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 - 모세가 이미 28, 29장에서 언급한 축복과 저주, 곧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임할 복과 불순종할 때 임할 저주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복'이라는 말을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본문 이해에 자연스럽다. 기억나거든(* , 슈브) - 본 뜻은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다'(3:20), '원상태로 회복되다'(삭 15:19)이다. 그러나 이 말이 마음에 적용될 경우에는 '뉘우치다'(렘 8:6)란 의미를 지닌다. 2절의 '돌아와'의 원어가 바로 이 '슈브'이다. 그리고 이 '슈브'는 왕상 8:47에서 '스스로 깨닫고' 및 '돌이켜'란 말로도 번역되었다.
===30:2
여호와께로 돌아와...순종하면 - 참된 회개가 어떠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는구절이다. 즉 회개란 단순히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란 (1) 먼저 자기의 잘못을 겸손히 깨닫고뉘우치는 것이다. (2) 다음으로 과감히 그 죄악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골 3:1-10).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6:9 주석 참조.
===30:3
마음을 돌이키시고 -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섭리나 뜻의 변개(變改)를 의미하는말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저주를 거두시고 인간을 향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의인화하여 묘사한 말일 뿐이다.
흩으신...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 여기서 '흩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편에서 볼때 선민(選民)의 자격이 상실되는 것을 뜻한다. 반면 다시 '모아진다'는 것은 선민의자격이 회복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 이를 설명하자면 '흩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귀한 보배, 26:18)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반면'모은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knobel).
===30:4
하늘가에 있을지라도...이끄실 것이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아주 먼곳에 끌려가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자신의 소유로 회복시키겠다는 뜻이다(Lange). 회개한 자에게 임할 이 회복의 메시지는 훗날 선지자들이 포로 생활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희망을 일깨워 주는데자주 사용하였다(렘 32:37-44;겔 34:13;36:24). 그리고 후일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크게 기여했던 느헤미야 역시 본 메시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한 바 있다(느 1:8, 9).
===30:5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 이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상 3차 걸쳐 실제로성취되었다. 즉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한 후 그곳으로 끌려갔던 백성들은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 망하자 바사 왕 고레스(Cyrus)의 칙령에 의하여 3차에 걸쳐 고토(故土) 팔레스틴으로 귀환하였다. 그중 1차 귀환은B.C.537년,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인솔하에 이루어졌다(스 2:1-70). 그리고 2차 귀환은B.C.458년, 에스라의 인솔하에(스 7:1-10), 그리고 마지막 3차 귀환은 B.C.444년, 느헤미야의 인솔하에(느 2:9-11) 각기 이루어졌다.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 물론 본절의 1차적 의미는 '육적 이스라엘의 번창'을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모두 가나안 땅으로 귀환할 경우, 가나안 땅이 그들 모두를 넉넉히 수용할 수없다는 점에서(Keil), 본절은 반드시 문자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학자들은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가 엄청나게 급증하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Delitzsch, Keil, Lange, PulpitCommentary).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서신 11장에서 논한 바, 꺾이운 바된참감람나무의 가지에 먼저 이방의 돌감람나무가 접붙임 바된 일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유대인의 진정한 회복이 있게 되리라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30:6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 '할례'(割禮)는 본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적 징표였다(창 17:11). 즉 이것은 이스라엘이 모든 죄악된 것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식이었다. 따라서 옛 언약하에서 이루어졌던 이러한 '육신의 할례'는 어디까지나 새 언약하에서 이루어질 '마음의 할례'를 예표했던 그림자였다(렘 4:4;롬 2:28, 29). 그렇다면 결국 본절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영을 부어 주고 새 마음을 심어 주사(겔 36:26, 27). 그들을 다시금 새 언약하의 새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은총의 선포인 셈이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종 완성된다(히 8:6-13).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 6:5 주석 참조.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하이'(* )는 '생명'을 뜻하는 일반적 용어인 '네페쉬'(* , 12:23;13:6)와는 달리 '신선한 생명', '힘있는 생명'이라는 뉘앙스(nuance)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15, 19, 20절;28:66;32:47). 따라서 본절에서 말하는 '생명'을 단순한 육적인 목숨만을 의미하는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구약 시대 당시 경건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맺는 것이 참 생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었다(시 27:1). 그리고 신약 성경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요 3:16).
===30:7
네 대적...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핍박했던모든 대적들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인 도구임에는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이스라엘보다 의로왔기 때문에 선택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 역시 자신의 죄값에 대하여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본절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시 62:12;렘 17:10).
===30:8
너는 돌아와...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은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계속적인 저주를 면할 수 있는 가장기본적인 행동 지침이다. 즉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후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2절 주석을 참조하라.
===30:9,10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 - 이것들은 결단코 인간을 얽어매는 속박과 사슬의 법조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은혜 언약의 일환으로 율법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셨을 뿐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속성을 깨닫게 하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생명의 등불'인 것이다(시 119:105;잠 6:23).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들이 그것을 잘 지켜 행할 때, 복에 복을 더하시기 위하여 주신 '축복의 방편'인 것이다(28:1-14;출 19:5, 6).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복을 주시리라 - 비록 교만과 허영으로 집을 떠났던 탕자라 할지라도, 다시금 돌아오면 각양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다(눅 15:22-24). 한편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풍성한 축복들에 대하여서는 이미 28:1-6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니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30:11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 '어려운'에 해당하는 원어 '팔라'(* )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삼하13:2) '기이하거나', '놀라운 일'(잠30:18)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율법의 평이성(平易性)', 즉 '율법은 너무 어려워서 인간이 그 도(道)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Keil, Schultz, Knobel).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에게 밝히 계시(啓示)되어 있는 것이다(29:29). 그러므로 누구라도 쉽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다(요일 5:3). 물론 이는 상대적이긴 하다. 왜냐하면 심령이 완악한 자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13:13).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와 같은 가난한 심령이 필요하다.
먼 것도 아니라 - '먼'에 해당하는 '라호크'(* )는 거리적으로 먼 것(13:7)과 시간적으로 오랜 것(왕하 19:25), 그리고 친밀한 정도에 있어서 먼 것(시22:1)을 다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그 모든 면에서 '율법의 인접성(隣接性)'을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30:12,13
하늘에 있는 것...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 율법은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사 45:19),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우리의 현실 삶에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딤후 3:16, 17).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과 함께 거하며, 인간의 실제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요 1:14). 따라서 인간은하나님의 말씀이 '저기 저곳'(over there)에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곳'(here)에 있다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든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접할 수 없어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라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자신 곁에 있기 때문이다.
===30:14
네 입에 있으며 -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읽을 수 있으며 강론(講論)할 수있는 성격의 것이라는 뜻이다(Lange).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입에 담아 두었더니 그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았다'(시 19:10)라고 고백까지 하였었다.
네 마음에 있은즉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늘 묵상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 둘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6)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빈부 귀천이나 남녀 노소에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지키는 것이라"(요일 5:3)라고 하였다.
===30:15
보라(* , 라) - '볼지어다'(be hold)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감탄사 '헨'(* )과는 달리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 '주목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 이 두 가지 중에서 그들이 양자를 똑똑히 주목하여 살펴 관찰한 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셨다.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예비해 놓으신 길은 '생명 및 복(福)의 길'과 '사망 및 화(禍)의 길'이라고 하는 단 두 갈래 길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서는 후일 예수께서도 '좁은 문'과 '넓은 문'의 비유로써 우리들에게 명확히 교훈하셨다(마 7:13, 14). 그러므로 하나님과세상을 동시에 벗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자는 더 늦기 전에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약 4:8).
===30:16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보다 이같은 권고가 먼저나옴에 유의해야 한다. 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다(마22:36-38).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연스런 외적(外的) 표현이다(요일 5:3).
그 모든 길로 행하며 -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 곧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으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러한 동행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나를 쳐서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가 의합(意合)치 아니하고서는 둘이서 동행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암 3:3).
명령과 규례와 법도 - 사실상 모두 동의어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다. 4:1;5:31 주석 참조.
복 - 28:2 주석 참조.
===30:17
유혹을 받아서 -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어쩔 수 없이...하다'(be impelledto) 또는 '이끌림을 받다'(be drawn away)로 번역하고 있다(KJV, NIV, Living Bible,RSV).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주위의 유혹에 대하여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잘 나타내 준다. 실제로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으며(시 1:4), 또한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모든 일에 정함이 없다(약 1:6, 8).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 이러한 우상 숭배 행위는 사망과 저주에 이르는 치명적 단계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다(6:15;출 20:5). 그러므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헛된 이방의우상을 섬기는 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아니하신다(4:19;13:2-16;17:2-7;18:20-22).
===30: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 '선언하다'에 해당하는 '나가드'(* )는본래 '정면에 두다'란 뜻이다.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주로 상대방의 입장 혹은 다수의 주장에 대해 반대 견해를 담대히 피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분명히 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시 따르게 되는 사망과 저주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요단을 건너가서...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 요단 건너편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가 살 거룩한 언약의 땅이다. 따라서 그 땅에는 온갖 더러운 죄악이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일 그 땅에서 그러한 자들이 생겨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제거할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 가나안(창 12:7)에서 오래도록 행복을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뿐임을 보여 준다. 한편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같은 가나안 땅은 하늘 가나안, 즉 천국을예표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 역시 하나님의 새 언약대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主)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 뿐이다(히 5:9).
===30:19
천지를 불러서...증거를 삼노라 -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축복과 저주의 언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모세가 천지(天地)를 증인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사실을 의미한다. (1) 지금 맺고 있는 언약이 마치 언제나 요지 부동한 천지처럼 확실하고 불변하며 영구하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2) 또한 이 언약 체결이전우주적인 관심사가 될 만큼 중차대한 사건이란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아뭏든 이처럼 하늘과 땅을 의인화한 표현은 구약 성경에 종종 나타난다(창 4:11;시 19:1;사 1:2).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과 저주를 반길리 없다. 모두가다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참 생명과 참 행복을 향유(享有)하는 자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곧 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27:1), 그리고참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16:2)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는 자가 그리 많지않기 때문이다. 즉 그 생명의 도(道)를 따라 걷는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30:20
그에게 부종하라 - '부종(附從)하다'에 해당하는 '다바크'(* )는 '굳게 연합하다', '착 달라붙다', '밀접히 결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각별한 애정이나우정을 나누는 사이를 의미한다. 이는 곧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자들이 형식적으로 또는 엄격한 규정에 얽매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보다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하나님과 연합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10:20).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께 가까이하여 그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 바로 이것이 모세 설교의 핵심으로서곧 축복과 생명을 길이 누리는 참된 비결임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한신 땅 - 실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란 민족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들의 3대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거듭거듭 맹세로 약속하셨다(창 12:7;13:14, 15:7,18;17:8;26:3;28:13). 따라서 이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길이 장수하며 복받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요 뜻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길이 복받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만가지로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호 8:12).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 - 모세가 이미 28, 29장에서 언급한 축복과 저주, 곧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임할 복과 불순종할 때 임할 저주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복'이라는 말을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본문 이해에 자연스럽다. 기억나거든(* , 슈브) - 본 뜻은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다'(3:20), '원상태로 회복되다'(삭 15:19)이다. 그러나 이 말이 마음에 적용될 경우에는 '뉘우치다'(렘 8:6)란 의미를 지닌다. 2절의 '돌아와'의 원어가 바로 이 '슈브'이다. 그리고 이 '슈브'는 왕상 8:47에서 '스스로 깨닫고' 및 '돌이켜'란 말로도 번역되었다.
===30:2
여호와께로 돌아와...순종하면 - 참된 회개가 어떠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는구절이다. 즉 회개란 단순히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란 (1) 먼저 자기의 잘못을 겸손히 깨닫고뉘우치는 것이다. (2) 다음으로 과감히 그 죄악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골 3:1-10).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6:9 주석 참조.
===30:3
마음을 돌이키시고 -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섭리나 뜻의 변개(變改)를 의미하는말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저주를 거두시고 인간을 향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의인화하여 묘사한 말일 뿐이다.
흩으신...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 여기서 '흩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편에서 볼때 선민(選民)의 자격이 상실되는 것을 뜻한다. 반면 다시 '모아진다'는 것은 선민의자격이 회복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 이를 설명하자면 '흩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귀한 보배, 26:18)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반면'모은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knobel).
===30:4
하늘가에 있을지라도...이끄실 것이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아주 먼곳에 끌려가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자신의 소유로 회복시키겠다는 뜻이다(Lange). 회개한 자에게 임할 이 회복의 메시지는 훗날 선지자들이 포로 생활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희망을 일깨워 주는데자주 사용하였다(렘 32:37-44;겔 34:13;36:24). 그리고 후일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크게 기여했던 느헤미야 역시 본 메시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한 바 있다(느 1:8, 9).
===30:5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 이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상 3차 걸쳐 실제로성취되었다. 즉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한 후 그곳으로 끌려갔던 백성들은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 망하자 바사 왕 고레스(Cyrus)의 칙령에 의하여 3차에 걸쳐 고토(故土) 팔레스틴으로 귀환하였다. 그중 1차 귀환은B.C.537년,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인솔하에 이루어졌다(스 2:1-70). 그리고 2차 귀환은B.C.458년, 에스라의 인솔하에(스 7:1-10), 그리고 마지막 3차 귀환은 B.C.444년, 느헤미야의 인솔하에(느 2:9-11) 각기 이루어졌다.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 물론 본절의 1차적 의미는 '육적 이스라엘의 번창'을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모두 가나안 땅으로 귀환할 경우, 가나안 땅이 그들 모두를 넉넉히 수용할 수없다는 점에서(Keil), 본절은 반드시 문자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학자들은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가 엄청나게 급증하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Delitzsch, Keil, Lange, PulpitCommentary).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서신 11장에서 논한 바, 꺾이운 바된참감람나무의 가지에 먼저 이방의 돌감람나무가 접붙임 바된 일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유대인의 진정한 회복이 있게 되리라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30:6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 '할례'(割禮)는 본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적 징표였다(창 17:11). 즉 이것은 이스라엘이 모든 죄악된 것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식이었다. 따라서 옛 언약하에서 이루어졌던 이러한 '육신의 할례'는 어디까지나 새 언약하에서 이루어질 '마음의 할례'를 예표했던 그림자였다(렘 4:4;롬 2:28, 29). 그렇다면 결국 본절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영을 부어 주고 새 마음을 심어 주사(겔 36:26, 27). 그들을 다시금 새 언약하의 새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은총의 선포인 셈이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종 완성된다(히 8:6-13).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 6:5 주석 참조.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하이'(* )는 '생명'을 뜻하는 일반적 용어인 '네페쉬'(* , 12:23;13:6)와는 달리 '신선한 생명', '힘있는 생명'이라는 뉘앙스(nuance)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15, 19, 20절;28:66;32:47). 따라서 본절에서 말하는 '생명'을 단순한 육적인 목숨만을 의미하는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구약 시대 당시 경건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맺는 것이 참 생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었다(시 27:1). 그리고 신약 성경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요 3:16).
===30:7
네 대적...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핍박했던모든 대적들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인 도구임에는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이스라엘보다 의로왔기 때문에 선택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 역시 자신의 죄값에 대하여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본절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시 62:12;렘 17:10).
===30:8
너는 돌아와...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은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계속적인 저주를 면할 수 있는 가장기본적인 행동 지침이다. 즉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후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2절 주석을 참조하라.
===30:9,10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 - 이것들은 결단코 인간을 얽어매는 속박과 사슬의 법조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은혜 언약의 일환으로 율법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셨을 뿐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속성을 깨닫게 하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생명의 등불'인 것이다(시 119:105;잠 6:23).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들이 그것을 잘 지켜 행할 때, 복에 복을 더하시기 위하여 주신 '축복의 방편'인 것이다(28:1-14;출 19:5, 6).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복을 주시리라 - 비록 교만과 허영으로 집을 떠났던 탕자라 할지라도, 다시금 돌아오면 각양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다(눅 15:22-24). 한편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풍성한 축복들에 대하여서는 이미 28:1-6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니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30:11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 '어려운'에 해당하는 원어 '팔라'(* )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삼하13:2) '기이하거나', '놀라운 일'(잠30:18)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율법의 평이성(平易性)', 즉 '율법은 너무 어려워서 인간이 그 도(道)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Keil, Schultz, Knobel).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에게 밝히 계시(啓示)되어 있는 것이다(29:29). 그러므로 누구라도 쉽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다(요일 5:3). 물론 이는 상대적이긴 하다. 왜냐하면 심령이 완악한 자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13:13).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와 같은 가난한 심령이 필요하다.
먼 것도 아니라 - '먼'에 해당하는 '라호크'(* )는 거리적으로 먼 것(13:7)과 시간적으로 오랜 것(왕하 19:25), 그리고 친밀한 정도에 있어서 먼 것(시22:1)을 다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그 모든 면에서 '율법의 인접성(隣接性)'을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30:12,13
하늘에 있는 것...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 율법은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사 45:19),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우리의 현실 삶에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딤후 3:16, 17).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과 함께 거하며, 인간의 실제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요 1:14). 따라서 인간은하나님의 말씀이 '저기 저곳'(over there)에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곳'(here)에 있다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든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접할 수 없어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라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자신 곁에 있기 때문이다.
===30:14
네 입에 있으며 -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읽을 수 있으며 강론(講論)할 수있는 성격의 것이라는 뜻이다(Lange).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입에 담아 두었더니 그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았다'(시 19:10)라고 고백까지 하였었다.
네 마음에 있은즉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늘 묵상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 둘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6)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빈부 귀천이나 남녀 노소에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지키는 것이라"(요일 5:3)라고 하였다.
===30:15
보라(* , 라) - '볼지어다'(be hold)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감탄사 '헨'(* )과는 달리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 '주목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 이 두 가지 중에서 그들이 양자를 똑똑히 주목하여 살펴 관찰한 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셨다.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예비해 놓으신 길은 '생명 및 복(福)의 길'과 '사망 및 화(禍)의 길'이라고 하는 단 두 갈래 길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서는 후일 예수께서도 '좁은 문'과 '넓은 문'의 비유로써 우리들에게 명확히 교훈하셨다(마 7:13, 14). 그러므로 하나님과세상을 동시에 벗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자는 더 늦기 전에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약 4:8).
===30:16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보다 이같은 권고가 먼저나옴에 유의해야 한다. 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다(마22:36-38).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연스런 외적(外的) 표현이다(요일 5:3).
그 모든 길로 행하며 -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 곧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으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러한 동행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나를 쳐서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가 의합(意合)치 아니하고서는 둘이서 동행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암 3:3).
명령과 규례와 법도 - 사실상 모두 동의어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다. 4:1;5:31 주석 참조.
복 - 28:2 주석 참조.
===30:17
유혹을 받아서 -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어쩔 수 없이...하다'(be impelledto) 또는 '이끌림을 받다'(be drawn away)로 번역하고 있다(KJV, NIV, Living Bible,RSV).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주위의 유혹에 대하여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잘 나타내 준다. 실제로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으며(시 1:4), 또한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모든 일에 정함이 없다(약 1:6, 8).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 이러한 우상 숭배 행위는 사망과 저주에 이르는 치명적 단계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다(6:15;출 20:5). 그러므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헛된 이방의우상을 섬기는 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아니하신다(4:19;13:2-16;17:2-7;18:20-22).
===30: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 '선언하다'에 해당하는 '나가드'(* )는본래 '정면에 두다'란 뜻이다.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주로 상대방의 입장 혹은 다수의 주장에 대해 반대 견해를 담대히 피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분명히 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시 따르게 되는 사망과 저주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요단을 건너가서...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 요단 건너편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가 살 거룩한 언약의 땅이다. 따라서 그 땅에는 온갖 더러운 죄악이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일 그 땅에서 그러한 자들이 생겨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제거할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 가나안(창 12:7)에서 오래도록 행복을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뿐임을 보여 준다. 한편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같은 가나안 땅은 하늘 가나안, 즉 천국을예표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 역시 하나님의 새 언약대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主)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 뿐이다(히 5:9).
===30:19
천지를 불러서...증거를 삼노라 -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축복과 저주의 언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모세가 천지(天地)를 증인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사실을 의미한다. (1) 지금 맺고 있는 언약이 마치 언제나 요지 부동한 천지처럼 확실하고 불변하며 영구하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2) 또한 이 언약 체결이전우주적인 관심사가 될 만큼 중차대한 사건이란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아뭏든 이처럼 하늘과 땅을 의인화한 표현은 구약 성경에 종종 나타난다(창 4:11;시 19:1;사 1:2).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과 저주를 반길리 없다. 모두가다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참 생명과 참 행복을 향유(享有)하는 자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곧 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27:1), 그리고참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16:2)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는 자가 그리 많지않기 때문이다. 즉 그 생명의 도(道)를 따라 걷는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30:20
그에게 부종하라 - '부종(附從)하다'에 해당하는 '다바크'(* )는 '굳게 연합하다', '착 달라붙다', '밀접히 결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각별한 애정이나우정을 나누는 사이를 의미한다. 이는 곧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자들이 형식적으로 또는 엄격한 규정에 얽매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보다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하나님과 연합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10:20).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께 가까이하여 그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 바로 이것이 모세 설교의 핵심으로서곧 축복과 생명을 길이 누리는 참된 비결임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한신 땅 - 실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란 민족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들의 3대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거듭거듭 맹세로 약속하셨다(창 12:7;13:14, 15:7,18;17:8;26:3;28:13). 따라서 이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길이 장수하며 복받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요 뜻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길이 복받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만가지로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호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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