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돌판 둘을...깍아 만들라 - 처음의 돌판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셔서 모세에게 주셨으나(32:16), 두번째 돌판은 모세가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이것은 첫번 돌판보다 신적인 권위나 신성함이 다소 떨어졌을 것인데 이것은 범죄한 인간이 회개하면 죄사함을받아 회복은 되지만, 그 휴유증은 남는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깍아 만들라'의 '페살 레카'(* )는 '파살'(깍다, 새기다)의 재귀 명령형으로 '네 자신이 깍아만들라', (다른 사람이 아닌) '네가 깍아 만들라'는 뜻이다. 즉 이는 돌판을 만들어야하는 주체가 모세임을 강조하는데 돌판을 깨뜨린 당사자가 모세이기 때문에 더 그러할것이다. 처음 판에 있던 말 - 이 말은 20:2-18 에 나오는 '십계명'(Ten Commandments)을 가리킨다(28절). 한편 이 십계명이 두 돌판에 어떠한 형태로 기록되었는 지에 대해서는신4:13 주석을 참조하라.
=====34:2
시내산에 올라와 -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내 산에 오르내린 행정에 대해서는 19:16-25 강해, '시내산과 모세'를 참조하라. 내게 보이되(* , 니차브타 리) - '보이다'로 번역된 '나차브'(* )는 '자리잡다', '배치하다' 혹은 '세우다'(설립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내앞에 자리를 정해서 있으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34:3
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 문자적으로는 '산 전체에 아무도 보이지 않게 하고'란 뜻이다. 이 같은 명령은 처음 계약을 체결할때도 주어졌었는데(19:12,13), 그 이유는 계약이 체결되는 산은 하나님께서 강림해 계시는 곳으로서, 곧 성소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모든 죄악된 요소들과 구별되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은 세상의 죄악된 요소와는 결코 함께 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교훈한다.
=====34:4
시내 산 - 모세는 이 산, 즉 호렙 산에서 민족 해방의 사명을 받고(3:1-14) 느보산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신32:49,50). 또한 모세 외에도 성경상의 많은 인물들이 산이나 들 혹은 강변에서 계시를 받곤 하였다(왕상 17:1-9;19:1-18). 이처럼 산은 성경상의 중요 사건과 종종 관련을 지니는데 이는 그곳이 세파에 시달리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보다 깊은 영적관계를 나누며 영혼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마14:23). 한편 시내산과 호렙 산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3:1 주석을 참조하라.
======34:5
구름 가운데 -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33:9).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비단 구름 뿐 아니라 불과 연기(창15:17), 폭풍우(욥 38:1), 세미한 음성(왕상19:12)등을 통하여서도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셨다. 그와 함께...반포하실새 -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에서의 '그'가 하나님일 수도 있고 모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반포하다'로 번역된 '카라'(* )는 '선언(선포)하다'는 뜻도 있지만 기본 의미는 '이름을 부르다'이다. 따라서 '그'를 하나님으로 볼 경우 본절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시고, (모세는) 그와 함께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가 된다. 반면 '그'를 모세로 볼 경우에는 한글 개역과 같이 되는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신 것은 영광의 상징을보여 주겠다고 하신 약속(33:22)의 성취이다(Calvin).
=====34:6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으로,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스스로를 계시해 주신다. 그러한 하나님께선 모세를 부르실 때(3:14), 십계명을 주실 때(20:2) 자신을 '여호와'로 소개하셨는데 이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와 행동을 함께나타내는 것으로(3:14) 하나님이 세상의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심을 가리킨다(3:15).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이름이 반복해서 선포된 것은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모세로 하여금 뒤따르는 계시를 삼가 경청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더디하고(* , 에레크) - '길다', '연기하다'는 뜻의 '아라크'에서 유래했으며 '인내하다'는 뜻도 포함한다. 따라서 '화내는 것을 연기한다'거나 혹은 '화를 참는다'는 의미인데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 끝까지 참고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여실히 증거해 주는 말이다.
======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 하나님의 진노에 비하여 그 은혜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20:6). 한편 20:6에서는 '베푼다'에 해당하는 원어가 '만들다', '행하다',는 뜻의 '아사'(* )인데 비해 여기서는 '지키다', '보존하다'(보호하다), '준수하다'는 의미의 '나차르'(* )가 사용되었다. 이는 좀더발전된 형태로, 곧 하나님께서 자손들에게까지 인자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뜻이다. 악과 과실과 죄 - 여기에 해당하는 원어는 '아온'(* , 악)과 '페솨'(* ,과실) 두 가지인데 한글 개역 성경과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세 가지로 번역했다.이것은 아마도 '형벌받을 자'로 번역된 '하타아'(* )가 '범법'이라는 뜻을 지니기 때문에 중복해서 번역한 것 같다. 형벌 받을 자(* , 하타아) -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난 경우를 가리키는'하타'(빗나가다)에서 온 말로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을 의미 하는데 이러한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 나케 로 예나케) - 동일어의 반복에 의한 강조 구문이다. 기본형 '나카'는 '깨끗하다', '무죄하다'는 뜻으로 본문을 직역하면 '결단코 무죄한 채 두지 아니하고'가 된다. 한편 20:7의 '죄 없다고 아니하리라'도 '로예나케'이다.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 직역하면 '아버지의 악을 아들들에게 그리고(그 아들들의) 아들들에게 세 번 네 번까지'이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시는 하나님의은혜에 비하여, 그 진노는 아주 작은 것임을 묘사한 수사학적 표현이다. 그러나 이 말은 조상이 지은 죄의 영향이 후손들에게까지 은연 중에 미치게 됨을 일깨워 준다(Rosenmuller).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병행 귀절인 20:5,6을 참조하라.
======34:8
엎드리어 - '몸을 숙이다' , '구부리다'는 뜻으로 주로 '솨하'(* , 경배하다)와 결합해서 예배 행위를 나타낸다(4:31).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엎드린 것은 예배를위해서라기 보다 외경심으로 인해 몸을 숙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모세가'급히' 땅에 엎드렸다는 것에 의해 뒷받침된다.
======34:9
은총을 입었거든 - 여기서 '은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헨'(* )은 33:19에 언급된 '은혜'란 말과 같은 단어이다.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겠다고 하신그 약속에 근거해서 지금 중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인이 약속에 근거해 드리는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5:16). 한편 '은총'에 대한 보다 자세한설명은 33:19 주석을 참조하라. 우리 중에서(* , 베키르베누) - 기본형 '케레브'의 본래 의미는'가장 가까운 부분', 즉 '중심', '한 가운데'란 의미로서 '접근하다', '가까이 있다','합세하다'는 뜻의 동사 '카라브'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오셔서 '합세' 해달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목이 곧은 백성 - 32:9 주석 참조 주의 기업 - 직역하면 '주의 소유'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해당하는 '나할'(* )은 '몫', '차지', '유산'등의 뜻이 있기 때문에(23:30;32:13;민18:20;수16:4;신32:9), '주의 기업'보다는 '주의 소유'라는 말이 더 좋다. 벧전 2:9에서 사도 베드로는 성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다.
=====34:10
언약을 세우나니 - 이 말에 해당하는 '카라트'(* )는 원래 '자르다', '베어내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계약을 체결할 때 고기를 '베어' 조각낸 뒤 계약의 당사자들이 그 사이로 지나갔는데(창 15:10-17), 여기에서 '카라트'가 '계약을 맺다'는 뜻으로전용(轉用)되었다. 한편 이 말의 명사형인 '케리트'는 '절단'이란 뜻인데 같은 이유에서 '계약'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15:10, 17 주석 부분을 참조하라. 행치 아니한 이적 - 이는 이스라엘이 향후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놀라운 역사를 가리킨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요단 동편 아모리족속의 두 왕 정복 사건(신2:26-3:17), 요단 강물이 멈춘 사건(수 3:16,17), 태양과달이 멈춘 사건(수 10:12-14) 등이 있다. 소위(* , 마아세) - '만들다', '행하다', '성취하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닌 '아사'에서 유래한 말로 '행동', '일', '활동' 등의 의미를 지니는데 특히 '작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 또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으로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전에 행하신 출애굽 사건과 이후 행하실 가나안 정복사건이야말로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34:11
삼가 지키라 - '준수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란 뜻의 '솨마르'(* )와 '네 스스로', '너를 위하여'라는 뜻의 '레카'(* )가 결합된 강조문이다. 특히 '솨마르'는'세밀하게 보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때 이와 같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실행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아모리 사람과...여부스 사람 - 소위 가나안의 후기 원주민들로 불리우는 족속 들이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34:12
언약을 세우지 말라 - 23:32 주석참조 올무가 될까 하노라 - 문자적으로는 '올무가 되지 않도록'이다. 즉 '올무가 되지않도록...언약을 맺지 말라'는 뜻이다. 23:33 주석을 참조하라.
======34:13
헐고...깨뜨리고...찍을지어다 - 23:24의 '훼파하며...타파하고'란 명령보다 한층강도 높은 표현이다. 즉 23:24의 '훼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스'(* )는'헐다' 정도의 뜻인데 반해 본절의 '헐고'에 해당하는 '나타츠'(* )는 '부숴버리다'는 보다 강도 높은 뜻이며, 또한 '찍을지어다'의 '카라트'(* ) 역시 '산산조각내다'는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3:24에서 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상 타파를 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금송아지 사건'(32:1-6)에서 보듯 우상 숭배 금지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상(* ,맛체바) - 종교적인 목적으로 세운 비석으로, 곧 우상에게 봉헌된 기념비를 가리킨다. 아세라 상(* , 아쉐라우) - '축적하다', '부해지다'는 뜻의 '아솨르'(* )에서 유래한 말로 '풍요의 신'으로 알려진 가나안의 여신이다. 이 신은 고대근동의 여러 족속중 특히 아모리족과 가나안족이 숭배한 여신(女神)으로서 '아낫'(Anath)과 '아스다롯'(Ashtaroth)과 더불어 가나안의 3대 여신 중 하나이다. 그리고이 신은 '생육', '생산'의 신인 '바알'과 부부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따라서 이들 두신의 숭배에는 필연적으로 성적인 타락이 수반되었다(Wycliffe). 한편 처음 언약(23:24)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아세라(Asherah)가 여기서 언급된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종교를 본받아 성적 타락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기위함인 듯하다(32:6).
======34:14
질투의 하나님 - 이 표현은 하나님을 의인화시킨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이다(20:5).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분으로 묘사되는데, 그것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에게 애정과 헌신을 바치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20:5;신32:16;수24:19,20).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에게 돌아올 고유한 영광이나 찬양이 자신의 피조물인 다른 대상에게 엉뚱하게 돌아갈 때, 그리하여 그 백성의 영혼이 헛된 우상에게 빼앗길 때, 당신의 속성상 우러나오는 그러한 공의로써 그러한 행위를 질투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본절에서 다시금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은 다시는 금송아지 숭배와 같은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34:15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 12절 내용의 재차 반복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과의 언약 체결을 강하게 금지하시고 있는 까닭은 이스라엘이 이미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이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는 백성이므로 또다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민족에 대해서 어떠한책임이나 의무를 지게 되는 언약을 이중으로 맺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언약을맺게 되면 서로 상대방의 신을 인정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대의 관례였으니하나님께서 그처럼 우상 숭배와 직결되는 가나안인과의 언약 체결을 금지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음란히 섬기며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자나'(* )는 '간음하다', '창기가 되다'(창기의 행위를 하다), '매춘하(러가)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신을 음란히 섬기며'를 직역하면 '그들의 신에게 매춘하러 가며' 혹은 '그들의 신을 좇아 매춘(행음)하며'가 된다. 이처럼 가나안인들이 신을 음란하게 섬기는 것은 그 종교의 속성이었으며 특히 이들 종교의 여사제(女司祭)는 공인된 창기였으니, 신에게 제사드리러 나오는 남자는 곧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그러한 신을 대리한 이들 여사제와성관계를 갖는 것이 곧 신과 접촉하는 예배 행위였다.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 이 말은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 제물을 취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물론 제물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금하는 까닭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1)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진 이상 히브리인들의 의식법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며 2)그것이 우상 숭배를 위한 사악한 목적에 쓰여진것임을 알고서도 거리낌 없이 취한다는 것은 곧 우상 숭배 자체를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 8:1-13).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광야 여행 중 싯딤에 머물때 모압 여인들의 초청에 응해서 우상 제물을 먹고, 신들에 절하며, 행음까지 함으로써(민 25:1-3) 이 명령을 어기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하나님과의 약속에 대한 계속적인 거역과 위반으로 점철되어졌는데, 그 결과 그들은 계속해서 광야에서 맴돌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역시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교훈해 준다.
======34:16
그들의 딸들로...아내를 삼음으로 - 세상에 '노아홍수'가 임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데 있었다(창 6:1-7). 또한 솔로몬의 타락도 이방여인과의 결혼에서 비롯되었으며(왕상 11:1-8), 결국 이는 이스라엘 왕국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왕상 11:9-11). 이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과의 결혼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엄격히 금하셨는데, 오늘날에도 불신자와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전 7:39;고후6:14-18).
======34:17
20:23을 반복한 말씀으로서 곧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거듭된 경고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었기 때문에(32:8), 여기서도 '부어' 만들지 말라고 지적함으로써 그들의 죄를 상기시키고 있다.
=====34:18
무교절 - 유월절로 시작되는 7일 간의 축제(12:15-20)로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떡을 먹기 때문에 무교절이라 했으며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아빕월 - 일명 '니산 월'이라고도 하는데(느 2:1;에3:7) 유대 종교력으로는 1월, 민간력으로는 7월, 현대 태양력으로는 3-4월을 가리킨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3:15 주석을 참조하라.
======34:19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 출애굽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초태생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돌릴 것을 명하셨는데(13:2) 이는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인 초태생을 죽인 것(12:29,30)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같은 명령이 반복되고 있는 까닭은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한편 예표론적으로 이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고전 15:23;골1:18)와 더 나아가 영적 장자(長子)되는 믿는자(히12:23)들의 헌신을 상징한다(Delitzsch). 자세한 내용은 13:12 주석을 참조하라.
======34:20
나귀의 첫새끼는...대속할 것이요 - 레 11:2-7에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동물의목록이 있는데, 나귀는 그 가운데 들어 있지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나귀는 하나님께제물로 드릴 수 없는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던 것 같은데 이는 가축으로서 제물로 드려지지 않았던 짐승은 나귀 뿐이었음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따라서 나귀는 부정을면키 위해 어린양으로 대속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여야 했던 것 같다. 대속(* , 파다) - '몸값을 받고 석방하는 것'을 뜻한다. 나귀와 같이 제사에 적합치 못한 짐승은 어린 양으로 그 값을 대신했고, 사람일 경우에는 돈으로 대속하도록 했다(30:12-16).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말지니라 - 여기서 '얼굴'로 번역된 '파나'(* )는'앞에'(before)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본절은 '내 앞에 빈 손으로 나타나지 말라'로번역하는 것이 좋다(23:15). 한편 이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대로 정성껏 예물을드리라는 명령이다(신 16:16,17). 그렇다고 해서 이를 헌금강요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창조자로서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함인데, 왜냐하면이러한 감사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의 마음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13:13 주석 및 23:15 주석을 참조하라.
======34:21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 문자적 뜻은 '밭 가는 때와 거두는 때의 안식일'로서 즉 파종기와 수확기에도 안식일을 지켜야함을 강조해 주는 표현이다. 안식일 규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8,9,10,11 주석을 참조하라.
=====34:22
칠칠절 -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농작물의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이다(23:16;신16:9-12). 수장절 -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한다. 자세한 내용은 23:16 주석 및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를 참조하라.
=====34:23
매년 세 번씩 -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무교절, 오순절,장막절(18,22절;23:14-17)의 때를 말한다. 그리고 이때마다 '하나님 앞에 보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나타나라'는 말과 동일한데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신 16:15,16). 자세한 내용은 23:17 주석을 참조하라.
=====34:24
지경(* , 게불) - 본래 의미는 '끈'으로서 곧 '경계선'을 의미하며, '경계','한계', '지역', '공간'등을 뜻한다. 한편 23:31에서는 이스라엘의 지경을 사방으로 최대한 넓혀주겠다는 강도 놓은 약속이 나와 있는 반면 여기서는 그 약속의 톤(tone)이 다소 약화되어 있다. 그 까닭은 아마 '금송아지 사건'(32:1-6)에 따른 일종의 유감 표명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께...올 때에...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신 12:1-14에서 가나안 정복 이후 제사 조직이 지방에 난립할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모두 함께 모여 공식적인 제사를 드릴 곳, 즉 유일한 중앙 성소(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명하셨다. 따라서 매년 세 차례 이스라엘에는 전 지경에서 남자들이 예루살렘으로빠져 나가는 공동(空洞)현상이 생겨나게 됨으로써(눅 2:41,42) 지역 방위의 문제가 생기는데, 하나님께서는 본절에서 바로 이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34:25
희생의 피...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 희생의 피는 죄를 속하는 것인데 반해 유교병은 죄악의 상징인 누룩이 들어 있기 때문에 함께 드려질 수 없었다. 23:18 주석을 참조하라.
=====34:26
처음 익은것 - 동일한 말이 23:19 에서는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의 문자적인 뜻은 '처음 익은 열매의 제일 좋은 것'이 된다. 본절에서는 '첫것'(제일 좋은것)이란 말이 빠져 있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 가나안 풍습을 따르는 것에 대한경고이다. 23:19 주석을 참조하라.
=====34:27
이 말들의 뜻대로 - 직역하면 '이 말들을 따라'이다. 여기서 '이 말들'은 먼저 맺었던 첫번째 언약(20-31장)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첫번째 언약을 따라 동일한 내용으로 두번째 언약을 맺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기서 세우는 언약이 첫번째 세운 언약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의 회복임을 보여준다.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 모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체결의 중재자이지만 그 역시 이 언약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집단적으로 언약을 맺으시면서 동시에 모세 개인과도 언약을 맺으시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교역자들 가운데에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들을 자신은 제외하고 일반 신자들에게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본절에 비추어 볼때 잘못된 것이다.
=====34:28
사십 일 사십 야 - 결과적으로 모세는 지난번의 40일(24:18)과 이번의 40일을 합하여 도합 80일을 금식한 셈이다. 이것은 첫번째 언약을 맺은 때와 같은 조건(성경에서'40'이란 숫자는 연단과 시험을 나타내는 수이다)에서 두번째 언약을 맺었다는 뜻이다. 상황적으로 미루어 볼 때 오히려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두번째 언약을 맺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는 한번 파기된 관계를 다시 맺는 것은 그만큼 더 힘들다는것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는... 기록하셨더라(* , 이케타브) - 원어상으로는 단순히 '그가 기록했다(새겼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가 누구인지 불분명한데 영어 성경은 대부분 '그'를 대문자(He)가 아닌 소문자(he)로 표기하여, 모세가 기록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카일(Keil)과 같은 학자가 이를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번째 십계명도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한 것으로 봄이 더 타당하다. 그 이유는 성경상에서 찾아볼수 있다. 즉 1)본장 1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모세가 준비한 두 돌판 위에다 당신께서쓰겠다고 말씀하셨다. 2)모세의 회고 기록인 신10:1-5의 증거에 따르면, 모세도 분명히 '여호와께서...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었다'고 언급하고 있다(Pulpit Commentary).
======34:29
증거의 두 판 - 32:15 주석 참조.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광채가 나나 - 이것은 성물과 접촉하는 것이 거룩해진다(29:37;30:29)는 원리와 일맥 상통한다. 즉 모세는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만 집중했는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 혹은 거룩함이 자연스레 모세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모세가 성화(聖化)되어진 것이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얼굴에 나는 광채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 몇 군데 있다(마 13:43;17:2;행 6:15;7:20).
=====34:30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 원문에 가깝도록 직역하면, '보라! 빛나는 얼굴의피부가 되었도다'란 뜻으로 모세의 빛나는 얼굴의 광채를 보고 놀라워하는 백성들의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두려워하더니 - 앞절의 '광채가 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란'(* )은 '뿔이나다'는 뜻도 있다. 아마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는 뿔과 같은 모양으로 빛났던 것같고 이때문에 사람들은 더 두려워 했던 것 같다. 따라서 라틴어 벌겟역(Vulgate)은이를 '뿔이 났다'로 번역했고, 이에 따로 모세를 묘사한 얼굴에 뿔이 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적용이다. 한편 후일 사도 바울은 이 모세 얼굴의 광채를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새언약의 영광스러운 광채로 승화시켰다(고후3:7-18).
=====34:31
회중의... 어른 -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가리킨다(12:21).
====34:33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더라 - 이것은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서부터 나는 광채에 백성들이 현혹되어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할 가능성을 배제키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후에 바울이 율법에만 집착하여 그 율법이 가리키는 바, 그리스도의 빛나는 영광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어두운 심령 상태를 나타내는 비유로 인용하였다(고후 3:7-18).
======34:34,35
여호와 앞에... 수건을 벗고 - 하나님의 영광(33:18)을 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기만 하면 이 율법의 수건이 저절로 벗겨져, 율법이 증거하고 있는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에 대하여 깨닫게 되어 날마다 변화받아 그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된다(고후 3:16,18). 다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더라 - 33절 주석 참조.
본장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파기되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32장)가 모세의 중보 기도로(33장) 다시 회복되는 장면이다. 이 회복은 관계 단절의 원흉인 죄악을 도말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했으며, 깨뜨려진 언약의 두 돌비를 하나님께서 다시 만들어 주심으로써 온전히 성취될 수 있었다(1-28절).
한편 하나님께서 두번째 만들게 하신 언약판은 새 것이었으나 언약 내용은 전과 동일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인간의 위약(違約)으로 앞서 맺은 계약서를 깨뜨리셨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계약 내용마저 바꾸시지는 않으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진정한 왕이시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만이 생명을 얻는다는 계약의 전제를 거부한 자에게는 이 전체를 이해시키는 일이 필요 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러지 아니하고 이 전체를 폐기시켜서는 계약의 성립조차 기대할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항상 동일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또한 본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시겠다는 약속(33:18-23)이 성취된 것을 목격할 수 있다(29-36절).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대화하시고 그에게 당신의 영광의 광휘(光輝)를 접맥시키셔서 그의 얼굴에 눈부신 광채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죄 용서받고 그분과 교제하는 자의 영광을 예시하는 것인 동시에 하늘 나라 시민으로서 모든 성도가 누릴 영광스런 모습의 전조(前兆)라 할 수 있다(고전 15:35-49).
1. 새 돌판을 만들어 시내산에 오르다(34:1-4)
전장 후반부에서(33:14-23) 언약의 회복을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본문에 이르러 그 언약 회복의 증거로 새로운 돌판을 모세에게 깎아 만들게 하셨다(1절).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혼자 시내 산에 오를 것을 명하셨다(2-4절). 한편 언약의 체결은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일이다. 먼저번의 중재자인 모세도, 계약 장소인 시내 산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언약의 증거판이 달라졌다. 첫번째처럼 하나님께서 손수 준비하신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을 원하는 자들의 정성에 의해 준비된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다. (1) 언약을 새겨 둘 마음의 판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새로운 계약 역시 무의미함을 상징한다. (2) 첫번째 것과는 달리 두번째 돌판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신적 권위와 위엄이 감소되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만다는 준엄한 경고를 내포하고 있다(삼하 12:13,14). (3)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두고 기억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다.
* 아침에 오르는 시내 산. 이스라엘과의 재계약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 중 첫번째 요구는 모세가 아침전에 예비된 자세로 당신이 임재해 계신 시내 산에 올라오라는 것이었다(2절). 이처럼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침범당하지 않은 신선하고도 고요한 신간 중에 인간 개개인과 만나기 원하신다. 하루의 시작을 당신과 함께 계획하며 그 계획에 따라 그날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누구와도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당신과 교제한 후, 타인과의 관계를 시작하도록 명하신다. 왜냐하면 주님이 전제되지 않는 인간 관계는 무의미하며 궁극적으로 유익이 안되는 만남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 산 꼭대기에서 만났듯 우리들에게도 당신이 계신 곳에 올라오기를 원하신다. 이곳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고 세속적이고 부패한 마음에서 떠난 순결한 마음과 영혼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교제와 만남이 전제되는 장소에서 날마다의 시작과 더불어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매일 시작되는 첫 시간에 순결한 영혼으로 하나님을 인정할 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인정하시며 모든 삶 가운데서 친히 역사해 주실 것이다(시 37:5,6).
2. 하나님의 자기 계시(34:5-9)
하나님께서 언약의 회복(33:14)과 더불어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대로(33:10-23)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시면서 당신의 영광스러움과 성품과 거룩한 사역 전반에 걸쳐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다(5-7절). 그리고 모세가 그 같은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해 이스라엘의 사유(赦宥)를 간구하고 있는 부분이다(8,9절). 인간이 하나님의 실존을 인지하며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처럼 당신의 이름과 이상(異像)과 사건과 메시지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접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시 의존은 신앙인의 기본 자세이다.
모세는 계시된 하나님이 실존과 성품과 사역 전반을 통해 그 계시가 단순히 피상적이고 허공을 울리다 사라지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님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인 자신과 자신의 동족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살아있는 메시지임을 확신하고 그 계시에 입각해 범죄한 백성 구원을 위한 중보 기도에 임한다(9절). 즉 비록 목이 곧아 동행할 수 없는(33:3) 패역한 민족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당신의 자비와 은총이 필요함을 간구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와 성품에 근거한 기도야말로 응답받는 기도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할 수 있는 기도이다.
* 여호와의 심판과 자비의 관계. 본문은 영광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다는 사실과 더불어 죄악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응하시는 분이라는 이중적 속성(6,7절)의 자기 선언을 하시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으로는 심판이라는 말과 자비라는 개념은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모순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은 결코 물과 불처럼 상대적인 대립이나 모순을 가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서 최고로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다. 즉 예수는 인간의 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의 희생물(대속물)로서 자신의 몸을 심판에 맡기셨다(롬 6:10). 이는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들의 생명을 살리시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자비의 최고 절정이었다(요일 4:10).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사랑은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이후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루기까지 하나님의 일관된 자기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시인하는 모든 신자들에게도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3. 다시 언약을 맺으시다(34:10-28)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로 마음을 돌이키신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속성을 스스로 계시하신 후(5-9절)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다시 언약을 맺으셨다. 물론 이 언약의 목적과 그 내용은 이미 시내 산 언약 사건 때에 주어진 것(19-23장)으로 그 본질적인 것이 변한 새로운 언약이 아니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언약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1) 가나안 정복 때에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과 이적으로 도우실 것이라는 약속(10절)과 (2) 가나안 정착 후에 우상 문화에 젖은 원주민들과는 그 어떤 통혼이나 통교도 하지 말라는 명령(11-17절) 그리고 (3) 23:10-19에 이미 언급된 3대 절기에 관한 재언급으로서 이방의 타락한 제사법을 버리고 참되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 것(18-26절) (4) 주신 언약을 모세가 두 돌판에 기록하는 장면(27,28절) 등이다.
결국 본문에 제시된 언약은 가나안 정착을 염두에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특별히 우상 숭배와 관련된 법규들이 재언급된 이유는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이 여호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상 숭배로 오염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호와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바로 알 때 우리의 실수와 허물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호 6:3).
* 여호와와 함께 한 40일. 성경에 기록된 숫자는 그 나름대로의 사실성에 기초한 기록이지만, 더불어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비근한 예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7일간 이루어졌다는 기록(창 2:2)은 실제 7일을 의미하는 동시에 '7'이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성경에 기록된 개개의 숫자에 따른 상징적 의미는 이처럼 교훈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보낸 사십 주야는 그가 하나님과 함께 깊은 교제를 갖기 위해 보낸 기도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40'이라는 숫자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를 살펴본다면 더욱 깊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40'에 관한 내용은 노아의 홍수(창 7:4;8:6), 요나가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한 40일간의 회개(욘 3:4),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40일 기도(마 4:2), 부활 후 40일 동안의 지상 사역(행 1:3),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유랑(7:29,30) 등으로 모두 오랜 기간을 의미한다. 즉 40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생존이 극에 달한 절대적인 한계 상황과 인간이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하기 위해 필요한 회개와 기도와 절제의 기간을 상징한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을 향한 거룩한 훈련 기간 및 하나님의 뜻의 완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계 서론, 성경에 나타난 숫자의 상징적 의미>.
4. 모세의 얼굴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34:29-35)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결정에 따라 다시 언약을 맺고 그 언약 내용을 두 돌비에 새겼던(10-28절) 모세는 이제 그 돌비를 가지고 하산하게 된다. 본문에는 하산하는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 때문에 백성들이 공포를 느낀 사실(29,30절)과 모세가 그 두려움을 제한 후 백성들에게 언약을 재선포한 장면이 나와 있다(31,32절). 그리고 그 후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 기도할 때 외에는 항상 백성 앞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다는 후담(後談)이 기록되어 있다(33-35절). 그런데 이같은 일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가 언제쯤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한편 모세의 얼굴에 빛났던 광채는 결코 모세의 인격이나 극기의 노력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 즉 그 광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40일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광휘를 입은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과의 격없는 교제를 통해 이 세상에 빛으로, 광채로 나탈 수 있다(마 5:16).
*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는 방법.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 것은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그의 부단한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와 친밀한 교제를 허락하신 하나님에 의해서였다. 이처럼 자신의 이익과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완전히 탈피한 자, 곧 자기를 철저히 부인한 자만이 그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되지 못하는 원인은 그 영광을 가리우는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모세의 영광에 찬 얼굴을 목도했던 죄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히 그 얼굴을 직시할 수 없었다(30절). 이는 곧 범죄한 영혼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장면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을 잃어버린 '가죽은 인간'은 자신의 본질적 형상을 회복해야만 한다.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는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현대인에게 회복의 방법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곧 모세처럼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이다. 물론 교제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죄와 허물이다(사 59:2). 그런 후 40일이라는 상징적 의미처럼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며 그분의 영광을 소유한 자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분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갈 2:20). 범속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는 것만큼 복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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