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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에브라임 사람들 - 이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가장 불평 불만이 많은 지파 사람들 이었다.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므낫세 지파와 더불어 자기들이 기업으로 받은 영토가 다른지파에 비해 좁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다. 또한 훗날에도 그들은 본절에서 기드온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사사 입다에게도 하면서 다투었던 적이 있다(12:1). 이러한 저들의 소위(所爲)는 거의 고질적이었는데 훗날 이스라엘 왕국을 분절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로보암 역시 이 에브라임 사람이다(왕상 11:26).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이 어쩜이뇨 -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에 빠진 지파는 비단에브라임 한지파 뿐만 아니라 여러 지파들이 었다(6:35). 더군다나 에브라임 지파는전쟁 말기에서나마 참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러한 말로 비난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 중에서 자신들이 주도권(hegemony)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기드온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높여 주면서 그들의 노를 풀었던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난다(2,3절).

=====8:2
나의 이제 행한 일이...비교되겠느냐 - 이 대답에서 기드온의 성품이 드러난다.그는 겸손하고 온유하여 명예와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의 분별력은 뛰어나 에브라임 사람들의 불평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내부의 분열위험을 감지하고 지혜롭게 예방책을 강구하였다(잠 15:1).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낫지 아니하냐 -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를 거둔 후남은 포도를 의미한다(사 24:13). 때문에 KJV, NIV, RSV등은 본절을 '에브라임의 포도찌꺼기가 아비에셀의 수확한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로 번역하였다. 여기서 '포도 찌꺼기'즉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보다 맛이 시고 질도 훨씬 뒤떨어진다. 그런데도기드온이 에브라임 산지의 '끝물 포도'가 자기 고향에서 생산되는 '맏물 포도'보다훨씬 좋다고 말한 것은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기드온 집안 사람들인 아비에셀(6:11)이처음부터 끝까지 세운 공로보다 전쟁의 막바지에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훨씬더 크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물론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방백을 죽였을 뿐 아니라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등 큰 역할을 하였음에는 틀림없다(7:24,25). 그러나 아무리 낮게 평가하여도 싸움의 전과정을 주도했던 기드온과 그의소속 가문의 업적은 에브라임 지파의 것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떨어질리 없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이처럼 겸허한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심때문이었다. 즉 그는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지파들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은 원하지않았었다. 그러므로 그는 반목(反目)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신앙의 정도(正道)에 자신을 승복시켰던 것이다(마 5:9; 빌 2:3).

=====8:3
하나님이...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 미디안 연합군이 기드온의 군대에게 쫓겨 도망갈 때 요단 나루터에서 그 길목을 지키고 있던 에브라임 지파가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인 사건을 가리킨다. 7:25 주석 참조. 그런데기드온이 이 사건에 대하여 '하나님이...너희 손에 붙이셨으니'라고 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그토록 명예로운 일을 하게 하시지 않았느냐? 는 일종의 반문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1.2,pp.170f).
나의 한 일이 어찌...비교되겠느냐 - 즉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미디안 두 방백을 죽이는 명예로운 전과(戰果)를 올리게 하신 이상, 그밖에 기드온 자신이행한 모든 일들은 그 같은 영광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에 블과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하여도 과격한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는 교훈이 꼭 들어맞은 경우이다. 만일 기드온이 자신의 지도자적 권위에 도전해 온 에브라임 지파를 용납치 아니하고 또한 저들의 시비를 공박하려고만 들었다면 이처럼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러지 아니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빌 2:3).

=====8:4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명이...피곤하나 - 사실 이들은 '모레 산 앞 골짜기'(7:1), 즉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적과 싸우며 요단 나루턱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적군을 추격하였으니 매우 지쳐 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는 기드온이 자신과병사들을 위하여 채면 불구하고 숙곳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청한 사실에서도 분명히드러난다(5절).
따르며 - 기드온과 그의 정예병 삼백 인은 비록 피곤하고 지쳤으나 끝까지 적을추격했다. 이들이야말로 충실한 정병(精兵)이며, 최후까지 긴장하여 희생적 봉사에 참여한 순교적 투사들이었다. 승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잠시 출전하여 다행히 두 적장을죽인 공로를 내세워 이익과 명예를 얻으려 했던 에브라임 사람들과는 그유가 다른 충성이었다. 애굽의 모든 영화와 부귀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기를 더 원했던 모세의 신앙과 가히 비견될 만하다(히11:23-26).

=====8:5
숙곳 사람들 - '숙곳'(Succoth)은 요단 동편의 갓 지파가 기업으로 차지한 성읍이다(수13:27). 이곳은 얍복 강에서 북쪽으로 약 16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본절에서 '숙곳 사람들'이란 그곳에 거하는 이스라엘 거민인지 가나안 원주민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기드온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스스럼없이 떡덩이를 요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거민은 갓 자손들일 것이다.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 본절에는 '세바'와 '살문나' 두사람이 모두 미디안 왕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은 각기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의 왕 중 어느 한 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미디안 두 왕'이라 칭한 까닭은 아마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이 연합하여 미디안 연합군을 이루었기 때문인 듯하다(6:3). 즉 세바와 살문나는 미디안 연합군의 두왕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 두 왕은 '오렙'과 '스엡'이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우는 중에(7:25) 요단 강을 건너 도망쳤을 것이다.

=====8:6
숙곳 방백들 - '숙곳' 거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떡을 주겠느냐 - 기드온이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해서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므로 떡을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숙곳 방백들은 기드온의 300명 용사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드온의 군대가 미디안에게 패할 경우 미디안으로부터 받게 될지 모를 보복을두려워하여 그들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기드온에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동족의 슬픔과고통을 외면한 이기주의적이며 기회주의적인 태도였으니 응징받아 마땅했다(Wycliffe,Keil & Delitzsch).

=====8:7
여호와께서...내 손에 붙이신 후에 - 모래 산 앞 골짜기에 진쳤던 대적들을 기습한 이래(7:19이하) 계속된 추격전으로 인해 기드온의 용사들은 기진 맥진한 상태였다(4절). 거기다가 예상 밖의 푸대접을 받은 터였지만, 기드온은 전의(戰意)를 상실하지않고 오혀려 승리의 확신을 더욱 굳게 다지고 있다. 오늘날 주의 일을 하는 데에도 이와 유사한 어려움이 많이 닥친다. 응당 협력해야 할 사람이 의외로 냉담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여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고후 4:8; 빌 3:14).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살을 찢으리라 - '들가시'는 광야에서 자라는 매우 딱딱한 가시를 의미한다. 히브리 원문에서도 이것은 '광야의 가시'(*, 코체 하미드바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찢으리라'는 말은 문자적으로'타작하리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의 표현을 '기드온이 그들을 돌가시와찔레 위에 눕혀 놓고 타작용 기구로 그들 위에 눌러 끌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Cundall). 또한 어떤 학자들은 '타작하다'란 맡을 '가혹한 형벌을 가하다'란 의미의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Bertheau). 아무튼본절은 기드온이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방백들의 살을 타작하듯이 징벌하겠다는 의미로 기드온의 극도로 분노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 까닭은 지금 기드온이 수행하고 있는전쟁이 하나님의 성전(聖戰)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5:13-15 강해, '성전'(聖戰)을 참조하라. 한편 오늘날도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관망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정죄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적극 동참하는 까닭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승리가 불을 보듯 명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8:8
브누엘 - '브니엘'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숙곳 동쪽 약 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에드 다합 에쉬 쉐르퀴예'(Tell edh-Dhahab esh-Sherqiyeh)인 것으로추정된다. 이곳은 숙곳과 마찬가지로 얍복 강 바로 위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었다.이 '브니엘'이란 명칭은 야곱이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 그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하여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칭했던 데서 비롯되었다(창 32:30).

=====8:9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 - 기드온은 숙곳 방백들에게는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라고 말했다(7절). 따라서 이는 '적들을 완전히 섬멸시킨 후자신이 평안히 돌아오는 때'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망대를 헐리라 - '망대'는 성읍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파수꾼들은 이 곳에서 적의 침입을 관찰하고, 적의 침입이 있을 때 나팔을 불어 전 성읍에 위험을 알린다. 따라서 이러한 망대가 무너지면 그 성읍이 적에게 점령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기드온이 이 '망대'를 헐어 버리겠다고 브누엘 사람들에게 위협한 것은 그 성읍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

=====8:10
갈골 -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은 카르카리아(Carcaria) 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카르카리아' 성은 사해 동쪽의 '페트라'(Petra)에서 남쪽으로 하루 길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모압 사람의 지경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속은 갓 지파의 영역에 있는 '노바와 욕브하'(11절)와 멀리 떨어져 있는곳이므로 '갈골'의 위치로는 적당하지 않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1. 2, p.353). 한편 히브리 본문에는 '갈골'을 보통 '울타리로 쳐진 곳'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는 '양의 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모세 당시 갓 자손은 '욕브하'와 그 근처 성읍을 점령하여 그곳에 양의 우리를 지은 적이 있다(민32:35,36). 그러므로 본문의 '갈골'은 고유명사로 취급하기 보다는 보통 명사로 취급하여 '노바'와 '욕브하' 근처에 있는 '양의 우리로 지어진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 지금까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리고 동방사람의 연합군을 대표적으로 말할 때에는 '미디안 사람'으로 칭했다(6:14;7:1,14,15,24). 그러나 본절에서는 '동방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아마 이것은 미디안 사람이 거의 전멸하고 동방 사람들이 많이 살아 남았든지 아니면 그들이 진치고 잇는 곳이 동방 사람이 거하던 곳과 인접해 있던 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십 이만 명이 죽었고 그남은 일만 오천명 가량 - 전사자(戰死者) 십 이만명은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수효였다. 그리고 패잔병에 해당하는 일만 오천 명 또한 기드온삼백용사에 비하면 무려 50배에 달한다. 따라서 그들은 갈골에 이르러 진영을 가다듬어 일전(一戰)을 준비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의 크신 권능을 체험한 바 있는기드온 용사들의 사기는 의기 충천해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패잔병들은 위축되어 또다시 도주하기에 급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8:11
안연히 있는 중에 - 이말은 세바와 살문나가 군대의 호위 가운데서 안전하게 거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바와 살문나를 호위하고 있는 군사들 역시 기드온의손에서 벗어났음을 확신하며 안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서 기드온의 300명 용사가 그들을 치자 그들은 예기치 않은 공격에 놀라 전의(戰意)를 상실했을 것이다.
노바와 욕브하 동편 장막에 거한 자의 길 - 노바와 욕브하 동편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에게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아마 이곳은 갓 지파와 동방 사람들이 사는 지경의경계 지역일 것이다. 한편 '노바'와 '욕브하'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성읍이었는지는알 수 없다. 다만 헤스본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곧 길르앗 산지의 어느 한 지점이다.

=====8:12
온 군대를 파하니라 - '파하다'에 해당하는 '하라드'(* )는 '공포에 떨게하다', '당황하게 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기드온에게 세바와 살문나가 사로잡혔다는소식을 접한 미디안 연합군이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潰滅)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상으로 7장에서부터 계속되었던 기드온군과 미디안 연합군과의 싸움은 끝이 난다.

=====8:13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 KJV는 이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해가 뜨기 전에 전장에서 돌아오다가'로 번역하였다. 그 까닭은 '헤레스 비탈'에해당하는 원어 '밀마아레 헤하레스'(* )를 '해가 뜨기 전'이란뜻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몇몇 학자들도 지지하는 견해이다(Luther, Hervey). 그러나 본절으 굳이 이처럼 의역(意譯)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 '헤레스 비탈'이란 말은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과 싸워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던 곳인 '갈골'(10-12절)에 대하여 보충 설명해 주는 말로 봄이 더 낫다.

=====8:14
한 소년 - '소년'에 해당하는 '나아르'(* )는 '사환'(삼하 9:10), '어린 아이'(출 2:6), '청년'(출 24:5; 33:11)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단어이다. 본문에서는 그가 숙곳 방백과 장로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청년'으로 해석하는 편이 좋다.
신문하매...기록한지라 - 사로잡힌 소년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숙곳의 방백과 장로 칠십 칠인의 명단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숙곳의 방백과 장로들은 동족에게로부터까지 버림을 받는 지경에 당도한 셈이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 칠 인 - 이들은 슥곳 성읍을 다스리며 재판을 총괄하는 그성읍의 대표자들이다. 6절에서는 방백들만이 기드온을 조롱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본절에서 기드온이 보복하고자 한 사람 중에는 장로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몇몇 방백들의 말이라 해도 그 성읍 대표 모두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연대성(Solidarity) 때문이었을 것이다.

=====8:15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 기드온은 숙곳 방백들에게 자기를 조롱한 것(6절)이 얼마나 어리석었었가를 보여 주기 위해, 그 증거로 전쟁에서 사로잡은 미디안 두 왕(12절)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숙곳 방백들로 하여금 더 이상 쫓기고 있는 적들이 또다시 힘을 키워 보복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또한자기 동족의 고통을 같이 나누지 않은 숙곳 방백들은 이제 세바와 살문나처럼 자기 손에 사로잡힌 바 된 것을 시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8:16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 이 표현은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을 죽인 것이 그들의죄에 대한 징계임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6,7절). 즉 기드온이 그들을 죽인 것은 사소한 개인적인 악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와 관계된 그들의 죄에 대한 징계로서 뚜렷한 대의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8: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 기드온에 의해 브누엘 성읍이 완전히 파괴된 것을 의미한다. 9절 주석 참조.

=====8:18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 - 여기서 '다볼'(Tabor)은 이스라엘 골짜기에 위치한'다볼 산'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곳은 일전에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하여 진쳤던 곳이다. 4:6 주석 참조. 그런데 지금까지는 세바와 살문나가 다볼에서 어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 전혀 언급이 없었다. 아마 이는 세바와 살문나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탈할 때(7:1) 그 중 일부를 죽인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이때 죽임을 당한 자들은 다름아닌 기드온의 형제들이었다(19절).
모두 왕자 같더라 - 이로 미루어 볼 때 기드온의 형제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8:19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 공동 번역은 이를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로 번역하였다. 이는 세바와 살문나에게 죽임 당한 자들이 단순히 기드온과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분명히 기드온의 친형제였음을나타내 준다.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 이는 곧 기드온이세바와 살문나에 대하여 '피의 복수'를 하겠다는 뜻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누군가가피살당한 경우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족이 복수자가 되어 살인자의 생명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가 있었다. 그것은 노아 시대 이래 '피를 흘리게한 자는 그자역시 피를 흘려야 한다'는 율법 사상에 근거한 규례였다(창 9:6). 따라서 본절의 기드온의 보복 행위 역시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의(公義)의 심판을 가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죄의 복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신 19:6주석을 참조하라.

=====8:20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 이처럼 미디안 연합군을 지휘하던 대장이자 왕이었던 세바와 살문나가 적장(敵將)은 물론 용사도 아닌 한갖 소년 여델에 의해 죽임당하게 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 이처럼 기드온의 장자 여델은 아직 나이가어려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일 만큼 용기있는 소년은 아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한 것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였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은 어려서 300명 용사 안에 분명히 포함되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7:2-8).

=====8:21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 이 말은 기드온의 장자 여델이 나이 어리기 때문에 그의 힘과 용기도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기드온이 직접자기들을 죽여 달라는 역설적인 의미의 호소이다. 한편 그들이 이와 같이 기드온에게직접 죽고자 자청한 것은 힘도 없는 어린 아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용사에게 죽임을 당하는 편이 덜 수치스럽다는 생각에서였음이 분명하다(Keil, Wycliffe).
새 달 형상의 장식 - 금이나 은으로 된(26절) 반달 형상의 장신구이다(사 3:18).미디안족들은 월신(月神)을 숭배하던 관습에 따라서 반달 모양의 장식품을 항상 몸에지니고 다녔다. 기드온은 이 장식물을 세바와 샅문나를 쳐서 승리한 기념으로 취했던것이다. 한편 이외에 그와 함께 출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미디안 사람을 친 후 여러 가지 장식물을 노략물로 가져왔다(24절). 이와 같이 전쟁에 승리하여 적국의 물건들을 노략물로 취하는 것은 고대 전쟁에 있어서 보편적인 일이었다.

=====8:22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 이 말은 기드온의 집안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요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요구한 것은 당시 고대 근동에 왕위 세습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당시의사사 제도는 아직 미분화된 이스라엘의 통치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과도기적 체제였다. 그리고 왕정(王政)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시하신 바 있다(신 17:14-20).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기드온의 인간적 용맹과 지도력에 의존하여 안전을 확보해 보려는 의도에서 그를 왕으로삼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때가 이르러 왕을 택하시고 세우시는 분이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위이다. 이스라엘이 진정 왕정이 도래할 필요가있다고 판단되었다면, 백성들은 하나님께 간구했어야 마땅하였다. 따라서 임의로 왕을세우고자 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왕되신 하나님(삼상 8:7; 12:12)을 경홀히 여기는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8:23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진쟁에서 승리한 것이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모든 영광을 그분이 받아야 마땅하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또한기드온이 했던 이 말은 백성들로 하여금 인간 지도자를 의뢰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도륵 하는 교훈도 담고 있다.

=====8:24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귀고리가 있었음이라 -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처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낳은 아들이다(창 16:15). 그 후손인 이스마엘족은 시내 반도 북동쪽에 있는 바란 광야를 중심으로 유목 생활과 대상(隊商)을 하였으며,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인 미디안 족속(창 25:2)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본서의 저자는 이스마엘과 미디안을 같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실상 별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이스마엘 사람'은 아라비아의 유목민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며넓게는 미디안족도 이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들은 항상 이동하면서 생활했으므로 언제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물건과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귀중품 특히 금을 많이 지니고 다녔다.

=====8:25
겉옷 - 이에 해당하는 '시믈라'(* )는 대개 사막 지대 사람들이 낮에는겉옷으로, 밤에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던 긴 '외투'를 가리킨다.
귀고리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실상 '귀고리'가 아닌 '코걸이'였을 것으로본다. 왜냐하면 당시 아라비아 일대의 유목민들은 많은 장식품들로 코를 단장하는 풍습이 성행했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풍습은 오늘날에도 일부 근동 지방에서 볼 수 있다(A.C.Hervey). 그러나 '귀고리'에서 해당하는 '네젬'(* )은 일반적인 '장식용보석'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귀고리와 코걸이를 막론한 모든 종류의장신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좋을 것 같다(Lange).

=====8:26
금 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 칠백 세겔이요 - 한 세겔(Shekel)은 약 11.4g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사람에게서 노략한 금의 무게는 21.38kg 가량 되었다.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자색 의복 - 고대 애굽 및 팔레스틴 일대에서는 지중해의 조개에서 추출한 액으로붉은 보라 빛 염료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자색 염료로 염색한 천이나 의복은 매우 귀할 수 밖에 없었는데 대개 귀족이나 왕족들만 착용하였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체포한 후 그에게 붉은 홍포를 입힌 까닭도 곧 '자색'이 당시 '왕'을 상징하는 색깔이었기 때문이다(마 27:27,28).

=====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 '에봇'(Ephod)은 본래 대제사장의 의복으로서 앞으로는 가슴을, 뒤로는 등을 덮었던 조끼 모양의 상의(上衣)였다. 특별히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에 대제사장은 이 옷을 입고 우림과 둠밈으로 판결을 구하였다(출 28:6-30). 그런데 기드온은 금으로 이 예봇 형상을 만들어 자기 성읍에 둠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소지를 마련하였다. 즉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로에 있는 성막의 제사에 집중하지 않고, 오브라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함으로써 무질서 속에서 점차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자기의 성읍 오브라 - 베냐민 지파의 성읍 '오브라'(수 18:23)와는 구별되는 곳으로 기드온의 집안이 거주하던 성읍이다. 6:11 주석 참조.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 '음란'이란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의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용어이다(겔 16:58; 23:27,29). 즉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이 만든 에봇을 우상을 섬기듯이 섬긴 것이다.

=====8:28
미디안...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 이 말은 미디안 사람이 기드온으로부터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그 세력이 매우 약화되었음을 가리킨다. 사실상 미디안사람들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살아 남았으며 유목생활도 계속 유지하였지만(사 60:6)더 이상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사십 년에 그땅이 태평하였더라 - 7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미디안 세력이 철저히 진멸됨으로써, 이스라엘은 다시 평화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외부적 평화 이면에는 타락의 움직임이 음틀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생전에도 에봇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등 가증한 행실을 버리지 못하였으며(27절) 기드온의 사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알을 열렬히 숭배하기 시작하였다(33절). 요컨대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신앙 성숙의 기회로 삼지 않고 도리어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키기위한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갈 5:13). 우리는 이러한 기사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자리잡은 우상 숭배 욕망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굳이 새겨진 이방 신의 형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황금 만능주의, 출세 제일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등도 우상 숭배나 다름이 없다(사 60:6).

=====8:29
여룹바알이...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 기드온이 노년(老年)에는 사사로서의 공직을 사퇴하고 조용히 집에 머물면서 여생을 보낸것을 가리킨다(Wycliffe).

=====8:30
본절은 기드온이 아내를 많이 얻어 70명이나 되는 아들을 두었을 만큼 이스라엘사회에서 큰 지위를 얻었던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이것은 기드온이 비록 왕위를 거절했으나 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이 짧은 구절을 통해서 기드온이 말년에 영적으로 매우 타락했음도 시사해 주고있다.
아내가 많으므로...아들이 칠십 인이었고 - 기드온은 많은 아내들 뿐만 아니라 최소한 한명 이상의 첩(妾)을 거느리고(31절) 마치 큰 방백과 같이 호사스러운 생활을하였던 것 같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일부 일처 제도를 세우셨으나(창 2:18-25) 이스라엘 백성은 당시 주변 여러 나라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일부 다처 제도를 공공연하게실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드온은 사사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방 악습을 따랐으며, 그로 인해 70명의 아들이 거의 몰살당하는 징벌을 받게 되었다(9:5).이와 관련해서는 창 4:16-24 강해, '일부 다처제' 및 창 16:1-6 강해, '축첩 제도의부당성'을 참조하라.

=====8:31
세겜에 있는 첩 - 기드온의 본래 거주지는 '오브라'였다(6:11). 그런데 그는 첩을세겜에도 두고 있었다. 이 사실은 기드온이 첩들을 여러 지역에 많이 두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한편 '세겜'(Shechem)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진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수 20:7).
아비메렉 - 이 이름의 뜻은 '왕의 아비' 또는 '아버지는 왕이시다'란 의미이다.이 이름은 그의 아버지 기드온의 지위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기드온이낳은 70명의 아들 중 유독 이 '아비멜렉'이 언급된 것은 훗날 그가 왕위 찬탈 사건을일으켰기 때문이다(9장).

=====8:32
아비에셀 사람 - 므낫세 지파 중 아비에셀의 가계(家系)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수 17:2). 기드온과 그 아비 요아스도 이 아비에셀 사람이다. 6:11 주석 참조.

=====8:33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 사사의 죽음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 직결되었다(2:19; 3:12; 4:1; 6:1).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은 주로 우상 숭배였으며, 이에 따라여호와 종교는 그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 전체 역사 가운데 가장 심각한 우상 종교는 바알 종교로서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이후에도 계속될 정도로 그 뿌리가 깊었다(왕하 10:18,28; 21:3).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할 때도 이 종교는 이스라엘 가운데 잔존해 있었다(렘 2:8).
바알브릿 - 구약시대 당시 세겜지역에 존속했던 가나안인들의 바알 신이다. 그뜻은 '언약의 바알'로 곧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바알과 언약을 맺었음을 보여 준다. 즉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매우 열렬히 숭배했음을 가리킨다. 한편 '바알브릿'은 '엘브릿'(언약의 엘, 또는 언약의 하나님)으로도알려졌는데(9:46),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자기들의하나님으로 섬기며 그와 언약을 맺었음을 의미한다(34절). 이처럼 '바알브릿'이란 말은 이스라엘 사회에 우상 숭배가 극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용어이다(MatthewHenry's Commentary, Vo1.2.p. 176).

=====8:34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아니하며 - 이는 곧 저들이 일전에 하나님 앞에서 패역하여 대적들의 손에 빠졌던 것(6:1-5)은 물론 그들이 부르짖자 기드온을 통해구원해 주셨던 역사(6:6-7:25)마저 모조리 잊어버린 것을 가리킨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과거를 조금이라도 기억하였더라면 사사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타락의 역사'를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8:35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진 이후 이전에 바알 단을 파괴하였던 여룹바알(6:25-32) 곧 기드온의 가정을 선대하지 않은 것은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과거 기드온에게 대대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그의 집에 충성을 보였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자세이다(22절). 바로이러한 점은 훗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 거민들과 공모하여 반역을 도모하게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9장).

 

 

 

   7장에 이어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을 계속 추격하여 요단 동편 헤레스 비탈  전쟁에
서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아 돌아오는 기사이다(1-21절).  그리고 그 이후  여
호수아의 마지막 행적에 관한 기사이다(22-35절).
  일직이 소심하고  겁 많던 기드온(6:15)은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6:34)  자기를
따르는 자 300명으로 1천배가 넘을 만큼 많은 수의 적을 대적하여 섬멸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했던 기드온도 이토록 엄청난  승리를
얻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미디
안과의 전투에서 자기들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는 일로  기드온에게  트집은  잡았었다
(1-3절).  (2) 기드온과 그의 종자 300명이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다가 지치고  주렸
을 때 자기 동족인 숙곳 사람들(5절)과 부누엘 사람들(8절)에게 양식을 요구했으나 거
절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기드온은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마
침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만사 형통(萬事亨通)이라고 생각
하여 인생길에 어떠한 난관도 없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진리(롬 5:20)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예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그를 넘어뜨리기 위한 온갖 음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사도들을 통해 교회가 점점 확장될 때에도 성도들에 대한 박해는  더욱
거세어졌다.
 이런 점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성도들에게 몰아닥치는 시련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과 부딪쳐 끝까지 싸울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라 하겠다. 만일  기드온
이 세바와 살문나를 뒤쫓던 중 도중에서 만난 어려움으로 인해 그 쫓는 일을 포기했더
라면 결코 그는 대적들을 섬멸시키는 전과를 거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
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자기들에게 시련이 찾아올 때마
다 믿음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었다.  그리하여 결국  그
들 모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나아갔던 인물이었으므로(민 14:1-25)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이러한  출애
굽 역사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분명 순종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히 3:16-19).

         1. 에브라임 지파의 불만(8:1-3)
   7장에서 있었던 미디안과 전투와 관련,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불평하는 장면
이다.  즉 저들은 기드온이 미디안군과 싸우러 나갈 때 처음부터 자신들을 동행시키지
않은 데 대하여 불만을 품고 이를 따져 들었던 것이다(1절).  이에  대하여  기드온은
노를 발하기보다는 겸손히 처음부터 전투에 참가했던 자들의 공적보다 뒤늦게  전투에
참가했던 에브라임 지파의 공적이 더 컸다고 치하를 아끼지 않는다(2절).  그러자  에
브리암 지파는 노를 풀게 되고 자연히 이로써 분쟁은 종식된다(3절).
 한편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이 속한 므낫세 지파와  더불어  요셉의  후손들이다(창
41:50, 51).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가장 불평 불만이 많았
던 지파로 성경에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왕정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이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리될 때 북쪽 이스라엘 곧 여로보암 정권을 창출해
내었다(왕상 11:26 ; 12:20).  이러한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에게 불만을 나타내었던
것처럼 사사 입다 시대에도 그렇게 하여 입다가 이끄는 길르앗 사람과 전쟁을  하였으
나 42,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크게 패하고 말았다(12:1-6).
 이처럼 에브라임 지파와 같이 불평 불만이 많은 자들이 계속해서 공동체 내에 존재한
다는 것은 그 공동체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서는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교회 내에도 이 에브라임 지파와 같이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
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교회는 침체의 늪을 빠져 나오기
힘들게 된다.  즉 그들로 인해 전체 교회의 힘은 분산 약화되고 좀처럼  단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급기야 그 교회는 분열되는 쓰라린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에브라임 지파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과거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
되며, 여러 국가들의 흥망 성쇠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
은 교회 내에 있는 불평 불만의 무리를 지도함에 있어서 더욱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의 불만을 지혜롭게 잠재운  방법도  잘
기억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교훈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미 알고 있던 어떤 역사적 사건과 똑같은 일을
당했을 때 그 역사를 통해 바람직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도 성경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교회의 역사 속에서 자신이 당면한 교회의  문
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얻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성경적 겸손 - 본문에는 기드온이 에브라임 사람 앞에서 겸손히 말함으로써 에브라
임 사람들의 불만을 가라앉힌 장면이 언급되어 있다(2, 3절).  그런데 일반적으로  세
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겸손과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겸손은 많은 차이가 있다.  즉 세
상 사람들이 미덕(美德)으로 생각하는 겸손은 무조건 자신을 다른 사람 앞에서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언급된 겸손 곧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시고 있는 겸손
은 완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곧 진정한 겸손의 삶이다.
 사람 앞에서 아무리 자신을 낮출지라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할 줄 모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모른다면 그 성도는 결코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성경에 언급된 겸손
은 철저히 하나님과 관련된 겸손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겸손이 존재할 수 없다
(잠 22:4 ; 사 57:15).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겸손은 인간의  유한
성을 깨닫는 것이며(왕상 3:6-14)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무릎을  끓는  것이고(사
6:1-8),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내세우는 신앙 자세를 일컬음
이다(빌 3:3-7).
한편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철저히  겸손을  실천한
분이시라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모든 영광을 성부 하나님께 돌리심으로  겸손의
본이 되셨다(요 13:4, 5 ; 20:20, 27 ; 빌 2:8).  그런데 이와 달리 예수님께서는  바
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자들에 대해서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소리치시며  그들을
책망하심으로써(마 12:34 ; 23:33) 그들에게는 매우 교만한 자처럼 비춰지셨다.  이것
은 성경적으로 겸손한자가 죄에 대해서는 얼마나 단호하게 대항하는가를 보여 주고 잇
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저항하며, 하나님앞에서는 겸손한 것이  하나
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진정한 겸손이다(약 4:10).  이러한 겸손을 소유한  자
가 성도들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바른 겸손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벧전 5:5).

         2. 숙곳과 브누엘인들의 패역(8:4-21)
   미디안군을 일차 분쇄했던 기드온(7장)이 마지막 잔당까지 섬멸하고  두왕  세바와
살문나를 체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세바와 살문나를 쫓다 지친 기드온
과 300용사들은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나  거절당한다(4-9절).  
이에 격분한 기드온은 미디안군을 마저 섬멸하고 돌아오는 기리에 숙곳과 브누엘 사람
들을 응징한다(10-17절).  그리고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에 대해서는 그들의  전
과(戰過)를 들어 처형한다(18-21절).
 이상과 같은 본문은 우리들에게 기드온의 신앙과 이와는 대조적인 숙곳, 브누엘 사람
들의 불신앙을 보여 준다.  즉 기드온은 도망간 적들을 추격함에 있어서도 오직 300명
의 용사만을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기드온이 추격하고 있는 그곳에는 살아남은 동방
사람이 15,000여명이나 있었다(10절).  즉 이 수효는 기드온을 따르는 자보다 50배 가
량 많은 대적이다.  그렇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하나만으로 그들을 추격했
던 것이다(7:7).  그런데 이와 반대로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들은 기드온의  무리가
아무리 용감할지라도 결코 15,000명의 군대를 쳐부수고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드온을 조롱하며(15절)  음식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을 이긴 후 자기들을 공격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나약하고 불신앙적인 행위는 훗날 기드온에게 보복당할 수 밖
에 없는 행위였다.  즉 자기 동족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기
브온을 멸시했을 뿐 아니라 기드온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한 관계로 징계를
받았다.
 한편 이와 같이 교회에서도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일을  수행할  때
같은 성도로부터 조롱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인간의 논리로
써는 도무지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의 논리를 좋아하는 자들의 눈에는  초논리
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
안 땅을 정탐케 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돌아온 후 각각이 본 바를 보고했는데 10명은
매우 합리적으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들을 불신앙의 사람들이었다.  이
와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직 신앙의 눈으로 가나안 땅과 그 거민들을  바라보았
기에 그곳과 거민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밥이라 대답하였다(민 13:25-14:10).  또한 베
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물 위에 뛰어내려 걷던 중 바람에 이는  풍
랑을 보고 두려워하였을 때 물 속으로 빠졌었다(마 14:29, 30).   이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마 14:31)고 책망하셨다.  이러한 사실
들을 통해 볼 때 성도가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와 신앙이 없는 눈으로  바라
볼 때와는 엄청난 차이가 생김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양자 중에서 진정 성도가 선
택해야 할 쪽이 어떤 것인지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극복되어야 할 이기주의 - 본문에는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을 피해를
염려해서 동족인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300명을 문전 박대(門前薄待)하는 장면이 나온
다(4-9절).  그들은 자기 동족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고 자기들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사사 드보라 때에도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벼락이 백성들을 소집했을 때 르우벤 지파와 므낫
세 지파 그리고 단과 아셀 지파는 자신들의 생업에만 열중하며 그 소집에 응하지 않았
다(5:15-17).  그들은 야빈 왕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압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가기적인
생각으로 형제들의 고통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
굽하여 광야 여행을 할 때 고기가 먹고 싶다고 아우성치면서 자기들이 종 되었던 애굽
의 생활을 그리워했다(민 11:4, 5).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
신 자유보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먹던 고기를 더 좋아한 처사이다.   그리고  고기를
위해서는 하나님까지도 버릴 수 있는 행위이고, 심지어 자신의 욕구를 위해  하나님을
믿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이기적인 신앙 행위이다.
 하지만 이상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신앙을 시험하시기 위해 성도로 하여금  희
생을 요구하실 때가 종종 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셨던 것도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신  것이다(창
22:12).  이 시험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택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시험이었다.  즉 이는 인간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이 시험을 통과할 때에라야  성도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형태의 이기주의도 용납될 수 없다.   하나
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헌신과 형제를 위해 희생 정신만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눅 10:29-37) 예수님께서는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에 말씀하셨다.  그 강도 만난 사람에게 있어서 참된 이웃은 명
목상의 형제라 불리운 자가 아니라 직접 그를 도와 준 사람이었다.  이 비유에 언급된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자이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
해 자기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희생을 했다.  바로 이와 같이 어려움에 처한  형제
를 돌아보는 성도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
을 자이다(마 10:40-42).

         3. 기드온의 마지막 행적(8:22-35)
   기드온이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함으로써(18-21)  이스라엘  땅에는
또다시 태평 성대(太平聖代)가 찾아왔다.  이러한 평화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는 40년 동안 계속되었다(28절).  본문은 이러한 때와 관련, 기드온의 마지막  행적
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그의 행적은 크게 대조되는 두 사건으로 아루어져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할 때, 기드온 하나님만이  이스라
엘의 왕이 되심을 강조하면서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한 사건이다(22,  23절).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기드온의 신앙과,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기드온의  인격을
보여 준다.  그는 여러 가지 표징과 체험을 통해(6:19-24, 36-40 ; 7:9-14, 19-23) 자
기에게 능력을 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고 또한 그
렇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해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했던 것이다.  즉 기드온은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자
기도 다른 사람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있었다.
(2) 기드온이 미디안 전투에서 탈취한 전리품 중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는바  백성들이
이것을 우상 섬기듯 섬기게 된 사건이다(22-28절).  즉 기드온이 만든 에봇은  자기와
자기 가정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무가 되고 말았다(27절).  또한 기드온은
많은 아내를 두어 70명이나 되는 아들을 가졌다(30절).  이러한 일부  다처(一夫多妻)
는 그가 말년에 사사로서 누린 영광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그의 영적 신앙의  나태와
실책을 드러내는 실상이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아내와 자식을 두므로 인해 훗날  형
제간의 살육을 자초했고, 그의 첩에게서 낳은 아들 아비멜렉으로 인해 그의 이름이 욕
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9:56).
 이상에서처럼 본서 저자가 기드온의 일련의 행적에 있어서 잘된 행위와 잘못된  행위
를 대조시킨 것은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 줌과 동시에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만하
지 못하도록 하는 교훈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성경은 다윗의 행적
을 기록할 때에도 다윗의 선한 행적만을 기록하여 그를 영웅시한 것이 아니라 그의 범
죄 장면도 자세히 언급하였다(삼하 11장).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
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가리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
이라도 경계를 게을리하면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성도로 하여금  매일
의 삶에 있어서 경계할 수 있는 신앙을 소유하도록 해준다(고전 10:11).
 한편 40년간의 사사 생활을 끝으로 기드온은 그의 생애를  마감한다(32절).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하나님을 저버리고 죄악의 길에 드는데 사사기에  반복되는
악순환의 연속임을 말해준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 - 본문에는 기드온이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를 왕으로 삼고자 하는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23절).  
그리고 이외에도 성경에는 왕권을 가지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
이 많이 나온다(출 15:18 ; 대하 20:6 ; 시 10:16 ; 24:10 ; 95:3 ; 단 2:47 ; 4:37 ;
딤전 1:17 ; 계 15:3 ; 19:6).  이 하나님의 왕권은 곧 하나님의 주권과 관련되어  있
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왕을 세워 왕정(王政) 국가가 된  때라도  실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사상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이유는 악의 권세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
(具現)하기 위함이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비록 세상 종말레 온전히 완성될 것이긴
하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단이 결박되고(마 12:29 ; 막 3:27) 쫓겨  남으
로써 (마 12:28 ; 눅 11:20) 이미 이 세상에 도래(到來)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 땅
에서의 모든 이적들은 이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툐이다(마 4:23 ; 9:35).  또
한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께서 오심도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함이다(요 16:13).
 결국 이 모든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악의 세력과 싸움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아니한 채 성도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그리고 왕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그는 이 땅에서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가 범사에 하나님을 왕으로서 인정할 때에야만이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길을 지도하시며 또한 그 길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시 37: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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