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어렵고 세상이 혼란한 때에 흔히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한다. 특히 기독교인들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뭔가 대단하고 특별하게 행하기를 기대한다. 세상에 대한 나의 어려움을 보시는 하나님이 나의 편에서 세상을 향해 뭔가 놀라운 것을 보여주기를 기대할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늘 침묵하시고 나와 및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한 하나님을 깨달으면서 때로는 원망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이스라엘때에 특히 이스라엘 역사에서 악하기로 유명한 아합 시대에 놀라운 능력과 이적의 선지자가 활동하였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엘리야다. 그는 디셉 사람으로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바알을 숭배하는 우상의 시대에 맞서서 싸웠다. 그는 기도로 하늘 문을 닫아 3년 6개월을 땅에 비가 내리기 않게 하였고 바알및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갈멜산에서 신앙의 결전을 벌여 그들을 모두 죽였고, 또 기도하여 닫힌 하늘을 열고 비를 내리게 한 놀라운 능력을 행하였다. 그는 또 불마차를 타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야는 모세와 더불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지자로 인정되는 사람이다. 또 엘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주의 사자로 불리워졌으며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말한 선지자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세대에서 오직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심하여 의인의 세대를 위해 악하고 음란하여 우상으로 가득찬 세상과 맞선 인물로 유명하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모으고 참 하나님을 가리는 결전을 벌여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고 우상의 거짓 선지자 850을 쳐죽이자, 그 당시 왕 아합의 아내이며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종교의 대표적인 지지자인 이세벨이 화가나서 당장에 엘리야를 잡아서 죽이려고 맹세한다. 그래서 도망하는 엘리야는 남쪽으로 길을 떠나 브엘세바로 그리고 광야로 해서 호렙산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러 길을 떠나게 된다. 그러다가 광야에서 주리고 목말라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구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하나님께 구했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두번이나 그에게 먹이고 마시게 하고 그의 기력을 도왔다. 엘리야는 호렙까지 40일 주야를 행하여 도착하였다. 그 시간은 거리에 비교해 볼때 엘리야의 답답한 심정처럼 상당한 우회요 방황이었다고 볼수 있다.



호렙에 도착하여 엘리야가 굴에 머물고 있을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열왕기 상 19장 9절)냐고 묻고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열왕기 상 19장 10절)고 대답한다. 엘리야의 대답에 대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산에 서게 하고 엘리야 앞으로 지나간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나가시는 데 그 앞에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묻는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열왕기 상 19장 9절) 엘리야는 다시 동일하게 대답한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열왕기 상 19장 10절) 이렇게 하나님이 세워두고 지나가신 일은 모세에게도 있었다.(출애굽기 34장) 이것이 엘리야가 모세와 같이 언급되는 이유 중에 하나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커댜란 권능에서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난세에 악인의 횡포가 심할 때에 하나님이 커다란 권능으로 임하여 일시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특히 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을 품고 혼란한 세대를 살고 있는 사람은 엘리야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열심히 특심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간섭을 더욱 간절히 바라고 그만큼 더욱 쉽게 절망하고 더욱 쉽게 세상에서 도피하기 쉽다. 엘리야는 실로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행했고 여러가지 이적을 이미 행한 상태였고, 또 그 열심으로 해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전체와 대결해서 이기고 그들을 잔멸했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분명히 보았던 엘리야 였지만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는 위협앞에서 결국은 하나님의 도움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도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그 세대의 눈에 하나님을 분명히 증거해야하는 그의 소명을 그는 그만두고 광야로 도망하여 결국은 하나님에게 직접 찾아가 송사를 한것이다. 이는 모세가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끝까지 드러내지 못하고 노함으로 인해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에 비교해 볼수 있다:"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수기 20장 10-12절) 그리고 우리는 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전에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는지 생각하게 된다. 바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자신의 소명을 행하는 과정에서 모세는 므리바에서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광야로 호렙산으로 도망하는 약함을 보였다.



바로 이 둘의 경험이 예루살렘에서 이제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그 절대절명의 순간을 바라보는 예수의 마음을 새롭게 상기시킨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누가복음 9장 51절)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이다. 예수는 모세나 엘리야처럼 자신의 소명 앞에서 도망하는 그런 약함을 보일수가 없었다. 우리는 게세마넷 동산에서 세번이나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최후의 엄청난 시험 앞에서 그는 모세나 엘리야처럼 도망하지 않고 결국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다음가 같이 기도한다:"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장 29절),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마태복음 26장 42절),"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장 36절)



엘리야는 놀라운 능력의 선지자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아합과 이세벨의 악에 맞서서 싸웠다. 여러가지 놀라운 이적도 행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도망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의 일을 감당해야 했지만 도망하여 이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자기 시대를 고발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 앞에 진실한 인간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특심한 마음을 가졌지만 이 때에 이르러 엘리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자기를 부르심에 끝까지 부응하는 믿음에 실패한다. 이는 엘리야의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일 것이다. 실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모든삶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가 광야로 도망하여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간청했을때도 그의 천사를 보내어 그를 위로하고 힘겨운 광야의 길을 도왔다. 시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패역하고 악하여 음란한 것을 보고 잠잠히 보고 계심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알지 못해서도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거하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호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 산의 독수리들에게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끼쳐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과하하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과동하리라 하셨음이니라"(이사야 18장 3-6절)



이렇게 송사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네가 역사 가운데 그 부르심의 현장에 있지 않고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고 물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 앞을 지나가시되 강한 바람과 지진가 불 가운데서가 아니라 오직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엘리야에게 알게 하였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실 일을 감당할 세 사람을 언급한다. 엘리사와 예후와 하사엘이다. 엘리야는 그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열왕기 19장 15-17절) 또 이 세대에 엘리야 혼자만이 남은 것이 아니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않은 7000을 남겨둘 것을 약속하신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크고 엄청난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단지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일을 감당하게 하시며, 또 열심히 특심하여 이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 편에 선 자가 나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거룩한 자 7000을 예비해 두신다고 말하신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반드시 하나님이 준비한 방식으로 응징하신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진실한 마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사 그 때에 그 곳에서 감당하게 하시는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믿음을 가져야한다. 그 믿음은 종종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 주어지고 지켜지고 보존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대가 혼탁할수록, 우리가 열심이 특심할수록 우리는 쉽게 자신의 노력에 절망하기 쉽지만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귀울이면서, 우리의 소명을 끝까지 이루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해야한다. 우리 중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 일을 이루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장 6절)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과 시대의 위협 중에서도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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