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신 광야에서 떠나 - 백성들이 더이상 신 광양에 머물지 않고 그곳을 떠난 이유는 그곳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군사적으로 영원한 안식처가 되기에는 미흡한 탓도 있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그곳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창 13:14,15)을 향해 행진하여야 했다. 한편 이스라엘의 이와같은 계속적인 광야 여행은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천국을 향한 끊임없는 나그네 생활을 예표한다. 그 노정대로 행하여 - 여기에서 노정(路程)이란 신 광야로부터 돕가와 알루스를 거쳐 르비딤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민 33:12-14). 르비딤 - '원기 회복'이란 뜻이다. 시내 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나(6절)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혹자는 시내산 서북쪽 20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와디 페이란'지역은 여러 개의 샘과 개울이 있어 물이 넉넉한 곳이었으나, 이 때에는 분명 가뭄등으로 샘과 개울이 말라 물이 고갈된 듯하다(L. Wood, Stanley).
======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 이스라엘 백성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다시 한번 보여 준다.이들은 모세를 단지 원망만 하던 과거의 정도(14:12,13;15:24;16:2,3)를 넘어 이제는모세와 다투기까지 했으며, 모세에게 직접 물을 달라고 항의하였다. 백성들의 이와 같은 행위는 사실 배은 망덕한 행위로서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그로 하여금 곤경에처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전혀 자주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들의 정당한 행동으로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지라도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난관을 극복하려 최선을 다해 본 후 그래도 안 될 경우 하나님께 호소하여야 도리인데,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마다 무턱대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한 것은 미성숙하고 이기주의적인 인격을 드러낸 것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보세를 원망하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과거에도 알았었다(16:7,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모세와 다툼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적 권위를 업신여겼으며, 따라서 항상 그들을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의심하고 불신하였던 것이다(Keil).
======17:3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 근성과 역사의식의 결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말이다. 동시에 본절은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 존재와 구원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진정 이들은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통하여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목도했다(16: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목이 마르고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자 현실의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그를 모든 불행의 원흉인 양 원망하고 불평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적 무지와 마음의 완악함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으로 볼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 자유와 독립은커녕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을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음을 실감할 수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무한한 당신의 사랑으로 이처럼 부족한 이스라엘을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는바,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그보다 더 부족한 우리 역시영원한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삼아주신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늘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하여 일평생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것이다. 목말라 죽게 하느냐 - 마라의 쓴 물 사건(15:22-26)에 이어 물로 인한 두번째 원망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중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항상 죽을 것으로 생각하여 모세를 원망하였다(14:11;16:3). 이러한 백성들의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 , 엘 솨다이-창 17:1)으로인식하지 못한 불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17: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 모세의 훌륭한 지도자적 성품중 하나이다. 즉그는 백성들을 인도하던 중 난관에 직면할 때마다 인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앞서항상 이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뢰하였었다(5:22,23;14:15;15:25). 이는 한나님의 큰 역사를 위해 그분께로부터 부름받은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기본 자세이다.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더욱 완악해진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는 구절이다. 그들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은혜와 큰 권능을경험하였으나,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완악해졌다. 즉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마다 그만큼 더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순종한 것이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헛되이 받아 경히 여김으로써 자신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돌을 들어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죽이려는 군중 폭행의상태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17:5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후 일어나는 일이 오로지 하나님자신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일임을 분명히 알게 하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모세로 하여금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을 데리고 기적이 일어날 현장으로 가도록 명하신 것이다.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 - 바로에게 내린 첫번째 재앙시, 모세가 나일 강물을 쳐서피로 변하게 했던 그 지팡이를 가리킨다(7:15-21). 이외에도 그 지팡이는 하나님께서크신 권능으로 모세와 함께 하고 계심을 나타내 보여 준 뚜렷한 가견적(可見的)증표물이었으니(7:8-11) 여기서 그 지팡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또다시 하나님의 큰역사가 일어날 것임을 시사해 준다. 즉 풍부한 나일 강물을 죽음의 피로 변하게 하신여호와께서 이제는 사막의 반석을 깨뜨려 생명의 생수가 솟아나게 할 수 있는 능력도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17:6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 이 기적 사건은 만나 사건과 마찬가지로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사역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즉 후일 바울은 물을 '신령한 음료'로, 반석을'신령한 반석'으로 해석함으로써(고전 10:4) 당시 사막의 갈증으로 인해목말라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렙 산 반석의 물이 생수가 되었듯이, 오늘날사막과 같은 삶의 터전에서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숱한 사람들의 영원한 생명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교훈했던 것이다(요 4:14;7:37;계 22:7;사 55:1). 특히 반석이 모세에 의해 때림을 당함으로 물을 낸 것은 예수께서 친히 저주를 받아 사람들로부터 매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인간 구원 사역을 이루신 것을 예표한다(사 53:4,5;요 19:1-3,17-9).같은 견지에서,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도 본사건 속에서 영적인 의미를 발견했는데, 곧 그는 모세가 반석을 쳐 물을 낸 이 사건은 장차 갈보리 산에서 그리스도께서 매를 맞아 피를 흘림으로써 그 보혈로써 만 백성을 영적갈증에서 구원하신 사건을 상징한다고 보았다(A Survey of Israel's History).특히 반석을 통해 흘러 나온 물의 양을 가리켜 시편 기자는 '강'(* , 나하르)이라고 표현했는데(시 105:41), 이때 이 '강'과 같은 단어이다(창 2:10). 한편 반석을쳐서 더 있는데, 곧 민 20:2-13에 나오는 사건이다.
======17:7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 여기에서 '맛사'(* )란 히브리어의 '시험하다'라는말에 그 어근을 두는 것으로서 '시험' 또는 '유혹'을 의미한다. 그리고 '므리바'(* )란 '다투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다툼' 또는 '논쟁'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그를 대적하였기 때문에, 모세는 이곳의이름들을 이처럼 명명(命名)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불신앙과 패역함을 영원히기억하도록 하였다(Pulpit Commentary).
======17:8
아말렉이...이스라엘과...싸우니라 - 아말렉족속은 에돔 사람들로부터 갈라져 나와 시내 반도에서 그 세력을 뻗치며 유랑하던 유목민들이다(창 36:11,12).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소유권 침해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 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신 25:17,18은 "아말렉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고 묘사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아말렉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습격한 이때의 사건으로 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다(신 25:19).
======17:9
여호수아 - 여기서 처음으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군사 지도자로 언급되고있다. 그는 원래 에브라임 지파 눈(Nun)의 아들로서 본명은 호세아였는데(민 13:8),훗날 모세에 의해 여호수아로 개명되었다(민 13:16). 아말렉과의 전투에 임하여 그가모세로부터 군사선발권을 위임받은 점은 이미 그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굳센용기를 지닌 지도자적 인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그는 모세 사후백성들로부터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은 채 모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신 34:9).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 아말렉과 교전하고 있는 상태에서 모세는 전쟁에나갈 만한 사람을 선발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애굽에서의 종노릇으로 인하여 대부분 용기가 없고 원망과 불평만을 일삼는 나약한 자들이었다.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강인한 아말렉 족속과 전쟁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모세는 특별히 백성 중에서 믿음이 강하며 용기와 강인함을 소유한 자들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대표해 싸우도록 했다.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신정(神政) 국가를 세울 수 있게 이끌어 나간 정치적 지도자라면, 여호수아는 전형적인 군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족속을 정벌하고 정복하는데 큰 공을 세운 하나님의 종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세상의 온갖 악한 마귀를 물리치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지팡이...산꼭대기에 서리라 - 모세가 자신은 산에 올라 기도할 것임을암시하고 있다. 즉 지도자 모세는 선택된 병사들을 전쟁터에 보낸 후 그들을 위하여기도하려 한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었고 특별한 무기나갑옷으로 무장하지도 않은 비정규군들이었다. 따라서 모세가 그들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으면 그들의 패배는 누가 보아도 자명한 일이었다. 이에 모세는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의 상징인 지팡이를 손에 잡고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말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선택된 병사들에게 충분한 군사 물자를 보급하겠다거나 전리품 분배 따위를 보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지도자인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것만을 말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실로 기도는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원군(援軍)으로 만드는 유일
======17:10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 기도의 동역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중요한 공적(公的)문제는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욱기뻐하신다(마 18:19). 예수께서도 최후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하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가셔서 당신과 함께 기도하도록 하셨다(마 26:37-40). 훌 - 이름의 뜻은 '존귀함' 또는 '고귀함'이다. 그는 유다 지파 갈렙의 후손이며또한 유명한 성막 건축가였던 브살렐의 조부이다(31:2;대상 2:19). 그러나 정확히 훌(Hur)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요세푸스(Josephus)같은 사학자는 모세의누이인 미리암의 남편이었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Kurtz).
======17:11
모세가 손을 들면...이기고 - 이것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모세의 손에 좌우된다는의미가 아니다. 모세의 손 역시 다른 사람, 즉 여호수아나 아론, 훌 등과 똑같은 평범한 손이었다. 그러나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지팡이가 들려져 있었다. 그 지팡이는 일찍이 뱀이 되었던 지팡이요, 애굽에 10대 재앙을 내린 지팡이이며,홍해를 가른 지팡이요, 반석을 쳐서 물을 냈던 기적의 지팡이였다. 따라서 모세는 그지팡이를 잡은 손을 들어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구했던 것이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다시금 권능으로 역사해 주시도록 중보 기도를 드린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기도의표현으로 손을 들어 간구하는 것이 종종 언급되었다(대하 6:13,14,29:시 28:2;딤전2:8). 그러므로 여기에서 모세가 손을 든다는 것은 간구하는 기도의 표현을 말하며,손을 내린다는 것은 기도의 중지를 상징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눈에 직접 보이는 가시적 현상이나 동작으로 영적 진리를 보여 주신 것은 구약 시대의 독특한 계시 방법이기도 했다(Kalisch).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 아말렉을 물리친 승리의 원동력이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능력 자체에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사실 인간으로서 모세는 자신의 손 무게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던 연약한 인간이었다. 따라서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모세 자신이 아니라, 모세의 기도를 듣고서 배후에서 역사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음을 알 수 있다. 아론과 훌이...붙들어 올렸더니 - 당시 모세는 80여 세의 노인이었으니 오랫동안손을 들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실한 동역자들인 아론과훌이 모세를 도왔는데 이는 지도자와 아랫사람 간의 모범적인 관계의 일례이다. 사실사단의 군대와 싸우는 영적 전투의 최일선에 서서 고군 분투하는 교회의 지도자는 그누구보다도 힘을 잃기 쉬운데, 이런 때일수록 성도들은 아론과 훌처럼 기도와 격려로써 그를 성원해야 할 것이다.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 모세가 기도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산꼭대기에 올라 왔었음을 시사해 준다. 아마 그는 아말렉 족속이 기습 공격한(신25:18) 그 다음날(9,10절) 여호수와 백성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자신은 아론, 훌과 함께 아침 일찍부터 산 꼭대기에 올라와 기도했던 것같다. 한편 여기서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무나'(* )는 '확고 부동하다'란 뜻으로 아론과 훌이 계속 확고하게 모세의 팔을 받쳐 세우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17:13
여호수아가...쳐서 파하니라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문장이 처음에 '와우'(* ), 즉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그의 백성들을 파한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앞 구절의 결과, 즉 모세가 드린 기도의 결과로서 된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17:14
책에 기록하여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있을 가나안 정복 전쟁에 대해서도 용기와 승리의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과대항하여 싸우기에는 극히 미약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아말렉을 이기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후에 가나안 족속들과의 싸움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만 있으면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이다.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 하나님께서 미리부터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후임지도자로 삼으시려고 계획하셨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특별히 이전쟁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장차그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몸소 치러야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말렉을 도말하여...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 아말렉 족속이 이토록 하나님께 철저하게 징벌을 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같은 혈족<8절>임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하고도 비겁하게 연약하고 지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후를 기습 공격했기때문이다(신 25:18). (2) 동시에 출애굽 후 이스라엘 첫 교전국이었던 아말렉은(민24:20) 이후에도 반(反) 이스라엘 전쟁시 항상 앞장서 하나님의 백성을 진멸하려 했기때문이다. 한편 이 말씀은 사울과 다윗왕에 의해(삼상 15:7;27:8), 그리고 마침내는히스기야 왕의 통치하에서 시므온 지파에 의해 최종 성취되었다(대상 4:41-43).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 과거에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찬양으로만 영광을 돌렸는데, 이제 단을 쌓아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모세가 제사를 위해쌓은 최초의 단으로서 후에 율법에 의해 쌓은 제단과는 다른 것이다(Kurtz).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 '여호와 닛시'(* )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즉 여기서 '깃발'은 전쟁시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며, 동시에 소속 의식을 고취시켜 주는 상징물이다. 따라서 여호와는 당신을 의지하고 따르는 자의 승리의 깃발이 되신다는 의미이다(시 20:5). 한편 이것은 모세가 단에 붙여 준 이름으로서야곱이 세겜에서 단을 쌓고 그 단에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붙여 준 사실(창 33:20)과 비슷한 행위였다. 모세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였다.
======17:16
대대로 싸우리라 -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의 성민(聖民)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대대 후손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다. 특별히 여기서 대대로 싸우신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당대의 싸움을 후손에까지 미루어 싸우시겠다는 의미가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의 후손들을 남겨 두셨다가 그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성, 훈련시키시고, 후에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마침내 아말렉 족속들을 멸하시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예언은 사울과 다윗 시대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삼상 15:7;27:8), 훗날 히스기야시대에 시므온 지파에 의해 완전히 성취되었다(대상 4:41-43).
만나 사건을 기록한 전장에 이어 본장에서는 백성들의 원망으로 인한 르비딤 반석의 생수 사건(1-7절)과 이스라엘과 아말렉간의 전쟁 기사(8-16절)가 자세히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두 사건은 언뜻 보면 개별적 사건이 각각의 단 편처럼 자리 잡고 있듯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의 사건이 아무런 의미없이 다음 사건과 연결되지 않는다. 즉 독립된 것처럼 여겨지는 두 사건 은 언약 백성의 끊임없는 불순 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치 않으시고 마침 내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일관된 구원 역사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아직까지도 광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 고 있다. 모세와 아론을 중심 축(軸)으로 하는 지도 체제는 출애굽 인도라는 출중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못했다. 이러한 지도 체제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전 지파의 단합 문제 역시 시급한 것이었다. 노예의 삶을 탈피하지 못한 이들은 지독한 개인주의적 사고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협력(協力)을 도외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모세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마저 부인한다는 데 있었다(2절).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성숙해 가야 할 이스라엘에게 있어 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새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밟아야 할 광야 여정은 하나님 안에서의 확신이 없이는 결코 헤쳐나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때 '므리바'로 이름 지어진 반석에서 물이 솟아난 생수 사건(1-7절)은 이스라엘의 불신과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비와 보호의 손길을 늦추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밝히 드러난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인간의 전통적 교육은 학습을 마친 뒤 그것이 의식화 되었는지를 검증하 는 장치로 시험(Test)이란 과정을 반드시 두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말 렉과의 전투 (8-16절)는 마치 하나님의 은총 아래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단 단히 결속하며, 그 난관을 뚫고 나가는가를 테스트하는 하나님의 시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참으로 오랫만에 백성들의 합력(合力)과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총에 의해 이 시험을 무난히 승리로 이끈다. 이러한 성공담은, 비 록 성경 중에 수없는 성공담이 실려 있긴 하지만 실패의 역사로 점철된 이스라 엘의 삶에서 이 감격의 승리만은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여호와 닛시'는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살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15,16절).
1. 광야에서의 연속된 불평과 하나님의 도우심(17:1-7)
마라의 쓴 물 사건에 이어 본문은 두번째로 물과 관련된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즉 본문에는 갈증을 이기지 못해 또다시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를 원망하 는 이스라엘 백성들(1-3절)과 이들의 불신앙적 원망에도 불구하고 르비딤의 반 석에서 생수를 솟게 하여 그들의 갈한 목을 축이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좋은 대 조를 이루고 있다(4-7절).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 와 사랑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적 삶에서 탈피하지 못 하고 여호와를 향한 신뢰를 거부하였었다. 이들의 태도 속에서 우리는 갑자가 맞은 무제한(無制限)의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 제 갈길로 가려는 양들의 미련한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사 53:6). 사실 군중 심리(群衆心理)에 동요된 백성 들의 불평과 원망은 인간적인 어떠한 통치술로도 완전히 진정시킬 수 없다. 하 나님에 의해 선택된 지도자 모세가 출중(出衆)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때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력(武力)적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을 간구한 사실 때문이다(4절).
은총은 기도하는 자의 진실함 속에 응답된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이 백성에게 확신을 주신바, 인간의 이성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셔서 그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셨다(5-7절). 그리하여 모세만이 선민을 가나안 땅까지 이끌 수 있는 능력의 지도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바위를 뚫어 생수를 내는 이적을 행하심으로써 모세의 지도권에 도전하던 단단한 백성들의 마음을 여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과 더불어 그분만이 역사의 참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 .
*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으로 말미암아 르비딤의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난 사건은 구속사적으로볼 때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교 훈해 준다. 즉 르비딤의 반석과 이 반석에서 솟아난 생수는 우리의 믿음의 반석이시며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메마른 광야 르비딤의 반석에서 생명의 물이 터져 나오리 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외관 역시 인간과 똑같 은 육신을 입었기에 그를 통해 인간 구원이라는 은혜의 생수가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사 53:2). 그러나 참다운 생명의 원천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기반(基盤) 위에서 조성되는 것이다. 만일 진리라는 것 자체가 왜곡되 어질 수 있고, 다른 논리에 부정될 수 있는 허약한 것이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진리가 될 수 없다. 신약 성경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진리 그 자체라는 사 실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으로 표현하였다(롬 9:32).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반석은 광야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는 광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 현장에 들어오셔서 날마다 삶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또한 이 반석은 영구 불변(永久不變)한 것이어서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한다. 사람들에 게 있어서 참된 기초는 든든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얻을 수 있 다. 역설적으로 벼화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불안정 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든든한 삶의 기초를 세워야 한다.
2. 아말렉과의 싸움(17:8-16)
르비딤 바석의 생수 사건을 언급한데 이어 본문에서는 이제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최초로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을 치루는 장면에 서술되고 있다. 즉 애굽과의 길고 긴 싸움에서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기대어 승리한 이스라엘에 내부의 진열(陳列)도 채 갖추기 전에 광야 의 유목민 아말렉과 첫 전투를 치른 것이다. 끊임없는 내부 진통과 하나님을 향한 불복종 등, 아직 자신과의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연약한 이스라 엘에게 있어서 분명 이 싸움은 큰 난관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르비딤에서의 불미스러운 분열상(分裂相)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싸움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한편 이러한(10-12절) 전투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할 분배였다. 즉 모세가 산위로 올라가 여호와께 기도하는 동안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아말렉과의 전투에 임하였던 것이다(8,9,13절). 즉 처음부 터 끝까지 모세와 아론의 지휘아래서만 진행된 출애굽의 역사가 이 아말렉과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최초로 그 임무 수행이 분화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직무 는 여러가지 일지라도 그 목적은 오직 하나였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었다(14-16절). 이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직분이 다양하 다 하더라도 그 모든 일의 일치점은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과 마찬가지이 다(고전 12:27-31). 한편 그럼에도 일의 분화가 모세의 역할을 축소한 것은 아 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펼칠 섭리를 알려 주는 대리자요, 이스라엘의 삶을하나님께 헌신하도록 이끄는 중보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오히 려 이번 아말렉과의 싸움은 모세의 위치를 더욱 공고케 해주었다. 즉 그는 백성을 위해 쉬지 않고 중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 의한 완벽한 승 리를 이끌어 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승리가 모세의 혼자 힘으로 성취된 것 은 아니었다. 즉 개인적으로힘이 부친 모세는 중도에 기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를 위해 좌우에서 보좌한 아론과 훌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기도 할 수 있었다. 또한 기도로 말미암은 여호와의 능력을 실천에 옮긴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 이스라엘의 싸움과 성도의 영적 전쟁.
본문은 전쟁은 오늘날 성도에게 광야 와 같은 이 세상에서 헤쳐 나가야 할 많은 영적 싸움이 있음을 암시한다. 즉 인간에게 생로병사(生老病死),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시시각각으로 부딪쳐오는 현세는 본향이 아닌 나그네의 광야 여정이며, 이곳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 많은 세력들과 싸워야 한다. 성도에게 있어 이 싸움은 광야 생활으로 투쟁으로 일관한 이스라엘처럼 계속 전개될 것이다(엡 6:12). 연약한 상태의 이스라엘 을 기습한 아말렉처럼, 사단은 인간의 영.육이 핍절한 상태를 최고의 호기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얻은 성도들은 성령의 검과 방패로 무장하여 이들의 침입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엡 6:13-17). 아말렉을 궤멸시킨 최고의 병기(兵器)는 모세의 기도였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의 힘을빌어 우리의 영적 대적자들을 물리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인생 의 싸움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일이다.
* 여호와 닛시의 의미.
'여호와 닛시'란 말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이 다. 이 말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전쟁인 르비딤 싸움의 승리를 기념하는 제단의 이름이다. 즉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른 뒤 모세는 하나님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서 그 제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칭하였다(15,16절). 그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이번 싸움을 장차 이스라엘이 치루어 나갈 많은 영적 싸움의 모범으로 삼는 동시에 매 전쟁마다 오직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만을 바라 보게 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누구든 그를 의 지하고 따르는 자에게 힘과 방패, 승리의 깃발이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역사 속에 나타나신 당신의 능력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이처럼 불과 구름 기 두으로인도하신 여호와께서 당신의 인도하심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이 바로 '여호와 닛시'이다. 이는 날마다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그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승리의 감격과 더불어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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