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족장들에 대한 기록을 읽는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떠나면서부터 족장사가 시작된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고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여 60세에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네 명의 아내로부터 12명의 아들을 얻게 되며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고 온 땅에 극심한 가뭄과 기근이 있어 야곱과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요셉에게로 애굽으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야곱이 삶을 마치는 과정으로 해서 족장사가 마무리된다.



우리는 족장들에 대한 기록 중에서 야곱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한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야곱이 살았던 두 가지 유형의 삶을 보여준다. 고대에 이름은 대체로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브라함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고 사라도 사래에서 사라로 다른 이름을 얻게 된다. 창세기 17장 5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부르고 창세기 17장 15절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꾸어 부른다. 이름이 변화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의 변화를 시사한다. 아브람(아버지는 존귀하다)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로의 변화는 바로 아브라함의 존재와 삶의 목적과 비젼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변경했다. 아브라함의 변화에 보조를 같이하여 사라도 사래에서 사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언약의 확고함을 보증한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세기 17장 5절)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세기 17장 15-16절)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로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로 그들의 존재와 신분이 변경되고 그들의 삶에 대한 목적과 미래와 비젼도 변화를 얻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이제 그 존재와 삶의 목표와 목적과 비젼과 미래에서 새로운 출발과 의미를 얻게 되는다. 사람은 태어날 때 그 이름을 얻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새로운 탄생 즉 중생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야곱도 야곱으로 살다가 삶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로 불리게 된다. 이 사건은 야곱의 일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며 야곱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다. 말하자면 야곱으로 살던 사람이 이스라엘로 살게 되는 변화가 그에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창세기 25장에서부터 족장 야곱의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야곱은 이삭의 나이 60에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는 야곱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야곱과 에서는 그의 어머니 리브가의 복중에서부터 서로 싸웠다. 리브가는 이 일로 하나님께 물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세기 25장 23절). 야곱과 에서는 앞으로 두 민족의 조상의 운명을 지고 있으며 그러기에 그 싸움은 아마도 장차 두민족의 조상이 간에 벌어지는 싸움으로 격렬한 내적 요동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싸움의 모습이 태어날 때에도 재현된 것이다. 에서가 먼저 나오게 되었으나 야곱은 자기가 먼저 나오려고 에서의 발을 잡았다. 아는 야곱이 에서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지속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야곱이 야곱으로 살아가는 전체모습을 상징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였지만 사실 닮은 데는 거의 없었다. 일반적으로 쌍둥이는 아주 닮은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에서와 야곱은 그렇지 않았다. 외모에서부터 내적인 성격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아주 판이하게 달랐다. 에서는 어른처럼 털이 많고 붉고 사냥을 즐기는 남성적이고 강한 사람이라면 야곱은 털이 없고 매끈하고 아이 같고 여성적인 사람이었다. 에서는 사냥꾼으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으로 장막에 거했다. 에서는 위대한 장군감이었지만 야곱은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고 집에서 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은 활달한 성격에 씩씩한 에서를 좋아했고 반면에 어머니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야곱을 사랑했을 것이다. 에서가 사냥에서 잡은 고기로서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았다면,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다.



에서는 자연적 출생에 의해서 인정된 장자였고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인정된 장자였다.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았던 야곱은 마침내 사냥에서 돌아와서 배고픈 에서에게 팥죽으로 장자권에 대한 흥정을 하고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사게 된다. 에서는 자신이 출생으로 획득한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기고 팥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에서를 행위를 망령된 행동이라고 평가한다: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브리서 12장 6절) 그리고 마침내 야곱은 리브가의 시킴을 받아서 이삭이 에서에게 하려는 축복을 눈먼 아버지를 속여서 탈취한다. 에서가 사냥을 하러 간 사이 염소를 잡아 변장하여 이삭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에서가 하는 듯이 속여서 눈이 멀어 사실을 확일할 수없는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에서가 받을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게 된다.



이에 대해서 뒤에 돌아와서 모든 것을 알게 된 에서는 아버지에게 자신을 축복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야곱의 행위를 다음고 같이 비난한다:“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창세기 27장 36절) 태어날 때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던 야곱은 마침내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아버지를 속여 축북까지 가로 채면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 야곱은 야곱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영적 축복을 가로채면서 야곱은 리브가에게 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람에게서 이삭에게로 이어진 하나님의 영적 축복의 상속자가 되었다. 실제로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의 권리를 사서 아버지의 유산을 두 배로 받았는지는 알려지 있지 않지만 장자에게 주어진 영적인 상속권은 확실하게 차지하였다. 비록 정당한 방법이 아니었지만 야곱은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상속권을 빼앗는데 성공하였다. 야곱은 야곱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는데 성공했다.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사기 당했다고 생각한 에서는 분노에 사로잡혀 야곱을 죽일 결심을 하게 되고 이 생각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알려지게 되어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아람, 어머니 리브가의 친정이자 자신의 외갓집으로 도망하게 된다.



여기서 야곱의 인생의 제 2막이 시작된다. 야곱의 인생은 기, 승, 전, 결이라는 4막으로 구성해 볼 수 있다. 전반부는 야곱으로서 후반부는 이스라엘로서 그의 삶은 이루어져 있다. 야곱으로서 에서와 지낸 세월이 기라면 야곱으로 외삼촌 라반과 지낸 세월이 승이요 이스라엘로서 에서와 화해의 삶이 전이면 애굽에서의 마지막 삶이 결이다.



형을 피해 도망가던 야곱은 벧엘에서 잠을 자면서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오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사닥다리로 오르내리는 꿈을 꾸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평생에 벧엘의 경험은 야곱의 신앙의 장소가 된다. 야곱에게 하나님은 벧엘에서 나타난 하나님이다.  야곱을 형을 피해 도망간 곳이지만 그 곳 외삼촌 집에서 20년을 살게 된다. 그 곳에서 레아와 라헬 두 자매와 그들의 시종까지 다 아내로 맞게 되어 4명의 아내에게서 12명의 아들을 얻게 된다. 라헬을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7년씩 두 번 14년을 일하게 되고  양떼를 위해 6년 해서 전체 20년을 외삼촌 집에서 일을 하면서 간교한 라반의 집에서 지낸다. 에서를 속이고 달아난 야곱은 라반에게서 속고 산다. 라반은 야곱을 붙잡아 두고 20년에 걸쳐서 10번이나 야곱의 품삯을 변개하여 야곱을 속인다.



야곱의 자신의 말을 따르면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창세기 31장 38-41절) 야곱에게서 그 수고를 헛되게 만들어서 빈털터리로 평생 자신의 집에서 종살이하게 만들려는 라반의 악질적인 꾀에 야곱은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라반에게서 벗어난 야곱은 그의 네 아내와 11 아들과 및 그가 얻은 짐승과 소유를 다 데리고 이제 밧단아람에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귀향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바로 에서다. 그가 에서를 속여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에 야곱을 죽이려 했던 에서와 어떻게 화해를 하는가가 그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야곱은 두려웠다. 혹시 에서가 분풀이로 원수를 갚으려고 그의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죽일까 걱정했다. 그래서 야곱은 어떻게 하든지 에서와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래서 그는 야곱의 이름에 어울리게 각가지 묘책을 시도한다. 종들을 앞서 계속 보내고 함께 예물을 보냄으로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고 거의 환심을 사기를 바랐지만 그러나 야곱은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아내와 자식들과 및 모든 소유를 건너게 하고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이제 야곱의 이름이 가져다주는 꾀를 가지고는 이 어려운 막다른 길에서 결코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모든 가족을 다 보내고 홀로 얍복 강가에 남게 되었다. 여기서 야곱은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밤새 씨름을 한다. 어떤 사람은 야곱의 말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세기 32장 30절)  호세아는 하나님의 천사라고 한다:“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세아 12장 3-4절) 미카엘 천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사자 즉 구약에서 나타난 성육신 전의 그리스도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사사기 6장 12절)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그 어떤 사람 즉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했다. 씨름이라 하면 어원이 아바크인데 이는 먼지를 일으키는 싸우는 모습을 말하며 델리쯔가 말하는대로 얍복이라는 강 이름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바크(껴안듯이 붙들고 늘어지다)나 아바크(단단히 달라붙다)라는 동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는 야곱이 기도했다는 말이다. 처절한 상황에서 결사적으로 기도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고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에게 확실하게 축복할 때까지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그는 하나님에게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주고 축복해 주라는 필사적인 기도의 씨름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사자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그의 다리의 힘줄을 쳐서 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부른다. 이제 야곱에서 평생을 저는 걸음으로 다니는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이제 야곱은 야곱의 삶에서 이스라엘의 삶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되었다. 아버지의 축복을 속여서 형에게서 탈취하는 야곱의 삶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의 씨름하며 축복을 얻어낸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로서의 삶은 우리의 눈에 그렇게 축복의 모습인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야곱은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의 기도대로 하나님은 응답하여 에서와 화해를 이루어준다. 야곱은 이십년 동안 마음에 있던 짐을 벗어버리는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이 이처럼 평안한 인생은 아니었다. 어쩌면 야곱으로 살았던 인생보다 더욱 힘들고 고단하였을 것이다. 먼저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형 에서와 화해하고 회포를 풀고 세겜 땅에 거하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동네 추장인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슬픔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로서 참기 어려운 모욕이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그곳에 우거하는 자로 자신의 분노를 드러낼 입장이 아니다. 기왕에 딸 디나를 사모하는 세겜에게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받도록 권하고 할례를 받은 세겜 주민들을 야곱의 아들 시몬과 레위가 칼로 살육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 또한 이스라엘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소수의 사람으로 그 땅에 들어가 사는데 아들들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얼마나 놀랍고 두려워했을 것인가. “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세기 34장 30절).



이때에도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처럼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세기 35장 1절) 이제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을 만나러 벧엘로 올라간다. 야곱으로 형 에서를 피해서 달아날때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전으로 이제 이스라엘이 되어 다시 올라간다.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고 이방 신상 등을 땅에다 묻고 벧엘로 올라간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창세기 35장 3절).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면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한 언약을 다시 야곱에게 상기시킨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창세기 35장 9-12절) 비록 이름들이지만 이스라엘과 벧엘은 얼마나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화인가.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말이니 하나님과 기도의 씨름을 통해서 반드시 축복을 얻어낸다는 뜻이요 벧엘은 하나님의 집 곧 성전 혹 오늘날의 말로는 교회일 것이니 이스라엘로 중생한 야곱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집 벧엘에 가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야 말로 영적으로 이제 새롭게 태어난 이스라엘의 참 모습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삶은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축복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세겜을 떠난 후에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그를 벧엘에 장사지내고 벧엘을 떠나 에브랏 오늘날 베들레헴을 지나는 길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벤냐민을 낳다고 산고로 죽게 된다. 이 얼마나 큰 슬픔일 것인가. 반드시 자기를 축복하라고 하나님의 사자를 붙들고 씨름하여 얻은 이스라엘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렇게 축복처럼 보이지 않는다. 성경은 짧게 사실만 언급하고 지나가지만 우리가 한번 실제로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보라. 딸이 이방족속에게 강간당하고 아들의 폭력으로 두려움으로 살던 곳에서 도망 나오고 정든 어머니의 유모가 죽고 다시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죽게 된다. 그리고 그의 큰 아들 르우벤이 야곱의 아내 빌하와 통간하게 된다.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참으로 놀라고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그리고 기럇아르바에 아버지에게 이르렀을 때 이제 아버지 이삭이 죽는다. 성경이 보여주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야곱이 이스라엘로 중생하고 나서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 어느 것이 야곱을 기쁘게 할 일이 있었겠는가. 성경이 제공하는 사건들은 모두 이스라엘에게 슬픔과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슬픔은 다하지 않는다. 가나안 땅에 우거할 때 야곱의 아들들은 불화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여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편애했고 이로 인해 요셉과 다른 형제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 그런 중에 요셉이 형들이 가축을 먹이고 있는 현장을 찾아갔다가 형제들에 의해서 이스마엘 대상들에게 넘겨져 애굽에 종으로 팔리게 된다. 물론 야곱은 전말을 알지 못하고 요셉이 형들을 보러 갔다가 들짐승을 만나 찢겨 죽은 줄 안다. 요셉을 다시 만나기까지 거의 13년의 세월을 야곱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아들을 들짐승에게 잃은 슬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다. 우리가 야곱을 인생을 읽을 때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부분이다.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지만 그의 인생은 참으로 기막히고 파란만장하다. 야곱 자신이 말했듯이 그의 일생은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아픔과 상처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난 후에 그의 인생은 더욱 힘든 사건의 연속이다.



야곱은 그의 노년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살아야 하는 참기 힘든 슬픔과 눈물의 세월로 보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야곱은 이스라엘이라 그는 이런 험한 세월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기도의 씨름을 쉬지 않았을 것이니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이요 그의 존재의 목표와 실존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으로 야곱은 절면서 살았다. 다리를 절면서 사는 야곱에게 일어난 일들은 결코 행복한 일들이 아니다. 성경은 야곱이 이스라엘로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지독한 슬픔과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왜 야곱이 이스라엘이어야 했는지를 생각나게 해준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쉽게 편하게 생각해서만 안된다. 사실 요셉의 삶에 대한 기록은 독자적인 기록이기 보다는 야곱의 삶에 들어있는 틀 이야기다. 야곱이 어떻게 해서 애굽에 내려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그 자손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사대 만에 돌아올 것이라는 그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요셉을 잃은 야곱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온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지만 지독한 가뭄과 기근이 온 땅에 찾아온다. 야곱은 벤냐민을 두고 다른 아들들을 애굽에 양식을 사러 보낸다. 그곳에는 요셉 이미 애굽의 총리가 되어 다스리고 있다.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쉽게 읽고 지나갈 수 있지만 아직 모르는 채 내가 그 일을 직접 겪는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일 것인가. 요셉에 계략에 의해서 시몬은 감옥에 갇히고 곡물을 샀던 돈은 그대로 자루에 들어 있고 또 다시 내려 갈 때는 벤냐민까지 데려가야 하는 견딜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냥 있으면 다 굶어 죽을 것이고 그렇다고 벤냐민까지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 내려 보낼 수도 없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걱정과 근심 가운데 야곱을 처하게 된다.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인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 아비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 그 아비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창세기 42장 35-36절) 야곱의 이 말은 절규다. 양식을 산돈은 그대로 있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도 빼앗아 가고자 한다는 표현은 참으로 가슴 아픈 아버지의 절규다. 요셉이 살아서 애굽의 총리로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야곱으로서야 이 얼마나 답답한 아픔일 것인가?



그렇다고 앉아서 다 굶어 죽을 수는 없는 형편 아닌가? 그래서 야곱은 마침내 벤냐민을 함께 내려 보낼 결심을 한다. 그러면서 야곱은 이스라엘의 능력을 잃지 않는다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 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세기 43장 14절) 야곱은 모든 것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긴다. 이제 사람으로서는 할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고. 하나님이 이 자식을 잃는 것을 원하면 잃을 것이라고. 그는 참으로 기도의 참 모습에 이러렀다. 여기서 죽음을 각오하고 왕앞에 나가는 에스더의 고백을 기억하게 된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4장 16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이지만 실제로 그런 결심에 이르러야 하는 상황이란 그만큼 답답하고 고통스런 현실을 의미한다. 아버지를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챘지만 과연 보통 인생의 보는 눈에 야곱의 삶이 기대하는 축복과는 상관이 없는 듯하다. 파란만장한 질곡의 삶을 다리를 절며 외롭게 걸어가는 한 사람을 생각해보라 그가 바로 야곱의 모습이다. 그러나 결코 절망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담담하게 인생을 받아들이는 의연함을 보라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야곱의 외롭고 힘든 기도는 마침내 열매를 맺어 모든 것이 형통한 결말을 얻는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있고 시몬도 베냐민도 잃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그 지독한 기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야곱은 자신의 가족과 소유를 데리고 요셉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마지막 여생을 마친다. 참으로 길고 파란만장한 삶을 이제 평안하게 보낸다. 야곱의 자신의 말에 따르면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세기 47장 8-9절) 야곱은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로서 그 험한 세월을 살았다. 그는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고 147의 나이로 기운이 진하여 파란만장하고 곡절이 많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마치고 열조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야곱으로 살았던 전반기와 이스라엘로 살았던 후반기의 삶으로 야곱의 인생은 크게 나누어진다. 전반기 삶은 에서와 함께 가정에 보낸 세월과 라반과 함께 밧단아람에서 보낸 세월로 나누어지고 이스라엘로 산 후반부 인생은 가나안 땅에서 보낸 세월과 애굽에서 보낸 세월로 나누어진다. 조용한 집사람으로 살다가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보내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독립된 자기 가정을 세워 살면서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가난안 나그네 세월을 살다가 마침내 모든 길을 은혜로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아 애굽에서 복된 여생을 삶을 마치게 된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대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서 형의 권리를 가로챈다. 이는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알려준 말씀이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야곱은 야곱으로서 속여서 취하기도 하고 속고 살아야 하기도 했다. 라반의 교묘한 계략에서 빈털터리 처가살이로 끝날지도 모를 수렁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인도해 내었고 또 라반의 추적에서 생명이 위태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형 에서와도 화해하고 세겜에서 위기를 넘겼다. 요셉을 통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야곱은 온 땅이 괴로워하는 기근에도 애굽에서 평안하게 여생을 보낼수 있었다. 우리가 보지만 리브가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장자 권리는 야곱의 인생에서 쉽고 아무런 장애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참으로 모진 세월을 참아야하는 인내를 요구했다. 인간의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되며 인생에게 함께 하시면서 인생을 돌보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가슴 깊은 은총을 느끼게 해주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오랜 인내의 세월인가를 세삼 알게 해준다.



우리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변하고 난 뒤에 성경이 보여주는 기록에 유념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야곱의 삶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평생을 이스라엘로 살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의 삶의 얼마나 모진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며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삶에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의 축복으로 준비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인생의 위기 때마다 어려운 고비마다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의 답을 찾아가는 야곱의 삶에서 이제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고 다리를 절도록 기도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하는 이스라엘의 인생으로 우리는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야곱을 복을 예비하신 것처럼 우리의 길에서 놀랍고도 엄청난 복으로 우리의 삶에 기쁨과 축복을 예비할 것이다.



[시107:8]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107:15]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107:21]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107:31]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이 글의 저작권은 '은능사'님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