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은 매일 읽음에 있어서 잠언만큼 효과적인 나눔이 있지 않은 듯 하다. 그냥 150장이므로 하루에 1장씩 읽는 정도로 정한다. 시편 119장 같은 경우는 알파벳 시로서 히브리어 알파벳에 따라서 8절씩 이루어져 있으므로 하루에 한 알파펫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거의 6개월이면 한번 읽는 것이 가능하다.



시펀에 대해서 매일 읽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편은 대체로 찬양과 간구와 탄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인 경우도 있고 민족이나 국가적인 경우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생은 항상 악의 유혹과 도전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삶 가운데 바르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마음이나 몸의 아픔과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이러한 힘든 삶의 여정에서 시편은 참으로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참된 복의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편 1장은 바로 이러한 삶의 전체적 여정 가운데 울릴 위대한 교향곡 혹은 변주곡을 위한 서막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장 1-2절) 시편이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인생이 얼마나 많은 악과 죄로 점철된 것인가에 대한 경고의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쉬지 않고 악인과 죄인과 교만하게 조소하는 자들의 도전이 닥쳐온다. 이러한 역경 가운데서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고자 하는 자는 언제는 좁은 문과 같다. 그리고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하고 그 길은 결코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처럼 순탄하지 않다. 즉 문이 크고 길이 넓지 않다는 말이다.



좁은 길은 걷는 것은 외롭고 힘들지만 성경은 또 기쁘고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외롭고 고달프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모든 처지와 형편 뿐 아니라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아시는 하나님이 가난하고 답답한 우리의 심령에 기쁨과 즐거움을 약속하신다. 시편은 바로 이러한 기도의 책이요 복있는 자의 삶은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이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복이 주어진다.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그 길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시편이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복있는 자의 길이 결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금방 이해할 수가 있다. 역경 과 고난, 악인들의 조소와 도전 앞에서 결코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순종해서 살아가는 것은 힘든 여정이지만 그것은 복있는 자의 길이며 형통한 길이다. 예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과 동일한 가르침인 것이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목마르고 배고프고 핍박받는 자들이 복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산상의 가르침과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이런 이유때문에 시편을 날마다 읽어야 한다. 잠언을 통해서 생활의 지혜와 구체적인 행동의 지침을 얻는다면 시편에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의 고달픈 현실에서 소망을 잃지 않고 용감하게 정도를 걸을 수 있는 위로와 격려를 얻게 된다. 지혜는 결코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결정체들이다. 그래서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매일 시편을 읽고 묵상하면서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들에게서 떠나 오직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도록 하자. 이 땅에서 오늘 지금은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안타깝고 힘들지라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풍성하고 자랑스러운 내일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소망이 있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으니 이러한 소망은 우리 믿음의 근거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처럼 역시 소망이 없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이다. 바라는 것의 실상이 믿음일진대 바라는 것이 없다면 믿음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