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마태복음 4장 1-11절



본문은 예수께서 받은 광야 시험에 대한 마태복음의 증거이다. 마태복음 3장 마지막 단락에서 예수께서는 요단에 이르러 세례 요한에게세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물에서 나올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기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보고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를 하늘에서부터 들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장 16-17절)



세례를 받으시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장 17절) 전파하면서 본격적인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 그가 성령에 의해 이끌리어 광야로 간 것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서였다. 예수께서 그 중요한 구원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야만 했는지는 우리가 말할 수없다 하더라도 주기도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고..이렇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신 주께서 친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목적은 두말할 필요없이 그가 이제 구원해야할 자기 백성을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은 혈육에 속한 자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혈육에 속하여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브리서 2장 14-15절)



예수의 구원의 목표는 한편으로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원수를 사로잡아 자기 발아래 복종시키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에게서 받은 시험은 하와를 속이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였던 선악과를 아담으로 먹게하여 온 인류를 죄악과 사망의 고통 속에 빠지게 했던 사탄에게 직접 시험을 받고 그 시험을 몸소 이겨냄으로써 종국적으로 사탄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멸하여 사람을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하고 하나님이 원래 지으셨던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돌려 회복하려는 거룩한 구원의 목적성에 대한 유형론적 상징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그러기에 이 시험은 예수의 생애에 단지 우발적으로 생겨난 일시적인 시험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성령에 의해서 친히 이끌려진 시험이었고 예수의 삶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도전해 온 시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탄의 시험의 목적은 다른 아닌 예수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마태가 증거하는 증거를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받은 시험의 깊은 부분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왜나하면 이미 말한 것처럼 이 시험은 예수께서 몸소 받은 시험이었지만 동시에 오늘 이 시간에도 구원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닥쳐오는 시험, 즉삼킬 자를 찾아서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는 사탄 마귀의 모든 시험을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유형론적 대표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문에서 살펴보겠지만 마귀는 시험할 때 일관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이러한 마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귀의 시험은 한편으로는 아주 단순하고 조잡하고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집요하며 끈질기며 교묘하고 때로는 얼마나 인간적인 호소력을 갖는가?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마귀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종국적 목표를 위해서 우리를 시험하는가를 깨닫게 될것이다.



먼저 본문의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마귀에게 시험받으로 간다는 도입부분(1절)과 시험을 무사히 이겨내고 천사들의 수종을 받는 마침 부분(11절)을 제외하면 2절에서 10절까지 9절에 걸쳐서 시험의 종류에 따라서 세절씩 구분해서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번째 시험: 2-4절(3절)

두번째 시험: 5-7절(3절)

세번째 시험:8-10절(3절)

시험의 내용을 보여주는 본문은 2-10절까지 9절인데 그 중 가장 가운데 절인 6절은 마귀가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시험하고 있다. 세번의 시험 중에서 두번째 시험 중간이며 동시에 전체 시험의 가장 중심에 마귀는 스스로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를 시험하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히 예수를 시험하는 자신의 일도 하나님의 중요한 일이라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의 중간에는 항상 이렇게 마귀의 시험이 우리를 노리고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럼 이제 예수가 겪은 첫번째 시험부터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험을 당할 때에 시험을 하는 자가 시험하고자 하는 목적과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쉽게 시험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도 출제자는 수험생이 특정한 문제를 풀 때 실수하거나 빠지기를 기대하는 함정을 두고 출제를 하기 마련이다. 준비를 충분히 하고 문제를 정확하게 숙지하는 자는 그러한 출제자의 함정을 피해가지만 피상적으로 준비했거나 시험칠 때 신중하지 못하고 덤벙된다면 반드시 출제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그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본인은 시험을 잘 치렀다고 생각하는데 뒤에 점수를 보면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지 못한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것을 다 틀렸다고 말해야 하는 부끄럼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아는 문제를 틀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알지 못한 것이고 시험하는 자의 함정에 걸렸다는 점에서 시험받는 자는 시험하는 자에게 진 것이다. 바로 시험하는 자는 시험받는 자가 넘어지거나 빠지기를 기대하는 장애물이나 함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에서도 우리는 마귀가 시험하면서 어떤 함정을 파두고 예수가 넘어지기를 기대하는가를 우리는 간파해야 할 것이다. 마귀가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시험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귀의 의도와 목적은 영적인 분별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마귀는 아주 교묘하기 때문에 아주 간단하고 분명한 질문인 듯하지만 그 안에 아주 복잡한 계획을 심어 두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마귀의 시험도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뿌려둔 곡식에다가 마귀는 자기의 가라지를 함께 뿌려둔다. 그래서 완전히 다 자라고 나면 분명히 구별될 일이지만 자라는 중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곡식과 가라지 비유)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일을 결말에 가서야 바르게 깨닫게 되지만 그 도중에는 종종 하나님의 일과 마귀의 일을 구별하는게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를 시험하는 자가 그 시험으로 어떤 목표와 목적을 갖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며, 여기 예수의 시험에서 마귀는 자신의 모든 시험이 가지는 종국적인 목표와 궁극적 목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마음에 담아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성령의 능력과 믿음으로 이겨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럼 마귀가 질문 할때 그 질문의 목표와 목적이 무엇인가는 마귀의 질문 자체에서 우리는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언제든지 영적으로 온전한 분별력을 갖는 것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마귀의 요구에서 직접 그 의도를 찾을 것이 아니라 예수의 대답에서 긔 의도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항상 마귀를 대적하는 기본적인 정석이다. 마귀가 어떤 의도로 예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예수가 마귀의 요구에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를 통해서만 분명히 할려진다. 예수는 시험하는 자로서 마귀가 어떤 함정을 파두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기에게 그러한 요구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으며, 그 마귀의 요구에 합당하고 효과적으로 대답하여 마귀의 생각을 단번에 일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귀가 예수에게 어떤 요구를 왜 하는지를 예수가 마귀의 요구에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를 통해서 알수 있을 뿐이다.



자 그럼 이제 본문의 아키텍쳐를 한번 정확하게 살펴보자. 전체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간 부분은 다시 세 부분은으로 나누어지고 나누어진 각 부분은 또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체는 시험으로 끌어들이는 부분과 시험하는 부분과 시험에서 나오는 부분으로 나뉘고 시험 부분은 세개의 시험으로 나뉘고 각 시험은 설정된 상황과 시험하는 자의 요구와 시험받는 자의 응답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키텍쳐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시험으로 들어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는 광야로 갔다. 그 인도자는 성령이있고 목적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서이다. 광야는 종종 하나님이 자기 성도를 훈련하는 곳이다. 예수도 위대한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는다. 광야는 사람이 스스로 살아남기 아주 힘든 곳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적으로 인도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온 후에 광야에서 40년간을 보냈다. 그 광야길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였으며 아침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고 저녁에는 하나님이 바람으로 몰아오는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물을 마시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놀라운 생존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려움 없이 사는 법 즉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바로 광야생활이다. 예수도 바로 이러한 광야 생활로 인도되었다. 예수는 이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살도록 요구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를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 마귀가 시험하는 자로 기다리고 있었다.



2. 시험 내용



1. 첫번째 시험(2-4절)



설정상황(2절):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첫번째 시험으로 설정된 상황은 예수가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낮에는 불처럼 뜨겁고 밤에는 몸시 추운 그 광야에서 40일 밤과 낮 아무것도 먹지 않고 보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온 후 광야을 40년간 방황했던 것처럼 예수는 광야로 이끌려 와서 40일을 주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금식했다. 그 척박한 땅에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에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시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설정된 상황이다. 그래서 예수는 몹시 주린 상태였다. 사실 보통 사람에게는 그 광야에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도 않고 견딘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모진 시험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금식이 요구된 광야 40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사는 삶의 모습이다.



마귀의 요구(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0일 금식후에 예수는 몹시 주린 상태였다. 예수의 몸은 죄가 없다는 것만 빼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하므로 그 광야에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감당하는 동안 몹시 주리고 지치고 피곤한 상태였을 것이다. 이럴 때에 마귀가 예수에게 나아와서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면 광야의 돌들을 떡덩이라가 되게 하라고 요구한다. 마귀는 이 요구를 통해서 무엇을 시험하고자 했는가? 우리는 흔히 예수의 배고픔을 시험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40일 금식후 몹시 주린 예수에게 배고픈데 광야에서 먹을 것은 구할 수 없고 예수는 하나님 아들로서 능력도 충분하니 광야의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라는 시험을 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전적으로 틀렸다거나 일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몹시 주린 예수에게 돌이라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마귀의 요구는 그렇게 황당하지는 않은 요구일 것이다.



배고픈 예수에게 예수의 배고픔을 시험하는 것이 여기서 마귀의 목적인 것인가? 마귀는 여기서 배고픔이 얼마나 어려운 고통이냐 그러니 배고픔을 물리치라고 요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문제의 핵심은 배고픔이 아닌 듯하다.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마귀가 시험하는 내용의 본질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이라면 하는 전제와 돌로 떡을 만들라는 요구에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배고픔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로서 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 즉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데 마귀의 요구가 있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도 된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그 능력으로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마귀는 요구한다. 광야의 돌들을 떡덩이로 만들어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배고픔은 얼마나 큰 고통이며 배고픈 자들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광야의 돌이 다 떡이 되어서 배고픈 자들이 먹고 배부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실제로 오병이어의 기적도 결코 광야의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서 제공한 기적은 아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결코 광야의 돌덩이로 떡덩이라가 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고 배불러서 예수를 잡아서 임금삼으려는 민중들에게 말하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한복음 6장 26-27절)



예수의 대답(4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돌로 떡덩이로 만들어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라는 마귀의 요구에 대해서 예수는 성경말씀으로 대답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개인적으로 마귀의 시험에 대처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어진 영적질서를 예수는 좇는다. 앞에서는 누차 얘기했지만 마귀의 시험이 요구하는 함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에서 찾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마귀의 시험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으며 이것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돌덩이를 떡덩이가 되게라하는 마귀의 요구에 신명기 8장의 말씀으로 대답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명기 8장 2-3절)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하시면서 낮추시고 주리게 하면서 만나로 먹인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로 보건데 예수가 광야에서의 40일 밤낮으로 금식한 참된 이유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의 원리를 몸으로 철저하게 그러나 전인류를 대신해서 유형론적으로 숙지하는 데 있음이 자명하다. 마귀가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돌들을 떡덩이라가 되게 하라는 요구는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사람이 사는 것이 떡에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에게 40일을 금식해보니 어떠냐 이제 인생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줄 알겠느냐 인생의 참된 목적은 바로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있고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느냐.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광야의 돌들들 떡덩이로 변하게 하여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라 - 이것이 바로 마귀가 예수를 시험한 함의였고 예수는 마귀의 그 시험을 간파하고 사람이 사는 것은 떡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상기시킴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다. 종종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참으로 인간적이고 위대하게 인정되지만 그럼에도 성경은 그것이 모든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떡으로만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인생이 참된 인생이요 하나님이 인생에게 원하시는 참된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자녀에게 광야라는 척박하고 고달픈 길을 예비하는 것은 바로 이 진리를 몸에 익히기 위한 훈련인 것이다.



2. 두번째 시험(5-7절)



설정상황(5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첫번째 시험에서 성공하지 못한 마귀는 이제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다.



마귀의 요구(6절):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성전위 꼭대기에 세우고 성전에서 뛰어내려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동안 유대인들로부터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신자임을 거듭해서 가르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요한복음에서 아주 적극적이고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다. 예수는 세상에서 자신의 사역을 하는동안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계속해서 요구받게 된다는 것을 이미 암시한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태복음 12장 38-39절),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마가복음 8장 11-12절),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요한복음 2장 18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요한복음 6장 30절)



시험하는 자 마귀는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돌을 떡엉이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아들됨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이제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너가 하나님 아들임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이적을 보여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는 모습을 말한다. 마귀의 요구에서 마귀의 뜻을 찾으면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여기서도 마귀의 숨겨진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에서 읽는데 실패해서는 안된다.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놀라운 표적을 세상에서 행해서 주목을 받으면서 자기가 진짜 하나님이 아들임을 세상에 보여주라는 의도는 마귀의 아주 피상적인 의도일 뿐이다. 마귀가 처음에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를 통해서 한 것처럼 이번에는 인간의 명예와 명성에 관한 심리적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예수를 시험에서 함정에 넘어지게 하고자 한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사람의 눈에는 더욱 절실하게 보인다. 그래서 첫시험이 생물학적 배고픔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심리적 배고픔에 관한 것 즉 명예와 명성과 이름에 대한 갈망 관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쉽다. 실제로 그러하다. 마귀는 처음에 배고픔이라는 생물학적 육체적 욕구에서 이제는 심리적 정신적 욕구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것을 멈추어 버리면 이것은 아직 피상적인 교훈일 뿐이다. 이렇게만 알고 있다는 우리는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며 마귀는 이런 쉬운 결론으로 우리를 언제나 속이며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마귀도 그냥 쉽게 물러서지는 않는다. 첫 시험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고 마귀 자신도 성경말씀을 시도한다. 여기서 우리는 혼동해서는 안된다. 혹자는 같은 말이라도 성경말씀 조차도 하나님이 하면 하나님 말씀이고 마귀가 하면 마귀 말이라는 어리석고 지혜없는 주장을 하곤 한다. 여기도 마귀가 인용한 성경말씀은 절대적으로 성경말씀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람이 쓰든지 마귀가 쓰든지 동일한 하나님의 권위로 인친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사용하면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를 오용한 댓가를 스스로 치르야 한다. 성경말씀을 마귀가 인용하면 마귀의 말이 된다는게 도대체 말이 되는 말인가? 그런데 가끔 그런 어리석고 분별없는 말을 하는 자들이 더러 있어서 잠시 주의를 환기하고자 했다.



이번에는 마귀도 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인증하고자 한다. 예수가 성경으로 대응하면 자기도 성경으로 예수를 시험하겠다는 의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마귀는 자기가 예수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코 터무니없는 요구가 아니고 성경에서 충분히 인증되어지는 그러한 요구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그 말씀을 본래의 목적에 따라 읽지 않고 자기의 뜻이나 사상을 정당화하는 논거나 징검다리로 사용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며 부당한 일이다. 이런 일에 목사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은 아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설교자들이 설교하면서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먼저 다 정해놓고 그 생각을 이어가는 수단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용한다면 그건 바로 마귀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말씀을 인증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될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단들이나 잘못된 가르침들이 이러한 오류에서 근거하고 있다. 성경의 참된 뜻을 그 성경의 텍스트에서 찾지 않고 미리 자신의 생각을 다 세워놓고 그 생각의 자리에 말씀으로 포장하고 위장하는 악질적인 왜곡으로 가득채워 놓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모독죄에 해당하며 마귀에 속하여 결코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마귀는 성전꼭대기에 뛰어 내리도록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편 91장 11절)말씀을 근거로 내세운다.



예수의 대답(7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의 시험의 숨겨진 의도는 언제나 예수의 대답에서만 찾아진다. 예수는 성경을 통한 시험에 대해서 이는 마귀가 자기가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래서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대답으로 대응하였다. 즉 마귀가 예수를 빠지게 하려는 계획은 예수가 온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하도록 심리적 정신적 욕구를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 숨은 의도는 하나님의 시험하고 예수로 하여금 친히 하나님을 시험하게 하려는 것이었음이 예수의 대답을 통해서 명백하게 주어진다. 이와 같이 마귀의 시험은 참으로 교묘하다. 사실 마귀의 종국적인 목적은 언제나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마귀는 우리를 시험함으로써 우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목표로 한다.



욥의 시험이 생겨난 결과도 마찬가지다. 사탄은 욥을 참소함으로써 욥에게 관심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모든 이유를 돌렸다. 욥의 개인적인 경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편애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섬기지 하나님이 욥을 적으로 만들면 욥도 하나님을 적으로 생각하고 저주할 것이라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사탄은 원래부터 참소하는 자로서 세상의 모든 책임을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리려는 악하고 왜곡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로 사탄의 의도에 잘 맞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성전 꼭대기에서 한번 뛰어내리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 사자를 시켜 너를 붙들어서 네 발이 땅에 부딪히지 않게 해줄거라고 마귀는 말하면서 결국은 진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이 참으로 그러한지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마귀가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예수가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그 표적을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실증과 영광을 얻으라는 표면상의 요구 뒤에는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리고 진짜 그 아들에 대해서 성경의 말씀이 참된지 한번 시험해보려는 본래 속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예수는 이 사탄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고 한마디로 잘라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대답을 통해서 시험을 물리친다. 우리는 므리바의 시험을 기억해야한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출애굽기 17장 7절)



예수는 이 시험에서도 역시 자기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대응한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바로 모든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는 참된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증해 주는 것이다.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진리요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는 참된 첩경이기 때문이다.



3. 세번째 시험(8-10절)



설정상황(8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제 마귀는 세번째로 예수를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준다. 처음에 광야에서 시작하여 성전 꼭대기로 마지막으로 높은 산으로 데로고 간다. 낮은 광야 땅에서 높은 성전으로 그 다음 지극히 높은 높은 산으로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시험의 단계도 생물학적 육체적 단계에서 심리적이고 정신적 단계로 마지막으로 영적인 믿음의 단계에까지 올라간다. 즉 마귀의 시험은 처음에는 생물학적인 육체나 물질적인 세상에서 출발하는 듯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점차 인간의 마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세계로 나아가고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신앙의 단계로 부딪쳐오게 된다. 알고보면 육체적인 욕구인듯 보이는 문제가 마지막에는 결국 영적인 신앙의 문제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마귀의 요구(9절):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여기서 마귀는 모든 시험들에 숨어있는 본래의 목적을 드러낸다. 마귀가 모든 시험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궁극적 결과물이다. 마귀의 모든 시험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 자신을 경배하라는 메시지가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진리로서 성도들은 마음 속에 깊이 아주 철저하게 새기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시험에서라도 우리가 굴복한다면 결국 최후의 결과적 요구는 바로 마귀 자신을 경배하라는 데에 봉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모든 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주면서 이 모든 것을 줄테니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예수를 시험한다. 누가복음의 증거에 따르면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누가복음 4장 5-7절)



사실 이 천하만국을 마귀가 자기 임의대로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준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다. 만물 위에서 만물 가운데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요,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스스로 참칭하면서 마귀는 만국의 영광이 마치 자기 것인양 내세우며 예수에게 마귀를 경배하도록 시험한다. 참으로 참람한 배도요 모독이다. 마귀의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데살로니가 후서 2장 4절) 마귀의 본래 의도는 하나님보다 더 높아져서 스스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므로 그의 시험의 궁극적 요구도 다름아닌 자신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에게 스스로 만국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자기에게 경배하면 그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시험한다.



이미 말한 것처럼 여기서도 마귀의 시험의 겉모습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권력에 대한 욕구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래의 목적은 우리의 권력욕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경배하게 만들려는 영적인 맹목성이다.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우상숭배의 본질이요 이런 점에서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을 하나님인양 섬기려는 피할 수없는 충동을 가진 존재로서 이른 바 누구 말처럼 우상제조기이며 우상제조공장이다. 마귀는 여기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우상숭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와 책임은 다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의 모든 영광은 자기가 취하려는 극히 불순하고 악독한 도둑놈 내지는 강도 심보가 바로 마귀의 본심이라는 걸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예수의 대답(10절):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번에는 아예 공개적으로 터놓고 요구하는 마귀의 시험에 대해서 예수는 아주 강경하게 대응한다. 왜냐하면 이는 마귀가 자기의 본심을 드러낸 배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감히 스스로 하나님보다 높아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주장하면 마귀를 경배하라고 말하는 마귀의 불경스러운 시험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아주 단호하고 강경하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하면서 마귀의 본래실체를 드러낸다. 시험자 마귀는 다른 아닌 참소자 사탄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하고 거짓을 꾸며내고 하와를 유혹해서 아담으로 함께 선악과를 먹게 만들고 거짓의 아비요 처음부터 살인한 자가 바로 사탄이다. 그래서 예수는 진리를 듣지 않는 유대인에게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한복음 8장 44절) 마귀는 본래부터 거짓말하는 자라서 진리 위에 서지 못하고 그 안에도 진리가 없고 무엇을 말하든지 하나님의 것으로 진리를 말하지 않고 항상 자기 것으로 거짓을 꾸며내어서 말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시험하면서 제공하는 만국의 영광도 자기것이 아니며 마귀의 모든 목표와 목적은 어떤 거짓말을 지어내서라도 사람을 유혹하여 결국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사탄을 섬기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말씀으로서 사탄을 강하게 물리친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은 성도를 시험하는 마귀로서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면 삼킬자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 삼킴을 당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게 되면 종국적으로 사탄의 종으로 살게된다. 예수는 친히 마귀에게 이 모든 시험을 당하였지만 말씀으로 이겨내고 우리 모두 믿는 자의 구주가 되어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우리를 이 시험에서 구원해는 것이다.



사탄의 시험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처음에는 삭막한 광야에서 배고픔이라는 육체적인 대상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성전 꼭대기에서 보다 높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이용해서 마침내는 지극히 높은 산에서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영적으로 맹목이 되어 사탄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도록 하는데까지 그 마수를 뻗친다.



우리 성도의 삶은 살아가면서 보통 고난에서부터 시작해서 보다 높은 내적인 가치로 나아가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나아간다. 광야의 훈련에서 시작하여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나아가서 온세상에서 영광을 얻는 삶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일반적 삶의 일련의 이러한 과정 가운데는 반드시 마귀의 시험이 때로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심리적이고 정신적 내적 가치로(여기에는 민족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도 포함된다) 궁극적으로는 성도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는 영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것도 때로는 마귀의 모습으로 때로는 광휘의 천사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면서까지 성도를 시험하러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에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대처하다가는 결국 사탄의 교묘한 숨은 술책에 걸려들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탄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서 사탄의 모든 휼계를 담대하게 물리쳐야 할 것이다.



3. 시험에서 나옴(11절):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탄의 이런 모든 시험을 이기고 관문을 통과한 예수를 이제 천사들이 와서 수종을 든다. 이는 시험을 통과한 자의 영광이다. 그러나 이로써 모든 시험이 끝난 것은 아니다. 왜내하면 마귀가 예수를 떠난 것은 잠시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누가복음 4장 13절)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마지막 최후의 일전을 치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예수의 시험을 통해서 마귀의 시험이 얼마나 교묘한가 살펴보았다. 마귀의 시험은 겉으로 보기에는 배고픔이나 정신적 명성이나 만국의 영광에 대한 권력을 주장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보면 하나님의 말씀에따라 살지 않고 자신의 배를 따라 살게 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게 하여 마침내는 사탄에게 엎드려 절하게 만들려는 본래적인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든지 마귀의 시험에 영합한 자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사탄에게 엎드려 경배하게 된다는 진리를 반드시 성도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의 순간이나 사회적 성공이나 자랑스런 정신적 가치 뒤에서 사탄은 광휘의 천사로 자신을 자랑하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시험하고 마치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사탄에게 엎드려 경배하게 만드는 영적 맹목성의 본래적인 목적을 배후에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목적에 있어서나 방법에 있어서나 무슨 일이든지 그 전체적 과정에까지 오직 진리인 순전한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여 살면서 예수께서 한 것처럼 사탄의 모든 시험을 단호하게 말씀으로 물리쳐야 할것이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다. 성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시험에서 사탄의 모든 숨의 의도를 드러낸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시험에서도 사탄의 악한 계교를 드러내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성령의 가르침 안에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육체 가운데서 교묘히 이루려는 모든 사탄의 악한 시험은 저절로 물리가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며 범사에 악한 것은 가려 그 모양이라도 흉내내지 말고 지혜에는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 선을 행해고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우리는 날마다 주기도를 배우며 산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글에 대한 권리는 ' 은능사'님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