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디모데 후서 2장 20-22절



큰 집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권세가나 세력가 혹은 부자들이 사는 집을 생각나게 한다. 궁궐이나 귀족들의 성이나 대저택을 생각하보라. 그런 큰 집에는 여러가지 그릇들이 있을 것이다. 금이나 은 으로 만들어지고 각종 보석으로 새겨진 귀하고 아릅다운 그릇도 있을 것이고 여러가지 잡다한 일에 쓰여지는 천한그릇들 이를테면 흙으로 만들어진 토기나 나무로 만들어진 목기등의 그릇도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사용한 큰 집이란  하나님이 집 곧 교회에 대한 비유임에 틀림없다. 큰 집에 금이나 은같은 보석으로 만들어져 아주 귀한 모임에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그릇도 있고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져서  잡일이나 천한 일에 아무렇게나 쉽게 쓰는 그릇도 있듯이 하나님의 교회에도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위해서 준비되는 귀한 사람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점은 큰집에 금은으로 된 귀한 그릇과 나무나 흙으로 된 천한 그릇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도 귀한 사람이 있고 천한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읽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그리스도의 권속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두 귀한 형제 자매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두 귀한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을 구별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큰집의 귀한그 릇과  천한 그릇의 비유를 그대로 적용시켜 교회에도 귀히 사용되는 귀한 사람이 있고 천히 사용되는 천한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차별하려고 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전체적 맥락에서 전혀 옳지 않을 뿐더러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의도하는 바도 아니다. 그래서 다음 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천한 그릇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에는 천한 그릇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에서는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 본문의 문맥을 따르면 보다 앞에서 말하고  있는 거짓된 가르침, 대표적으로  부활이 지나갔다고 가르치는  그러한 잘못된 거짓 가르침을 말한다(16-18절) - 빠지지않고 바른 믿음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보존한다면 귀한 그릇이 되어서 큰 집에서 귀한 그릇이 귀한 모임이나 일에 사용되듯이 그렇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합당한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에 귀하게 사용될수있다. 바울은 귀하게 예비된 그릇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천한 그릇은 언급하지 않지만 그러나  우리가 꼭 천한 그릇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면 본문의 문맥상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히는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거나 그것에  현혹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실상 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될 수 없고 또 하나님의 교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어떤 누구도 천한 그릇으로 차별될 어떤 근거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신을 낮추어 천하게 여겨지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오히려 더욱 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선생이 되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긴 일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과 성경의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귀하게 여겨지고 하나님의 선한 일에 사용하기에 합당한 귀한 그릇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연속성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권한다. 이 말에서 우리는 사람을 더럽히고 천한 그릇으로 만들수 있는 원인중의 하나가 청년의 정욕임을 보게된다. 정욕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언제든지 옳지 못한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청년의 정욕에 대해서 말하여진것은 다름 아닌 디모데가 아직 청년에 속한 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귀한 그릇으로 인정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에 예비되려면 청년의 정욕을 거부해야 한다. 이 말은 뒤에 오는  말과 연결시켜 이해하면 청년의 정욕으로 더럽혀진 자들과 함께 하지 말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가 함께 해야한다는 것이다. 청년의 정욕과 깨끗한 마음은 서로 대립된 것이며 청년의 정욕이 천한 그릇이라면  깨끗한 마음은 귀한 그릇이다. 그리고 문맥으로 보아 깨끗한 마음은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는 것이며 반대로 청년의 정욕은 그것의 반대 즉 불의와 불신과 미움과 다툼일 것이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를 좇으면 하나님의 집에서 귀한 그릇이 되며 반대로 청년이 정욕을 좇아 불의와 불신과 미움과 다툼을 좇으면 천한 그릇이 될것이며 이러한 천한 그릇은 큰집에는 천히 사용되기위해서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는 용납될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든지 정결하고 순전하고 거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집에서는 천한 그릇에 대해서 말해서 안되며  말할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청년의 정욕에 대해서는 두가지로 크게 이해할수 있다. 하나는 육체적이고 성적인 정욕일 것이다. 교회 젊은 청년의 모임에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육체적이고 성적인 정욕이나 음란한 생각이 지배해서는 안된다. 항상 주안에서 형제 자매로 서 일체 거룩함으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많은 교회 모임도 그렇지만 특히 청년들의 모임이  남녀 간의 방종한 애정관계와 상호간의 시기로 인해서 마지막에는 서로 증오와 미움으로 얼룩져 해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의 모임 중에 사탄은 지속적으로 음란한 정욕으로 사람을 미혹하여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더러워지도록 갖은 역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청년의 정욕을 거부해야한다. 우리가 읽는  본문에서 피하고라고 되어 있지만 이 단어는 사실 피하다는 의미보다는 더 강하게 거부하다는 뜻을 가진다. 즉 청년의 정욕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강하게 거부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단순히 육체의 정욕을 넘어서 과도하거나 일방적으로 치우치기 쉬운 열정을 말할수도 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피가 뜨거운 젊은 사람들은 미숙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앞서가며 쉽게 노하고 쉽게 분을 내거나 싸우거나  극단적으로  치우쳐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아주 높으며, 순리를 따라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히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리기보다는 앞장서서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욕구에 쉽게 노출될수 있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망하고 포기하며 불신자의 시험에 빠질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의 젊은 지도자 디모데에게 이러한 청년의 정욕을 단호하게 거부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무리들과 어울리지 말고 오히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바울은 말한다.



청년의 정욕은 한편으로는 육체적인 음욕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방자한 혈기로 젊은이를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지 못하게  방해한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 가르침에 유념하여 육체의 정욕과  과도한 혈기를 다스리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오늘 날 우리 교회에는 많은 젊은 일꾼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혜를 주어 청년이 정욕을 거부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며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 행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든 젊은이들이 누구든지 거짓 가르침과 청년의 정욕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게 하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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