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허망한 풍설( , 쉐마 솨웨) - '거짓된', '근거없는'이라는 뜻의 '솨웨'와 '소문', '보고'라는 뜻의 '쉐마'가 합쳐진 말로 '근거없는 소문'이란 의미이다. 이는 오늘날의 유언비어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타인에 대한 비방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잃게 만드는 행위란 점에서 중대한 범죄로 간주된다. 무함하는 증인 - 제 9계명(20:16)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조항이다. 이는 단순히 거짓으로 증언하는 정도를 넘어서 남을 함정에 몰아 넣으려는 목적을 지녔기 때문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왕상21:8). 한편 원문의 의미는 악한 자의 편을 들어 증인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적극적으로 악에 동조하는 행위이니 곧 자신도 악한 자가 되는 셈이다.
======23:2
다수를 따라 - '따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호레'( )는 '...뒤에' 혹은 '...을 좇아서' 라는 의미로 일종의 군중 심리(群衆心理)를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은 윤리적 행위의 주체가 개인임을 보여 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해 볼 때 다수의 결정이 올바르지 않을 때는 혼자서라도 담대히 진리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마 7:13,14).
======23:3
가난한 자( , 달) - '허약하다', '실패하다'는 뜻의 '달랄'( )에서 유래한 말로 '힘 없는 자', '가난한 자'의 뜻을 지닌다. 그런데 어떤 주석가들은 '달'에 한 자를 더 첨가해서 '가달'( )로 읽는데 이 경우에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권력있는 자'가 된다(Knobel). 일반적으로 힘있고 부유한 자가 재판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은 점을 볼 때 이런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본절은 문자그대로 '가난한 자'로 봄이 좋은데(Keil), 따라서 이는 약자에 대한 저급한 동정심이나 감상으로 인해 정의마저 굽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여하튼 본절은 어떤 경우이든간에 판결을 담당한 사람은 불편 부당한 공정을 유지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23:4,5
원수...미워하는 자 - 재판과 관련해서 개인적 반감이나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대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율법의 근본 정신이다(레 19:18).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는 그리스도교의 정신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한편 이것은 모세 율법이 다른 모든 이방 법과는달리 분명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23:6
본절은 3절의 교훈과 대조되는 경우이다. 이처럼 가난한 자를 과도하게 보호해서도안되며 부당하게 대우해도 안된다는 사실은 만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23:7
거짓 일을 멀리하며 - 재판관의 올바른 판단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고의가 아니더라도 재판관은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가 있고, 그럴 경우 중대한 결과가 초래된다. 따라서 재판관은 진실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지적(知的)인면에서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23:8
뇌물을 받지 말라 - 재판관이 범하기 쉬운 뇌물 수수에 대한 경고이다. 성경에 의하면 어느 시대에나, 또한 어느 분야에서나 일어나기 쉬운 이러한 범죄 행위가 유대 사회에서도 자주 있었음을 알 수 있다(삼상 8:3시 26:10;사 1:23;5:23;미 3:9-11). 그런데 성경에는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 재판이 주로 장로들(율법시대 이전)이나 제사장들(율법 시대 이후)에 의해 이루어졌음으로, 따라서 이들의 죄는 하나님이 직접 처벌하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을 통해 볼 때 재판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정(情)적인 면에 치우치지 말아야하고(6절), 올바른 지(知)적 능력을 가져야 하며(7절),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뜻(意)이 분명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지 . 정 . 의를 겸비한 바른 인격을 갖춘 사람만이 재판관의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23:9
이방 나그네 -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가리키는데(20:10; 22:21), 이 에 대한 보살핌은 단순한 인정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애굽에서 역시 나그네 되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차원에서 행하라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특히 본문은 재사장에게 해당되는 교훈인데, 그들은 타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이방인들을 부당하게 취급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러한 폐쇄적인 국수주의(國粹主義)를 배격하고 있으니 재사장들은 내, 외국인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그들을 공정히 대하여야 하였다.
=====23:10,11
5:1-7에서는 좀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그곳을 참조하라. 한편 이러한 안식년의 제정 목마적은 다음과 같다. 즉 (1) 한해를 쉬는 동안 육체의 일을 멈추고 영적인 일에 힘쓰도록 하며(신 31:10-13) (2) 가난한 이웃과 그리고 심지어 짐승에게까지 긍휼을 베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며 (3) 또한 땅의 휴식을 통해 토질을 회복시키는 기회를 제공하며 (4) 그리고 궁극적으로 맞이할 장래의 안식(히 4:9-11)을 예표하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들짐승까지도 먹이시는 분이시다(시 36:6; 104:21). 그러나 본절의 규례는 짐승에 대한 배려와 규례일 뿐더러또한 들짐승의 배설물이나 돌아다니는 활동으로 인해 토지가 비옥해지도록 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규례이다. 오늘날과 같은 영농 기술이나 비료 등이 개발되어 있지 않던 때에 하나님은 이같은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지력(地力)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이다(Lange).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 포도주와 감람유는 팔레스틴의 주요 산물이자,히브리인들의 주식으로도 사용되는 중요 작물이다(Bertheau). 따라서 이런 작물을 소출해 내는 밭까지도 안식년 규정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안식년에는 이스라엘 국토전체를 경작하지 않고 묵혀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 의하면,사사 시대나 왕국 시대 동안에는 이같은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신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 비로소 땅이 안식을 얻었으며(대하 36:21),그 후 마카비 시대에야 전 이스라엘이 이법을 지켰던 것 같다. 그러므로어떤 의미에서 바벨론 포로 생활은 이 안식년 법을 지키지 않는데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도 볼 수 있다.
======23:12
제 칠일에는 쉬라 - 20:8에 이어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안식일에 관한 규례이다. 이러한 안식일의 첫째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심을 기억하는 것이나(20:8-11) 여기서는 사람, 특히 힘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휴식이 강조되고 있다. 소와 나귀...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 소와 나귀는 끊임없이 힘든 논밭 일에 시달려야 했으며 계집종과 그 자식 역시 집안의 잡일을 끊임 없이 해야했다. 그리고 이방인은 곧잘 고된 노역에 동원되는 자들이다(대하 2:17,18). 따라서안식일은 그러한 자들에개 영적인 교훈 뿐만 아니라 육체적 휴식까지도 가져다 줄 수있었다. 이로 볼 때 안식일 제정의 중요 목적 중 하나가 '평온한 휴식'에 있음을 알수 있다.
======23:13
삼가 지키고( , 티솨메루) - 기본 동사 '솨마르'( )는 '울타리를치다','보존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법은 세심하게 주의를기울여 보존하는 태도로 지키되, 곧 그 법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을 뜻한다.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 제 일 계명의 반복으로 본장에서만 세 번(24,32절) 나오는데 그만큼 우상 숭배의 위험이 큼을 알 수 있다. 특히 본 계명은 광야 생활을 벗어나서 새로운 조직 사회를 형성할 이스라엘에게 인간 간의 관계에서 제정되는 법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수립함이 중요하다는사실을 일깨워 준다.
======23:14
매년 삼 차...절기를 지킬지니라 - 히브리인들이 해마다 지켜야 할 3대 절기는 곧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을 가리킨다. 이러한 절기가 제정된 까닭은 히브리인들이 항상하나님을 기억하고 영적인 일에 힘써야 하지만 이처럼 특별한 날을 정하여 지킴으로써보다 영적 생활의 활력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이들 보다 세부적으로 표현하면 (1)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고 (2) 현재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3)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실제로 이런 절기들은 안식년 규례와 더불어 잘 지켜지지 않았고(왕하 23:22;대하 30:5;느 8:17),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단지 형식에 치우쳐졌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절기를 형식적으로 지키지 말도록 가르쳤는데(골 2:16), 그 이유는 이런 절기들은 장래 일의 모형으로서(골 2:17;히 8:5; 10:1)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었기 때문이었다.
=====23:15
무교병의 절기 -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전 급박한 상황하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무교병을 구워 먹은 것(12:15-20)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빕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동안 지키는 절기이다. 아빕월 - 유대 종교력의 제 1월, 그리고 유대 민간력의 제 7월에 해당하는데 후대에는 바벧론식 이름인 '니산월'로 불리웠다. 오늘날의 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한다.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 직역하면 '내 앞에 빈 채로(비어서) 나타나지 말라' 이다. 이는 곧 하나님앞에 나아올 때에는 예물을 갖고 오라는 뜻인데, 이와 평행 구절인 신 16:16,17에는 이러한 사실이 분명히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원문상에 의하면 여기서의 '빈손으로'에 해당하는 '레캄'( )은 '공허하게', '쓸데없이', '헛되이'등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빈손으로'라는 번역보다는 '헛되이'라고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 또한 '보이다'에 해당하는 '라아'( )는 '나타난다'는 뜻 이외에 '방문하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헛되이(쓸데없이) 내 앞에 오지 말라'로 번역함이 자연스럽다. 즉 이는 아무런 의미 없이 하나님의 성소를 찾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곧 절기의 형식에만 치우쳐 그 근본 정신을 잊지 않도록 깨우치고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계명은 자칫 타성에 젖어 무의미한 신앙 생활을 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참된 신앙 생활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Hitzig).
======23:16
맥추절 - 밀 수확을 기념하여 드리는 봄 작물 추수 감사제이다. 무교절 기간 중 첫수확한 보릿단을 하나님께 바칠 날로부터 제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이므로 일명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한다. 이때는 '시완절'로 양력 5, 6월에 해당한다.
수장절 - 모든 추수가 끝나는 가을에 큰 기쁨으로 지키는 절기이다. 이때는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 방랑 생활을 했던 것을 기억하므로 일명 '초막절'(草幕節)이라고도 한다. '디스리월' 15일부터 1주간 지키는데 오늘날 양력으로는 9,10월에 해당한다.
======23:17
모든 남자( - , 콜 제쿠르카) - 여기서 '제쿠르카'는 '너의 남자들'이란 뜻인데, '기억하다'는 뜻의 '자카르'( )에서 유래한 말로 '기억된 남자',즉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에 포함되는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민1:3). 그러나 절기에 여자와 아이들이 제외된 것은 아니고 모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삼상 1:3이하;눅 2:41이하).
======23:18
희생의 피 - 본절은 유월절 제물에 대한 규례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희생의 피'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피는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 성경에서 누룩은 종종 죄와 악을 상징한다(마 16:6;고전 5:6;갈 5:9). 따라서 본 규례는 의미상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함께 드리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어떤 제물에서는 유교병이 허락될 뿐만 아니라, 요구되기도 하므로(레 7:13; 23:17) 이 부분의 명확한 의미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누룩이 첨가되면 원래의 모습이 상실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지니라 - 여기서 '희생의 기름'이란 어린양을 구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때 그것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기름을 가리킨다. 그런뎨 이와 같은 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성물(聖物)을 경홀히 취급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관련하여 12:10에서는 남은 것은 소각(燒却)시키시도록 명하고 있다.
======23:19,
'으뜸의'라는 뜻의 '로쉬'와 '첫 열매'라는 뜻의 '바카르'가 결합한 말로서 단순한 첫 열매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을 가리킨다(Knobel, Aben Ezra, Lange). 이것은 앞으로 수확할 모든 소산물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먼저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는 행위는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의미하며,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뜻한다(신 6:5). 한편 이러한 규정은 민 18:12,13에 보다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여호와의 전 - 신명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으로 나와 있는데(신 12:5; 16:2; 26:2 등). 이는 곧 예배장소의 난립을 막고 민족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 특별히 지정해 주신 이스라엘 내의 유일한 '중앙 성소'를 가리킨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 염소 새끼를 그 생명의 공급원(供給源)인 어미의 젖에 삶는 행위는 생명의 존엄성을 경멸하는 아주 야만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고대 가나안인들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흑은 주술적(呪術的)인 목적으로 이러한 잔인한 방법을 사용 하였었다(Knobel). 지금도 이런 습관이 아랍 세계에는 남아 있다고 한다(Berggren).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세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같은 이방인들의 잔인한 관습을 단호히 금지시켰던 것이다. 실로 죄는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전체를 물들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고전 5:6;갈 5:9),만일 이스라엘이 이같은 가나안의 사악한 습관을 받아 들이면 그들 역시 점차로 가나안의 죄악에 동화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 규례 속에 깃들어 있는 율법 정신은 일상 생활의 세부적인 면까지도 사랑과 긍휼의 정신이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미와 새끼를 동일(同日)에 잡지 말지니라"(레 22:28)는 명령 몇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신 22:6)라는 명령도 같은 의미를 지닌 율법이라 할 수 있다.
======23:20
사자( , 말아크) - '대리로 파견하다'는 의미를 지닌 말로서 성경에서는 종종 천사를 지칭하기도 하며 때로는 제사장 혹은 교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달리 적용되었다. 따라서 유대 랍비들은 이를 모세 혹은 여호수아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뒤에 기록된(21절) 신적인 능력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지 않다. 또한 혹자는 이를 하나님 자신으로 보기도 한다(Knobel). 그러나 성경의 다른 용례에 비추어 볼 때(창 16:7) 여기 언급된 '사자'는 '여호와의 언약의 그 사자', 즉 이스라엘의 구속주가 될 뿐 아니라 장차 인류의 구속주가 되실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로 보는것이 자연스럽다(Pulpit Commentary).
======23:21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 알 타메르 보) - '타메르'는 '쓰게하다', '분통터지게 하다'는 뜻을 가진 '마라르'의 기본형으로 여기에는 '반역하다', '저항하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은 '그에 대항하여 반역하지 말라'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던 중 하나님에 대한 배반과 시험을 되풀이하던 끝에 결국 40년 간의 광야 생활동안 20세 이상의 출애굽 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고 새로운 세대만이 가나안에 들어갔다(민 14:22,23). 허물( , 페솨) - 단순한 잘못이나 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반항', '반역' 등과 같은 적극직인 범죄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 직역하면 '내 이름이 그의 안에 있기 때문이니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사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임재하여 계시므로 그를 하나님처럼 대해야 함을 교훈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계시며 그를 통하여 일일이 성도에게 찾아오신다. 한편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이란 곧 그분의 권위와 인격을 대변하는 성호이다(20:7).
=====23:22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 일찍이 아브라함에게도 주셨던 보호의 약속을(창12:3) 가나안 전쟁을 앞두고 있는 그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종의 공수 동맹 조약(攻守同盟條約)의 형식으로 다시 확약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성도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의 원수에게 원수가 된다면, 그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원수에 대해 역시 원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시 139:21,22).
=====23:23
아모리 사람과...여부스 사람 -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이들 원(原)족속들은 이미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온 적이 있다(3:17;수 10:1;삿 1:34-36; 3:5;삼하 5:8 등). 자세한 내용은 3:8 주석 및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을 참조하라. 끊으리니( , 히크하데티우) - 기본형 '카하드'는 '멸망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끊지 않고' 일부를 남겨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Delitzsch, 수 23:13;삿 2:3) ======23:24
그들의 신 - 당시 가나안인들은 바알, 아스다롯, 몰록, 림몬 등 각종 신을 섬기는다신론 종교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도덕적 타락은 사악한 우상 숭배 의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한편 그러한 의미에서 여기 '신'은 '신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 20:5의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말과같은 말로서 우상에게 예속되거나 혹은 우상 숭배를 위한 모든 생활태도를 금하고 있는 계명이다. 본받지 말고 ...훼파하며...타파하고 - 원문에는 구절마다 '결코'와 '반드시'란 말이 첨가되어 있어 그 의미를 한층 강조해 주고 있다. 따라서 본절을 직역하면 '결코본받지 말고...반드시 훼파하며...반드시 타파하고'가 된다(20:12,15,16,17). 이로 볼때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순히 우상 숭배 행위를 본받지 않는 소극적인 대처방안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사악한 이방의 종교 관습을 근절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3:25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우상 숭배를 근절하라는 명령과 아울러 하나님을 섬길 것이 다시 명령 되어진다. 이 같은 명령이 거듭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당시 사람들은 특정한 지역은 그 지역의 신이 다스린다는 지역신(地域神) 사상(왕상 20:23)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 그 같은 사상에 물들어 가나안에서는 자연스럽게 가나안 신을 섬길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 물이 귀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물과 양식의 풍부함이 첫째 가는 복(福)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섬길 때 이 모두를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에 대하여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면 반드시 물질적 복을 받는다는 보편적 원리로 이해하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욥의 경우와 같은 '의인의 고난'을 비롯하여 실제로 의인이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성경상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복이란 물질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영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합 3:17,18). 병을 졔하리니 - 여러 가지 악조건으로 인해 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많았던 반면, 그에 대한 약이라곤 거의 없었던 당시대에 각종 질병은 사람과 가축에 대해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병을 제하겠다'는 하나님의 축복은 물과 양식 못지 않게 당신의 큰 자비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스라엘에게는 필요적절한 축복이었다.
======23:26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 인구의 증가 곧 생육과 번성의 축복을 가리킨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도 제일 먼저 주신 복이바로 생육과 번성의 축복이었다(창 1:28). 그리하여 하나님은 지금 새로운 삶이 전개될 가나안 입국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시 동일한 복을 내리시고 있는 것이다.한편 실질적으로 이 축복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많은 인력이 요청되는 가나안에서의 농경 유목 사회에 쉽게 적응토록 하기 위한 배려에서 주어졌을 것이다. 너의 날수를 채우라 - '채운다'는 동사 '말레'( )는 '왕성하다'는 뜻도포함한다. 따라서 '너의 날 수를 완성하리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모세는 사람의 년수가 70혹은 80이라고 했는데(시 90:10), 여기서 날 수를 채운다는 것은 일찍 죽는 일없이 그처럼 주어진 수명을 안연(晏然)중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본절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생사 화복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23:27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 여기서 '위엄'으로 번역된 '에마'( )는 '두려움', '공포'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가나안 족속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 것을 의미한다(민 22:3;신 2:25;수 2:9-11).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들이 미리 그들에게 전파됨으로써 오는 결과인데, 훗날 모압 족속(민 22:3)과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수 2:9,11)등의고백을 통해 볼때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 직역하면 '(네 원수의)목을 네게 줄 것이며'이다. 여기서 '목'(개역 성경에서는 '등'으로 번역)은 '오레프'( )로 표현되어 있는데이것은 목 뒷부분, 즉 목덜미를 뜻한다. 따라서 목덜미를 준다는 것은 곧 등을 보인다는 의미이며 결국 원수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등을 돌려 도망할 것'을 뜻한다.
======23: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 여기서 '왕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하여서는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왕벌을 개구리나 쥐, 악충과 같은 자연적 재해로 보며(Bochart) 또 다른 이들은 이스라엘 광야 체재시 가나안을 침략하였던 애굽의 라암세스 3세(Ramses )로 이해하기도 했다(Pulpit Commentary). 그 외에도 팔레스틴에 자생하던 독한 말벌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재해, 가나안인들의 마음속에찾아든 극심한 공포 등등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어느 한가지 견해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가나안 정복 전쟁의 승리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던 하나님의 모든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 도움을 총칭하는 표현으로이해함이 가장 무난할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평행 구절인 신 7:20을 참조하라. 히위족속...헷 족속 -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을 참조하라.
=====23:29,30
조금씩 쫓아내리라 -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나안 족속을 점진적으로 쫓아내시겠다고 하신 데에는 사려깊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즉 (1) 단기 전쟁으로 인한 일시적인 전국토의 폐허화로 백성들이 생활에 곤경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2) 또한 우상 숭배자들인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아 이스라엘 백성의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시험하고, 또한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었다(삿 2:20-3:4). 들짐승이...해할까 하여 - 이러한 실제적인 예는 훗날 이스라엘(북왕국)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서 인구가 격감하자 팔레스틴에 남아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자에의해 피해를 본 사실을 들 수 있다(왕하 17:25). 또한 2차대전 직후 말레이지아에서도어떤 지역에서는 호랑이에 의한 인명 피해가 늘어난 사실이 있다 한다.
=====23:31
너의 지경을...정하고 -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하게 될 가나안 땅의 경계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이다(창 15:18) 이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삼하 8장;왕상 4:21,24;대하 9:26). 홍해...블레셋 바다 - 여기서 홍해는 아카바 만을, 블레셋 바다는 지중해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곧 당시의 동쪽과 서쪽 경계를 의미한다. 광야...하수 - 여기서 광야는 수르(Shur) 광야를 뜻하고 하수(강)는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곧 남쪽과 북쪽 경계를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땅에 대한 약속은 희망을 잃고 살던 이사야 시대에 다시 주어졌다(사 54:2,3). 아울러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약속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마 5:10;요14:2,3).
======23:32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 당시 가나안 지역의 조약 방법은 서로의 신을인정하고 그 신들에게 경배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과 언약하지말라'는 명령은 곧 우상 숭배의 금지 명령이기도 하다. 한편 20:22-23:33은 일반적으로 '언약의 책'( , 세페르 하베리트)이라 불리우는데 이 책의말미에까지 이러한 명령이 첨부되어 있음은 이 책이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로 시작해서 또한 동일한 경고로 끝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것은 당시 언약 당사자들간에는 언약의 조건과 약속 및 위반시의 처벌을 분명히 했는데 '언약의 책'도 이런 형식을갖춤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나님과 실제적인 언약을 맺었음을분명히 깨닫게 했던 것이다.
====23:33
범죄( , 하타) - 기본 개념은 '과녁을 빗나가다', '잘못 디뎌 넘어지다'는 의미로(삿 20:16;잠 19:2)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거민과 언약함으로써 죄를짓는 것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19:6;레 19:2;신 7:6) '하나님의 목표(과녁)로부터 빗나가는' 행위임을 뜻하고 있다. 올무( , 모케쉬) - 문자적으로는 짐승을 잡기 위한 덫이나 갈고리 혹은함정을 뜻한다. 그러나 히브리어에서 '모케쉬'는 그러한 도구나 함정 뿐 아니라 그러한 것들에 빠져 멸망하는 것까지를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단순한 화근(禍根)이 아닌 멸망을 경고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장에는 20장 22절부터 모세를 통해 언약 백성들에게 주어진 각종의 율례(생활 규
범)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그 결론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다. 20:22-23:33 사이
의 법전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체계적일런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법에서와 마
찬가지로 성경에서도 세부적인 법률 조항 자체보다는 그 근본 이념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부분을 살펴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본장의 전반부에는 제 9계명과 관련된 거짓 증거 및 거짓 재판 금지 조
항과 함께 원수에게 선을 행하고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 것이 언급되어 있다(1-9절).
이는 거룩한 공동체 내에 공의와 사랑의 교제가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반
영한다. 그리고 중반부에는 안식년, 안식일, 3대 절기 그리고 이와 연관된 제규례가
제시되었다(10-19절). 이것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계속적으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
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반영한다. 다음으로 마지막 부분에는 20:22-23:19까지의 결론
부분인 하나님의 약속이 나오는데 그 약속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가나안 땅과 각종의 축복을 허락하시겠다는 것이다(20-33절).
이처럼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축복을 수용할 수 있는 관건은 우리의 믿
음과 순종이다. 순종은 자신을 죽이고 대신 자신의 삶 전체에 하나님과 그분의 뜻으로
채우는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신앙 자세이다.
1. 법정 문제에 관한 규례들(23:1-9)
본문은 종교법, 도덕법을 주로 다룬 22장에 이어 인간의 일상사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각종의 시시 비비, 특히 법정 문제화 될 수 있는 사건과 그에 따른 해결 방안을 다루
고 있다. 즉 무고(誣告)와 위증 금지(1-3절), 적대자의 재산과 보호(4,5절), 공정한
재판(6-9절) 등을 취급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은 피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만을 다룬
정태적(靜態的)인 책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깊이 파고들어 역동적으로 역사하며 판단
하고 개도하는 생명력 넘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삶의 지혜와
구원의 길 그리고 사소한 문제의 해결까지도 얻을 수 있다.
한편 한 사회가 참된 질서와 안녕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공정한 판결과 개
개인의 정의감이 절대 요청된다. 만일 압제자의 수하에 사법부가 시녀 노릇을 한다든
지 물질의 노예가 된 재판관과 시민들이 들끓는 세상이라면 평화와 공의에 대한 기대
를 포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위증자(僞證者)와 양심이 마비된 자들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으셨던 점은 이를 단적으로 증거해 준다(눅 23:13-25).
따라서 성경은 공의를 무시하는 사법부와 시민 정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애
3:35;미 3:9;잠 17:23). 재판관과 개개인은 보이는 사람과 욕심에 구애됨 없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두려워하며(신 1:17;마 10:28) 말씀에 입각한 정의로운 판
결과 증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법정 증인들에게 요구되는 것. 본문에는 법정에 선 증인들에 대한 거짓 증언을 삼
가하고(1절), 다수의 의견을 따라 악을 행치 말며(2절), 가난한 자에게도 공정한 태도
를 취하라는 경고가 나온다(3절).
사실 물질 만능주의, 편의주의, 극도의 이기주의에 찌든 현대인들은 위의 세 명령에
대해 의식적으로 수긍할지 모르나 실제 상황에서는 그 수긍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민주주의 정체(政體)의 고질적인 병패라 할 수 있는 다수
의 횡포에 쉽게 무너져 버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본문의 절대적 명령에 귀기울여야 한다. 다수의 의견이 항상 진리
일 수가 없고 우리의 판단과 지식이 또한 언제나 옳을 수 없음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
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증언을 살펴야 한다. 또한 아무리 이해 관계가 얽힌 문제라
하더라도 정의를 추구하며 억울한 상대의 아픔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언어와 행동이 곧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 건설에 직결된다는 신앙적 인
식을 가져야 하며 또한 이 사회의 도덕적, 영적 책임을 맡은 자라는 바른 의식을 지녀
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지켜 보고 계신다(신 10:17;행
10:34).
2. 안식년(일)과 절기에 관한 규례들(23:10-19)
주로 법정을 중심한 제법규들(1-9절)에 이어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정착과 농경 생활
을 전제한 종교적 규례와 절기들이 주어져 있다. 이 규례들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3:8,17;6:2-8)이 이제 곧 성취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이 규례들은 사회 질서 유지라는 측면도 있으나 대부분 가나안
땅의 이방 문화에 오염되지 않고 여호와 신앙을 순수히 보존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
으신 목적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규례들을 간추리면 (1) 토지 경작 후 제 7년째 되는 해에 그 땅을 묵혀 둠으로써
거기에서 자연적으로 나는 모든 소출들을 가난한 자와 들짐승들이 먹도록 하는 토지
안식년 제도가 있다(10,11절). 이런 사회적 의미 외에 안식년은 토지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과 그 땅에서 나는 모든 소출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종교적 의미
도 있었다(레 25:4,23). (2) 휴일(안식) 및 언약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규례라 할 수
있는 안식일 제도가 있다(12,13절). <16:21-30, 강해, 안식일과 휴식의 의미>. (3) 히
브리 3대 절기(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로서(15-19절) 이스라엘인이면 누구나 1년에 3
차례 반드시 성전에 올라가야 했던 축제이다<레 23장 강해>.
한편 하나님께서 이러한 특별한 날(절기)을 제정한 근본 취지는 이스라엘이 과거 하
나님에 의해 구속받았으며, 이제껏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왔고, 앞으로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성도는 전생애를 하나님을 구속과
사랑을 감사하는 날을 구분하여 그날을 기념하며 영광돌리는 것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깊고 중요하다.
* 안식년이 주는 의미. 안식년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다(레
25:23). 즉 실제상의 땅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을 그 땅을 위탁받아 경작하는 자에
불과하다는 신앙적 행동이 바로 안식년 준수이다. 따라서 7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경
작하지 않고 본래의 땅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안식년 중
에 자연적으로 나는 모든 소출은 토지 없는 사람들과 들짐승들에게 주어야 했다.
한편 이 제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땅 임자, 자본가, 기업가 등
은 자기가 소유한 모든 재산이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자신의 소유로 착각하여 재산을
불리는 데만 혈안이 된 경우가 많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으며
가난한 대중의 복지를 간과해 버린다.
이러한 매정한 세태 속에 사는 우리는 지력(地力)이 쇠한 땅에 대하여서조차 안식을
허락하시며 그로 인해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부양하시려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모든 소유를 올바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
다.
3. 약속의 땅에서 지켜야 할 법도(23:20-33)
앞에 제시된(20:22-23:19) 법전 뒤에 나오는 부칙(附則)이라고 할 수 있는 본문은
'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령보다는 권고의 형식을 띠고 있다. 권고의 내용도 지금까지
언급된 언약 법전의 율례가 아니라 앞으로 들어 갈 가나안에서의 행동 지침이다. 곧
지금까지의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자유 분방한 생활에 젖어들 것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 경고는 이스라엘에게 징
계와 심판을 예고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희망과 축복의
약속을 주어 오직 여호와만이 참사랑의 원천임을 알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이 축복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스라엘의 순종(21,22절)과 성결
(24,32,33절) 및 헌신(25절)이 전제되어 있다. 이 전제들은 여호와 신앙의 준수와 우
상 숭배의 배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순종 여부에 따라 보호와 인도(20
절), 승리(22,23,27절), 물질과 육체의 축복(25절), 번성(30,31절) 등이 약속되어 있
다.
이상에서처럼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시면서까지 이스라엘이 거룩한 생활을 하며 여
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을 위해 봉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것은 죄에 대해 연
약한 인간이 자기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죄에 오염된 세상의 정신과 문
화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자기 경건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속의 문화를 개도해
나가며 세상에 건전한 정신 운동을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극적 자세와 더
불어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보호와 인도의 약속에 대한 백성의 태도. 본문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대비
한 제 규례들로서 가나안 입국은 필연적인 기정 사실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여
기서 출애굽 이후 3개월만에 십계명을 위시한 각종의 규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
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후 상황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약 1년간 머무르면서 성막을 완성한 후 하나님을 군대 장관으로
모시고 득의 양양(得意揚揚)하게 가나안 입국에로의 행진을 시작한다(민 1:1). 그러나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반란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근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죽어
가야만 했다(민 14:34). 즉 본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즉시 수행하고 곧바로 가나안
의 주인이 될 수 있었으나 백성들의 계속적인 불평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그 모든 기대와 약속이 훨씬 뒤로 미루어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개중에는 심지어 가나안에 입국치 못하고 광야에서 최후를 마치는 자들의 경우도 발생했다(민 13,14장). 이는 하나님의 약속과 보호와 인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이스라엘의 거듭되는 불순종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처럼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은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저주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신앙인에게 가장 요청되는 덕목은 순종이다(삼상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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