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 이 문구는 2절부터 전개되는 아이(Ai) 성 공격이 실패한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서, 곧 그 원인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 , 헤렘)으로 인한 범죄임을 밝혀주고 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가나안의 첫 열매 된 성으로서(6:17), 그 바친 물건을 취하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경고도 이미 주어져 있었다(6: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엄한 경고를 무시 한 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패역한 대신(對神) 범죄 행위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범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 )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범죄 행위를 뜻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Hamilton, Keil), 따라서 이 문구에서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아도 아간의 범죄가 곧 하나님께 대한 대신(對神) 범죄임을 알게 해준다(11, 20절 ; Woudstra).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할 여리고 성 전리품(6:18, 19)의 일부를 훔친 아간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여리고 전투에 이은 가나안에서의 두번째 전투인 아이 성 전투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보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장은 그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곧 아이 성 전투의 패배(1-5절), 아간의 범죄(6-15절), 밝혀진 아간의 죄상과 처벌(16-25절)이다. 즉 요단 동편의 두왕인 시혼과 옥의 진멸 사건, 요단 강 도하 사건, 여리고 성 정복 사건 등 지금까지 승리의 행진만을 계석해 온 이스라엘은 아이 성 공격에서 36명의 군사가 죽임을 당하는 등 처음으로 큰 참패를 겪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참패의 원인은 곧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임을 밝혀지게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을 심판함으로써 아간의 범죄가 제거되자 하나님께서는 그 진노를 거두신다.
한편 이어서 나오는 8장의 내용은 7장의 내용과 직접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아이 성을 다시 공격함으로 마침내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이러한 본장에서 우리가 특히 중시해야 할 것은 다음 두 가지 사항이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범죄할 때는 무슨 일에서든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2) 범죄는 아간 한 사람이 했지만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아간 한 사람이 범죄했는데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의 언약 공동체로서 전체적으로 보셨기 때문이다.
1. 아이 성 전투에서의 패배(7:1-5)
아이 성 전투 실패의 원인이 되는 아간의 범죄 사실과 하나님의 진노에 관해서 간단히 요약한 후(1절) 뒤이어 아이 성 전투의 패배에 관해서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다(2-5절).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아이 성에 파송한 후 그들을 통해 삼천 명의 군사만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삼천 명의 군사를 보낸다. 그러나 이들은 아이 성 공격에 실패하며 도망하던 중 36명의 죽임까지 당하게 되는바 백성들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아이 성 전투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간의 범죄이다. 그러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차적(副次的)요인도 있으니 곧 여호수아의 경솔이다. 성전(聖戰).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에 도취하여 이번 아이 성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출전에 앞서 성실히 하나님의 뜻을 물었더라면 출전은 금지되었고 치욕스런 패배도 맛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매사에 성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그것은 무엇이든 행동함에 앞서 먼저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다. 그분의 뜻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결코 움직이지 말라 ! 비록 더디더라도 기다리다 보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다. 그러하지 않고 경솔히 행동할 시에는 분명 실패만 맛볼 것이다.
아이 성 전투의 패배 원인 - 아이 성은 벧엘 동남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한 인구 만 이천(8:25)의 조그마한 성읍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이러한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데에는 세 가지 분명한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교훈이 될 것이다.
(1) 아간의 범죄(20, 21절)는 아이 성 전투를 실패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무사히 요단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하셨고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을 한 사람의 인명 피해도 없이 함락시키게 하셨다. 그런데 그처럼 강대했던 여리고 성도 점령한 이스라엘이 작은 아이 성 전투에서 참패한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점령을 시발점으로 아이 성 등 나머지 모든 성읍 등을 점령하고 가나안 전체를 정복하려고 했는데 아이 성 전투의 실패로 그들의 행진은 초기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2) 아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켰다. 1절에는 분명히 아간의 죄악으로 인해 "여호아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아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이 성 전투에서 실패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인 아간이 하나님께 범죄하였는데 아간의 그같은 범죄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는 당신의 은혜를 거두어 버리고 그대신 진노를 쏟아 부으신 것이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우리의 복종을 은혜 베푸시는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에게 베푸시던 은혜를 중단하시며 그렇게 될때 우리는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사례는 많이 있다. 시내 산과 가데스 광야, 브올 등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그때마다 징계를 받았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늘 은혜만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은혜는 하나님의 속성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면서도 또한 죄에 대해서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한편 이 아이 성 전투의 패배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인간의 죄를 두러내심을 보여 준다. 즉 이스라엘 군사 3천명이 패주(敗走)하게 되고 그 가운데 36명이 죽임을 당한 것(4, 5절)은 아간의 죄를 밝혀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취하신 수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아무도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식으로 아간의 죄를 드러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4:20에는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고 했는데 이 사건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그대로 적용되었다. 즉 아간은 하나님대신 재물을 자신의 신으로 섬겼었던 것이다.
(3) 아이 성 패배의 요인은 아간의 범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만심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요단 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앞에 나타난 엄청난 승리로 인해 너무도 흥분하여 이 승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망각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만심에 빠져 작은 아이 성을 하잘것 없이 여겼고 그 성을 정복하는 데는 많은 군사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정탐꾼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하지만 아이 성 전투는 그들의 자만심으로 말미암아 패배로 끝났다.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흥하는데도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력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고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나중에는 갈등에 쌓이고 침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에 더욱 붙들리는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2. 아간의 범죄(7:6-15)
이스라엘이 패배에 대한 여호수아의 겸허한 기도(6-9절)와 하나님께서 패배의 원인이 된 아간의 범죄를 제거하도록 여호수아에게 지시하는 장면이다(10-15절).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의 패배 사건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사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낙담했을 것이다. 이처럼 여호수아가 아이 성 싸움의 실패에 대하여 심한 충격을 받고 낙담한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의 일에 깊은 과심을 갖고 있었으며 평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진실되이 그리고 성실하게 노력했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에서 실패하자 당장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 때문임을 알고 진노를 일으키게 한 이스라엘의 범죄를 찾아내기를 원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의 세력에 대해 과소 평가한 정탐꾼들의 잘못을 책망하지 않고 오로지 백성들 가운데 어떤 죄악이 있는지를 살폈다. 즉 그는 인간적 문제가 아닌 대신적(對神的) 문제에 먼저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이는 여호수아의 기도(7-9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의 기도는 탄식(7절)과 하나님께 대한 두 가지 탄원(8, 9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두 가지 탄원 가운데 첫번째 탄원, 즉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까"(8절)라는 질문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즉
자신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 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는데 가나안 정복의 두번째 단계인 이 아이 성 공격의 실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탄원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9절)라는 질문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심에서 나온 것으로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에서의 패배가 자신의 이름에 끼칠 악영향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이름에 누를 끼칠까 염려했던 것이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금 자비를 베풀어 주도록 작정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10-15절). 즉 하나님께서는 "일어너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10절)고 하심으로 낙심해 있는 여호수아를 격려하셨다. 그런 다음 아이 성 전투의 패배 원인은 아간의 범죄임을 밝히시면서(11, 12상반절) 그 죄를 제거하도록 지시해 주셨다(12하반절-15). 여기서도 우리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 5:16)는 사실을 새삼 배우게 된다. 육신의 아비도 자식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는데 하물며 이기심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에 만유(萬有)의 아버지께서 쾌히 응답하시지 아니하겠는가(눅 11:9-13) ?
아간의 범죄와 그 의미 - 아간이 여리고 전투시, 전리품의 일부를 챙긴 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땐 흔히 있을 수 있고 덮어둘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패배를 가져올 만큼 중대한 범죄로 취급되었던 까닭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관계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에 대하여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아간의 행위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짓밟는 범죄였다. 아간은 여리고 성 전투에서 전리품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15절 ; 6:18)을 무시하고 그중 일부를 훔쳤다. 그 결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거룩하고 엄숙한 언약을 파기시키고 말았다.
(2) 아간의 행위는 십계명 중 제 8계명을 위반한 죄, 곧 도적질이었다.(출 20:15). 즉 아간은 예기치 않았던 유혹에 맞서 싸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탐욕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물건을 훔쳐 자신의 장막 속에 감추어 두는 죄를 범하고 만 것이다(21절).
(3) 아간의 행위는 기만적이었다. 도적질과 거짓은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아간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만적 생각에 발각될 때까지 끝내 자신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
(4) 아간의 행위는 그가 이기적인 인간임을 보여 준다. 즉 아간이 누구도 모르게 형제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자기의 유익만을 취한 것은 그가 얼마나 형제애가 없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훔치면 훔친 사람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심판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6:18)를 듣고도 하나님의 물건을 도적질했던 것이다.
(5) 아간의 행위는 그의 불신앙을 나타내 준다. 아간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씀대로 되겠느냐는 불신앙을 나타내 준다. 아간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씀대로 되겠느냐는 불신앙적인 자세로 받아들였다. 아간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믿었다면 그런 범죄는 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간의 탐욕심 - 아간이 죄를 범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그의 탐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아름답고 값나가는 물건들을 보자마자 취하고 싶은 욕심에 이끌려 그것을 훔치고 말았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도 먹어서는 안되는 선악과를 탐심 때문에 먹었고(창 3:6), 또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왕 다윗도 밧세바에 대한 탐심 때문에 간음을 하였고(삼하 11:2-5), 아합 역시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은 탐심 때문에 잔인하고 악한 방법으로 그 포도원을 자기의 소유로 삼고 말았던 것이다(왕상 21:1-16). 잠언 1:19에서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의 말처럼 아간은 자기의 탐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자초하고 말았다. 우리는 아간의 비참한 종말을 지켜 보면서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을 기억할 수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한편 아간처럼 돈을 과도하게 사랑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당한 사람의 경우는 신약 시대의 초대 교회에서도 발견된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역시 재물에 눈이 어두워 사도들을 속였다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행 5:1-10). 아간의 사건은 당시 여리고 성의 함락이라는 기적적인 승리가 있은 직후에 일어난 것이고 초대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은 오순절 성령 강림(행 2:1-4)의 기적적인 승리의 사건이 있은 바로 직후에 나타난 사건이다. 이와 같이 볼 때 구약 시대의 아간의 범죄와 신약 시대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내용상 일치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들에게 '방심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안겨 주는데 그리할 때 선인(先人)들이 염려하던 호사 다마(好事多魔)의 불상사는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과 단체의 상관성 - 우리는 본문에서 사실상 아간 일개인이 죄를 범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범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11절)을 볼 수 잇다. 즉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아간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범죄에 가담했기 때문이 아니다. 본장 어느 곳에도 그런 사실은 암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한 사람의 범죄가 이스라엘 전체의 죄로 간주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의 연합체요 신앙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전체적으로 보시기 때문에 어느 일개인의 범죄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연합의 중요성은 전쟁 중의 통신 체제를 비유로 하여 설명할 수 있다. 전쟁 중 통신 체제가 이상이 없을 때에는 이곳 저곳에 산재해 있는 군대끼리 의사 소통이 원활해져서 일치된 작전과 군사 행동으로 큰 힘을 발휘할 구 있지만 그러나 한 군대가 이상이 생기거나 극단적으로 말해 이적 행위를 할 때 단결은 무너지고 전력은 저하되고 말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연합도 이러한 통신 체제와 비슷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사이의 영적 연합에 이상이 없을 때만이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물건을 도적질하여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결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평범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떠나간 것은 바로 이러한 영적 연합의 원리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는 신약의 교회에도 적용된다. 특히 바울은 이 원리를 많이 강조하였는데 롬 12:3-13 ; 고전 12:12-31에서 몸과 지체와의 비유를 들어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 신자들은 그 지체들이다. 여기서 바울은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 했고(고전 12:20), 또한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 하나니"라고 했다(고전 12:26). 그리고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고 하였다. 우리는 아간의 범죄를 거울 삼아 결코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른 지체들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에 속한 한 두 사람의 잘못은 교회 전체의 부흥 발전을 방해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탐욕으로 가득찬 몇몇 사람 때문에 교회의 발전이 얼마나 많이 지연되고 방해를 받았던가 !
3. 밝혀진 아간의 죄상과 처벌(7:16-25)
하나님께로부터 아이 성 전투 패배 원인을 들은 여호수아가 범인을 색출, 처단하는 장면이다. 즉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제비<민 26:52-56 강해, 제비뽑기>로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전리품을 숨긴 범인을 추적한 결과 아간임을 알게 된다(16-18절). 이에 여호수아는 그에게 죄의 자복을 종용하게 되었고 그는 그제서야 순순히 자신이 전리품의 일부인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훔쳤다고 시인하였다(19-21절). 그래서 여호수아는 사람을 보내어 그 훔친 물건들을 가져오게 하여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후(22,23). 아간과 그가 훔친 모든 것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로 치고 돌 무더기를 쌓아 올렸다(24-26절). 이러한 본문의 내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아간은 아주 교활한 자였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로 말미암아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한 후 그 범죄자를 색출하기 위해 제비를 뽑고 있는 데도 아간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제비를 뽑는 중에라도 '범인은 바로 접니다'라고 죄를 고백했더라면 그들은 그 많은 고생도 하지 않고 마음의 상처도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는 끝까지 아무 말없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아간은 자신이 범인으로 지명되자 범인임을 자백했지만(19-21절) 그의 자백은 그가 도적질하던 죄만큼이나 이기적인 거싱었다. 그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죄를 고백한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을 피해 보려는 최후 수단으로 죄를 고백했다. 즉 그는 지금이라도 죄를 고백하면 동정을 얻어 가벌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교활한 생각에서 고백을 하였던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간과 그가 훔친 전리품 및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로 쳐서 돌 무더기를 만들었는데, 이 돌 무더기는 4장에서 우리가 보았던 돌 무더기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즉 4장의 돌 무더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기적적 능력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지만 본문에 나타난 돌 무더기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경고의 표시로 세워졌다. 따라서 이 두 종류의 돌 무더기는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때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만 불순종할 때는 심판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좋은 역사적 증표이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 여기서는 아간(Achan)의 범죄에 대해 일반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범죄 내용은 21절에 나타나 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범죄를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똑똑히 보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Matthew Henry).
바친 물건(* , 헤렘) - 6:17; 레 27:28 주석참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 여기서 '여호와의 진노'는 범죄한 아간 한 사람만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미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음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아간의 범죄는 아이 성 정복에 실패를 가져오게 했고, 이스라엘 온 백성을 큰 비탄에 빠지게 하였다(4, 5절). 한 사람 아간(Achan)의 범죄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유기적(有機的) 통일체임을 알면 쉽게 이해된다(Lias). 즉 이스라엘 민족은 순수한 '혈연 공동체'였을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모시는 '언약 공동체'였고, 아간은 이 공동체의 일원이었다(11절;Maxwell, Goslinga). 따라서 아간 한 사람의 범죄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가 된 것이다. 이는 마치 한 지체(肢體)의 고통으로 온 몸 전체가 고통받는 것과 같다(Keil). 이러한 예는 삼하 21;1-10에도 나타나있는데, 여기에는 다윗 시대에 있었던 삼년 동안의 기근이 사울과 그의 집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Maxwell). 한편 여기서 '진노'라는 말은 '불붙는 듯한 분노'를 뜻하는 말로(Luther), 사람에게도 적용되었지만(창 4:5; 삼하 12:5), 특별히 하나님께 적용되는 단어이다(민 11:1, 10; 22:22; 욥 19:11; 42:7; 슥 10:3; 합 3:8). 실로 하나님의 불타는 듯한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롬 1:18; Fay, Woudstra).
=====7:2
여리고 - 6:1 주석 참조.
벧엘 - 예루살렘 북쪽 약 19km 지점에 위치한 '벧엘'(Bethel, '하나님의 집'이란 뜻)은 팔레스틴 남북(南北) 대로의 경계를 이룸과 동시에 요단 건너편 서쪽에서 여리고를 지나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東西)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이 성읍은 구약 성경에 65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곳인데, 족장 시대 때에는 '루수'란 명칭으로 불리웠다(창 28:19). 가나안 정복 후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기업이 되었는데, 사사 시대에는 오랫동안 법궤가 안치되기도 했던 곳이다(삿 20:26; 삼상 10:3).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했던 이곳은(삼상 7:16), 그러나 여로보암 당시에는 금송아지 제단이 세워져 우상 숭배를 한 곳으로 유명하기도 했다(왕상 12:28-13:5). 그후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이곳은 후일 포로 귀환 후 베냐민 자손에 의해 재건되기도 했다. 오늘날 이곳은 '베이틴'(Beitin)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Robinson, Nablus).
벧아웬 - '사악한 집'이란 뜻을 지닌 '벧아웬'(Bethawen)은 '벧엘'동쪽 가까이에 위치한 성읍으로, 유명한 '벧엘'이 우상 숭배의 장소로 전락하자 이를 모멸하는 의미에서 반어적으로 주어진 명칭이다(호 4:15; 5:8; 10:5). 한편 삼상 13:5; 14:23의 내용을 살펴 보면, '벧아웬'은 '믹마스' 동쪽 내지는 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다(Keil).
아이 - '벧엘' 동남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해 잇는 '아이'(Ai)는 전통적으로 현재의 '엣 텔'(et-Tell)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것은 '아이'의 뜻이 '돌 무더기'(heap of stones) 또는 '파괴의 무더기'(heap of ruins)란 뜻인데(8:28), 오늘날 '엣 텔'(et-Tell)의 지명 뜻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 땅을 정탐하라 - 가데스에서 모세가 처음 가나안에 정탐탐꾼을 파견했을 때, 여호수아는 자신이 직접 정탐꾼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런데 모세와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처음 여리고 성을 점령 할 때 먼저 정탐 전략을 사용하였고(2장), 지금의 아이 성 점령을 위해서도 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7:3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치게 하소서 - 아이 성의 주민은 12,000명이었다(8:25; Fay, Keil).
따라서 싸움에 출전할 수 있는 장점은 대략 3,500 - 4000명 가량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탐꾼들이 아이 성이 여리고 성과는 달리 해발 800m 가량의 산지(山地)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인근 벧엘의 군사들과 합동 작전을 펼 가능성이 있다는 점(8:17)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스라엘 군사 2,000 - 3,000명 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한 것은 분명 상대를 얕잡아 보고 이스라엘 군대의 힘만을 믿은 교만심의 발로였다(Matthew Henry, Calvin). 즉 최근의 요단 동편 아모리 두 왕의 진멸 사건(2:10), 요단 강 도하 사건(3장), 여리고 성 정복 사건(6장) 등 지금까지의 연전 연승만을 믿은 지나친 자만심에서 나온 잘못된 보고였다. 물론 아이 성 전쟁 실패의 근본적 요인이 아간의 범죄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1절), 이들의 자만심 또한 실패의 한 요인으로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치게 하소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 )는 '때리다', '죽이다'란 뜻으로서, 종종 한번의 치명적인 타격으로 어떤 대상을 치거나 죽일때 사용되는 단어이다(Wilson).
그들은 소수 - 8:25에 따르면 아이 성 주민은 12,000명이었다. 그런데도 단순히 '소수'라고 평가한 것은 정탐을 성실하게 하지 않았거나 그 정도의 주민이 있음을 알고도 그들을 깔보고 보고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7:4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 아간의 범죄(1절)와 백성들의 자만심(3절)등으로 인해 아이(Ai) 성의 1차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스라엘 군대는 전사자만 남긴 채 비참하게 패주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이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했다.
=====7:5
삼십 육인쯤 죽이고...쳤으므로 - '죽이고'와 '쳤으므로'의 기본형은 둘 다 '나카'(* )인데, 이는 '치명적 타격'을 가리키는 말이다(3절). 이들 36명의 이스라엘 용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에서 기록된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상자로서 이들이 죽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자만심에 정당한 응보였지만(Calvin). 그 근본적 원인은 하나님께 '바친 물건'(6:17)을 범한 아간의 죄 때문이었다(1절;Dake).
스바림 - '깨드리다'(break), '부수다'(crush)란 뜻을 지닌 '솨바르'(* )에서 파생된 지명으로, 아마 아이 근처 산록의 채석장(採石場, stonequarries)인 듯하다(Lias, Keil).
내려가는 비탈에서 - 이 말은 아이(Ai) 성이 높은 산지(山地)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 결과 아이 성은 해발 약 800m 가량의 고산지에 건축된 견고한 성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 한때는 이스라엘의 요단 강 도하 사건으로 가나안 모든 족속들의 마음이 녹았었는데(5:1), 이제는 그 반대로 아이 성 전쟁 실패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게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승리만을 계속해 온 그들에게 이러한 비참한 패배는 큰 두려움과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즉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쉽게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두렵게 한 것은 36명의 죽음과 3000명의 패주가 아니라, 지금까지 도와주시던 하나님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그 두려운 사실이었다(Calvin).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 유대인의 의복은 흔히 통으로 짠 것이어서 가슴 부분의 옷깃을 잡고 좌우로 당기면 찢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고통이나 번뇌에 사로잡혔을 때 취해지곤 했던 극한 슬픔의 표시였다(창 37:34; 민 14:6; 삼하 1:11; Knobel). 한편 여기서 여호수아는 전쟁의 패인을 숫적 열세라든가 작전 미숙 등 다른 곳에서 쉽게 찾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이번 전투의 패배를 거울 삼아 더욱 병력을 증강하여 아이 성 군대에 곧장 반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토록 고통스러워 하고 큰 슬픔에 빠진 이유는 전쟁의 승패를 떠나 하나님의 손길이 이제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즉, 항상 승리케 함으로써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1:3-6)과는 달리 전쟁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약속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싫어하사 당신의 약속을 철회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전쟁에 실패하였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Calvin).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 '땅에 엎드리는' 행위는 5:14과 똑같이 겸손과 자기 비하의 행위이지만, 여기서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는 결단성까지 내포하고 있다(민 14:5; 20:6). 또한 '티끌을 무릅쓰고'는 직역하면 '머리에 흙을 올려 놓고'인데, 이는 자신의 가장 고귀한 부위인 모리에 가장 천한 땅의 티끌을 뒤집어 씀으로써 극도의 비천과 수모 및 굴욕 상태를 나타내는 행위였다(Lias).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주로 근친의 죽음이나 국가적 재난을 당했을 때 그 사실을 애도, 통곡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이런 뜻을 나타내는 행위에는 이밖에도 (1)베옷을 입고 (2)가슴을 치며 (3)금식하며 (4)머리를 밀거나 몸을 베는 것 등이 있었는데(삼하 12:15,16; 렘 16:6, 7; 욜 1:8-14;Maxwell), 이러한 풍습이 나중에는 외형적 격식으로 흐르게 되자, 선지자 요엘은 진정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라고 외치기도 했다(욜 2:13).
=====7:7
슬프도소이다...좋을뻔 하였나이다 - 이말은 마치 광야에서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 했던 이스라엘 선조들의 탄식(출 14:11, 12; 민 14:2, 3)을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여기 여호수아의 원망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하여 터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는 전혀 다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원망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패역과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아이 성 전투 패배 후 여호와의 궤앞에서 털어놓은 여호수아의 원망은 기도로써 하나님과 영적 씨름을 하는 지도자의 고뇌와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 p. 77).
아모리 사람 -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다. 따라서 흔히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 전체를 대표하여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요단 저편 - 즉 요단 동편,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 지역을 가리킨다. 민 32:19 주석 참조.
=====7:8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까 - 이 질문은 이어 나오는 9절과 연결시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여호와의 군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대적들에게 패주한 것은 결국 여호와의 거룩하신 성호(聖號)가 더렵혀진 결과 밖에는 되지 않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이 대적 가나안 족속에게 패배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거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호소이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지금 자신의 평판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대적 가나안 족속에게 행여 멸시당하지는 않을까라는 바로 그 사실을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Keil, Calvin).
한편 이러한 기도의 예는 일찍이 모세의 중보 기도 속에서도 잘 나타난 바 있었다(출 32:12; 민 14:15, 16)=====7:9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 전능한 신(神) 여호와게서 함께 하심으로 연전 연승을 계속해 오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로 인하여 잔뜩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가나안 족속들이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작은 아이 성의 군대에게 조차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심기일전하여 상호 동맹을 맺고 세차게 공격해 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은 커녕 그들의 생명조차 보존할 수 없을 것임을 뜻하는 말이다(Calvin).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 하나님께서는 노예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사 당신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민족을 통해 열방 중에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출애굽 사건, 홍해 도하 사건, 아모리 족속 정벌 사건, 요단 도하 사건 및 최근의 여리고 성 정복 사건 등을 통해 그 거룩하신 이름이 열방 중에 널리 퍼져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 성 패전 사건은 이 모든 영광스런 사건에 찬물을 끼얹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그동안 열방 중에 널리 퍼진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의 위엄이 일순간에 무너질 위기의 사건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현시점에서 모세의 노래(신 32:1-47)속에서도 나타난 바,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 원수가 오해하여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신 32:27)는 그 염려를 지적하면서 아이 성 패전 사건을 바로 여호와의 영광과 결부시켰던 것이다(Calvin).
=====7:10
일어나라 - 히브리어 '쿰'(* )은 '힘을 내라', '담대하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삿 4:14; 사 60:1). 따라서 본절은 여호와의 언약이나 신실성을 절대 의심치 말고, 아이 성 패배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하라는 의미이다(Knobel, Keil).
=====7: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 본절은 이스라엘이 하나의 유기적인 언약 공동체라는 차원에서 1절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범죄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다음 문구에서 1절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이 지적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뜻을 거스리는 죄를 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시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곧장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 실패의 생활을 한 것도 바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갈렙과 더불어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생존자로서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 전쟁 실패의 원인도 바로 당신의 뜻을 거스린 죄에 있음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하면 화를 당할것(신 7:26)이라는 금지 규정을 어긴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죄가 아니라,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킬만한 신성 모독죄였다(Calvin).
바친 물건 - 6:17; 레 27:28 주석 참조.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두었느니라 - 위 문구에 언급된 '범죄하다', '언약을 어기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한편 여기서 '취하다', '도적하다', '사기하다', '두다' 등의 동사가 히브리 성경 원어에서는 4개의 '뿐만 아니라'(* , 감)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그 범죄 행위가 얼마나 큰가를 여실해 보여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자칫 가볍게 생각할지도 모를 그러한 죄악의 극악성을 극명하게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다(Calvin).
=====7:12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 여기 '바친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렘'(* )은 '저주받은 것'을 뜻한다<6:17; 레 27:28>. 따라서 본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주 받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1절; 6:18).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은 반드시 파멸을 당해야 하는데도, 이스라엘이 이 진노의 대상이 된 것(바친 물건)을 훔쳤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또한 진노의 대상, 즉 바친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7:13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다(출 19:6).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기대할 때 그들은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여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고자 했을 때(출 19:10), 요단 강 도하를 목전에 두었을 때(3:5) 등에 서도 먼저 성결케 될 것을 지시받았었다. 그러므로 지금 아이 성 패전의 원인인 '바친 물건'을 범한 자를 가려내고자 하는 여기서도 성결케 될 것을 명령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 율법의 심판을 받을 때이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동시에 이 명령은, 범죄자는 빨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자복하라는 촉구 명령이기도 했다(Calvin).
바친 물건 - 6:17; 레 27:28 주석 참조.
=====7:14
지파...족속...가족...남자대로 - '지파'(tribe),'족속'(family - KJV, RSV;clan - NTV, Living Bible), '가족'(household - KJV, RSV;family - NTV, Living Bible), '남자'(man)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기본 단위이다(Keil). 그런데 여기서 '지파 '(* , 쉐베트) 는 물론 이스라엘 12지파를 가리킨다. 그리고 '족속'( * , 미쉬파하)은 여러 가족들이 모인 혈연 집단을 가리키며, '가족'(* , 바이트)은 아버지와 아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제 1세대의 집안을 가리킨다. 그리고 '남자'(* , 게베르)는 '강한'(strong)이란 뜻의 '가바르'에서 파생된 말로, 직역하면 '용사'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싸움에 출전할 만한 나이인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민 1:3).
가까이 나아오라 - 하나님 앞으로,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성소 앞에 나아오라' 는 뜻이다(Keil).
여호와께서 뽑히는 - 여기서 '뽑히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카드'(* )에는 '잡다', '선택하다'란 뜻이 있는데, 삼상 14:41, 42에 따르면 이 낱말은 제비를 뽑아 사람을 선택할 때 사용되었다. 특히 이 제비뽑기는 목격자가 없어 범죄자가 누구인지 판명되지 아니할 경우에 흔히 사용되었던 것이다(욘 1:7; 잠 18:18). 선지자가 활발히 활동하기 이전 시대에 이 제비뽑기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계시 도구로 사용하셨고, 또한 당시 백성들은 그 결과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잠 16:33). 한편 제비가 어떠한 방법으로 뽑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측컨데(18:6, 10, 11; 19:1), 작은 판(tablet)이나 그릇을 사용하여 그 속에 이름이 적혀 있는 제비(lot)를 뽑은 것같다(Keil & Delizsch, Vol. II. p. 80). 그리고 '제비'(* , 고랄)란 말이 '작은 돌' 또는 '자갈'을 지칭하는 단어인 만큼, 그 모양은 매끄러운 작은 돌처럼 생겼던 듯하다(Lange).
=====7:15
바친 물건 - 히브리어로 '헤렘'(* )인데, 이는 곧 하나님께 '저주받은 물건'으로서 결코 인간이 소유할 수 없었고, 온전히 죽이거나 불태워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했다(6:17; 레 27:28).
뽑힌 자를 불사르되 - 25절에 따르면 산채로 불사르지 않고 먼저 돌로 쳐 죽인 후에, 그 시체를 불로 태우는 것을 가리킨다(Fay). 특히 시신(屍身)을 매우 중히 여겼던 고대 사회에서 범죄자에 대한 이와같은 화형(火刑)은 극한적인 형벌로 간주되었다(Keil). 모세 율법은 아내와 장모를 함께 취한 자는 그들과 함께 불사르라고 하였고(레 20:14), 제사장의 딸이 행음(行淫)을 하면 불에 태워 죽이라고 하였다(레 21:9). 한편 바친 물건을 훔친 자에게 이처럼 중한 형벌이 가해진 것은 '바친 물건', 곧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저주받아야 할 물건을 자신이 소유함으로써 물건과 더불어 그 물건을 훔친 자 역시 하나님의 불타는 진노를 면할 길 없었기 때문이다. 이울러 그 범죄 행위가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께 로부터 소원(疏遠)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 24절을 통해 볼 때 여기서 '그 모든 소유'는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가리키며, '그리하라'는 말은 '불태우라'는 뜻이다.
망령된 일(* , 네발라) - 이는 '멍청한'(stupid), '사악한'(wicked)이란 뜻의 '나발'(* )에서 파생된 말로, 곧 '매우 어리석고도 사악한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특히 성경적 의미로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영광과 명예 및 자부심을 짓밟는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같은 단어가 창 34:7에서는 '부끄러운 일'로 번역되었다.
=====7:16
유다 지파 -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도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지파로, 그 수효도 많았을 뿐 아니라(민 1:27) 세력도 강하여 항상 선봉에서 활약하던 귀한 지파였다(민 2:9). 그런데 바로 이 유다 지파가 첫번째 제비뽑기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유다 지파의 모든 용사들이 분노의 칼을 뽑아든 채 유다 지파를 더럽힌 그 범죄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처단함으로써 유다 지파의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는 결코 칼을 칼집에 도로 꽃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다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7:17
세라 족속의 각 남자 - 여기서 '각 남자'는 각 '족속(* , 미쉬파하)을 대표하여 제비뽑은 각 족속의 족장(族長)들을 가리킨다(Keil).
=====7:18
아간이 뽑혔더라 -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성결케 하도록 하루의 여유를 주고(13절), 그 다음날 지파 -> 족속 -> 가족 -> 남자에 이르는 제비뽑기를 순서대로 한 것은 달리 생각하면 범죄자에게 자발적인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아간(Achan)의 무서운 무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범죄자가 멸망당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긍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패역무도함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7:19
내 아들아 청하노라 - 여호수아가 아간을 '내 아들아'라고 부른 것은 유대 랍비 및 몇몇 학자들의 상상처럼 비웃거나 간사하게 위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Fay), 긍휼을 내포한 진실된 부성애(父性愛)의 입장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Calvin, Keil).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시된 제비 뽑기에 의해 색출된 아간이 자신의 모든 범죄 사실을 솔직히 자백할 경우, 나머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에 영광을 돌릴 것이었다. 그러나 아간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우길 경우 아간은 아간대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몰아 세우는 참람한 죄악을 더할 뿐더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뽑기의 결과에 일말의 의혹을 품게 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전지성에 순복할 것을 종용하였던 것이다.
자복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야다'(* )는 '고백하다'(con- fess) 란 뜻으로, 개인적으로든지 국가적으로든지 하나님께 대한 죄의 시인 혹은 고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시 32:5; Alexander). 여기서는 뒤따라 나오는 동사 '고하다'와 '숨기지 말라'가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해 주고 있다.
=====7:20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 '여차 여차히'(* , 카조트 웨 카조트)라는 말은 '이처럼 이처럼'(thus and thus)을 뜻하는 말로서, 곧 21절의 내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 아간의 이러한 죄의 자복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제비가 뽑히자 공포심에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시인한 것에 불과하다(Calvin).
=====7:21
노략한 물건 - '강제로 빼앗다', '상대방을 속이다', '이익을 얻다'란 뜻의 동사 '솰랄'(* )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여기서는 여리고 성에서 탈취한 전리품을 뜻한다.
시날 산의...외투 한 벌 - 여기서 '시날'(Shinar)은 '두강 사이의 땅'이란 뜻인데, 두 강은 곧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말한다. 따라서 '시날' 땅은, 일찍이 니므롯 왕국이 세워지기도 했으며(창 10:10), 바벨 탑이 건축되려고도 했던(창 11:2) '바벨론' 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 '외투'(* , 아데레트)는 갖가지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진 값지고 귀할 뿐 아니라 예술 적인 베벨론산(産) 외투를 가리킨다(Keil, Lias, Lange). 당시 이 바벨론산 외투는 왕족이나 방백들, 또는 부자들만이 입을 수 있었던 귀한 것으로 매우 값진 교역 품목이었다.
세겔 - '세겔'(Shekel)은 무게를 축정하는 히브리인들의 기본 단위로 1세겔은 대략 11.4g 가량이었다(Vol. I. p. 43,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따라서 아간이 훔친 금은의 중량은 은(銀)이 약 80온스(1온스는 약 28.5g), 금(金)이 약 20온스였다.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 '보다', '탐내다', '취하다'란 말에 각각 '라아'(* ), '하마드'(* ), '라카'(* )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 데, 이는 창 3:6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기사와 흡사하다. 즉 하와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탐스럽기도' 하여 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열매를 따먹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죄는 먼저 보는 것에서 시작되어 보이지 않는 탐심이 생기게 되고, 결국은 사망 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깨닫게 해준다(약 1:15; 요일 2:16).
=====7:22
이에...보내매...달려가 본즉 - 아간의 자백으로 말미암아 우려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나자 여호수아는 그 뒷수습을 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사신을 급히 아간의 장막으로 보냈고, 또한 사신은 급히 달려가 그 '바친 물건'(시날산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금 오십 세겔)을 찾았다. 이처럼 그들이 모두 신속히 행동한 이유는 어서 빨리 그 바친 물건들을 찾아 하나님 앞에서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 위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저주가 거두어 지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이다(Calvin, Matthew Henry).
=====7:23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 보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막 앞에'가져다 놓은 것을 뜻한다(Keil).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할 물건들이 이제 하나님께 다시 돌아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Goslinga, Bright).
=====7:24
아간을 잡고...그 아들들과 딸들과...그에게 속한 모든 것 - 아간의 범죄 때문에 '그에게 속한 모든 것'(가축, 장막, 재산 등), 특히 '아간의 자녀들'까지 함께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 신 24:16의 규정에 의하면, 아비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까지 전가(轉嫁)시켜서는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자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한다. 즉 (1)당시 극도로 흥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분별한 군중 심리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견해, (2)아간의 자녀들은 실제 처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비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보고 심각한 경고를 받도록 골짜기까지 함께 끌려갔다는 견해(Grotius, 1538-1645) 등 이다. 그러나 위의 두 견해는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특히 두번째 견해는 문법적으로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3)아간의범죄에 그의 가족이 동참했거나 아니면 묵인했을 것이라는 견해(Keil, Matthew Henry)로서, 즉 아간이 '바친 물건'을 장막 안에다 감추는 과정에서, 그 무서운 범죄 사실을 알고도 동조, 묵인 내지는 방조한 그의 가족 또한 아간 못지 않은 범법자였다는 견해이다. 또한 (4)신 24:16의 규정을 초월하여, 아간의 가족에게는 여리고 거민들에게 적용된 '헤렘'(* -'바친 것'이란 뜻)의 원리가 적용되었다는 견해이다(Calvin). 다시 말하면 우상 숭배에 빠진 성읍(신 13:15-17)이나 가나안 족속들의 경우처럼, 아간 및 그 가족은 그 가증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오직 모두 진멸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만족시키는 '바친 것'이 되었다는 견해이다(12절). 즉 아간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취함으로써 아간 자신 및 그 가족이 오히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되었다는 견해이다. 이상의 견해 중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시키는 성전(聖戰)이며, 따라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서 무엇보다 '성결'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칼빈(Calvin)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 견해로 보인다.
아골 골짜기 - 여리고 근방에 있는 골짜기로 후일 유다와 베냐민 자파의 지경이 되었다(15:7). 한편 여기서 '아골'(* )은 '괴롭다', '슬프다'란 뜻의 동사 '아칼'(* )에서 파생된 명사로, 곧 '괴로움', '슬픔', '고통'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골 골짜기'(the Valley of Achor)란 '괴로움의 골짜기' 또는 '고통의 골짜기'란 뜻으로, 이는 25절로부터 유래되었는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의 죄와 그에 해당하는 무서운 형벌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후세에 경고로 삼기 위해 명명한 명칭이다. 이처럼 본래 아골 골짜기는 '심판'과 '고통' 및 '저주'를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후일 선지자들의 시대에는 종말론족으로 이스라엘의 '치유'와 '회복'을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사 65:10; 호 2:15). 한편 아간의 처형 장소로 이처럼 이스라엘 진영 바깥을 택한 이유는 가증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Calvin, Matthew Henry). 즉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를 부패시킨 암적 요인을 '멀리 그리고 단호히' 제거시켜 이스라엘 진영을 거룩히 보존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7:25
괴롭게 하였느뇨...괴롭게 하시리라 - 여호수아가 절망에 빠진 아간에게 이런 말을 한것은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잔인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타락시키고 어지럽히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보여주려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해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시작될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그 전쟁의 언약적 의의보다는 전쟁의 노획물에 더 마음을 쓰고, 급기야는 아간처럼 탐욕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나머지 군사들에게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돌로 치고...불사르고 - '돌로 쳐죽이는 처형법'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해 시행하던 일종의 공개 처형법으로서, 우상 숭배자(레 20:2-5), 신성 모독자(레 24:15, 16), 부모에게 대적하는 패륜아(신 21:18-21), 안식일을 범한 자(민 15:32-36)등에 적용되었다. 이 처형법의 시행 목적은 (1)그 범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2)또한 공동체의 연대 책임 의식을 강화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불사르고'에 해당하는 '사라프'(* )는 '시체를 태워 없애다'란 강렬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모세 율법의 규정상 이러한 화형(火刑)은 아내와 장모를 아울러 취하는 자(레 20:14)와 제사장의 딸로서 행음(行淫)한 자(레 21:9)에게 적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간 및 그의 가족들도 이러한 끔찍한 형벌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한 탐욕의 죄를 넘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범하는 신성 모독죄를 범했기 때문이요, 그 범죄의 결과로 이스라엘 전체를 비탄 속에 빠뜨린 공동체 파괴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한편 신약에서도 이 아간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행 5:1-11에 기록되어 있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바쳐야 할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다가 베드로에게 발각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Cake). 이렇듯 신.구약에 각기 기록된 이 두 사건은 새로운 국가 또는 새로운 교회의 시작에 있어야 언약 백성의 성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7:26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 오고 오는 세대에 교훈 및 경고를 주기 위하여 처형당한 시체 위에 돌을 던져 돌 무더기를 쌓은 것을 의미한다(8:29; 삼하 18:17;Keil). 즉 이와같이 한 것은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아간의 형벌 및 수치를 기념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이러한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교육적 목적 때문이었다(Camp- bell).
오늘날까지 - 곧 여호수아서에 본 장면이 기록될 당시까지를 의미한다.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 여기서 '극렬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진노하다의 기본형과 같은 '하라'(* )이다<1절>. 그리고 '분노'에 해당하는 '아프'(* )는 '그 코로 숨쉬다'라는 뜻의 '아나프'(* )에서 파생한 명사인데, 성경에서 '콧김'은 종종 하나님의 능력이나 진노 등을 의미하고 있다(출 15:8; 삼하 22:16; 욥 4:9). 한편 하나님께서 진노 하신 것은 아간의 죄 때문이었다(1절). 그런데 이제 아간이 정죄를 당해 죽임당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결케 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으니 그 진노가 그친 것은 당연하다(Dake).
아골 골짜기 - 24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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