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17:1
종족(* , 마테) - 이 말의 원 뜻은 '나무가지'로서 한 그루 나무에 여러 개의가지가 돋아나는 상태틀 두고 상징화한 말이다. 즉 동일 조상에서 갈라진 여러 집안이란 뜻을 나타낸다.
한편, 그런데 본절에서는 그 의미상 '종족' 보다는 '지파'로 번역함이 더 정확하다(1:4) 지팡이(* , 마테) - '종족'과 동일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편 '지팡이는여행자나 목자의 호신용 또는 도보용으로 사용했던 막대기이며, 때로는 통치자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홀' 및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휘봉을 가리키기도 했다. 여기서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구로 봄이 옳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이러한' 지팡이'를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다(출 4:2; 겔 37:16). 본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참제사장 지파를 가려내시려는 방편으로 지팡이를 가져오게 하셨다.
그 사람들의 이름을...쓰되 - '이름'은 그 사람의 전인격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각지파 지팡이에 이름을 쓰게 한 것은 그 사람이 각 지파를 대표하여 전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17:3
레위의 지팡이에는 - 본서에서 이스라엘 12지파라고 하면 보통 레위 지파를제외한 지파들(대신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 아들들과 동등한 지위로 승격시켜줘 지파로 간주했음, 창48:17-22)을 일컫는데 (1:5-16), 여기서는 특별히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요셉의 한 지파로 간주되었고(신 27:12) 레위 지파를 12지파에 포함시켰다. 그 이유는 본장의 내용이 레위 지파의 대표자로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아론의 신적 권위를 밝히기 위해 진행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종족의 각 두령 - 여기서 '두령'(* , 로쉬)은 2절의 '족장'(* ,나시)이란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나시'는 행정 조직의 장 또는 한 집단의 실력자(16:2)를 가리키고, '로쉬'는 한 집단을 인격과 경륜으로 이끌어가는 '장로' 또는 최고 의장을 뜻하지만 본장에서는 구분없이 쓰였다. 따라서 결국 여기서의 '두령'이란 모든 방면에서 각 지파의 최고 권위자를 의미한다.
===17:4
증거궤 앞에 두라 - 증거궤(언약궤.법궤-출 25:10 주석 참조)는 지성소(the Holyof Holies) 안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서(10:33;출 25:21-23) 대제사장만이 1년 1차씩 회성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따라서이곳에 '지팡이들'을 두게 하신 것은 당신이 친히 임재하사 '지팡이들' 중 하나를택하셔서 그 제사장의 권위를 인정하시고, 그를 다른 지파들로 하여금 분명히 확인(5, 8절)시키기 위함이었다.
===17:5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 이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셨음을 보이실 뿐 아니라, 또한 그러한 사명을 맡기신 자에게는 그 일을 감당할 수있는 힘과 생명력을 아울러 공급하실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약속이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 약속은 죄로 죽어있던(엡 2:1) 우리를 구원하사 영생케 하신 생명과 부활의 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암시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원망하는 말을...
그치게 하리라 - 반역자들의 불평과 교만을 완전히 꺾어 아론의제사장직에 관해 더 이상의 소요가 없도록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 일꾼들의 고초를 간과하시지 않고 적절하고 명쾌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신다.
===17:6
그 지팡이 합이 열 둘이라 - 여기서 '열 두 지팡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한다. 특별히 본 사건에서는 레위 지파가 한 지파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지파가 하나님께 따로 구별되기 전 상황으로 되돌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히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요셉 지파 속으로 함께 묶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열 두 지팡이들을 모두 한 곳, 증거궤 앞에 두었는데 이것은 아론의지팡이를 따로 떼어 둠으로써 생길 의혹의 소지를 말끔히 불식시키기에 족했다.
===17:7
증거의 장막 - 이 '증거의 장막' (the tent of testimony)이란 명칭은 성막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 성막이 하나님의 존재와 통치를 증거하는 곳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는 명칭이다(출 38:21)===17:8
이튿날 - 정확한 시간을 밝힌 것은 본 사건의 사실성 곧 역사성을 밝히기 위함이다. 움이 돋고...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 바싹 말라버린 나무 막대기에서 식물 생장의전과정(움이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림)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을뿐 아니라. 그 과정이 하루밤 만에 이뤄진 것은 그 기적이 분명히 생명의 능력이신하나님에 의한 초자연적인 역사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혹자(Edword)의 주장처럼, 그지팡이들은 살구나무에서 갓 베어낸 지팡이들로써 그 자체의 생성력 때문에 움이 돋았다는 해석, 그래서 그 중 아론의 지팡이가 가장 활발하게 싹이 돋아났다는 해석은전혀 터무니 없는 억지이다. 그러나 그 지팡이가 살구나무 막대기였다는 사실은 합리적이다. 한편 '살구나무'(* , 솨케드)란 '깨어 있다', '지키다'는 뜻의 히브리어 '사카드'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므로 아론이 비록 말라버린 살구 나무가지로 지팡이를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 넣으심으로써 당신은 항상 깨어있어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임(렘 1:11, 12)과 아울러 아론의 대제사장직을당신이 친히 임명하셨다는 사실을 똑똑히 증명하셨다. 더불어 이 살구나무 기적은 하나님의 깨어지키시는 은혜 없이는 아무도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17:9
그들이 보고...자기 지팡이를 취하였더라 - 그들은 분명 마른 지팡이 12개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또한 하루밤 사이에 그 지팡이 중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싹이 난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날 일어난 고라 심판 사건 및 염병 사건과 더불어 이제 제사장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17:10
아론의 지팡이는... 간직하여 - 언약궤 앞에 간직될 이 아론의 지팡이는 아론및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제사장직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증이었다. 아울러이것은 하나님이 항상 살아 계셔서 이스라엘을 지켜보고 계심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상징물이 될 것이었다. 나아가 이것은 당신의 주권에 도전하는 자에게는 준엄한 심판,당신을 온전히 섬기는 자에게는 생명의 상급을 허락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지팡이는 훗날 보관 및 이동에 용이하도록 언약궤 안에보관되어 관리하게 된다(히 9:4). 그러나 후일 솔로몬 시대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고언약궤를 지성소 안으로 옮기고자 했을 당시에 이르러서는 그 궤 안에 십계명 두 돌판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왕상 8:9).
배역한 자(* , 베네머리) - 직역하면 '반역의 아들(자녀)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법도와 제도를 무시한 채 교만히 행한 자들을 가리킨다. 실로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모든 죄의 근원인 동시에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표징이 되게하여...죽지 않게 할지니라 -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멸망이 아니라 생명임을 강력히 시사한 부분이다(요 3:16,17). 한편 여기서 '표징'(* , 오트)이란 '신호'(signal), '기념'(monument), '증거(evedence), '표'(mark), '증표'(새가두) 등의 뜻인데, 이는 곧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어그러진 백성을 깨우치기 위한 교훈적 상징물로써, 당신의 백성을 멸망치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축된 기물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만약 이 '표징'을 기억하고 자신의 죄악된 자리에서 돌이키는 자에게는 생명이 약속되었다. 한편, 그런데 여기 이 아론의싹난 지팡이에 대하여, 혹자는 고라사건 이후에도 계속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이 반복되었다고 주장하나(Matthew Henry), 우리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아마 이 싹난 지팡이는 아론의 제사장직을 확고히 입증해 주는 역할을 한 뒤 언약궤안에 보관되다가(물론 지팡이의 싹과 열매는 자연스럽게 시들어졌을 것이다) 사사 시대를 거치면서 손실되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왜냐하면 솔로몬 시대에는 이미 언약괘 안에 그 지팡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왕상 8:9, Keil, Pulpit Commentary).
===17:12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 고라 일당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고,곧이어 말라버린 살구 나무 지팡이로부터 생명의 기적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자행했던 죄악(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여 불평함)으로 인해 심한 좌절과 공포에 젖어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의 단말마와 같은 비명으로 자신들은 이제죽게 되었다고 거듭 울부짖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백성들의 두려움에 찬 한탄은믿음에서 나오는 경외감이나 자신의 무가치함을 토로한 것(사 6:5)과는 다르다. 그들은 하나님의 강제력, 곧 하나님의 놀라운 초월적인 능력에 압도된 나머지 죄악된 인간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과 절망을 외친 것 뿐이었다(창 3:10)
===17:13
가까이 나아가는 자...다 죽사오니 -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에는 하나님 앞에서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 외에는 그 누구도 결코 접근할 수 없었다. 따라서 만약 일반인이 접근하면 그 자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3:10). 그러므로 백성들은 자신들로서는성막에 접근할수 없음과 생명되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된것을 깨닫고 심한 절망에사로잡혔던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징벌과 심판만을 일삼는 무자비한 분으로 인식하여 그분 앞에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탄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시고자 하셨다(10절). 더욱이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신 목적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제사장의 중보사역을 통해) 백성들과 교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성막을 가까이 하는자마다 다 죽어야 하는가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쓴 것은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성품(사랑과 공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그분의 보호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온전히 알기 까지 인간은 극한 오해와 좌절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때 비로소 인간은 모든 회의와 갈등과 불안을 말끔히 떨쳐버릴 수 있다(호 6:1-3)
모세와 아론의 지위에 불만을 품고 시작되었던 고라 일당의 반역은 하나님의 긴급하
고도 초자연적인 심판으로 일단락되었다(16장).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고라의 반역 사
건을 완전히 마무리짓기 위해서 본장에 이르러 죽은 나무 지팡이에서 싹이 나는 기적
을 베푸셨다. 그리고 그 기적을 통하여 아론이 지닌 제사장직의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확인시키셨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하나씩의 지팡이를 가져오게 하시고(1-7절) 그 중에서 오직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
이 돋게 하셨다(8-11절). 이에 백성들이 아론의 권위를 인정하기보다 우선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인다(12, 13절).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제사장직이 당신이 친히 부여하신 것임을 공개적으로
확인시키셨다. 더불어 죽어 버린 나무에 생명의 움을 돋게 하심으로써 모든 사건과 상
황을 인간 위주로 판단하던 백성들에게 생명과 역사의 유일한 주관자가 당신이심을 강
력히 시사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힘쓰는 사람과 당신을 동
일시(identity) 하시고 그들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은혜로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리하
여 그들을 통해 당신께서도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다(시 50:15).
1.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 새싹이 나다(17:1-11)
전장(16장)에 펼쳐진 고라 일당의 반역은 '왜 아론과 모세만이 종교 정치의 지도자
로 활약할 수 있는가, 우리도 그들과 동등한 자격이 있으므로 능히 지도자로 나설 수
있지 않은가'라는 교만하고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본문에서 하나님
은 교만한 고라 일당을 쓸어 버리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 잠재해 있는 반역과
불순종의 마음을 일소하시기 위해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 새싹을 돋게 하셨다.그 결과
이제 아론과 그 가문만이 지니는 제사장직의 고유성과 신적인 기원은 확연하게 밝혀졌
다.
한편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스라엘 12지파에게 각 1개씩의 지팡이를 마련하게 하시고 자기들의 족장 이름을 새기
게 하셨다(1-3절). 모세를 시켜 그 지팡이들을 모두 증거의 장막 안에 두게 하셨다
94-7절). 이튿날 그 지팡이들 중 아론의 것에만 살구나무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열
매가 맺히는 기적이 일어나게 하셨다(8,9절).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패역한
자에게 영영한 교훈이 될 수 있도록 증거궤에 보관하게 하셨다(10,11절).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죽은 나무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열매까지 맺게 하신 이적
을 통해 당신께서 친히 세우신 아론의 권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확히 보여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을 홀로 버려 두시지 않고 그들의 생명과 궁극적인
영광을 지켜주신다. 물론 이같은 보살핌은 단순히 한 인간의 명예와 권위를 세우시려
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그 개인을 통하여 이루고자 계획하신 당신의 일을 온전히 성취
하시려는 더 큰 목적에서 기인한 것이다.
* 살구나무의 결실. 살구나무는 원어상 '살아 있고 깨어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8절
주석>. 그런데 본문에 언급된 살구나무는 원래 수분이 완전히 제거된 죽은 막대기에
불과했으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단번에 생명을 얻고 결실을 맺기까지 했다(렘
1:11, 12).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항상 깨어 역사하시며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나타내셨다.
더욱이 이같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긍휼을 베푸실 것
을 암시하셨다. 즉 고라 일당의 반역과 백성들의 불평을 통해 이스라엘 내에 죽음의
기운이 고조되었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고 당신의 진노를 멈
추셨던 것이다(합 3:2).
또한 이 기적은, 이스라엘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앞뒤가 잘려진 막대기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
힌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사망이 생명으로 바뀐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기적을 통해 죽음이 선고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아 생명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은혜로운 경륜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시사하셨다. 이는
구원과 생명의 능력을 부여 받은 우리의 존재 근거와 이유를 밝혀 주는 사건이기도 하
다(고전 15:10).
2. 공포에 휩싸인 백성(17:12,13)
초자연적 심판으로 인한 고라 일당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직후, 죽은 살구나무에
열매가 열리는 이적까지 체험한(1-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한 공포에 휩싸이게 되
었다.
즉 그들은 이제 아론의 싹난 지팡이만 여호와의 성막 안에 간직되게 한 사실(7절)을
목도하고서는 자신들은 그 어떠한 형태로도 하나님의 성막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고 오해하며 두려움에 휩싸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지팡이를 소
생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과의 단절되었던 관계를 새롭게 하시고자 하셨다. 그리고
성막은 백성을 징계하시려는 장소가 아니라 백성과 친밀한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처소였다. 따라서 백성들은 제사장의 중보로 충분히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두려워 떤 것은 아직도 자신들의 죄악을 정확히 깨닫지
못한 증표이며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신앙하지 못한 까닭이다. 이처럼 신앙 생활에 있어
서 제일 우선되어야 할 것은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셨고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점을 믿고 아는 일이다.
* 두려움은 불신앙의 증거. 아론의 지팡이에서 생명의 기운을 목격했던 백성들은 하
나같이 두려움에 떨었다. 이러한 그들의 두려움은 분명 하나님께서 제시한 이적의 근
본 목적을 알지 못한 불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였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햇다. 이러한 무지
느 곧 그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정적 감정인 두려움을 촉발시켰다(창 3:10). 결국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치 못한 자의 자연 발생적인 감정이라 하겠다(요일
4:18).
한편 성경은 여러 곳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해 죽음과 절망과 두
려움이 발생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잠언 기자는 죄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고(잠 28:1) 지적함으로써 악인과 두려움과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보호를 확신하는 성도들은 그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비
록 죽음이 눈앞에 성큼 다가선 지경에서도 담대할 수 있다(마 16:23;롬 8:33-39). 또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키는 사랑까지 보여 주셨
다(롬 5: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
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딤후 1:7)임을 개달아 항상 활기차고 담대한 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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