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창세기 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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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절
그 길을 진행하더니 - 갈르엣(31:47)을 떠난 야곱은 남쪽 곧 요단 강의 북쪽 지류인 얍복강을 향해 출발했다. 하나님의 사자들 - 고향을 떠나 올때 벧엘에서도 나타났던(28:12) 하나님의 천사들이 귀향길 여정에서 또다시 야곱에게 출현한 것은 (1)지난 날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던 것을 상기시켜 주며(28:15;31:13) (2)라반의 온갖 모략에서 보호하셨듯이(31:42) 장차 에서의 손에서도 무사히 지켜 주실 것이라는(히 1:14)확신을 주기 위함이고 (3)'내가 너를 그땅으로 돌아가게 하리라'는 약속(28:15)을 재보증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만난지라 -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1)이전처럼 꿈을 통해 조우하였거나(28:12; 31:11) (2)엘리사처럼 영안(靈眼)을 통해 대면하였든지(왕하 6:17) (3)아니면 아브라함이나 롯처럼 가시적(可視的)인 형태로 현현한 천사를 보았든지(18:2; 19:1)하였을 것이다.

===32:2절
하나님의 군대(* , 마하네 엘로힘) - '구부리다', '진을 치다'란 뜻을 가진 동사 '하나'에서 유래한 '원형의 진(陳)'을 나타내는 '마하네'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로힘'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의 진영'(KJV;the camp of God)이란 뜻이다. 그런데 신약에서 '마하네'에 대한 70인역(LXX)의 번역인 '파레므볼레'(* )는 성도들의 진인 '교회'를 의미한다(계 20:9). 한편 진영을 형성한 이 천군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진을 쳐 구원 얻을 후사들을 수호하는 일인데(시 34:7; 91:11; 행 27:23; 히 1:14). 그리스도께서도 이 천군의 존재를 밝히 인정하셨다(마 26:53). 이제 고향 땅인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야곱 일행에게 이 같은 군대가 출현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벧엘 언약에 근거한(28:13) 가나안의 참된 계승자가 본토로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장차 성도의 천국 입성때 천군 천사가 환영할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마 24:31; 눅 16:22). (2)형 에서로부터의 보복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야곱에게 이 군대가 친히 친위대가 되어 지켜 줄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함이다.
마하나임 - '두 진영(陣營)' 혹은 '두 군대'(RSV;two armies)를 뜻하는 고유명사이다. 야곱이 그곳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1)두 진영, 즉 하나님의 진영과 야곱의 진영이 서로 만난 장소였기 때문이었거나 (2)두 군대로 형성된 많은 천사들, 즉 만군(萬軍)의 천사가 야곱 일행의 전후 혹은 좌우에서 옹위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곳은 훗날 갓 지경 레위 지파 성읍으로 할당되었던 곳이자(수 21:38; 대상 6:8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잠시 수도를 세웠던 곳이며(삼하 2:8, 12).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했던 곳이기도 하다(삼하 17:24). 그러나 이곳의 위치는 확실치 않은데 요단 동쪽 갈르엣과 얍복사이에 위치했던 것 같다.

===32:3절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 - 이삭이 이미 예언한 대로이다(27:39). 그런데 에서가 호리 족속이 살던 험한 산지인 이곳 세일 땅을 굳이 자신의 터로 삼은 이유는 (1)사냥꾼으로서(25:27) 수렵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이곳이 더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거나 (2)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신을 떠나버린 야곱을 그리워하는 모친 리브가와 평소 자신의 아내들을 못마땅히 여긴 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가정불화로 염증을 느낀 나머지 부모에게서 멀리 떠나 있기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32:4절
부탁하여(* ,차와) - '명령하다'(KJV, he commanded)란 뜻이나 개역 성경은 이때의 야곱의 정황을 참작하여 그의 안절 부절한 마음 상태를 잘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번역한 것 같다. 내 주 에서...주의 종 야곱 - 외교적인 상투어로 자신을 최대한도로 낮추면서 상대방을 최대로 높이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이다(19:2). 여기서 '내 주'(* ,라아도니)란 말은 에서에게 자신의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야곱의 겸양을 나타낸 말이다. 한편 야곱이 이러한 태도를 취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1)세력이 월등한 형 에서와 화목을 이루려는 생각에서(Keil) (2)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이후 물질관리 축복관의 변화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에서에게 양보코저 하는 마음에서(Leupold)등이다. 붙여서(* , 구르) - '체류하다'란 뜻으로 혈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나그네로 잠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야곱이 항상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있었사오며(* , 아하르) - '체재하다'(KJV;stay), '지연되다'(NIV;delay)란 뜻으로 잠시 외삼촌 댁에 피신코자 했던 야곱의 체류가 그의 본래 계획과는 달리 오랫동안 지체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32:5절
내게 소와 나귀와...있사오므로 - 야곱이 이 말을 한 것은 자기에게는 이미 재산이 있어 이삭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 주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던 것같다.

====32:6절
사백 인을 거느리고 - 칼을 믿고 살아왔던 자답게(27:40)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부족의 족장으로 성장한 에서의 이 행동은 분명 화해보다는 적대감을 뜻하는 일종의 자기 과시였다(Ainsworth). 한편 400이란 숫자는 지난 날 그들의 조부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14:14) 동원했던 병력 수인 318명을 훨씬 상회하는, 고대 사회에서는 대병력이었다.

====32:7절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무엇에 짓눌린듯한 고통과 좌절감으로 피곤해 있는 상태를 묘사한 말이다(삿 2:15; 욥 18:7). 두 떼로 나누고 - 유목민들을 위험에 직면할 때 가축을 몇 떼로 분산시켜 곧 잘 희생을 최소 한도로 줄이곤 한다.

===32:8절
피하리라(* , 펠레타) - '탈출하다', '구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팔라트'에서 파생한 단어로 '도피시켜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유목민들의 불의의 습격에 대비한 자구책이다.

===32:9절
나의 조부...여호와 - 일찍이 나의 조상에게 신실하였던 하나님께서 오늘의 나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야곱의 기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기도 자세이다.

===32:10절
진리(* , 에메트) - '확증하다', '신실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아만'의 파생어로 하나님의 품성의 한 특징인 '성실성'(24:27) 혹은 '진실함'(출 34:6)을 의미한다. 즉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확인된 진실을 가리킨다. 이는 야곱이 지난 20년간의 삶의 여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몸소 경험한 데서 비롯된 고백이다. 나는...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 카톤티) - '작은'(삼상 9:21; 15:17). '약한'(사 60:22)이란 뜻인 '카톤'의 완료형으로 '나는 여태껏 미천하고 보잘것없었듯이 지금도 부족함 투성이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자신의 간교했던 행적에 비해 너무나 크신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며 감격에 찬 심정으로 현재의 곤고함에서도 자신을 넉넉히 구원하실 것을 믿는 감사와 확신에 찬 기도이다. 지팡이만 가지고 - 20년전 급히 도피하던 처량한 자신의 모습을 강조한 말로서 하나님이 내리신 현재의 축복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32:11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 야곱의 절박한 기도 제목이다. 같은 뜻의 말이 중복된 것은 결코 중언 부언이 아니라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한 두려움에서 거의 애윈조로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특히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즐겨 받으신다(시 34:18; 51:17; 욜 2:12).
처자들(* , 엠 알 바님) - '어머니'를 뜻하는 '엠'과 '아이들'을 나타내는 '바님'에 '위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알'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자녀들 위의 어미'(mother upon the children)이나 그 뜻은 '자녀들을 거느린(감싸안은) 어미'(KJV;mother with the children)이다. 이는 위험이 닥칠 때 어린 자식들을 본능적으로 자기 품에 품고 감싸는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관용적 표현이다.

===32:12절
네 씨로...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절대 멸절의 위기 앞에서 이제 야곱은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22:17; 28:14)을 붙들고 구원을 호소한다. 실로 죄인인 인간은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구할 권리가 없으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로 또 독생자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5:7).

===32:13절
그 소유 중에서 - 문자적으로는 '그의 손에 온 것으로부터'(KJV;that which to his hand)란 뜻이다. 밤중이란 상황하에서, 더구나 적의에 불탄 에서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속히 그에게 환심 살 예물을 필요로 한 나머지 야곱이 자기 손에 잡히는 대로 가축들을 모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기 소유 중에서 예물에 합당한 것만을 선택했다는 뜻을 함축한 개역 성경의 번역은 적절치 않다.

====32:14,15절
유목민들의 부(富)는 소유한 가축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판단되었으나 야곱이 550마리가 넘는 가축을 에서를 위한 예물로 준비한 것은 상당한 예우(禮遇)가 아닐 수 없다.

====32:16절
각 떼로 상거가 뜨게 -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물의 양이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세번의 선물을 줌으로써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에서의 격한 감정을 완화시키려 한 야곱의 지혜였다. ===32:17절
너를 만나 묻기를 - 황급한 상황 속에서도 종들에게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시키는 야곱의 임기 웅변적인 모습에서 그의 타고난 책략가로서의 면모를 엿 볼 수 있다(19절).

===32:18절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 물질적 보상 뿐만 아니라 몸소 죄에 대한 용서까지도 빌겠다는 전갈로서 행여 도주할 의도나 딴 속셈을 전혀 품고 있지 않음을 에서에게 확신시켜 안심을 주기 위한 말이다(Kalisch).

====32:19절
떼를 따라가는 자 - 평소 가축보다 목자가 앞서 가는 것이 관례이나(요 10:4), 야곱은 목자들로 가축 떼를 뒤따르게 함으로써, 다혈질적이며 물질에 약한 에서의 품에 예물을 안겨 그의 마음을 회유시키려 의도하였던 것 같다.

===32:20절
감정을 푼 후에(* , 아카프라 파나우) - '카파르'(덮다)의 미래형과 '파님'(얼굴)에 3인칭 접미어가 합쳐진 말로 '내가 그의 얼굴을 덮으리라'란 뜻이다. 여기서 '덮다'는 '용서하다'는 뜻의 상징적 표현이다. 피해를 입은 자에게 선물을 안겨 그 얼굴을 가림으로써 자신에게 가해진 해(害)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유화(宥和)정책이다. 야곱은 불같이 흥분했다가도 금방 수그러드는 형 에서의 호탕한 성격을 익히 아는지라 여기에 기대를 걸은 듯하다. 나를 받으리라 - 여기서 '나를'을 뜻하는 히브리어 '파나'(* )란 '나의 얼굴'(my face)란 의미이다. 한편 얼굴은 그 사람의 온 인격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나를 받으리라'는 '나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모두 인정하고 용납하리라'는 뜻이다.

====32:21절
예물은...앞서 행하고 -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재물은 물론 자신의 생명마저 기약할 수 없는 위태로운 지경에서 야곱은 에서에게 바쳐지기 위해 떠나가는 가축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우두커니 바라보았을 것이다.

===32:22절
얍복 - 갈릴리 호수와 사해 중간에 위치한 요단 강의 동쪽 지류로서 우기(雨期)에만 집중적으로 물이 흐르는 간헐천(間歇川)이다. '싸우다'란 의미를 지닌 '야바크'(* )에서 유래한 '씨름꾼'이란 이 개천의 이름은 이곳에서 겪은 야곱의 신비한 경험을 기념하여 후대 사람들이 붙인 것 같다. 오늘날에는 '맑고 푸른 강'이란 뜻인 '와디 젤카'(Wadi ez Zerka)로 불리운다. 나를 건널새 - 요단 동편 험준한 산악 지대를 흐르는 얍복강은 물길이 세기 때문에 특별히 잔잔하고 얕은 곳을 골라 가족과 가축을 이동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나루'란 강을 건넌 곳에 대한 일반 명칭으로 봄이 좋다.

====32:24절
어떤 사람 - 천사장 미가엘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1)야곱은 그를 하나님이라 불렀고(30절) (2)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과 천사를 교차하여 사용한 점(호 12:3,4)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람은 단순한 천사(an angel)가 아니라 여호와의 천사(the Angel of the God)가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로도 표기되는(22:11; 출 3:2; 삿 6:12) 성육신(成肉身)이전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창 16:7 강해, 여호와의 사자>. 씨름하다가(* ,네에바크) - 이 말은 (1)'먼지를 일으키다'란 뜻의 '아바크'(* )에서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다. 즉 땅에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하게 몸싸움을 한것으로 보았다. (2)'단단히 붙잡다', '껴안다'란 뜻의 '하바크'(* )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필사적인 싸움을 암시한다. 여기서는 이 두 견해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데, 실제 씨름하듯 영육간의 모든 힘을 쏟아(눅 22:44) 눈물로 붙들고(호 12:4) 필사적으로 간구하는(마 26:39) 야곱의 기도 모습을 생생히 묘사해 준다.

====32:25절
야곱을 이기지 못함 - 성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도, 즉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도밖에 없음을(시 91:15; 막 9:29; 눅 11:9) 역설(逆說)적으로 암시해 주는 말이다. 환도뼈 - 문자적으로 '엉덩이의 우묵한 구멍', 곧 넓적다리 부분의 움푹패인 곳을 가리킨다. 원래 환도뼈는 둔부 아래쪽에 있는 좌골(坐骨)로 엉덩이의 골반을 형성하는 좌우 한 쌍의 뼈를 뜻한다(24:2). 위골되었더라 - 환도뼈는 사람의 몸을 받쳐주는 물리적 힘의 생성(生成)부분으로 종종 생명과 힘의 근원을 상징한다(35:11; 46:26; 히 7:10). 따라서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 뼈를 치신 것은 (1)지금까지 육적 수단에 의지해 왔던 야곱을 완전히 꺽음으로써 이후로는 하나님만을 의지케 한 것이었으며 (2)또한 예표적으로는 장차 그의 허리에서 나올 이스라엘의 운명 역시 인간적 수단에 의지하게 될 때 이처럼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경고와 아울러 오직 그 허리를 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약할 때 강해진다'(고후 12:10)는 역설적 진리를 예표한 사건이다.

====32:26절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 얼마든지 야곱을 뿌리치고 떠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굳이 이렇게 요청한 이유에 대해서는 네가지 견해가 있다. (1)아침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목격함으로써 헛된 호기심만 자극하기 때문에 (2)결사적인 기도로 얻어진 야곱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는 하나님의 애정어린 표현으로 (3)야곱에게 새 날이 걸맞는 새 일(에서와 대면하여 사죄하는 일)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 (4)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에 아침이 되기 전에 떠나시기 위함이다(출 33:20).

===32:27절
네 이름이 무엇이냐 - 히브리인에게 이름이란 한 존재의 속성과 전인격을 대표하는 것이다(25장 강해, 이름짓기). 따라서 하나님의 이러한 질문은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기 직전 교만과 사기 그리고 속임수로 점철된 옛 이름을(27:36) 고백시킴으로써 새 이름의 의미와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32:28절
야곱이...아니요 이스라엘이라 -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 삶과 신분과 인격에 극적인 변화가 주어졌음을 암시한다. 특히 그 이름을 명명(命名)하는 자는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과 주도권을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이처럼 야곱의 이름이 바뀐 것은 (1)인간적 실패의 이름이 영적 승리의 이름으로 축복받은 것을 뜻하며 (2)벧엘 언약(28:10-15)에 근거하여 야곱이 실질적 언약의 후계로서 하나님에 의해 정식 비준(比準)된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스라엘'(* )이란 '우세하다', '싸우다', '왕비'라는 뜻의 '사라'(* )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의미하는 '엘'(* )이 결합된 형태로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Kalisch)는 뜻도 있으나 대체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란 뜻으로 이해된다. 겨루어(* , 사라) - 힘, 능력 등을 총동원하여 대치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인간으로서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집념을 기울인 상태를 가리킨다.

===32:29절
이름을 고하소서 - 히브리인들이 생각하던 이름의 중요성(28절)에 비추어 볼 때 이 제의는 존재와 신분과 성품을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적 요청이다.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 '여호와의 사자'의 이름을 물은 마노아에게 주어졌던 것과 동일한 답변으로(삿 13:17,18)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야곱이 이미 그 사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전제하여 더 이상 무엇을 알기 원하는냐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2)또한 한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롭고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임을 시사하기 위한 것이다.

===32:30절
브니엘 -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으로 뒤이어 나오는 말에서 설명하였듯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교제하고 은혜를 체험한 사실을 기념하는 지명(地名)이다. 하나님과 대면하여...생명이 보전 - 아담 타락 이후 죄로 오염된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살 자가 없다(출 34:20, 23; 딤전 6:16). 그러나 이 말은 제1위(位)되신 성부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사자(16:10)로도 표기되는 성육신 이전의 하나님, 즉 제2위(位)되신 성자 그리스도를 보았지만 하갈이나 야곱 그리고 기드온이나 마노아처럼 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16:13; 삿 6:22; 13:21-23).

====32:31절
절었더라(* , 촐레아) - '첼라'(절뚝거리다)의 분사형으로 계속해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가리킨다. 즉 이제 야곱의 몸에도 바울처럼 은혜의 흔적이 새겨진 것이다(고후 12:7-10; 갈 6:17). 다시 말해서 이는 과거의 인간적인 자신 만만함과 교만을 깨쳐 버리고 베드로처럼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야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화시키는 은혜의 가시인 것이다(요 21:18).

===32:32절
먹지 아니하더라(* , 로요켈루) - 지금도 히브리인들은 피처럼(9:4) 환도뼈의 큰 힘줄도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하여 거룩히 바쳐진 것으로 믿기 때문에 먹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것은 성경이 금하는 바가 아니냐 히브리인인들은 탈무드 등에 이같은 규례를 두어 엄격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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