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2장 1-5절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의 부분이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행전 18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레아, 아테네를 지나 도달한 지역으로 사도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서 이루어진 교회이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여러 사람들 즉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과 저자 거리에서 많은 변론을 하였지만 우리가 보기에 주목할만한 성과는 없었던 것 같다.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아테네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의 방식으로 설득하는데 상당한 애로와 한계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리고또 그는 전도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의 일이며 사람의 말로 설득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절실히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하나님은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회당장인 그리스도가 개종하고 소스데네도 그러했다. 유대인의 회당장까지도 개종했다는 것은 상당한 전도의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뿐만아니라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사도행전 18장 9-10절)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18장의 증거에 따르면 일년 6개월을 고린도에 머무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이것은 다른 교회에 비교해 볼때 상당히 긴 기간이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를 전반적으로 읽어 보면 고린도교회에서는 다른 교회에 보내는서신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여러가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는 고린도 교회에서 영적 은사및 활동이 이 상당히 활발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테네에서와 달리 고린도에서는 성령의 증거가 아주 많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서 고린도 교회가 양적으로 어느정도 성장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준다.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일어난 것은 결코 사도 바울의 인간적 노력의 결과로 보다는 먼저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아테네에서는 여러가지 변론에도 큰 성과가 없었지만 고린도에서는 그런 변론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말씀만 전했는데 오히려 많은 사람이 믿는 결과를 얻었다. 고린도 전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때 모든 인간적 말과 지혜를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달리신 것만 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아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아테네에서의 아픔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지만 고린도 전서의 보도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웅변과 수사학이 아주 유명한 도시인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의 지식이나 수사학이나 웅변술이나 아름다운 말과 화려한 문체와 설득력이 있는 논리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말씀만을 전하기로 결심했으며 그렇게 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경험은 오늘 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큰 교훈이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기서 짧지만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도 바울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바 전도에 대한 계시의 지혜를 성령의 도움으로 배우고자 한다. 참고로 전도의 일반적 원리와 근거에 대해서는 밑에 빵과 포도주의 게시판에서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해서 관찰해 보고자 한다.



1. 전도의 방법(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어게 와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 사람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라 것은 헬라어 휘페록헤로서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권세의 자리가 더 적합하다. 지위나 신분이 높고 출신이 좋거나 배운 것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러한 말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말했지만 고린도는 아테네와 더불어 수사학과 웅변술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고린도 사람처럼 말한다는 것은 그러한 수사학이나 웅변술에 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을 할때 문체가 화려하고 중후하며 수사학적 표현이 많고 논리적이며 화려하게 장식된 말이 많아서 상대방을 일단 압도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그러한 표현일 것이다. 여기서 본질적인 것은 말의 지혜의 것으로 하느냐 아니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르 전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증거를 전한다는 것이다.



전도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와 지혜을 전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계시의말씀을 증거할 때는 사람이 생각하는 그러한 아름다운 말이나 표현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실(devine fact)을 정확하게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사도 바울은 무식한 사람이 아니다. 다소에서 이미 로마 문화와 학문에 익숙하고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헬라 문학을 인용하기도한다:아라투스(사도행전 17장 28절)나 메난더(디도서 1장 12절). 히브리어나 히브리 지식으로 말하자면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여 이미 공증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 결코 자신의 그러한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린도전서 1장 19절)고 말씀하시고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린도전서 1장 27절)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고린도전서 1장 28절)신다. 하나님의 증거를 선포함에 있어서 여러가지 인간적으로 고안된 기술적 방법들이 그리 유용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확증된 사실을 가감없이 분명히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도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모범적인 전도의 방법이다.



2. 전도의 내용(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여기서 사도바울은 전도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제시한다. 전도의 내용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이다. 전도의 내용은 십자가의 도이며 십자가의 말씀이다. 유대인에게는 꺼리는 것이고 헬라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인 십자가의 도가 바로 전도의 가장 직접적이 내용이다. 그러므로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린도전서 1장 21절) 원리상 전도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미련한 방법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와 총명을 헛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전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의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 3일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사실, 모든 사람의 구세주가 되었다는 사실, 누구든지 그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말미맘아 의롭다 함과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내용으로 한다. 이는 참으로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비밀한 지식이며 감추어져 있었던 지식이며 마침내 그리스도로 말미암에 우리에게 나타난 영적 지식이다. 영적으로만 구별되는 영적인 지식을, 비록 쉽게 이해될수 없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이 보이신 대로 전하는 것이 전도이다. 그러므로 전도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의 복음인 것이다.



3. 전도의 자세(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전도가 하나님의 증거 혹은 지혜를 전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아름다운 말이나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고 또 그내용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에 대한 것이라면 전도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될 것이며 두렵고 떨릴 것이다. 연약함이란 하나님 죄인으로서 자신을 깊이 깨닫고 있는 사람의 필연적인 자기의식이다. 약함은 바울 자신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그의 대적들이 바울에 대해 말하는 공격이기도 하다:"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고린도후서 10장 10절) 사도 바울의 대적들은 사도 바울의 외모에 대해서 약함을 조롱했고 사도 바울 자신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우리는 바울의 약함에 대해서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의 외모에 대해서 생각해 볼수 있다. 실제로 그는 체구가 왜소하고 연약했다고 생각할 수있다. 그가 건장하고 우람한 체격의 소유자가 아니라 실제로 작고 약하고 볼품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바울은 자기 스스로 말에는 졸하다고 인정한다:"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고린도후서 11장 6절)





둘째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핍박고 고난을 결과로 얻어진 약함에 대한 육체적 상태와 영적 자각을 생각해 볼 수있다:"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린도 후서 11장 23-27절)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스스로 장막을 깁는 업을 하면서 전도에 종사한 사람이다:"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고린도전서 4장 11-14절) 많은 핍박 가운데 고난 받고 그러면서 스스로 일하고수고하고 힘쓰며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피곤하고 지친 외모를 우리는 쉽게 연약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위의 두가지가 보이는 모습 즉 외모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내적인 혹은 영적 자각에 관해서이다. 연약함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바울의 겸손함을 읽을 수 있다. 친히 사도이면서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친히 수고하고 일하면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모든 일에 스스로 절제하고 지혜롭게 행하는 그의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이 그려진다:"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린도전서 9장 1-6절), "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고린도전서 9장 12절) 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대할 때에는 스스로 겸비하다고 말한다:"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 또한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려는 것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고린도후서 10장 11-12절) 우리는 약함이라는 표현에서 사도 바울이 가졌던 고린도 교회를 향한 겸손하고 온유한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전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자세이다.



넷째 약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바울 자신의 내적 고백이다: 전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으면시 시작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연약함을 깊이 자각하면서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러므로 다시 강해진다.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해진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2장 7-9절) 약함은 또 사도 바울의 자랑이다. 왜냐하면 약함이란 다른 사람의 약함에 대한 간절한 사랑과 애정에서 나타나는 뜨거운 마음이기 때문이다:"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린도후서 11장 29-30절)



이와 같이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철저하게 알고 있기에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할때에 두렵고 떨림으로 했다.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에 자신의 약함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임했다. 두렵고 떨림은 하나님에 선 인간의 참다운 모습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고 보내심을 입고 그의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첫번째 반응은 두려움이었고 그러한 사람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첫번째 말도 대체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두렵고 떨리는마음을 가진다. 두렵고 떨림이란 죄인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필연적인 의식이다. 자신의 약함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설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의 마음본받아라고 말하면서 그 다음에 바로 두렵고 떨림으로 내 구원을 이루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립보서 2장 12-14절) 이말은 흔히 이해하듯이 구원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참으로 큰 오해다.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스스로 이루시는 일이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는 마음으로 항상 겸손하고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 일을 하면서 동시에 남의 일에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도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모든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내 안에서 이루시는 소원을 두고 이루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전도의 본질이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소원을 두고 하시는 일이므로 감히 스스로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사람의 아름다운 말고 지혜로 자랑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약함과 무능함과 죄인됨을 철저하게 깨달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며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일에 바른 도구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것이다



4. 전도의 목표(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이제 전도할 때 바울은 자신의 지혜로 권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기대했다. 성공적인 전도란 바로 성령이 나타나고 그이 능력이 증거될 때 가능하다. 전도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에 전도에서 무엇보다도 본질적으로 기대되는 것은 성령의 나타남과 그의 능력이다. 성령의 나타남이란 일차적으로 성경의 권위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야 말로 성령이 나타나는 가장 공적이고 확증적인 사건이다. 성령의 나타남에서 지나치게 신비적 해석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성령이 하시는 구원사역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여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수 있게 하신 일이다. 사도 바울은 이 말에서 자신이 선포한 구약성경에 대한 권위를 일차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복음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미리 말씀하신 것을 다 친히 다 이루신 사건이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자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역에서 많은 구약성겨을 친히 사용하며 사도 바울도 수많은 구절을 구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바울은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서부터 전도를 시작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성경에 기초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그는 부활에 대해서도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고 /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린도전서 15장 3-4절)로 시작해서 가르치고 있으며 또 자신이 가르치는 복음이나 서신이 결코 자신의 글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강조한다:"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라디아서 1장 11-12절)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된 사건이나 그가 전하는 복음이나 그가 기록한 서신은 사람의 뜻으로 된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이며 성령의 나타남인 것이다. 성경이란 성령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 놀라운 은혜이다:"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베드로후서 1장 20-21절)



하나님은 성령의 나타남으로 자신의 지혜를 전하게 하며 이것이 전도이다. 전도는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일이며 그러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자 산기도 가고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나타내심은 그의 말씀을 이루시는 일이고 말씀이 선포되고 이루어지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말씀을 버려두고 기도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일 것이다. 전도의 목표는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 나나타게 하는 것이며 그의 능력이 행하게 하는 것이다. 전도하는 사람은 성령이 친히 나타나고 그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수고하는 자이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이사야 62장 6-7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자신의 말씀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말씀을 속히 이루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님으로 자신의 약속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전도란 바로 이러한 일이며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에게 속히 행하도록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행위이다.



5..전도의 결과(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제 전도의 결과는 자명하다. 전도는 하나님의 증거를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며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면 전도의 결과는 당연히 전도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이며 또 그 믿음이 사람의 지혜나 말에 있지 않고 즉 사람의 말에 설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어한다. 즉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에 의해서 증거된 것이다. 사람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자랑하는 자가 되며 주 안에서 자랑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은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일을 은혜로 알게 하시고 자랑하되 반드시 하나님의 일을 주안에서 자랑하게 하셨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2장 12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린도전서 1장 31절) 사람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고 사람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도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도 할 수없도록 비밀에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지혜가 사람에게 전하여 지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것이며 우리에게 성령이 나타나심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려하심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는 오직 사람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주안에서 자랑하는 것이다. 전도의 결과는 바로 사람으로 믿게 하고 그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내가한 전도의 결과가 성공적이냐 하는 기준은 먼저 전도를 받은 사람이 예수를 믿느냐는 것이고 다음에 그 믿음이 나의 설득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그의 능력의 증거에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그 전도는 분명히 성공적이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분쟁에 빠진 고린도교회에게 사도 바울은 자기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전도가 무엇인가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바울이나 게바바 아볼로는 다 사람이고 그들의 노력과 그들의 아름다운 말과 지혜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상기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자랑하는 자로 시기와 분쟁을 없이하고 한 마음과 한 뜻을 품게 되기를 교훈한다:"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린도전서 1장 9-10절)



오늘도 수많은 교회들이 사람으로 인해 시기와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라 교회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전도로 생겨나며 믿음은 사람의 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어야 한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자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쟁을 없이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송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 아멘!



이 글에 대한 권리는 ' 은능사'님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