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2절의 혼돈, 공허, 형태없음, 어둠, 깊음, 등은 모두 인간의 이성의 한계에서는 극복되기  어려운 무질서의 힘으로 표현되고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는 총제적인 무질서는 "물"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과연 물은 예측할 수 없고 다루기 힘들고 거칠고 인간의 삶을 궁극적으로 휩쓸어 가는 엄청난 힘을 가진 세력이지만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를 생각하라) 이 물은 스스로 방임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다. 모든 혼돈과 무질서의 궁극적인 힘이 물로 이해되지만 이 물은 하나님 앞에서는 물러가고 굴복하게 된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어떠한 무질서나 혼돈도 없다는 것이다.( (홍해사건과 시편 및 구약 곳곳에 나타나는 이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전승을 생각하라)



성부, 성자, 성령으로 오직 하나이신 우리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나라가 지금부터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만드신 실재이며 하나님에 의해서 운행되고 소중하게 관리되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현실이다.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어둠도 혼돈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한 상태가 하나님이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나 어둠일 수는 없다. 하나님은 빛보다 더 밝은 분이기에 하나님에게는 결코 어둠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또 앞으로 하나님이 사랑과 인자함으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할 사람이 사는 이 세계에는 사정이 다르다. 빛으로 명명되는 법과 질서(Nomos)로 건설되고 다스려지는 이 세계 내에서는 어둠과 혼돈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혼돈과 공허, 어둠과 깊음의 세력인 물을 하나님의 영으로 통제하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운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계는 바로 빛을 통하여 어둠과 혼돈에서 분리된 영역이다.  그리고 빛은 질서의 세계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은혜요 혜택이며 최초의 환경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처음으로 창조된 세계는 2절에서 어둠과 혼돈의 상태를 지난 3절에서 빛의 창조와 함께 질서의 과정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3절에서부터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에 법과 질서를 창조하고 건설하는 단계로 진행한다.



물이 이러한 혼돈과 흑암을 상징하는 실재라면 빛은 이에 대해서 질서와 광명을 상징하는 실재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3절의 빛의 창조와 네번째 날에 만든 광명(해, 달, 별들)을 구별하고 있다. 빛이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물리적 실재이지만 그럼에도 단순한 물리적 실재성을 넘어서 영적 도덕적 세계를 포함하는 질서의 실재성인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빛은 생명의 근거인 것이다. 빛이 없는 생명은 생각할 수 없다. 빛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즉 무질와 어둠, 혼돈과 흑암에서 생물체는 자신을 유지할 수 없다.  빛을 통해서 세상에 생존의 환경으로서 질서가 생기고, 이를 통해서 생명활동이 현실화 된다. 그래서 빛은 곧 생명이라고 말하여지는 것이다. 즉 빛은 생명의 가장 중요한 환경인 것이다.



모든 피조물의 존재의 궁극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영의 활동이므로,  빛은 세계 창조의 주인이며 또 말씀인 하나님과 온 세계를 운행하는 이 말씀의 영, 즉 하나님의 영의 지위에 부합하는 유비적으로 적합한 자연적 물리적 실재로 이해될 수 있다. 세계에서 빛의 지위는 모든 만물에 대해 하나님의 지위에 유비적으로 대응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빛은 나타나는 것이며, 나타나는 것은 활동의 결과이고, 이 활동은 생명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모든 생명활동,  그것이 물리적이든, 도덕적이든, 영적이든 간에 그 근저에는 항상 빛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나타나는 것마다 빛이라"고 말한다.(에베소서 5:13)



이와 같이 빛은 어둡고 혼돈한 세상을 인간과 및 모든 생물이 존재할 수 있게하는 궁극적이고 일차적인 생명의 환경이자,  존재하는 세계의 질서를 상징하는 물리적, 도덕적, 영적 실재로서, 자기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인자의 표출인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바로 인간과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은혜와 은총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창조물과 창조활동을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랍고도 끝이 없는 인자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러한 놀라운 사랑의 현실성이다. 그는 본체에 있어서 하나님이지만 인간을 향한 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현실성으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된것이다. 그것도 사람의모양만 가진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혈육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인간이 되며, 바로 나와 모든 점에 똑 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죄는 없다. 즉 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죽음과 사망에서 구원해야하는 하나님의 한없은 은혜가 아니라면 사람이 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된 것은 우리를 향해 오직 그의 사랑과 인자를 베푸시는  창조활동일 뿐이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창조한(creation) 세상에 질서를 주기 위해,  빛을 만드신 그 사랑의 창조활동(formation)이 바로 오늘늘 사랑의 성육신으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recreation)로 해산하는 새로운 창조활동으로( reformation) 실현된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개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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