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네가...인도하여 낸 백성 - 32:7과 동일한 말로,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로 인해 파기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당신께서 직접 인도하시기 보다는 마치 인간 지도자 모세가 한 것처럼 말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낯설은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 본절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20:2)는 친밀한 말씀과는 대조를 이룬다.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 -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게 주리라고 약속되어진가나안 땅을 뜻한다(창 12:7; 13:15; 17:8; 28:13).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이 땅에대하여 다시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관계가 손상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므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한 대로 그들을 일단 가나안 땅으로는 인도하실것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이다(Wycliffe). 올라가라( , 알라) - 원뜻은 '깨어나다', '출발하다', '도약하다' 혹은'복구하다'이다. 따라서 이 말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말속에는 전장(前章)의 사건으로 인한침체 상태에서 깨어나 도약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33:2
내가 사자를 내 앞서 보내어...쫓아내고 - 이 말은 가나안 정복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의해 되어짐을 의미한다(23:20; 32:34).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과 영적 싸움을 싸우나 우리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써 싸울 뿐이다(골 1:29). 한편 '사자'에 관해서는 23:20 주석을 참조하라. 가나안 사람...여부스 사람 - 여기에 기르가스 족속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 7족속'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3:8 주석 및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족속들'을 참조하라.
======33:3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여기서 '젖'은 우유를 가리키는데, 양과 염소의 젖까지 포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흐르다'( , 주브)는 '차고', '넘치는' 것을 가리킨다. 자세한 설명은 3:8 주석을 참조하라. 나는...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나대로 하게 하라'(32:10), 즉 일종의 관계 단절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백성만 따로 올라가라고 하심으로써 이를 시행하려 하고 있다. 1절의 '네가...인도하여 낸 백성'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애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계약 파기로 인한 불화의 관계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목이 곧은 백성 - '목을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는 백성'이란 뜻의 이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순종하거나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억척스런 고집이나 패역한 거만 등을 나타낼 때 종종 쓰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중로에서 - 단순히 '길에서' 혹은 '도중에'라고 번역함이 좋다.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 직역하면 '너희를 진멸하지 않도록'이다. '진멸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칼'( )은 원래 '먹다'란 뜻인데 여기서는 지체없이 '먹어치우다', '태워버리다'는 강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행하면, 그들이 또다시 범죄할 경우 하나님의 공의가 가차없이 그들을 진멸하고 말것이니, 그러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나안 여정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일종의 자비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33:4
혹은 '슬픈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별 선언'을 하신 것(3절)은 광야 지대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의지해야 할 백성들에게 최악의 소식이 되었음을 뜻한다. 단장하지 아니하니 - 직역하면 '장신구를 몸에 달지 않았으니'이다. 이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에 대하여 통회(痛悔)하고 있음을 외적으로 나타낸 행위인데(창 37:29;삼하 1:11;욘 3:6-8), 애도의 기간에 몸에서 장신구를 메는 것은 당대의 일반적 관습이었다(Knobel). 한편 백성듸은 금송아지 제작을 위해 금고리를 내놓았는데(32:2,3) 그렇게 하고도 또다른 장신구가 있었음을 볼때 출애굽시 그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패물을 받아 나왔음을 알 수 있다(12:35,36).
=====33:5
목이 곧은 백성 - 하나님 앞에서 완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을 뜻하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순식간이라도 - (눈의)'깜박임'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잠깐 동안이라도'로 번역하는것이 좋다. 이는 하나님이 잠깐만이라도 이스라엘과 함께 있으면 이내 그들의 죄악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성경의 증거를 재삼 확인할 수 있다(창 6:5). 단장품을 졔하라 - 여기서 '제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동사 '야라드'( )의 의미는 '내려가다'인데, 사역형으로 쓰일 때는 '(아래로)던지다', '끌어내리다'란 뜻이 된다. 따라서 이말은 '단장품을 내어 던지라'는 의미이다. 한편 장신구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우상 숭배를 위한 일종의 신상이었다. 따라서 장신구에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야곱이 옛생활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갈 때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이방 신상과 함께 땅에 묻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창 35:1-4).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장신구를 애굽사람들로부터 받았는데(12:35,36),그것들을 몸에 부착함으로써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우상 숭배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결국에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를 과감히 제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처럼 비록 하찮아 보이는것이라도, 그것이 죄와 연결될 때에는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바울의 가르침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 정확한 표현은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알 것이라'이다. 그리고 여기서 '알다'( , 야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알리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결정하리라'(NEB,I will determine what to do to you;NIV,I will decide what to do with you)로 번역하였는데 이러한 번역이 보다 자연스러워 보인다.
======33:6
호렙 산 - '시내 산'과 동일 지명으로(신 4:10-15;왕상 8:9)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거주하였던 장소를 가리킨다(19:2).보다 자세한 내용은 3:1 주석을 참조하라.
=====33:7
장막을 취하여...회막이라 이름하니 - '회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 )는 '회집(會集)의 장소', 즉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장막이란 뜻이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족속들이 그들의 신으로서 어떤 가견적 형상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영향받은 이스라엘 민족도 눈에 보이는 어떤 신앙의 상징물을 절실히 요구했을 것이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후 모세는 시내 산상에서 계시받은 성막(25:9)을 짓기 전, 그 성막의 역할을 대신할 임시 장막의 필요성을 긴급히 느꼈는데, 이에 그는 이스라엘 진 바깥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을 일컬어 회막이라 명명한 것이다(Rosenmuller). 한편 이 명칭은 후에 세워진 정식 성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30:18,26;39:32;40:2,34). 여호와를 암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 회막이 진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진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 회막이 진 바깥에 있게 됨에 따라 진은 회막과 구별되는 세속적인 곳, 즉 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진으로부터 나와 회막으로 나아가야 하는 수고가 요구되었다.
======33:8
일어나...서서 - 이것은 존경과 경외를 나타내는 동작으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는 이를 듣는 백성들이 모두 일어섰다(신 27:12,13;느 8:5,7).
=====33:9
구름 기둥 -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상징물이다. 자세한 내용은13:2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세가 진 밖에 설치한 회막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지시하신 정식 성막(25:1-31:18)이 아니고 금송아지숭배 사건 후 임시로 지은 것인데.여기에도 구름 기둥이 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지은 회막 가운데라도 임재하셨음을 나타낸다.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참으로 섬기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장소를 막론하고 찾아와 함께 해주심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 한 내적신령과 진정부터 갖추어야 하겠다(요 4:20-24).
=====33:10
모든 백성이...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 이 구름 기둥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앞서가며 인도하던 것이다(13:21,22). 따라서 백성들이 비록 멀리 떨어져서나마 그 구름 기둥이 다시금 회막 위에 나타난 것올 보았다는 것은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 여기서 '경배하다'의 '솨하'( )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에도 똑같이 사용된 말이다(32:8; 숭배하며).즉 그들은 하나님(4:31)->금송아지->다시 하나님의 순으로 경배의 대상을 달리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회막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며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7절).
====33:11
친구( , 레에) - '친구로서 대우하다', '우정을 맺다'라는 뜻의 '라아'에서 온 말로 특히 '남자 친구', '동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당신의 동료로 대하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이 '친구'로 칭하신 사람으로서는 모세 외에 아브라함이 있으나(대하 20:7;사 41:8)이때 사용된 '벗'( ,아하브)은 '애정을 갖다', '좋아하다'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사랑스런 친구', '애인' 등의 의미를 갖는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스런 벗으로 대한데 반해, 모세는 동료로서 대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환'(히 3:5)이라고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면하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님 엘 파님'( )의 문자적 뜻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face to face)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하나님이 실제로 모세와 얼굴과 얼굴로 대면한 것을 가리키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우림 혹은 선지자를 통해(삼상 28:6)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데 비해,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인간과 같은 손발이나 얼굴 등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20절;딤전 6:16). 따라서 이 말은 그 만큼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교제를 나눴다는 뜻이다. 실로 모세는 다른 어떤 선지자들도 누리지 못할 영광스럽고 친밀한 교제를 하나님과 누린 자였다(민 12:8).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롤 담당하지 않고 이처럼 여호수아가 관리한 까닭은 회막이 임시 성소이기 때문이며 (1) 아론은 금송아지 숭배의 직접적인 책임자(32:1-6)이기 때문에 일종의 문책으로 당분간 제사장직을 맡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 이후 이스라엘을 이끈 에브라임 사람 여호수아(민 13:8,16)가 회막을 떠나지 않고 봉사한 일은, 엘리 이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에브라임 출신의 사무엘이 성소를 나지 않은 사실(삼상 1:1; 3:3)과 유사하다. 이처럼 두 사람이 다 같이 성소를 떠나지 않고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자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부터 훈련되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청년 여호수아 - 이 무렵 여호수아의 나이는 39세 가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수 14:7). 그런데 '청년'이라는 말이 굳이 '여호수아'를
=====33:12
나와 함께 보낼 자( - ,아쉐르 티쉘라흐 임미) - 여기서 '쉘라흐'는 '보내다'는 뜻 외에 '임명하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나와 함께 (당신이) 임명할 자' 혹은 '나에게 (당신이) 보낼 자'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모세는 출애굽 역사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임명한 동역자였던 아론(4:14-16)이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데 따라 하나님께 새로운 동역자 내지는 조력자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여호수아를 후계자와 동역자로 세워 주셨다(민 27:15-23). 그런데 혹자는 이 말을 하나님이 여러차례 언급하신 '사자'(2절;23:20;32:34)를 보내달라고 간구한 것으로도 이해하는데, 전후 문맥 관계상 전자(前者)의 견해를 취하는 편이 무난하다.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여기서 '지시하다'란 원어 '야다'( )는 '대답하다', '알리다'(알게 하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알려주지 아니하시나이다'로 번역하면 원문의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다.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 직역하면 '이름에 의해(이름으로) 너를 안다'이다. 이처럼 이름을 안다는 것은 서로가 전인격적으로 아는 친숙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Keil).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특별한 교제를 나누고 계심을 의미한다. 한편 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20:7 주석을 참조하라.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 직역하면 '너 역시 내 눈에서 은혜를 찾았다'로, 여기서 '눈'을 뜻하는 '아인'( )에는 '만족하다', '기쁘게 하다', '좋게 생각하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틀 나누며 또한 그분에게서 이러한 '은혜'까지 발견했다는 것은 매우 큰 은혜를 입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향해 노를 발하셨으면서도(4:14), 친구처럼 대면해서 이야기할 만큼(11절) 큰 은혜를 입었다.
======33:13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 앞절의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란 말과 같은 뜻이다. 주의 길 - 칼빈(Calvin)은 이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풀핏 주석(Pulpit Commentary)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각기 이해하고 있다. 내게 보이사 - '내게 알리사', '내게 깨닫게 하사'란 뜻으로 앞 절의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에 대응하는 말이다. 이 족속( , 하고이하제) - 정확히 번역하면 '이(하제) 민족(하고이)'이다. '민족' 또는 '나라'를 뜻하는 '고이'에 정관사(하)가 붙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강조하는데, 특히 방금 전까지 죄를 지었던 민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 모세를 향해 '네 백성'이라고 하여 이스라엘과 관계 단절을 선언한 하나님(32:7)께 모세는 재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여기다'에 해당하는 '라아'( )는 '고려하다', '숙고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로 비록 죄를 지어 계약을 파기한 '그 민족'(하고이)이지만 다시 고려해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재심 청원(再審請願)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33:14
내가 친히 가리라 - 문자적으로는 '내 얼굴이 갈 것이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내 존재가 갈것이다'(My presence will go)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이 아름답게 서로 어우러져 다시금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음을 암시한다.
너로 편케 하리라 - 직역하면 '너를 쉬게 하리라'이다. 이는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을 인도해 가심으로써 모세의 수고를 덜어 주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가나안 입성까지의 이스라엘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 사역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
======33:15,16
하나님의 약속(14절)에 근거해 모세가 백성들 전체를 확신시킬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증표를 요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주의 백성을...구별하심이 - 주의 백성된 자들의 가장 큰 증거는 구별됨이다(롬 1:6,7).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됨이며 또한 어두움, 사망,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구별됨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이 가능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어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요 16:33). 즉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순전히 하나님이 덧입혀 주시는 권능 때문인데 이는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33:17
이 일도...하리니 -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모세와 같이 언약 백성(32:13)으로 인정하여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다.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 12절 주석 하반부 참조.
======33:18
주의 영광 - 이것은 지금까지 나타난바 있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영광의 모습3:2;24:15,16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과 본체의 모든 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영광된 모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단지 그 영광의 잔영만을 보여 주시었다(23절).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성을 감안한 은혜스런 조치였다(20절).
=====33:19
모든 선한 형상( - , 콜투비) - 원문상으로는 '형상'이란 말이없고 '나의 모든 선함'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본체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이름을...반포하리라 - 여기서 '반포하다'란 원어 '카라'( )는'선언하다', '선포(공포)하다'는 뜻으로 '자신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다'는 의미이다.따라서 본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리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거룩성 또는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의미이다(34:6,7). 왜냐하면성경에 기록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특성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때문이다(20:7).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은헤를 베풀다'(begracious)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하난'( )은 '호의를 베풀다', '은혜롭게대하다'는 뜻으로 윗 사람이 아무런 자비도 요구치 않는 아랫 사람에게 '자발적으로베푸는 은혜'를 의미한다(Wycliffe). 따라처 은혜를 받는 사람보다는 은혜를 베푸는측에 더 강조점이 주어지는데, 성경에서는 이 동사의 주어가 대부분 하나님으로 나와있다. 한편 이 동사로부터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파생되었는테 대표적인 것이 '요하난'(남자 이름)과 '한나'(여자 이름)이다. 그리고 서구의 이름중 '죤'(John), '요한'(Johann), '쟝'(Jean), '얀'(Jan), '후안'(Jaan) 등은 '요하난'으로부터, '앤'(Anna),'낸시'(Nancy)등은 '한나'로부터 파생한 것이다. 긍휼히 여길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성경에서 '자비를 베풀라', '측은히 여기다'란 뜻의 동사 '라함'( )의 기본 의미는 '귀여워하다', '사랑하다'이다. 따라서 선지사 이사야는 젖먹이에 대한 어미의 사랑을 언급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고(사49:15), 시편 기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시 103:13). 이 단어는기본적으로 (1)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맺고 있는 강한 결속의 개념(시 103:13)과 (2) 본절과 같이 무조건적 사랑의 개념을 합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33:20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이것은 죄인된 인간이, 즉 타락 후 죽을 수 밖에없는 육신( , 바사르; ,사륵스)을 덧입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체적 속성상 우러나오는 그 거룩하신 영광의 빛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딤전6:16).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스스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사실(사 6:1-5)은 이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경상 하나님을 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 표현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 혹은 그 상징적 형태를 보았다는 뜻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체(18절)를 보았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3:21
반석( , 추르) - 본래 의미는 '절벽'이며 일반적 의미는 '바위'인데 상징적으로 '피난처'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세를 '반석'에 두겠다는 것은 상징적으로는 피난처에 숨기시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성경에서 '반석'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는데(신 32:15;삼상 2:2시 89:26),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피난처이자 구원하는 능력이심을 나타낸다.
======33:22
두고( , 사므티카) - '두다', '놓다', '돌보다'는 뜻의 동사 '숨'( )의 미래형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위 틈에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시겠다는 의미이다. 덮었다가( , 사코티) - 기본형 '사카크'( )는 '울타리를 두르다','뚜껑을 덮다'(25:20), '방어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직접적 현현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의 영광의 형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손수 지켜 주시겠다는 의미이다.
======33:23
거두리니 - 이에 해당하는 '수르'( )는 '떠나다', '피하다', '물러나다','제거하다'는 의미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잔재를 볼 수 있도록 특별 보호 조치를 잠시 해제하겠다는 뜻이다. 내 등을 볼 것이요 -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18절). 그것은 하나님의 현재적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 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죄인된 사람은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는 볼 수 없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反影)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등을 볼 것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의미인테 이는 인간이 그분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기 '등'(back)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간 반영(反影)을 표현한 말이다.
32장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었던 언약을 무의미하 게 만들어 버린 중대한 범죄였다. 물론 레위인들에 의해서 민족 청결 작업이 진 행되기는 했으나(32:25-28) 하나님 편에서는 그 범죄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 으셨던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본장에는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치 않을 것이 천명되어 있다(1-6절). 그러자 택한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익히 알고 있던 모세가 동행 거부 명령의 철회를 위해 진 밖에다 장막을 치고 거기서 끈덕지게 간구하는 장면이 묘삭되어 있다(7-16 절). 그리고 이러한 간절한 중보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동행을 재허락하시고 또한 언약의 회복을 약속하시는 은혜스런 모습이 그려져 있다(17-2 3절).
결론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동행 거부 선언은 그들을 향한 영원한 포기 선언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동행 거부는 그들 의 죄악을 반성하고 청산하라는 경고의 표현이지 결코 그들에 대한 사랑의 포기 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시 고 그들의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시며 끝내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사랑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게 하신다. 이같은 하나님의 집념 때문에 허물로 짐철된 우리 도 끝끝내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1. 동행을 거부하시다(33:1-6)
우상 숭배의 여파는 동족에 의해 동족이 살해되는 비참함 외에(32:25-35)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출애굽때부터 계속적으로 이스라엘과 동행하셨던 하나님의 동행 거부 선언이라는 최악의 상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즉 이스라엘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 단정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동행할 경우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1-3절). 그와 더불어 그들이 지닌 우상의 흔적인 장신구<5절 주석>를 제할 것을 명하셨다(4-6절).
이러한 본문의 결별 선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1)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있는 인간과는 결코 교제하지 않으신다. (2) 범죄 한 영혼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의 내면과 외면에서의 죄를 청산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징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인을 진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회개시켜 당신의 품에 두시려는 것이다(히 12:5-13).
2. 만남의 장막에 들어간 모세(33:7-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진노의 표시로써 그들과의 동행을 거부하셨다(1-6절). 따라서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애굽 에서 시내 산까지 인도되었으나 이제부터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 는 고독한 무리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모세는 본문에서 보듯이 성막(25:8,9)과는 별개의 것으로 진 밖에 희망을 마련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기에 이른다. (7,9절). 그런데 이 기도는 모세 혼자만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뢰하는 자들과 더불어 행한 합심기도였다.(8,10,11절). 그리고 그 합심 기도 의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동행 거부의 철회라는 은혜로운 응답을 받게 된다(17절).
이처럼 모세와 경건한 무리들은 비록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일 이었지만 그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더불어 사는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동행과 가나안 땅에의 약속 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 다. (1)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해야 할 문제는 하나님과의 동행(교제)이다. 이것 없이 얻어지는 복과 번영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를 해롭게 한다. (2) 뜻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합심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크다(마 18:19; 약 5:16).
*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회막.
모세는 하나님의 의견을 끊임없이 묻기 위 해 진 밖에 장막을 쳤다. 즉 성막 건설에 대한 규례가 이미 주어져 있긴 하지만(25-27,30) 아직 성막을 건설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임재할 임시 장막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호화스럽지 도 않으며, 백성들이 거주하는 장막과 별다를 것이 없는 이 장막을 기쁘게 받 으시며 당신과 백성과의 만남의 처소로 인정하셨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신령과 진정으로예배하는 곳'(요 4:24)이 성전이라는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당신 앞에 무릎꿇는 겸손한 마음으로 세운 장막을 기뻐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거룩성과 절대성 등을 반영하는 복잡한 구조의 성소가 몇날후 세워졌지만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성소에 서 원하신 것도 역시 인간과 친구처럼 대면하는 진실한 교제였다.
한편 이러한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최대로 반영된 것이 임마누엘(마 1:23)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성육신(Incarmation)하 셔서 이 땅에 거하시면서(요 1:14) 천한 자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또한 범죄한 인류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가교 (架橋)를 위해 당신 의 몸을 친히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다. 그 때문에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긴밀히 친교할 수 있다 (히 7:23).
*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통로인 기도.
다정한 벗과의 만남은 스스럼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없이 편하다. 즉 불신의 장벽이 제거되고 따뜻한 친분만이 있기에 이 만남은 어느 누구나 기다려지는 만남이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하나 님과의 교제를 스스럼 없이 맺는 것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대하는 바이 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간 위에 초월해 계신 두려운 존재, 인간과 교제할 수 없는 절대자로만 이해하는 인간은 결단코 그 같은 친밀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감각적이고, 실체를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실증적 사고를 가진 자에게 있어서 기도는 단순한 독백으로 여겨질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하 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인식이나 체험이 없기 때문에 기도가 기복적이고 주술적 인 독백으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대화이며, 영혼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에너지 원(源)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영적인 것이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입술만의 놀림이 아니라 마음으로 호소하고 이해하며 영으로 수납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내용을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도 표면적 이해보 다는 깊은 내면의 교류에 의해 관계가 깊어지듯이 기도는 영혼 깊숙히에서 울려 나오는 진실한 언어이어야 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 또한 기도는 이론적이거나 학술적인 대화가 아니라 진실한 고백이며 체험이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자가 그 기쁨을 논할 수 없다. 하나님과 직접 주고 받는 대화임을 깨닫지 못한 자에게 아무리 기도의 필요성을 말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을 알아도 그것은 지식적인 것일 뿐이지 전인 격적이고 경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힘이 없는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대화, 곧 기도이 다.
3. 모세의 인내와 하나님의 회복 선언(33:13-23)
본문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회막에서(7-11절) 모세가 드린 간절한 중 보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응답이 그려져 있다.
즉 경건한 무리를 대표한 모세는 하나님의 동행 거부에 대해,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구별하신 구원 행동과는 정면 배치된다는 사실을 들어 동행 거부 선언을 철회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12,13,15,16절). 이에 대해 하나님은 동행에의 약속(14절)과 언약 백성으로서의 회복(17절)을 약속하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심을 확신했던 모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실 것을 요청하게 된다(18절).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품성을 스스로 계시하신 후 그 영광의 광채를 목격하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19-23절).
이처럼 하나님과 모세는 중보 기도를 통해 더욱 성숙한 관계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문에 언급된 모세의 항변은 인간적인 항의가 아니라 약속에 대한 신앙 고백이며 확신의 표현이다. 또 모세는 하나님의 대답이 있기 까지 간구했으니 이러한 끈기는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깊이 인식하 고 있었음을 확실히 증명해 준다. 이처럼 모세의 기도는 생명을 돌보지 않은 이타적인 기도이며,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생명력 넘치는 기도였다. 이러한 끈질긴 기도 끝에 마침내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은총이 찾아들었다. 멸망으로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 새 희망의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참된 신앙에 기초한 인내의 기도는 인간의 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약 5:7-11).
*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
죄로 오염된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의 실체를 목격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익히 알고 계신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써 인간에게 간접적으로 당신의 실존을 계시하신다. 이에 대해 하 나님의 실체를 보길 원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드러난 영광을 온갖 인위적 표현 으로 묘사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신성(神性)을 묘사할 수 있을 만큼의 사고와 언어를 지니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인간이 본 가 장 완벽한 실체인 인간 스스로의 신체적 특징에 하나님을 동일하게 묘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는데, 이를 '신인 동형 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 현이라고 한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묘사로써 얼굴, 손바닥, 그리고 감정 등 인간의 이해와 언어 감각으로 표현한 것들이 성경에 많은데 이것은 하나님의 실체를 사실적으 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한 인간의 신앙 고백이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앙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하신 말씀이란 점에서, 각 부분에 묘사된 이러한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전제하지 않을 수는 없다. 즉 하나님은 제한된 이성을 지닌 인간도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끔 스스로를 인간적 언어를 빌어 계 시해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와 그분을 향한 인간의 열정이 빚어 낸 이러한 문학적 표현은 영광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린 신앙의 소유자들에게 하나님 이해에 대한 운신(運身)의 폭을 넓혀 준다. 그러나 이 표현은 하나님에 관하여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사항을 이해시켜 줄 뿐이다. 결국 표현 할 길없는 하나님의 더욱 크신 신비에 관해서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적 이해와 결단이 촉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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