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 -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시내 산에 오르내린 기록에대해서는 19:16-25 강해, '시내 산과 모세'를 참조하라. 더딤 - (* ,보쉐쉬). '지연되다', '연기하다'는 동사 '보쉬'(* )에서 유래한 말로 '창백하다','부끄러워하다','실망하다','당황하다'란 뜻이다. 이는 모세의더딤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 상태가 잘 암시되어 있다. 모세가 백성들과 헤어져 시내산으로 들어간 지 어언 40일이니(24;16,18) 모세를 절대적인 지도자로 알고 그에 전적의존하던 백성들에게는 이 기간이 상당히 오랜 날로 여겨졌을 것이다.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 아론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켰으며 (4:29;5:1) 모세의 대변인으로(4:14-16,20;16:9,10) 모세와 함께 행동했다(24:1). 또한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산의 정상에 들어갈 때 그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지명(24:14)했기 때문에 모세가 없는 상황에서 이제 백성들은 아론에게 새로운 '지도체제'를 요구했다. 우리를 인도할 신 - 백성들이 요구한 것은 '눈에 보이는'신이었다. 오랜 기간 애굽 생활을 통해 그들은 가시적(可視的)인 우상들만을 접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invi-sible)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형상을 만들지 말것'(20:4)을 강력히 말씀하셨는데 백성들은 이러한 고차원의 신앙을받아 들이지 못한 것이다. 실로 그들은 보고서야 믿는 자들로, 보지않고 믿는 자들의수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었다(요 20:29). 한편 여기서 '신'으로 쓰인 단어는 '엘로힘'(* )으로 직역하면 '신들'이라는 뜻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백성들이 애굽의 다신(多神)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보여 준다<32:1-6강해,애굽의 우상종교>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 -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낸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모세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모세는 자신들이 직접 대면했기 때문에 바로 그가 자신들을 인도해 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신앙에 견고히 서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언약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3:6-8,16,17:창15:8-21;17:7). 모세는 단지 그 같은 사역에 쓰여진하나님의 도구에 불과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미처 이같은 사실을 바로 깨닫고있지 못했던 것은 후에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결정적인 원
그들에게 있어서는 '전능한' 신의 개념이 없었고, 단지신은 유한하고 비(非) 전능한 것으로 생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바로알지 못하고,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호 4:1,6)이모든 것에 앞서야 함을 새삼 교훈해 준다.
=====32:2
금고리 - 이것들은 이스라엘 벡성들이 출애굽할때 애굽인들로부터 받아낸 것들이다(3:21;12:36). 당시 하나님께서 이 같은 패물을(애굽 사람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주신 이유는 성막과 그 기구를 만드는 데 쓰기 위함이었다.그러나 백성들은 오히려 이를우상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한편 오늘날도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 복을 이처럼 엉뚱한 데 오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32:3
모든 백성이...가져 오매 - 아마 아론은 신을 만들어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1절)를정면으로 거부하지는 못하고, 대신 그들에게 귀중품을 가져오도록 요구함으로써 패물에 대한 그들의 애착심을 자극, 스스로가 우상 만드는 것을 단념토록 꾀하였을 것이다(Augustine). 모든 인간 특히 여자들은 금, 은, 보석과 각종 장신구에 대한 애착이 강하니 이러한 아론의 계책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러나 아론의 이러한 얄팍한계략은 백성들의 의외의 행동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32:4
각도로 새겨 - 분명 이 기술은 애굽에서 배운 것일 것이다. 당시 애굽에는 이러한조각술과 공예술 및 주조술(鑄造術) 등이 매우 뛰어났었다. 송아지 형상 - 당시 애굽에서는 황소 형상의 아피스(Apis)를 비롯, 인간의 모습을가진 프타(Ptah)와 오시리스(Osiris), 악어의 머리 형상을 가진 소보크(Sobok), 매의머리를 가진 호루스(Horus)와 라(Rah) 및 수양의 머리 모습을 한 아문(Amun)등을 주요신으로 섬겼고 이외에도 태양과 나일 강 등 자연도 숭배하였다 <32:1-6강해, 애굽의우상 종교>. 여기서 이스라엘 벡성들이 만든 송아지 형상은 애굽의 우상 아피스(Apis)본뜬 것이 분명한데, 그들은 이 송아지를 여호와의 형상으로 알았던 것이다(5절).따라서 이 금송아지 우상은 그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나타난다 (왕상 12:28; 대하 13:8; 호 10:5) 아뭏든 이처럼 그들이 하나님을 송아지로 형상 화한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송아지의 차원으로 격하시켰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어떠한형상이든 만들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20:4), 사람들이 바로 이와 같이 그 형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누를 범하기 때문이다. 너희 신이로다 -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다음 몇가지로 지적할수있다. (1) 하나님은 지금 시내 산에서 모세와 만나고 계시는데 다시 신을 만든 점(19:20;24:12-8). (2)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도 우상을 만들었다는 점(20:4,5). (3) 애굽에 임한 10대 재앙시 애굽의 모든 우상들이 깨뜨려지는것을 눈으로 똑똑히 목도하고서도<12:29-36강해, 여호와의 3대 재앙>다시금 신을 만들어 구속주 하나님을 배반한 점(7:14-12:36) 등이다.
=====32:5
여호와의 절일(* ,하그라야웨) - 여기서 '하그'는 '축제' , '절기'라는 뜻으로 이 부분을 직역하면 여호와께 축제(의날) 란 말이 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유월절이나 초막절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여호와, 즉 금송아지에 대한 축제의 날을 의미한다. 고대 이방 종교의 축제는 음주,가무(歌舞) 및 부도덕한 성행위로 이루어졌는데, 애굽 생활에서 이런것들을 익히 보았던 백성들은 여호와의 절일 이라는 말을 이와 관련하여 이해했음이 틀림없다.한편 본절 초두의 '아론이 보고'라는 말은 수리아 역본(the Synriac Peshitta)에는 '아론이두려워하여'로 되어 있다. 즉 아론에게 새로운 지도 체제(새로운 신)를 요구하는 백성들의 기세가 폭력으로 연결될 기미가 보이자, 아론은 지금까지 억제해 왔던 환락을 여호와의 절일'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함으로써 이를 무마시키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도 환락허용이라는 일시적 방편으로 순간의 위기를 넘기려 하는 술수가 정책적 차원에서 실시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불만이나 정당하지 못한요구를 역시 정당하지 못한 출구를 통해 배출하려는 시도는 궁극적으로 나라를 망치는망국 행위이기 때문이다.
======32:6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 이양 제사에 대하여서는 20:24 주석을 참조하라.
먹고 마시며...뛰놀더라 - 이방 종교 축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난잡한 성행위가 수반되는데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에서 이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뛰놀았다'고 하는 '차하크'(* )는 (흥겹게 떠들며) '놀다'는 뜻인데 이는 곧 육체적 환락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당시 이방 종교에서 황소신은 '힘'과 '생산'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 형상 앞에서 '뛰노는' 것은 곧 성적으로 타락한 행동을 의미한다.
=====32:7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19:5-8)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Jerome). 이에대하여 카일(Keil)과 같은 학자는 모세가 백성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단지 이렇게 불렀다고 주장하나 다른 곳에서는 이와같이 부르지 않음을 볼 때 그의 견해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리고 칼빈(Calvin)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느끼고, 그 죄책(罪責)을 슬퍼하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불렀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백성'이라고 하셨으나, 모세는 이를 다시 '주의 백성'으로 '변경'시키고 있다(11절). 부패하였도다(* ,쉬헤트) - 기본 어근 '쇠하트'는 '부패하다'는 뜻과 함께'망하다', 그르치다는 뜻이 있으며 '잃다','낭비하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곧 이스라엘 백성이 단순히 타락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쳤다는 뜻이며, 따라서 이제는 망하게 되었다는 강한 의미를지니고 있다.
======32:8
떠나 - '떠나다', '피하다"는 뜻의 동사 '수르"(* )는 '외면하다', '반역하다'는 의미도 지닌다. 따라서 '길을...떠나'는 '길을...외면하여', 혹은 '길을(에)... 반역하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백성이 정로(正露)에서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했음을 가리킨다. 숭배하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하'(* )는(공경의 표시로)'엎드리다','절하다'는 뜻인데 특히 몸이 땅에 닿도록 엎드리다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경배(예배)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일찍이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하나님의 뜻을 전했을 때, 백성들이 하나님께 경배했는데(4:31), 그때 '경배하다'는뜻으로 쓰인 단어 역시 '사하'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경배의 대상을 하나님에서이제 송아지로 바꾸었음을 보여 준다. 이같은 경우를 가리켜, 성경은 영(靈)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친다고 표현하였다(갈 3:3)=====32:9
목이 곧은 - 이 말은 원래 농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나 말에게 쓰이던 표현으로성경에서 고집이 세고 악한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로 사용된다(34:9;신9:6;왕하17:14;대하30:8;느9:16;렘7:26;행7:51). 여기서도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따르지않는 이스라엘의 상태가, 마치 농부의 말을 듣지 않는 우직한 소나 말과 같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후일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직접 소와 나귀에 견주어서 질책하기도 했다(사1:3).
=====32:10
나대로 하게 하라(* ,하니하 리) - '하니하'는 '정착하다', '쉬다','놓아두다'.'내버려두다'란 뜻의 동사 '누아흐'(* )의 미완료형으로 이를 직역하면 나를 내버려두라' 혹은 '날 쉬게 하라'가 된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KJV, NIV)은'날 내버려 두라' 혹은 '날 혼자 있게 하라'(let me alone)로 번역하였다. 이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관계를 갖지 않으시겠다는 절교 선언이다.즉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과 '함께'(together) 하셨지만, 이제부터는 그 관계를 끊어버리시고 '홀로'(alone)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것은 곧 영원한 형벌과 죽음만을 의미할 뿐이다.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 이 약속은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인데(창12:2;18:18) 이스라엘이 계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철회하고 대신 모세와 새계약을 맺으려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의 '나라'와 창12:2의 '민족'은 모두 '고이'(* )를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동일한 내용을 모세에게도약속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이 제안은 모세에게 매력적인 '유혹'으로 작용 할 수 있었는데. 만일 이 제안이 모세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면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아닌 '모세의 자손'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을 것이다(Keil). 또한 이것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롬 4:3) '믿음의 후손'이 아니라,모세의 율법을 지켜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율법의 후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모세에게 이후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과성격을 결정짓는 중대한 제안을 하고 계신 것이다.
=====32:11
하나님의 제안에 대해 모세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면서, 대신 백성을 위해'중보 기도'를 드린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소돔의 멸망 직전에 그들을 위해 중보 역할을 한것과 유사하다(창18:20-33). 한편 모세의 호소 속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담겨있다. 즉 (1)이스라엘을 구원해 놓고 다시 멸망시킬 수는 없다. (2) 이방인(특히 애굽인)에게 놀림감이 된다(12절). (3)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셨던 약속을 지키셔야 한다(13절) 등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가운데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해오신 바 당신의 후회 없으신 사역에, 두번째는 그 누구도 업신 여기지 못할당신의 영광스러운 성호에, 세번째는 무조건으로 베푸시는 당신의 은혜로우신 성품에각각 호소한 것이다. 구하여 가로되(* ,예할) - '예할'은 '할라'(* )의 강조 형태로 '간구하다', '간청하다'는 뜻이며 여기에서 '기도하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슬프게 하다', '아프게 하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백성들을 위한 모세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만큼 간절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이 중보 기도를 통해 당신의 뜻을 돌이키셨다(14절). 주의 백성 - 이것은 모세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세운 언약(창17:6;26:4;28:14;35:11)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이 범죄하였지만 여전히'주의 백성'임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7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네 백성' 이라고말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32:12
노를 그치시고 - '그치시고'에 해당하는 원어 '슈브'(* )는 '멈추다','돌이키다','취소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당신의 진노로부터 돌이켜서'이다. 즉 모세는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을 취소하도록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뜻을 돌이키사 - 여기에 사용된 원어 '나함'(* )은 본래 '한숨 쉬다',는 뜻인데 함축적으로 '뉘우치다', '후회하다', '동정하다', '위로하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뜻을 돌이키사...화를 내리지 마옵소서'는 '주의 백성을 동정하사 부디(제발)화를거두어 주소서'라고 번역할 수 있다.
=====32: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 하소서 - 여기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야곱)은 일찍이 선민을 대표하여 삼위일체 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언약을맺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이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이 그들의 언약 후손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진노하여 이들을 멸망시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 스스로도 이들 조상에게한 약속을 깨뜨리는 셈이 된다(창 12:2;15:14-16;26:3,4;35;9-15). 모세는 바로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주를가리켜(* ,라혭 바크) - 문자적으로는 '당신에게(라혭) 당신 스스로(바크)'라는 뜻이다.히브리인들은 맹세할 때에 몇 가지 공식적인 어구를 사용했는데가장 대표적인 것이 '명예를 걸고 말하거니와'라는 형태이다.이런 맥락에서 당신의 명예보다 더 큰 이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가리켜 멩세하노니'(창22:16;사45:23;암6:8), 또는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겔17:19)라고 맹세하셨다. 한편이러한 맹세에는 그 맹세를 지키지 않을 경우 당할 징벌이 명시되기도 하는데,고대 근동인들은 동물을 두 조각으로 갈라 계약(맹세) 당사자가 그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맹세를 범한자는 이 짐승처럼 두 조각이 날 것이라는 표증으로 삼기도 하였다. 따라서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을 때에도 이와 같은 의식으로 행했는데(창15:9-17), 모세가 '주를 가리켜'라고 말함은 바로 이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 모세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중보 기도 하고있다. 이와 같이 언약에 근거하여 중보 기도하는 모습은 후일 솔로몬에게서도 찾아 볼수 있다(왕상8:22-26),따라서 우리 신약의 성도들도 예수께서 세우신 언약에 근거하여(히6:13-8)담대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 기반을근거로 맹세하신 모든 언약들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한 영원 불변한 것이기 때문이다(히6:13-18). 허락한 - 원문상으로는 '내가 주겠다고 말한'이다.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 직역하면 '그들이 그것(땅)을 영원히 소유하리라'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셨고(창 13:14-7), 이 약속을 이행하기위해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셨다. 만약 하나님이 그들을,멸망시키면 그 땅은 이방인의 소유가 되고 말 것이므로 모세는 지금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성품을 근거로 해서 모든 가능한 이유를 들어 가며 간
=====32:14
뜻을 돌이키사(* ,이나헴) - 이말이 12절에서는 '노를 그치시고'로 번역되었다. 또한 이 말은 '후회하다'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성경에는 하나님이 몇 차례'후회하신' 기록이 나타나 있다(창6:6;대상21:15;렘26:13;암7:3;욘3:9).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변개(變改)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속성(말3:6;시102:27)과 모순되지 아니한다. 실로하나님은 그 속성상 일의 동기와 목적과 약속에서 불변하신 분이시다. 다만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표현들은 참고 참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의인적(擬人的)으로 표현한 말일 뿐이다. 그처럼 하나님은 마땅히 내려야 할 벌을 말씀하시고서도 이를 '후회하실' 정도로 자비로운 분이심을 알 수 있다.
=====32:15
돌이켜(* ,이펜) - 즉 '방향을 바꾸다'란뜻이다 그리고 동사 '파나'(* )의 기본 뜻은 '향하다','대면하다'인데 이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던 모세가(백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하나님의 보장을 받고 다시 백성과 대면하게 된 것을 뜻한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산위에서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자 산 아래로 내려가지않고 그대로 머물려고 했는데(눅9:28-33), 모세의 태도는 이와 대조 되는 것으로 백성에대한 책임과 관심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은혜의 '산 위'에만머무를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산아래'를 향해 돌이키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증거의 두 판 - 즉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가리킨다(31:18). 그런데 십계명'을'두돌판'에 써 주신 하나님의 경륜 속에는 '10'이란 숫자가 지니는 '완전성'( 完全性)과 '2'란 숫자가 지니는 증언성 (證言性)이 분명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신4:13). 판의 양면 이편 저편 - 판의 양면, 즉 판의 앞뒤로 글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판의 한면에 글이 새겨져 있던 당시의 비석들과는 다름을 보여 준다. 이는 사람이 만든 법을새긴 비석임을 시각적으로 알게 하는 것이다. 한편 두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 구분법에대해서는 신4:13 주석을 참조하라.
=====32:16
하나님이 만드신것(* ,마아쉐 엘로힘) - 마아쉐 는 아솨 (만들다)의 명사형인데 활동 , 노동 이라는 뜻이 있으며 특히 (공들인)'작품'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따라서 증거의 돌판은 하나님께서 '수고해서' 만드신 '작품'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후에 나타나는 모든 법과 사상들이 성서에서 출발하였고, 이 성서 가운데최초로 기록된 형태가 곧 십계명 임을 생각할 때 이 증거의 판이 갖는 의미는 실로크다 하겠다.
=====32:17
여호수아 - 모세와 함께 산중턱까지 올라갔던 일행 중(24:1) 모세가 산으로 들어갈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수행했으며(24:13) 다른 사람들이 모두 산 밑으로 내려갔을때에도 모세가 돌아오기 까지 산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자이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진 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세가 산 정상에서 이미 이스라엘 진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음(7절)을 감안할 때 지도자로서 두사람의 역량이 비교된다<17:9>. 싸우는 소리(* ,콜 밀레하마) - '전쟁(밀레하마)의 소리(콜)' 라는 의미이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돌아올 때까지 진에 내려가지 않고 산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전쟁이 난 줄로 생각했다. 즉 다른 부족이쳐들어와서 전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32:18
승전가...패하여 부르짖는 소리 - 원문에는 '승리하여 외치는 소리... 패배하여 외치는(부르짖는) 소리'로 대구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 군대가 홍해에서 전멸되자 '승전가'를 불렀던 일이 있었다(15:1-21). 그리고 반면출애굽 전야에 있었던 애굽 사람의 호곡(12:30)은 하나님과 바로의 대결에서 애굽이'패하여 부르짖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 산 밑에서 들려오는 백성들의 떠들썩하고 크게외치는 소리에 여호수아는 혹시 지도자가 없는 사이 이민족이 침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백성들의 상황을 전해들은 모세는 그 소리가 우상을 숭배하는 가무(哥舞)소리인줄 금방 알았다.
======32:19
춤추는 것(* ,메홀로트) - '메홀라'(* )의 복수형이다. 따라서이것은 여러 종류의 춤 혹은 춤 동작의 여러 형태를 가리킨다. 우상 앞에서 춤추는 것은 이방 종교의 전형적인 제의(祭儀)형태를 황홀 상태(ecstasy)에까지 이르러 급기야는 도덕적 가치 판단 능력을 상실하기까지 하는데, 여기에서 성적 쾌락이 일어나게 된다. 지금도 인도 종교에서는 우상 앞에서 춤추는 일이 흔하다. 대노하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하르 아프 (* )를 직역하면 분노가 불타올라'란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진노하셨을 때(10절)에도 쓰인 말이다. 처음에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백성들의 편에 서서 용서를 빌었으나, 막상 백성들의 범죄 현장 보고서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이처럼 화를 낸것이다. 이는 그만큼백성들의 죄가 심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미워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에 대해서 똑같이 미워하고 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들을...깨뜨리니라 -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언약의 법을 받아 내려왔으나 정작 이를 실천해야 할 백성들은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즉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증거 판을 깨뜨림으로써 언약의 효력이 상실되고 파기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 그것은또한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그 법을 따르지 않게 된 시점에서는 더 이상 법이 소용없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세가 깨뜨린것은 법이 새겨진 돌판이며,그 법 자체를 깨뜨린 것은 아니다. 이는 뒤이어 모세가 다시 법을 받으러 산으로 올라갔음(34:4)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돌판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지않고, 모세가 만들어야 했다.
======32:20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금덩어리 자체는 불에 타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나기타 물질로 만든 상(像)에 금을 입힌 것이라면, 부수어 가루를 냈을 경우 충분히 불탈 수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여기에 나오는 금송아지는 겉만 도금한 것인 것 같다(12). 이와 같은 우상 제작 방법은 사 30:22;4:19에서도 확인할수 있다. 한편 이러한파괴 행위는 우상에 대한 응징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만든 우상이 자신도 방어하지 못하는 얼마나 무능력하고 헛된 것인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때에도 이와 같이 우상과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든 일이 있다(왕하23:15). 물에 뿌려...마시우니라 - 금가루를 탄 물이 백성들에게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민5:24)이 됨을 의미한다. 모세 율법하에서 외간 남자와의 부정으로 의심받은 여인은 일련의 조사를 받고 '저주의 물'을 마셔야 했는데(민5:12-24). 이스라엘 역시 지금그의 '남편'이 되신 하나님께 대해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 물은 바로 '저주의 물'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또한 이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선 반드시 스스로 죄값을 담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교훈해 주기도 했다(겔18:2).
====32:21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 여기서 '어떻게'로 번역된 부분은 '무엇을' 이라고 하는것이 보다 정확하다.아마 아론은 백성들로부터 위협은 받았을테지만 실제적인 해악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 모세는 죄의 책임을 백성들에게 묻는 것이아니라 그 지도자에게 묻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의 행위가 전체 구성원들에게미치는 영향 및 책임이 실로 막증함을 알 수 있다. 한편 '2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하타아 게돌라'(* ) 는 '큰 죄'를 뜻하는데, 우상 숭배가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중대한 죄악인지를 시사해 주는 말이다.
====32:22
내 주여(* ,아도나이) - '아도 나이'(나의 주-my Loard)라는 말은 사람들이 종종 하나님께 대해 사용했던 호칭이다. 특히 이스라엘 역사의 후대에 가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직집 부르는 것이 불경하다고 생각하여 '여호와' 대신'아도나이'를 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아론이 모세에게 이러한 호칭을 사용한 것은모세가 그의 형 아론에게 하나님과 같은 권위를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같은 권위는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 이미 허락하신 것이다(4:16) 만일 전체 이스라엘을 이끌어야 할 모세가 육신의 형에게 매이게 된다면 백성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기 어려울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서 가장 대하기 힘든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형으로부터도 권위를 인정받도록 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수 있게 하신 것 같다.이로 볼 때 모든 권위는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오며 또한 그러한 권위만이 참된 권위가됨을 알 수 있다(롬13:1). 이 백성의 악함 - 문자적으로는 '악(죄) 중에 있는 백성'이란 뜻이다. 아론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백성들 편으로 은근히 떠넘기고 있다.
====32:23,24
모세의 물음에 대해 아론은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모세의 물음은 '백성들이 아론에개 무엇을 했는가'인데 아론은 백성들이 악했고 자신은단지 금만 수집했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론은 실제적으로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자신이 그 제사장 역활을 했다. 즉 아론은 소극적으로 백성들의 죄를 묵인, 방조했고 적극적으로는 동조, 협력, 나아가서 그 지도자 역할까지 했던 것이다(Wycliffe). 한편 23절에 나타난 각 구절은 1절 주석을 참조하라. 빼어 내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라크'(* )는 '뜯어내다','부스러뜨리다'.'조각내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백성들은 단순히 금붙이롤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부숴뜨린 상태로 가져온 것이다. 우상 숭배를 위해 백성들은 자신들이갖고 있던 귀금속을 파괴할 정도로 열의를 갖고 있었던 셈이 된다.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 이 말은 아론의 대답 중 결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다. 송아지는 불에서 저절로 나온것이 아니라 실제로 '붓고', '새겨서' 만든 것이다(4절). 하지만 이러한 죄 지은 인간들의 책임 전가와 사실 호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이미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악습이다(창3:12,13).
=====32:25
방자하니 - 이처럼 번역된 히브리어 '파라'(* )의 원뜻은 '풀어놓다','석방하다'이며 이와 함께 '벌거벗기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영어 성경은 이를 각각 다르게번역하고 있는데 NEB와NIV는 '통제를 벗어나 제 멋대로'(out of control)로, RSV는'해이해져서'(had broken loose)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KJV는 원문의 어감대로'벌거벗은'(naked)으로 번역하였고, Living Bible은 이에서 좀 더 의미를 부여한 '간음하니','성적으로 범죄하니'(committing adultery)로 번역하였다. 즉 백성들은 이방 종교의 제사의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상 앞에서 벌거벗고 광란의 축제를 지냈고, 이는 자연적으로성적 타락으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설령 직접적인 성적 타락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이 구속주 여호와를 떠나 이방신을 만들어 우상 숭배를 한 것은 자신들의 영적수치를 드러낸 것임에 틀림없다(렘2:20).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 여기서 '원수'란 특히 애굽 사람들을 가리킨다(12절).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모습은 애굽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껏 자신들의 신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그렇게 출 애굽을 강행하더니, 결국 광야에서 자신들이 섬기는 송아지 신(Apis)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지금 행여 여호와의 영광이 이방인들에 의해 조롱당할까바 그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고 또한 거기에 분노했던것이다.
======32:26
진 문 - 시내 산 앞에서 야영하고 있던 백성들의 진영(19:1,2)입구를 가리킨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 - 직역하면 '여호와를 위하는 자는 누구냐?' 혹은'누가 여호와를 위하는가?'라는 말이다. 즉 모세는 일방적으로 여호와를 위하는 자는나오라'고 하지 않고, 누가 그런 사람인가를 물어서 확인한 다음 자신에게 나오라고하였다. 이는 곧 백성들에게 선택과 결단을 함께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말은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이기도 했다. 따라서 실제로 이에 해당하는 자는 우상 숭배에참여하지 않은 자들 및 비록 우상 숭배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즉시로 그 잘못을 깨닫고회개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레위 자손이다 - 정확히 말하면 레위인들 중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았던 모든 자들일 것이다. 곧이어 이들은 모세의 명을 따라 그들의 이웃과 형제까지 칼로 쳐죽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 일로 간주되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았다(신33:9). 때로 신앙은 이러한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신약 시대에 그리스도께서도 밝혀 말씀 하셨다(마10:37-39). 그에게로 오는지라 -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백성들 앞에 섰다. 따라서 모세 편에 서는 것은 곧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었다.
=====32:27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 말은 후대의 예언자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전형적인 어구이다(사 56:1;66:1;렘10:2;19:1;22:1).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만을 전달했는데, 모세가 이 같은 공식 어투로 말을시작하는 것은 그 역시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이 문에서 저 문까지 - 아마 이스라엘 진은 외부와 차단된 형태였던 것 같다. 특히'문'이라고 번역된 '솨아르'(* )는 '대문', '성문'을 뜻하는데 이로 볼 때 그진은 여러 텐트로 이루어진 일종의 성(城)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마 이것은 광야 행진 중 당할지도 모를 이민족의 습격에 대비키 위함이었을 것이다. 형제 - 육신의 형제가 아니라 같은 이스라엘인을 가리킨다.레위인들이 실제로 형제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그들끼리 먼저 치고 받았을 것이나 그와 같은 일은 없었다. 이처럼 성경에서 '형제'라고 할 때는 대개 친구나 이웃, 동족을 가리킨다(레25:25;왕상12:24;약2:15).
도륙하라 - 이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하라그'(* )는 일반적 의미의 살해보다는 한층 가혹한 '살육하다'란 의미이다. 따라서 모세의 명령은 인정 사정없이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사형' 에 해당되는 죄나 그 기준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도륙"하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아마 모세가 하산해서 금송아지를 불사르고 일련의 문책 조치를 단행할 때,그때까지도 반성의기미가 없이 계속 죄를 짓고 있던 사람들이 도륙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25절).
=====32:28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 이들 죽임당한 삼천 명은 우상 숭배의 주모자급인물들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칼빈(Calvin)도 주장하기를, 처음부터 사태의 현장에 있었던 레위인들은 전체 백성을 우상 숭배로 끌어 들인 적극적인 주모자들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범죄자들을 잔인하리만큼 철저히 응징하는 본 장면을 통해 우리는 피상적이고 감상적인 안타까움을 초월하여 죄,특히 우상 숭배의 죄악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가증스럽고 또 그 결과가 무서운지를 더욱 처절히깨달아야 할것이다. 또한 이러한 행위를 통해 죄악의 뿌리는 호리라도 남겨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아울러 명심해야 할 것이다.
=====32:29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 직역하면 '너희 손을 채우라'(fill)는 뜻이다. 한글 개역과는 달리 명령형의 말인데, 여기서 '손을 채운다'는 말은 곧 제사장적 역할을 뜻한다<29:9>.즉 레위인들이 범죄한 자들을 죽인 것은 그들을 희생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친 것으로 간주되었으니, 결과적으로 레위인들은 제사장으로 위임받은(손을 채운)셈이된다. 복을 내리시라 - 이 복은 곧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어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축복을 의미한다(민1:47-54).
======32:30
올라가노니 - 1차적으로는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출19:16-25강해,시내 산과 모세). 그런데 '올라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 )에서 '번제'를 뜻하는 '올라'가 생겨났으므로, 이 말에는 일종의 제사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 즉 모세가 산에 올라간 것은 백성들을 위한 대속 제사를 드리러 간 것으로이해 할 수도 있다.
======32:31
모세는 이미 범죄한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탄원한 결과 전 백성들을 다진멸하려던 그분의 뜻을 돌이켜 놓은 적이 있다 (14절). 그렇지만 그것은 징벌의 경감에 불과 했지 완전한 사면에 대한 약속을 얻어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모세는 이제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사죄를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32:32
합의하시면...사하시옵소서 - 여기서 '합의하시면'이란 말이 원문상에는 뚜렷하게 나타나있지 않다. 이 부분에 해당하는 원어 '임티사'(* - )는 '만약(임) 용서하십시요(티사)'이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는 '원하시면 용서하십시오' 혹은 '가능하면 용서하십시오'로 되어 있다(If you will, forgive). 따라서 '용서하실 수 있거든...용서하소서' 혹은 '가능하면...용서하소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다. 곧 (1) 하나님께서는 능히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는 권능자이시다 (2) 그러나 죄를 사해 주고 안 사해 주고는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뜻에 달려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죄를 자복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니(사 1:18,19), 우리는 이 약속에 의지하여 그분께 죄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이와 비슷한 기도를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if is possible;가능하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 주의 기록하신 책 - 이 말이 성경 다른 곳에서는 '생명책'으로도 표현되었다(시 56:8; 69:28; 139:16; 단 12:1; 빌 4:3; 계 3:5; 13:8; 17:8; 20:12). 이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 준다. 시민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등재된 자들만이 그 지방의 주민 또는 그 나라의 국민으로 인정되며 아울러 시민권이 보장되었던 당시의 풍습에서 따온 이 '생명책'이라는 말은 신약에서는 보다 영적인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나타난다(빌 4:3; 계 3:5). 곧 이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 모세의 이 기도는 신약 시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던 바울의 기도와 유사하다(롬 9:3). 책임을 회피했던 아론과 달리 모세는 이처럼 자기 민족을 위해 생명까지 내놓을 만큼 투철한 책임 의식과 동포를 사랑하는 정신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Bengel). 실로 모세나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천국의 기쁨과 지옥의 고통을 잘 아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적인 생명까지 걸고서 그토록 간절히 중보 기도 드리는 이유는 죄중에 죽어갈 저 무지하고 불쌍한 뭇 영혼들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 즉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 지옥의 그 고통스런 불꽃(눅 16:24)까지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랑
======32:33
누구든지...범죄하면...지워 버리리라 - 모세는 백성들 대신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을 지우겠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누구든지...범죄하면'은 원문상 '범죄한 사람은 누구나'이다. 즉 죄를 지으면 누구나를 불문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의 이름이 지워버려지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한번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영원히 구원받기 때문이다(요 10:28). 이것은 하나님의 속죄의 효과가 죄의 영향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히 9:26; 10:11-14). 대신 생명책에 기록된 자라 할 지라도 그가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계까지 면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절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표현한 말이다. =====32:34
내가 네게 말한곳 - 이곳은 호렙산에서 모세를 소명할 때 계시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3:8). 따라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그곳으로 인도하라고 명하신 것은 곧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셨음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걔 언약한 그 언약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계시며그들의 죄를 사하시어 모세로 하여금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사자 - 여러 가지 견해가 많지만 보편적으로 제 2위 하나님 되시는 '성육신 이전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3:20 주석을 참조하라. 내가...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 '보응하다'는 말이 원어에는 '박문하다'(파카드,* )로 나온다. 따라서 이 부분을 직역하면 '내가 찾는 날에는 그들의 죄를 찾으리라'가 된다. 한편 '파카드'에는 이외에도 '계산하다', '복수하다'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 용례대로 번역하면 '내가(그들의 죄를) 계산하는 날에는 그 죄를 갚으리라'가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고 징벌하지 않겠으나,다시 죄를지으면 훗날 이번의 죄까지 함께 징벌하시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에도불구하고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듭 거듭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출애굽 제1세대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된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던 것이다(민14:29-33).
======32:35
본절은 28절에 언급된 삼천 명 살륙 사건에 대한 부연 설명이자 본장의 결론이다. 치시니 - '치다'는 뜻의 동사'나가프'(* )는 '때리다', '살해하다'는 뜻 외에'역병에 걸리다'는 뜻도 있는데, 여기에서 '온역'(* ,네게프) 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한편 이러한 '나가프'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징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했는데(민11:23) 이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의 '사형 집행'과 별도로 또한역병으로 백성을 치신 것 같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이를 역병(plague)과 관련해서 번역하고 있다. 아론의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 아론이 만든 송아지를 백성들이 다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만들다'에 해당하는 원어 '이사'(* )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그중에는 '실시(행)하다', '제공하다', '준비하다','공급하다' 그리고'섬기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본문은 '그들이 아론이 만든 그 송아지를 섬겼음이더라'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혹은 '그들이 아론이 준비할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송아지를 만든 행위보다 그것을 섬긴 행위때문에 진노하셨으므로 앞의 번역이 더 자연스럽다. NEB도 '그들이 아론이 만든 송아지를 섬겼기 때문에'(for worshipping the bull-calf which Aaron had made)라고 번역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순조로운 가나안 진군 여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언약을 지키겠다고(19:6) 맹세하여(19:8;24:3)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기까지 했다(24:4-11). 더욱이 그들의 지도자 모세 는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에 대한 계시와 율법이 기록된 두 돌판을 받는 등 매우 경건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었다(25-31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내 산 아래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추악한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죄악된 실존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한 장면으로서 금송아지 우상 숭배로 인한 선민 이스라엘의 타락 상(1-6절)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7-14절) 및 거룩한 율법이 새겨진 두 돌판을 파괴하는 장면(15-20절)을 증거해 준다.
또한 이와 아울러 자신들의 범죄에 대한 구차한 변호(21-24절)와 레위 자손들의 백성 정결 작업(25-29절) 및 모세의 또 한 차례의 중보 기도(30-35절)를 보 여 준다. 이처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를 통해 하나님을 무시하므로서 언약의 전내용을 파기한 사건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인간이 종교적 훈련을 쌓아간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장중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죄악된 본성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호 11:7)과 (2) 인간이 행 위로는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롬3:20).
한편 당신과의 언약을 포기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죽음의 형벌을 가하시려 했다(10절). 사실 하나님을 떠나버린 자의 결국은 죽음뿐이다. 그러나 이 러한 위경에서 모세는 사력(死力)을 다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함으로써 백 성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11-14절). 이 기도는 인간적인 욕심에 앞서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든 기도라는 점에서 아름다운 영혼의 호소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세의 행위는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을 영원한 죽음 아래 있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눅 23:34),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해 준다(롬 8:34;히 8:1).
1. 광란의 금송아지 숭배(32:1-6)
시내 산상과 산하가 천국과 지옥의 차이만큼 극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장면이 다. 31장까지에서 보아왔듯이 모세는 하나님과의 은혜 넘치는 교제와 성막에 관 한 계시를 받으면서 40여일 동안 시내 산 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본문에 이르러 지체하는 모세를 기다리다 못한 백성들은 산 아래서 아론의 지휘하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2-4절) 가중한 제전을 벌이게 되었다(5,6절).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의 어떠한 형태로든 만들지 말라는 제 2계명 을 이미 전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중심주의의 신앙보다는 자기 중심의 신앙 생활을 지향하고 만 것이다(20:4).
한편 이같은 그들의 광란적 종교 행위는 (1)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식 결핍에 서 기인한다(호 6:1;요 4:24). (2) 또한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께 사로잡혀 있 지 않고 강퍅했기 때문이며 (3)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리 여겼기 때문이다(20:4 ,5). (4) 그리고 그들이 과거 애굽의 죄악된 문화와 종교를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신앙인에게 있어 가장 큰 해악 중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인간의 본원적인 종교성에 기인하지만 만약 그렇게 할 경우 피조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제한된 피조체에 묶어 두는 위험성이 초래된다. 또한 그 형상화(image-up)한 피조체를 절대화하여 신격화 하는, 즉 변형된 우상 숭배를 자행할 가능성이 초래된다. 때문에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단지 우리는 그분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할 뿐이다(요 4:24).
* 애굽의 우상종교.
애굽인들은 일찍부터 인간을 신격화하거나 동.식물, 그밖 의 여러 자연물을 숭배하였었다<8:1-15 강해, 애굽 종교의 특색>. 그 결과 애굽에는 많은 우상들의 생겼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황소의 형상을 가진 아피스(Apis),
인간의 모습을 가진 프타(Ptah)나 오시리스(Osiris),
재칼(여우와 이리의 중간형)의 머리 형상을 가진 아누비 스(Anubis),
악어의 머리 형상을 가진 소보크(Sobok),
매의 머리 형상을 가 진 호루스(Horus)와 라(Ra) 및 소카르(Sokar),
따오기의 머리 형상을 가진 도트(Thoth),
인간의 형상이나 수양의 머리 형상을 가진 아문(Amun) 등이다.
이 외에도 애굽인들에게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는데 곧,
덕행의 능력과 악의 위협을 상징하는 바스트(Bast)와 세크멧(Sekhmet)여신,
사랑을 상징하는 하도르(Hathor)여신,
인간과 동물의 생식력 및 번식력을 상징하는 민(Min) 등이다.
이들은 주로 자연(나일강)과 우주(달) 등과 관련되어 애굽 백성들에게 신비한 능력을 전달해 주는 신의 표명(表明), 또는 신의 현존(現存)의 수단으로 상징되어 왔다.
애굽인들은 주로 신당(神堂)에서 제사장을 통해 이 우상들을 간접적으로 섬겼으나 축제가 절정에 이르는 날은 밖으로 옮겨 신상들과 직접 접촉하는 가운 데서 섬기기도 하였다. 그중 특히 개구리 형상을 가진 우상은 나일 강과 관련 되어 애굽 백성들의 비옥한 토지와 풍성한 토산물을 위하여 섬겨졌다. 이와 같 이 애굽인들은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겼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은 여느 이교 신앙과 같이 경배자가 경배를 받을 신(神)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놓고 그들 자신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 아 니다. 여호와 종교는 오직 하나님께서 스스로 인간을 택하시고(엡 1:4-6,11), 그들을 통해, 당신의 방법을 따라 경배받으실 뿐이다. 바로 여기에 이교 신앙과 여호와 신앙의 차이점이 있다.
* 시내 산 우상 숭배 사건.
우상 숭배의 가장 큰 죄약성은 그것이 영적인 무지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노력을 고의로 단절시킨다는 데에 있다. 시내 산 아래서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또한 이 사건은 전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우상 숭배의 대표적인 사건(왕상 12:28-32;왕하 10:29;느 9:18)으로 꼽히기도 하는데 그 까닭은 시내 산이 여호와의 위엄과 영광이 선포되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의 고집대로 하나님을 형상화 함으로써 그분을 오히려 시험하며 그 권위를 무시하 는 적극적 범죄를 저질렀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런 행위는 당신을 배반하고 멀리 도망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다. 아뭏든 인간의 영역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려는 교만의 발로인 우상 숭배야말로 가장 큰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신앙사의 첫 출발이 이러한 범죄로 시작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 한 이스라엘의 계속적 범죄의 전형이 되고 있다.
2.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중보(32:7-14)
이스라엘을 애굽의 굴레에서 구원하셔서 선민(選民)으로서의 지위와 법도를 제공하시고 당신과의 뜨거운 교제를 위해 성막까지 구상했던 하나님께 있어선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사건(1-6절)은 단순한 범죄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바로 그러한 극악한 반역 행위(우상숭배)에 대한 하나 님의 극열한 진노(7-10절)와 그에 따른 모세의 집념어린 중보 기도(11-14절)가 비교,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 망을 전제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신의 공의로우신 성품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보 존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집념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10절;34:1-1 0). 모세의 중보 기도는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기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바로 그 러한 언약에 근거한 기도였었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대노(大怒)와 모세의 간절한 도고는 그야말로 죽음이냐 생존이냐를 가늠짓는 팽팽한 긴장이었음에 틀림없다.
한편 이와 같은 긴장은 오늘날의 신앙인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세와 하나님간의 대화는 죄인된 인간의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죄인인 나 때문에 모세로 예표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셨고, 오늘 날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롬 8:34).
아뭏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극도의 실망 상태를 그린 본문은 멸망당할 수밖 에 없는 인간이 결국 간절한 중보자의 노력에 의해 다시금 살게 된 극적인 구 원 사건을 말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죽으심과 간구하심)은 오늘날 우리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3. 깨어진 두 돌판(32:15-20)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모세는(7-14절) 서둘러 시내 산을 내려왔다. 본문은 하산한 모세가 광란의 현장을 목격하고 의분을 발하며 두 돌판을 산산이 조각내는(15-19절) 장면이다. 그리고 우상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타락한 백성들에게 마시우고 있는 장면이다(20절).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므로서,그 언약은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언약의 두 돌판은 무의미한 돌덩이에 불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언약판은 파괴됨이 마땅했다. 한편 이 언약판 파괴는 모세 개인의 감 정에 의한 것이 아니고 백성을 그대로 멸망시키지 않고 끝내 회복시키려는 하나남의 놀라우신 경륜에 따른 것이었다.
* 회복을 전제한 두 돌판 파기.
모세는 타락한 백성들에게 타락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우상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멸절하여 각 개인의 마음과 몸 속에 서 충분히 삭혀 버릴 수 있는 치유책을 시행했다<20절 주석>.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는 채 뽑혀져야 하며,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환경은 철저히 개혁 되어야 한다. 이러한 청결 작업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나 영광된 번영을 쟁취할 수 없다. 아담이 타락한 후 하나님께서는 그가 또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관계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아담을 낙원 에 추방하셨다. 즉 아담의 낙원 추방은 인간의 비극적 출발을 의미하지만 동시 에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 하나님의 사랑 깊은 배려였다<창 3:22,주석>.
그런데 모세의 언약판 폐기 사건도 바로 이러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 저지른 죄악 때문에 언약판에 기록된 대로 형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들은 모조리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 약판을 깨뜨리심으로써 언제라도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한다면 다시 금 그들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시사하신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전적으로 자의에 의한 것이었으나 하 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자기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오직 하나님께 의해 그 일이 이뤄질 수 있었다. 한편 그러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죄인인 인간이 돌아오면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완비하고 기다리신다. 그러므 로 인간이 할 일은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고 후 6:1,2).
* 금송아지 숭배 사건의 역사성.
본문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은 분열 왕국 시 대 북왕국 여로보암 1세가 예루살렘의 정치.종교적 주도권을 견제하기 위하여 단과 벧엘 두 성소에 금송아지를 세운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여로보암 의 우상 숭배의 모토(motto)는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기 에 숭배하라는 것이었다(왕상 12:28). 이러한 선언은 아론의 말과 똑같다(4절).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는 뿌리 깊은 역사를 갖고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전승사를 지지하는 노트(M.Noth)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북 이스라엘 왕국을 단죄하기 위하여, 후대의 역사가들이 출애굽기에 금송아지 이야기를 삽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현재의 악을 악으로 규정하기 위해 없었던 사실을 만들어내는 허구의 역사를 지지하는 이 론이란 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과거를 조작 하는 비양심적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서 결코 발생할 수 없다. 따라서 노트의 가설은 가설에 그칠 뿐이다.
성경의 역사는 인간 역사를 추월한 것도, 허구를 진실로 가장한 것도 아닌 역 사성을 지닌 진실 그 자체이다. 즉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 찾아오셔서 우주를 조성하시고 인간을 만드셨으며 그 인간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의 지를 이땅에 펼쳐가시는 흔적이 바로 성경 역사이다. 따라서 본문에 제시된 금 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던 B.C.1446년의 어느날, 시내산 아래서 분명히 자행되었던 역사적 사건이라 단정할 수 있다.
4. 아론의 궤변과 책임 회피(32:21-24)
범죄한 백성을 향해 치를 떨던 모세는(15-20절) 본문에 이르러 그 질책의 화살을 지도자 아론에게 돌린다(21절). 그런데 아론은 우상 숭배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고 참회하기보다 구구한 자기 변명을 일삼고 있다(22-24절). 이에 하나 님은 진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셨는데,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로 그는 죽음을 모면할 수 있게 된다(신 9:20).
이처럼 범죄한 영혼은 자기 합리화라는 또 다른 죄를 범할 수 있다(창 3:12,1 3). 하지만 그가 자기 죄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면, 비록 당장에는 수치를 당할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요일 1:9).
* 선민의 지도자로서 미흡했던 아론.
출애굽 역사를 이끈 지도자 아론과 모세 는 송아지 숭배 사건을 놓고 백성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아론 은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수용하는 통치 자세를 지녔다(22-24절). 그러나 모세는 백성을 사랑하지만 이 백성을 사랑하 시는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론이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는 점에서 인기있는 정치 지도자일지는 모르나, 바로 이런 점에서는 하나님의 통치 질서 에 입각한 신정국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미흡했다.
하나나님의 통치의 대행자라 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는 자기 백성의 현상태에 대한 바른 인식과 책임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론은 하나님께서도 인정한 달변(達辯)의 소유자로 고대 세계의 실력자 바로 앞에서도 이스라엘의 출애 굽을 역설한 웅변가였다(7:1,2). 또한 백성의 소리를 하나님게 전달하는 대제사장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입술은 자기 합리화에만 급급하고 있다. 이처럼 지도자로서 자신의 행위에 당당한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무기력함,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잘못을 알고도 회개하지 않는 비도덕성, 하나님과 백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 아론의 모습은 결국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보여 준다.
한편 독재와 전쟁으로 얼룩진 인류 역사가 되풀이해 온 뿌리 깊은 폐해 중 하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정당한 책임 의식이나 인류의 궁극적인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지도자의 등장이다. 따라서 오늘날 국민들에게 있어 서 절실히 요청되어지는 지도자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모습으로 비추어지길 원하며 그분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리고 백성 앞에 책임을 질줄 아는 지도자이다.
5. 진멸(盡滅)될 죄악의 씨앗(32:25-29)
하나님께 동족의 실수를 용서해 달라고 탄원했었던 모세는(11-14절) 백성의 광란하는 모습과(18,19절) 아론의 치졸한 변명을(22-24절) 대하고선 백성의 정 결 작업을 계획하게 모세는 바로 그 작업의 일환으로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 <26절 주석>를 소집하고 그 소집된 자들(레위인들이 주축이 됨)로 하여금 범죄 자를 살륙하게 하여 3천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내게 했다(28절). 이처럼 모세는 일부 우상 숭배자들에 의해 전이스라엘의 양심이 멈추어 있고 죄로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용인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제일의 방법으로 우상 숭배자들을 남김없이 처단하는 일을 결행했다.
하나님의 명령에의 방심이 최초 인류에게 범죄와 형벌을 가져왔듯이(창 3장) 이처럼 아론과 일부 백성의 방종은 전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동족 살해라는 커다 란 비극을 몰고 왔다. 그런데 이 비극은 동족을 자기들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비도덕적인 이유로 멈추어질 수 없었다. 오히려 죄악의 씨앗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측면에서 더욱 큰 경고로 받아들이고 엄격히 징계를 단행함으로써 앞 으로의 삶에 하나의 교훈으로 삼아야 했다. 이러한 안타까움에 직면한 백성들에게 모세는 이러한 신앙의 갈등을 극복해야 하는 자기 부인의 아픔을 달래며 독려하였다(29절). 이 위로와 독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에게 가르치신 것과 상통하는 것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느 삶'에의 요구이다(마 16:24).
* 다양한 상황과 동일한 신앙의 결단.
모든 인간에게 부딪치는 각각의 상황은 다르다. 또한 그 상황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삶의 양식 역시 다르다. 그러나 인간이 그 상황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내리는 결단은 동일하다 하겠다. 왜냐하면 그 결단은 크든 작든 진리와 거짓을 가름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단의 삶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숭고하고 중요한 주제이다.
모든 인간은 선과 악, 진리와 허위, 성(聖)과 속(隅)의 양자 택일적 삶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갈등의 연속은 인간의 삶을 자칫 대립과 반목으로 이끌어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과 신뢰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한편 정의와 진리 에 대한 열정이 없는 인간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리석은 선택만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철학과 신중한 판단은 아예 이러한 상태에서 도피하도록 만들기도 한 바, 그리이스 회의학파의 '판단 중지'(Epoke)나 도가 사상의 '무 위 자연설(無爲自然說)', 현대 철학 중 '염세주의'(pessimism)는 이와 같은 배 경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 역시 탈출구를 제시하기보다는 끊 없는 회의를 반복할 뿐이며, 새로운 짐을 추가할 뿐이다. 진리와 거짓에 대한 양자 택일의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있어 중간은 있을 수 없으며, 바르고 빠른 선택을 내린 자만이 참된 진보를 추구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성도는 오직 그 선택의 문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해야만 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주도권(intiative)을 맡겨야만 한다. 왜냐 하면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가장 최상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 실 수 있는 유일한 인도자이시기 때문이다(마 11:28-30).
6. 모세의 두번째 중보 기도(32:30-35)
지금까지 백성의 범죄에 대하여 모세가 취한 조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1) 이 사건의 전모를 하나님으로부터 전해 듣고(7-10절) (2) 백성의 생명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였다(11-13절). 계속해서 (3) 사건의 진상을 직접 파악하 였다(15-18절). (4) 또한 범죄 행위를 우선적으로 중단시키고(19,20절) (5) 사 태의 원인을 규명하여 책임을 물은 후(21-24절) (6) 그에 따른 형벌을 백성에 게 가하였다(25-29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문에 언급되었듯이 (7) 그들을 위 한 사죄(赦罪)의 중보 기도를 드림으로써 이 사건을 정리해 갔다.
한편 모세의 첫번째 중보 기도(11-13절)와 본문의 중보 기도 간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곧 첫번째 기도가 하나님의 편에서 언약에 근거하여 하 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기를 기도한 것인데 비해 이번에는 이스라엘 편에서 이스라엘이 멸망하지 않기를 간구한 기도라는 점이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을 연결하는 중보자로서 끊임없는 헌신과 집념어린 기도를 계속하였다. 의인이 중단없는 간구는 그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 5:16).
* 하나님의 법에 대한 인간의 책임.
오늘날과 같은 책임 사회에서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반드시 그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즉 그의 행위가 뛰어난 선적( 善蹟)이면 보상이 당연히 주어지며 악행이라면 형벌이 주어진다. 이같은 책임 소재의 명확한 구분은 사회 질서 유지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만일 이 원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회는 악을 행해야 잘된다는 논리로 기울어지게 되며, 결국 인간이 지켜왔던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종교적이고 피상적인 차원의 끌어내리는 인간의 합리적 정신이 기승을 부리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되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제 규정인 법적 구속력보다 낮게 평가한 이후,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 양심, 도덕을 포함한 모든 진리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하나님의 법, 양심의 법이 인위적인 법조문보다 우선하는 권위를 지닐 때 사회는 참 평화를 맞이할 수 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산회적 유산으로 취급하여 경솔히 여기는 자에게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직접 찾아가 죄 와 허물의 책임을 물으시겠다는 사실을 암시하셨다(33,34절). 인간은 다가올 필연적인 심판을 인정할 때(고후 5:10;히 9:27)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겸손히 생 활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