:14).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
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단언하신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둘째, 그분은 재
물을 진실하고 참되게 써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재물이 이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
이라고 가르치셨다(마 19:21 ; 눅 12:21).  셋째, 그분은 올바른 재물 선용을 통해 진
정한 사랑의 정신을 고양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눅 19:9)라고 하신 것도  그것을 진정한 형제애가 물질보다 중요하며 이웃의 궁핍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표현임을 분명히 알고 잇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아 기피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물질을 선한 목적에 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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