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 '가나안 전쟁'은 B.C. 1405년경부터 약 5년간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창12:7;출3:8)에 들어가기 위해 수행했던 정복 전쟁을 가리킨다. 이 엄청난 전쟁은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과거에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없는 큰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장로들이 죽은 뒤 그들을 이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러한 큰 일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었다(2:10). 그래서 이 전후(戰後) 세대는 그 선조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몸소 향유하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그들의 주와 왕이 되시니, 이스라엘은 마땅히 그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겨야 했다(출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새 세대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본절은 이를 암암리에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하려 하시며 - 전쟁의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 이후 세대들에게 전쟁을 친히 겪게 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을 가리킨다(PulpitCommentary).
=====3:2
그것을 기르쳐 알게 하려 하사 - '그것'이란 1절에 언급된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신 본래 이유와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으신 이유는 분명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본절에서는 가나안족속을 남겨 놓은 이유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의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유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의 기술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쟁을통해 하나님 당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알리시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수의 많고 적음이나 병기(兵器)의 우수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삼상 17:47)을 익히 체험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사후 세대들에게도 남아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오직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모든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데 있음을 가르쳐 주려 한 것이다(A.C.Hervey,A.E.Cundall,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74).
남겨 두신 열국 - 곧 여호수아의 가나안정복 당시 미처 완전히 진멸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수아 사후에도 가나안에 존속하고 있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3,5절). 그런데본절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열국을 남겨 두신데에도 깊은 경륜(經綸)이 담겨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 이스라엘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 역시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거해주는 일례이다(사 55:8,9).
=====3:3
블레셋 - 그레데(Crete)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 지대로 이주해 온 자들이다. 이들은인종학상 노아의 둘째 아들 함(Ham)을 조상으로 하고 있는 '가슬루힘' 지파(창 10:14)에 속한다. 이들은 사사 시대는 물론(10:7 ; 13:1-16:31), 사울과 다윗 때(삼상13:19-22 ; 14:52)와 남북 분열 왕조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왕상 15:27 ; 사9:8-12). 이후 이들은 성경에 예언된(슥 9:5-7)대로 알렉산더대왕 때에 완전히 멸망당했다(B.C. 332).
다섯 방백 - 블레셋의 5대 성읍인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의 방백들을 의미한다(수 13:3). 여기서 '방백'(* ,사레네이)이란 호칭은 그리이스의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인 '코이라노스'(* ), 또는 '타이라노스'(*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이는 곧 블레셋인들이 그리이스 지방으로부터 이주해 온 족속임을 간접적으로 증거해 준다. 성경에서'사레네이' 또는 이에 준하는 '세렌'(* )이란 호칭은 오직 블레셋족속에게만사용되어졌다(16:5 ; 수 13:3 ; 삼상 5:8 ; 6:4 ; 7:7 ; 29:3,9 ; 대상 12:19). 한편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가나안 땅에 이주해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블레셋인들의 초기중심지는 그랄(Gerar)이었다(창 20:1,2 ; 21:32,34). 그러나 이후에는 아스돗 등 다섯도시의 방백들이 중심이 되어 블레셋을 이끌었다.
가나안 모든 사람 - 여호수아가 미처 다 정복하지 못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가리킨다. 1:1주석 참조. 당시 이를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의 경계에 대해서는 수13:1-7에 상세히 언급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 사람 - 시돈은 두로의 북쪽 32km, 베이루트(Beirut)의 남쪽 32km 지점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B.C. 2750여 년경 함의 아들 가나안이 낳은 장남 '시돈'(창 10:15)에 의해 건립된 도시라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주로 이웃 도시인 두로(Tyre)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마 11:21 ; 눅 10:13). 이 당시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해상 무역을 통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이후에 이들은 베니게인(Phoenicians)이라고 불려졌으며, 이들이 거하던 베니게는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행 11:19 ; 15:3). 1:31 주석 참조.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 '바알 헤르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수 11:17 ; 13:5에 근거해 팔레스틴 최북방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일 것으로 추정한다(Lange Commentary, 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75). 다음으로 '하말어구' 역시 정확히 어디를가리키는지 분명치않다. 혹자는 다메섹 북부 약 200km 지점의 오론테스 강을 끼고 있는 수리아 성읍 '하맛'(Hamath) 부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Rawlinson). 그러나 대개는 '하맛에 들어가는곳'(수 13:5). 즉 레바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바알갓의 맞은편 북동쪽에 위치한 '르보(* , 어구)-하맛'일 것으로 추정한다(Pulpit Commentary).
히위 사람 - 히위 족속은 가나안의 후손으로서 일반적으로(창 10:17 ; 대상 1:15)'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 분류되어 진다.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참조. 그런데 이들 히위 족속은 대체적으로 호리족속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히위'(* )의 '와우'(* )와 '호리'(* )의 '레쉬'(* )가 혼동되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서의 아내 오흘리바마가 창36:2에서는 히위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 뒤에 가서는(창 36:20,25) 호리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아무튼 이들은 아마르나 시대(AmarnaAge, B.C. 15세기~14세기) 동안에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미탄니(Mitanni)라는 매우중요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미탄니 왕국은 당시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었고,레바논 산지와 하맛 어구(수 11:3 ; 삼하 24:7). 그리고 기브온과 그 주변 도성에까지이주해 살면서 가나안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끼친 그러한 영향력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인 중 한 지도자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삼하 24:16에'아라우나'라고 하는 어떤 여부스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때의 '아라우나'(* )는 '지도자'란 뜻을 가진 히위인 들의 호칭이었다(IDB).
=====3:4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 여기서 말하는 시험의 뜻은 1절에서 말하는 시험의 뜻과는 다르다. 1절 주석 참조. 즉 여기서 '시험'이란 2:22에서 의미하듯 열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괴롭혀 그들의 신앙을 재확립케 하는 연단 내지 검증 과정을 가리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22 주석을 참조하라.
모세로...명하신 명령들 - 2:22에 나오는 '여호와의 도'와 같은 말이다. 즉 이는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 2:22 주석 참조.
=====3:5
마침내...거하여 -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수없이 반복하여 주신 말씀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곳에 있는 족속들을 다 진멸하고그들과 언약을 맺거나 통혼치 말며 우상 숭배치 말라는 것이었다(출 34:10-17 ; 신7:1-5 ; 수 23:11-26). 그리고 그에 불순종할 시 따르는 징벌에 대해서도 익히 일러주셨다(신 28:15-68). 그러나 이 모든 경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침내'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려하던 죄악에 빠지고 만다. 즉 그들은 가나안족속들을 용납한결과(1:19,21,27-36)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지고 이방인과 통혼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6절).
가나안 사람과...여브스 사람 - '기르가스 족속'(신 7:1)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의일곱 족속'이라 불리우던 자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그곳에거주하던 자들로서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도 불리웠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과 수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족속'을 참조하라.
=====3:6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 과거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지 조항을 이제 이스라엘이 여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 조항이란 곧 신 7:3,4에 나오는 이방인과의 통혼(通婚) 금지 명령이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와 그것을 어졌을 경우의 결과가 분명히 언급되고 있다. 먼저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므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신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그 금지 조항을 어긴 데 대한 대가는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의 돌연한 멸망이다. 사실 그릇된 결혼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불행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사항이다. 심지어 성경은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이한 결과그들이 갖고 온 우상을 섬기고 마는 과오에 빠졌음을 보여 준다(왕상 11:1-8). 또한창 6:1-5은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사모하여 결혼한 결과 세상에 관영한 죄악에 물들고 말았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신약 시대에 이러서도 믿는 자는 믿지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는 권도(勸導)가 주어지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고후 6:14).
그들의 신들 -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준 가나안 종교는 1929년 발굴된 우가리트 문서, 즉 라스 솨마라서판(Ras Shamra)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엘'(El) 신, 그의 아들인 '바알'(Baal) 신, 바알의 누이이며 아내인 '아낫'(Anath) 신이 있다. 그리고 일명 '호론'(Horon)으로도 불리운 바알의 원수인 '못'(Mot)과 바다를주관하는 '얌'(Yam) 일명 '리워야단'(Lotan) 신이 있다. 또한 아낫과 함께 가나안의 3대 여신이라 불리우는 '아세라'(Asherah)와 '아스다롯'(Astaroth)신 등도 언급되어 있다(F.M.Cross). 그 외에도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중요한 가나안 신으로서는 블레셋인들이 섬기던 '다곤'(Dagon) 신이 있다. 이는 곡물의 신으로서 바알 신과 그성격이비슷하여 바알과 이명 동신(異名同神)이 아닌가 추측된다. 라스 솨마라 지방에서 바알신을 '다곤신의 아들'(The Son of Dagon)로 부르기도 했던 점은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I.D.B.). 또한 라스 솨마라 서판에는 '그모스'(Chemosh, 삿 11:24) 혹은 '몰렉'(Molech, 레 18:21), '밀곰'(Milcom, 왕상 11:5)등으로도 불리운 암몬 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제반 신들에 관해서는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과 본서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보다 참조하라. 아뭏든 이처럼 다양한이방 신들이 숭배되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순수한 여호와 종교를 보존할 수 있기위해서는 가나안인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지하는것도 한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섬겼더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바드'(* )는 단지 생각이나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고, 몸과 인격 전체를 바쳐 섬기는 종교적인 섬김(Service)을 의미한다(Lange). 그러므로 70인역(LXX)은 이말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극히 제한적으로사용하는 단어인 '레이투르게인'(* )즉 '예배하다'로 번역하고있다.
=====3:7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 '잊어버리다'에 해당하는 원어 '솨카흐'(* )의기본 뜻은 '잘못 놓다'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않고마음 바깥에 내다 놓으므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망각한것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마음중심에 여호와가 아닌 다른 것을 모시고 살 때에는하나님과 그분의 교훈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다.
바알들과 아세라들 - 여기서 '바알'은 '풍요'와 '다산'(多産)을 관장하던 가나안의 고위 신이다. 그리고 '아세라'는 엘(El)의 아내이자 바알을 포함한 70명의 신의어머니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참조하라.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이처럼 복수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까닭에 대하여서는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장엄 복수형으로서 신의 이름에 흔히 사용되던 히브리어법의 한 형태이다. 즉 신의 존엄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복수형으로서 모양은 복수지만 그 뜻은 단수로 쓰인 경우이다. 그 한 예로 '하나님'에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 )을 들 수있다. 이는 복수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창 1:1 주석 참조. 둘째, 이것은 여러 모양,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복수형이다. 본문의 문맥상 위의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후자의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당시 지역에 따라 여러 모앙, 여러 이름으로 섬겨지던 바알과아세라를 자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섬겼던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2:11 주석을 참조하라.
=====3:8
메소보다미아 -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사이'라는 뜻으로서 유브라데(Euphrates) 강과 티그리스(Tigris) 강 사이의 광대하고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그처럼 북방에 한정시킨다면, 이곳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이'팔레스틴' 가장 남쪽 지파인 유다의 지도자 옷니엘과 싸우기에는 그거리상 지나치게멀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9,10절). 때문에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곧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문서들이 메소보다미아를 가리킬 때 주로 북방 메소보다미아를 의미했지만 간흑 그것은 오론테스(Orontes)강이 있는 하맛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틴 북방 지역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오론테스 강 유역으로 보면 구산 리사다임 왕과옷니엘의 싸움에 별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구산 리사다임 - 이 왕에 대한 기록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리사다임'에 해당하는 원어 '리쉬아타임'(* )은 '두 배나 악하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스라엘이 그에게 붙여 준 칭호인 듯하다. 그리고 '구산'이란 이름은 바벨론왕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창 10:8)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ary, Vol. II, p. 293).
손에 파셨으므로 - '팔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마카르'(* )로서 사람을노예로 파는 것(신 21:14 ; 28:68)을 가리킨다. 2:14 주석 참조. 그런데 이 말은 간혹사람이 죄의 노예가 될 때에도 사용되었다(사 50:1).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상과 달리'항복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부르짖다'에 해당하는 원어 '자아크'(* )는 '힘을 다해 외치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극심한 고통속에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Lange). 과거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바로의압제로 인해 힘든 노역을 할 때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적이 있다(출 2:23).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이차적으로는 이방 우상 숭배죄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회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다시금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것이다.
한 구원자를 세워 - 여기서 구원자라 함은 사사(Judge)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서에서 사사들에 대해 구원자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사사들이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재판만을 수행하는 재판관(4:5)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구해 주는 구원자의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15절;5:14;8:22).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6 주석을 참조하라.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 옷니엘(Othniel)이 정확히 갈렙의 아우인지아니면 조카인지 하는 학자들간의 이견에 대해서는 이미 1:13에서 살펴보았었다. 그에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 여기서 '여호와의 신'(* , 루아흐 예호와)이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 모로 활동 하셨던 성령을 가리킨다. 창 1:2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성령이 옷니엘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특별한소명과 능력이 그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특별한 소명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맡아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력이란 그러한 소명을 잘 감당할 수있는 힘을 가리킨다. 한편 옷니엘에게 임한 성령은 구약 시대의 여러 인물들에게도 임했던적이 있다(6:34;11:29;13:25;삼상 10:9,10;16:13;대상 12:18). 여호와의 신은 가끔 백성들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도 임했으며(민 27:18;단 4:8), 어떤 사람에게는 특정한 봉사를 수행토록 하기 위해서 임하기도 했다(출 31:3;35:31;민 11:25). 이는 오순절 이후로(행 2:1-5)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의 심령에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요 14:17).
여호와께서...그 손에 붙이시매 -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에게서 거둔 승리는 오직하나님의 주관적인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는 이스라엘의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자 즉각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신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이기도하다(9절).
=====3:11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옷니엘이 죽었더라 - 이와 같은 표현은 다른 사사들의 행적을 마무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30절 ; 5:31 ; 8:28). 아무튼 본절은 옷니엘의 활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그치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평안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백성들은 옷니엘이 죽자 또다시 죄악을 범하는 전철(前轍)을되밟는데 그 결과 모압의 지배하에 놓이고 만다(12-14절).
=====3:12
이스라엘 자손이...악을 행하니라 -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은 40여년에 걸친 평화로운 세월을 구가하는 동안(11절) 구산 리사다임의 수하에서 8년간이나 노예 생활하던때의 비참함(8절)을 까맣게 잊어버렸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잘못과 죄의 악순환은 사사기 전반에 걸쳐 되풀이되는 바 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 그리고 길이참으심을 멸시하는 완악한 백성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은 오늘날 우리들도 범할 수 있다. 즉 평안하고 안락한 여건 가운데서 살다 보면 우리도 자칫 향락과 정욕, 각종 죄악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그러한 때일수록 더욱더 경성하여 자신의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힘써야할 것이다(빌 1:20).
모압 -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간의 근친 상간(近親相姦)에의해 태어난 '모압'의 후손이다(창 19:30-38). 그들의 거주 지역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고원 지대로서 해발 약 1,300m에 이른다. 한편 과거 그들은 출애굽 과정에 있던 이스라엘이 그 지경을 통과하고자 요청할 때 이를 거절했었다(11:17). 그리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 앞에서음란히 행하도록 만들었다(민 23:11 ; 24:10 ; 25:1-3).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암몬과 모압 사람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다(신 23:3-6).
에글론 - 이름의 뜻은 '젊은 황소'이다.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초기 당시 모압의왕이었던 자로서 여리고 부근의 요단 강서부 지역을 한때 강점(强占)하였었다(13절).
강성케 하사...대적하게 하시매 - 여기서 '강성케 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하자크'(* )는 '돕다', '붙잡다'는 뜻이다. 이는 곧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도리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시려고 잡은 손을 놓으시고 대신 모압을 권능의 손으로 붙드신 것을 의미한다.
=====3:13
암몬 - 롯과 그 둘째딸 사이에서 난 '암몬'(창 19:38)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따라서 모압 족속(12절)과는 형제국이 된다. 이들은 모압 북방의 랍바를 중심한 지역에 거주하였는데 곧 요단 동편 지방이다(신 3:11). 이들은 역사상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으며(삼상 11:1-3 ; 왕하 24:2) 일찍이 모압 족속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군을 저지하려 방해하기도 하였다(신 23:3-6).
아말렉 자손 -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창 36:15,16).이들의 거주지는 팔레스틴 남방에서 시내 반도에까지 이르는 광야지대였다. 이들은 사사 시대 동안 미디안과 화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기드온에게 격멸당하고 만 역사도 지니고 있다(6:1-7:25).
종려나무 성읍 - 여리고 성을 의미한다(신 34:3 ; 대하 28:15).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6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말렉 연합군이 여리고 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성읍이 여호수아 이후 얼마동안 강력한 요새로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일것이다. 즉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선 이후 그곳을 재건치 못하도록 저주를 선언했었다(수 6:26). 때문에 이후 여리고는 외적의 침입을 방비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히 재건되지 못하였고 그 탓에 에글론의 연합군에게쉽게 점령당하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95). 아무튼 이들이 이처럼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모압 북쪽에 인접해 있던 르우벤 지파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요단서편도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 된다.
=====3:14
이스라엘 자손이...십 팔 년을 섬기니라 - 모압이 점령한 땅은 여리고 성뿐이다.그런데 본절은 이스라엘 전체가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긴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비록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에글론을 섬긴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적 특성 때문에 그처럼 표현한 듯하다. 즉 이스라엘은 비록 몇몇 개인이나 지파가 범죄하였어도 연대 책임을 강조,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으로 곧잘 간주하였던 것이다.
=====3:15
베냐민 사람...에훗 - 이스라엘의 제2대 사사인 '에훗'이 베냐민 출신이란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 에글론의 압제하에 있던 여리고 성이 곧베냐민지파에게 기업으로 할당되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수 18:21).
왼손잡이 - 원어 '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 )는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자'란 뜻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오른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불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70인역(LXX)을 이를 '암포테로덱씨오스'(* ), 즉 '양손잡이'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왼손이 발달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이 같은 사실은 베냐민 지파중에왼손잡이가 700명이나 있었던 점(20:16)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Lange, MatthewHen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p. 295 f).
그를 의탁하여...공물을 바칠 때에 - 여기서 '그를 의탁하여'란 말은 '베야도'(* )로서 '그의 감독하에' 또는 '그를 통하여'란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모압에게 공물바치는 일을 에홋이 관리, 감독하였음을 의미한다(Keil & DelitzschCommantary, Vol. II, p. 296).
공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미느하'(* )의 원뜻은 '예물', '선물'이다(KJV). 그러나 여기서는 속국의 백성들이 종주국에게 바치는 '조공'(朝貢)을 가리킨다(RSV, NIV).
=====3:16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빗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곧 일반 규빗과 성전 규빗이다. 그중 일반 규빗은 신약 시대에도 널리 사용되던단위로 한 규빗은 45.6cm였다. 그리고 성전 규빗은 일반 규빗보다 손바닥 폭만큼 더긴 53.2cm였다(겔 40:5). 본절에서는 에훗이 칼을 오른쪽 다리 옷 속에 숨겼다가 왼손으로 빼어 사용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칼은 일반 규빗으로 한 규빗인 칼이었던것 같다.
좌우에 날선 칼 - '칼'에 해당하는 '헤레브'(* )는 장검(sword) 뿐 아니라 단검(dagger)을 포함한 모든종류의 예리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훗이 준비한 칼도예리하게 양날을 세운 일종의 단검이었다.
=====3:17
비둔한 자 - '비둔한'에 해당하는 원어 '바리'(* )는 '통통한', '배부른','풍성한' 등의 뜻으로 살이 비정상적으로 찐 상태를 의미한다. 에글론은 참으로 비만한 자였는데 그것은 그가 에훗의 칼에 찔렸을 때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던 점으로서도 알 수 있다(22절). 그런데 사사 시대 후기의 제사장 엘리도 심히 비둔한 자였다.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와 관련 성경 기자는 엘리가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 때문이라고 언급하였다(삼상 4:18)=====3:19
길갈 - 성경에는 이름은 같으나 실제로는 다른 곳인 '길갈'이 여러 곳 나온다. 즉여리고 근처의 길갈(수 4:19)이 있는가 하면 갈릴리 지역의 길갈(수 12:23), 유다 경계지의 길갈(신 15:7)도 있다. 그 뿐 아니라 에발 산 근처의 길갈(신 11:30) 및 엘리야와 엘리사가 관계된 길갈(왕하 2:1)도 있다. 여기서는 그가운데 사무엘의 순회 통치지이기도 하였던(삼상 7:16) 여리고 근처의 길갈을 가리키는 듯하다.
돌 뜨는 곳 -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페실림'(* )의 기본 뜻은 '새기다'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견해를 달리한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3가지로 집약되는데 곧 다음과 같다. (1)채석장의 의미 : KJV와 Living Bible은 이 해석을 취한다. 이것은 '돌을 뜨다'를 의미하는히브리어 동사 '파살'(* )에 따른 번역이다(Keil). (2) 기념 비석의 의미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강을 건넜으므로이를 기념키 위해 여호수아는 길갈에 돌을 세운 적이있다(수 4:19-24). 그래서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 알려진 곳이 되었는테 '페실림'은 바로 그곳에 세워진 기념비석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A.E. Cundall). (3) RSV, NIV, 공동번역에는 '페실림'이 '새겨진 돌' 또는 '우상들'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에서도 '페실림'이 '우상'의 의미로 사용된 곳이 있다(신 7:25 ; 사 21:9 ; 렘 8:19). 이 세 가지 해석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세번째 견해이다. 그 이유는 '페실림'이란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 대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단어의단수형 '페셀'(* ) 역시 '새겨진 형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Lange, C.F.Pulipit Commentary).
은밀한 일 - 공동 번역은 이를 '은밀히 드릴 말'로 번역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되는 '비밀 정보' 곧 보안을 필요로 하는 중대사(重大事)를 가리킨다.
=====3:20
서늘한 다락방 - 고대 근동 지방의 건축 양식에 따르면 지붕 위에 통풍이 잘 되도록 여러 개의 창문을 낸 다락방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낮의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했던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었던 장소도 이러한 다락방이었다(막 14:15). 오늘날까지도 근동 지방에서는 지붕 위에 이러한 다락방을 만들어 쉬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Shaw, Wycliffe Commentary).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고할 일이 있나이다 - 에훗이 실제로 에글론에게 전달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않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에홋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자로 세우실 때, 이미 그에게 에글론을 죽이고 그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주셨을 것이다(15절).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의 명'이란 바로 그러한 명령을 가리킨다고 본다면 에홋은 단순히 에글론을 암살키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MatthewHenry). 에훗이 모압과의 전투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사람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28절)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소명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 혹자(Bertheau)는 에글론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났다고 해석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97). 그러나 본문에는그러한 의미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아마 그는 에글론이 말한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여 일어났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에훗의 말이 매우 비밀한 내용을 담고 있는것으로 추측하여 더욱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에홋과의 거리를 좁히려고좌석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3:21
에훗이...왕의 몸을 찌르매 - 이에 대하여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에글론에게전달될 하나님의 명령(20절)이 에글론의 귀가아닌 가슴(heart)에 즉각적으로 그리고말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강해하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136).
=====3:22
칼자루도...등뒤까지 나갔고 -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칼날이 에훗에 의해 힘있게 에글론의 몸에 꼽혔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칼을...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 역시 하나님께서 에글론에게 내리신 심판을거두지 아니하시므로 죽음의 저주가 끝까지 에글론과 함께 하였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한편 혹자는 이상과 같은 에훗의 암살 행위에 대하여 그 정당성을 의문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홋의 행위는 성경에 나오는 여타 암살 행위(삼하 2:27 ; 4:6)와는그 성격이 다르다. 즉 일반적으로 암살 행위는 사적 원한과 야비한 정치욕(政治慾)에서 비롯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홋은 엄연한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에글론을 응징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에훗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다고평가해야 한다.
=====3:23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 에홋은 암살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락방에 있는 문들을닫아 잠갔다. 다락방 안에 왕이 있을지라도 문이 잠겨 있으면 신하들이 왕의 허락 없이 출입할 수 없다는 점(24절)을 에훗은 십분 이용한 것이다.
=====3:24
발을 가리우신다 - 이러한 말은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으로 사람의 생리적인 현상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즉 이 말은 '용변을 보다' 또는 '잠을 자다', '휴식을취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삼상 24:8에서도 이 같은 말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용변을 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모압 왕 에글론이 발을 가리운 곳이 다락방으로 기술되어 있으므로, '잠을 자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다락방은 담화 장소(삼상 9:25)나 기도처(단 6:10) 이외에 거실로도 사용된 곳이었다(행 1:13).
=====3: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 성경 원문(* ,와야히루 아드 보쉬)에는 '그리고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까지 기다렸다'(And they tarried till theywere ashamed)로 나와 있다. 이는 곧 왕이 너무 오래동안 지체하자 그때서야 비로소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깨닫고서 자신들이 방심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을의미한다.
자기 주가 이미 죽어 - 신하들은 왕이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과연에글론은 영원한 잠을 자고 있었다(Matthew Henry).
=====3:26
스이라 - 본절 외에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지명이다. 따라서 '스이라'는 그 말의 뜻대로 '삼림' 지역을 의미하는 것 같다(Hervey). 27절은 그곳이 에브라임산지의 어느 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곳은 에훗이 추적자들로부터 피하기 쉬은 곳이다.
=====3:27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중 울창한 삼림이 있는 구릉 지대를 일컫는다. 이곳은 가나안 중부에 위치한 곳으로 대개 에스드랠론 평지에서부터 유다 산지와맞닿는 지점까지의 지역을 가리킨다(수 16:1). 비교적 토양이 비옥한 곳이었으므로 수확물도 많이 났었다고 한다.
나팔을 불매 - 이처럼 에훗이 나팔을 분 것은 백성들을 소집할 뿐 아니라(6:34;삼상 13:3) 동시에 전쟁과 같은 비상 사태를 선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3:28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붙이셨느니라 - 이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권능을 확신한 지도자 에홋이 이스라엘을 통솔한 것은 당시 이미 자기들의 왕 에글론을 잃고 지휘 체제를 갖추지 못한 모압군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 이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스라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고 할 수있는데 실제로 이스라엘은 모압군 일만명 가량을 죽이는 대승을 거둔다(29절).
요단 강 나루를..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 여기서 말하는 '요단 강 나루'는 모압땅 맞은 편, 여리고 앞의 요단 강 어느 한 지점일 것이다. 한편 에훗이 이처럼 요단강나루를 지킨 데에는 이중 목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있던모압군(13절)이 강을 건너 모압땅으로 도망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압 본토에서부터 소식을 들은 모압인들이 원군(援軍)은 형성, 요단 강을넘어오는 것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에훗의 봉쇄 작전은 주효(奏效)하였는바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침입하였던 모압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낸다(29,30절).
=====3:29
다 역사요 용사라 - 여기서 '역사'는 원어로 '솨멘'(* )으로서 '신체적으로강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용사'는 '하일'(* )로 전쟁에 능한 '용사를 의미할 뿐 아니라 재산이나 권세 같은 것을 갖추어서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도 의미한다(룻 2:1).
=====3:30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 이는 이스라엘이 사사 옷니엘의 치하에서 누렸던 태평 시대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기간이다(11절). 그리고 전 사사 시대를 걸쳐서도 한 사사밑에서 가장 긴 평화를 누렸던 기간이기도하다(5:31;8:28;10:2, 3;12:7-15;16:31).
=====3:31
삼갈 -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과 더불어 6인의 소사사로 불리우는 자이다.본서 서론, '이스라엘의 사사들' 참조. 한편 삼갈에 대해서는 본절 외에 여자 사사드보라의 노래에서 한번 더 언급된다(5:6). 그렇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대의 형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에홋의 뒤를 잇는 사사로서드보라의 활동 시기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에홋 당시 이스라엘은 80년 동안 태평했으니(30절) 아마 삼갈은 에훗이 죽고 난 후 드보라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의 일시적 혼란기, 즉 일부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때에 잠시사사로 활동했던 것 같다.
소 모는 막대기 - 당시 팔레스틴이나 수리아에서는 밭을 갈 때 길이 약 2.5m 정도되는 둥글고 두꺼운 막대기를 사용하였다 한다. 그 막대기의 한쪽 끝은 뾰족해서 소를몰 때 찌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조그마한 삽이 달려 있어서 밭을손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299).그런데 삼갈이 이처럼 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막대기를 가지고 600명의 블레셋인들을 물리쳤다는 것은 또 다시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큰 능력을 증거해준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가나안 거민
모두를 쫓아내어야 했었다(신 7:1-16). 그런데도 불순종했으며(1:9, 21, 27-36) 그결
과 그들은 남겨둔 가나안 거민들로 말미암아 많은 고난과 약탈을 당하게 된다. 본장
은 그러한 고난의 시작과,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하나님의 도우심 등을 설명한다.
즉 본장에서부터는 이스라엘이 불순종의 결과로 남겨둔 가나안 거민을 하나님께서 징
계의 도구로 삼으시며, 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면 다시 구원자를 보내시어 적들
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시는 역사가 본서 전체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명기 원칙, 즉 당신 백성이 언약을 지키면 복을 주시고 약속의 땅에서 속히
망하게 하실 것(신 4장)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에 입각한 역사 서술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 서술 방식은 다른 역사서(사무엘상 . 하, 열왕기상 . 하, 역대상 .하)에
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본서 및 여타 역사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의
성취 과정을 다룬 구속사의 기록이라 하겠다.
한편 이러한 본장에서 저자는 먼저 사사 시대 전 역사의 암담한 상황을 개관해 보인
다(1-6). 그리고선 그러한 암흑기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이스라엘의 두 사사 옷
니엘(7-11절)과 에흣(12-31절)의 활약상과, 그들의 활동 결과,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
에 미친 영향을 평가한다. 그 평가의 결론은 '태평하였더라'(11, 30절)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그 이후에 나오는 여자 사사 드보라와 여룹바
알이라고도 불리운 기드온 시대의 평가에서도 다시 언급되었다(5:31 ; 8:28). 결국
하나님께서 보낸 이스라엘의 구원자 사사들이 그 백성을 다스릴 때에 만이 백성들이
태평 성대를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을 친히 주장하시고 다스리는 분은 곧
하나님 한분 뿐임을 강조해 준다.
1. 사사 시대 역사 개관(3:1-6)
여호수아의 죽음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이 일단락된 시점에서부터
사사 시대 전반에 걸친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시 그곳 거민들을 철저히 진멸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거민들을 그대로 남겨 두었었다. 그리하여 그들과 더불어 사는 동안 자연 이스
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통혼(通婚)하며 이방신들을 섬기게 되었다(5, 6절). 이에 하나
님께서는 도리어 이스라엘이 남겨둔 가나안 거민들을 들어쓰시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체험치 못한 패역한 이스라엘 후대들을 징계하고 연단하려 작정하신다(1-4절). 그리
고 실제로 누누이 그들을 사용,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8, 12절 ; 4:2 ; 6:3 ; 10:7 ;
15:9).
이처럼 본서의 저자는 사사 시대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
라엘 백성을 연단하시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사실 그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왔으나 그것이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이 아님을(히 4:7, 8) 그들에게 알게 해
주심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서의 진정한 안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려
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의 역사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속사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
도를 믿고 이미 영생을 얻었으나, 이 세상에 살 때 여전히 죄와 투쟁하면서 영원한 안
식을 향해 나아가는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히 10:11-39). 즉 이것은 예수 그
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지만 아직 죄의 권세가 활동하고 있는 까닭과 성도들
이 이 죄의 권세와 더불어 투쟁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그렇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능력을 오해한 채 예수님을 믿으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죄에 맞서 투쟁하는 것
이 아니라 죄의 생활에 안주해도 된다고 하는 그릇된 사고를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
다(롬 6:1, 2).
배은 당덕의 죄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얻게 하심은
그들의 의로움이나 정직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에게 세웠던 언약 때문이었다(신 8:5). 따라서 하나님께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기 전에 그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
라"(신 4:9)고 하셨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주권적으로 행하신 일, 곧 애
굽의 노예 생활에서 그들을 구출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 사실을 그
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본문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조상에게 금지시키신 일, 즉 '가나안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는(출 34:15, 16)명령을 잊어버렸음을 보여 준다(5, 6절). 사실 그들의 선조들도
출애굽 노정시 브올 산에서 모압의 우상 바알을 숭배하는 의식을 따라 모압 여인들과
행음했던 적이 있다(민 25:1). 이때 하나님께서는 행음한 이스라엘 백성 24,000명을
염병으로 쳐서 죽게 하셨다. 이러한 역사를 깊이 명심하고 우상 숭배를 멀리해야 할
그들의 후손이 선조들과 똑같이 범죄했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다는
사실 내지 불신앙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한편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말미
암아 값없이 구원의 선물을 얻었다(엡 2:8). 그리고 성경과 교역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날마다 증거받는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
악의 길에서 돌이키기는 켜녕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도 못하고 불신자들의 행습을 좇아
살아간다면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배은 망덕의 죄를 범하는 것임을 명심해
야 한다.
2. 사사 옷니엘의 행적(3:7 - 11)
메소보다미아의 압제하에서 허덕이던 이스라엘을 초대 사사 옷니엘이 구원해 낸 데
대한 기록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여념이 없는 이
스라엘을 매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붙여 징계하셨다(7, 8절). 그러자 이
스라엘은 저들의 압제를 견디다 못해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한다(9절). 이에 하나님께
선 옷니엘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으니 이후 이스라엘은 사십년 동안 태평 성대
를 구가하게 된다(10, 11절).
여기서 옷니엘은 일찍이 여호수아와 더불어 크게 활약하였던 신앙의 용장 갈렙의 조
카이다(1:13). 본문 중에는 그의 사적이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그는 숙부 갈
렙의 신앙과 용맹을 이어받았음에 틀림없다. 아무튼 옷니엘의 용맹은 이미 그가 기럇
세벧을 정복할 때부터 발휘된다(1:12). 그러나 그의 사사로서의 실제적인 사역은 하나
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심으로써 시작되었다(10절). 이처럼 옷니엘은 하나님의 신을 힘
입어 이스라엘 백성의 초대 사사가 되어 그 땅에 평화를 회복시켰다.
한편 신약의 차원에서 사사는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
서 교역자는 죄악과 각종 유혹이 넘실대는 이 세상으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하고 지도하
되 항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할 것이다. 그
렇지 아니할 때엔 그는 이미 교역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할 터인데 특히 하나님
께서 보내지 않은자가 교회의 지도자 노릇하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교회를
다스리신다는 교회 통치 원리를 망각한 신성 모독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의 구원자 사사(士師)- 사사는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운 구원자를 의미한다(9, 15절;6:14;10:1;13:5). 출애굽한 이스라
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약400여 년 동안 왕이 없이 그 나라를 지속시킬
수 있었던것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헤 때문이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는 이스라엘 백
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들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이처럼 사
사 시대는 인간 지도자를 통한 강력한 정치가 시행된 것이 아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
성들이 자기 소견대로 행하되(21:25)어려움에 처할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
은 사사들을 통해서 구원받던 역사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400여 년 동안 왕을 세우시지 않고 위기 때마다 사사
들을 보내신 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훗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된 것은 하
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하겠다(9:7-21). 그리고 이스라
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삼상
8:5, 6).
한편 이러한 통치 사상은 신약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
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들에게 궁극적이고 영원한 통치자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단지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가 세상과 더불어 사는 동안 세상 풍습을 좇아
타락치 않도록 돌보는 자들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에서 주장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되며, 오직 양물리의 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벧전 5:3). 이러한 본보
기로 우리는 사사 기드온을 들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왕으로 추대했
을때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주지시킴으로써(8:23) 이스라엘 백
성들의 제의를 거부했다. 또한 이와 관련 우리는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을 들 수 있
다. 그는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고린도 교회가 분열되었을 때(고전 1:12), 교회
지도자들은 아무 것도 아니니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교훈했다
(고전 3:5-9).
이상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사사들이 구원자로 나타났으나 정작 그들을 보내
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또한 그들을 통해 역사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그러므로 이스
라엘의 참된 구원자는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교회도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보내시어 교회를 돌보게 하셨으나 그들을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교
회에서는 지도자의 이름이 드러나서는 결코 안 되며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아야 한다(빌 1:12-21).
3. 사사 에훗의 행적(3:12-31)
모압의 압제하에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두번째로 구원해 낸 사사 에훗에 대한 기록
이다. 즉 사사 옷니엘 치하에서 40년 동안 평안을 유지하던 이스라엘(11절)은 그가 죽
은 후 재차 죄의 굴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맹세
하신 대로(2;11-15) 그들을 대적의 손에 파셔씌니 이스라엘은 대적 모압 왕 에글론을
18년 동안 섬겼다(12-14절). 그러나 마침내 이스라엘이 회개하자(15절) 하나님께선
한 구원자를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왼손잡이 사사 에훗이다.
그런데 본서에 나타난 에훗의 활동으로는 모압 왕 에글론(15-25절)과 그 군대(26-31
절)를 쳐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사실만 언급되어 있을 뿐, 그의 행적이 그리 부각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저자가 그의 행적을 평가한 것을볼 때 그의 공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즉 에홋이 사사로 있은 지 8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은 평안을 누
렸다(30절). 여기서 80년 동안 평안을 누렸다는 것은 사사 시대 중 태평 세월이 가장
길었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이는 곧 그의 활동이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의미한
다.
한편 본문에서 에홋이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는 장면은 너무도 잔인한 듯이 보인다
(15-25절). 그러나 이것은 악의 세력과 싸우는 성전(Holy War)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악을 대항함에 있어서 완전히 그 악을 근절시키지 않
으면 그 악은 자라나서 다시 대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들에게 가나안 거민을 모두 몰아내고 모든
신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셨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신 7:1-16). 만일 그렇지 아니
하고 이스라엘이 그들을 남겨둘 때에는 분명 그들을 이스라엘에게 가시와 올무가 될
것이었다(민 33:50-56).
정복해야 할 죄의 권세 - 본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서 끊
임없이 죄를 반복하고 있는 장면이 부각되고 있다(9-12절). 이와 같은 현상은 이스라
엘이 출애굽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했었으며(출 15:24, 25 ; 16:2, 3 ; 17:2, 3 ;
32:1-7), 왕정 통치 시대에도 그러했다(왕상 8:46 ; 13:33, 34 ; 14:9). 그런데 이러
한 죄의 세력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셨음에도 불구하고(요 16:33)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물론 세상 마지막 때에는
이 죄의 세력이 근절되겠지만(계 21:8) 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할 오늘날의 모든 성도
들에게 있어선 이처럼 '죄의 권세'가 얼마나 강한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성도들 중에는 죄이 세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으면서 이 죄에 대해 심
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죄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 버리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죄에 대하여 끝까지 대항하
려는 자세를 포기하고 나름대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서 비롯되어진 결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처럼 죄와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징
계의 채찍과 연단의 풀무를 사용하여 우리를 징책하신다는 데 있다. 다윗의 고백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갈 데가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피할 곳이 없는 인생이다(시
139:7). 따라서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죄의 세력 역시 우리가 가
는 곳마다 따라다닌다.
그러면 성도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중세 교회의 수도사들 모양 사람이 없
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세상을 등지고 살 것인가 ? 주님께서는 변화 산상에서 초막
셋을 짓고 함께 살자고 하던 베드로의 요구를 들어 주시지 않았다(막 9:5). 왜냐하면
성도는 세상 가운데서 죄와 투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에 눌려 산다면 하나님의 나라에는 조금도 기여하지
못한다. 오직 우리는 세상에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그 사실을 바라
보면서 믿음으로 죄와 싸워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죄란 끊임없이 끈질기게 인류 역사와 더불어 상존하고 있음
을 깨달아 이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계 2:24).
삼갈의 활약과 이스라엘의 구원 - 본장 제일 마지막 절(31절)에는 에훗의 뒤를 이
은 사사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
했다는 아주 간략한 기사가 나온다. 에녹에 대한 기록(창 5:24)만큼이나 짧고 단순한
그의 약력으로 보아 삼갈은 무시되어도 좋을 듯하나,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
에서 결코 삼갈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훌륭한 무기 없이 대적 600명을 죽임 : 블레셋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중계 무역을
하여 부유할 뿐만 아니라 해적 생활을 하여 사로잡은 사람들을 주로 애굽의 노예로 파
는 일에 종사했으므로 전쟁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거민 중에서도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혔던 족속이었다. 이러한 블레셋 사람들을 상대로 삼갈이 소 모
는 막대기으로만 600명을 죽였다는 것은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나귀의 턱 뼈 하나로
1,000명이나 죽인 사실(15:15)에 비견될 만하다. 이는 삼손에게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하여 그러한 일을 수행했듯이 삼갈도 자신의 힘과 용맹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그러한 큰 일을 수행했음을 보여 준다(Gerlach). 즉 그가 만일 자신의
능력으로 그 일을 수행했다면 하나님께서 세운 사사로서 성경 역사에 언급될 수 없었
을 것이다.
(2) 이스라엘의 구원 : 삼갈의 활약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의 위협으로부터 해
방될 수 있었다. 이일엔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협력하였거나 간여하였다
는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즉 하나님께선 오직 삼갈을 들어 쓰사 온전히 이스
라엘을 대적의 위협에서부터 구원해 내셨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도 내칠 수도 있는 이스라엘의 참된 주관자, 통치자이심을 시
사해 준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통해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심에 있어선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고 선택된 소수 인원만을 들어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
다(7:2-8).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적용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이끌어 가시기 위해 처음에는 사도들을 세우시고, 그 다음에는 각각 은사대
로 지도자를 세우셨다(행 6:3-5). 따라서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언약 백성을 희생적으로 섬김으로써 그 땅에 평화를 유지시켰듯이 교회에서도 성령의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세우심을 입은 자들이 희생적으로 봉사할 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은 세상적이며 인간적인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되고,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대적 600명을 죽였던 것을 교훈삼아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만을 의지해야 함도 잊지 말자. 부가적으로 예를 들어 보면 다윗은 물맷돌만 가지고서도 온갖 전쟁 무기로 무장한 장수 골리앗을 이겼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을 의지한 연고이다(삼상 17:17-54).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모든 세상적인 것을 배설물같이 여기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기에(빌 3:8) 하나님의 교회에서 기둥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비록 겨자씨만한 믿음만 갖고 있다해도 산을 옮기울 수 있다 했는데 아무렴 우리라고 그러지 못하랴(마 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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