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창세기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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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홍수 후에...낳았으니 -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다시 인류가 급속히 확산되었음을 보여 주는 본절은 비록 오늘날의 인류가 지정학적, 인종적, 신체적 특성과 기질을 달리하고 있긴 하나 근본적으로는 노아, 나아가 아담에게서 나온 한가족임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인종은 고대 원인(猿人)으로부터 진화,변천된 개체라는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進化論)이 전혀 터무니 없는 주장임을 드러내 준다.

10:2
야벳의 아들은 - 셋의 후손(5:6-32)보다 가인의 후손(4:16-24)이 이삭보다 이스마엘(25:12-26)이 먼저 기록된 것처럼 여기서도 셈(21-31절)보다 함(6-20절)과 야벳(2-5절)이 먼저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언약의 직접적 계승자를 보다 나중에 기록하고 있는것은 본서 저자의 독특한 문체인데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점차적으로 계시되고 있음을 강조해 준다.
야완 -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유나' 헬라어로는 '이아온' 또한 산스크리트어로는 '야바나'등으로 불리우던 이오니아인(Ionian)을 가리킨다. 이들은 헬라인의 조상으로(단 10:20) 소아시아 서부 지역에 거주하였다.
두발과 메섹 - 겔 38:2; 39:1에는 마곡의 속국으로 나와 있다. 이들은 이베리아인(Iberian)과 모쉬족(Moschi)으로 추정되는데 소아시아 동부, 티크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상류 또는 흑해 지역에 정착하였다.
디라스 - 성경 외의 사료(史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명칭이다. 그러므로 학자에 따라서는(1)에게 해 주변이나 타우루스(Taurus) 근방에 있는 아시아족의 조상(3)펠라기스족(Pelagian)의 일파 등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어느 견해가 보다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10:3
아스그나스 - 게르만족의 조상으로 추정되는데 렘 51:27에 의거하면 유키네(Euxine)와 카스피 해 사이 지역에 거주하였던 것 같다.
도갈마 - 겔 27;14; 38:6에도 나오는데 시리아 국경 부근의 터어키 지방에 거주하던 민족으로 추정된다.

10:4
달시스 - 길리기아의 다소(Tarsus)사람으로 보는 자도 있으나(Josephus) 스페인의 달테수스(Tartessus), 즉 선지자 요나가 도망치려 했던 곳인 다시스(욘1:3) 사람의 원조(元祖)로 보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다(Eusebius, Bochart).
깃딤 - 키프러스 섬과 지중해 연안에 살던 족속으로 성경에 자주 언급 된다(대상1:7; 사23:1; 겔27:6; 단11:30).

10:5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 대로 - 야벳의 후예는 유럽-인도 인종(아리안족)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대별(大別)해 보면 지중해족, 북서 유럽족, 북동 유럽족, 알프스족,힌두족, 드라비다족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바닷가의 땅 - 지중해 건너편의 모든 땅을 의미한다. 처음에 지중해 연안과 여러섬들에 거주하던 야벳자손은 점차 유럽 본토 및 인도 지역으로 진출 해 나갔다.

10:6
함의 아들 - 이들은 주로 이집트, 가나안, 남아라비아, 에디오피아 등지에 정착하였는데 오늘날을 기준으로 하면 아프리카를 중심한 흑인종(Negroid)분포 지역이다.

10:7
하윌라 - '모래 땅'이란 뜻으로 아라비아에서 페르시아 만 사이의 광할한 사막 지대에 거주하던 함의 후손이다. 그런데 29절로 보아 이곳에는 셈의 후손인 하윌라족도 분할 거주하였던 것 같다(Kalisch).
라아미의 아들은 스바 - '스바'는 솔로몬을 방문했던 스바의 여왕(왕상 10;1-10)으로 인해 우리에게 친근해진 명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정확히 어느 지역에 거주했던 족속인지는 분명치 않은데 아라비아의 미디안 지역 내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8
그가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 '영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깁보르'(* )는 '강력한 세력을 지닌 자',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를 가리킨다(룻 2:1; 전9:11). 따라서 본절은 니므롯이 지상에서 최초로 강력한 국가를 형성했던 자임을 의미해 준다(10-12절).

10:9
여호와 앞에서 -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로도 '하나님을 대적하여'로도 해석 될 수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니므롯(* , '반역하다'란 뜻의 '대적자'란 점에 비추어 볼 때 후자가 보다 타당하다(Augustine, Keil, Bush).
특이한 사냥군 - 문자적 뜻은 '짐승을 난폭하게 잡는 사냥꾼', 그러나 고대 전쟁영웅들을 가리켜 '사냥군의 제자'라고 일컬었던 관습과 당시 사냥은 전쟁을 대비한 훈련의 일환으로 활용되었던 점에 근거할 때에 이는 '잔혹한 전쟁광'을 의미하는 것일수도 있다(6-20절 강해).
아무는 여호와 앞에...사냥꾼이로다 - 하나님 앞에서 무례한 권세를 부리며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가리켜 니므롯에 비유한 속담이다.

10:10
바벨 - 함무라비(Hammurabi)왕 통치시 바벨론 제국의 수도이다. 완전한 히브리명은 바벨론(Babylon)인데 동은 티그리스, 서는 아라비아 사막, 남은 페르시아 만, 북은 앗수르땅으로 둘러싸인 열대성 기후 지역이다.
에렉- 일명 '우륵'(Uruk)으로도 불려지는 도시로 바벨론 동남쪽에 위치하였다. 1954년 독일 학자들에 의한 발굴 작업시 이곳에서 설형 문자판과 신전 등이 발굴되었다.
악갓 - 사르곤(Sargon)이 창건한 아카드 왕조(B.C 2300-2100)의 수도이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바벨론 부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갈레 - 사 10:9에서는 '갈로'로 불리운 성읍이다. 그러나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니플(Nippur)로도(Rawlinson), 티그리스 강동쪽의 크테시폰(Ctesiphon)으로도(Jerome, Eusebius, Bochart) 추정한다.

10:11,12
르호보딜 - '사각형 도시'란 뜻으로 니느웨의 한 위성 도시이다.
갈라 - 니느웨 남방 약 80km지점, 티그리스 강과 삽(Zab)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했던 성읍이다.

10:14
블레셋 - 지중해 갑돌(그레데)로부터 가나안 연안으로 이주한 해양 민족이다. 이들의 원거주지는 애굽이었으며 혈통상 함족으로 분류된다.

10:16
여부스 족속 - 예루살렘 지역과 그외곽 변두리에 거주했었는데(수 15:8; 삿1:21)여호수아와 다윗, 솔로몬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었다.
아모리 족속 -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시 요단 동편과 서편의 산간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민 13:29; 수2:10; 9:10). 초기에는 바벨론 서편에서 세력 을 떨쳤었는데 함무라비도 이 아모리 왕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르가스 족속 - 가나안의 후손 중 가장 소수의 족속이다. 수 3:10;24:11; 대상1:14등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들이 어디에 거주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10:17
히위 족속 - 세겜과 기브온, 헬몬 산 아래에 거주하였다(수 9:7;11:13). 야곱 의 딸 디나가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당한 일이 있었는데(34장) 훗날 여호수아가 이땅을 정복,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다(수 9:3-21).
알가 족속 - 오늘날 텔 알카(Tell Arka)로 알려진 알카(Arka)에 거주했었는데 이도시는 트리폴리(Tripoli) 북쪽 약 다섯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신 족속 - 알카 강의 남쪽, 즉 알카 근처의 센나(Senna)에 거주하였다.

10:18
아르왓 족속 - 겔 27:8,11에 나오는 아르왓(Arvad)에 거주하였는데 이곳은 현재 루와드(Ruwad)로 알려진 섬 마을로 트리폴리 연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스말 족속 - 베니게 남방, 트리폴리와 아르왓 사이의 소므라(Soemra)에 거주하였다.
하맛 족속 - 오론테스(Orontes) 강변의 하맛에 거주하였는데 이곳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시 끝까지 점령당하지 아니한 지역이다. 다윗은 이곳 왕 도이와 우호 관계를 맺었고(삼하 8:9-12) 솔로몬은 이곳에 국고 성을 쌓았다 (대하 8:4).
이후로...흩어져 처하였더라 - 본서 기술 당시, 상기(上記)한 가나안의 여러 족속이 이미 실존해 있었음과 훗날 이들 족속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음을 증거해 준다.

10:19
가나안의 지경은 - 15~18절의 여러족속들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대략적으로 나타낸 경계이다.
그랄 - 블레셋 평원의 가사 남쪽에 위치한 성읍.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한때 이곳에 머문 적이 있다(창 26:1-6).
라사 - 이 도시의 위치는 분명치 않다. 고대 유대 문헌에 의거하면 소돔과 고모라 근처의 사해 동쪽편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니 혹자는 시리아의 하맛 근처에 위치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 에벨은 벨렉의 아버지이며(25절) 벨렉은 아브라함 계통의 조상이다(11:18-26). 따라서 본서 저자가 셈의 족보를 이야기 하면서 먼저 에벨을 언급한 것은 그가 항상 히브리 민족의 계보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증거해 준다. 한편 '에벨'은 '건너편', '건너온 자'란 뜻으로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온 아브라함을 연상시켜 주는 데 '히브리'(Hebrew)란 민족이름이 여기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21-32절 강해).

10:22
엘람 - 페르시아 만에서 카스피 해사이에 거주하면서 활로 유명하던 족속이다(렘49:35). 이들의 영토는 동쪽으로 티그리스 강,서쪽으로 바벨론, 북 쪽은 메대에 의해 경계지워졌는데 고대로부터 강력한 왕국이었다.
앗수르 -티그리스 강 상류에 거주하다가 후에 소아시아로 퍼져 나간 앗시리아 족속이다. 앗수르는 B.C 2000년경부터 이미 독립 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는데 북왕국 이스라엘은 훗날(B.C. 722) 이들에게 멸망당하였다.
아르박삿 - 앗수르 북쪽, 삽(Zab)강 상류 지역인 아라파키티스(Arrapachitis)에 거주하던 족속이다.
룻 - 소아시아의 리디아인(Lydian)으로 보는 자들도 있는 반면 메소포타미아 북편,즉 아르메니아의 남방 경계에 위치한 루브디(Lubdi) 주민으로 보는 자들도 있다.
아람 - 메소포타이미아와 시리아를 주요 거처로 삼았던 아람족(수리아인)이다. 이스라엘은 다메섹을 중심으로 한 이들 왕국과 많은 접촉을 가졌으며 전쟁도 자주 치루었다.

10:23
우스 - 이 아람의 아들로부터 우스라는 지명이 파생되었는데 렘 25:20; 애 4:21등을 참조할 때 그곳은 가나안 남쪽, 아라비아사막에 위치한 광활한 지역이었던 것같다. 한편 욥의 고향도 이곳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욥 1:1).

10:25
벨렉...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 '벨렉'은 '팔락'(* ,나누다)에서 나온 이름으로 '분리'란 의미이다. 그런데 벨렉 당시에 세상이 나뉘었다는 것은 당시 바벨탑 사건(11:1-9)으로 인한 인구 분산 사건이 있었음을 뜻하는 것 같다(Keil, Lange).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 '욕단'의 뜻은 '작다'이다. 이 두 형제에게서 또한 혈통이 분리되었는데 벨렉은 아브라함계의 조상이며, 욕단은 아라비아계의 조상이다.

10:26
알모닷 - 남 아랍 족속인데 이들 후손이 예멘(Yemen)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살마웨 - 인도양 연안에 위치한 아라비아 영토 하드라마웃(Hadramaut)에 거주하였다. 그곳은 향과 몰약으로 유명한 곳이다.

10:27
우살 - 예멘족으로 오늘날 예멘의 수도인 산아(Sana)에 주로 거주하였는 데 이곳의 철광석은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디글라 - '종려나무의 땅'이란 뜻인데 이로 미루어 보아 이들 족속이 거주하던 지역은 종려 나무가 풍부했던 곳인 듯하다.

10:29
오빌 - 금 산지로 유명한 오빌(왕상9:28;대하 8:18)이란 지명이 여기서 파생 되었는데 이 족속은 페르시아 만의 오만(Oman)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 된다.
요밥 - 분명치 않으나 학자에 따라선 '요밥'을 '광야'란 뜻의 아라비아어 '예밥'과 동의어로 보고 이들을 아라비아 광야에 거주하던 족속으로 단정한다(Bochart,Gesenius, Kalisch).

10:31
셈의 자손이라...나라대로였더라 - 셈의 후예는 크게 북부 셈족과 남부셈족으 로 나눌 수 있다. 이중 북부 셈족으로는 앗수르인, 아람인, 이스라엘인, 에돔인 등을 들수 있으며 남부 셈족으로는 아랍인을 들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셈족은 대체적으로 황색 인종으로 분류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본장은 성경이 이스라엘인들의 역사서일 뿐이라는 혹자들의 그릇된 성경관을  불식시켜 줄만한 확실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즉 성경 기록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엮어져 가기 전에, 온 인류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과 인류 번성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9:1)이 어떻게 실현되어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본장은  각  인종의 기원과 그 분파를 제시함과 동시에 인류의 구속을 추진해 가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인류의 대표자 아브라함(12:1-3)의 뿌리와 출생 배경을 알려 주는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온 인류가 노아의 세 아들을 각각의 조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이방인들도 근원적으로는 선민 이스라엘과 한 형제이며 하나님의 권위 아래 동일하게 머문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에 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 17:26)라고 가르치고 있다.
   본장은 노아의 세 아들들에 따라 크게 3분되어 1-5절은 야벱의 후손들이  6-20절은 함의 후손들이, 그리고 21-32절까지는 약속의 백성들인 셈의 후손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땅이 하나님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때  우리는 국수주의적이며, 폐쇄성이 짙은 지역 감정과 인습과 문화의 틀을 벗어버릴 수  있으며 참된 평화와 화합과 신앙을 이뤄갈 수 있을 것이다(계 7:9).

                   1. 애벱의 후손(10:1-5)
   대홍수 후 이 땅에 생존했던 인간은 단지 8명에 불과했다(8:18; 벧후 2:5). 그러나 인간의 번성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9:1, 7) 풍성한 번식과 삶의  터전을  허락하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에 편만하게 하셨다. 본장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밝혀 주며 특별히 각 지역에 산재한 모든 종족들의 원뿌리가 노아의 세 아들임을  강조한다.  즉 셈(Shem)은 오늘날 근동 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는 셈족의 조상이며, 함(Ham)은  아프리카를 중심한 흑인들의 조상이고, 야벱(Japheth)은 아리안 족 또는 인도-게르만 족이라 부르는 유럽 중심 민족들의 조상이다.
   그런데 이들 각각의 조상들 중 본문에서처럼 야벱과 그 후예들이 초두에 먼저 기록되고 아울러 그 기록이 매우 간략히 언급된 이유는, 성경이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가장 미미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노아의  예언대로(9:27)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으로부터 스페인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차지해  갔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신앙과 무관한 채 영토와 인구의 팽창 및  지적  우월성(철학, 과학, 법, 정치, 군사 등)을 과시하며 발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 수 없었으며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9:27)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적 장막에 초대되는 영광을 얻었다(사 42:4).
   이처럼 하나님은 노아 시대부터 벌써 이방인의 구원 계획을 계시하셨으며 그  일을 주도해 오셨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류의 육적 생명과 더불어 영적 생명도 풍성케 하시는 생명의 주인이시다(민 16:22; 요 5:24).

   * 고대 국가의 태동. - 국가 형성의 3대요소는 주권, 영토, 국민이다. 성경 역사에서이 3요소를 완전히 갖춘 최초의 국가 형태가 본장에 이르러 비로소 나타난다.  물론 4:17에 가인이 성을 쌓고 정착과 군집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것을 국가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그러나 본장에 언급된 제 국가는 타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은  '주권'국가들로서 자주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넓혀갔고, 타민족과 엄연히  구분되는  '영토'를 소유하며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문화를 이뤄갔다. 그리고 대부분이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국민'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였기에 (11장의 바벨탑 사건은 시간적으로 본장 초두에 삽입되어야 한다) 국가의 통합을 신속하고 확고히 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들의 태동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성취이자 인류를 풍성케 하셔서 각자 삶의 처소에서 독특한 문화와 생활을 영위케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시적(可視的)인  국가의 태동과 더불어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원하며 참평화와 바른 질서가 정착된  당신의 나라 건설도 함께 추진해 가셨다. 그 같은 계획의 일환으로 하나님게서는 많은  민족과 나라들 가운데서 당신의 뜻을 받들며 구원의 은총을 세상에 전달할 도구로 한 나라를 예비하셨다(12:1-3). 이처럼 가시적이든 불가시적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의 출발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 국가들의 운명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다는 것을 암시한다(신 32:8; 욥 12:23; 행 17:26).

   * 인종과 성경 기록. -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역사를 담당해 온 이스라엘 민족  외에 그 주변의 수많은 민족들에 대해서도 필요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인종 분류의  기준으로 성경에서 사용된 '민족'(히, 암)은 원해 유전적인 한 혈족의  의미로  사용되며, 국민(히, 고이)은 지리적 제한성을 지닌 정치적 집단의 뜻으로 널리 사용된다. 그런데 본장에서는 지리적 제한의 의미를 지닌 '땅'(히, 에레츠-5, 11,  20,  31절),  '언어'(히, 라손)를 주요 분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인종 분류에 있어 후자의 뜻이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결국 성경의 인종 분류는 문화 인류학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며, 인간의 외형에 따른 생물학적 분류(피부,골격 등)에 따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편 인류학자들 중 일부(형질 인류학자)는 본문에 기록된 인종  기원론을  일고의 과학적 가치도 없는 신화(神話)로 처리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인류 기원에 관한  한, 성경의 기록보다 더 모호한 개념을 갖고 있다. 특히 외관상으로 나타난 생물학적 형질에 따라 코카서스인(백인), 몽골리안(황인), 니그로족(흑인)으로 크게 삼분하고  다시 신체적 특질에 따라 수백종족으로 세분하는데, 이러한 현상적 파악은 자칫 인종  편견만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나 인종 형태를 연구하는  형질  인류학(Antropolography)은 인간의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 인류학과는 다르다. 사실  인종이란 말에는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예:슬라브족,  게르만족). 어떤 경우에는 인종이 민족적, 국가적 형태를 지칭하기도  한다(중국인,  메시코인). 그러므로 피부색이나 신체 골격 등 유전인자에 따라 인종을 분리하려는 자연  과학적 접근보다는 모든 인간의 공통점인 정치, 문화, 언어, 지리적 요인으로 인간을 분리하는 인문 과학적 접근이 앞서 성경에서 제시된 분류기준과 상호 부합한다.
   성경에 기록된 민족 기원론은 바로 본장에 기록된 노아 아들들의 후예를 근거로 한다. 특히 11장까지는 세상에 인간이 퍼진 이유르 설명하는 자료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민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홍수 후에 살아 남은 자들로부터 출발한 원초적인 것이기 때문에 시대의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은 인류의 뿌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 주며, 아울러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민족의 씨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은 오늘날의 문화 인류학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적 연구 형태를  모두  포괄한 인종의 기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2. 함의 후손(10:6-20)
   본문은 아비의 실수를 조롱거리로 삼은 패역으로 아비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후손들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다. 함의 후손은 넓은 영토와 많은 수의 사람, 그리고 강건한 체력을 가짐으로써, 세상에서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그들의 번영은 이  세상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더욱이 순간적인 것에 불과했다. 즉 그들이  팔레스틴과  나일 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기름진 땅을 차지하였고,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따라 이  땅에서 성공과 번영을 누리며 살았던 것을 초기 역사는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의 번영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들을 해롭게 한 것이었으며(잠  21:4), 그들의 번영과 더불어 저주와 심판이 예비되어 있었다. 즉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9:25)는 노아의 저주는 그들의 잠깐의 번영 뒤에 곧바로 성취되었던  것이다. 여호수아 시대 때 함족인 가나안 족속은 셈족인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하였고(수 9:23),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복속되고 말았다(왕상 9:20,21). 그후  그들의 세계 역사의 맨 끝 행렬에 위치하여 수동적으며 보잘것없는 존재로 타종족의  지배 아래서 많은 수모와 비참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자라도 일시적으로는 물질과 영예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의 부름받은 자녀들과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역사라는 배의 키를 잡고 당신의 공의로우신 뜻대로 항해하시는 하나님은 현상적인 풍요와 자신의 힘에 눈이 먼 자들의 어리석음을 끝내 징벌하시고,  대신  당신의 약속을 간직했던 민족을 융성케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우리는  세상적인 번영의 척도를 떠나 무엇이 궁극에 가서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가를 영적인 통찰력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 세상의 첫 영걸(英傑) 니므롯. - 홍수 후 시대의 당시 사회는 각각의 혈연을  통한 부족 혹은 도시 국가의 형태를 띠었기에 그 부족이나 도시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자가 요청되었고 아울러 그에 따른 각종 전투가 진행되었다. 그야말로 힘만이  횡행하던 때로서 자연히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고 하나님의 권위가 전혀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때에 '반역자', '대적자'란 뜻의 이름을 지닌 니므롯이 여호와를 거스리는 힘 있는 자로 등장하여(9절), 신적 권위에 도전할 뿐 아니라 무력으로 백성들을 압제하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해갔다. 그의 그러한 포악한 기질은 그가 '특이한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그는 짐승을 무자비하게 포획하는 특이한  사냥꾼으로 비유된 바, 사람의 육체를 사냥하는, 즉 전쟁을 즐기며 그 전쟁을 통해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 자였다. 당시 그는 바벧에서 앗수르까지의 방대한 영토를 넓혀 갔으며 후에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위력을 떨쳤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건축하기도 했다. 특히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니므롯이 바벧탑 건축을 주동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바벧 곧 바벧론은 성경의 문학적 표현에 있어서 세속 제국의 대명사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힘의 질서, 그리고 세상 나라의 기원은 바로 이 반역자요  대적자인 니므롯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그의 이상과 번영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끝이  났으며  그가 남긴 것은 결코 힘만으로 세상을 송두리째 삼킬 수 없다는 교훈 뿐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등진 인간이 제아무리 세상을 호령할 만한 힘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가 결국에 맞이하는 것은 허무와 멸망일 뿐이다(렘 17:5).

   * 인종 차별의 부당성. - 일부 잘못된 선민 의식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긴 세월 동안 이방인을 멸시해 왔으며, 특히 노아의 저주에  근거하여(9:25)  가나안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해 왔다. 이러한 인종 차별은 왜곡된 선민 의식과 독선에 젖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역사 이래로 전세계에 걸쳐 자행되어 왔다.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이런한 차별 의식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문화, 인습, 종교, 사상, 용모 등이 자신과 다를 때 생겨나는 인간의  배타적  성품 때문이다. 이런한 배타심은 인간 타락 이후 생겨난 서로간의 불신에 기인하며  역사상 인간과 인간 사이에 끝없는 분쟁을 조성하였다.   불건전한 우월성 때문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인간의 공통된 심리이지만, 이것이 지나칠 때 타인을 멸시하고 심지어 학대와 학살까지를 자행한다. 독일 나치 정권하에서  자행된  유대인
학살이 그 좋은 예이다.   잘못된 종교적 편견 때문이다. 종교가 진리의 영역이  되지 못하고 어느 지역적 문화권을 대변하는 분파 의식에 사로잡힐때, 타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차별하는 종교적 광신으로 치닫기 쉽다.
   그러면 과연 인종 차별은 정당화될 수 있으며 그것이 성경의 정신인가? 가나안  정복 정신을 오해한 일부 이스라엘인들은 잘못된 선민 의식에 빠져 자신들의 사고를  철저히 폐쇄시켰으며 극단적으로는 자신들만이 생존의 특권을 가진 자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흐름은 이스라엘을 성경 역사의 중심으로 삼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류 전체를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스스로 선민이라고 생각케 만든  모세의 율법에서조차 이방인들의 신분과 권리를 인정하며, 멸시받는 자들에 대한 배려가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신 15:11; 16:11; 23:7,8).
   또한 많은 선지자들이 이방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민족임을 밝히고 있다(암 1:3-2:16). 뿐만 아니라 예수와 사도들 역시 온 세상이 한 가족임을 역설하였다(막 3:35;  행  17:26). 그리고 초두에서 밝힌 가나안에 대한 노아의 저주는 인간 차별이라는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가정의 질서와 타인의 인격을 무시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해야 한다. 즉 그것은 패역한 자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적 교훈이었을  뿐이지,  결코 인간 상호간의 지위와 신분을 규정지은 조처는 아니었다.
   하나님게서는 당신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모든 인간들에게 누구도 업신여길 수 없는 고유한 인격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이러한 성경의 올바른  정신을  깨닫게 될 때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종적 자만과 학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3. 셈의 후손(10:21-32)
   본문은 노아로부터 영적인 축복을 받았던 셈의 후손들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다. 성경에 언급된 족보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어갈 무리를 중심하여 기록되었으며, 그런 이유로 해서 이스라엘과 깊은 연관이 있거나 언약을 계승할 자들의 가계를  여러 가계 중 마지막 부분에 기록하는 것이 통례였다(4, 25, 36장).
   본장에서도 그러한 관점에서 셈 계통의 족보를 맨 뒤에 위치시키고 앞으로  역사가 셈 계통의 인물들에 의해 주도될 것임을 암시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선민인  히브리인들은 바로 이 계통에서 나왔으며, 하나님 나라 건설을 이룩하실 메시야께서도 바로 이 혈통을 빌어 탄생하셨다. 이처럼 성경의 족보들은 단순한 인명들의 배열이 아니라, 그 순서에서 조차도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는 구속사의 간략한  축소판이며 하나님 나라의 건설 과정도이다<5:1-5 강해, 성경의 족보들>.

   * 히브리인과 이스라엘인. - 인류 구속 역사에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던 민족을 흔히 '히브리인' 또는 '이스라엘인'이라  일컫는다.  이 두 호칭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같으나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히브리인 - 어원적으로 '히브리'라는 말은 '강 저편  땅'이라는  의미의  '에벧'(Eber)이라는 말(25절)에서 파생했다는 견해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최초로 입국할 때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왔다는 사실에 유래하여 '건너다'는 뜻의 서부  셈어  '아비루'(Abiru)에서 파생했다는 견해, 그리고 가나안에 체류한 '무리'라는 측면에서  가나안어 '하베르'(Haber, 무리)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또한 사회적 하급 계층을  지칭하는 아카드어 '하비루'(Habiru)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하여튼 '히브리'(Hebrew)란 말은 '셈 계통의 가나안 이주자'를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이 '히브리인'이란 말이 아라비아에서 이주해  온  동부 셈족의 아람족속(아카드, 앗수르, 바벧론)이 아니라 서부 셈족 계통(베니게,  아모리, 모압)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러한 지역적 분류 개념에서 탈피하여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누구나 히브리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순수 혈통을  고집하며 자랑해 온 히브리인들은 혈통적인 순수를 온전히 보존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방 여인과의 결혼을 통해 대를 잇거나 타민족을 집단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혼혈족을 만들고 말았다(40:50-52; 민 12:1).
     이스라엘인 - '히브리인'의 조상을 아브라함으로 본다면, 에돔, 모압, 암몬 족속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인'이란 '야곱의 혈통과 신앙을  전수받은 자'라는 뜻으로 더욱 축소적이고 편협한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그들이  야곱의 후손이라면 애굽의 노예 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돌아온  사람만이  '이스라엘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인 중에는 가나안에 계속 거주하다가 이들과 합류한 자들도  있었다는 점에서, 혈통적인 의미보다 여호와 신앙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공동체라는  의미가 짙다.
   한편 혈통적, 신앙적 우월성을 내세우며 왜곡된 폐쇄성에  젖어  교만했던  그들은 '히브리인' 또는 '이스라엘인'이라는 이름의 뜻이 지니는 신앙적 의무를 망각함으로써 선지자들과 예수로부터 강한 책망을 면치 못했다. 사실 구속사의 일익을 담당했던  그들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혈통적 조건에 의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행 4:12). 신약 시대에 이르러 혈통으로서의  이스라엘인의 특권은 상실되고, 오직 예수 안에 거하는 자가 새로운(영적) 이스라엘인이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벧전 2:9, 10). 죽음의 길을 걷고 있던 이방인을 영적  이스라
엘인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은 당신의 나라 건설에 모든 인류를 동참케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는 영적 이스라엘인이 된 것을 교만의 근거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과 감사와 헌신의 동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일하머

 

 D.노아의 아들들 (10:1-32)
 서술의 이 시점에서 이름의 목록을 나열하고 있는 저자의 목적은 1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의 언급 속에서 드러난다: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32절). 이 이름들은 독자에게 창세기와 오경의 나머지 사건들에 대한 배경으로서의 나라들에 대한 개관적인 관점을 제공해 준다. 이 목록은 복잡하며 한 전형을 이루기 위한 선택과 구성의 많은 흔적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전형은 칠십이라는 숫자에 의해서 결정 된다. 이 목록에는 정확히 칠십개의 나라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 속의 다른 족보들의 경우와 같이 이 목록의 형태는 나라들의 전체적 개념이 칠십이라는 숫자에 의해서 표현되는 일종의 숫자적 상징주의에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나라들'은 그 궁극적인 기원을 노아의 세 아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전체 인류는 엄밀하게 한정되고 있다. 저자는 독자가 인류 사이의 통일성에 대한 관점을 놓치기를 원치 않는다.

 아브라함은 이처럼 한 인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저자는 비록 '아브라함의 씨'와 '이스라엘'에 그 초점을 한정시키려는 전환점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확고한 기초를 놓고 있다. 그것은 곧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회복될 것이라는 점이다(12:3). 저자가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의 전체 숫자가 또한 칠십임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46:27: 출 l:5 참고). 아브라함 이전에 나라들의 수는 칠십이었다. 아브라함 후에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의 수도 역시 칠십이었다. 나라들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그 나라들의 숫자에 이르른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자세한 부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때에 우리는 창세기의 저자가 아브라함의 '씨'의 역할에 대하여 특별한 이해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나라들의 숫자와 아브라함의 자손의 숫자를 연결시킴으로써 독자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을 새로운 인류로서 제시하며 아브라함 자신은 '열국의 아비'(창 17:5)인 두번째 아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된 '씨'를 통하여 하나닙의 원래의
축복은 회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창세기의 처음 부분들의 형성 뒤에는 많은 신학적인 고찰이  놓여 있다. 신명기 32:8에서 모세는 이 부분올 암시하는 언급을 하고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롬 4: 16에서의 아브라함에 대한 바울의 관점을 참고하라: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0장은 단순히 칠십명의 이름의 목록이 아니다. 이 목록을 통하여 저자는 또한 몇 개의 역사적 기술을 덧붙이고 있다(8-12,14,19,25절). 이 각각의 기술들은 창세기에 기록될 특별한 사건과 특별한 연관성을 지난다. 예를 들면 니므롯과 바벨론에 있는 그의 왕국에 대한 기술은 다음 장에서의 '바벨탑' 서술에 대한 넓은 배경을 제공해준다. 대체로 이 기술들은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나라들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예를 들면 8-12절의 바벨론, 14절의 블레셋, 19에서의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한 가나안인들).

1. 셈, 함, 그리고 야벳 (10:1)
 10장은 '노아의 아들들'의 이름의 목록과 '홍수 후에'라는 시간적 언급에 의해서 처음과 나중이 묶여진다(1,32절). 저자는 10장의 목록이 홍수로부터 출발되는 서술선상에서의 문맥을 떠나서 읽혀지도록 의도하지 않았다. 문맥에 대한 이러한 분명한 주의는 저자가 이 서술 속에서 밝히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가 독자가 그것을 놓치기를 원치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2. 야벳의 자손들 (10:2-5)
 이 족보는 '바닷가의 땅'으로 여겨지는 나라들로 시작된다(5절). 이 나라들은 저자의 지리적 한계 곧 알려진 세계의 테두리를 형성하는 것으로서 함(가나안)과 셈의 나라들을 넘어서는 일종의 제 3세계를 의미한다. 그 초점이 하나님의 우주적인 왕국의 설립에 맞추어지는 후기 성경 문학 속에서 이 나라들은 하나님의 계획의 범위가 온 인류를 포함함을 보여주기 위하여 다시 나타난다: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 다스리리니...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시 72:8-l0). 이미 모세오경 속에서 저자는 미래의 관점으로부터 이 나라들에 자신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발람의 예언에 의하면 미래의 왕이 임할 때에 이 나라들은 다시금 하나닙의 다스림 속으로 포함될 것이다(민 24:23-24: 민 24장에 대한 아래의 주석을 보라) .

 저자의 선택에 있어서의 전형은 야벳의 자손의 족보 안에서 분명해게 드러난다. 모두 열네 명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그것은 야벳의 일곱 아들들과(창 10:2) 일곱 명의 손자들이다(3-4절). 저자는 야벳의 일곱 아들들 중에서 다섯 아들들(마곡. 마대. 두발, 메섹, 그리고 디라스)은 생략하고 오직 고벨과 야완의 아들들만을 열거한다(3-4절). 그리하여 저자의 의도는 명단 전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일곱이라는 숫자로부터 얻어지는 대표적인 명단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3. 함의 자손들(10:6-20)
 저자는 함의 자손의 족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다루었다. 그것은 단순히 함의 네 아들인 구스, 미스라임, 붓, 그리고 가나안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6절) 야벳의 자손의 족보와 같은 방법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또한 야벳의 족보의 경우와 같이 첫번째 언급된 아들의 손자들을 열거한다(구스. 7절a) . 그러나 다음 아들(미스라임. 13절)로 넘어가기 전에 그는 증손자들을 열거한다(라아마의 아들들, 7절b). 그 결과는 또 다시 '일곱 아들들'의 이름을 열거함으로써 완전한 족보의 효과를 가져왔다. 저자는 이들 일곱명의 이름에 뒤이어서 니므롯의 업적과 그의 성에 대한 서술을 삽입시킨다(8-12절). 이것은 지금까지의 족보의 특징을 이루었던 일곱의 형태를 깨뜨리고 들어온 것이다. 이 작은 서술의 증요성은 그것이 다음 장의 주제가 되는 바벨론 성(11:l-9)에 대한 서론이 된다는 사실에 놓여있다. 앗수르와 바벨론의 밀접한 연관성 역시 중요한데(10:11-12) 뒤이어 나오는 명단 속에서 앗수르는 셈의 아들들과 연결된다(10:22).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서술의 삽입을 통하여 중요한 도시인 바벨론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앗수르를 셈과의 자연적인 연관성으로부터 이끌어내어서 그것을 새롭게 바벨론과 동일시한다(앗수르가 또 다시 바벨론 (에벨)과 연결되는 민 24:24를 참고하라. 그리하여 저자는 어떠한 성도 바벨론과 연결되거나 동일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것은 바벨론의 실제 모습보다 더 큰 상징적인 중요성을 처음부터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의미는 이사야서에서 충분히 발전되며 (앗수르가 바벨론과 동일시 되는 13-14장 참고) 또한 계시록 17장의 '큰 비밀의 바벨론'의 모습 속에서 역시 발전되고 있다. 미가 전지자 역시 앗수르를 '니므롯 땅'으로 말할 수 있었다(미 5:6).

 저자는 또 다시 일곱 명의 이름을 포한하는 미스라임의 자손들의 목록과 함께(창 10:13-14) 함의 자손들의 족보로 되돌아간다. 이것은 일곱이라는 숫자에 의해서 그 형태가 이루어지는 마지막 목록이다. 나머지 이름의 목록들은 전체 이름의 목록을 지배하는 '칠십개의 나라들'이라는 전체 숫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정 숫자에 의해서 영향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칠십명의 이름을 통하여 최종적인 형태를 이루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곱명의 이룹의 목록으로 이루어지는 더 작은 형태 역시 의도적이다. 칠십이라는 숫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칠이라는 숫자 뒤에도 완성의 개념이 놓여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곱명의 이름을 포함하는 목록들에 대하여 저자가 실제로 모든 아들들의 목록을 제시하지 않고 그 집단의 자손들의 완전한 숫자를 제시하기를
의도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더 이상의 언급없이 그들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저자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목록들로 말미암아('일곱'이라는 숫자를 지니지 아니한 것들: 15-29절) 그 초점은 훨씬 포괄적인 것이 된다. 그 이유는 가나안인들과 셈족이 된 이 자손들이 창세기와 모세오경의 서술들에 있어서 훨씬 두드러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별히 가나안 지역의 정확한 구역에 관심을 기울이는데(19절: 민 34:l-12 참고) 그 이유는 그 땅의 지역이 오경을 기록함에 있어서의 자신의 핵심적인 목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록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지만(12:6)'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이었다.

4. 셈의 자손들(10:21-31)
 저자는 서사적인 도입부와 함께(10:21) 셈의 자손들의 목록을 시작한다. 이 도입부의 목적은 10장 전체를 통하여 흐르고 있는 중요한 연계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저자는 셈과 야벳의 관계와('셈은.. 야벳의 형이라') 셈과 그 후에 나오는 족보들과의 관계에('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시선을 집중시킨다. 함에 대한 언급 없이 셈과 야벳을 함께 언급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데 이것은 아마도 9:26-27에서 셈과 야벳에 대한 노아의 축복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의도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역시 가나안은 제외되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저자가 독자의 시선을 서술의 중요한 관점에 - 이 경우에 있어서는 축복의 자선 - 유지시키기 위하여 과거의 서술들을 상기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에벨의 자손들'에 대한 언급은 앞에 놓여있는 족보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의 출생을 가져왔다(11:10-26, 민 24:24 참고). 그러므로 노아의 자선들의 목록을 완성시키기 이전에 저자는 이 목록을 그 이전과 이후의 서술의 문익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이 짧은 요약을 십입시키고 있다.

 비록 그것이 그 이전의 목록들의 경우처럼 어떤 특정한 숫자적 형태를 따라가지는 않지만 셈의 자손들의 목록 또한 매우 선택적이다. 오히려 셈의 가계는 에벨의 두 아들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에서 둘째 아들인 욕단의 가계를 계속해서 따라간다(10:26-29). 바벨론의 건설에 대한 서술(11:1-9) 이후에 셈의 또 다른 족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중요한데 여기에서 족보는 에벨의 첫째 아들인 벨렉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로 연결된다(11:10-26). 이러한 방법으로 셈의 족보를 열거함으로써 저자의 자손들을 바벨론 성의 양쪽으로 나누어 놓는다. 그 분기점은 에벨의 두 아들인 벨렉과 욕단 사이에 놓여진다. 한 선은 바벨론의 건설에 이르렀고 다른 선은 아브라함의 가계에 이르렀다. 저자는 벨렉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음'(10:25)을 언급함으로써 셈의 가계에 있어서의 이러한 분리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준다. 성경 본문을 통하여 '땅'은 때때로 '땅의 거주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땅은 언어의 혼잡으로 인하여 나뉘어졌을 뿐만 아니라(11: 1) 더 근본적으로는 인류의 큰 두 계통이 셈의 자손들의 중간에서부터 나뉘어졌다. 그것은 곧 바벨론의 건설을 통하여 스스로 자기의 이름(셈 11:4)을 높이려고 했던 자들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을 통하여 그 이름(셈 12:2)을 높이려는 자들이다.

5. 노아 자손의 족속들 (10:32)
 1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나라들의 나누임에 대한 주제를 다시 다루고 있다: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저자의 목적은 다음에 나오는 바벨론 서술에 대한 배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는 10장에서 연대기적이요 언어적으로 묘사했던 것을 11장에서는 신학적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그것은 곧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나라들의 나누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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