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민수기 0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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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 - 이 때는 성막을 세운 직후이며, 인구 조사를 하기 직전이다(출 40:2,17; 민1:1). 그러므로 본장의 사건은 민수기 전체 중에서 출애굽기의 끝부분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이다. 즉 시내 산에서 생활한 1년의 마지막 시기로부터 40년 후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사건을 다루는, 민수기에서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부분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여기에 위치한 이유는 아마 본문이 제 2의 유월절(9-12절) 규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2월 14일로부터 지켜진 제 2의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난 출애굽 제 2년 2월 20일(10:11) 바로 직전까지 지켜졌기 때문이다.

===9:2
유월절을 그 정기에 - 유월절 예식은 '영원한 규례'였으나, '너희에게 주시는 당위에 이를 때에'(출 12:25)라는 한시(限時) 규정이 붙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광야 여행 중에는 이 규레를 무시해도 되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5절의 유월절 시행 사실과 11,12절의 구체적인 예식 절차 고지를 통해 볼 때 가나안 정착 이전, 곧 광야 여행시에도 유월절이 지켜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과도 기간 동안에는 정착 때에나 가능한 '(가옥의)문설주에 양피를 바르는 행위'(출 12:23)는 생략되고, 번제단에서 그 희생 제물의 피가 뿌려지는 것으로 대신 예식을 지켰을 것이다(Keil & Kelitzsch, Vol I-iii. p. 50). 왜냐하면 당시 모든 짐승은 번제단 앞에서 잡아 그 피를 그곳에 뿌려야 했기 때문이다(레 17:1-7).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그 날짜에, 유월절이 지니는 바 무한한 은혜를 상기하며 어떤 역경 중에서라도 유월절을 반드시 지킴으로써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과 해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음미해야 했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정기'(* , 모에드)란 말은 지정된집회 장소 곧 '회막'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과 연관된 종교적 책무는 하나님께서 '지정한 장소', 곧 당신의 임재 처소인 회막을 중심으로 '지정한 시간'에 지켜져야 할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이처럼 여호와의 종교는 오직 하나님게서 마련하신 장소와 시간을 따라 인간이 예배해야만 하는 하나님 중심의 종교요, 계시 중싱미 종교인 것이다.

===9:3
이달 십 사 일 - 출애굽 만 1년 후, 즉 출애굽 제 2년 1월 14일로서 인구조사(출애굽 제 2년 2월 1일) 약 보름 전의 일이다(1:1). 이 날은 유월절 양 잡는 날이다<출 12:6; 13:3,4>.
해 질 때에 - 문자적으로 '두 저녁들 사이'(between the two evenings)이다. 혹자에 따르면, 이를 '보름달이 비추일 때'(by the light of the full moon)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문에 좀 더 가깝게는 '해 진 뒤, 어둠이 밀려오기 전에'(after sunset, before it is fully dark) 곧 '석양에'로 봄이 옳다. 이는 아마 해가 지는 것을 기준삼아 하루가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한 히브인들의 시간 개념에 비춰 볼 때 14일이 막 시작되는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해가 서산에 떨어짐으로 첫 저녁(그날의 시작)이 시작되고 완전한 어두움이 몰려 올 때 둘째 저녁(밤)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본문의 시점을 '석양 쯤'으로 볼 때 '두 저녁들 사이'라는 문자적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일의 편의상, 해가 지기 전의 시간인 3-5시 사이에 양을 잡았다고 한다(Josephus).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 즉 첫 유월절 당시 주어졌던 각종 규레들(출 12:1-14)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장 6-12절에 주어진 사고자(事故者)에 대한 규례는 이때 새롭게 주어진 유월절 특례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월절 규정이 최초로 정해졌던 출 12장 부분의 규례에는 본장 6절 이하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는 문설주에 양피를 바르는 규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아마 희생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리는 것으로 대체된 것 같다(Keil).

===9:5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출애굽 다음 해 시내 광에에서 두번째 유월절을 지켰다. 그런데 혹자는 여기 '시내 광야에서의 유월절 준수'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즉 쿨츠(Kurtz)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가 200만 가량 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매 15-20명 당 어린 양 한마리가 소비되었다고 보면 양의 수효가 10만-13만 마리가 요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시 유월절 제사 집례를 담당할 제사장 3명(아론과 그의 두 아들 - 엘르아살과 이다말)으로 그 일을 과연 어떻게 감당 했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유월절 어린양의 수효가 10만 마리 정도나 요구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것은 배불리 먹기 위함이 아니라, 예식용으로 잡는 것이기 때문에 남자 장정(603,550명)을 중심으로 계산하여 매 15-20명 당 한마리가 요구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수효는 대략 3만-4만 마리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는데 레위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간주한다면(레위인은 이미 금송아지 숭배 사건 때 하나님께 헌신되었다 - 출 32:28,29 및 대하 30:16참조), 3명의 제사장이 유월절 예식을 치르는 저녁(대략 9-11시) 시간 동안에 단지 그 피를 넘겨 받아 번제단(가로 및 세로 2.3m, 높이 1.4m)에 뿌리는 일은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일 요세푸스(Josephus)가 증거하는 바 네로 황제 시대에 256,500 마리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번제단(비록 모세 당시 보다는 그 규모가 6-10배 정도 켰을지라도)에 뿌린 사실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T.,Pantateuch, Vol. I-iii.pp.50,51). 그리고 유월절 예식 때 사용된 어린양(혹은 어린 염소, 출 12:5)의 수효는 출애굽시 애굽으로 부터 몰고 나온 수많은 가축 중에서 충분히 충당 가능했을 거이다(출 12:38).
다 좇아 행하였더라 - 유월절 규례에 필요한 각종 제물과 음식물을 광야라는 불편한 상황하에서 모두 마련하고, 또한 수많은 유월절 희생 양을 도살하여 피를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라'<2절>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온순히 순종함으로써 선민(選民)의 책무를 다하였다. 이처럼 신앙인의 행동 준거(準據)는 주변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이어야 한다.

===9:6
사람의 시체로...부정케 되어서 - 주검을 죄의 결과로 여겼던 히브리 사회에서는 그 정결 예법상 그것을 만진 자는 7일 동안 부정하였다(19:11-22; 창 3:19). 따라서 그는 7일 동안 법규에 따라 공동체에서 겪리되어 근신기간을 가지고 자신을 정결케 해야 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이스라엘 공동체와 성소를 더럽히는 더 큰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5:2>. 그러므로 그들은 그 부정 기간 동안 모든 공식 집회는 물론이고 본절과 같은 기쁨의 축제인 '유월절'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이는 인간의 죄와 허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는 준엄한 경고를 제공한다(창 3:24; 사 59:2). 한편 이러한 7일 동안의 격리 규례는 시간상으로<1절> 아직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민 5:2; 19:11),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들(레 7:21)이 '정기'(定期) 유월절 참여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을수 밖에 없었다<7절>.

===9:7
우리를 금지하여...드리지 못하게 -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의 격리 규정<5:2; 19:11>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단지 레위기 율법을 따라 자신들이 부정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인식했을 뿐이었다<레 7:20,21; 15:3; 21:1>.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유월절 절기를 맞이하여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금지하여'(* , 가라)란 원래 '감소시키다'(출 5:8), '그치게 하다'(욥 15:4)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억제하다', '제지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9:8
기다리라(*, 이메두) - 이는 '잠잠히 참고 서서 기다리라'는 의미가 내표된 명령이다. 백성들이 조급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서둘렀을 때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결정이다. 실로 시간이 긴박하고 중대한 문제에 직면할수록 성도는 여호와의 선하신 손길을 의지하여 기다릴 줄 아는 지헤가 필요하다(시 37:7; 잠 20:22; 사 30:18).

===9:10
먼 여행 중에 있든지 - 유대 학자들에 따르면, 유월절 절기인 아빕 월(정월) 14일 시작 시각에 성소로부터 약 24km이상 떨어져 있는 상태를 '먼 여행 중'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Pulpit Commentary). 결국 이는 본의 아니게, 그 거리상 도저히 유월절 정기 예물 드리는 일에 참석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를 가리킨다.
마땅히...지키되 - 유월절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절기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월절 참례에 대해 강력히 요구하신 이유는 그날이 당신의 구원 사역을 기념하는 날일 뿐 아니라, 장차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속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즉 유월절은 하나님 백성의 삶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어야 할 생명과 구원과 해방의 날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유월절을 고의로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거부한 자로 취급되어 선민의 자격과 권리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었다<13절>.

===9:11
이월 십 사 일 - 정기 유월절 보다 곡 한 달 뒤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부득이한 사정상 정기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자들은 이 한달 동안 제 2의 유월절(소유월절)을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여행자는 충분히 집으로 돌아와 안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며, 부정한 자는 율법에서 요구한 정결 의무를 완수하여 정기 집회에 참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코 율법의 자구(字句)에 얽매이지 않고, 그 절기의 정신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이 당신을 바로 섬길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어린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 - 유월절 기념 때 먹는 3대 음식물이다<출 12:8>. 그런데 여기서 '어린양'은 대속의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요 1:29; 고전 5:7), '무교병'은 죄악이 없는 성결한 삶을(고전 5:6-8), 그리고 '쓴 나물'은 과거 애굽의 종살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고난을 각각 상징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12장 주석을 참조하라.

===9:12
아침까지...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 유월절 음식은 유월절 당일 저녁 즉석에서 모두 먹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룩한 음식으로서,걸코 그 남은 음식이 외인과 짐승들에 의해 더럽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마 7:6). 따라서 만약 먹다가 남은 음식물이 있으면 모두 불태워 없애야 했다<출 12:10>.
그 뼈를 하나도 꺽지 말아서 - 이는 유월절 양이 아무런 파손당함 없이 도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출 12:46>.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 양은 장차 십자가 고난을 겪으실 그리스도의 몸을 에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함으로써, 이 예언적 규례를 완전히 성취하셨다(시 34:20; 요19:36).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 유월절 규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12장 주석을 참조하라.

===9:13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끊쳐지리니 - 부득이한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두 가지 경우(10절)를 제외하고(이때에도 한 달 후 제 2차 유월절을 지켜야 했다). 유월절을 고의로 지키지 않은 자에게는 준엄한 형벌이 가해졌다. 사실 유월절 참례는 선민(選民)으로서의 신앙고백이었다. 그러므로 그 일을 무시하는 자는 곧 하나님의 주권과 구분의 백성되기를 동시에 거부하는 범죄자였다. 여기서 '끊쳐지리니'(* , 니케르타)란 말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사실과 백성의 진(陳)에서 쫓겨나 하나님의 율법의 특혜를 누리지 못함을 의미한다(레 20:18). 마찬가지로 오늘날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 참예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마 22:1-14).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 출애굽 당시만 해도 유월절 어린 양은 음식으로서의 효용이 강조된 것이었으나, 계속 첨가된 유월절 규정에 따라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로서의 효용성이 강조되게 되었다(신 16:1-8). 한편 '예물'은 감사의 의미와 더불어 그 드리는 자의 최를 대신하여 대속의 기능을 함께 가진다<8:10>. 그러므로 만일 '예물'드리는 일을 게을리 하면 자신의 죄 문제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각종 예물 곧 대속 제물을 규정해 두셨다(레 1-6장>. 그런데 구약의 이 '예물'은 신약에 이르러 우리의 영원한 대속 제물이신 예수 안에서 온전히 승화되었다(히 10:10).

===9:14
타국인(* , 게르) - 이스라엘 내에 오랫동안 거주함으로써 그 사회에 동화된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들은 순수한 외국인과의 구별되는데, 만일 이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유월절에 참예키 원한다면 먼저 '할례'를 받아야 했다(출 12:48 주석 참조). 왜냐하면 당시 '할례'는 언약의 표시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제 1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할례'는 오늘날도 유효한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육체의 할례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마음의 할례가 필요하다<창 17:2-14 강해, 할례 언약과 세례>.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 - 언약의 표 '할례'가 있는 자는 혈통과 신분을 불문하고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드로서, 율법의 의무를 짐과 동시에 그 특권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 종교가 폐쇄적이라는 잘못된 견해를 완전히 불식(拂拭)시킨다. 한편 본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출 12:48,49 주석을 참조하라.

===9:15
성막을 세운 날에 - 이 날은 곧 성막이 완공되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 증거로 회막을 구름으로 덮음으로써(출 40:34), 당신께서 친히 그들의 삶 중심에 거하심을 보이신 날이다. 이 날은 출애굽 제 2년 1월(아빕월) 1일이었다(출 40:17).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 구름은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의 상징적 표현이다<출 40:34,35>. 사실 구름이 성막위에 덮이기 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더불어 계셨으며, 그들의 삶 중심에서 통치하고 계셨다<13:21,22>. 그러나 성막 건립 후 '구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가시적(可視的)으로 그들의 가나안 여행을 더욱 박진감 넘치며 경건한 신앙 행보(行步)가 되돌고 바꾸어 놓았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증거막'(* , 오헬 하에두트)이란 표현은 지성소의 궤속에 들어있는 십게명의 증거(testimony) 기능을 강조하여 사용되는 말인데, 원문상 이 말 앞에 '레'(* )라는 전치가사 덧붙여 있어 이 전치사의 기능을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즉 어떤 학자들은 이 전치사가 방향격이나 위치격을 의미한다고 보고, '증거막'에 혹은 '증거막 쪽에'란 뜻으로 이해한다(Knobel, Rosenmuller). 그렇게 본다면 구름은 단지 지성소 위에만 내려 덮혔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 전치사가 속격을 의미한다고 보면, '증거막의'란 뜻이 되어 곧 구름이 증거막으로 대표되는 '성막'(* , 미쉬칸) 전체 위에 임했다는 뜻이 된다(LXX, targum, Keil, Pulpit commentary). 성경의 맥락으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출 40:34).
불 모양 같은 것 - 이 역시 여호와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다<출 13:21,22; 14:24; 40:38>. 한편 구름과 불의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통치하신 이적적인 현상은 광야 생활 40년간 줄곧 계속되었다<신 1:2,33; 느 9:19-21>. 한편 '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 대해서는 출 13:21 주석을 참조하라.

===9:16
항상 그러하여 -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 모양으로 성막을 덮은 현상은 성막이 처음 세워지던 때만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광야 여행을 하는 동안 계속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출 40:38; 왕상 8:10). 이는 비록 광야 여행 중의 이스라엘이 불평과 반란과 거역을 일삼았다 하더라도,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과 관심은 항상 끊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실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야말로 역시 오늘날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존과 소망의 근거가 된다.

===9:17
구름이...머무는 곳에...진을 쳤으니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구름을 중심으로 광야 생활을 했다. 따라서 구름이 지시하지 않을 때에는 자의(自意)에 의해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즉 그들의 행동은 전적으로 구름의 인도에 의존했다. 한편 이스라엘을 인도한 이 구름은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인이 모두 목격할 수 있을 만큼의 높은 위치에까지 떠올라 그들의 발길을 인도한 것 같다<출 40:36>. 그러므로 그들은 각각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체험할 수 있었다.
구름이 머무는 곳에...진을 쳤으니 - 여기서 '머물다'(* , 솨칸)이란 말은 '자리잡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곧 이것은 15절에서 처럼 성막이 쳐진 곳에 내려 앉아 덮이는 것이 아니라, 성막이 쳐질 곳에 미리 자리를 잡아 내려 앉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막은 이동시 레위의 세가문(게르손, 고핫, 므라리 가문)에 의해 각각 나뉘어져 운반되었기 때문에(10:17,21), 15절의 형태로 구름이 내려 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9:18
구름이...머무는 날이 오랠 때 - 구름이 머무르고 떠오르는 시기는 하나님 이외에 아무도 몰랐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시기'를 일찍 감지하는 감각이 아니라, 그 구름의 변화에 따라 즉각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였다. 특히 구름이 오랜 기간 동안 지체할 때에는(22절) 그들에게 '인내'가 요구되었다. 실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인내하는 것은 우둔한 행동이 아니라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처신이다(약 5:7-11).

===9:20,21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 이때에는 이스라엘의 열심이 요구되는 때이다. 왜냐하면 유약자와 가축까지 동반힌 그 많은 사람들이 장막을 치고 걷는 일은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막 위의 구름이 짧은 기간 지체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비록 나쁜 기후 조건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단지 하루만 머물고(21절) 떠난다 하더라도 그들은 즉시 자신의 진을 걷어 출발해야 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 육신의 장막을 걷어 떠나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고후 5:1).

===9:22
일년이든지 - 여기서 '일년'(* , 야밈)이란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 '욤'의 복수형으로서 직역하면 '날들'(days)이라는 의미인데, 통상적으로 '1년' 또는 '많은 기간'(한달 이상)을 의미한다(창 24:25). 여기서도 구체적인 날 수를 가리키는 말이라기 보다 단순히 오랜 기간 동안이란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

===9:23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 여기서 '직임'(* , 미쉬메레트)이란 '준수하다', '신중하다'는 뜻의 '솨마르'(* )에서 유래한 말로 곧 '부탁한 임무', '규례', '명령을 통해 하달된 책임' 등을 가리킨다<1:53>.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의 머뭄과 떠오름으로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명령'을 따라 성급하거나 게으르지 않게 광야 여행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빠른 여행 방법이었다. 오늘 우리가 영적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바로 '하나님이 부탁하신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본장은 민수기 전체 중에서 출애굽기의 끝 부분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이다.
즉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생활한 출애굽 제 2년 정초로부터 40년 후 모압 평지에 도
착할 때가지의 사건을 다룬 민수기에서 기간순으로 가장 앞선 부분이 바로  본장이다.
따라서 본장은 시내 산에서 출발하기 직전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본장에는 유월절 행사에 대한 명령과 그에 대한 순종(1-5절) 및  사고로  인한
유월절 미참자(未參者)에 관한 구제책(6-14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생활동
안 안내자 역할을 하였던 불 기둥과 구름 기둥에 관한 내용(15-23절)  등이  열거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해서든 유월절 기념일을 지키게 하
셨으며 그 유월절을 강조하심으로써 당신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밝히셨다
(출 12:13,14). 또한 당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을  통하여  죽음의
땅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참된 인도자와 생의  목표가  됨을
시사하셨다.

   1. 유월절 시행 명령과 순종(9:1-5)
  이스라엘 출애굽의 분깃점이 된 첫 유월절 직후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영원히 기념하
여 지킬 것을 거듭 강조하셨다(출 12:14,24,25;40:2,17). 본문은 이러한 유월절에  대
한 또 한번의 명령(1-3절)과 그 명령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4,5절)을  아무런
수식(修飾)없이 묘사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철저한 신앙과 순종  의
식을 담백하게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번 절기 행사는 첫 유월절 이후 최초로 시행된 기념식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있으며 또 첫 기념식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 곧 사고자에 대한  처리(6-14절)  규정을
제정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반드시 유월절 절기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사실 유월절은 해방일로서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서의  출발점이었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관계를 명확히 제시하는 절기였다<출 12:1-14 강해, 유월절 규례
의 의미>.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 준 구속사의  전형이
었다. 때문에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념 절기가 되었다. 더욱
이 이날은 모든 신앙인의 영적 생일로 상징되며, 인류를 죄의 사슬에서 해방하여 하나
님의 친백성되게 하셨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날로서(요 12:24,27;고전
5:7) 우리의 기억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생명의 축제일이기도 하다.

  * 유월절 준수와 성만찬의 관계.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모형이며,  성
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는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또한 유월
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속박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성만찬은  인간의
죄와 사단의 어두운 속박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짐을 당한 것처럼 성만찬 예
식, 즉 성례 의식에 고의적으로 참가치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무시하는
처사로서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자로 스스로를 단죄하는 것이 된다. 성도들은  성만
찬식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여 그러한 엄숙한 의식에 즐겨 참여하여야 한다. 이 성찬
의 의식은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보혈 흘리신 사건을 그의 재림하실 때까지 전해야  하
는 귀한 의식이다(고전 11:23-29).
  한편 오늘날 성찬 의식은 다양하며, 그 해석과 의미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이지만 성
찬 의식 그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고(마 26:27,28) 반드시 지켜야 할  의식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내적인 깊은 의미는 이러한 외적인  의식을  통해서
더욱 숭고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성찬의 근본 의미인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
스도의 피의 공로를 믿고 감사하는 이러한 의식을 무시하거나 무성의하게  진행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 의식은 구속에 대한 감사의 의식이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
에 대한 찬양 의식이다.

   2. 사고자를 위한 2차 유월절(9:6-14)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속을 기념하는 유월절 절기 시행을 명령 받고 그것을 곧  준행
했던(1-5절) 백성들은 그 절기를 지키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그것은  유월절
기간 중 불의의 사고로 유월절 기념 예식에 참여하지 못한 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6,7절).
  본문은 바로 위와 같은 불참자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먼저 모세가 이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었다(8절). 이에 여호와께서는 비고의적인 사고로 인해 유월절에 참여치 못한  자
들에게 유월절 한 달 뒤인 2월 14일에 제 2차  유월절을  마련하시고  지키게  하셨다
(9-12절). 그러나 고의적으로 유월절 예식을 기피한 자에게는 필연코 하나님의 심판이
돌아갈 것을 명하셨다(13절). 그리고 할례를 받고 개종한 외국인들에게도 유월절 절기
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은혜로운  특례  조항(14절)이  덧붙여졌다(출  12:48,
49).
  그런데 이처럼 이미 제정되었던 법에 필요한 보완법이 첨가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의
미를 지닌다.    율법의 한계, 즉 율법이 온전한 규례가 아니라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
해 주는 그림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    하나님은 문자에 얽매인  고지식한  분이
아니라 인간의 사정과 생각을 깊이 통찰하시며 그들의 처지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시는
은혜로운 분이시라는 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을  징벌하시
려 함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려는 것이란 점(요 33:17) 등이
다.

  * 가장 현명한 대답. 유월절 기념 행사를 하던 백성들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유월절
을 지키지 못한 자에 대한 구제책을 모세와 아론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모
세가 그들에게 제공할 만한 해결책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오직 한 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대답, 즉 '기다리라'
는 말을 하고는 곧장 하나님께 나아갔다.
  사실 백성 전체의 신망(信望)을 받고 있는 지도자가 백성이 처한 어려움을 당장  해
결해 줄 묘안이나 대책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얼마나 창피스런 일인지 모른다. 간혹
우리는 모세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체면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섣부른 대
답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남들에게 수치당하느니 차라리 거짓과 위선, 정확하지 않
은 말로 얼버무려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순간의 창피는 모면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 어리석고 부도덕한 처사이다. 영성(靈性)을 지닌 인간
은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어느 정도 감지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인간
의 생사 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모두 내려다보시고  계신
것이다.
  이처럼 연약한 심성(心性)을 지닌 우리에게 오늘 모세는 귀한  모범을  제시하였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한 일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실수하지  않았
다. 그리고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8절)는 말을 통해 자신보다 위대하신 분, 곧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문제를  의뢰하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에 대해 늘 솔직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
님을 찾아 의뢰하고 하나님의 지혜롭고 온전하신 해결 방법을 잠잠히  '기다려야'  할
것이다(시 37:7;렘 33:3).

  * 타국인에게도 개방된 유월절 행사.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외국인이 유월
절축제에 참여하기를 원할 때는 그들도 참석할 수 있다는  새로운  법령이  나온다(14
절). 그런데 그들이 유월절 절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따랐다. 즉  그
들은 반드시 개종을 하여 할례를 받고 히브리인의 율법에 순응해야 비로소 유월절  예
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출 12:48,49). 물론 타국인들이 지키는 유월절 규례도  이스라
엘 백성과 하등의 차이가 없이 동일한 절차에 따라 지켜졌다.
  이와 같이 가장 이스라엘적이고 선민적(選民的)이라 할 수 있는 유월절 예식에 타국
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넓게 개방한 것은 선민 이스라엘이 단순히 혈연적으로만  구성
된 폐쇄된 집단이 아님을 시사한다.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과 언약(할례)으로  맺
어진 신앙 공동체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
대인 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도 한 형제 자매가 될 수 있다는 위대한 환상(Vision)
을 제시한다(롬 2:28,29;엡 2장).

   3. 이스라엘을 인도한 불 기둥과 구름 지둥(9:15-23)
  앞서 하나님께서는 첫번째 유월절 기념식과 제 2차 유월절  제정등의  내용을  통해
(1-14절) 당신이 이스라엘의 참 구원자이심을 알리셨다. 그러한 하나님께서는 이제 본
문에 이르러선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을 선두로 이스라엘이 질서있게 이동한 사실을  통
해 당신이 이스라엘의 참된 지도자(인도자)라는 사실을 덧붙여 밝히고 계신다.
  한편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막 위에 밤에는 불 기둥, 낮에는 구름 기
둥이 머무른 사실(15,16절)    성막 위 구름이 떠오를 때와 머무를 때를 기준으로  이
스라엘이 행진과 휴식을 되풀이한 사실(17-22절) 및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
한 사실(23절) 등이 열거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구름을 통한 그분의  새로운  지시가
있을 때까지 계속 머무르거나, 행진함으로써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
하였다. 이것은 죽음의 땅 광야에서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만
약 하나님의 지시를 무시하고 편한 곳에서 계속 머무르거나, 반대로 불편한 곳이라 하
여 성급히 떠났다면 그들은 한 사람도 생명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마지
막 날에 생명과 기쁨의 축제를 맞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분
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삼상 15:22;약 1:4;5:7-11).

  *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 이스라엘이 막 애굽을 벗어난 때부터  여호와께서는
불과 구름이라는 가시적인 매체를 통해 당신의 은혜로우신 임재를 나타내셨으며  백성
을 친히 인도하셨다(출 13:21,22).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중 낮의 찌는  듯
한 더위와 밤의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40년간 아무런 불편없이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이 그들을 내내 인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계시는 하나님 임재의 가시적 현상(Matthew Henry)
이며    가나안 정복을 위해 군대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휘관이  하나님임
을 상징한다(Lange). 그리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되며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가 얼마나 구체적인가를 보여 주는  증거물이 된다<출 13:17-22 강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의미>.
  한편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상징하는 불과 구름 기둥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성령의 역사로 비교, 이해될 수 있다. 즉 죽음과 분쟁이 상존(常存)하는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목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령께서는 날마다 동행하시고 우리의 갈 바를 알게 해 주신다(요 14:26). 따라서 우리는 하늘 가나안에 이를 때까지 참 생명과 기쁨을 얻게 하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매일 생활함이 마땅하다(롬 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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