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장
만 이년 후에 - 술맡은 관원장이 복직된 지 만 이년 후를 가리킨다(G.Ch.Aalders).이때는 요셉이 애굽에 팔려온 지(37:2)13년 후, 즉 그의 나이30세 되던 해이다(46절). 바로 - 요셉 당시 애굽 왕조가 제 12왕조였음에는 거의 확실시되나 본문중의 꿈을꾼 바로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다(39:1). 학자들에 따라서는 라암세스 3세, 오시르타센 1세(Wilkinson)등을 들기도 하나 아메넴하 3세가 가장 유력시된다(Pulpit). 꿈을 꾼즉 - 꿈과 깊은 관련을 가졌던 요셉의 생애에 있어서 그의 운명을 변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번째의 꿈이 묘사되어 있다. 첫번째 꿈은 그의 장래 운명을 설명해 주는 예표였고(37:51), 두번째 꿈은 비록 요셉이 죄수로 있지만 하나님이함께 하심을 증거했고(40:8), 이 세번째의 꿈은 요셉으로 하여금 위대한 인물(40절)이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37:6).
====41:2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 - 애굽에서 숫소는 농사하는 법을 발명한 애굽의 주신(主神) 오시리스(Osiris)를 상징했다. 반면 암소는 월신(月神) 이스시(Isis)를 표상 하는데 땅과 농사와 땅에서 나는 소출을 상징한다. 따라서 애굽은 풍년에 대한 암시로 아름답고 살진 암소가 든장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수 - 티그리스 강을 가리키는 단12:5-7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나일 강'을 의미한다(출1:22; 7:15).애굽은 이 강의 범람 유무에 따라 그 해의 흉년과 풍년이 좌우되었다.
===41:3절
파리한(* , 다카크)- '가루를 만들다' '깨뜨리다'는 뜻으로 가냘프고 보잘것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마른'으로도 번역된다.
====41:4절
파리한 소가 ...먹은지라 - 바로의 꿈에 대한 간단한 기록이다. 21절에는 그 먹은결과가 더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성경은 필요한 상황만을전달하기 때문에 때로는 과감한 생략이 따른다. 따라서 성경에서 완벽한 과학적 사실과 역사적 진행 과정을 찾으려는 노력은 많은 어려움을 수반한다.
===41:5절
다시...꿈을 꾸니 - 고대의 사람들은 짧은 시간 내에 반복되는 꿈은 그 꿈의 확실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생각에 지배를 받는 바로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계시해 주기 위해서 같은 내용의 꿈을 반복하여 주셨다. 무상하고(* ,바리) - '바라'(먹이다, 뚱뚱하게 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튼튼하고 풍성하며 기름기가 흐르는 것을 가리킨다(시 73:4; 단 1:15).
===41:6절
세약햐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 - 애굽에서 동풍은 흔히 부는 바람이 아니라 무서운 가뭄이 있을 때에만 예외적으로 부는 바람이다. 특히 3, 4월에 부는 '캄신'(Chamsin, 남동풍)은 50여 일 간이나 계속 불기도 하는데 가장 큰 피해를 주는 바람이다(Aalders). 아뭏든 여기서 동풍에 의해 마른 이삭이 대기근의 전조로 제시된 것은애굽의 상황에 잘 어울린다.
===41:7절
바로가 깬즉 꿈이라 - 바로가 꾸었던 두번째 꿈은 첫번째 꿈을 확증하여 주는 것이다 <5절>. 요셉은 이 꿈을 해석하면서 반복되는 꿈이 주는 의미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32절). 또한 바로의 이러한 꿈은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에 깨고 나서야 비로서 꿈인 것을 알았다.
====41:8절
그 마음이 번민히여 - 바로는 너무나 명백한 꿈을 두번이나 반복하여 꾸었고 그것이 장차 이루어질 중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자기로서는 해몽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번민했다(단 2:2). 술객(* ,하르톰) - '헤레트'(그리다. 새기다)에서 온 말로 주술적인 형태의것을 그리면서 점을 치거나 마술을 부리는 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꿈을 해몽하기도 하였는데 덕분에 왕의 특별 고문역을 맡곤 하였다(출 7:22; 9:11:단 2:2). 박사 - 과학과 예술, 신탁(oracle)과 해몽 등과 같은 일에 관계하였던 애굽의 현인(賢人)들을 가리킨다.
====41:9절
내가...허물을 추억하나이다 - 술맡은 관원장의 이 말은 요셉의 당부를 망각했던자신의 과오(40 : 23)를 시인하는 말인지 혹은 바로에 대한 자신의 범죄(40 : 1)를 회상 하는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 모두가 포함된 일련의 부끄러운과거를 말하려는 서두 정도인 것 같다. 한편 여기서 '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트'(* )는 단순한 잘못이라기 보다는 '죄'에 가까운 단어(레 19 : 17)이며. '추억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카르'(* )는 '생각하다', '기억하다', '회상하다'라는 뜻이다.
====41:10,11절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 '각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 )는 '각각'(each)이란 뜻이며 '징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피트론'(* )은 '설명하다', '해석하다'라는 뜻을 지닌 '파타르'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설명', '해석'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구절의 내용은 술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이 한 밤에 꾸었던꿈 이야기이다. 이 꿈을 해몽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히브리 소년 요셉이 그 꿈을 각각해석하여 주었다(12절).
===41:13절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여 달려나이다 - 술 관원장은 잃었던 술 관원직을 다시 회복하고(40 : 9-15) 떡 굽는 관원장은 머리가 끊겨 나무에 달린 사실을 말한다(48:16-23).
====41:14절
바로가...요셉을 부르매 - 이렇게 한 이유는 그의 번민(8절)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때로는 교만한 자로 하여금 난관에 빠드려 겸손하게 하신 다음 하나님의 지혜를 찾도록 하신다. 수염을 깍고 - 애굽인들은 히브리인들과 달리 머리털이나 턱수염을 기르지 않는다.따라서 요셉은 바로 앞에서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옥중 생활 동안 길게 자란 수염을깍았을 것이다(Wilkinson).
====41:15절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 바로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요셉에게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바로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16절).
====41:16절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요셉은 이전에 옥에서 두 죄수의 꿈을 해몽할 때에도자신을 숨기고 하나님만을 드러내었다(40 : 8). 이제 바로 앞에서도 꿈을 해석할 능력은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밝힌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은 바로를평안히 할 것이라는 점도 미리 말하고 있다.
====41:17-24절
바로는 1-7절에 나오는 꿈을 반복하며 요셉에게 설명한다. 여기에서 바로 특별히두 가지 점을 강조하였다. 즉 '그같이 흉악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19절)고 함으로써 암소의 흉악한 모습을 강조하였고, '먹었으나 먹은 듯하지 아니하여 여전히 흉악하더라'(21절)고 함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자신의 예감을 암시하고 있다.
===41:21절
먹었으나 먹은 둣하지 아니하여 - 일곱 해 풍년에 뒤따른 일곱 해 흉년이 너무도극심하여 사람들이 이전의 풍년을 거의 기억치 못할 정도에 이르를 것을 상징하는 꿈이다(30, 31절).
===41:23절
마른(* , 솨다프) - 식물의 고조(高調)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결실치 못함으로 인하여 야기될 흉년 상태를 상징한다(27절).
===41:25절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감히 대국의 왕인 바로와 이런 방식으로 대면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만 의지한 요셉은 신적 권위로서 바로와 대면하고 있다. 즉 요셉은 종의 신분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지혜를 가진 스승의 자격으로 제국의 왕 바로를 대면 하게 된것이다. 하나님이 보이심이니이다 - 요셉은 먼저 바로의 두 가지 꿈이 같은 의미임을 밝혔다. 또한 이 꿈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시되 그 사실성을 확신시킬 목적으로 반복해 주셨다는 증언을 첨가하였다.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 비록 꿈을 두 번 겹쳐 꾸었기는 하나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사실을 강조하여 나타내고 있는 것이란 뜻이다.
===41:26-27절
바로의 꿈을 해석 하지 못하고 전전 긍긍하던 애굽의 술객과 박사들과는 달리 요셉이 이에 대하여 지체없이 해석한 것은 바로에게 꿈을 주신 이도 여호와시며 그 꿈에대한 해석을 요셉에게 보여 주신 이도 여호와이심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16절).
====41:28절
하나님 그 하실 일 -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릴 7년간의 풍년과 7년간의 흉년을 가리키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바로와 그의 나라도 하나님의 통치권하에 있음을 보여 준다(시 22:28).
===41:29-30절
멸망되리니(* , 칼라) - '완전히 획득하다', '소비하다', '일소하다'는 뜻으로 온 백성들이 기근으로 인해 자신의 가진 것을 모두 다 탕진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47:13-19).
====41:32절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 - 꿈이 계시하고 있는 바의 확실성 몇 불변성<5절> 뿐 아니라 그 꿈이 신속히 성취될 것임을 나타내 준다.
===41:33절
명철하고(* , 빈) - 뛰어난 인지력과 판단력에 덧붙여 민첩성까지 겸비한 상태를 가리킨다(대하 11:23 ;단 9:2). 지혜있는(* , 하캄) - 말과 행동에 있어 헌명하게 처신하는 것을 뜻한다(잠20:10).
===41:34절
이같이 행하사 - 이처럼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대책까기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해몽과 이방의 애매 모호한 신탁은 전혀 다른 것임을 잘 보여 준다. 한편 이와 같이 하나님이 애굽을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 이면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데 곧 온 세상에 임한 기근으로 부터 야곱의 가족을 구해내고 애굽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다(56, 57절).
====41:36절
땅이...멸망치 아니하리이다 - 여기서 '땅'은 흙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백성'을가리킨다. 이러한 대유법적 표현은 41절에도 나온다.
===41:37절
바로와...좋게 여긴지라 - 요셉의 꿈의 해석과 다가올 일에 대한 방비책이 바로와그의 신하들에 의해서 정당하게 받아들여졌다. 요셉은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술객과 박사들이 할 수 없었던 바로의 꿈을 해석 했을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들이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까지도 알려 주었던 것이다.
===41:38절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 바로는 요셉의 초자연적인 통찰력과 지혜로 인하여 요셉이 섬기는 하나님을 신성한 지혜의 소유자로 이해하였다(민 27:18;욥 2:8;잠 2:6;단 4:8,18). 일개 종과 죄수에 불과했던 요셉이 대국의 왕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자로 부각된 것이다.
====41:39절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 바로는 지금까지 되어진 모든 사건이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인 요셉은 애굽에서 가장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로 취급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가 유일하고 참된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로에게 있어서 요셉의 하나님은 우주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여러 신들가운데 특별히뛰어난 능력을 지닌 한 신이었다(Aalders).
===41:40절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 바로로부터 명철과 지혜를 인정받은 요셉은 애굽의제 2인자가 되었다. 즉 요셉의 권한이 제한되는것은 바로 자신에 대해서 뿐이라는 뜻이다. 즉 전날에 보디발의 집에서도 요셉은 그의 음식 이 외의 모든 것을 위임받았었는데, 이제 요셉은 더욱 큰 중임을 맡아 애굽 전국을 다스리게 된것이다(39 : 6). 이는 분명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인사 조처로 뭇 사람들의 놀라움 뿐 아니라강한 반발과 이의를 제기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러한 충돌이 없었던 점은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를 느낄 수있게 해준다.
===41:41절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 요셉 당시 애굽은 상.하 두 애굽으로나뉘어 있었으며 또한 갹각을 다스리는 독립된 고관(高官)이 행정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전국이 12주로 나뉘어 있어 각 주마다 어느 정도 독립된 지위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애굽 전역을 통털어 최고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왕은 역시 단 한 사람이었는데 요셉은 그러한 왕을 대행할 수 있는 중차대한 총리 대신 직에 임명된 것이다.
====41:42절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 바로는 요셉에게 관직을 맡긴 후 먼저 인장 반지를 그에게 주었다. '인장 반지'란 반지에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인(印)을 새긴 것으로써 어떠한 일을 재가할 때 도장처럼 찍어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바로가 자신의 인장 반지를 요셉에게 준 것은 곧 애굽 총리로서 요셉이 내리는 명령에 왕 자신의 권위를 부여해 주기 위해서였다(에 3:10;8:2).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세마포 옷은 당시 애굽의 고관들이나 제사장들이 입었던 옷이다(Pliny). 요셉은 이러한 옷을 입음으로써 그의 권위를 외부적으로 드러낼 수있게 되었다. 금사슬 - 공직에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서 왕의 호의를 받았다는 명예의상징이다(단 5:17,29).
===41:43절
버금 수레 - 왕의 수레 바로 뒤를 따르는 수레로 행차 서열상 2인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훌륭한 수레를 말한다(에 6: 11). 엎드려라 - (* , 아브레크). 이집트어로 '정중히 무릎을 꿇어라'. '그에게 굴복하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일부 아랍 국가들에서는 국가 원수 나 고관이 행차할 때 이 말을 소리 높여 외치곤 한다. 여하튼 이 말은 요셉이 높은 지위와 애굽 백성들이 그에게 순종해야 함을 나타내준다.
===41:44절
나는 바로라 - 바로는 자신이 애굽의 왕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요셉이 갖게 될 권한이 절대적이며 건국에 미치게 될 것임을 상기시킨다. 즉 고대 바로는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가졌었는데 이제 요셉도 그러한 전권 갖게된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41:45절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 바로가 요셉에게 직접 애굽 이름을 주고 또한 애굽 여인으로 아내를 삼게한 것은 그를 완전히 애굽화시키기 위한 조치인 듯하다.그런데 여기서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의견이분분하다. 왜냐하면 '바네아'는 '생명'을 뜻하는 이집트어 임이 분명하나 '사브낫'은무슨 의미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자에 따라 이를 '생명의 유지물','땅의 양식이 생명이다'(Yahuda), '생명의 구원자'(Gesenius)등으로 풀이한다. 아뭏든이 이름에는 앞으로 요셉이 할 역할이 반영되어 있었으며, 또한 애굽의 다신론(多神論) 사상과도 관련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Living Bible은 이 이름의 뜻을'생사문제에 있어서 신과 같은 권능을 가긴 자 '(He has the god - like power of anddeath)로 번역하고 있다.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 - '온'은 카이로의 동북쪽으로 약 11Km쯤 떨어진'헬리오 폴리스'이다. 이곳은 태양신 '라'(Ra)를 섬기는 중심지로서 거대한 탑과 신전이 있었으므로 고대에는 '태양의 집'이라는 뜻의 '파라'로도 불리웠다. 요셉의 장인보디베라는 이곳에서 태양신을 섬기던 제사장인데 그 이름의 뜻은 '태양신 라(Ra)가주신 자'이다. 그리그 요셉의 아내인 '아스낫'이란 이름은 애굽 여신인 '네트(Noeth)에게 속한 자'란 뜻이다. 한편 바로가 요셉의 아내를 특별히 애굽 제사장의 가문에서선택해 준 것은 그를 왕족에 준하는 대접을 해주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애굽의 왕들은 대개 왕비를 제사장 가문에서 취하기 때문이다(Aalders). 요셉이...온 땅을 순찰하니라 - 요셉은 제 2인자로서 구체적인 업무를 수행하고자전국을 순회하였다.
===41:46절
요셉이...삼십세라 - 요셉은 십 칠 세때 애굽으로 팔려 와서(37:2) 십삼년 동안노예로 있었으며 그 중 최소한 삼 년간을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40:4;41:1).그런데 요셉이 30세에 공인(公人)이 된 것은 예수께서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눅 3:23)을 예표해 주는 듯하여 자못 의미 심장하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이 나이는성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이다(민 4:3,23).
====41:47절
일곱 해 풍년 - 요셉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났다(29절).
===41:48절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 이것 역시 요셉이 다가올7년의 흉년을 대비하여구상했던 것이었다(33-36절). 각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 중에 - 그 넓은 애굽 땅에서 이와 같은 큰 일이진행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막대한 인력이 동원되어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비성경에는 이런 과중한 업무가 매우 간략히 언급되어 있지만 이런 중책을 수행한 요셉의 능력과 공로를 인정해 주지 않을 수 없다.
====41:49절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 당시 곡식의 작황(作況)이 아주 좋았다는 것과 세금 징수를 위한 행정력이 정비되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성경에는 많은 수를 표현할 때흔히 '바다의 모래'에 비유한다(22:17,32:12 등).
===41:50,51절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 요셉은 지금까지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였으나 범죄하지 않고 신앙으로 역경을 극복했다(39:7-23).이 부분에서 요셉의 가정생활이기록된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요셉을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종교의 핵심부에서 생활하면서도 여전히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여기서 '므낫세'란 이름은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의미이다. 즉 요셉은 첫 아들을 얻자 자기를 귀한 지위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관련시켜서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가나안 땅에서는아무런 지위도 없었으며 애굽에서는 종과 죄수로 지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총리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은 것이다.
====41:52절
차지의 이름을 에브라임이아 하였으니 - 차지의 이름에도 역시 요셉의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즉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는 뜻을 가진'에브라임' 이라는 이름을 지음으로써 여전히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음을 암시한다.
===41:53,54절
일곱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 요셉의 예언과 같이(27절) 애굽에는 칠 년 흉년이시작되었다. 팔레스틴 땅과는 달리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 강을 가진 애굽에서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가뭄이 계속되는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애굽의 기록들에 의하면 이따금 몇 년 동안 기근이 지속되기도 하였었던 사실이 비교적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때 사람들은 양식이 없어 죽은 사람의 시신까지 뜯어 먹은 것으로 나와 있는데 왕하 6:28,29;애 4:10 등을 보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Smith).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 당시 자연 재해에 애굽뿐만 아니라 모든 인접 지역에서도 발생했는데 특히 팔레스틴은 그 피해가 컸었다.
===41:57절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 요셉의 치적은 애굽 뿐만 아니라 인접 국가에까지 미쳐서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러 오게 되었다. 결국 이런 사건은 야곱의 가족이 요셉과 극적으로 재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이런 사건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요셉이 애굽에팔리도록 섭리하셨다고 볼 수 있다(45 :-8). 여하튼 이런 기적적 현상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예언은 극적으로 성취하게 되었다(15 : 13-16).
마침내 오랜 시련과 역경의 때가 지나고 하나님께서 요셉에 대하여 계획하셨던 뜻을 온전히 이루셨음을 보여주고 있는 장이다. 이런한 본문은 크게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13절은 바로의 꿈 사건과 이 일로 인하여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게 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14-36절은 이로 인하여 바로 앞에 불려 간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는 단락이다. 이어 37-45절은 그 결과 요셉이 바로의 총애를 입어 애굽 총리로 등용되는 장면이며, 마지막으로 46-57절은 요셉이 총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데 대한 기록이다.
이로써 이제 오래 전부터 예언되어 온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체류 및 흥왕 그리고 출애굽 역사(15:13-16)는 그 성취점을 향해 급속도로 치닫게 된다. 즉 요셉을 애굽 총리의 지위에 올리신 하나님께서는 곧 이어 바로의 꿈대로 애굽과 그 주변 전지역에 풍년과 흉년을 내리시고, 그 결과 장차 이스라엘 민족으로 성장할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게끔 섭리하신 것이다(46:1-27).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한 인물을 자신의 뜻대로 들어 쓰시기까지 얼마나 그를 연단하시며 갖가지 시험을 통과하게 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즉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에 오른 것은 단순한 벼락 출세나 전혀 격에 맞지 않는 위망(僞妄) 행위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이를 위해 이국 만리 타역에 노예로 팔리며, 죄수로 몰리는 것과 같은 인간의 극한 상황에 처해 보기도 하였고, 또한 보디발의 집과 감옥 안에서 장차 총리로서 필요한 자질을 연마받기도 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러한 시련을 통과하는 동안 여전히 하나님을 잊지 않으며 인내하였으니 보다 더 큰 환란 가운데서도 충직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비록 그 길의 결국은 영생과 참된 기쁨이지만, 그 과정은 가시밭 길이다(마 7:13,14). 따라서 성도는 항상 자기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가운데 모든 역경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1.바로의 꿈과 요셉을 기억하는 술 관원장(41:1-13)
본문은 요셉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짓게 만든 세번째 꿈 사건이다. 그중 1-8절은 바로가 연거푸 두 번 꿈을 꾸고서 번민하여 해몽가를 불렀지만 아무도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9-13절은 그러자 까마득히 요셉을 잊고 있었던 술 맡은 관원장이 2년 전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하고 바로에게 고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본문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우주 통치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음을 잘 보여 준다. 즉 7년 풍년과 흉년의 때에 맞춰 바로에게 이를 예고하는 꿈을 주셨으며, 또한 아무도 그 꿈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 맞춰 관원장으로 하여금 요셉을 기억하게 하신 하나님의 솜씨는 그 어느 누구도 기획해 낼 수 없었던 전대 미문의 예술 작품이었던 것이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의 모든 계시 성취가 비록 더딘 것 같으나, 그 정하신 기한과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합 2:3). 이는 요셉이 환란 중에서도 낙담하지 않을 수 있는 근원이 되었는데, 오늘날 세상고(世上苦)와 영적 전투에 시달리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이런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역시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근원이 된다(요 14:1-3).
* 진정한 힘의 근원. - 외부적으로 볼 때 바로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재 제국의 최고 통치자였다. 그의 말 한 마디는 전애굽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쳤으며, 마음만 먹으면 산천초목(山川草木)도 능히 떨 수 있게 할 정도였다(44절). 그러나 본문은 그러한 그도 정작 전우주의 통치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역시 무기력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미래 계시적인 꿈에 대하여 영적 무지와 함께 두려움과 당혹감, 마음의 번민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저지를 어리석은 실수는 배후에서 꿈을 주관하신 이가 여호와이심을 알지 못하고, 인간 현자(賢者)들의 힘을 빌어 해몽하려 하였던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요셉을 의지하게 된다.
당시 요셉은 이방인으로서 애굽의 노예가 된 자요 또한 죄수였다. 그러한 요셉에게 애굽의 왕 바로가 도움을 요청한 것은 실로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요셉은 만군의 주이자 전지 전능한 신이신 여호와를 그의 힘으로 삼고 있는 자였다. 따라서 아무리 인간적으로 강하고 지혜로운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로 부터 지혜와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 요셉을 당해낼 수는 없는것이다. 이러한 점은 요셉이 능히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줄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사전 대비책도 낱낱이 조언해 준점에서 잘 드러난다(44-36절). 결국 이상과 같은 사실은 인간의 진정한 히의 근원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달려 있지 아니하고, 그가 여호와를 의뢰하느냐 혹은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시 43:2;합 3:19).
2. 바로의 꿈을 풀이하는 요셉(41:14-36)
드디어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에 의하여 바로 앞에 나아간 요셉이 그의 꿈을 풀이해 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14-24절은 바로가 요셉에게 자신의 꿈꾼 내용을 들려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25-32절은 요셉이 그 같은 꿈이 의미하는바 7년 대풍년과 7년 대흉년에 관하여 자세히 풀이해 주는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33-36절은 이에 덧붙여 요셉이 7년 대흉년에 대한 대비책을 일러주고 있는 장면이다.
어느 사회이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先覺者)는 존경을 받는다. 특히 꿈은 고대인의 생활 영역에서 중요한 계시 수단으로 인식되었으므로, 해몽가 역시 계시의 해석자로서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상황 속에서라면 특별 계시인 성경을 해석하는 학자나 목사의 위치였을지 모른다. 때문에 계시를 해석하는 요셉은 권위가 있었으며, 모두가 수긍할수 있는 해석을 함으로써 불안에 떨고 있는 바로의 신하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미래를 직시하는 예언자의 시각은 날카로운 법이다.
그러나 문제점을 예견하고 걱정만 한다면 근는 참 예언자가 될 수 없다. 성경이 인간의 문제점을 잔뜩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인간을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살아 세세토록 영원한것(사 40:8)은 문제의 해답을 명쾌히 제시하기 때문이다. 요셉의 시각이 올바르다는 것도 문재의 해결책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것은 단지 인간의 죄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의 동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건져내시겠다는 사랑의 실천, 곧 십자가에 자기를 내어준 자기 희생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예언자로서의 요셉. - 진실되고 참된 예언자는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확신의 말을 망설이지 않고 담대하게 전한다(대하 18:23 - 27). 요셉은 참된 예언자의 자질, 즉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 감화된 사람의 특성인 담대함(행 4:19)을 지녔다. 그는 실권자 바로(Pharaoh) 앞에서 칠 년간 흉년이 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는 결코 권력자에게 아부하지 않았으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당당히 진리만을 전했다. 그는 바로의 꿈이나 관원들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자신의 해석에 대해 추호의 의혹이나 불안감으로 망설이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했다. 이러한 담대함과 확고한 신념의 태도는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진정한 예언자들만이 지니는 공통적 자질이었다(호 5:1-7; 미 2:6-11; 습 1:2-6).
* 인생의 전환점에 선 요셉. - 청춘을 노예로서, 혹은 어두운 감옥에 갇힌 죄수로서 대부분을 보낸 자에게서 밝고 건설적인 생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생에 일곱 번의 복(福)이 스치고 지나간다는 통속적인 말에 기대지 않더라도, 누구나 일생 중 삶을 반전(反轉)시킬 기회가 오는 법이다. 요셉에게도 그 암울한 청춘을 보상받을 기회가 찾아 왔다. 즉 죄수로서 왕을 알현(謁見)한다는 것은 큰 호기(好機)이다. 그런데 세속적인 처세술은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어서라도 권력가의 입에 맞는 달콤한 칭송을 하라고 가르친다. 출세를 지향한 기회주의자들의 위세(威勢)가 가져온 세상의 지혜이다. 이러한 처세술이야 말로 세상에서 참된 삶을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유혹이 된다. 진실을 부인해서라도 현재의 자리보다 높아지려는 인간의 욕구는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술책은 최초의 인류 타락과 동시적으로 출발한 뿌리깊은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기회주의적 출세욕을 떨쳐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포기한 요셉의 결과는 그후 어떠했는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대로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는 은총을 누리지 아니하였는가?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가 어떠하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교훈해 준다.
3. 애굽 총리대신이 된 요셉(41:37-45)
애굽의 술객이나 박사들과는 달리 명쾌히 꿈을 해석해 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대비책까지 일러주는 요셉에 대하여 바로와 온 신하들이 탄복하고선 그를 애굽의 총리로 임명하는 장면이다. 이로써 오래 전 요셉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꿈(37:5-11)은 구체적으로 현실화 되었는데, 그 결정적인 성취는 7년 대흉년으로 말미암아 곧 성취되게 될 것이었다(42:6).
한편 이러한 본문은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37-41절은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다는 바로의 칙령이다. 그리고 42-44절은 요셉의 지위를 강화시켜 주는 추가 조처로서 그에게 새 이름과 아내가 주어지는 장면이다. 이와 같이 보좌에 앉은 왕은 바로이나 요셉이 그 통치의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데에서(40절), 그는 진정한 지상의 왕이 되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통치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요셉의 고난을 축복으로 보응하셨는데, 그의 생을 통해 나타난 이 '고난 뒤의 영광'이라는 삶은 궁극적으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후 부활 승천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빌 2:5-11). 이런 의미에서 요셉은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된 모습을 대변한다<37:18-28 강해, 요셉의 생애를 통해 본 그리스도의 생애>.
4. 국사(國事)를 수행하는 요셉(41:46-57)
애굽 총리에 임명된 요셉이 7년 대풍년과 7년 대흉년의 때를 맞이하여 지혜롭게 국사를 처리해 나가는 장면이다. 그중 46-49절은 요셉이 해몽한 대로 7년간 풍년이 시작되자 흉년을 대비하여 곡물을 각 성에 저장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50-52절은 그 기간 동안 요셉이 비축해 두었던 식량을 푸는 장면이다. 이상과 같은 본문은 기근이 애굽 주변 땅에까지 확산되어 이제 지상 모든 거민은 기근을 면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몰려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요셉은 그들을 먹여 살리는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불러들이고, 그들이 요셉의 수하에서 보호와 은혜를 입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자연스러운 섭리였는데(45:6-11),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언이 어떻게 하나하나 성취되어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15:13-16; 37:5-11).
한편 이상과 같은 애굽 총리로서의 생활 중에서도 요셉은 여호와 신앙을 결코 져버리지 않았는데, 그러한 사실은 요셉이 애굽에서 얻은 두 아들의 이름을 히브리식으로 지은 점에서 잘 나타난다. 즉 장자 '므낫세'는 '잊어버림'이란 뜻으로 과거 자신의 모든 쓰라림을 말끔히 잊게 해주신 하나님의 위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에브라임'은 '풍성함'이란 뜻으로 이방 땅에서도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이처럼 요셉은 자신의 일생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에 의해 진행되어 왔음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영적 각성과 신앙은 모든 성도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 자세이다(시 121편).
* 곤궁한 때를 위한 성도의 준비. - 예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마 6:19)고 말씀 하시면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고 하셨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풀이 한다면 그리스도인에겐 단지 충실히 살아 가는 오늘이 있을 뿐 미래는 없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의 말씀은 그렇게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종말론적 삶을 현재화하여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라는 교훈이지,미래의 삶을 전혀 계획하지도 말며 아무런 꿈과 희망도 없이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물질이 풍부할 때, 앞날을 위하여 비축하는 것을 금한 말씀도 결코 아니다.
백성을 치리하는 자는 백성들의 요구 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늘 갖추어야 한다. 내일의 음식을 위해 오늘 수고해야 하는 가정 생활처럼, 거대한 국가 경제도 호시절(好時節)에 조금씩 비축하여 내일을 대비하는 것이 타당하며 현명한 처사이다. 그런데 현재 경제 이론에 있어서는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물자 비축(物資備蓄) 정책도 고대에서는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마땅한 보관 장소가 없으므로 곧 썩거나 도둑질 당하기 쉬운 상태여서 대개 그 해의 수확을 그때 그때 소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지혜롭게 수행한 요셉의 경제 정책은 당시 애굽인들로 하여금 미래의 삶에 기대를 걸게 하는 정치였음에 틀림없다. 내일 일을 염려치 말라는 주님의 말씀은 성도들에게 미래에 대한 분명한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따라서 여호와의 말씀을 확신하며 내일의 정책을 펴나간 요셉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마 11:28;요 14:6)을 믿고 '영원'(永遠)을 그에게 내어맡긴 성도들의
미래야말로 진정 복되다 아니할 수 없다.
* 예수 그리스도의 대(對) 기근 정책. - 기근 해결의 방도를 찾기 위해 바로를 찾아간 자들에게 들린 소식을 '요셉에게 가라'는 것이었다(55절).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요셉은 당시 만인의 기근을 해결할 유일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만일 바로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른 방도를 찾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아사(餓死)를 자초한는 꼴이었다. 이처럼 요셉을 통해 이러한 인간 구원의 방도를 예표론적으로 보여 주신 하나님은 이 방도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실제적으로 구현하셨다. 여기서 요셉은 생명을 얻기 원하는 자에게 양식의 값을 받았으나, 예수께서는 구원받기 원하는 자에게 전혀 돈을 요구하지 않는 혁신적인 정책을 제시하셨다(사 55:1,2).
따라서 이제 인간이 영(靈)을 살찌우기 원한다면 '예수 앞으로 나아오라'는 말아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예수께서는 자기 앞에 나아오는 모든 기아(饑餓) 선상에 놓인 자들에게 하늘의 창고문을 여시고 한없는 하늘 양식 곧 생명의 떡을 쏟아부어 주실 것이다. 그런데 배고픔을 느끼는 자라야 배고픔을 해결받기 위해 나설 수 있다. 밤에 예수를 찾아 왔던 니고데모(요 3:1-15)처럼, 예수께 고침받으려 나아왔던 수많은 병자들(막 1:40;2:3;5:22,27)처럼 영육이 기근에 처한 자들만이 그리스도 앞에 꿇어 엎드릴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비워 항상 그 속에 신령한 양식을 담을 수 있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마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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