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에서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할 수 있는 가장 명분있는 유비적인 실재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며 이 하나님이신 말씀의 성육이 예수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3)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는 빛이며 그가 직접 말하신대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이 빛을 얻으리라"(8:12)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와 혼돈의 물을 운행하는 하나님의 영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영이기도 하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질서와 이성의 창조주며 빛의 주인이라는 것을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한 말씀이며, 창조주 하나님이며, 동시에 우리를 죄에서 구속한 구세주이며, 또 그의 영으로 모든 혼돈과 무질서, 어둠과 흑암을 통할하고 있으며, 모든 질서와 빛의 주인이며 주권자이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의 빛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모든 빛이 그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서 우리가 언제든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중요한 점은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에 있어서 완전한 하나님이며 인성에 있어서 완전한 사람이다. 그는 하나의 인격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지만 결코 피조물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독생하신 성자 하나님이며 동시에 태초에 있는 말씀이며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게 나신 죄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칼세돈 공의회에서 결정된 그리스도의 양성론 교리와 니케아 콘스탄틴 회의의 삼위일체 논쟁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이 진리가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자유신학 혹은 비평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니케아-칼세돈 신경이 유대교가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헬라의 철학과 만나면서 생겨난 역사적 문화적 결과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즉 삼위일체 교리와 그릐스도의 양성론의 교리가 성경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데 헬라의 문화권에 전해지면서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헬라문화에 오염되어 생겨난 부가적으로 발생된 결과물 정도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양성론의 진리는 기독교의 근본이요 철골이며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는 더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사랑이고 평화....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와 보편적 가치들로 장식한다 할지라도 이 진리가 부인된다면 기독교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이단을 가리는 시금석이 바로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양성의 진리인 것이다. 이 진리의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성경의 진리가 유대의 한계를 벗어나 세계의 보편적 진리로 나아가는 길에서 무한으로 상승하려는 죄와 타락으로 오염된 신비적인 세계와 불가피한 충돌을 하게 되고 이러한 영적 싸움에서 기독교가 승리하는 난공불락의 기념비적 공적이 바로 니케아-칼세돈 신경의 진리인 것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가 죄와 부패로 점철된 세계를 교정함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교정되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무한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다. 무한이 신관념이든, 이데아든, 형상이든, 회의할 수 없는 자아의 명증성이든, 물자체든, 절대정신이든, 의지의 표상이든, 국가나 역사나 공동체의 이념이든, 초인이든, 창조적 진화든, 순수의식의 지향성이든, 존재든, 구조의 자명성이든, 실증적 지식이든, 과정이든, 그외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 표상되든지 간에, 그외 여러 종교적 추구에 상관없이, 인류 역사의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져갔고 지금도 또 생겨나고 있는 꺼지지 않는 충동- 그것은 무한에 대한 열망이다



. 이러한 충동은 인간의 마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헐고, 부수고, 찍고, 불태우고, 멸해야 하는 우상중의 우상인 것이다. 이러한 무한으로 수직 상승하려는 부질없는 관념의 허상의 대표적인 침전물이 바로 헬라-로마 문화의 사변적 체계이며 이러한 사변적인 헬라문화를 극복함에 있어서 창조주와 피조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거리가 인정되어야만 했다. 우리가 아는 기독교의 절대적 교리인 바 성경의 처음에 기록된 '무로 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본질에 있어서 어떠한 연합이나 혼합도 있을 수 없도록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절대적인 거리를 확보하려는 계시적 선포이다. 즉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떠한 물질적 질료도 없이 오직 자신의 말씀으로만 천지, 세계와 그 가운데 충만한 만물을 창조했다는 창조의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



초대 교회 수백년 동안 수없는 도전을 받으면서도, 또 자기의 내부에 있는 약점과 죄와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적인 약점에 굴복하면서도,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고린도후서 10:5)는데 마침내 도달한 것이다. 이 진리는 말 그대로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다" (고린도후서 10:4) 이로써 강력한 표준화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본성론의 진리는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중심적인 주제가 아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아주 본격적으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진리를 언급한 이유는 니케아-칼세돈의 진리가 결국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진행하면서 필연적으로 제기된 문제 및 다수의 논쟁을 통해서 확보된 진리이며 기독교의 난공불락의 기초적 진리요, 결코 굽힐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와 빛의 유비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에는 엄연히 구별되는 혼동되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는 위에서 본 것처럼 창조주로서,  선재하는 말씀으로서 결코 피조물이 아니며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이며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절대유일의 하나님이다. 또 그는 죄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결코 피조물은 아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경우에도 피조물이 아니라는 진리는 확실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그에 반해서 빛은 비록 모든 질서의 상징적 실재로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피조물, 무한과 유한, 즉 그리스도와 빛의 유비에는 칼세돈 신경의 진리를 위협하는 요소가 잠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될 것이며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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